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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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0 20:27:02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내일 새벽부터 5시간 운전을 앞두고 있어서 긴장이 많이 되네요 (물론 중간에 교대할 거긴 한데... 크흡)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arahKayaComson - Canto De Amor (2021.1.21)


 SarahKayaComson의 정식 음원은 2018년 2월 From All to Human과의 합작 싱글부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인 덕분에 그가 Scid란 이름으로 곡을 올릴 때부터 얼추 알기는 했지만, 제대로 들어본 건 이 모든 것보다도 뒤인, Ugly Junction 유튜브 영상에서 소개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 그는 첫 EP "The Therapy"를 발표하였고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 했는데, 그 앨범이 맞는지 다른 건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새 작품 "Canto De Amor"가 지난 앨범으로부터 1년 반만에 나왔습니다.


 SarahKayaComson은 단순하게 분류하면 싱잉 래퍼이나, 트랩이나 붐뱁으로 나누기 어려운 얼터너티브 힙합을 구사합니다. 그의 음악은 순수하고 밝은 바이브 (비록 "The Therapy"는 좀 우울함도 섞여있었지만)를 기반으로 하며, 이는 GROSTO, From All to Human과 함께 "Midnight Munchies"라는 크루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하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했던 전작과 달리 "Canto De Amor" (스페인어로 '사랑의 노래'죠)는 사랑이란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진행해갑니다.


 본작, 그리고 가이드 삼아 "The Therapy"까지 대충 돌려보고 떠오르는 감상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SarahKayaComson의 음악은 그의 랩 뿐만 아니라 랩을 둘러싼 비트, 코러스, 심지어 그의 캐릭터까지 전부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됩니다. 연출되는 분위기는 Tyler, the Creator 감성을 지닌 풍부한 음악일 때도 있고, 올드 스쿨 바이브를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SarahKayaComson은 살짝 Lil Boi를 연상시키는 어린 목소리를 갖고 있는데, 저는 이게 그가 앨범 커버에 지속적으로 쓰는 인형과 앨범에 깔린 주제 의식 등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했듯 그의 랩 외의 구성 요소들이 상당히 치밀하게 맞물려 전개되어, 온갖 신스 사운드와 겹겹이 깔아놓은 코러스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것이 자못 웅장하기도 합니다. GROSTO의 Smoothjam이 만든 "YouDo"를 제외하면 전부 셀프 프로듀싱으로 만들었는데, 홀로 이런 무드를 전체에 걸쳐 끌고 나갔다는 건 상당한 음악적 역량을 증명하는 부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의도에 비해서는 다루는 얘기와 표현들이 너무 얕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7곡 중 3곡이 인터루드의 역할을 하는데다 마지막 트랙 "Mifa"가워낙 짧아서 간만 보고 끝난 듯한게 아쉬웠습니다.


 이런 얼터너티브한 음악들이 어정쩡하게 이것저것 건드려만 보고 예쁘장한 장식만 잔뜩 갖출 뿐 알맹이가 없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적어도 SarahKayaComson은 꽤 시간을 들여 공들여온 캐릭터로 중심이 잘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The Therapy"는 상대적으로 간단하게만 들었지만 사운드적으로 "Canto De Amor"가 훨씬 풍부해졌다고 느끼긴 했어요 (다만 전작은 전작대로 얘기가 좀 더 진중하고 폭이 넓긴 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래간만의 앨범이지만 너무 짧았던 터라 즐겁게 들었으면서도 감질맛이 많이 나는군요.



(2) Kid Wine - DECANTING (2021.1.23)


 쇼미더머니8의 "자식들" 프로듀싱으로 나름 효과적인 컴백을 한 Kid Wine은 그후로 여러 싱글과 EP를 발표하면서 커리어를 줄기차게 이어갔고, 결국 2021년 첫 정규 "DECANTING"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Kid Wine은 프로듀서로, 그리고 싱잉 래퍼로 자신을 보여왔고, "DECANTING"에 담긴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지극히 주관적으로는 할 말이 많지 않은 앨범이었습니다. 정규 앨범이니 본인 커리어에 중요한 방점이 되긴 하겠지만, 담겨있는 음악이 전부 이때까지 보여온 스타일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하는 스타일은 상당히 팝적인 데가 있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밍숭맹숭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워낙 음악적 지향점이 무겁거나 어려운 것을 배제하기 때문도 있고, 어떤 면으로는 Kid Wine의 싱잉 랩이 보컬로써는 특출날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오토튠 느낌이 안 나게 깔끔하게 정리된 건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본인 및 타 프로듀서에게 받은 것이 적절히 배분된 비트 역시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트랙 "Don't Love"가 Kid Wine의 목소리가 없고 YongYong의 몫이 컸다는 건 앨범 점수에 도움 되는 감상은 아니겠죠.


 그전부터의 활동으로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지만, 또 예상대로 나왔기 때문에 김이 빠지는 것도 있군요. 제 글이 다 그렇듯 개인적 취향이 작용한 바이기 때문에 그저 묵직하게 때려주는 게 없어 이럴지도 모르지만, 나름의 변을 해보자면 이렇게 노래와 구분이 가지 않는 싱잉 랩의 경우는 보컬이 랩이 아닌 노래를 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면 기본적인 요소를 떠난 어디에선가 임팩트를 주었어야겠죠. 적어도 제겐, "DECANTING"은 그저 '또 하나의' 싱잉 랩 음반이며 다음 것에 대한 기대치도 올려주지 못하는 평작이었습니다.



(3) Paloalto & Young Soul - Palo Got Young Soul (2021.1.24)


 Paloalto의 신작이자, 화지 앨범 말고는 볼 일이 잘 없던 Young Soul의 비트를 들을 수 있는 트리플 싱글입니다. 비트가 상당히 고전적인 샘플을 이용한 작법으로 만들어져서 예전부터 음악을 들어왔던 이들에겐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군요. 다만 저만 너무 조용하게 믹스되었다고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트랙은 현악 샘플이 크게 있으니 그렇다 치는데 나머지 두 곡은 메인 멜로디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 의도가 있는건데 제가 못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Paloalto의 랩은 여전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보였던 파워풀한 랩에 비하면 비트에 맞춰 조금 여유롭고 차분하게 한 편입니다. 이런 랩과 비트의 요소 때문에 듣기에 따라선 힘 없는 곡들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성수동 2"는 toigo의 "성수동"을 계승한 곡인데 방방 뛰는 트랩이었던 원곡과 반대의 분위기로 시리즈를 이은게 재밌네요.


 

(4) UnderSeongsuBridge - UNDER SEONGSU BRIDGE (2021.1.25)


 365LIT을 필두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UnderSeongsuBridge 혹은 USB 크루는 이후 JUPITER, toigo 등의 개성적인 멤버와 Paloalto의 샤라웃, 그리고 FLOCC 크루의 상부상조 등으로 여러 순풍을 타 씬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컴필레이션 "UNDER SEONGSU BRIDGE"는 그런 자리매김을 기념하는 이정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워낙 초반 알려진 멤버들의 음악이 신나고 센 트랩이었기 때문에 (JUPITER의 앨범은 조금 다르긴 했지만) USB 크루의 이미지도 아무래도 그쪽입니다. 이들은 앨범 초반과 중후반에서는 그런 모습을 숨기지 않습니다. 특히 트랩 특유의 리듬감을 제각기 타는 멤버들과 서로 애드립과 더블링을 쳐주면서 나오는 시너지와 에너지는 절로 흥을 돋굽니다 - 365LIT의 심플한 랩과 toigo의 비교적 타이트한 랩, 그리고 JUPITER의 무게 있는 톤의 밸런스도 좋고요. "빨간 다리" 같은, 기존의 에너지를 유지한 색다른 시도도 좋습니다.


 한편 이 앨범은 USB 크루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멤버들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 Web., Rayshin, BIRTHDAYCAKEiii 세 명이죠. 이 컴필 전에도 나름 활동이 있었던 이들이긴 하지만 저는 Web.을 제외하곤 (그것도 USB 내의 피쳐링으로)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셋은 나머지 셋에 비해 음악 색깔이 훨씬 멜로우합니다 - 부정확하지만 Rayshin을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꽤 R&B 칼라를 많이 띄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들을 위한 자리가 앨범의 초중반 그리고 후반에 마련되어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USB 크루 컴필의 피치 못할 문제가 야기됩니다. 하드한 셋과 소프트한 셋의 색이 너무 대비되어 앨범 내에서 잘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컴필레이션이 한 가지 색을 가져야하는가, 멤버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여러 색을 가져야하는가는 순전히 아티스트들의 결정이고, 이들은 후자를 택했으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앨범은 W 모양으로 무드가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합니다. 그나마 나름 싱잉 랩을 많이 했던 JUPITER는 괜찮았지만 toigo와 365LIT은 저 '소프트 라인'에 특히 못 섞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USB 크루의 에너지가 좋고, 그래서 초반에 기대감이 업된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전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떼놓고 보아도, 셋의 노래 또는 싱잉 랩이 그렇게 인상적으로 들리진 않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뭐였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두 라인이 각자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냉과 온의 연결고리가 될만한 노래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 "Red Tape" "Blue Tape"처럼 아예 분리시킨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그 경우엔 지나치게 주목이 한쪽으로 몰릴 것 같군요. 이 부분을 개의치 않으셨다면 "UNDER SEONGSU BRIDGE"는 신생 크루의 패기가 담긴 성공적인 대형 프로젝트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5곡이라는 거대한 크기, 멤버들의 개성이 발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배치, 자기네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샤라웃 가득한 가사 및 이로써 뚜렷해지는 크루색 등, 장점을 꼽으려면 많습니다. 분명 저는 하드한 곡들은 무척 즐겁게 들었지만, 나머지 부분 때문에 끝내 여지를 남기고 감상을 마무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5) Bobby - Lucky Man (2021.1.25)


 우선 말하자면 저는 Bobby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습니다. "Love & Fall", 그리고 송민호의 최근 앨범에 데인 것도 이유라면 이유고, 무엇보다 Bobby는 언제나 대중가요계에 몸 담아왔습니다 - 그나마 "Mino"로 활동했던 시절이 있는 송민호와 달리 Bobby는 데뷔 전부터 랩과 함께 노래와 안무를 연습해온 철저한 아이돌이었고, 데뷔 후에도 쇼미를 제외하면 YG 밖에서의 콜라보를 한 적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Bobby를 좋아하는 팬의 대부분은 그를 아이돌로 인지하여 좋아하는 것이지 힙합이 어떤 음악인가에 관심은 없습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악을 한다는 건 과장을 보태면 책임 방임에 가깝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 들어본 "Lucky Man"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YG를 포함하여 대개의 팬들이 Bobby의 강점으로 인지하는 것은 그라울링에 가까운 톤과 거기에 젊은 패기를 버무려 나오는 강렬한 랩이고, 전작 "Love & Fall"은 이런 걸 무시하고 말랑말랑한 음악들만 뽑아 듣는 당황스러웠던 거죠. 이번에는 그런 장점들을 활용하려 노력한 티가 많이 납니다. 일단 타이틀곡 "야 우냐"부터 아주 빡세죠. 앨범은 두 번째 스킷을 넘어가면서부터 아주 빠르게 대중적인 색채를 띄기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Bobby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놓지 않고 여러 방향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 제일 좋은 예로 "주옥" 같은 트랙을 들 수 있겠군요. 더불어 아이돌 트레이닝 및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좋은 작곡가진의 효과로 안정적이고 멜로디컬한 싱잉 랩도 들을만 합니다.


 순전히 힙합적으로 본다면, 앨범은 Bobby의 매력을 풀이하는 과정이 너무 1차원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앨범 내내, 심지어 트랙의 근본 없는 대소문자 표기까지 세상 힙하고 영한 느낌을 내고 싶어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정작 가사는 진부하고 단순한 가운데 공허한 악바리만 남아있습니다. YG는 래퍼들에게 발음을 개성적으로 꼬는 것을 강조하는지, '야 우냐'가 '야우야'로 들리는 특유의 발음은 플러스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이건 사실 쇼미3 때부터 Bobby 랩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답답해지는 이유였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에 힘을 풀고 들어보면 크게 의미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트랙 수가 꽤 많아보이지만 곡을 지나치게 많이 수록했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 그만큼 곡들이 저마다의 색과 힘이 있어요. 오히려 서사를 부드럽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 넣은듯한 스킷들이 저는 과한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연기 어색한 것도 그렇고 (이 부분은 의견 차가 있을듯 하지만), 굳이 서사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앨범이었던 거 같거든요. 마지막 "DeViL"도 불필요했던 거 같습니다. 그냥 대중적인 칼라로 앨범을 마무리해도 충분히 성공적이었고, 굳이 힙합적인 부분을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해요.


 그저 기대치가 낮았던 것 때문인지 몰라도 "Lucky Man"은 충분히 듣기 즐거운 앨범이었습니다. Bobby에게서 원하던 포인트를 뻔하게나마 전체적으로 잘 강조해줬고, 아이돌 특유의 다채로우면서 몰입하기 쉬운 멜로디 라인도 좋았습니다. 쇼미 우승 경력을 대봤자 Bobby는 아이돌이고, 이번 앨범으로 판단할 때 그는 그 길을 문제 없이 잘 가고 있습니다.



(6) Colde - 이상주의 (2021.1.25)


 본인 이름으로 나오는 작품은 꽤 오랜만인 (아마 Wavy 운영에 바빴던?) Colde의 새 앨범입니다. 전부터 저는 Colde는 힙합과 R&B의 교집합, 거기서 살짝 삐져나온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장르 중 어느 하나라고 찝기엔 두 장르가 주는 전형적인 감흥이 없거든요. 다시 말하면 이는 Colde의 편하게 읊조리는 노래가 힙합의 리듬감도, R&B의 딥함도 닮지 않은, 뭔가 제3의 영역 같이 느껴졌단 뜻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멜론에 락/메탈로 분류가 되어있긴 한데... 솔직히 락은 또 아닌 거 같은데a).


 처음 앨범의 포문을 여는 "라이터"는 Colde 팬들에게도 살짝 낯설 락 스타일의 곡이지만, 이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고 조용하고 차분한 곡들이 그 뒤로 이어집니다. "라이터"를 제외하면 "이상주의"에 담긴 Colde의 목소리는 위에서 언급한 사항이 전보다 도드라지게 들렸습니다. 별다른 기교나 울림 없이 건조하게 부르는 노래와 상대적으로 적은 가사 때문에, 노래보다는 옆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이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단촐해지고 여백을 강조한 곡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뚜렷해집니다.


 앨범 소개글에 들어있는 '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노래 가사에서 확 다가오진 않지만, 진솔한 어조는 단순하다기보단 순수하다는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감미로운' '진한' '심금을 울리는' 등의 수식어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대치에 따라선 그저 심심한 앨범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조용한 마음으로 듣는 걸 권장합니다.



(7) APEX - Father on Board (아빠가 타고 있어요) (2021.1.27)


 2020년 가을 컴백 이후 APEX는 엄청난 작업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번 "부산울산고속도로테입"에 대한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정규 앨범에 대해 얘기하게 된데다 그게 지난 정규 "호사유피"와 3개월 밖에 간격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 그걸 증명합니다. 2021년은 언제나 발매 대기 중인 작업물이 있게 하겠다고 예고한 APEX가 네 개의 선공개 싱글 끝에 발표한 앨범 "Father on Board"입니다.


 비장함이 서려있던 "호사유피"와 달리 "Father on Board"는 친근한 기운을 풍깁니다. 앨범 내내 그는 '투잡과 육아를 소화하며 랩하는 아저씨'인 자신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앨범의 전반부는 구체적인 에피소드 위주로, 후반부는 감정을 토로하는 식으로 소개하며, 이에 따라 전반부는 다소 코믹한 반면 후반부는 진중하고 감성적입니다. 이번에도 전곡을 프로싱한 LADEAT의 비트와 단단한 발성을 지닌 APEX의 랩은 각 잡힌 붐뱁의 느낌으로 군더더기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다만 지난 앨범보다 모든 면에서 단순해진 듯한 게 아쉬웠습니다. 사실 앨범 자체는 "부산울산고속도로테입"의 연장선에 가깝습니다 - 실제로 "Cruise Mode"는 Vol.2 이후 재수록되었고, 어떤 곡은 믹스테입 수록 예정이다가 자리를 옮겨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TMI 뿐만 아니라 주어진 소재에 대해 1차적으로만 소개하고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주제 전개 때문에 믹스테입이 연상되게 되는 겁니다 - 문제는 이것이 정규 앨범이란 점이죠. 또 라임 처리나 플로우 디자인이 비슷하고, 훅도 벌스와 차별화되지 못해 약한데다, 투잡, 육아, 운전 등 언급하는 소재가 반복적인 것도 걸립니다. 이 모든 문제가 결합되어, 앨범에 수록된 11트랙이 서로서로 개성적인 매력이 없어, 전반과 후반의 분위기 차이를 제외하곤 여러 곡을 들을 이유가 줄어듭니다.


 허슬은 보통 일이 아니고 본인에게 가져다주는 것도 많겠지만, 반드시 내는게 많다고 해서 팬들이 환영하는 게 아니라는 건 여러 케이스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만약 예전과 같은 자리에 머무르면서 작업만 많다면 그저 쉽게 질려버리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자신의 선호대로 음악을 하는 것도 다 좋지만 음악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작업량만큼 유연한 발전이 오기를 고대할 따름입니다.


PS 여담으로 "된장찌개 Freestyle"의 정상수 벌스는 유례를 찾기 힘든 '핸드폰 녹음'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8) Donutman - Road 2 Riches (2021.1.27)


 작년 중순 쯤에 Donutman이 Raphouse on Air에 출연했을 때 평소와 다른 하드한 스타일로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그때 라이브로 공개했던 곡이 이번에 수록된 건 아니니 이 앨범을 얘기한 건 아니겠지만, "Road 2 Riches"는 Donutman의 기존 퍼포먼스와 다른 면을 듬뿍 맛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 차이는 대표적으로 랩의 하드함에서 만들어집니다. 커버에서 보여주는 카우보이 컨셉이 어느 정도 앨범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앨범은 비장한 컨츄리 스타일 기타 리프로 포문을 엽니다. Donutman의 랩은 그동안 침착하고 깔끔한 것을 장점을 내세웠지만 밋밋하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에 대해 반응이라도 하듯 아마 커리어 사상 제일 다이나믹할지 모르는 랩이 실려있습니다. 이것이 이미 딜리버리에 최적화된 그의 깔끔함과 실려 귀에 콕콕 박히면서 상당한 타격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라는 붐뱁은 안 하고" 등 붐뱁 래퍼라고 지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저도 그렇게 지칭할 생각은 없지만, 하드코어 붐뱁에서 느끼는 땜핑을 즐기기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참여한 피쳐링진들도 하나 같이 수준급의 벌스를 선사하였고요.


 마지막에 가서 갑자기 다운되는 분위기는 그의 의도였든 아니든 살짝 아쉽습니다 (특히 "4"는 곡의 퀄리티를 떠나 어느 면으로 보든 앨범에서 너무 뜬금 없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형성해놓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를 커버할 정도로 압도적이며, 저는 솔직히 개그 곡인 "컴포터블"도 그런 아우라 때문에 마냥 웃기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그가 해왔던 랩이 잘못 되었던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런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좋습니다 - 자연스럽게 "Road 2 Riches"는 지금까지의 Donutman의 커리어 사상 제일 인상적인 앨범이 될 것 같습니다.



(9) Bradystreet - Jack Frost (2021.1.29)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Daytona의 세 번째 멤버는 일명 '더 콰이엇 키드'로 불렸던 "glow forever" 참여진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Bradystreet였습니다. 한때 꽤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작년 여름 이후로는 싱글 한 장을 제외하곤 조용했던 터라 "Jack Frost"는 팬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컴백작이 되었습니다.


 직전에 나왔던 "BRADY"와 비교해볼 때 "Jack Frost"는 상당히 깊이가 더해진 작품입니다. 사실 깊이를 비교하기보단 Bradystreet의 스타일을 어떻게 활용하냐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그의 랩을 지극히 악기처럼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트로부터 뭔가 다른 아우라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기괴하게 감미로운' 톤에 마디를 촘촘하게 채웠지만 결코 넘치지 않는 랩 등 그의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스타일은, 물론 "돈명예아님배신" "스바루" 같은 트랙에서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살짝 기계적인 느낌이 들게 조정된 목소리와 가사 내용 때문인지, 그의 특기인 이쁘장한 멜로디가 건재함에도 앨범은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 제목 "Jack Frost"가 잘 어울리는 부분입니다. 인트로처럼 그의 목소리가 비트의 일부로 혼합되는 "Drug n Cash"를 마지막으로 앨범은 막을 내립니다. 이미 "brrr" 때부터 흉내내기도 어려운 독특한 개성에 대해선 다들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중 이를 제일 세련되게 활용한 앨범이었습니다. 여담으로, "Still Used to"에서 피쳐링한 염따는 좀 놀랍더군요 -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라고 요약할만한...


 Playboi Carti와의 유사성을 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확실히 얇고 억지로 절제한 듯한 비인간적(?)인 목소리와 미니멀한 비트 때문에 연상이 되는 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본 앨범은 그가 과거에 간간히 보여줬던 깊은 감성을 재현하여 발전시켰고, 그 부분은 Carti와 분명 차별화된 점이라 생각합니다. 근래에는 잠잠했지만, 새 둥지를 틀고 새 스타트도 끊었으니 앞으로는 이름을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데, 이대로 더 많은 걸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10) JIRIM IN PANT$ - hours, minutes and seconds (2021.1.29)


 JIRIM IN PANT$는 2019년 12월 Laptopboyboy가 했던 워크샵 앨범에서 처음 이름을 본 후, 은근히 마음에 드는 비트의 주인이었던 경우가 많아 기억 속에 남아있던 비트메이커입니다. 이번 앨범은 작은 규모의 EP로 그의 커리어에는 최초의 앨범 단위 작업물입니다. 


 얼핏 JIRIM IN PANT$는 트랩 비트메이커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가 쓰는 작법은 흔한 트랩 스타일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빈티지한 샘플의 폭 넓은 활용이 좀 더 고전적인 스타일의 비트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바이브와, 몽환적으로 다듬은 사운드가 본인의 스타일을 잘 대표하는 듯합니다. 어렴풋이 '시간'을 주제로 한 곡들의 모음이라고 하지만 워낙 앨범 규모가 작고 이야기의 폭이 넓어서 사실 곡의 주제가 앨범을 하나로 묶는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뭐, 그 자체는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 마찬가지로 앨범이 작아서 그렇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JIRIM IN PANT$의 비트에서 느껴오던 감흥이 앨범에선 덜했습니다. 사운드에 관한 지식과 표현이 부족한 저라서 이유를 정확히 찾지 못 했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군요. 피쳐링진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좀 있습니다. 특히 R&B 넘버를 하면 잘 어울릴 거 같았는데 4번 트랙은 보컬이나 비트나 허전한 구석이 다 있었던 거 같습니다. 기대에 못 미쳤지만 아직 제가 과거에 느꼈던 감상을 의심하고 싶진 않고, 개인적으로는 오늘 느낀 아쉬움의 이유를 훗날의 개선된 작업물에서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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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1-02-10 22:43:53

들어볼 게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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