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릉의 이로한이 꾸었던 꿈의 서울, Rohann의 정규 1집 <NEV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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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18:44:07

 * 이 글은 앨범이 나왔던 시기인 5월 26일에 처음 작성됐습니다 :)

 

 <고등래퍼 2>에 등장한 장첸 같은 이미지의 한 소년. 강릉과 마포구를 외치며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결국 그는 준우승을 차지해냈다. 예선에서의 'Drrr Kack-Kack, Bang Bang'은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으며 결승전에서 불렀던 '이로한'은 그가 만들어낼 서사의 시발점이 됐다. 사실 이로한이라는 아티스트를 <고등래퍼 2>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강릉 제일고등학교를 다닐 때 옆 학교를 다녔고, 때로는 친구가 그의 노래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그가 자퇴를 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티비에 등장했을 때 놀라움과 응원하는 마음이 함께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방송을 보았다면 누구든지 이로한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Rohann의 정규 1집 <NEVERLAND>에서는 상경과 티비 출연,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담겼다. 앨범의 제목인 네버랜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피터팬> 원작에 등장하는 네버랜드를 말한다. '피터팬'에서의 네버랜드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섬이다. 어른들은 네버랜드를 부정하고 믿지 않지만 어린아이들은 그곳을 동경하고 상상한다. 물론 마냥 순수한 섬은 아니다. 피터팬이 정한 서열에 따르기도 하고, 권력과 지배를 상징하는 후크 선장이 살기도 한다. 또 어른이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고 보호막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번 앨범에서 이로한은 네버랜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다. 실제로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앨범을 듣기 전 보아야 할 스토리 4가지가 업로드되어 있다. 그에게 네버랜드는 서울이었다. 어른이 되기 전, 청소년일 때는 서울을 갈망했고 피터팬은 우상과도 같은 래퍼들이었다. 피터팬을 따라 서울로 가지만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피터팬은 목걸이와 보석을 갖고 있었지만 이로한에게 주어진 도금된 보석과 구제 패션. 방송을 통해 얻은 값진 삶과 영원함을 원하는 마음까지 앨범에 담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는 그렇게 네버랜드를 떠난다.   


"Neverland 내 꿈의 도시, 벗겨냈던 얼굴에 입힌 숯 때란 도금

피터팬들은 목걸이를 내게, 내 짭퉁 보기 싫어서 소등"


- Rohann 정규 1집 <NEVERLAND> 1번 트랙 '도금' 중


01. 도금 (Feat. DJ Wreckx)

 

네버랜드를 향한 이로한에게 주어졌던 시련들이 나열된다. 래퍼들의 멋진 목걸이를 동경해 서울로 왔지만 그에게는 구제와 값싼 도금 목걸이뿐이었다. 고깃집 알바를 했고 조금 돈을 벌어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피터팬은 그에게 "야 내 손 잡아,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줄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터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왔던 그의 삶은 '망상'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네버랜드를 향할 수 없었던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집을 책임져야 할 장남의 어깨는 무거웠고 학교에서 수학공식을 배우느니 랩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결국 'Drop Out', 그는 자퇴를 결심했고 도금을 벗겨 서울로 향한다.


02. Seoul Dream (Interlude)


말 그대로 꿈의 서울을 암시하는 듯한 간주가 이어진다. 'Seoul Dream'이라는 표현만이 이 가사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곡에 막바지에는 <고등래퍼 2>에서 방송되었던 방송음이 삽입되어 있다. 꿈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해 방송에 출연한 '배연서'의 모습이 그려진다. 강원도 강릉에서 상경한지 두 달이 되었다는 그는 두려움이 많았지만 실력으로 말하겠다는 당찬 모습이다. "Webster B, G city drop the beat BOMB"

 

03. Webster B


 두 번째 곡은 방송에 갓 출연한 웹스터 비를 암시하며 끝났다. 그리고 세 번째 곡에서는 제목부터 'Webster B'라고 되어 있다. 그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는 이름이 배연서였고 랩 네임은 웹스터 비였다. 이후 이름은 이로한이라고 개명되었고 VMC에 입사하며 랩 네임도 Rohann으로 바꿨다. 웹스터 비 시절의 그가 보여줬던 붐뱁 장르는 한동안 많은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기억을 반증하듯 이번 노래는 완전한 붐뱁으로 구성됐다. 노래는 전체적으로 앨범을 기다린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압박감, 그리고 성공과 강릉 출신임이 강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박감은 '앨범이라는 담보가 없는 무허가 대출 상품이 악재'라는 가사로 대변되고 있다. 한편 성공을 이루고 고속도로에 자신의 얼굴을 박아 넣은, 강릉 출신의 연예인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낸다.

"GNG 고속도로에 내 얼굴이, GNG 강릉 출신의 연예인

B came from GNG block, now stand on this Seoul homie"

 

- Rohann 정규 1집 <NEVERLAND> 3번 트랙 'Webster B' 중


04. 시소 (Feat. 쿤타)


 팅커벨을 쫓아왔지만 알고 보니 불나방 같은 존재였다. 불나방은 무모한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택이란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행위다. 그는 멋과 돈 사이에서 고민하고 돈과 행복의 괴리감을 느낀다. 이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이를 '내 이상 그리고 현실 사이 금이 가지만'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래퍼가 부자일 수 없는 구조임을 깨달았으며 돈다발보다 낭만을 쫓게 됐다. 그렇다고 래퍼로서의 삶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힘들어도 쉴 생각이 없고 그에게는 가족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이 남아 있다. 천국처럼 느껴지는 순간 거울 속에는 악마가 있는 곳, 여기는 꿈꾸던 도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05. Take Five (Feat. ASH ISLAND)


 비교적 가장 가벼운 곡처럼 느껴진다. '앨범은 언제 나오냐'라는 질문에 머리가 아파지는 그의 가벼운 일상을 담았다. 늘 첫 앨범으로 '명반'을 고집해왔던 이로한에게 앨범 발매 재촉은 압박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여기에 친구들은 멋진 대학생활을 하고, 고등학교 후배가 자신을 따라 자퇴한 상황에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걱정보다 기대가 큰 이 상황 자체가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날이 서 있다. 빠르게 성공한 이로한을 보며 배가 아픈 이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향해 증명해야 할 것이 많다. 또 티비로 보인 자신의 이미지와 계속되는 고민, 이것들은 그의 소소한 일상들이지만 소소하지 않다. 사실 Take Five의 뜻은 5개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잠깐 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잠시 쉬고 일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06. Whee (Feat. Leellamarz)


 앞선 'Take Five'와 마찬가지로 곡이 가벼운 편이다. 그러나 가사를 보면 이로한이 그리 가벼운 상태는 아니다. Whee라는 단어는 '와아'처럼 흥분되고 신이 났음을 표현한다. 벌스 1에서는 나아가던 도중 잠시 멈추고 세상을 돌아보고 있다. 똑같은 서울에 지쳤고 처음 떠나본 해외여행, 루블이라는 표현에서 러시아를 짐작할 수 있다. 처음 보는 거리를 즐기며 다녔던 그 때로부터 정신과를 끊고 우울감은 줄었다. 여행이 주는 행복감은 그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피처링을 한 릴러말즈는 자신이 이제 피터팬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이로한과 릴러말즈는 근 몇 년간 성공을 통해 이름 있는 래퍼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 벌스에서 이로한은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초록 불에도 잠시 멈춰 설 줄 알게 됐고 걸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술도 줄이고 돈에 얽매였던 과거를 잊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don't worry just living life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날 어른이 되게 하네"

 

- Rohann 정규 1집 <NEVERLAND> 6번 트랙 'Whee' 중

 

07. 변하지 않아 (Feat. HAON, CHANGMO)


 돈과 자신을 꽉 묶어두었던 끈을 태웠다. 얽매이지 않는 법도 배웠다. 이제는 돈을 벌어도, 돈이 줄어도 변하지 않을 자신의 모습을 다짐한다. 나이 열아홉에 고등래퍼를 통해 꿈꾸던 세상에 다가갔지만 여전히 컵라면을 먹고 햇반을 사 먹는 평범한 소년임을 강조했다. 관두려 했던 시절에 친구들의 칭찬이 너무 고마웠고 평생 갚을 때까지 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두 번째 벌스에서는 김하온이 이로한과의 추억을 되짚으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김하온은 헷갈려 하며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군지가'라고 되묻는다. 정말 변하는 건 없을까, 아니면 모든 건 변해갈까. 그는 '내가 거지여도 과연 우린 친구일까'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마지막 벌스에서는 창모의 넌지시 던지는 충고가 이어진다. 좋은 차가 고철로 변하듯 변하는 게 많지만 늘 변하지 않겠다고 되뇌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많은 것은 변했지만 창모에게 변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그의 추억과 음악, 가족, 친구들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살다 보면 미움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남는다. 창모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한 번 더 이로한은 다짐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돈이 줄어들어도 변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08. Lily


 Lily은 한국어로 백합이다. 수많은 악플과 그에 시달린 사람들을 애도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동시에 펼쳐내고 있다. 맨 처음 인트로에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꿈이 뭐예요?', '꿈을 이루면 얻고 싶은 것은?', '그럼 다 얻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삶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답변이 주어진다. 이로한에게 더 이상 어린 모습은 없다. 이타적이었던 소년 이로한은 사회 안에 찌들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변했다며 손가락질하고 부정한다.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고, 무언가 사각지대가 있다고 메꾸고 싶어 하지만 이 세상에는 존중이 죽었다. 우리는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아픔을 겪었던 이들은 아픔을 밖에다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악마들은 누군가를 죽여버렸다. 노력을 하지 않은 자들이 키보드로 일상을 부순 것은 노력이었을까. 불편한 진실이 가사로부터 드러나고 있다.


09. Long Live


 이로한이 앨범을 만들고 나서 타이틀이 아니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곡이다. 그는 이 곡에서 가창력으로 후렴구를 직접 불렀다. 'Long Live', 오래 살길 바라는 이로한은 영원함을 꿈꾼다. 상상했던 삶이 현실이 됐지만 계속 그 상상 속에 머물고 싶어 한다. 돈을 벌고 행복을 사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다. 친구들도 잘 되길 바라고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며 돈을 벌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남길 바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의 주변 모든 것들이 저 멀리 닿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꿈꾸는 이유, 사랑하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

갖가지 이유를 붙일 이유는 틀린 것에 대한 두려움

영원한 건 없다는군 그래서 두 손 모아 빌었군

Long Live everything"


- Rohann 정규 1집 <NEVERLAND> 9번 트랙 'Long Live' 중 

                                

10. Neverland Ends (Outro)


걷고 또 걸어 결국 네버랜드에서의 삶이 끝났다. 이로한에게도 어른이라는 시간이 다가왔다. 꿈을 찾아준다는 무언가의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다신 발을 들이지 않겠다며 죽어나간 과거의 자신을 말하는 그의 외침이 이어진다. 칼에 찔려 솟구친 붉은 피에는 돈이 있다. 자신을 깎아가면서까지 돈을 좇았던 과거가 청산되는 모습이다. 그렇게 꿈을 잃었다. 웃고 있는 어린 이로한의 숨통은 끊어졌다. 잔혹한 세상의 실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도 않다.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긴 꿈이었다. 모든 걸 기억하길 바라고, 모든 것이 기억되길 바라며 네버랜드에 외쳐지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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