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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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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16:30:25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분명 밀렸던 거 잘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판에 굵직한 게 막 터졌네요. 연말 선물 같은 건가요.

아이러니하게 보던 유튜브 영상들이 맥이 툭 끊겨서 노래를 좀 더 듣고 있긴 합니다.

언제나와 같이 미디어와 함께 하는 연말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김심야 - Dog (2020.11.29)


 "Dog"를 한 번 다 돌리고 나서 저는 이 앨범이 왠지 모르게 김심야 스타일의 조크처럼 느껴졌습니다. 자못 진지했던, 대중적으로 가겠다는 선언 이후 나온 앨범이 요 모양(?)인 것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는 것은 조크가 제대로 먹혔다는 뜻이겠죠. 저는 한편으로 '"Bundle1"은 믹스테입이고 이건 정규니 아예 딴 판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예측해놓고는, 의외로 제작 방식을 많이 공유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 하긴 "Bundle1"은 "05 WORK ORDER"라는 제목 하에 작업 중이던 엄연한 앨범이었더군요. 그걸 알았으면 말조심했지...


 지극히 대중적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던 이 앨범은 결코 쉽게 볼 앨범은 아닙니다 - 이건 사실 멜론 차트를 노렸다던 XXX의 "Second Language"와, 선공개 "Forgotten"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암시되던 바입니다. 만약 정말 이걸 대중적이라 생각했다면 어느 포인트에 집중을 했을지가 궁금해지는데, 저는 왠지 모르게 작업하던 도중에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Dog"는 그만큼 전반과 후반 ("Does It Matter" 정도를 기준으로. 물론 후반에도 "When the Right is Wrong" 등이 있긴 합니다만)이 사이드 A와 B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딴판입니다.


 앞쪽의 곡들의 경우 "Bundle1"과 공유하는 제작 기조, 즉 본인 목소리를 온전히 녹음한 상태로 두지 않는 것이 눈에 띕니다. XXX 앨범은 FRNK가 비중이 컸으니 그랬고, "Bundle1"은 (들을 당시의 추측으론) 실험적인 믹스테입이니 그랬다 쳤는데, 알고 보니 김심야는 그냥 자기 보컬을 갖고 이리저리 노는 걸 즐기는 것 같습니다. 곡의 절반을 샘플처럼 사용하여 EDM화한 "0 Balance"이나 극도로 단순한 훅에 곡의 2/3을 할애한 "Okay, Dial It Up, Call Me" 등이 그 예입니다. "Bundle1"과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은 비트이지만, 적어도 전반에 한정하여서 잭슨 폴락 그림마냥 아무거나 던져대는 불친절한 비트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런 비트의 포화 속에 유유히 자기만의 템포를 고집하며 길 밖으로 비트를 밀어내는 듯한 김심야의 랩 (특히 "Drive Slow")은 명불허전입니다.


 "Butting on the Glass"부터는 문제의 대중성의 실마리가 잡힐 듯합니다. 기존의 노이즈 섞인 불친절한 비트에서, 하나의 '종잡을 수 있는' 메인 멜로디를 위시한 비트로 바뀌며, 모든 곡이 그렇진 않지만 벌스와 훅이 구분된 전통적인 구조도 등장합니다. 특히 "Uainrealli"나 "Looooose Controlla" 같은 중독적인 훅과, 청자에게 친숙히 다가올 샘플링의 사용 (dj soulscape가 프로덕션에 등장한게 컸을까요) , 무엇보다 벌스 동안 온전하게 심야의 랩에만 집중하여 감상하게 해주는 친절함(?)까지. 앞의 곡들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던 청각은 갑작스런 편안함 속 빠르게 근접해온 심야의 음악에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심야의 랩이 변모한 모습을 보면 더욱 그의 주장에 수긍이 갑니다. 독설적이고 날카롭던 모습을 버리고, 유연하고 능글 맞은 톤으로 랩을 굴리는듯한 플로우는 뭐가 됐든 조금 더 친화적이며, 특유의 그루브와 겹쳐 공격성만 띄던 젊은이가 해탈을 한듯한 여유마저도 느껴집니다. 씨니컬함이 살아있긴 하지만 조금 더 직설적이면서 회유적으로 변한 어조 역시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간혹 봤던 심야의 인스타 라이브가 연상되더군요. 친절한 듯 하지만 가시가 있는 말들 - 스윗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앨범의 난해함을 제일 크게 결정 지은 전반부는 4곡 밖에 되지 않습니다 - 한정판 두 트랙을 제외해도 1/3 정도죠. 그 4곡이 앨범의 인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반대로 김심야의 과감함이 얼마나 큰 카리스마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만의 해석으로 표현된 대중성은 언제나의 심야 같으면서도 실로 유쾌했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앨범이 하나의 큰 조크였다면, 저는 박장대소를 한 청중 중 한 명이 될 것 같습니다.



(2) Johny Kwony - My Name is Johny!!!!! (Part 1) (2020.12.1)


 고등래퍼 시즌 1에 나온 Johny Kwony를 기억하는 분은 결코 랩 실력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충실하게 빨간색으로 뒤덮은 아이가 신기했을 뿐, 랩 실력은 랩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음악을 오래 하지 않을 거란 저의 예상과 달리 Johny Kwony는 그후로 사운드클라우드와 싱글을 통해 소소한 활동을 이어갔고, 지금은 없는 거 같지만 나름 동료들과 "Red Gang"이란 크루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San E의 트레이닝을 거쳐 2020년 들어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음악에 임하여 첫 앨범 "My Name is Johny!!!!!"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등래퍼에 나왔을 당시와 비교한다면 당연히 발전했습니다 - 일단 그때는 평가하기가 애매한 실력이었죠. 빨간색에 대한 열정이 여전한 건 좀 신기한 부분입니다 (심지어 발매일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세계 빨간색의 날이라더군요;). 수록곡들은 사실 예상 범위 내에 있습니다. 오토튠, 싱잉 랩, 돈 버는 기믹, 사랑 노래, 팝적인 멜로디, 전부 다 있습니다. 실력의 발전은 분명하지만... 절대적인 위치에서는 마음을 동하게 할만한 수준은 못 됩니다. 기본적으로 톤과 발성이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여전히 '랩 좋아하는 사람' 그 정도의 느낌으로 들립니다.


 나름 Johny Kwony는 프로듀싱에 전반적으로 참여하는 등 음악적인 역량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허나 마치 라이브 무대를 갖다놓은 거 같은 사운드에, 적당선 이상으로 발라진 오토튠 (심지어 멜로디 없는 랩에도 오토튠 느낌이 나는데,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거슬렸습니다)이 매우 어수선하게 들립니다. 동시에 열정은 이해하지만 가사는 얕아, 클리셰인 소재와 표현들이 여기저기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왔어"에서는 Bentley를 몰고 "매일뜯어새택"에서는 미망인들의 관심을 받다, 갑자기 "겨울잠"에서 솔로부대가 되어 석촌 호수를 전전하더니 "Ride or Die"에서는 사랑보다 돈이 중요하다고 외칩니다. 심지어 발라드 곡으로 분류할 수 있을 "세레나데"까지, 그냥 하고 싶은 음악과 얘기를 살짝 살짝 건드리고 뺀 느낌입니다.


 그나마 "성공의소리" 같은 기억에 남는 후렴이나, 미국 유학 경력으로 인해 영어 랩을 부드럽게 소화한다는 점 (아닌게 아니라 영어 랩이 이 곡들에 그루브를 더해주는 최후의 보루 같습니다)은 장점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다. 사실 다 차치하고 Johny Kwony의 최고의 장점이라면, 제가 이름을 기억하고 앨범을 다시 찾게 만드는 "레드 소년"으로써의 강렬한 이미지겠죠. 앨범을 돌리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과 발전은 엿보았지만, 그 안의 알맹이는 부실한 또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심지어 Part 1인데... Part 2는 좀 다른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PS 작곡에 Johny Kwony 이름이 올라가고 편곡에 다른 사람 이름이 올라간게 많은데, 이 크레딧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잠" 같은 경우는 GC란 비트메이커가 만든 타입 비트 (제가 눈여겨 보던 거라 압니다 OTL)에 편곡이 가해진 건데 GC는 편곡자로 되어있네요. 뭐 기재 규칙을 제가 오해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프로덕션 참여 비중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해석해야할 거 같습니다.



(3) GXXD - mojo (2020.12.1)


 여러 힙합 음반, 특히 FA 소속 뮤지션 (Coogie, Blase 등)이나 과거 Yelows Mob 멤버들 (Sik-K)과 여러 차례 콜라보를 하긴 했지만, 이번 GXXD의 음반은 블랙 뮤직 계열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 그건 오판이거나, 적어도 과소평가입니다. 이 의견은 클럽에서 틀어줄 법한 화려한 EDM 트랙인 첫 두 곡만 들어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의 세 곡만 떼놓고 듣는다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군요.


 이러나 저러나 GXXD는 늘 각종 소스들을 맛깔나게 켜켜이 쌓는 법을 아는 비트메이커입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트랙들은 적어도 네 겹 정도의 악기들이 들리는데, 과할 법도 한데도 이들의 밸런스가 대단하여 완벽한 협주곡을 듣는 기분이 납니다. 그래서 저 같은 귀를 가졌어도 비트를 듣는 맛을 얘기할 수 있는 프로듀서 중 한 명입니다. 후반부 세 곡이 비슷한 분위기인 건 좀 아쉬운 일입니다. 그나마 피쳐링진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보컬을 깔아줬기 때문에 구별이 되긴 하지만 살짝 코드 진행과 전개에 있어 자기 복제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먹히는 패턴들이긴 했죠.


 개인적으로, 1번 트랙 "LSD"가 나머지에 비해 튄다 말할 정도로 너무나 놀라웠네요. JUNNY라는 아티스트도 이름만 들어봤는데 이제 못 잊을 이름이 될 거 같습니다. 이 정도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곡 아닐까요. GXXD는 워낙 다른 앨범에 참여할 때도 수준급의 비트를 들려줬고, 사실 본인 앨범이라서 더 특별한 경험을 받진 않았습니다. 그저 GXXD다운 좋은 곡들의 모음집이었고, "LSD"가 수록되어있다는 걸로 만족스럽습니다.



(4) Allib - A to Z (2020.12.3)


 Allib은 2017년 "2NFRO"로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래퍼입니다. 처음에는 로우톤의 래퍼였지만, 음악을 시작한지 대략 1-2년 쯤부터 레게톤의 싱잉 랩으로 전향하기 시작하였던 거 같습니다. 본작 "A to Z"는 본래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된 26곡 짜리 (말그대로 A에서 Z까지 모든 트랙) 믹스테입이었는데, 그중 9곡 정도를 선정하여 EP 형태로 스트리밍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는 Allib이 처음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리는 음원이기도 하며, 제 글은 이 9곡 버전을 듣고 적었습니다.


 말했다시피 "A to Z"의 스타일은 '레게'했을 때 떠올리는 거친 발성의 싱잉으로, 군데군데 쿤타 같은 이 분야의 아티스트가 떠오르곤 합니다 (되게 유사한 아티스트가 한 명 있었던 거 같은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납니다;). 여유와 낙관을 담은 곡도 있지만 대개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듯한 내용들로, 이를 표현함에 있어 전곡에 걸쳐 드러나는 진한 감성이 앨범의 미덕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취향적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듣기에 안성맞춤인 앨범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곡들에 담긴 Allib의 보컬은 강렬한 색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고음을 소화할 때 절규하는듯한 발성, 그리고 서너겹씩 쌓인 코러스입니다. 특히 겹겹이 쌓인 화음의 결과물은 상당히 두꺼워서 때로는 성가대 같은 신비로움과 공간감을 주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작법이지만, 사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조금 갸우뚱하긴 했습니다. 타입 비트들로 채워진 비트를 보면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한 잔잔한 곡들인데, 너무 과하게 얹혀진 것이 아닌지 하는 것이죠. 비슷한 맥락으로, 곡의 빈틈이 거의 전부 추임새로 채워져있습니다. 타이트한 랩곡도 있지만 대개는 느긋한 바이브를 의도한 곡으로 들리기에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hi- hello-"가 베스트였습니다 - 비트 자체가 힘이 있으며, Allib의 랩도 살짝 느슨하게 타서 더 그루비했거든요.


 노래와 랩의 방법론이 구별된 듯 들리는 건 좋았습니다. 덕분에 두 가지가 서로 어중간하지 않게 각자 장점을 가졌고, 상황에 맞게 전환이 이뤄졌던 거 같습니다. 다른 아티스트가 떠오르는 건 단순히 제가 레게를 잘 모르다보니 이런 톤의 뮤지션은 다 뭉뚱그려 생각하게 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앨범 장르가 레게는 아닌데 말이죠). 그래도 고유의 표현력과 통일성 있게 이어지는 색깔 등, Allib만의 멋은 엿볼 수 있었던만큼, 앞으로도 활동을 지켜볼만할 거 같습니다.



(5) Lil Cherry & GOLDBUUDA - CHEF TALK (2020.12.4)


 텍스트보다 사운드가 우선시되는 것이 현재의 트렌드라면, Lil Cherry와 GOLDBUUDA, Sauce Cartel은 단연 그 첨단에 있는 팀입니다. 둘이 트랙 위에서 날뛰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그들의 곡에서 텍스트는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잃으므로, "하늘천따지"는 사실 천자문이나 중국 고전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고, "SHRIMP TEMPORA"는 새우 덴뿌라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주된 사용 언어인 영어마저도 특이한 느낌으로 꼬고 비틀어 가히 옹알이에 가까운 플로우로 창조해낸 것이 이 둘입니다.


 WeDaPlugg 시절의 둘과 비교하여, 특히 Lil Cherry의 변화는 상당히 극적입니다. 당시에는 오토튠 비중이 컸고, 크게 보면 지향하는 바와 어울리긴 했지만, 현재에 와서 기계음을 빼고 온전히 목소리만 운용하여 귀엽게 혹은 사납게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청각적 쾌감을 더욱 극대화하는 면이 있습니다. 몽환적인 둘의 랩 스타일 때문에 흩어질 수 있는 집중력을 제각기 다른 포인트를 줘 잡아주는 Dakshood의 비트도 금상첨화입니다.


 이런 강화된 사운드에 수록곡 중 다수가 뮤직비디오가 제작된 것까지 연관하여, 둘이 만드는 이미지는 매우 또렷합니다. 한국 힙합에 이들을 넣고 있긴 하지만, 사실 국적을 나누는 것이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속 비쥬얼이 사실 중국, 일본 (다시 말해 서양인이 가진 오리엔탈의 전형적 이미지) 풍이 많은데다, 언어는 자기만의 발음을 가진 영어니까요. 어디의 누군가는 이걸 불편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Lil Cherry, GOLDBUUDA라는 두 이름 외에는 정의 내리지 못할 고유의 무언가가 되는데 한몫한 셈입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겠지만, 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Sauce Cartel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취향 문제로 완전히 마음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현재의 모습이 예전보다 훨씬 좋은데, 신곡 중 하나인 "Lemon Squeeze"는 과거 스타일인 점은 재밌네요. 수록곡 중 절반 이상이 예전에 공개되었던 곡이긴 하지만, 한데 모아놓고 들으니 둘의 매력을 더없이 각인시켜준 앨범, "CHEF TALK"였습니다.


 

(6) HYNGSN - Agfa. (2020.12.4)


 2019년 4월 첫 앨범 이후로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활동 중인 HYNGSN의 새 앨범입니다. 저번 앨범에 비해서 랩 파트를 없애고 R&B에만 집중을 하였으며, 대신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혔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번 앨범에서는 몽환적인 느낌이 은근하게 깔려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스타일의 매력은 전반부에 반복적인 가사와 의도적으로 단조롭게 만든 비트 위에서 표현됩니다. 반면 후반부에서는 조금 더 딥하고 풍성한 감성으로 노래가 전개됩니다 - 특히 마지막 곡에서는 8-90년대의 소울풀한 바이브도 재현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후반부에서는 목소리 운용이 살짝 밋밋하게 느껴지는 데도 있었던 거 같아요.


 아는게 별로 없다보니 길게 얘기하지 못하지만 전작에 비해 보컬로써의 HYNGSN에 좀 더 집중하여 보여준 것 같습니다. 전작이나 본작이나 장점이 전면에 드러난다기보다는 은근하게 깔려있어서 평범한 듯하지만 여러 번 돌려 듣게 되는 앨범이었습니다.



(7) Futuristic Swaver - YFGOD (2020.12.5)


 Daytona의 영입과 함께 나온 Futuristic Swaver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정규라 불린 앨범은 사실 전에도 꽤 있었으나 회사 들어간 기념으로 첫 정규라고 우기고 있다는 후문.


 Futuristic Swaver 앨범을 들을 때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얼마나 자기 복제를 피했는가 입니다. 수작이라 평가받는 "BFOTY"는 그 부분에서 훌륭했고, 그 외에 "Swag Society" 정도를 제외하면 대개는 늘 비슷한 바이브였습니다. 아무래도 작업물을 자주 냈기에 큰 변화가 없이 반복된 것도 있을테고, 특히 Laptopboyboy 프로듀싱이 워낙 뚜렷한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일 거 같습니다. 본작은 여러 프로듀서가 협업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메인 프로듀서가 Laptopboyboy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우려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YFGOD"은 기존 Futuristic Swaver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 했지만 그래도 흔적은 분명히 보이는 앨범입니다. Futuristic Swaver 스타일을 만드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신스였습니다. 틴 드럼이나 뮤직 박스, 혹은 '오타쿠' 느낌의 통통 튀는 신스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으며, 여기에 따르는 리듬이나 랩 구성도 비슷비슷했습니다. 본작에서는 "MAD! SAD!! BAD!!!" "Regret It"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신스를 사용하더라도 좀 더 이펙트를 가해서 전과는 다른 소리를 내려했다든지, "Awful Things"의 기타 같은 다른 악기를 활용하거나 아예 "Relationships"처럼 다른 리듬을 탔다든지, "Can't Feel"처럼 장르 자체를 다르게 하려했다든지 하는 흔적은 정규 앨범에서 그의 음악 세계를 확장하려했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피쳐링진, 전에 비해 감성적인 가사 등도 그런 점이랄 수 있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위에서 말했듯, 완전히 틀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랩을 짜는 방식 자체는 동일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 사이사이로 데자부처럼 과거와 같은 느낌이 납니다. 정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스케일로 나온 앨범 같지만, 틀을 깼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자꾸 아쉬워지게 되네요. 그래도, 앞으로 새로운 거처에서 빵빵한 지원과 함께 달라진 음악 활동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8) Jaedal - Bomb Head (2020.12.5)


 Legit Goons 멤버로 꾸준하게 활동을 하긴 했지만, 1년 10개월만의 솔로 앨범이자 첫 정규 앨범입니다. 제목인 "Bomb Head"는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터져버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거의 전곡을 재달과 James Keys가 (어떤 곡은 James Keys가 재달의 비트를 아예 갈아치웠다는) 작업하였습니다. 한편으로 SOMA의 Blu Tongue 소속으로 내는 첫 앨범이기도 하군요 - 여자친구가 사장이라... 무운이 함께하시길...


 처음 재달을 접하게 된 앨범이었던 "Adventure"를 들었을 때 저는 장르적으로 신선하면서 대중적인 느낌과 개성적인 느낌을 고루 갖춘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힙합 앨범 같지 않다는 이유로 몰입에서 빠져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후 그가 바삐 냈던 EP들은 작법에 있어서 꽤 힙합적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를 다시 락커 재달로 돌려놨습니다 (실제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락/메탈'로 분류되어있습니다). 음악들이 전체적으로 일렉 기타나 신스 키보드를 이용한 밴드 세션에 보컬이 멜로디를 이끌어가는 전형적인 인디 락의 구성을 따르고 있거든요.


 물론 래퍼로써 랩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플로우나 라임 디자인에서 꽤 단순하게 접근한 느낌이 납니다. 그보다는 멜로디의 비중을 키운 것인데, 이 멜로디 역시 일반적인 '싱잉 랩'의 개념과 다릅니다. "z짓"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 힙합적인 작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랩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의외로 앨범을 좋아할지 싫어할지를 가르는 중요 포인트가 될 거 같습니다. 저는 "Adventure" 감상 후의 코스를 빠르게 겪은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어차피 음악은 음악인 법, 힙합이 뭐고 어쩌고를 떠나 보자면 "Bomb Head"는 깊은 속을 지닌 앨범입니다. 얼핏 보았을 때 이 앨범은 밴드 음악이 제시하는 직선적인 구성과 단순무식 독고다이를 표방하는 재달의 가치관을 대놓고 얘기하는 간단한 서사를 지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의외로 전통적인 벌스-훅의 구성을 지닌 곡이 없으며, 하이라이트로 빌드업되는 무드와 그 후 마감을 하는 방식이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계산에 악기가 추가되고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달의 가사 역시 간단해보이지만 생각보다 겹겹이 비유가 쌓여있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곡도 꽤 있습니다. 그저 그가 풍기는 아우라가 분명해서 어떤 느낌으로 말하는지 다 들릴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것이 재달 음악의 특징이었습니다. "Bomb Head"는 첫 정규라는 이정표답게 재달이 재달 본연의 음악 세계로 돌아왔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피쳐링진 없이 (사실 재달은 피쳐링진을 원래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것도 비힙합, 락커스러워 보이네요) 온전히 드러난 그의 스타일은 솔직하지만 파보는 깊이에 비례해서 많은 걸 선물해줍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그림에 이상하게 남아있는 식상함의 뒷맛이 좀 찜찜하긴 하네요. 좋긴 한데, 너무 정석적으로 좋은 느낌...?



(9) YunB - 이별일기 (2020.12.6)


 그간 나왔던 YunB의 EP는 방향성이 뚜렷했습니다. "Wasted 20s"는 부담을 한껏 덜어낸 가벼운 음악이었고 "D.O.P.E."는 말그대로 dope한 맛을 잔뜩 지닌, YunB가 해석한 하드코어 힙합이었습니다. 새 EP "이별일기"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연인과의 이별 후 찾아온 슬픔을 소재로 하였으며, 사실 이 설명 한 줄만으로 앨범을 거의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첫 트랙에서 이별을 경험한 후, 남은 트랙에서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방황하는 YunB의 모습이 실려있습니다. 어느 트랙 하나 튀지 않고 축 가라앉은 차분한 무드에서 진행되며, YunB도 여기에 느릿한 싱잉 랩으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사 자체도 매우 직설적입니다. 저는 "이별일기"가 실제 경험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트랙을 '예술적'으로 꾸미려는 별다른 시도 없이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고 일관되게 자신의 슬픔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YunB의 디스코그래피에 비교하자면 지극히 단순한 앨범입니다.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 앨범이라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앨범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운드와 멜로디의 배치는 YunB답게 매력적입니다. YunB 스타일에 맞추어 참여한 피쳐링진들도 각자의 개성을 담아 벌스를 실어주었기 때문에 듣는 재미가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제 조건에 비해선 의외로 지루함 없이 괜찮게 들었습니다. YunB 특유의 감성을 이별이란 보편적인 상황과 EP라는 크기에 맞게 담아낸 앨범, "이별일기"였습니다.



(10) $IGA A - Prism (2020.12.7)


 고등래퍼 시즌 3에서 본명 이진우를 걸고 경연에 참여했던 $IGA A가 앨범을 들고 컴백하였습니다. 이 앨범 때문에 Raphouse on Air 진행자 자리까지 내려놨으니 상당한 결단이 들어간 작품이란 예상이 갑니다.


 특히 고등래퍼 참여자들에게서 두드러지는 듯한 현상 즉,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과 많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들고 돌아오는 것은 $IGA A도 예외는 아닙니다. 본래 방송에서는 황소에 비유되는 묵직한 붐뱁 스타일로 설명되곤 했으나, "Prism"은 시쳇말로 '요즘 스타일'이 여러 가지 섞여있으며, 순수한 하드코어 붐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타이틀곡인 "Django"는 댄스홀로 분류할 수 있을 거 같고, 마지막 곡 "알아"는 이모 트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래퍼가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고 어떤 면으로는 장려할만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붐뱁을 안 했다는 것만으로 그를 비판하는 것은 방송에 비친 단면으로 만들어진 선입견으로 뮤지션을 대하는 얕은 감상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작년 싱글 "callin"에서도 스타일 변화는 예고되었던 바니까요). 그럼에도, $IGA A의 매력 중 하나라 생각했던 두꺼운 목소리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붐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EXIT" "Soul City" 같은 트랙도 힘을 빼고 읊조리는 듯한 플로우에, 하이라이트는 오토튠으로 장식하였기에 기대하던 땜핑의 맛을 얻긴 어렵습니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스타일이 $IGA A의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해준다면 좋겠지만, 저는 유행하는 스타일에 대한 클리셰적인 차용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해석 안 될 정도로 틀려있는 영어'를 동반한 한영 혼용과 더불어, 메세지도 그다지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해보입니다. 여러 트랙에서 깊은 내면을 꺼내놓고 풀어가려 하지만 표현이 제한되다보니 이야기가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듣고 나서 여운이 남는 트랙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소한 얘기 하나 더 하자면, "와신상담 (interlude)"가 전체 맥락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실험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 귀에는 앨범에서 그저 의미 없이 긴 간주 같이 들렸습니다.


 목소리에 좀 더 어울리는 스타일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스타일에 어울리는 새로운 플로우를 연구해봤으면 어떨까 합니다. $IGA A가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로 변모 중이라면 이 앨범은 어중간한 과도기의 단점이 너무 부각되버린 듯합니다. 단순히 방송 때 인정 받았던 붐뱁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본인만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을 잘 잡아갔으면 좋겠군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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