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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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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23:34:38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요즘 쇼미더머니도 재밌고, Pt.111의 첫 앨범이 될 김심야의 Dog가 너무 좋네요. 음악 듣는 재미를 잃지 않는 건 행운인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코로나 좀 제발...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키겐 - 현명한 자가 말했지 EP (2020.11.21)


 키겐이란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라면 대부분 브랜뉴뮤직 소속 그룹으로 한해와 산체스가 있었던 '팬텀'의 소속 멤버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J2Kiggen이라는 듀오로 데뷔 당시엔 프로듀싱을 겸하는 래퍼 정도였지만, 이후 HybRefine 활동을 하면서 비트메이킹의 비중이 더 커졌고, 팬텀에서는 서브 래퍼의 포지션도 있긴 했지만 메인 프로듀서로써의 역할을 이어가면서, 보컬로써는 작은 파트만 담당했었죠. 이렇듯 키겐은 주로 비트메이커로써 입지를 다져왔으며, 2018년 경 브랜뉴 뮤직과 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싱글들로 활동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본 EP를 감상할 때도 비트에 더 귀가 가게 됩니다. 구분이 우습지만 키겐은 힙합씬보다는 가요계에 좀 더 가까이 머물렀었고, 때문에 기본적으로 음악들은 팝적인 성향을 띕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섞여있는 독특한 접근, 이를테면 어쿠스틱한 악기 연주에 보컬 샘플을 섞는다든지 ("현명한 자가 말했지"), 악기에 적절한 이펙트를 먹여 여백이 많은 악기 배치에도 곡을 무난히 채운다든지 하는 것 ("금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연히 이 모든 건 키겐 프로듀싱으로 이뤄졌으며, 중간에 피아노 연주곡도 삽입되어있는 등 작곡가로써의 본인 정체성은 확고하게 가져가는 듯합니다.


 다만 랩에서 들을 거리는 많진 않았습니다. 오토튠이 좀 매끄럽지 않게 먹혀서 살짝 거슬리는 곡들도 있었고요, 작곡가니까 멜로디 메이킹이 좋긴 하지만, '대중적인 곡' 그 정도에서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특히 듣기 편안한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의식 속에 나온 "미성년에게" 같은 곡은 듣는 사람에 따라선 오그라들 수 있을 것입니다. 뭐 그래도, 곡들의 소재가 예상 외의 것들이 있어서 가사 읽는 재미가 조금 있습니다. 본인이 쓰고 있는 "현명한 자"라는 소설과 연관된 부분이 있다고도 하고요. 특히 "금연"은 가사 화자의 정체를 알고 당황했네요ㅎㅎ 요컨대 키겐 앨범은 그의 작곡 센스를 기대하면서 듣는다면 어느 정도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지만, 완전한 힙합 리스너의 자세(?)는 조금 풀고서 들어야 즐거운 감상이 될듯합니다.



(2) Superbee & Uneducated Kid - Yng & Rich Love Tape Pt.1 (2020.11.21)


 "Catch Me If You Can" 이후로 다시 뭉친 둘의 자그마한 EP입니다. 앨범 제목처럼 노래 내용들이 사랑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머니 스웩 역시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Catch Me If You Can"까지는 수퍼비는 역시 수퍼비, Uneducated Kid는 기대치에 비해선 못하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수퍼비는 그렇게 힘을 많이 준 느낌이 아니었어요. 평소에 비해 벌스에 유효타가 좀 줄어든 거 같네요. 물론 이 앨범이 "Rap Legend" 시리즈나 "5 Gawd Pt.2"처럼 빡센 스킬을 보여줘야 하는 앨범은 아니었지만, 싱잉 랩도 꽤 괜찮게 뽑아낼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물론, 기본 실력이 있기 때문에 별로라고 느낄 부분도 없습니다.


 반대로 Uneducated Kid는 스타일이 훨씬 성숙해지고 확고해진 거 같습니다. 랩 디자인이 상당히 단순했던 과거와 비교해서, 꽤 밀도 있게 플로우를 짜서 싱잉을 하는데다 멜로디도 전보다 덜 단조롭고 그루브가 마디마다 이어졌습니다. 아주 예전과 비교한다면 웃음이 나오는 허황된 비유는 사라졌지만 솔직히 이제 Uneducated Kid의 음악에서 그걸 바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비유는 주제에 따라 언제든 돌아갈 수 있거니와 현재의 스타일이 훨씬 지속 가능한 편일 테니까요.


 4곡짜리의 작은 크기 때문에 앨범의 임팩트는 크지 않습니다. Yng & Rich가 내놓는 것들이 최근 계속 여운이 옅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군요. 뭐 개인적으로 하이브로 라디오에서 본 수퍼비는 믿음직한 CEO의 모습이긴 했지만... 일단 앨범 제목으로 유추하면,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고 단순히 수퍼비와 Uneducated Kid 앨범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참여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후속편까지 모이면 인상이 좀 다를까요. Uneducated Kid의 발전상을 확인한 건 좋지만 아직도 굵직한 한 방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습니다.



(3) SMUGGLERS & Tommy Strate 외 - BICHELIN GUIDE with Tommy Strate (2020.11.22)


 SMUGGLERS는 다모임의 간택을 받은 프로듀서 noisemasterminsu의 팀으로 유명한 단체입니다 - 처음엔 IMEANSEOUL과의 2인조인 줄 알았는데, 팀이라기보다는 여러 포지션 - 일러스트레이터, 영상 감독 등등의 멤버들이 모인 크루더군요. 한편 BICHELIN GUIDE는 SMUGGLERS가 주최한 비트 컴피티션이었으며, 여기서 선정된 4인 Liam K, HYOWON, eulmigi, Tez_Toy의 비트에 Tommy Strate가 참여하여 이 앨범이 완성되었습니다. 우연히도 이것 전에 들은 "Yng & Rich Love Tape"에 참여한 Liam K의 이름도 있군요.


 제가 인스타에 앨범에 대한 글을 쓰는 건 1차적으로는 '들어봤고 할 얘기가 있어서'이고, 2차적으로는 '좋아서' 혹은 '소개하고 싶어서'가 될텐데, 이번 경우는 후자일 것 같습니다. 누누이 말했지만 요런 클라우드 랩 느낌의 트랩은 제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그나마 마지막 트랙 "ECHO" 정도를 빼면, 수록곡들이 대체로 드럼을 짜고 씬스를 까는 방식에서 크게 차별화를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최종적으로 비트를 선택하는 SMUGGLERS와 Tommy Strate의 취향이 반영되어서일수도 있습니다 - Tommy Strate의 음악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스타일이니까요.


 말하자면 Tommy Strate는 각 비트메이커들의 비트를 소개하는 역할인 편이라 얹혀있는 랩이 그가 늘상 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저는 좀 심심하게 들었지만, 트랩을 좋아하고 잘 아시는 분들께는 다르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크기와 관계 없이 성과를 올린 새로운 이름들은 계속 기억하고 상기하려 합니다.



(4) Dope'Doug - MIXTAPE (2020.11.24)


 실제로는 2020년 한 해 동안 간간히 싱글을 내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왔지만, 큰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사인히어'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입니다. 본작은 말 그대로 믹스테입이며,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과거 곡을 처분하는 목적에서 2016년~2018년의 미발표곡 12개와 정규 앨범 선공개 "안아"를 합쳐 낸 것입니다. 2016년~2018년은 돕덕이 "나는"과 "Growing Pains"를 발표한 사이의 시간으로 커리어에서 공백에 가까운 2년이었죠.


 트랙리스트엔 없어도 크레딧을 열어보면 곡마다 제작 연도를 알 수 있는데 절반이 2018년이고, 이외 2016년 2곡, 2017년 4곡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식 클라우드 싱잉랩이 실려있지만, 군데군데 "2016년12월31일"이나 "청바지" 같은 랩곡도 섞여있고, 곡마다 발음이나 발성 등 곡 무드를 만드는 것에도 미묘한 차이가 납니다. 다만 연도에 따라 일관성 있게 스타일의 변화가 보인다든지 하진 않습니다.


 대체로 뒤에 실려있는 Louis Maui 곡들이 좀 더 풍부한 사운드를 보여줘서 들을만 하지만, 돕덕의 곡들이 그렇듯 대체로 단순한 색깔을 띄고 있어서 장르 팬이 아니라면 듣는 재미가 그리 많진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꺼번에 마스터링이 된 게 아닌걸로 보이는데, 막귀인 저는 이걸 크게 느끼진 않았지만 "열어" 한 곡은 상당히 튀어서 중간에 살짝 귀가 아프더군요 (별개로 "열어"는 앨범 중 가장 역동적인 곡이라 그 자체로는 들을만한 곡입니다).


 정규 앨범 선공개라는 마지막 곡은 제일 풍부한 사운드의 비트와, 후렴에서는 가성도 사용하는 등 조금 더 넓은 음역대의 멜로디 메이킹을 보여줘서 앞의 곡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고 있긴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최근 낸 싱글과 좀 더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죠. 다만 근본적으로는 돕덕의 dumb down된 느낌과 다소 클리셰적인 가사와 플로우가 여전하긴 해서 정규 앨범에서 완전히 색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이름을 걸고 큰활동을 펼치려는 그를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기대하고 응원해보겠습니다.



(5) oceanfromtheblue - Luv-fi (2020) (2020.11.25)


 4월까지 앨범 세 개를 발표하며 바쁘게 달렸던 올해 전반기와 비교할 때 최근 oceanfromtheblue의 활동은 조용했습니다. "출국" (여담이지만 "출국"은 음악 인생 제2막을 예고하는 앨범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나보군요. 분명 삶에 변화를 주길 원했던 거 같긴 하지만) 이후 7개월만에 나온 본작은 제목에서 보다시피 2018년 나온 그의 첫 앨범 "Luv-fi (2018)"의 후속작 개념으로 나온 앨범입니다. 서사적으로 이 앨범은 2018년 버전의 프리퀄이며, 아웃트로 "위례신도시 (outro)"는 2018년 앨범의 "위례신도시 (intro)"로 이어집니다.


 막귀라서 앨범 소개글의 말을 빌리면, 본작은 '합성된 전자음보다는 직선적이지만 부드러운 아날로그 사운드' 외 여러 요소로 '로우-파이를 지향하던 초기 사운드 골조를'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던 Lo-fi의 개념하고는 조금 달랐지만, 전작들을 비교하며 들어볼 때 노래에서 풍겨오는 복고풍의 따스한 신스와 사운드스케이프를 가득 채우는 방식의 사운드 어레인지를 의미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oceanfromtheblue의 창법만 따지면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역대가 평균적으로 올라가고 좀 더 힘차게 들리는데, 겹겹이 쌓인 화성과 악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도 듭니다. 특히 - 저의 지식 부족으로 인해 '공기의 비중이 높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 발성이 이 '웅장함'에 큰 역할을 한 거 같습니다.


 사실, 제가 잘못 들은 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조금 투박하게 엔지니어링된 듯한 소리와 큰 볼륨 때문에 첫인상은 요즘 듣던 다른 앨범들에 비해 시끄럽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볼륨 한 단계 내려서 들으니 딱 좋긴 하던데 (;;) 이게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보니 원래 평소 듣던 것보다 볼륨을 한 단계 올려 듣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_- 이를 제외하면, Softy라는 비트메이커가 만든 전곡 트랙과 oceanfromtheblue의 보컬이 전체적으로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는데다, 순수한 사랑이 느껴지는 스토리텔링이 주가 되어 어떤 곡들은 '귀엽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제 귀가 충분히 섬세하지 못하기도 하고, oceanfromtheblue는 "khakii" 앨범부터 들어와서 첫 작품과의 연결고리를 잘 느끼진 못 했습니다 (2018년 앨범을 그냥 이번 앨범 들으면서 부랴부랴 훑듯 들었습니다). 뭐가 됐든 좋은 노래를 들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성공(?)이라 믿습니다. 가만 보면 oceanfromtheblue도 앨범마다 전부 다른 색깔을 적용하여 만들어가고 있군요. 그러면서도 그 모든 앨범을 묶어내는 oceanfromtheblue의 감성이 참 듣기 좋습니다.



(6) 조광일 & Brown Tigger - 신세계 (2020.11.26)


 Dippin Calz Records의 주요 멤버 둘로써 이미 여러 차례 합을 맞춘 바 있는 조광일과 Brown Tigger가 EP 크기로 콜라보 앨범을 냈습니다. 어찌 보면 조광일 1집의 후속 활동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Brown Tigger가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월간 프로젝트 사이의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Brown Tigger는 레게 아티스트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창법이 레게 톤을 띌 뿐 실제로는 래퍼와 더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때문에 레게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이 다소 얕게 느껴질 수 있지만, 래퍼로써의 Brown Tigger는 개성적인 톤과 멜로디 메이킹 능력을 갖춘 준수한 아티스트입니다. 특히 본 앨범에서도 비트에 어울리게 톤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해내는 능력을 보입니다. 한편으로 조광일은 1집의 연장선이지만, 여러 분위기와 서사를 보여줬던 본인 앨범과 달리 "신세계"는 음악 자체의 짜릿함을 선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비교적 가볍게 느껴집니다.


 Brown Tigger와 조광일의 관계는 조광일이 주목 받던 시기 즈음부터 이미 두터웠고, 그런 소통 덕분에 "Dead Stock" 같은 콤비를 보여줄 수 있는 거겠지만, 적어도 귀로 들려지는 케미는 생각만큼 터져주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둘의 스타일이 조합하기엔 안 맞는 부분이 많다 생각해요.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톤의 두께 차이가 있지 않나 합니다. "암순응" 얘기할 때도 말했지만 저는 조광일의 목소리가 강한 듯해도 베이스가 빈약한 것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좀 더 중후함이 실린다면 더 좋은 케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비슷한 맥락으로 두 아티스트와 비트와의 합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세계"는 일종의 이벤트이고, 작은 EP이기 때문에 청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장치들이 많이 있습니다. "Two Harsh Carls"가 락 밴드처럼 편곡된 것도 그 이유겠죠. 그리고 조광일의 스타일을 감안한 듯 대체로 숨가쁘게 달립니다. 이러한 비트들이 두 멤버 중 누구에게 어울리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말했다시피 제 귀엔 조광일의 톤이 얇게 들렸고, 반대로 비트는 강타를 때리려고 하니 손발이 맞지 않아보입니다.


 전작, 그러니까 조광일의 "암순응"과는 다르게 "신세계"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앨범이 아니기 때문에, 들으면서 생각을 많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멤버 중 조광일이 늘 호불호가 갈리는 걸 고려하여 얘기해본다면, 조광일을 싫어하는 사람 (1집에 대한 반응을 차치하고)이 이 앨범을 듣고 평가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 같습니다. 반대로 전 "암순응"에서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를 폄하할 이유로 삼지도 않겠습니다. 또 같은 맥락에서, Brown Tigger도 본인 솔로 앨범에서 뭔가 더 충격적인 것을 보여주리라 기대해봅니다.



(7) PUFF DAEHEE - "P" MIX VOL.1 (2020.11.27)


 저에게 기린은 항상 얘기하기 어려운 아티스트였습니다. 그가 첫 싱글을 냈을 때 이래로, 저는 기린이 웃기려고 음악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도 좀 오래 걸렸습니다 (...). 특히 당시 SALON 01 소속이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던 거 같습니다. 흑인 음악 매체에서 그를 종종 다루지만, 사실 90년대 가요 톱텐 느낌이 주축이라 흑인 음악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지도 애매하고요. 그래도 그 나름의 음악 세계 안에서는 최고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바, 이번에 은퇴를 감행하고 본격 래퍼 PUFF DAEHEE로 돌아온다고 해서 들어봤습니다.


 이미 Puff Daddy를 오마주한 이름부터 느껴지듯, 은퇴 선언까지 해가며 정체성을 바꿨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하드코어 힙합을 한다든지 하는 건 아닙니다. 기린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근간으로 두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여전하며, 이것을 유쾌하게 소화해내는 방식도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장르가 사용됩니다 - 골든 에라 시대의 붐뱁, 웨스트 코스트, 테크노에 DJ DOC이 할 법한 댄스 음악까지 (마지막의 예인 "Can't Hide" 같은 경우가 기린과 PUFF DAEHEE는 동일 인물이란 대표적인 예일텐데, 아니나다를까 가사에서도 기린이라고 하네요. 기린 앨범에 쓰려다가 넘어온 걸지도), 마치 자신의 음악적 지식을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에 PUFF DAEHEE가 되면서 몇 배로 커진 자신감 aka 중2병 컨셉은 마치 MF DOOM의 Viktor Vaughn 컨셉을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역시 PUFF DAEHEE / 기린은 타고난 쇼맨인 거 같습니다.


 옛날 느낌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있을 순 있겠는데, 재밌게도 천천히 짚어가듯 뱉는 랩이 예전 SALON 느낌이 살짝 배어나오더군요. 다만 생각보다 벌스들이 짧아서 곡이 휙휙 넘어가네요. 그리고 막 단점이다 라고 까긴 그렇습니다만, 'PUFF PUFF'는 솔직히 뇌절 수준까지 쓰이지 않았나... 공감하는 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PUFF DAEHEE는 랩하는 기린이 맞으며, 실력 있는 아티스트도 맞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기린 음악을 잘 안 듣던 제가 기린 때와 다른 애정도로 음악을 듣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물론 Vol. 2까지는 들어봐야겠지만요. 왠지 나중에 가선 기린의 은퇴 번복 ('음악을 놓을 수 없었다') 및 PUFF DAEHEE 앨범을 통한 컴백 같은 것도 있을 듯한데...;

 


(8) 히피는 집시였다 - 0 (2020.11.27)


 히피는 집시였다는 어떤 음반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들만의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적 식견이 넓진 않지만 그들은 아마 여백과 느림을 제일 잘 활용하는 음악 그룹일 것입니다. 가볍고 자극적인 음악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요즘, 히피는 집시였다는 새 EP "0"에서도 한 발 한 발을 무게 있게 떼며 청자들의 귀 속으로 다가갑니다. 가사의 양이 적어서 가사창을 열어보면 마치 시 같은 느낌이 드는데, 때문에 한 글자를 부를 때 실리는 밀도가 다른 음악과 다릅니다. 이 밀도를 이렇게 다루는 보컬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약간 트렌드적인 요소를 차용했던 전작과 비교해 이번 앨범의 음악들은 다시 빈 자리를 많이 두었습니다. 그래서 들으면서 "빈손"이 생각났지만, "빈손"은 다소 난해하다 생각됐던 반면 "0"은 일상적인 화법과 악기로 노래들을 장식했습니다. Jflow 특유의 기묘하게 뒤엉킨 신스들이 들리는 곡도 있지만, 대개는 피아노나 기타의 간단한 선율이 메인 코드를 만들고 있죠. 그래서 전작에 비해 Sep의 보컬이 분위기를 지배하는 비중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침잠하는 분위기가 마지막 "모든 것은 제자리에"에서 해소되는 듯 편안하게 매듭지어지는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보컬 음악에 대해 잘 얘기를 못하기도 하지만 히피는 집시였다는 그 자체로 장르가 되어버린 그룹으로 더욱 다른 코멘트를 붙일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벌써 정규만 네 장을 낸 탄탄한 커리어를 가진 그룹으로써, 시작부터 지금까지 뿌리를 깊이 내린 한편 줄기에는 다양한 모양의 꽃을 피우는 듯한 그들의 디스코그래피가 새삼 인상적입니다. 마침 계절도 그들의 음악에 어울리는 날씨가 되었네요.



(9) du7 - The du7 Vol. 2 (2020.11.28)


 Lemac이 이끄는 크루 du7이 1년만에 두 번째 컴필레이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는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다 나타난 집단의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후에 합류한 Bryn의 활약과 홍보 덕인지 꽤 친근한 느낌이 드는군요. 컴필의 사이즈도 두 배 이상으로 커졌고요.


 Vol. 1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Lemac의 독특한 비트와 개성적인 톤을 가진 래퍼들의 벌스가 제일 큰 매력 포인트를 담당했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이 두 가지는 있긴 합니다. 다만, 뭔가 희석된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은 Lemac을 중심으로 프로듀싱 능력이 있는 멤버들이 돌아가며 보태는 식의 합작으로 비트가 완성되었는데, 왠지 비트는 전보다 더 단순해진 느낌입니다. 특히 앨범 전반부의 경우는 심플한 붐뱁 루프가 비중을 많이 차지합니다. 제가 붐뱁을 좋아하긴 하지만, du7에서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후반부 "AURORA"나 "TAKOYAKI" 같은 게 구성이 좀 재밌긴 하지만, 여전히 처음의 충격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래퍼들입니다. 비트와 마찬가지로 전보다 단순하게 들리는 게 문제인데, 이건 뭐 제가 래퍼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위기를 전환시킬 요소로 생각했던 Bryn이 생각보다 나머지 크루 멤버들과 녹아들지 못하네요. 아무래도 du7은 엄밀히 따져 랩 중심의 크루이기 때문에 Bryn도 본인의 장기랄 수 있는 싱잉보다는 랩을 많이 했는데, 이게 문제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머지 멤버들은 한 가지씩 개성이 있는 톤을 가진데 비해 Bryn의 랩톤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고요.


 개성 강한 멤버들이 각 잡고 벌스를 뱉는 부분은 잠깐 Just Music의 "파급효과"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du7이기에 기대했던 신선함, 기발함이 왠지 이번 앨범에선 약하기만 하군요.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그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던 것인지, 향후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겠죠.



(10) 염따 - 살아숨셔3 (2020.11.28)


 2년 가까운 세월만에 이어지는 '살아숨셔'의 새로운 시리즈 "살아숨셔3". 비록 그동안 염따는 여러 장의 싱글, 피쳐링, 다모임, Raphouse on Air, 유튜브 등 그야말로 들어온 물에 세차게 노를 젓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왠지 컴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새 정규 앨범입니다. Daytona Entertainment의 첫 결과물이기도 하죠.


 "살아숨셔" 2와 3 사이에는 많은 시간과 그보다 더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염따의 음악이 그대로일 거라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당장 비트부터 더 빵빵해진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피쳐링진을 제외하면 크레딧에서 염따밖에 찾을 수 없던 지난 앨범과 달리 다양한 비트메이커를 초빙하여 프로듀싱을 꾸렸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전보다 다양한 바이브의 염따를 느낄 수 있지만, 선공개였던 "BENTLEY 1.5"를 비롯해 아직 여러 곡이 염따 프로듀싱이기에 본인의 취향도 조금씩 바뀌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염따 본인의 싱잉 랩은 기존의 색깔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raw'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쥐어짜는 듯한 발성과 안정과 불안정을 넘나드는 바이브레이션이 염따 톤의 큰 색깔이며, 이는 보존을 넘어 어떤 면에서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아야" "그녀와 나의 느와르" 등에서 이 스타일을 제일 찐하게 느낄 수 있는데, 느낌따라 발음과 음정도 마음껏 뭉개는 이 창법이 염따 특유의 '밑바닥'(?) 바이브를 잘 담아내긴 하지만, 개인 취향에서는 거부감이 좀 들더군요. 예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이번 앨범이 특히 좀 셉니다. 약간 강한 향취를 가진 향료 같은 느낌이랄까요.


 분명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는 앨범입니다. 프리스타일로 작업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개성적인 가사 속 상황 묘사 (물론 또 어떤 부분은 프리스타일이 맞구나... 싶긴 한데;)와 부르기 편안한 음역대를 고려하지 않는듯 마음대로 짜가는 멜로디 라인은 염따의 캐릭터와 잘 어울립니다. 앨범들이 보통 후반부에 분위기를 가라앉히는데 비해, "존시나" "Daytona" 같은 스웩 있는 하드 넘버를 뒤쪽에 위치시킨 것도 인상적이었고, 성공에 비해 클리셰적인 스웩과 표현 (이를테면 'ice' 관련 펀치라인)에 매몰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3분이 넘는 곡이 얼마 없고 굵직한 서사가 없어 정규 (라는 타이틀이 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한다지만) 치고 무게감이 덜한 점과 위에서 언급했던 호불호 포인트가 걸리지만, 여러모로 '염따다운' 앨범입니다. 과거의 작품들과 비교하며 변했다는 평도 있는 거 같지만, 그건 이제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렸죠. 현재의 염따를 알기엔 딱 좋은 앨범, "살아숨셔3"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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