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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블랙넛의 이번 싱글은 진보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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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2 19:47:58

사실 저는 오늘 블랙넛 싱글이 나온다는 것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힙플 자유게시판에 들어오자마자 두 페이지가 블랙넛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자 하니 다름 아닌 윤미래 라인 때문이었더군요. 뭐 ‘미래’라는 단어를 이용한 워드플레이는 일찍이 스윙스가 보여준 바 있지만 역시 블랙넛, 그 워드플레이 뒤에 폭탄을 달아놨더군요. 사실 윤미래가 아니라 릴샴 정도만 됐어도 이렇게 격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윤미래의 신격화 대열 급의 입지+유부녀(그것도 JK의 아내)라는 점이 겹치면서 논란이 몇 십 배는 커지게 된 것 같네요.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소재였고 저는 찬반 양쪽의 반응 모두 이해가 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가사는 이런 쪽에 많이 관대한(?) 본토에서도 많이 쓰이는 동시에 논란을 몰고 다닙니다. 업적으로는 언터쳐블의 대열에 들어가는 에미넴도 이기 아젤리아 강간 가사를 넣었다가 에미넴 팬층이 두터운 LE에서도 대차게 까였고 비교적 건전한 이미지의 빅션도 당시 여친 아리아나 그란데를 암시하는 여성 비하 가사를 썼다가 욕먹고 아리아나와 헤어지기까지도 했죠. (물론 여친도 아니고 자기 아내를 Bitch라고 하면서도 딱히 욕 안먹는 제이지나 칸예도 있긴 합니다만) 이런 힙합이 줄기차게 까이는 요소인 여성 비하, 폭력성 및 선정성은 분명 앞으로도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고 고쳐야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논란 또한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블랙넛 본인 또한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을 것이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저는 그것의 옳고 그름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다른 의미로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죠. 바로 블랙넛의 그 ‘Real’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여자 따먹고 마약상 경력과 무례함을 자랑하는 가사의 존재 자체가 Real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학적이고 시적인 가사로 멋을 내는 커먼이나 라킴 등이 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교도관 출신으로 갱스터 랩 하는 릭 로스나 고학력 갱 랩퍼 투체인즈 등을 보면 솔직히 웃기기도 하더군요. 국내에서도 또라이 컨셉 잡으면서 점차 그 캐릭터에 취하는 듯한 제이통 등을 보면 쓰흡..? 하는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당최 보수적인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딸 바보라거나(투체인즈),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인 경우를 보면(티아이) 저 사람들도 진짜로 저렇게 사는 게 멋진 삶의 기준이 아닐 것 같은데 이런 게 진짜 멋있는 건가-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이를 제 개인이 아니라 멀리서 예술의 기준으로 봤을 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멋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들을 대하는 아티스트들은 하나의 창작물과 그 작가로서의 존재가치를 그들은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멋을 ‘솔직하게’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리온, 리쌍, MC 스나이퍼 등 원래 철학적이거나 인생을 노래하는 가사를 쓰는 랩퍼들이 아닌 이상 방송에서 나올 수도 없었고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기가 되면(혹은 되고 싶으면) 알아서 ‘쎈’ 가사들을 정돈하고 발톱을 감추기 십상이었습니다.-이런 면에서 MAMA에서 유일하게 가사 필터링 없이 나간 일리네어는 정말 놀라웠습니다-그 용감한 스윙스도 입대 직전 즈음해서는 조금씩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요. 그나마 그 스윙스가 컨트롤에서 거하게 판을 벌려준 덕에 대중들이 수위 높은 폭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이후 공중파에서 스웨거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물론 쇼미더머니 등에서 그 배틀의 성격만 차용하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충분히 대단한 성과였죠. 하지만 그 수위는 욕설과 힘자랑 등에 그쳤고 여전히 노골적이고 성적이거나 범죄에 가까운 가사들은 누구도 쉽사리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성이라는 무게 앞에 다들 자기의 본모습을 일부 가리거나 아예 감춰왔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다들 ‘힙합 대중화’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변명하거나, 누군가가 변명해주었고요.

제가 블랙넛에게 긍정적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과거 일간베스트 회원이었던 것, 중범죄 행위에 대한 곡, 엄청난 수위의 성적인 가사 등 블랙넛이 방송-특히 이번 쇼미더머니 출연-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질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팬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었고 방송에서는 적당히 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았음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예선에서 지코 멱살을 잡고 바지를 깐 데 이어 대중적 관심도 적잖게 모아진 현 시점에서 그러한 모습을 감추다 멋없게 들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놓고 예전보다 더욱 파격적인 가사를 들고 나오면서 그 예상을 산산이 부숴버렸죠. 이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힙합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I don't give a fuck’의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랩퍼는 없었으니까요. 이것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Real했습니다.

더군다나 퀄리티 또한 블랙넛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작업물 중 가장 뛰어낫고 심지어 대중적인 성과까지도 좋습니다. 이번 더블 싱글 수록곡인 ‘배치기’는 멜론 실시간 차트 3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타이틀 곡 ‘Higher than E-sense’도 40위 안까지 올라갔었습니다. 심지어 엠넷에서는 5위권까지 올라가더군요. 지코의 터프쿠키가 하드하면서도 차트 10위권에서 롱런한 적은 있지만 힙합 아티스트 지코가 아닌 블락비 리더 지코의 팬들이 90 이상 만들어준 성과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방송 출연은 물론 언더에서도 팬덤이 탄탄하지는 않은 블랙넛이 남긴 이 기록은 굉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대중적인 성공이라 하기에는 미약한 성과지만 이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팝과의 결합, 아이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힙합이란 이 문화 본연의 힘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어떠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니까요. 이 블랙넛의 용기는 한국 힙합에 있어 정말 커다란 진일보를 이뤄낼 첫 발딛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부터가 진짜 고비일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시 등을 비롯한 대중들의 폭격이 시작될 테고 블랙넛이 예고(?)한대로 스윙스가 군대 간 사이 저스트뮤직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도 생기고요. 하지만 분명 블랙넛은 그를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 깡다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약간은, 아주 약간은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부디 쇼미더머니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서 대중들 사이에서도 안착할 수 있기를 빕니다.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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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5-06-12 19:50:18

믿는다 아다!

2015-06-12 19:55:39

그냥 글 자체가 전보다 덜 기름지네염 ㅊㅊ

2015-06-12 20:22:21

힝 넘길엉

2015-06-12 20:24:26

자신이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기가 되면(혹은 되고 싶으면) 알아서 ‘쎈’ 가사들을 정돈하고 발톱을 감추기 십상이었습니다. 괜찮다아~~

2015-06-12 20:24:46

곡 퀄리티가 좋았다는것, 블랙넛의 증명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음 다만..그래서 조금은 사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음..솔직한게 멋이긴 하지만 마냥 좋은건 아니라서..

2015-06-12 21:03:35

아돈기버뻑 멋뎌

2015-06-12 21:13:31

프사이쁘군

WR
2015-06-12 21:15:41

배우신 분

2015-06-12 21:51:14

지코 멱살잡고 바지 깠다는거 진짠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WR
2015-06-12 21:54:38

인증샷까지 올라왔습니다 아 바지는 물론 자기걸 깠습니다.

2015-06-12 22:57:44

실제로 그거봣는데 졸다가 잠이 싹 날라갈 정도로 개뜬금없이 돌발행동으로 바지내리고 당당하게 소리지르고 목걸이 낚아챔ㅋㅋ

2015-06-12 22:20:18

릭로스나 티아이 부분 언급쪽에서 급 공감. 한동안 외힙보면서 정말 의문들고 요즘도 고민하는부분이라.. 양싸님이 일케 멋진분일줄은ㅋㅋㅋㅋㅋ ㅊㅊ

2015-06-13 14:26:54

본문하곤 상관없지만, 여초커뮤니티에서 여론몰이하는 법 보니까 진짜 무섭던데ㄷㄷ

2015-06-13 20:53:31

글정말 잘 쓰셨네요. 추천 드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중에 요번 앨범 no diss의 타이틀 곡이 higher than esense 라는 구절이 있던데, 타이틀 곡은 2번트랙인 배치기입니다.

WR
2015-06-14 00:04:48

으 그렇군요 근데 수정하긴 너무 늦은 것 같네요 히히

2015-06-13 22:09:34

양싸님떵꼬빨고싶다

WR
2015-06-14 00:04:20

히이익....

2015-06-13 22:40:47

여시 루머 유포하고 그래서 고소 당하고 있다던데 이제 무서워서 글 안쓸ㄹ듯

2015-06-15 16:58:01

쎈 랩이 리얼한거로 따졌을 때 취랩한테 비할 바가 아님...

2015-06-17 18:26:17

블랙넛이 힙합 대중화에 어느정도 기여해줄거같긴함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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