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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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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17:02:02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요즘 드디어 밀렸던 감상을 따라잡았습니다 (와중에 차메인이 정규를 내긴 했네요).

여전히 저의 감상은 계속되지만 조금 여유롭게 들을 수 있겠군요

 

PS 제 전역일은 4월 16일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서리 - THE FROST ON YOUR KIDS (2021.2.10)


 첫 앨범 때와 비교하여 cjb95, OHIORABBIT 두 멤버의 음악적 보강, 쇼미더머니로 인지도를 높인 Khundi Panda와 dsel, 그리고 다른 식으로 인지도를 높인 (..) Son Simba까지, 앨범의 스케일이 커지리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부합하게 "THE FROST ON YOUR KIDS"는 수많은 앨범 스포와 티저, 3곡 짜리 예고편 앨범, 뮤지션들의 찬사 가득한 예고 등 다방면의 (의도적이든 아니든) 홍보로 상당한 hype을 받고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뚜껑을 연 "THE FROST ON YOUR KIDS"는 매운 앨범이었습니다. 자켓부터 총을 들이밀고 가정교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의욕이 넘쳐나 거의 13트랙 전부를 어리석은 대중 혹은 래퍼들을 꾸짖는데 할애합니다.


 네 명의 래퍼는 전부 드센 랩을 구사하는데 (특히 Son Simba는 "Neo Christian Flow" 때부터 효과적으로 파워를 랩에 싣는 비결을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네 명의 래퍼가 균형 있게 강세와 유려함의 비율에 차이를 둔 건 재밌습니다 (전자는 Dsel, Son Simba고 후자는 OHIORABBIT과 Khundi Panda인 식으로...). 대략 비슷한 주제로 짧지 않은 플레이타임 내내 일관하여 야기될 지루함을 타파하는 주요 무기는 이들의 표현력입니다. 마치 자켓이 무시무시하면서 코믹하듯, 그들의 랩도 날카롭고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영화, 만화, 게임, 인터넷 밈 등 제한 없이 여러 분야의 비유를 끌어들여 유머러스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펀치를 날립니다. 요즘엔 찾기 어려운 4-5음절짜리 큼지막한 라임을 박는 방식은 장단을 따지기 전에 향수를 불러옵니다.


 다만 hype을 그대로 믿고 듣다가 실망한 분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 앨범은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앨범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비트 얘기가 나와야할 것 같은데, 분명 Viann과 cjb95 (그리고 게스트로 참여한 Arwwae, Avantgarde Park)이 고전적인 사운드 소스를 신박한 리듬으로 재조립하여 깔아놓은 비트는 범상치 않은 매력이 넘칩니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 로파이하고 미니멀해진 터라 전체적으로 텁텁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제공하는 리듬이 평범치 않다보니 이를 타는 랩 역시 평범치 않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표면적인 결과 중 첫 번째는 딱딱하게 끊어지는 랩입니다. 이는 비트 리듬 때문만이 아니라 라임과 플로우 성질 때문이기도 한데,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들의 랩에서 마디를 맺을 때 발음을 늘어뜨리거나 꼬는 것이 전무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힙합에서 그루브를 더하기 위해 쓰는 가장 흔한 방법인 이 스킬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여기에 곡 내내 같은 어조를 유지하는 터라 트랙 전체에서 매우 경직되고 건조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 유행의 측면'에서 효과적인 훅도 "골로가 모텔" "고드름 세례" 정도에나 겨우 찾을 수 있습니다.


 크루 내 멤버가 모두 한 가지 스타일을 축으로 작업하다보니 앨범 내용의 충실도와 통일성은 상당히 높아진 반면, 듣기 부드럽게 하는 감초 같은 부분이 다 빠져있기 때문에 이런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쉽사리 피로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작에는 "On the Rocks", 세 곡 짜리 프리뷰에는 "퍽치기" 같은 곡이 분위기를 환기시켜줬지만 이번에는 정말 일관됩니다. 한 명이 늘어 네 명이나 된 래퍼진을 예의 방식으로 사용하려 하는 것도 단조로움을 보태는 부분입니다.


 결국 앨범의 의도를 이해하며 맞추는 것이 최적의 감상법이라면, "THE FROST ON YOUR KIDS"는 유행의 정반대에서, 말 그대로 꼬마들에겐 서리처럼 느껴질 냉혹한 앨범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시되야 할 것입니다. 이 의도 안에서는 네 래퍼의 랩의 성숙을 확인할 수 있고, 두 비트메이커의 21세기형 먹통 힙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저는 Wu-Tang Clan에 비교한 모 래퍼의 말이 수긍이 갑니다 - 두 그룹 다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랩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것만 갖춘 하드코어 힙합의 테두리에 더없이 잘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도 늙었는지, 13트랙 내내 혼만 나는 게 버겁긴 하군요. 쉬엄쉬엄 듣다보면 더 애정이 붙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 idolo - 개인정보 (2021.2.15)


 "개인정보"는 idolo의 두 번째 EP로, 제목 그대로 가족과 관련한 개인적인 일화를 소재 삼아 만들어졌습니다. 전작 "비 내리는 단칸방"은 믹스테입 시절에 비해 프로듀싱이나 표현력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앨범이었으며, "개인정보"는 그 흐름을 잘 이어받아 기존의 우울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idolo를 처음 알았을 때 그는 자신을 R&B 아티스트로 소개했지만, 실제 그를 보컬로 간주할 수 있던 건 전작에서 그나마 그랬던 한편, "개인정보"는 그를 R&B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숙해진 목소리와 한숨처럼 노래에 늘어난 공기의 비중은 그가 의도한 분위기에 리스너를 젖어들게 하며, 후반에 나오는 밝고 신나는 비트에서도 기존의 우울을 유지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 목소리 자체의 매력이 충분했기에, "UNHAPPY" 같은 오토튠은 살짝 불필요하게 느껴졌네요. 비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idolo는 과거 일렉 쪽을 팠던 역사가 있고, 그 취향이 이번 앨범에 좀 더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악기들의 밸런스가 좀 더 깔끔해졌으면 좋았단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이 앨범은 춤추는 EDM 앨범이 아니거니와 그의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상당히 수준급으로 뽑힌 비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 아쉬운 점도 분명했습니다. 매우 주관적인 시선일 수 있지만, 보컬의 비중이 늘고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아있는 상태에서, 전작보다 늘어난 텍스트의 양이 아쉬움의 주 요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가사가 많다고 불만인게 아니라, 늘어난 가사를 커버하지 못하는 멜로디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변덕" 같은 경우는, 후렴은 그나마 괜찮지만 벌스는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노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아마 전작과는 다른 분위기의 비트를 썼으니 그렇게 된 거겠지만요. 더불어, 텍스트가 늘어나다보니 내용이 저번보다 장황해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취향이지만, 저는 우울한 분위기는 격한 감정을 표현할 것이 아니면 절제되고 간결한 것을 좋아합니다. "어떡해요" 같은 곡에서 시시콜콜 '이러이러하니까 이러이러하다'라고 푸는 것은 마치 농담 후 이게 왜 웃긴지 설명을 듣는 싸한 기분이 좀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전작에서 확인한 발전이 잘 이어지고 있다는 데 만족합니다. 앨범의 좋고 나쁨에 굳이 나이가 등장할 필요는 없으나 10대의 나이에 이정도 셀프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것은 향후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군요. 아직 설익은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많으니 서서히 보완될 것이라 믿습니다.



(3) FELIX DA RAIN - F.D.R. (2021.2.15)


 "F.D.R."은 FELIX DA RAIN의 2021년 첫 EP로, 개인적으로는 작년 10월 나온 "IZAKAYA SEOUL" 이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의 앨범이었습니다. 허나 워낙 작업량이 왕성했던만큼, 그 사이 벌써 세 장의 EP가 나왔고 (콜라보 앨범 포함) 이 앨범은 네 번째에 해당하는 앨범이었죠.


 저는 FELIX DA RAIN을 일명 '카와이 트랩'에 가까운 음악을 구사하는 싱잉 트래퍼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우선 "F.D.R."은 그 느낌을 꽤 벗어던졌습니다. 이는 트랙 대부분 기타를 사용한 심플하지만 멜로디컬한 비트를 기반으로 삼은 점, 오토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준 점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F.D.R."은 - 그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중 실제로 진지하게 들어본 앨범은 극히 일부지만 - 제가 들어본 그의 앨범 중 가장 담백한 앨범이었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듣기에 비교적 편했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F.D.R."은, 앨범 소개 자료를 인용하면 그의 '분노, 회의감, 성취감' 등 여러 감정을 담아낸 앨범으로 그의 감정이 생각보다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로 담겨있습니다. 비트는 편안해졌지만 반대로 그의 가사엔 욕설이 자주 등장하며, 랩은 빽뺵해지다 못해 "dance with lil"을 기점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방언이 터진 것마냥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의 가사가 폭주하듯 내달립니다 - 아마 대부분은 Kid Milli나 NO:EL 등을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유사성을 문제 삼을 분도 꽤 있겠지만, 크게 보아 내세우는 음악 스타일이 다른만큼 굳이 카피캣으로 치부할 필요 없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런 분노의 폭발 같은 랩을 자연스럽게 느낄지 부자연스럽게 느낄지의 여부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앨범은 FELIX DA RAIN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 물론 트랩에 대해 내성이 적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원체 격하고 화려한 랩을 즐기는 그였기에 이 정도의 사운드를 타는 게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앨범 소개글에 따르면 이 앨범은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되어있어, 다시 그의 향후 활동에 관심을 가져봐야된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입니다. 



(4) DJ Wreckx - BB KIDS Vol. 2 (2020.12.17)

    DJ Wreckx - BB KIDS Vol. 3 (2021.2.16)


 작년 9월 Vol. 1이 나온 이후로 "BB KIDS" 시리즈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DJ Wreckx의 비트 위 세 래퍼/팀이 피쳐링으로 한 곡씩 맡아 돌아가면서 랩을 하는 구성은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9 래퍼/팀이 "BB KIDS" 시리즈를 통해 소개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시리즈에서 언급했던 "We Used to Be Down by Law"가 올드 스쿨 느낌이 있다면 "BB KIDS"는 90년대 골든 에라 붐뱁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나름 요소들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DJ Wreckx 비트가 그런 장르의 음악에서 찾게 되는 둔탁한 베이스와 깊은 땜핑을 주지는 못 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재미는 피쳐링진인데, 섭외의 폭이 상당히 넓어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한 신인 및 중견 래퍼들을 많이 알아갈 수 있고, 비단 붐뱁을 표방하는 래퍼들만 참여시키지 않고 Vovo Weng 같은 래퍼도 등장하는데다, Together Brothers의 옛 멤버 BK Block이나 G.L. (APEX & 청천) 등 반가운 이름도 보인다는 점 등등이 포인트입니다. 솔직히 말해, 피쳐링진들의 실력 역시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어 아쉬울 때가 많긴 합니다. Vol. 3까지 들어봤을 때 "BB KIDS"는 이런 느낌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한 얘기들 이상의 것이 앞으로의 시리즈에 생기지 않을것 같지만, 피쳐링진들 보는 재미로 계속 챙겨 들어보긴 해야겠습니다.



(5) The Converse All Stars - All Stars (2021.2.4)


 힙합엘이 게시판에서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앨범입니다. 신발 브랜드 Converse에서 전세계적으로 추진하는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Converse Korea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앨범...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군요. 우선은 다섯 명의 메인 프로듀서가 한 곡씩 맡아 취입한 컴필레이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로 장르가 구분되어있고, 실제로 전체적으로 전자 음악의 향취가 강하기 때문에 힙합 리스너에겐 덜 알려졌는지도 모르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이름의 프로듀서와 그들이 보여주는 신선한 곡의 전개는 놓치기 아쉬운 정도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의 경우 일반적으로 일렉하면 날카로운 고음의 신스가 먼저 연상되지만, 수록된 곡들은 상당히 베이스가 빵빵하고, 댄서블한 음악도 있지만 대체로 쉴새 없이 몰아치는 양상으로 신나면서 동시에 음산함(?)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저 같이 잘 모르는 사람은 "FRNK가 하는 그거"라고 퉁치는 종류에 가깝습니다. "W.A.M." 같은 곡을 아마 드럼 앤 베이스라고 분류했던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군요.


 각 곡에 피쳐링한 멤버들은 제각기의 스킬을 구사하며 하나 같이 곡과 찰떡 같은 궁합을 보여주며, 특히 제가 힙합엘이에서 앨범을 알게 한 계기가 된 글처럼 Lil Cherry와 Jibin의 조합은 참으로 귀중합니다 - Jibin의 곡은 5곡 중 제일 힙합적인 작법의 빰빰한 브라스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Red Bull 서울소리" 앨범이 연상되나, 더 농축된 감흥을 선사 받았습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기분 좋은 발견은 여러 번 있지만, 이런 앨범의 프레쉬함은 그중에서도 각별하군요.



(6) East Frog - Dream Stalker (2021.2.18)


 "Dream Stalker"는 East Frog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스토커에 대한 얘기지만 앨범 소개를 참고하면 이 제목은 '꿈을 쫓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된 듯합니다. 그 의미를 대략적으로 맞추자면 East Frog가 바라는 것들이 앨범에 소재로 사용되었다고 얼추 볼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 East Frog가 "90's Kids" "공해" 등을 낼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가 살짝 코믹한 컨셉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두 장의 EP (Enzzo와의 콜라보 앨범 포함)에 이어 이번 첫 정규 앨범까지 이어진 음악들을 보면, 그의 음악은 확실히 원숙해지고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이는 코믹한 캐릭터가 없어졌단 의미는 아니지만, 말하자면 던지는 농담들이 웃음거리로써도 음악적 표현으로써도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단 얘기가 되겠습니다. 이는 이 모든 컨셉을 수긍할 수 있는 스탯이 랩적으로, 표현적으로 받쳐주게 되었단 말로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부터 장기하스러운 느긋함이 느껴졌는데, "Dream Stalker"에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스타일이 담겼지만 이런 chill함을 전보다 유연하게 소화해내며 축으로 삼고, 어떤 비트에도 어색하지 않게 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Breaktime"이나 "Rap Play" 같은 'chill함'과 반대될 수 있는 트랙에서도 자기 나름의 멋을 유지하면서 비트와 어울리는 것이죠. 단순히 음악 장르뿐만 아니라, "Heavy in the Story" 같은 진중한 얘기에서도 무게감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색깔을 잃지 않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여러모로 왔다갔다 하는 구성인 듯한 앨범에서 기본적인 통일성을 확보시켜줍니다.


 오리지널리티에 민감한 분들이라면 일부 곡, 특히 "Brown Hair Lady" 같은 chill함이 강조된 곡에서 BLNK과의 유사성을 문제로 들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위에서 언급했듯 이런 스타일만 앨범에 담긴 게 아니었고, 곡에 따라서 전혀 연상이 안 되기도 해서 East Frog 자체를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때때로 목소리가 비슷하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리고 좀 꼬투리 같긴 하지만, '꿈을 좇는 자'로 앨범의 의도를 해석할 때 다룬 소재들이 약간 마음에 안 들긴 했습니다. 아니, 여자 얘기, 야동 얘기를 하는 것이 그런 의도라면 사실 소시민적인 캐릭터를 코믹하게 풀어낸다는 면에선 충분히 재밌어요. 하지만 이 두 가지 주제로 겹치는 느낌인 곡이 너무 많았어요 - 특히 "Sticky Night"과 "어허 참" 이 두 곡은 분명 여러모로 스타일이 다르긴 했지만 소재의 특이성 때문인가, 너무 중복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점을 제외하면 "Dream Stalker"는 그래도 첫 정규를 낸 신인 래퍼 (란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로써는 괜찮은 수준의 앨범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사 중에 'type beat master'란 구절이 있는데, 진짜 다 타입 비트면서도 초이스를 잘한 거 같더군요ㅎ 무엇보다 다양한 얘기, 다양한 음악을 자기 식대로 다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앨범을 듣고 살짝 놀랐다는 건 역으로 무의식 속에서 East Frog를 아직도 기믹 래퍼로 생각하고 있었단 방증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명실공히 진지한 감상을 해야 마땅한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PS 피쳐링진 중 h1z1라는 분은 정체가 뭔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좀 궁금했습니다.



(7) 방재민 - 동화: 미련 (2021.2.21)


 방재민은 "고등래퍼 2"에서 처음 이름을 알릴 기회를 가진 래퍼입니다. 당시 꽤 인기를 끌었던 크루 Kiff Clan의 멤버로 "a.mond"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는데, 아무래도 당시 쟁쟁한 멤버들이 많았어서 존재감은 다소 흐린 감이 있습니다 (사실 시즌 2 방송 당시 제가 훈련소에 있었어서...;). 방송이 끝난 후 "S.O.U.L."이라는 아이돌 그룹 활동에, 인터넷 드라마로 연기도 한 거 같더군요. 이때부터 이미 a.mond란 이름보단 본명을 썼던 거 같습니다.


 본인의 첫 앨범이 되는 "동화: 미련"은 고등래퍼 당시의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R&B 보컬에 가까운 모습으로 자신을 재정비하고 만든 앨범입니다 (여담이지만 소개글에 보면 3월에 나오는 앨범처럼 써있습니다... 뭐지 생각보다 일찍 내버린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직전 활동을 보면 대중연예기획사에 들어간 거 같은데 (그때와 같은 회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마찬가지의 진로를 걷고 있다면) 그래서인지 크게 흠 잡을 데 없는 결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고등래퍼에 참가했던 래퍼가 노래를 했다 정도로 생각하고 들었을 땐 살짝 놀랄 수도 있는, 섬세한 감성이 실린 감미로운 창법을 보여줍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랩/힙합으로 구분되어있지만 아마 이것을 듣고 싱잉 랩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얼마 없지 않을까 합니다. 때문에 노래 실력으로 방재민을 평가한다면야 아직 아쉬운 점들은 있습니다 - 특히 잔잔하고 조용히 부르는 부분이 강해서, 실제로는 힘을 주어야하는 부분에 대한 처리가 안 되는 거 같았어요. 영어 가사 비중이 높은데 이건 사실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다듬으면 좋은 보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사실 기억에 잘 남는 래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 이런 모습인 건 반갑다기보단 아직은 당황스럽군요. 어떻게 활동을 이어갈지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8) Ourealgoat - 죽을 힘을 다하여 (2021.2.22)


 2021년에는 처음 나온 Ourealgoat의 앨범입니다. 워낙 작년에 눈부신 허슬을 통해 많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익히 아는 스타일 그대로지만, 확실히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부터 Ourealgoat의 톤 운용은 조금 더 탄력 있고 드세졌습니다. 이게 전작인 "때 묻은 돈"에서 조금 더 명확해졌고, "죽을 힘을 다하여"는 훨씬 더 뚜렷합니다. 지금의 그의 랩은 좀 더 다채로워진 장치와 함께 바운스감이 더 살아났습니다. 이번 앨범은 제목만 봐도 비장함이 흘러넘치지만, 이런 음악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듣기보단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게 됩니다. 개성 뚜렷한 스타일과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 항상 신작을 듣는 걸 즐겁게 해주는군요.


 다만, Ourealgoat는 곡이나 앨범 구조를 설계하는데 그리 욕심을 내지 않는 거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구는 미시적인 부분이고, 더 크게 보았을 때 Ourealgoat의 전략은 일관되었습니다. 곡만 놓고 보면 어디까지가 훅이고 어디까지 벌스인지 헷갈릴 정도의 평탄한 흐름을 갖고 있고, 앨범 전개로는 기승전결 없이 밋밋하게 들리며, 디스코그래피의 차원에서는 EP든 정규든 그저 또 하나의 작품 정도의 감흥밖에 없게 합니다.


 이는 그의 앨범들 뿐만 아니라 요즘 트래퍼들의 음반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특징이며, 저는 크게 거슬리기보단 그냥 Ourealgoat의 스타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앨범을 들을 때마다 마지막 찜찜한 뒷맛으로 남는 부분입니다. 나중이 되어서 이 부분을 더 크게 생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작년 한 해 자기 능력을 훌륭히 증명해내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채비를 마친 아티스트에 대해선 기대가 더 큽니다. 더 큰물에서 노는 모습을 어서 보여주길 고대합니다.



(9) Chariot - Water Wheel (2021.2.19)


 힙합엘이의 홍보글을 알게 된 R&B 계열의 아티스트로, "Water Wheel"이란 EP는 대외적으로 드러난 걸로는 그의 첫 작업물인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라고 앨범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에 맞게 수록된 네 개의 곡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 무기력하고 지리한 생활을 그려내는 듯합니다 (마지막 곡은 살짝 긍정적인 기운이 있지만). 로파이 비트에 무심하게 던지는 느낌의 창법은 이런 무드와 잘 어울려서, 앨범 전체가 어렴풋하게 한 가지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살짝 중후한 톤이 서사무엘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장르는 좀 달라보이긴 하고, 의외로 라임 설계를 치밀하게 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큰 자극 없이 물 흘러가듯 음악을 듣고 싶을 경우 체크해봐도 좋을만한 앨범입니다. 이제 막 나온 아티스트이기에 설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일단 부정적인 판단은 보류하고 앞으로 나오는 작품들로 확인해보려 합니다.



(10) BIG Naughty - Bucket List (2021.2.25)


 쇼미더머니 8을 통해 어린 나이에 성공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커리어를 쌓고 있는 BIG Naughty는, 그 화려한 커리어에 못지 않은 재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H1GHR MUSIC의 컴필에서도 그의 멜로디 메이킹이나 랩 디자인의 센스는 선배들에 결코 밀리지 않았고, 참여곡마다 인상적인 부분 하나씩은 남기는 타율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자연스럽게 그의 첫 앨범을 기대하였고, 장르는 물론 코드까지 다른 옛 곡을 녹여내어 싱잉과 랩을 오가며 풀어낸 선공개곡 "커피가게 아가씨"도 그런 기대를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Bucket List"는 아쉬운 앨범입니다. 다만 왜 아쉬웠는지 곱씹어볼 여지가 있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보여줬던 남다른 감각이 크게 드러난 트랙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뭐 "커피가게 아가씨"는 선공개니까 그렇다 치고요). 대개의 트랙들은 듣기 편안하고 대중적인 멜로디에 기반한 노래에 그치고 있으며, 안정적일지언정 뇌리에 꽂히진 않습니다. 가사 역시 아주 평이한 표현과 비유를 사용하여 쉬우면서 따분합니다 - 예전에 래퍼들이 가요곡 가사 쓸 때 '이렇게 쓰면 대중들이 어려워한다'며 빠꾸 먹던 썰이 생각 났습니다. 대중들을 고려하여 가사를 적는다면 이렇게 나올까 싶더군요.


 그럼에도 "Bucket List"는 충분히 의미 있는 앨범입니다. 나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BIG Naughty의 적당한 기교 섞인 창법은 일반적인 싱잉 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 저는 어느 때부턴가 싱잉 랩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BIG Naughty의 실력은 그 합격 기준을 넘어있습니다. 또한 대중적인 앨범이란 맥락에서 보면,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리된 사운드는 다분히 목적에 부합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피쳐링진은 별로 해가 되지 않고 듣는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됩니다 - 어차피 BIG Naughty가 그렇게 많은 걸 시도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감미로운 노래부터 타이트한 랩까지, BIG Naughty는 워낙 많은 걸 할 줄 아는 아티스트입니다. "Bucket List"는 이 모든 걸 다 담아내려는 것보단 한 가지 컨셉을 잡고 거기에 충실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얼마나 잘 하나보자!라는 태도를 접고 순수한 마음으로 앨범을 들었다면 다시 한 번 그의 실력에 감탄하며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의 능력은 얼추 증명되어있다고 생각하기에, 언제가 됐든 제가 원하는 모습도 가까운 미래에 볼 수 있다고 믿겠습니다.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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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1-02-27 20:44:23

h1z1은 힙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회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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