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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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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5 16:49:47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2020년 앨범은 12월에 특히 많이 나왔던 거 같아요. 다음 편까지는 계속 2020년일듯...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뱃사공 - 777 (2020.12.17)


 뱃사공의 세 번째 정규 "777"이 발표됐습니다. 앨범으로는 꽤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그동안에 워낙 여러 활동이 있었다보니 엄청 오랜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런 활동과 인지도의 변화 끝에 뱃사공은 '월200의 사나이'란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생활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777"이란 제목은 아무래도 그런 성공을 반영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번엔 단물 빠진 낭만이란 택을 뺐지' '헝그리 정신은 done' 등, 가사만 간단히 살펴봐도 음악에서 보여주는 태도의 변화가 분명합니다. 사실 발매 전 인스타 라이브에서도 '가난에 대한 얘기는 없다'라고 얘기를 한 바 있죠. 이와 함께 변화를 요약하는 가사로 '재작년 락스타는 질렸어 다시 힙합퍼' 'Turn off the band sound 다시 틀어 힙합' 등이 있습니다. 합치면 락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성을 건드리던 노래는 이번 앨범에서 기대하지 말란 선포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센 캐릭터스러운 힙합'으로 채웠단 뜻이겠죠. 얼추 맞는 말입니다.


 "777"은 어느 때보다 뱃사공의 랩에 집중할 수 있는 앨범입니다. 도리어 초반 비트는 심심한 면이 있습니다. 허나 뱃사공은 능글 맞고 느긋한 플로우로 이를 본인 위주의 그루브로 잘 이끌어갑니다. 다소 과소평가 받는 부분이 있었지만, 뱃사공은 원체 트렌디한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래퍼였습니다 - "탕아"만 해도 꽤나 트래퍼 같은 면모를 보이는 데가 몇 군데 있었죠. 이런 유연성을 기반으로 하여, 그는 "777"에서 더욱 세련된 완급 조절과 리드미컬한 그루브를 선보입니다. 흔히 '청각적 쾌감'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연상될 스타일은 아님에도, 특유의 구수함이 섞인 랩 스킬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쾌감을 안겨주고 청자를 몰입시킵니다. 랩 잔치가 된 만큼 호화로워진 피쳐링진도 한 가지 재미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777"이 그의 전작들과 그렇게 다른 앨범이 아니란 점 같습니다. 단순히 루핑 비트에 랩만 늘어놨다고 해서 뱃사공의 감성이 줄어들었을까 우려하는 이들에게는 후반부가 있습니다. "Have a Nice Day"부터 이어지는 세 곡은 예의 풍성한 밴드 사운드와 그만의 인생에 대한 여유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가사로 꾸며져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도" "위로" 같은 곡이 취향이었다면 이것만으로도 부족할 순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환기이자 마무리였다 생각해요 (사실 '환기' 역할이었던만큼 중반부로 갔어도 괜찮겠단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뱃사공이 주장해오던 멋에 대한 관점은 전혀 변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에 대한 가사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떠올려보면 그는 가난에 대해 구차하게 군 적이 없습니다.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멋과 낭만에 대해 줄기차게 풀어왔죠. 때문에 그가 요근래의 성공에 대해 강조를 해도 전혀 그의 말투가 변한 것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 상반된 얘기를 해도 같은 어조로 들리는 것은 어찌 보면 메세지 전달자로써 큰 강점입니다. 뱃사공은 앨범을 예고한 인스타 라이브에서 완전히 꼴리는 대로 만든 앨범이라고 했고, 그때문인지 트랙들은 일견 서사 없이 제각기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12트랙을 훌륭하게 묶어주는 공통점이 바로 뱃사공의 멋이고, "777"을 좋은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2) jeebanoff - Talking Book (2020.12.18)


 "Talking Book"은 jeebanoff의 새 앨범으로, EP라고 하지만 정규 "GOOD THING."과 같은 규모인 10트랙으로 되어있습니다. 지난 9월에 나온 리믹스 앨범을 제외하면 올해 나온 앨범 단위 작업물로는 유일하기도 합니다.


 본작 역시 jeebanoff의 솜털 같은 섬세한 감성이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EP여서 몇 가지 시도를 한 것인지, "GOOD THING."에 비교해서는 조금 더 감정선이 다이나믹하다고 느꼈는데요, 특히 소심하고 풋풋한 감정을 주로 노래하던 그가 적어도 초반 몇 곡에서는 좀 더 당당하고 솔직한 어조를 보여줍니다. 이는 가사 뿐만 아니라 "난 아니야"의 비트 리듬이나 "생각이나" "OUI 2"에서 보이는 창법 같은 걸로 표현된 걸로 생각됩니다. 물론 중반부에선 다시 소심남으로 돌아가며, 이 모든 모습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마음으로"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소재 없이 순간에 몰입케 하는 표현들이 jeebanoff답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곡은 레이블 메이트인 히피는 집시였다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네요.


 총 프로듀싱이 plan8로, "GOOD THING."과는 다른 비트메이커이지만 그려내는 사운드가 크게 봐서는 많이 다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이는 jeebanoff가 자신에게 맞는 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GOOD THING." 때는 너무 몽글몽글하다보니 뒤로 가면서 좀 아쉬웠는데, 본작에 존재하는 고저 변화도 몰입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요. 앨범 소개글에 등장하는 '감정의 선명함을 도와줄 소리'란 말로 의도한 바는 이 정도면 달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3) Mckdaddy - Fragrance (2020.12.19)


 쇼미9을 마무리하고 작업된 듯한 새 EP "Fragrance"에는, 이번 앨범 수록곡 중 3곡에 참여한 비트메이커 Bothsidez에 대한 추모와 함께 그의 새 정규 앨범에 대한 힌트라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Mckdaddy하면 생각나는 쏘아대는 듯한 건조한 톤의 랩은 이번에도 "N.U." "Big Flexor" 두 곡으로 만나볼 수 있지만, 그 단서를 고려할 때 이번 앨범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가 앞으로 보여줄 새로운 스타일이 담긴 앞 4곡입니다.


 오토튠이나 싱잉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Mckdaddy는 꽤 공격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Fragrance"에서 Mckdaddy는 본격적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사랑, 이별, 위로 등을 소재로 한 싱잉 랩을 선보입니다. "Blur to Me" 같은 것은 전형적인 한국 이모 트랩의 느낌도 나고요, "거울"처럼 멜로디 메이킹과 리듬이 인상적인 곡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는 기존에 그가 했던 것처럼 가사도 비교적 타이트하게 채워져있고, 트레이드마크인 톤도 그대로입니다.


 처음 들어서 낯설어서 그런지 저는 살짝 당황스러운 앨범이었습니다. 이는 Mckdaddy를 들으면서 내내 가지고 있던 찜찜함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좀 웃긴 표현이지만 느낀대로 말하자면, Mckdaddy의 목소리는 살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해보이지만 실제론 얇고 약해서 바스러질 것만 같은 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런 낮은 밀도는 독특한 목소리와 맞물려서 쏘아대는 랩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비록 제 취향과는 반대였지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싱잉 랩에서까진 잘 모르겠군요. 얇은 목소리는 독특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명하지 않아서 필연적으로 비중이 늘어나버린 오토튠에 쉽게 잠식되는 듯 합니다.


 이 또한 땜핑 좋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 탓일 순 있지만, "Fragrance"는 제가 Mckdaddy에게 완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확인하는 기회 같았습니다. 목소리와의 조화를 떼놓고 생각했을 때 곡 자체는 평이하게 쓰였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쩌면 전문 분야랄 수 있는 뒤의 두 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티스트는 늘 변화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느낌으로 정규 앨범이 나온다면 처음 그를 접했던 "I'm in Trouble But It Feels Like Everyday"의 감흥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4) 45RPM - Night Flight (2020.12.20)


 문득 전성기가 지난 올드 스쿨 뮤지션이 현대에 와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으레 할 수 있는 말은 '무리하게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시도하지 말고, 전성기 때 사랑받게 해준 스타일 그대로 고수하라'이겠지만, 막상 그 스타일을 가져오면 촌스러움 때문에 거부감이 먼저 일게 됩니다. 그렇다고 말마따나 일단 트렌드대로 해보자고 스타일을 바꿔서 좋았던 경우도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 - Bill Stax라는 성공 사례로 반박을 하기엔 주석, 얀키 등 더 많은 실패 사례가 있으니까요.


 45RPM이 5년만에 발표한 앨범 단위 작업물 "Night Flight"를 들으면서도 고민에 대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Night Flight"에서 45RPM은 그들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유쾌함을 유지하면서도 진중한 모습을 섞어 음악이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원년 멤버 GR (사실 현재는 HUMBLE B로 활동 중이죠)이나 MC Meta 등을 참여시켜 올드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도 속에서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올드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올드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해보면, 유연하게 마디를 채워 그루브를 극대화시키는 요즘의 스타일과 달리 여전히 박자의 틀에 갇힌 듯한 딱딱한 랩 스타일이 이유로 먼저 떠오릅니다. 허나 아직도 제가 "리기동"이나 "재미있는 힙합" 같은 노래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걸 보면, 그저 오랜 공백기와 나이로 인해 떨어진 패기와 에너지가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뭐가 됐든, 아쉽게도 "Night Flight"는 현재 45RPM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정도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그래도 gong이 참여한 부분은 인상적입니다. 그는 본작에서 노래의 후렴과 프로듀싱, 엔지니어링 등에 비중 있게 참여하였는데, 평소의 걸걸한 바이브와 트렌디한 사운드가 어느 정도는 구와 신의 연결고리를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조금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청자의 입장에서 유연한 감상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년 넘게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그룹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45RPM의 행보는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음악에 몰입할 수 없는 것은 슬프긴 하네요. 글 초반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공백기 없이 씬과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 말은 일부 아티스트에겐 이미 늦었다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듯해 꺼려집니다. 그래도 사실 저는, "날아갈 거야"의 박재진의 오토튠 사용이 의외로 어울렸던 터라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 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너무 오랜 시간 굳어져버린 틀을 깨는 것은 어렵겠지만, 마침내 그런 일이 이뤄졌을 때는 저를 비롯한 모두가 45RPM의 음악에 더 공감할 수 있을 수도 있겠죠. 



(5) JAEHA - Life Like Last 18 (2020.12.20)


 JAEHA는 2018년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곡을 올리기 시작한 뮤지션입니다. 2020년 나온 "Life Like 18"은 스트리밍 사이트 기준 그의 첫 앨범이었습니다. 제가 JAEHA를 처음 접한 것은 Basick이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쇼미9 탈락자들을 모아 만든 싸이퍼 "10 Opps"를 통해서였고, 싸이퍼이니만큼 JAEHA는 거기에서 스킬풀한 랩을 보여줬지만, 이번 앨범을 들으며 살펴보니 Futuristic Swaver가 서포트해준 트래퍼 중 한 명이었던 것 같군요.


 "Life Like Last 18"은 매우 강렬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앨범이 주축으로 삼는 사운드는 기타를 메인으로 한 메탈스러운 비트이며, JAEHA의 싱잉 랩이 이 위로 매우 파워풀하게 몰아칩니다. 솔직히 약간의 실망이 뒤따랐습니다 - 뭐 일단 알고보니 취향에 안 맞는 음악을 해서 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도 있지만, 멜로디 메이킹이 상당히 전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 것은 사실 충분한 멜로디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든 탑 라인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반복적인 코드 진행과 비슷한 끝처리를 보여주며, 강렬함을 위해 비슷한 범위의 고음을 많이 쓰기 때문에 쉽게 질리고 고음과 저음의 밸런스도 맞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더 드는 생각이지만, 싱잉 랩은 스킬적으론 랩이지만 작곡에선 노래의 영역인 거 같습니다.


 다만 JAEHA를 나머지 래퍼와 차별화시켜주는 것은 그 강렬함에 대한 설득력입니다. JAEHA는 단순히 악만 쓰는게 아니라 실제로 발성이 탄탄하며, 결이 거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파워풀한 비트나 오토튠에 먹히지 않고 제 힘을 다 발휘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가사도 마찬가지로 직설적인 내용과 욕설로 상당히 하드한데 JAEHA의 랩이 여기에 괴리감 없이 잘 붙습니다. 수록곡 중 "홍길동"은 비트나 플로우나 제일 랩적으로 만들어진 곡인데 멜로디의 진부함에도 다이나믹하게 몰아치는 플로우가 재밌어서 그런지 트랙 중에서 상당히 돋보이더군요. JAEHA가 가진 잠재력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예였습니다 (여담으로 'fuck you thot like 홍길동'은 뭘까요. 홍길동이 그런 인물인가요?). 


 스트리밍 첫 앨범이었던 "Life Like 18"을 들어보면 지금보다 오토튠 비중이 적은데, 지금과 비교해 전혀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기본 스펙은 탄탄한 래퍼라 이걸 잘 활용한다면 본인의 영역을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여느 이모 힙합들과 비슷한 사운드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하며 지켜볼 이유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6) dkash & Y1ee - 난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안 돼있어 (2020.12.21)


 작년 "TKM"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Holmes Crew의 콤비 dkash & Y1ee의 신작입니다. "TKM"은 EP였지만 이번 작은 싱글인데, 이때까지의 둘의 조합과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의 조합은 이때까지 늘 라틴, 브라질리언, 댄스홀 등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였는데, 마찬가지로 dkash가 총 프로듀싱을 맡은 본작은 EDM 장르를 택했습니다. 이는 Holmes Crew에서의 활동이나 지난 8월 나온 dkash의 EP를 봐도 꽤 신선한 행보입니다. 이에 따라 그들의 기존 곡보다 더 선명한 멜로디와 극적인 전개가 인상적이며, 실제로 후렴의 상당 부분을 인스트루멘탈로 대체하는 등 비트에 맞춰 흘러가는 분위기에 좀 더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보컬은 dkash는 보조적인 역할만 하고 Y1ee에게 대부분 몰아줬는데, 주관적이지만 살짝 느끼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훨씬 비트에 잘 묻고 감미롭게 들렸습니다. 단순 취향 탓일 순 있지만 일시적인 시도일지라도 둘에게 상당히 어울리는 변화라 듣기 좋았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색깔 또는 시도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7) Mokyo - accent fried (2020.12.21)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기묘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지만 "accent fried"는 정말 기묘한 앨범입니다. H1GHR MUSIC에 있을 때도 이미 "hold"에서 풍기던 음산함이, you.will.knovv에 합류함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좀 더 응축되고 탄탄한 실체를 이룬 것이 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음침한 색을 띈 이 앨범은, 마냥 분위기를 다운시킨 것 이상으로 아예 고저의 폭 자체를 압축시켜 놓아 거의 흔들림 없는 다운된 무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Mokyo의 무미건조하고 무채색인 목소리입니다. 그의 노래는 내용이 아니라 그 가라앉은 분위기로 얘기를 하는 듯합니다.


 Radiohead 느낌이 났던 전작 때문에 밴드 사운드가 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비트는 꽤 힙합 느낌의 드럼 루핑을 기반으로 한 로파이한 색의 비트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역시 상당히 칙칙하게 처리되어있어, 음악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무드는 주저앉아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마취되어 허공을 부유하는 듯합니다. 이 분위기는 "Kontrol"에서 한 번 그나마 업되는데 ("MAD"와 함께 유일하게 대문자로 시작되는 곡 제목이란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우울한 앨범에서는 이게 마지막 열린 결말을 담당하는 분위기지만, 재밌게도 "tuck in my"와 "snipper"로 다시 한 번 이 분위기를 꺾어놓고 앨범은 마무리됩니다. 특별히 서사가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씨니컬한 표현인지는 정확히 구분이 안 갑니다.


 앨범의 퀄리티, 혹은 Mokyo의 의도대로 나왔는지와 별개로 앨범을 즐겁게 들었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진 못 하겠습니다. 어떤 깊이나 그루브가 존재하기 힘든, 그저 약하게 읊조리기만 하는 그의 스타일은 평범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창법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크게 느끼는 온갖 영어 문법과 발음 오류 때문에 이 앨범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저는 한영 혼용을 딱히 문제 삼지는 않지만, 영어를 사용할 거라면 자신이 이 언어로 무엇을 표현하는지 정확히 알고 써야한다 생각합니다. 번역도 안 될 정도의 문법적 오류와 몰입이 깨질 정도의 발음 오류는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모르고 일단 휘둘러보는 것과 같다 생각해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아서 앨범을 여러 번 돌려듣게 되었는데, 청취 횟수가 늘어날수록 서서히 어떤 기운에 마음이 젖어드는 걸 느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단점이 많아도 음악이 마련한 분위기에 몸을 띄워보낼 수 있다면 좋은 감상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 하나하나가 개성적이고 확고한 아우라를 발하는 you.will.knovv의 앞으로가 무척 기대되는 바입니다.



(8) 전현재 - 모모 (2020.12.22)


 전현재는 '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래퍼입니다 - 이 시리즈에서 두 번 정도 다룬 적이 있었죠. 쇼미9 1차 예선에서 짧게 카메라에 잡힐 때 본명인 '전현재'로 나왔고,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와 함께 아티스트명을 전현재로 바꾼 것 같습니다. 본래 전현재는 전작 "어른" "새벽"에서 느릿한 이모 힙합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지만, 방송 및 Basick의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10 Opps 싸이퍼"에서는 붐뱁 래퍼 같은 면모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저는 음악적인 방향 전환에 대한 복선이라 생각했고, 그 추측은 부분적으로나마 맞은 거 같습니다.


 "모모" 속 전현재의 음악은 전작과 비교하여 훨씬 경쾌하고 리드미컬합니다. 여전히 싱잉의 비중이 크고 힘을 들이지 않은 창법이지만 템포가 전반적으로 빨라졌고 아예 랩을 시도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비트는 전부 타입 비트라고 생각되며 전곡 다른 비트메이커이지만, 꽤 통일성을 가지고 가벼운 락 바이브를 기반한 비트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위 전현재의 퍼포먼스는 상당히 능숙하며, 랩과 싱잉의 전환도 꽤 자연스럽고, 특히 후렴 멜로디가 중독성도 있고 곡의 구심점 역할을 잘 해서 귀를 상당히 잡아끄는 편입니다.


 전작들에서는 몰랐는데 왠지 모르게 보이스톤이 기리보이를 연상시키는군요 - 특히 "young"에서는 "치명적인 앨범" 시절의 기리보이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노래를 감상할 때 누군가 떠오른다는 점을 크게 마이너스 삼는 분이라면 신경 쓰일 수 있겠지만, 사실 이런 연상이 모든 곡에서 이뤄지는 건 아니긴 합니다. 무엇보다 그걸 차치하고라도, 전현재의 랩은 기본이 탄탄합니다. 전작 스타일 음악에선 미처 몰랐거나 과소평가했었는데, 적당한 탄력을 이끌어내는 발음과 탄탄한 발성이 꽤 인상적입니다. 이는 목소리 운용의 기반이 되기에 랩 뿐만 아니라 "icarus" 같은 트랙에서 상당한 노래 실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앨범 소개글과 자켓을 보면 "모모"는 동명의 소설에 영감을 받은 듯합니다. 그래서 앨범 전반과 후반은 각박한 세상을 소재로 삼고 있죠. 다만 중반에서는 연이어 본인이 겪은 실연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큰 주제에서 이탈하는 구간이라 썩 좋게 느끼진 않았습니다 - 물론 크게 크게 보면 트랙 간 차이도 있고, 큰 주제랑 연결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icarus"의 비유, "나쁜 짓"에서의 노래 무드와 모순되는 표현, "형"에서의 가감 없는 얘기 등 작사 면에서도 분명 좋은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제 취향을 탓해야겠지만, 본래 저는 느릿한 이모 힙합을 조금 평가 절하하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 전현재의 전작의 경우 너무 클리셰적인 모습을 답습하여 편하게 가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큰 감흥을 받진 못 했던게 사실입니다. 본작은 그런 전작의 무난함을 벗어나 나름의 임팩트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천천히" 같은 앨범을 들어보면 전작의 스타일과 완전한 단절은 아니며, 오히려 좀 더 듣기 즐겁게 진화시켰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중 제일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시점입니다.



(9) 노아주다 - 찐 (2020.12.22)


 쇼미9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래퍼 중 한 명인 노아주다는, 사운드클라우드에 4년 전 곡부터 올라와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2018년 즈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동안 믹스테입 "NEGATAPE"와 싱글 활동 및 전현재, 안수람과의 "라케라 (ricecakelife)" 프로젝트 활동으로 커리어를 이어왔으며, 이번에 공교롭게도 전현재와 같은 날짜에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전현재와 겹치는 활동이 많아서 같은 크루인가 했는데, 현재 소속된 크루는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노아주다는 좋지 않았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토대로 한 곡을 많이 썼으며, 이는 '찐' 캐릭터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9곡은 보너스 트랙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캐릭터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진지한 "TRAUMA" "실화"를 제외하면 대부분 코믹한 색깔로 그려집니다. 이 코믹한 색깔이란 주로 과장된 목소리 변용을 통한 연기 및 캐릭터에 부합하는 단어 선택을 통해 보여지며, 마찬가지로 진지한 두 트랙을 제외하면 일관성 있게 드러납니다.


 기본적으로 랩은 준수합니다. 목소리 활용이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며, 타이트한 플로우를 기반으로 과장된 연기와 맞물려 박자를 무시하고 내달리는 파트도 꽤 자연스럽습니다. '찐' 캐릭터에 대한 충실도(?)는 매우 높아 지금까지 말한 노아주다의 특징은 모두 이 주제를 위해 쓰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잡혀있지만, 너무 모든 요소가 그쪽으로 향하다보니 오히려 경직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소재 선택은 신선한 면이 있었을지언정 앨범 내에서 새로운 진부함을 창출하고 마는 것이죠 - 내세운 코믹함을 맞물려 어느 시점에서는 유치하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랩도 나름 고삐 풀린듯 뱉어대지만, 은근 어디서 본 듯한 스타일인 것이 아쉽습니다 - "실화" 같은 진지한 트랙에선 이런 틀에 박힌 느낌이 더욱 드러납니다.


 사실 믹스테입을 들어보면 모든 걸 다 '찐'으로 풀지는 않았기에 소재의 한계는 앨범 컨셉을 정하면서 따라온 거고, 노아주다의 능력이라고 판단하긴 이를 거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랩의 기본적인 스펙이 괜찮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넓을테고, 쇼미9 예선 때의 오그라드는 느낌이 비트 위에선 어느 정도는 완성도를 갖췄다는 것에 안도가 듭니다. 그에 대해 알아보다 구독자가 만 명이 넘는 유튜버란 걸 발견한 건 좀 놀랐는데요, 어느 방향으로든 추후 활동을 기다리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10) 기리보이 - 9컷 (2020.12.23)


 기리보이의 '발라드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찌질한 감성이 섞인 기리보이만의 발라드는 그가 인지도를 떨치기 시작한 때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등장해왔고, 바야흐로 "치명적인 앨범 III" 때는 랩이 오히려 소수를 차지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분명 기리보이는 힙합의 테두리를 허물고 정확한 정의 내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뮤지션 중 한 명입니다.


 이미 "영화같게"란 4곡짜리 프리뷰 (라기엔 앨범의 후반 절반에 가까웠지만)를 통해 차후 앨범도 그럴 것이란 예상이 있었기에, 새 정규 앨범 "9컷"의 색깔이 그다지 놀랍진 않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예상 범위를 살짝 넘친 데가 있고, 여기서 저의 주관적인 불편함이 시작됩니다. "치명적인 앨범 III"가 사실상 발라드 앨범이었다 해도, 분명 트랙들에서 그다운 그루브와 리듬감이 읽혔는데, "9컷"은 유난히 그것이 약합니다. 이는 심지어 완전히 랩 트랙이라 할만한 "내자리" 같은 트랙도 평탄하기만 합니다.


 이런 느낌의 부재는 무엇보다 기리보이를 정말 발라드 가수로 평가해야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리보이의 가창력이 실제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그저 그 느낌에 취해서 못 부르는데 잘 부르는 것처럼 바뀌는 마법이 있는 거죠. 근데 이번 앨범, 특히 "사랑이었나봐"나 "휴지" 같은 곡은 그런 매력 없이 그저 다른 발라드 가수를 따라가려 애쓰는 듯이 느껴졌을 뿐입니다.


 기존의 소재를 발견하고 다른 주제의 커다란 비유로 삼는 능력은 "휴지" "라식" "찰칵" 등 곳곳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찌질 감성도 여전하고요. 만약 노래를 잘 했더라면 악동뮤지션 같은 느낌이 났을 것도 같군요. 다만 제가 기리보이를 좋아하는 것은 특유의 통통 튀는 느낌도 있었는데, "9컷"은 전체적으로 슬프고 가라앉은 분위기라 더더욱 이것이 자리할 여유가 없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예전의 기리보이로 돌아와달라고 하면 여전히 유효한 외침일지 모르겠지만, 아주 멀리는 아니고 살짝만 예전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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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0 1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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