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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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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8 21:31:37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올해 마지막 시리즈 글일 거라 리스트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 https://hiphople.com/… LE에 올려서 죄송합니다(?)

힙플에는 차별화를 두어 2-3일 쯤 후에 굵은 글씨로 썼던 앨범을 한줄씩 정리해볼까 싶습니다.

 

현재 들어봐야되는 곡이 200곡 쯤 되네요... 이 시리즈 번호로 따지면 66번 정도부터 시작되더군요...

이 시리즈의 거의 절반이 2020년;; 엄청난 해였습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소주보이 - Chogiyo! (2020.12.11)


 2019년 "사인히어" 때 잠깐 모습을 비친 것이 사실상 커리어의 전부인 소주보이가 오랜만에 새 EP로 돌아왔습니다. 본인에게는 첫 앨범이며 여전히 별다른 소속 없이 제작된 것 같습니다.


 방송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소주보이는 한국어가 서투른 교포 2세 출신이며, 이름처럼 술에 취한듯한 유쾌한 태도가 돋보이는 래퍼였습니다. "사인히어"에서 보았던 분이라면 이번 앨범에 담긴 색깔이 백 퍼센트 이해될 것이며, 거꾸로 말하면 방송을 통해 생긴 기대치를 십분 만족시키는 앨범입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전부 술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실 뚜렷한 주제는 없이 아무말 대잔치 같은 느낌으로 흘러갑니다. 랩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플로우 디자인을 갖고 있는데, 소주보이의 목소리가 의외로 기초적인 부분이 단단하여 별 거 없이는 보이는 플로우로도 개성적인 그루브가 우러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랩 색깔은 완전 다르지만 약간은 B-Free가 연상되더군요.


 가사를 보면 한국어는 죄다 어눌하게 적혀있고 기본적인 문법도 틀린데가 많습니다. 애초에 가사는 술을 소재로 했을뿐 아무말 대잔치로 이어가는 느낌인데 이게 소주보이의 느낌과 잘 일치하여 좋았습니다. 다섯 곡 중 후반부 두 곡은 아주 약간 이모 트랩 느낌의 싱잉 랩으로, 나름 멜로디 메이킹 실력, 특히 의외로 고음까지 커버 가능한 모습을 볼 순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반부가 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좋았습니다. 특히 "천원"의 훅은 요근래 들은 제일 중독적인 훅 중 하나였습니다.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소소한 유쾌함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어 실력이 워낙 부족하여 대부분의 곡들이 영어로 처리될 수밖에 없단 점은 고려해야할 것입니다 - 위에서 몇 번 말했지만 소주보이의 매력은 이런 무질서함인 거 같아 유연한 영어 랩도 좋지만 어눌한 한국어도 그런대로 매력이 있더군요. 추후 활동에서도 이런 매력이 재현된다면 좋겠습니다.



(2) QM - 돈숨 (2020.12.12)


 QM하면 보통 떠오르는 이미지는 뛰어난 피지컬의 하드코어 붐뱁 래퍼입니다. 이 표현은 땜핑 좋은 그루브와 박자 감각, 스킬풀한 플로우 등 청각적 쾌감을 유발하는 요소를 주로 고려한 얘기죠. 하지만 QM을 얘기할 때 가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가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표현과 일화를 사용하여 잘 와닿는, 그래서 더 깊이 정곡을 찔러오는 날카로움과 씨니컬함은 그를 lyricist라 부르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워낙 사운드적인 장점이 우수하니 과소평가 받는 면이 있었습니다. 전작 "HANNAH"는 메세지에 더욱 집중했기에 이런 연유로 'QM치고 심심한 앨범'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2년만에 나온 새 정규 앨범의 제목 "돈숨"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란 표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과거 거의 모든 트랙에서 QM은 '돈을 밝혀'왔습니다. 이 욕구는 한국 힙합에서도 흔한 화두가 되었지만, 그는 여느 래퍼들처럼 보석과 차를 얘기하는 대신 이를 매우 현실적인 색채로 묘사해왔습니다. 그 차이는 돈에 대한 욕구가 단순히 가난이 아니라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단 점 때문일 겁니다. "돈숨"은 아예 대놓고 이 부분부터 출발하여 얘기를 풀어갑니다.


 "돈숨"은 QM의 지난 어느 앨범보다도 뚜렷한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만 해도 자신감에 차있던 그의 마음 속은, 3번 트랙의 중반 직업란에 적은 '무직'이란 글자로 고개를 든 열등감에 서서히 잠식해갑니다. 이 과정은 천천하지만 꾸준하여 "돈숨"에서 절정을 한 차례 맞이하죠. "만남조건"에서 '등대가 될 사람'의 등장과 함께 전환점을 거치지만 이조차 결말이 좋지 않고, 결국 그는 "다시 섬"에 갇힙니다. 이 '섬'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섬'은 밑바닥과 동일시되지만, 사실 배를 띄워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시 섬에 갇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11트랙에 걸쳐 치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서사에서 조금 아쉬운 건 랩 피쳐링 벌스 (훅들은 좋았습니다) 내용이 실제 주제랑 좀 엇나간듯한 점, 그리고 후반부 3트랙에 걸쳐 여친과의 이별이 너무 비중이 커서 "돈숨"의 주제가 흐려진듯한 점 정도가 생각납니다 - 후자는 어쨌든 작은 사건이 아니었으니 그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이해는 됩니다.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이번에 그는 오랜 작업 파트너 Fredi Casso와 다시 뭉쳤고, 그외에 BUGGY와 Don Sign 등이 비트를 제공했는데, 때문에 살짝 넉살의 "1Q87"을 연상시키는 듯한 바이브가 있지만 QM의 성향에 맞춰 좀 더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느낌입니다. 랩의 날카로움은 특히 전반부에 두드러지는데, 그래서 처음 돌릴 땐 전반부에서 귀가 좀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후반부에서 좀 풀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사운드가 꽉 차있어서 더 그렇기도 했습니다. 뭐, 적어도 저 같이 때려박는 붐뱁을 좋아하는 매니아에겐 매력을 빛바래게 할 정도의 단점은 아닌듯 합니다.


 이 정도의 임팩트를 가진 지난 앨범이 아마 넉살 앨범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뭐가 됐든 한국 하드코어 힙합 레이블로써 VMC가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구나 란 걸 느낍니다. 열등감이 단초가 되었다는 점과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순환구조란 면에서 "가로사옥"이 연상되면서 '껄렁한 어투의 가로사옥'이란 표현도 연상되었습니다. 그만큼 뛰어난 서사를 갖고 있으며, 쉽게 풀이해두어 온전히 전달받을 메세지는 차별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조금씩 있지만, "돈숨"은 사운드로나 메세지로나 청자를 만족시켜줄 저력을 지닌 앨범입니다. 담긴 스토리가 재밌어서 가사를 몇 번이나 읽어봤고, 좀 더 길게 파헤쳐보고도 싶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그것은 다음 기회에... (보다는 좀 더 글 잘 쓰는 분께 맡...)



(3) Yescoba - 낮에밤에 (2020.12.12)


 CJAMM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현재, Yescoba의 앨범을 대체재처럼 생각하는 여론이 은근히 있었습니다. 스타일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지만 CJAMM의 샤라웃을 받은 아티스트이자 그의 친구, 그리고 "킁"의 유일한 피쳐링진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열고 보아도 이런 예상이 완전히 무색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앨범 전체에 걸쳐 흐르는 퇴폐적이고 방탕한 무드 속에 군데군데 들어있는 종교적인 레퍼런스가 CJAMM과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낮에밤에"를 무조건 "킁"과 묶어서 생각한다면 옳은 감상이라 할 순 없습니다. 우선 Yescoba만의 개성을 인지해야합니다. "킁"은 CJAMM의 가볍고 신난 듯한 톤이 대책 없는 젊음의 색깔을 칠했다면 Yescoba는 상대적으로 무겁고 다운되어있습니다. 로우톤의 목소리와 느린 템포, 그리고 두껍게 발린 오토튠이 모두 이런 특징을 선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자리"에서 특히 드러나는 Yescoba만의 라임 디자인과 의식의 흐름 따라 다소 혼란스럽게 적힌 가사 (가사 내용 자체는 사실 장점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전형적인 이모 느낌이면서도 결이 섬세하게 살아있는 비트를 전곡 (hyeminsong이 만든 "제자리" 제외) 프로듀싱한 Panda Gomm & BANGJA의 솜씨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다만 이 앨범이 이모 힙합 내에서 뭔가를 새로 제시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디테일한 면에서 Yescoba의 창작력은 준수합니다. 특히 저음역대에만 깔리지 않고 필요할 땐 고음으로 질러주는 멜로디 메이킹과 그로 인해 원활해진 감정 전달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아선 완전히 참신한 멜로디 전개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 어떤 면으로는 오토튠의 양과 더블링 등 의도적으로 연출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온전히 전달 받지 못한 걸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게 모든 원인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곡마다 거의 분위기가 비슷하게 묶이다보니, 앨범이 전개되어도 방향성을 갖지 않고 제자리에 맴도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이런 장르의 팬들에겐 싫어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틀 내에서 Yescoba는 모든 걸 준수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분야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인, 본인도 이해 못하고 있는게 분명할 영어 남용이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는 플러스 요인이었습니다. "킁"보다 별로라고 비판을 하는 것은 이제 막 시작한 Yescoba에겐 과하고 또 불필요한 처사일 것입니다. "낮에밤에"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지닌 앨범이자 Yescoba가 어떤 아티스트인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작품입니다.



(4) Leellamarz & Goosebumps - Prison Break (2020.12.13)


 "Prison Break"는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Leellamarz와 비트메이커의 콜라보 앨범 시리즈 그 다섯 번째입니다. 역시나 놀라운 작업량이지만, 이제 적응이 다 됐는지 잠깐 동안 "BAMBOOCLUB" 이후로 4개월이나 걸렸구나 싶었습니다...?


 힙플라디오 "하이브로 라디오"에서 Goosebumps는 래퍼와의 작업이라면 비트는 래퍼를 서포팅하는 역할만 해야한다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Goosebumps 비트는 딱 필수 요소만 갖춘 미니멀하고 간단한 비트입니다. 확실히 지난 "TOYSTORY"나 "BAMBOOCLUB"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Leellamarz가 비트와 어우러진다기보단 위에 있는 느낌이 다분합니다. 그래서 그의 랩 퍼포먼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곡의 분위기가 더욱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죠.


 Leellamarz는 여전히 랩과 노래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번엔 좀 더 랩의 비중이 큽니다. "WHY U MAD"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랩은 Leellamarz가 작정했을 때의 현란한 스킬을 즐길 수 있죠. 최근 Leellamarz의 랩은 분명한 변화가 있었는데, "하이브로 라디오"에서 그는 랩 같지 않은 랩 (정확한 워딩 기억이 안 납니다 사실..) 쪽으로 시도를 한다 했고, 이는 오토튠의 적용과 느슨해진 발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앨범 가사 중 "Seoul city slime shit"이란 가사가 있는데 확실히 일면 Slime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연상되는 면도 있어요.


 이런 변화를 안은 채 Goosebumps 비트와 만난 이번 앨범을, 호응하는 이들도 많이 보긴 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인상이 희끄무레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래 얇은 Leellamarz의 목소리에 랩에 힘이 빠지고 오토튠으로 목소리가 왜곡되니, 뭔가 포인트 둘 데가 없이 가볍게 느껴졌거든요. 여기에 Goosebumps 비트 역시 가볍다보니 전체적으로 앨범의 무게감이 많이 줄게 들렸습니다. 랩을 좀 더 하드하게 갔다면 어땠을까요 - APRO와 만든 "Leellamarz is Different" 앨범처럼요. 여기에 갈피를 못 잡는듯 분위기가 왔다갔다하는 전개와 가사나 플로우에서 클리셰 요소가 많이 느껴지는 Leellamarz의 퍼포먼스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다작은 Leellamarz의 음악을 일정 경지로 만들어 견고한 영역을 구축하게 했지만, 뭔가 너무 빨리 굳어져버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TOYSTORY" "BAMBOOCLUB"은 비트를 듣는 재미가 있었지만 "Prison Break"는 어쨌든 래퍼가 잘 해줘야 하는 무대였습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단점은 새로운 작품을 낼 때마다 호기심이 줄어든다는 것인 듯합니다. 예전에는 그가 앨범을 자주 내기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선 빈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씁쓸한 생각이 점점 드네요.



(5) Yuzion - Yours Truly (2020.12.13)


 Yng & Rich의 Yuzion이 첫 정규를 발표했습니다. 대부분은 사클에서 미리 공개된 곡이라지만 사클 디깅을 안 하는 저는 어쨌든 신곡들처럼 들었습니다. 작년 Yuzion은 짧게나마 주목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린 나이의 여자라는 것이 꽤 큰몫을 했을 것입니다. 단순히 겉모습 때문만이 아니라,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이미지적인 장점과 톤의 차별화 등이 있긴 하겠지만, 실제 그녀의 음악은 STAREX로 대표되는 한국형 트랩의 한 가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었습니다.


 그런 전형성이 싫었다면 "Yours Truly"를 들을 때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곡들이 그런 트랩 장르의 틀 안에서 만들어져있어, 앨범은 거의 예상한대로 흘러갑니다. 노래 안에 등장하는 약과 돈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이 장르의 클리셰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Yuzion의 이미지를 고려할 때 신선한 조합이라면 조합이지만, 사실 그런 얘기를 하기엔 그녀의 톤이 너무 깨끗하고 순합니다. 다른 말로, 자신감이 부족한 느낌으로 자기 자랑을 하고 있으니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뭐 11곡 전체가 너무 뻔해서 들을 것이 없다고까지 얘기하진 않겠습니다. "Star" 같은 비교적 색다른 소스의 비트도 있었고, "Worthless"처럼 잘 못 들어본 그녀의 힘 빡 준 고음도 괜찮았습니다 - 특히 "Worthless"는 Dayrick의 비트도 꽤 신박할 뿐만 아니라 우울하게 적힌 가사가 그녀의 이미지와 사운드와 가장 맞아떨어져서 베스트로 꼽을만한 트랙이긴 했습니다. 다만 이 정도의 발견이 앨범 자체를 다시 찾고 싶은 앨범으로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앨범을 좋게 들었다면 Yuzion의 기본적인 이미지에 호감이 있어서일 거 같아요. 전작 수록곡인 "Henzclub"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건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들을 어서 많이 찾아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6) Taeb2 - Love Box 1.5 (2020.11.18)


 조금 늦게 들어보는 Taeb2의 앨범입니다. 전작 "Love Box"를 이 시리즈에서 얘기한 적 있었고, 그때 앨범 단위의 작업물은 당분간 안 내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돌아왔군요. 당시 인터뷰에서 '사랑 노래만 써서 어려웠다'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사랑 노래만 4곡이 든 작은 EP이고요.


 들으면서 전에 "Love Box"에 대해서 썼던 글을 읽어봤는데, 우선 당시에 저는 Taeb2를 래퍼라고 두고 글을 썼더군요. 장르의 구분이 없다지만 사실 지금은 Taeb2는 래퍼보다 싱어로 얘기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전작에서 보여줬던 상큼하고 대중적인 멜로디 메이킹은 여전하고 앨범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소하나마 전작에서 거슬렸던 부분 - 트랙 간 차별화되지 않는 주제, 감상을 해치는 오토튠 등이 이번에는 꽤 개선되어 보였습니다. 특히 옥타브를 달리한 후 이펙트를 더해 더블링을 한 건 좀 특이하게 들렸습니다. 적어도 저는 나쁘게 듣진 않았습니다.


 다만 싱어로 그를 다시 상정하고 볼 때, 아직은 노래 실력은 아쉽습니다. 이 역시도 "Love Box"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향상된 부분은 있다 생각하고, 멜로디의 폭도 그에 비례하여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고음 파트보다는 조금 심심해질 수 밖에 없는 벌스의 저음역대 부분인데, 약간씩 더해져있는 오토튠은 그나마 있던 깊이마저도 제거해버리는 듯합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는 Taeb2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에 달려있겠지만, 아무래도 근래의 그의 작업물을 살펴보면 더욱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한국 사운드클라우드 R&B 씬 특유의 팝 코드를 전개하는 아티스트들 중에 대단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는 별로 없습니다 - 대개는 간단해보이지만 쉽게 흥얼거리게 되는 멜로디로 감정을 전달하고 심금을 울리는 능력을 평가하게 됩니다. 아직 Taeb2의 노래는 그런 깊이보단 주어진 대본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점을 개선한다면 좀 더 빠져들게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7) 호미들 - Ghetto Superstars (2020.12.14)


 같은 "영앤리치 스몰즈"였지만 아쉽게도 본업으로 돌아가 거의 활동을 볼 수 없었던 수학자와 달리, 호미들은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고, 결국 Yng & Rich Records에 정식으로 입단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Ghetto Superstars"는 이를 기념하며 나온 새 EP입니다.


 "하이브로 라디오"에 출연했을 당시 호미들은 이제 슬슬 가난에 대한 얘기를 멈출 때가 된 거 같다고 한 적 있습니다. 그래선지 "Ghetto Superstars"에는 성공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자랑의 비중이 이전 앨범에 비해 많습니다. 이것이 아예 바뀐 분위기로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음악적으로는 이전 앨범과 크게 바뀐 게 없는게 제일 큰 단점일 것입니다. 고작해야 "AMIRI"와 "비비디 바비디 부" 정도만 다르게 들리고 나머지는 거의 같은 패턴입니다 - Chin이 없었으면 대체 노래 후렴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이 자체가 앨범의 객관적인 퀄리티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생각합니다. 의외로 이전 앨범에 비해 이런 반복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사실 저는 호미들 앨범을 들을 때마다 늘 느껴왔던 부분입니다. 그걸 좋다고는 할 순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MIRI"와 "비비디 바비디 부"라도 있으면 이전보단 더 다양성이 생겼단 뜻일 수도 있는 거죠. 또한 셋의 꽂히는 플로우와 멜로디, 센스 있는 라이밍과 단어 선택도 여전하며, 성공을 좀 더 다루면서 표현만은 예전보다 좀 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 늘 타입 비트만 쓰던 그들이 Kidstone이라는 동료 프로듀서의 비트를 수록시킨 앨범이기도 한데, 솔직히 Kidstone이 곡을 쓴 두 곡은 비트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창모도 제대로 못 살렸다고 생각해요 (타입 비트를 벗어나 자기 동료를 합류시키려는 움직임은 아주 좋다 생각합니다).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패턴으로 곡을 만드는 건 이제 암묵적으로 참기로 했다...라고 하면 웃기지만, 그만큼 기본적인 실력이 받쳐주니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분위기가 달라질 거라면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보여줬던 에너지를 조금 기대하기도 했는데요, 이게 과연 앞으로 나올 일이 있을지... 뭐가 됐든 신선한 걸 보여주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8) Draft by Us - Tape (2020.12.15)


 Draft by Us는 비트메이커 Alive Funk와 래퍼 neverunderstood의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둘은 과거에도 서로의 앨범을 통해 여러 차례 콜라보한 적이 있으며, Keep News라는 크루를 함께 하고 있기도 합니다. 본작은 앨범이나 트랙이나 전부 제목을 'tape'으로 간단하게 지은 트리플 싱글로, 앞으로 나올 정규 앨범의 예고편이라고 합니다. 

 Alive Funk의 "DI-ANA"를 들으셨던 분이라면 "Tape"의 음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착 가라앉은 느낌의 느릿한 바이브가 우선 세 곡의 골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악기는 '리얼 세션 = 밴드 세션'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위한 것인지 독특한 느낌의 악기들로 선정이 된 거 같더군요 (신스라고 생각을 했는데 Alive Funk가 아날로그 위주의 작업을 선호한다 생각해서 고쳐 썼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무슨 악기인지 더 궁금해지긴 합니다). neverunderstood는 이 느낌에 어울리는 로우톤의 차분한 랩으로 메세지를 풀어나갑니다. 뚜렷한 주제가 있진 않지만 주변에서 본 것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풀어가는 어조와 라임은 나쁘지 않게 들렸습니다. "DI-ANA"에서는 둘이 같이 한 두 곡 중 하나는 부현석이 돋보였고, 하나는 비트가 비전형적이어서 못 느꼈는데 상당히 안정적인 조합 같습니다.


 차분하기 때문에 임팩트를 줄만한 높낮이가 부재한 건 특징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I-ANA" 때도 느꼈지만, Alive Funk가 만드는 음악의 바이브는 우리가 힙합을 생각할 때 전형적으로 나오는 그루브는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남다른 chill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선 졸린 음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본작의 "tape 3"에서는 그런 걸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차분한 톤의 래퍼와 함께 한다면 다양한 무드가 있는게 좋겠죠 - 다만 "DI-ANA"의 트랙들의 범위는 좀 뜬금 없던 부분이 있어서 그들만의 중심을 지킨 채로 이것저것 보여줬으면 합니다.



(9) Posadic - Chill Boi Season (2020.12.16)


 저는 Posadic이란 래퍼를 지난 yovng trucker와의 콜라보 앨범으로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 앨범 제목이 왜 "yt4*chill"인가 했는데 뒷부분의 chill이 Posadic이었군요. 아무튼 그 앨범 이후로 오랜만에 새로 나온 EP "Chill Boi Season"입니다.


 Posadic의 스타일도 전형적인 한국 트랩 스타일의 싱잉 랩 안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발견을 위해 들을 필요가 있는 앨범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틀 내에서 Posadic의 강점을 논하자면 트랩 래퍼 치고 꽤 탄탄한 땜핑을 첫째로 들고 싶습니다. Posadic은 꽤 타이트하게 플로우를 짜는 편인데, 멈블이 트렌드가 되는 추세에서 그의 랩은, 붐뱁처럼 탁탁 박히는 건 아니더라도 딜리버리가 괜찮고 리듬을 쪼개는 느낌이 잘 살아있습니다. 다루는 소재와 이를 전개하는 방식은 뻔해보이긴 하지만, 라임 설계나 표현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POP" 같은 트랙을 들어보면 지난 번 콜라보 파트너인 yovng trucker와 닮은 점도 있어보여도, 이 부분은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싱잉 랩을 하는 래퍼들과 어느 정도는 구분 지어주는 부분 같습니다.


 이런 타이트한 플로우 사이사이 완급 조절이나 훅 메이킹도 준수한 편입니다. 특히 곡들을 들어보면 '한국형 트랩'에선 꽤 희귀한 16마디를 넘는 벌스나 브릿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길이가 길어질 때 지루하지 않게 멜로디나 플로우에 변주를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컨대 기본은 잘 잡혀있고 이를 발전시킬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트래퍼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SMOKE"나 "2.6" 같은 rap shit도 좀 더 발전시켜보면 좋을 거 같은데 스스로 본인의 메인이 아니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는 '좀 잘하는 뻔한 트래퍼'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라는 판단은 조금 더 그를 지켜보고 내리도록 하죠.



(10) Jhnovr - A Nocturnal Visit (2020.12.16)


 Jhnovr의 첫 정규 앨범 "A Nocturnal Visit"입니다 - 왠지 WeDaPlugg에서 제일 활동이 뜸해보이는 멤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멤버 중 (오르내림 제외) 첫 정규를 발표하게 되었군요.


 피쳐링이나 컴필레이션에서 Jhnovr는 Chris Brown을 연상시키는 R&B 음악을 했었고, 이는 개성이 부족하다는 평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Jhnovr의 개인 앨범을 살펴보면,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또 다른 크루 Lowland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의 성향이 두드러져, 무겁고 느린 비트 위 신비로우면서 어두컴컴한 감성, 그리고 각종 이펙트를 통한 기계적인 느낌을 종합한 음악이 주를 이루곤 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이게 무슨 말인지 여러 번 읽...).


 "A Nocturnal Visit" 역시 Lowland의 프로듀서였던 Tsuya가 대거 참여를 했고, 지난 "Mechanism" "Dirty Messiah"에서 보여준 감성이 이어집니다. 허나 오토튠을 표현의 주된 방식으로 빌렸던 전작들과 달리 "A Nocturnal Visit"은 Jhnovr의 목소리 자체가 주축이 되며, 진성으로 시원하게 뻗어가던 창법과 달리 가성으로 감미로우면서도 더욱 신비로운 무드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트로를 제외한 첫 두 트랙이 베스트였고, 베스트가 초반에 다 나와버린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부드러운 가성과 힘찬 진성의 균형 속에 댄서블한 리듬이 어우러지는 "Body"와, 절제미 속에 Jhnovr의 노래와 비트가 조금씩 하이라이트를 향해 나아가는 "Strangers Again"은 앞으로 듣게 될 곡들에 대한 기대치를 무척이나 올려놨었습니다. 아쉽게도 뒤에는 상대적으로 뻔한 구성의 곡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White Center" "One Call" "Devil's Pie" 등에서 계속 재활용되는 리듬과 그루브는 중반부를 다소 물리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허나 분명 매력적인 앨범입니다. 특히 오토튠을 뺀 온전한 그의 목소리가 사용되었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이 목소리는 피치 조절, 좌우 패닝, 창법의 변화 등으로 순간순간 예측 불허하게 변주를 주면서 Jhnovr 특유의 감성을 심화시킵니다 - 다만, 노이즈가 낀 듯 조금 거친 느낌으로 믹싱이 되어있는데, 이게 음악을 듣기 어려울 정도로 거슬릴 사람도 있을 거 같긴 합니다. Jhnovr 노래마다 등장하는 거라 엔지니어링 실력과는 무관할 거 같습니다. 그외에, 시를 쓰는 듯 절제되어있고, 단순히 멋을 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한영 혼용이 쓰인 가사도 분위기를 더해주는 맛이 있습니다.


 왠지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가 you.will.knovv의 Tabber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뭐가 됐든 이때까지 어떤 아티스트인지 집어 말할 수 없던 그에게 색깔을 분명히 제시하는 기회란 점에서, 본인의 커리어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전작에 비해 이뤄낸 진화 또한 "A Nocturnal Visit"을 범작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이유입니다.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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