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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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23:20:16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날씨가 춥네요. 아침에 밖에 나가기 무척 짜증... 건강 조심합시다 여러분.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B-Free - FREE THE BEAST (2020.11.15)


 안 그래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신작 발매 직전까지 Cohort의 실태를 확인시켜주며 좌충우돌이 많았던 "FREE THE BEAST". 결국 Keith Ape는 빠졌지만 그래도 18곡이라는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하였습니다.


 "FREE THE BEAST"는 여러모로 전작 "FREE FROM HELL"의 확장판 같은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데는 거칠고 음산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로파이한 프로덕션과 특정하지 않은 상대를 향해 죽일듯이 분노를 쏟아내는 B-Free의 랩이 두 가지 축으로 작용합니다. 대충 "천국 (Skit)"을 경계로 후반부는 조금 부드러운 곡들도 있지만, 이 스킷 자체가 2/3 지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런 야생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FREE THE BEAST"의 무드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B-Free의 사운드는 여전합니다. 오히려 그가 의도한 분위기와 어울려 무르익었달까요. 이 사운드라는 것은 그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전곡 트랙의 비트와 그의 특유의 플로우를 둘 다 해당됩니다. 둘 다 단순하지만 두꺼운 그루브가 있고 패턴화된 반복 속에서 리스너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죠.


 이런 특징들이 B-Free의 트레이드마크이고 매력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은 그것이 제일 단점으로 생각된 앨범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열성 팬이 아닌 제가 그의 여러 앨범에서 계속 이런 패턴으로 듣다보니 질려가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본작의 전반부 트랙에서 목소리를 긁거나 질러대면서 그루브를 자아내는 데 큰 몫을 하였던 그의 톤이나 여유로움이 대거 축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B-Free는 곡을 녹음할 때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때문인지 중간중간 숨차하는 부분이 들리더군요. 이게 분위기에 보탬이 될지 방해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중해서 들을 땐 한 번씩 거슬리긴 했습니다. 


 그래도 18곡이라는 큰 볼륨을 생각해보면, 생각만큼 그리 단조롭지 않았다고 얘기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됐든 리스너를 몰입시켜 곡의 흐름을 타게 하는 능력은 탁월한 거 같습니다. (추측컨대 이런저런 익히 잘 아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게) 전작부터 분노에 찬 곡들을 쏟아내고 있는 B-Free는 이번 앨범을 "설계"라는 곡으로 끝맺는데, 모든 분노를 거치고 나와 평화를 맞이한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뒤에 길게 이어지는 비트의 여운이 좋더군요). 과연 그의 다음 작품은 "설계"의 무드를 이어갈지, 아니면 다시 BEAST가 되어 돌아올지... 참 구설수가 많다보니 애정은 안 가는데, 관심을 끊을 순 없으니 당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네요(?)ㅋㅋ



(2) Lil Poet - KIMS (2020.11.16)


 Friemilli 멤버들은 랩 스타일에서 뭔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탁 트인 발성과 마디를 채우는 방식, 톤 색깔 등이 꽤나 비슷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서 KOREANGROOVE는 싱잉 랩 쪽으로 조금 더 발전했다면, Lil Poet은 순수 랩 (특히 올드 스쿨 바이브의)을 좀 더 판 케이스입니다 (부현석은 양쪽 다...). 그리고 꽤나 오랜만에 Lil Poet의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번 앨범엔 역시나 노원 지역에 대한 shout-out과 형제애에 대한 얘기가 주로 펼쳐집니다. Friemilli 멤버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지만 저는 그들의 추억을 꽤 생생하게 살려내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생활 밀착형의 가사가 마음에 들더군요. 랩은 여전히 부현석을 연상시키지만, 오랜만에 보는만큼 Lil Poet의 랩에도 독자적인 변화는 있었습니다. 정박에 깔끔한 랩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박자를 좀 더 자유롭게 타려고 노력한 것이 들립니다. 이에 따라 발음도 전에 비해 덜 딱딱해지고, 약간의 파열음이나 새는 부분을 살리거나 의도적으로 만든 듯합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제 그냥 멤버들끼리 서로 비슷하다고 하는 건 너무 생각 없는 비난 같기도 하네요.


 다만 이런 새로운 스타일이 아직은 입에 익은 거 같지 않습니다. 결국 자유로운 리듬감도 그루브 있게 비트를 타기 위한 목적이라면, 어떤 부분에서는 그저 박자를 저는 것처럼 어색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발음 부분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물론 그가 싱잉 랩이 처음은 아니지만 "Tychus Findlay" 같은 곡의 후렴은 Lil Poet의 싱잉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들립니다. 이외에도, 앞부분은 비교적 길이가 짧은 심플한 랩 트랙이 있어 무게감이 부족한 반면, 뒷부분은 진중하고 가라앉은 곡으로 두었는데 톤 조절은 전반과 동일하여 아주 살짝 괴리가 느껴지는 등, 전체적으로 투박한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머지 멤버들과 차별화의 방향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래퍼라도 성공을 위해선 자기만의 매력은 필요하니까요. 다만 아직은 이 변화가 본인 몸에도 완전히 배어있진 않은 거 같습니다. 자신의 의도한 대로의 결과물이 나오려면 좀 더 새로운 스타일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한 거 같네요 - 는 리스너의 망상이라면 죄송합니다...


 사족으로, 믹싱/마스터링을 절반은 KOREANGROOVE, 절반은 Brasco가 해주었습니다 (그것도 트랙 순도 아니고 거의 번갈아에 가깝게). 이게 감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재밌어서 언급해봅니다.



(3) Alt - 월요일에 만든 앨범 (2020.11.16)


 "월요일에 만든 앨범"은 요일 감각 없는 생활 패턴 속에 일하는 친구에게 커피 마시자고 했다가 월요일인 걸 깨달은 데서 시작된 앨범이라 합니다. 이 얘기는 첫 트랙 "민성 커피ㄱ?"에 고스란히 들어가있죠. Alt는 항상 유머러스할 정도로 일상적인 얘기를 (지나치게?) 편하게 풀어왔던 래퍼였고, 비록 그 일화에서 유래한 이번 앨범의 무드는 다소 진중하고 가라앉은 느낌은 있지만 편안함은 여전합니다. 전혀 꼬이거나 복잡하지 않은 가사와 특유의 늘어지는 톤 덕분에 그저 잠깐 썰을 듣고 마는 듯한 가벼운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앨범입니다. 어찌보면 최근 나왔던 "50PERCENT" "100PERCENT"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앨범이지만, Alt의 스타일이 불호인 사람이 아니라면 이번 EP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아주 가볍게 감상 가능할 것입니다.



(4) SYUNMAN - TRACE (2020.11.17)


 SYUNMAN은 익스페리멘탈 힙합 크루인 Grack Thany 소속 프로듀서입니다. 일전에 또 다른 소속 프로듀서 HNGIN의 앨범 ("MAD ZACH COUNTRYMAN")이 나왔대서 들어본 적 있는데, 듣고만 있는데 눈이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전자음이 난무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건 나의 길(?)이 아니다 느끼고 중간에 접었던 적이 있습니다. 본래 Grack Thany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었던만큼, 이번 앨범도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우연히 들은 "Deo Deo"가 예상을 뒤집어놔서 앨범을 찾아듣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그래서 보컬 앨범인줄 알았더라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로 분류되어있습니다. 뭐 신스가 쓰이긴 했고, 크레딧을 봐서는 리얼 밴드 세션을 안 썼을 수도 있겠지만, 으레 일렉트로니카란 단어를 봤을 때 떠오르는 음악과는 색이 많이 다릅니다. 색소폰, 기타 등 악기들의 질감이 잘 살아있는데다, 토크박스 및 기타 구성이 상당히 레트로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여기에 잼을 연상시키는 키보드와 드럼의 변주 등, 전체적으로는 펑크나 재즈에 더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Grack Thany에서의 SYUNMAN과 접점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막귀라 세세한 건 집어내지 못하는 것도 있고) 아예 별개로 두고 즐겼습니다. "Drunken Steps"의 정말 주정뱅이를 연상시키는 연주 같은 센스도 너무 재밌었습니다 (의도가 맞는지 몰라도, 보통 음악이 없는 트랙인 "Skit"을 퍼커션으로만 마무리 지은 것도 인상적이네요). Grack Thany의 음악도 나름 즐기던 차였지만, 이번 기회에 SYUNMAN이 음악을 전반적으로 잘 이해하는 프로듀서라는 걸 재확인하고 추후에 좀 더 귀기울여 듣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5) Coa White & Keloid - 60/144 (2020.11.18)


 신작을 체크하다 Coa White의 이름을 보았는데, 오랜만에 전자 소녀 앨범이 아니길래 들어보게 된 앨범. Keloid는 3년 전 믹스테입 "Careless"부터 활동을 시작한 트랩 래퍼이며 별다른 소속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사운드클라우드로 곡을 발표하는 거 같군요. 처음 들어보는 래퍼였는데, 전자음이 기본으로 섞인듯한 목소리와 영어와 한글을 오가면서 적는 독특한 가사 등, 완전하진 않지만 나름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듯했습니다.


 헌데 결론적으로 앨범은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우선 Coa White의 비트가 미니멀하고 단조로운 구성을 띄고 있는데 거기에 쓰인 신스와 Keloid의 목소리의 싱크가 상당하더군요. 듣는데 마치 비트와 한 덩어리가 된듯한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대로면 좋을 수 있는데, Keloid의 랩 전개가 무척이나 평탄해서 임팩트를 두는 곳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오토튠 멈블이라 딜리버리가 의도적으로 저하되어있기도 하지만, 비트와 한데 섞인듯 들리다보니, 처음 대충 들을 때는 모든 곡이 훅 없이 벌스 하나로 이루어진 줄 알았습니다.


 세세하게 들으면 악기 구성이나 Keloid의 랩 특징 같은게 귀에 들어오지만, 그러기 전에는 좀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앨범 길이가 원래 길이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어요. 사실 사운드클라우드의 곡들을 들어보면 그렇게 지루하게 랩하진 않던데... 제가 듣기엔 비트랑 합이 썩 좋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Coa White의 비트는 진성 트랩 (보통 자기 랩이 들어간) 앨범 때의 느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제 취향은 아니지만 워낙 이런 걸 많이 만들어왔으니 그저 본인의 음악을 했다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결국 "60/144"는 알쏭달쏭한 제목부터 흥미를 돋구었지만 듣고 나서는 거리감만 남아버린 앨범이 될 거 같습니다.



(6) Crucial Star - 이성과 감성 (2020.11.17)


 Crucial Star가 랩하우스에서 가을 앨범 전문이기 때문에 이 앨범을 냈다 라고 한 것처럼, "이성과 감성"은 Crucial Star의 전형적인 발라드 힙합 (부정적인 의미 없이 그냥 말 그대로)을 담은 앨범입니다. 새삼 생각해보면 Crucial Star의 톤은 꽤 저음인데 이게 대중성이 떨어질 수 있음에도, 그의 특유의 그윽한 느낌 내는데는 상당히 유용한 거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멜로디메이킹과 가성의 사용도 언급해야겠죠. 


 그의 여느 앨범처럼 "이성과 감성"은 발라드 느낌과 힙합 느낌에 걸쳐있습니다. "Tattoo" 같은 곡은 좀 더 랩적이긴 하지만 반대로 마지막 트랙 "이성과 감성"은 발라드라고 부르기 무리가 없을 정도죠. 이건 Crucial Star의 감성이 그만큼 진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트랙을 들으면서는 감상 기준이 랩이 아닌 발라드로 맞춰지면서 조금 깊이가 얕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뭐가 됐든 Crucial Star의 가을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게 들을 겁니다. 특히 이런 음악이 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도 최근에는 비교적 잘 안 비쳤기 때문에 팬이라면 반가워할 수 있을 것 같군요.



(7) IndEgo Aid - 자가격리패키지: Comma (2020.11.19)


 본작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ELP" - "EOP"로 시리즈를 이어가던 IndEgo Aid가 잠시 쉬어가는 외전의 의미로 낸 앨범입니다 (feat. 코로나 시국?). 그래서 트랙 수도 적고, 외계인 컨셉이 없지는 않지만 "E_P" 시리즈처럼 무게 있게 다뤄지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벼운 앨범이겠구나 싶은 예상을 "헤이 호"와 "Last Love Song"이 반겨줍니다.


 그러나 "Amazing"부터 분위기가 바뀝니다 - 바뀐 분위기는 '파랗던 머리를 까맣게 덮은' 본인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Sleeq과의 불미스러운 사건, 안 좋게 끝난 연애와 본인의 병력 등이 가사에 녹아나면서 한껏 다운되었던 앨범은, "파래"를 통해 회복을 거쳐 긍정적인 태도로 매듭 짓는 "끗"에 다다릅니다. 마지막 두 트랙에서 보여주는 자기 과시는 일반적인 힙합곡의 과시보다 훨씬 거창합니다. 이렇게 큰 낙차의 서사가 담겨있는 것만으로 이 앨범을 그냥 '쉬어가기'로 평가하고 말기는 찜찜합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각 무드에 맞춰 IndEgo Aid의 표현력과 은근한 곡들끼리의 연결고리 (예를 들어 "Amazing"의 분홍색 알약이 "파래"의 'pink 이젠 아냐'로 등장하는)도 눈여겨볼 거리입니다. 다만 이때문에 앞 두 트랙의 분위기와 별개가 되어버린 뒤의 네 트랙 (+보너스 트랙) 서사가 오히려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긴 하겠네요.


 특히 주목하고 싶은 건 IndEgo Aid의 단단해진 랩입니다. 지난 두 앨범에서 그의 랩 플로우는 독특하지만 뭔가 모르게 빈약하단 느낌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성이 한층 받쳐주면서 그런 아쉬움이 말끔하게 해소되었고, 자유자재로 바뀌는 톤을 곧이곧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트는 번외편에 걸맞게 "E_P" 시리즈에 비해서는 톤 다운이 되어있고, 이 때문에 목소리가 전보다 많이 전면으로 내세워진 느낌입니다 - 가끔은 일부 곡이 이것 때문에 좀 꺼칠한 느낌이 나서 살짝 둥글게 곡이 마감되었으면 좋았겠다 란 생각이 들긴 했네요.


 한 가지 또 흥미로운 건 아마 그의 커리어 사상 제일 대중적인 곡일 "Last Love Song"이 IndEgo Aid의 프로듀싱이라는 겁니다. 이 부분을 전 독특한 스타일이지만 대중적인 것과 일부러 거리를 두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마따나 '미디어 없인 의미가 없고 단지 심의를 우려하는' 것뿐이었던 듯합니다.


 "자가격리패키지: Comma"는 개인적으로 IndEgo Aid의 앨범 중 제일 만족스러운 앨범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E_P" 시리즈이겠지만, 고백컨대 제시한 세계관의 크기만큼 역량이 따라붙지 못할 때가 있었다 생각합니다 - "EOP" 때는 과감하고 폭 넓은 실험 정신으로 무장했지만, 이를테면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의 문제일 때가 있었던 거죠. 어쩌면 저의 만족도는 IndEgo Aid의 발전과 조금 소박해진 앨범 스케일이 맞물린 결과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균형은 다음 "E_P" 시리즈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특히 보너스 트랙 "고등어"에서 보여준 색이 어떤 식으로 뻗어나갈지 기다려보는 것도 나름 재밌겠군요.

 


(8) Young Jay - November 19th (2020.11.19)


 Young Jay는 이제 중견 래퍼에 비할만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Bizniz가 잠시 운영했던 AB$ALUTE MUSIC의 멤버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Rhydmeka나 Guerellaz 같은 크루 활동에서도 이름이 등장했었죠. 근 1-2년 사이 개인 활동은 뜸했지만 친한 뮤지션들 사이에서 엔지니어로 심심치 않게 이름이 등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November 19th"는 2019년 말 마지막으로 싱글을 낸 후, 1년 가까운 시간만에 발표한 EP입니다.


 꽤 오래 봐왔지만 솔직하게 Young Jay는 기억에 잘 남는 래퍼가 아니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지만 한 방을 갖지 못해 소위 '대세 래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수많은 래퍼 중 하나인 셈입니다 (일개 리스너가 나름 잘 지내고 있는 뮤지션을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게 무척 싫지만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생각이 이번 EP에서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랩, 비트메이킹, 엔지니어링 등 음악 전반으로 활동을 오래해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흠 잡기는 어렵습니다. 포인트를 줘야할 곳을 잘 알고, 듣는 사람이 질리지 않게 랩의 무게를 잘 조절했단 느낌입니다.


 그래서 곡 하나씩을 떼놓고 보면 들을만한 곡이란 인상이 남지만, 앨범 전체로 봤을 때 무게감이 너무 덜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무난무난한 곡들의 색깔도 그랬지만, 사실 짧은 길이의 인트로와 아웃트로 곡을 제외하면 세 곡 뿐인데다 금방 지나가버려서 앨범이 끝났을 때 벌써 끝났나 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 이것은 더 듣고 싶어하는 아쉬움과는 좀 달랐던 거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사이드에서 꾸준히 활동을 해왔고, 어찌 보면 그것이 본인의 메인이 된 상태이기에 이 EP 이후에 앨범이 꾸준히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래퍼 Young Jay의 존재감은 아직 아쉽지만 본인 커리어를 잘 구축해가는 뮤지션이기에 나쁜 생각 없이 감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9) Hash Swan - Drawing (2020.11.20)


 이 앨범은 Hash Swan의 입대 이후 발매된 앨범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작업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이며, 이런 배경 때문에 다소 부현석의 "FRONT LINE"이 연상되는 면이 있습니다. "FRONT LINE"은 아티스트가 확실한 컨셉과 큰 스케일을 가진 앨범을 제작하는 것과 대비되게 짧고 굵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 요약하여 보여준 전략이 먹혔던 앨범이었고, 이 부분은 "Drawing"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작 "Silence of the REM"은 전적으로 이모 힙합 쪽으로 방향을 잡고 만들어진 앨범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랩적으로 보여줘왔던 것들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지만, 뭐가 됐든 스타일을 불문하고 그의 음악의 틀이 지난 정규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완성된 듯합니다. 그 결과물은 "Drawing"에 담겨있어, 싱잉과 랩을 대략 반반 정도로 나누어 담아낸 본작의 Hash Swan 스타일은 전보다 탄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전작에 빠져있던 랩 때문에 아쉬웠던 이들에게 "Burj Khalifa"나 "Jason!" 같은 트랙은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특히 전작에서 분명한 궤도를 잡은 이모 싱잉 랩의 경우 Hash Swan 특유의 아련한 느낌이 더욱 물씬 풍겨납니다. 특히 세 곡씩 제공한 TOIL과 Midas P 비트가 본인들의 평소 작업물과도 느낌이 다르면서 탄탄하여 또 하나의 들을 거리를 제공해준 듯합니다. 워낙 극과 극을 오가는 트랙 구성 때문에 일관성 없는 트랙리스트라는 의견을 낼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요약 소개한 앨범이란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각 트랙이 갖춘 완성도 때문에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안 맞았던 부분이라면 Hash Swan 가사의 아리송함이 이번에 훨씬 더 해서 억지스럽게 느껴졌단 부분 정도겠습니다.


 "Drawing"은 길진 않지만 Hash Swan의 현 위치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들어있는 가성비 좋은 앨범입니다. 특히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본인의 색을 여실히 드러내줬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한동안 생길 공백을 앞두고 팬들이 기억하게 될 마지막 모습으로는 제일 좋지 않았나 싶네요.



(10) kitsyojii - SITCOM OF THE YEAR (2020.11.21)


 "SITCOM OF THE YEAR"는 kitsyojii가 쇼미더머니 시즌 9의 트리플 크루 미션의 탈락 직후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는 앨범입니다. 이처럼 분명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쇼미와 연관된 분명한 서사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이전 kitsyojii 앨범과는 결이 다른 걸 느낄 수 있습니다 (Joystick 시절 냈던 "grab"도 쇼미 탈락과 연관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재밌네요). 때문에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그가 밀어왔던 '거지 왕초' 컨셉은 워낙에 픽션이었기에, 그 과대 망상적인 설정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죠. 얘기만 들으면 거의 온 세상 돈을 다 빼쓰는 듯했던 캐릭터가 여기에서는 음악에 들인 노력에 인정을 받지 못해 답답해하고 열등감에 휩싸이는 래퍼가 됩니다.


 사실 이 괴리감이 끝까지 사라지진 않지만, 반대로 kitsyojii 식 솔직과감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드러내는 속내는 상당히 독합니다. 특히 "새벽 네 시" 같은 감성적인 곡을 kitsyojii 스타일로 풀어낸 게 상당히 특이합니다. 대개는 우울에 잠겨 울적하게 풀어낼 곡들이 그의 입을 빌려 거칠고 씨니컬하게 변모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까기에 망설임이 없는 모습은 그야말로 '시트콤'입니다. 이 표현력은 본작에 큰 힘을 실어주며, kitsyojii의 필력을 다른 방향에서 재확인시켜 줍니다.


 kitsyojii의 랩은 원래 꽤 전달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지난 "Buck Foys" 때부터 발음을 많이 흘리는 쪽으로 변화 중입니다. 이 부분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튼 워낙 멜로디 메이킹과 훅 메이킹 능력이 출중해서 으레 멈블을 듣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이번엔 곡 주제가 주제니만큼 이 스타일로 분노 섞인 랩도 나오기 때문에 더 색달랐던 거 같습니다. 그와 자주 콜라보를 했던 iCOS (모두 다 알다시피 Fredi Casso...)가 제공한 전곡 비트는 기대한만큼 값어치를 해줍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된 앨범은 끝에 자신을 독려하거나 조금이라도 희망을 짜내는 긍정의 방향으로 매듭을 짓기 마련인데, 본작은 악에 받친 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결말까지, 평소와 다른 소재로 얘기를 푸는 자리였음에도 kitsyojii스러운 부분을 잃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듭니다. 쇼미 결과는 이견은 없습니다 - 실제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뮤지션이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즉흥적으로 비트를 주는데다 오토튠을 음원 미션 가야 걸 수 있는 쇼미는 오토튠 싱잉 래퍼들에게는 불리한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는 올해 kitsyojii의 허슬을 보면서 거의 중견 래퍼급의 아우라를 느껴오고 있었는데 본인은 아직 인정 받지 못하고 묻힌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게 좀 슬프네요. 내년에는 kitsyojii의 뻔뻔스러운 자기 과시에 더 많은 힘이 실리기를 기원합니다.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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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2-01 00:02:23

리뷰글이지만 항상 얻어가는 정보가 많습니다...비프리의 녹음 방식 같은...!

WR
2020-12-02 03:01:09

아주 예전 하이라이트 시절에 소리헤다 형한테 들은거라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앨범 들어보면 아직 그러는거 맞을거 같아요

2020-12-02 23:02:24

요새 국힙 신보 체크를 잘 못해서.. 많이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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