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비앙 & 손 심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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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래퍼라고 하면 손 심바만한 인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소위 말하는 앨범 외적인 사건에 대한 말을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전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손 심바를 둘러싼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과 발언 및 에티튜드, 그리고 그가 들어왔던 여러 비난들에 대한 맥락을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한국 힙합에서 가장 문학적인 앨범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전설』을 꼽을 것이다.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복선, 주로 순문학 작품에서 이용되는 여러 문학적 기법들의 적절한 활용은 이를 반증한다. 직관적인 예시로는 "원숭이띠로부터"에서 사용된 시점 변환 기법과 앨범 전반에 걸쳐 깔려있는 은유가 있겠다.
『전설』의 서사는 이러한 문학성 아래 손 심바—화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있다. 화자가 받는 따가운 눈초리들을 노래한 "무덤 앞의 개", 화자의 눈에 비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한 "귀신이 되어"와 "그게 사람" 등, 손 심바라는 중심 주제 하에서 각각의 단락별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특히 인상깊은 부분은 "원숭이띠로부터"에서 "전설들의 불빛", "사수자리에게"로 이어지는 서사이다. 오버클래스 시절 김진태가 한국 힙합에 심은 빛의 씨앗과 실패, 그리고 이러한 좌절이 화자에게 미친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해당 단락은 화자가 그간 행해왔던 행위와 그의 신념 사이에서 중추적으로 작용해 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부여한다.
이러한 앨범의 서사 이면에는 서사에 대한 몰입도와 동시에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야기하는 사운드적인 이점이 숨어있다.
손 심바의 랩핑은 정적이면서도 타격감이 큰 편에 속한다. 여기에는 손 심바 본인이 굳이 자극적인 랩보다는 그렇지 않은 랩을 선호하는 개인적 기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특징은 래퍼 Roc Marciano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특이한 인상을 준다. 또한 4음절 이상의 라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특유의 플로우를 형성해 기술적으로도 수준급의 랩을 구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손 심바의 랩에 내재된 강점들은 『전설』의 감흥을 배로 증폭시켜주었다.
비앙의 프로듀싱 또한 매우 인상깊었다. 급박한 분위기와 정적인 분위기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특유의 사운드 구성은 앨범을 감상하는 내내 압도당하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여러 샘플들을 잘개 쪼개어 곡의 전개에 따라 각기 다른 질감의 샘플들을 조화시키는 그의 샘플링 능력은 가히 완벽에 가까웠다. 만약 비앙이 본 앨범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전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다소 아쉬운 앨범이 되었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올해 2021년, 대한민국 힙합 씬에서 수준이 상당히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레디와 스월비의 합작 앨범인 『Heartcore』, 제이호의 『Locals Only』, 키드밀리와 dress의 『Cliché』 등 좋은 앨범들이 잔뜩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손 심바와 비앙이 찍어낸 『전설』은 앞의 앨범들 이상의 평가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25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트랙들이 비슷하게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어 듣는데에 다소 피로감이 생긴다는 점은 아쉬웠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운드 적인 부분만이 아닌, 손 심바 특유의 플로우도 크게 기여한다. 물론 "원숭이띠로부터"나 "전설들의 불빛"과 같은 트랙들을 통해 이러한 피로감을 해소하고자 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고,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긴 하였으나 여전히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사 또한 조금 아쉬웠다. 래퍼 손 심바에 대한 정보들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몰입이 가능한 서사 구조는 『전설』을 통해 손 심바를 처음 접한 이에게는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서사의 각 단락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아닌 다소 파편적으로 떨어져있어 하나의 단락에 집중하는 데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본 앨범을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손 심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의 진솔한 서사와 유려한 랩핑, 그리고 비앙의 탁월한 프로듀싱에서 기인한다.
『전설』은 손 심바 그 자신을 통째로 엮어낸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손 심바는 당당하게 전설이 되어보였고, 비앙은 다시 한번 자신의 실력을 완벽히 증명해냈다.
386 패밀리 리뷰
Written By 마늘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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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전설까진아니고 비유로 전설앨범속 전설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