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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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23:20:41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 걸 보니까 2020년이 끝나가나 봅니다... 흑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KEEBOMB - Rich in Love (2020.9.22)


 KEEBOMB은 2012년 믹스테입을 시작으로 커리어를 쌓아올린 래퍼입니다. 인지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8년의 기간 동안 여러 싱글과 EP를 발표하였고 (아직 정규 앨범은 없군요), "Rich in Love"는 다섯 번째로 발표된 EP입니다. 참고로 7곡 중 4곡은 싱글로 선공개된 바 있군요. 개인적으로, 이름은 상당히 낯이 익지만 제대로 듣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듣게 된 계기는 pH-1 네이버 나우 라디오 "Soul Food" 게스트, 힙합엘이 게시판에 올린 글 등 몇 가지가 있었죠.


 실은 어떤 곡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번 앨범 전에도 한두 곡 정도 들어본 적은 있었습니다. 당시 인상은 '가요 같다'였습니다 -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팝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Rich in Love"에 대한 감상은 다르지만, 또 근본적으로는 많이 다르진 않습니다. 싱잉 랩 스타일로 편하게 전개되는 멜로디와 비트, 사랑을 주제로 일상적인 단어로 풀어놓는 가사 등, 팝 코드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게 아니라면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듣기 편한 노래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런 장르의 아티스트 대부분이 그렇듯 감각적인 묘사 능력이 그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장르의 아티스트 대부분이 그렇듯, 다른 이들과 비슷비슷한 점이 좀 많게 느껴집니다. 이번에 들으면서 Trade L의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 커리어의 길이 부분에서 몇 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이 없는 연상이지만 어쨌든 들은 순서 때문에... H1GHR 컴필에서 Trade L이 야마는 있지만 확연한 개성은 없는 상태였던 걸 기억해보면 KEEBOMB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일상적인 언어로 푼 가사는 역으로 얘기하면 평범하게 적혔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Fyah" "어쩌면 전부다 돈"은 그런 사랑 노래 스타일에서 벗어난 시도를 했던 두 곡인데, 지향하는 파워에 못 미치고 김새게 하는 밋밋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연륜이 있는 래퍼로써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편하게 만든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사소한 점이지만, 곡이 일반적인 완성된 구조, 즉 2-3번 반복되어 돌아온 훅으로 곡을 마무리 짓지 않고 벌스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 좀 신기하달지,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KEEBOMB의 것이 무엇이라 하기 어려운게 제일 단점이지 않을까요. 앨범 하나로 내리는 섣부른 결단이지만, 제 감상은 그렇습니다.



(2) Omega Sapien - Garlic (2020.9.22)


 현 Balming Tiger의 막내이자 프론트맨인 Omega Sapien의 첫 EP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Balming Tiger의 멤버라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추측할 수 있으며, 대개는 실제와도 들어맞습니다. 대표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로덕션과 기이한 뮤직비디오, 그리고 그 두 가지에 어울리는 내용의 랩이 있겠죠. Omega Sapien은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을 (픽션인지 아닌지 몰라도) 배경으로 영어로 랩을 하는 한국인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더욱 독특한 풍미를 자아내는 캐릭터입니다.


 기본적으로 Balming Tiger에서 나오는 앨범은 아티스트 한 명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프로덕션과 뮤직비디오가 아티스트의 세계를 펼치는데 매우 중요하며, 항상 기여도가 래퍼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았습니다. 이번에 온전히 사운드, 그리고 랩에 집중해서 들어보면서 생각보다 Omega Sapien의 보이스 톤이나 플로우가 평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앨범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이를 멋지게 감싸주는 프로덕션과, 변화무쌍한 곡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Omega Sapien의 랩이 이루는 시너지 덕분입니다. 더 나아가 "Chu Chu"처럼 랩이 악기처럼 사방팔방으로 써먹히는 걸 보는 재미도 있어요.


 앨범 소개글엔 별 말이 없지만 선공개 싱글을 보면 가사 하나하나가 나름 뚜렷한 주제를 갖고 있었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라 전달력이 떨어지긴 할 테지만) 내용을 캐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 highgel 님이 힙플/엘이 게시판에서 언급한 'Dbo 스타일의 은유'와 닮아있는 거 같아요. 때문에 "Fireworks" "Serenade for Mrs. Jeon" 같은 트랙은 비슷한 광기를 띄고 있지만 뜯어보면 꽤 감성적이라, 이런 이면적인 걸 보는 재미도 있고요. 아무튼 의외성이 가득한 앨범입니다. 들으면서 'Lil Cherry와 XXX 중간의 어디쯤'이란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이 표현에 공감하실지 몰라도, 어쨌든 Balming Tiger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던 앨범이지 않은가 합니다.



(3) Noah1Luv - PAST PRESENT FUTURE (2020.9.24)


 원래 DJ NOAH였던 그가 NOAH1LUV로 이름을 바꾸고 새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전작 "DRIVE"처럼 이번에도 유수의 피쳐링진을 대동한 컴필레이션 스타일의 프로듀싱 앨범입니다. 전작처럼 전형적인 붐뱁의 색깔을 띄고 있으며, 군데군데 등장하는 재지한 샘플은 그가 Kumapark의 멤버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전작처럼, 2000년대의 한국 힙합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취향 저격이 될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 "PEACE" 같은 업템포의 곡들이 분위기를 환기해줬던 반면 이번에는 느릿한 곡들이 거의 전곡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들 나름 잘 해주었지만 청각적 쾌감을 안기는 곡은 별로 없어 전작보다는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 "Next Mission"의 원곡과 이번에 실린 리믹스의 대비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래도 워낙에 세대와 인지도를 넘나드는 다양한 참여진들이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신기한 조합도 많이 나와서, 이를 찾아듣는 재미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다 할 순간이 많진 않았지만, Quinsha라는 래퍼가 기억에 남네요. 세 곡이나 참여하면서 본인 앨범보다 더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준 듯한 Jambino도 눈여겨볼 참여진입니다.


 PS.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이름이 모두 대문자로 NOAH1LUV로 되어있지만, 앨범 커버에는 Noah1Luv로 되어있고, 크레딧을 열어보면 "NoAH1LuV"로 되어있습니다. 별로 표기가 중요한 건 아닌가 봅니다(?). 



(4) CLICO - READY TO HIGH (2020.9.22)


 CLICO는 2018년부터 작업물을 내기 시작한 비트메이커입니다. 처음에는 Perry Clico란 이름으로, Sandy (하선호)의 "Teen Swag"는 그의 초창기 대표작이기도 하죠. 올해 초부터 CLICO로 이름을 바꿔 앨범을 발표 중이며, "READY TO HIGH"는 그의 커리어에서 첫 정규 앨범입니다.


 몇 가지 요소들을 통해 CLICO가 야망이 있는 비트메이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ADY TO HIGH"에는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이 포진되어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골든 에라 붐뱁을 표방하는 듯하다, 금방 트랩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테크노 바이브를 가진 보컬 트랙들이 등장합니다. 참여진에 낯익은 이름은 없지만 트랙 분위기에 맞춰 다양한 피쳐링진을 활용하여 곡을 장식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에 일관된 퀄리티로, 무난하게 비트를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


 다만 얼핏 느꼈던 야망에 비해선 설익은 부분이 많습니다. 원체 다양한 스펙트럼을 전부 관통하는 스타일을 세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앨범만 들어서는, 중심축이 될만한 CLICO의 뭔가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BLESS"는 Laptopboyboy의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 뭐 트랩 씬에선 꽤 흔한 작법이 되긴 했지만. 이런 어중간한 곡들이 모여있는 것에 비해, 트랙 순 감상에 대한 고려는 조금 아쉽습니다. 빡센 랩이 있는 전반부와, 여성 보컬 트랙이 등장하는 후반부가 상당히 괴리가 있어요. 그러다 마지막 세 곡은 또 다른 분위기로 등장하는데 뭔가 사족입니다. 이게 차라리 중반부로 왔으면 부드럽지 않았을까 싶네요. 더불어 랩 트랙에 비해 보컬 트랙은 너무 한 분위기로 (상큼한 여성 보컬?) 가버렸단 인상도 있고요.


 CLICO는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언급하는게 옳나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여 참여진들의 퍼포먼스도 감상을 해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 래퍼들 중에는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Jua, JOo는 좀 기억에 남는데 그저 여성 래퍼란 이유로 그런게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단체곡인 "BACK ON THE GAME"은 전부 비슷한 스타일로 뭉쳐있어 총체적 난국입니다. 보컬의 경우는 호불호가 덜하니 나을 수 있으나, 이번에는 사운드 후작업이 문제입니다. 뭐랄까, 보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있지가 않아요 - 전문가가 아니니 콕 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비트랑 많이 겉돌고, 튜닝이 섬세하게 안 되어있달까요.


 마지막 트랙의 Outro까지도 뭔가를 이뤄내고자 하는 포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목표에 맞추기 위해 보완해야할 것들이 적잖이 보입니다. 작업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즐거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즐거움을 기억하며 다음에는 조금 더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5) 죠지 & Cosmic Boy - Love in Summer (2020.9.23)


 우주비행 크루에 속한 두 멤버의 콜라보 앨범이 깜짝 발표되었습니다. 여름 앨범을 표방하고 나온만큼 여름과 관련된 키워드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듣기 전에 딩고 채널에서 "surf" 라이브를 먼저 보았는데, 이때문에 유쾌한 앨범일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실제 내용물은 분명 여름 앨범이 맞긴 한데 쓸쓸한 느낌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앨범 전체의 맥락에 놓고 듣다보니 "surf"도 그랬습니다). 아마 죠지의 부드러운 창법과 Cosmic Boy의 스트링이 그런 힘을 발휘하는 것 같군요. 특히 대놓고 여름이 아닌(?) "그래왔던것처럼"에서 방점을 찍으면서 앨범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여운이 짙었던 것 같습니다. 이 여운이 상당히 가슴 떨리게 만드는 게 있어, 짧지만 제 머리에 은근 남는 앨범, "Love in Summer"였습니다.



(6) Rakon - Rock On Blink (2020.9.24)


 표현이 적절한가 모르겠습니다만, "Rock on 24" 앨범을 통해 Rakon은 단순한 트랩 래퍼에서 감정 표현이 탁월한 이모 힙합 아티스트로 진화하였다 생각합니다. "Rock On Blink"는 그런 성취를 기반으로 크진 않아도 분명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방금 언급한 감정 표현 능력은 이번에도 큰 무기입니다. 이는 가사로도, 살짝 탁한 목소리 톤으로도, 지를 땐 시원하게 고음을 질렀다가도 차분하게 깔고 갈 때는 깔고 가는 멜로디 운용에서도 전부 드러납니다. 특히 넓은 음역대 덕분에 한국 이모 힙합에서 흔하게 맞닥뜨리는 뻔한 멜로디의 문제에 빠지지 않고, "변덕" 같은 변주가 있는 비트나 "하루가"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비트에도 자신을 맞출 줄 알며, 가사는 표현은 물론 라임도 꽤나 치밀하게 짜여있어 작사 능력에 대해서도 인정하게 만듭니다.


 세상에 완벽한 앨범은 없듯 "Rock On Blink"도 아쉬운 순간은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다른 트랙에 비해 클리셰적으로 뽑혔다 느껴지는 4번 트랙 "감정노동"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Intro"가 중간에 있는 이유는 감이 잘 안 오더군요 - 그 뒤로 새로운 파트가 시작되는 걸까요? 그러기엔 앨범 크기도 작고, 눈에 띄게 분위기가 나눠지지도 않는 거 같은데 말이죠. 뭐가 됐든 Rakon의 존재 가치는 한국 이모 트랩씬에서 점점 커지고 있고, 본작은 그 과정에서 아주 적절하게 본인의 능력을 짚어준 앨범 같습니다. 정규 앨범 같은 좀 더 큰 프로젝트에선 어떨지 어서 보고 싶군요.



(7) Junoflo - 222:AM (2020.9.25)


 Feel Ghood Music과의 계약이 종료된 후로 Junoflo는 아마도 미국으로 돌아가 본래 하던 음악을 이어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여러 싱글 중에는 한글 랩도 조금 있었지만, "222:AM"은 '미국 래퍼' Junoflo의 앨범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모든 가사가 영어라는 점이죠.


 제가 생각하는 미국 힙합 앨범과 한국 힙합 앨범의 차이를 이따금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미국 앨범은 같은 시기에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스타일의 곡들을 순전히 음악적으로만 나열하는 식인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관심이 많아 서사 구조를 짜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 한국 앨범과의 차이랄까요. 이로써 부차적으로 생기는 특징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트랙 수 외에 자연스럽게 갖는 통일성입니다.


 "222:AM"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Feel Ghood Music 소속일 때 나온 "Statues"는 감성적인 곡도 있고, 센 곡도 있고, 가요스러운 곡도 있었습니다. 반면 "222:AM"은 현재의 Junoflo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일지 가늠이 갈 정도로 한 가지 스타일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붙어있습니다. 앨범은 통일성을 떠나 매우 안정적입니다. Junoflo는 더 이상 본인에게 어려웠을 한글 랩을 노력할 필요 없이 영어로 모든 걸 뱉어냈고, 이 상태에서 구사하는 그의 싱잉 랩은 싱잉이란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곡 전체에 녹아있습니다. 무리하게 스킬을 구사한 부분은 없지만 랩을 잘 한다는 건 몇 마디만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려하게 모든게 흘러갑니다 - 다만 "Bent"에서의 톤은 쬐끔 부담스럽긴 했네요.


 영어 앨범인 것 때문에 접근성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워낙 안정적이다보니 재미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다는 단점은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Dumbfoundead 앨범도 이런 식이었는데, 역시 '미국 앨범'이란 데에서 공유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해도 Junoflo의 실력 덕분에 듣는데 지루하단 생각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 앨범 길이도 적당하고요. 무엇보다, 이게 "Statues" 때보단 좀 더 본인답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8) Microdot - PRAYER (2020.9.25)


 만년 떡밥인 '인성/범죄 이력/과거와 음악을 따로 놓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저는 항상 '예'라는 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자의 듣는 스타일에 따라 다를 것이며, 저 역시 '그럼 조두순이 명반을 내면 어쩔 거냐?'란 질문엔 답을 주저하게 되지만, 여튼 음악은 음악 자체로 갖는 힘이 있고 무시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의 경우, 외적인 요인 속 문제되는 부분이 음악을 통해서 드러나 애초에 떼놓지 말도록 의도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죠.


 사실 이 얘기로 운을 띄웠지만 "PRAYER"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별로 없는 앨범입니다. 왜냐면, 음악적으로 별로거든요 (...). 애초에 Microdot은 자신을 차별화시킬만한 무기가 별로 없는, 평이한 톤과 발성을 가진 래퍼였습니다. 나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듯 보이지만 일종의 '가요 래퍼'인 셈이었죠. "PRAYER"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자연히 차분한 비트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약했던 Microdot이 이런 비트 위에서 했을 경우 결과는 뻔합니다. 거기다가 좀 더 진중한 이미지라도 전달될까 싶었는지 시도하는 노래는 더더욱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내용이 중요한 노래들이지만 당연하게도 제일 큰 문제가 내용에 있습니다. 우선 사과를 위해 만든 노래라면 "어린 I" "나 혼자"는 수록 의도를 알 수 없는 사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뭐가 됐든 여긴 자신의 외로움과 고민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닌걸요. 핵심 트랙인 "책임감"도 처음에는 사과하는 듯 시작하지만, 노래 중간에 자꾸 변명과 도피로 빠지려는 게 보입니다. 안 그래도 음악도 별로인데 듣다보면 진짜로 노래를 올린 본심은 딴데 있구나 싶어지네요.


 혹자는 제가 이 음악의 플레이 횟수를 늘린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궁금한 건 들어봐야되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음... 뻔히 보이는 수작에 조금이나마 놀아나버려서 죄송합니다. 차라리 VJ의 음주 운전 반성 시리즈는 좋기라도 했는데. 흑.



(9) Minit - in your area (2020.9.26)


 "in your area"는 Minit의 두 번째 앨범입니다. 별 의미 없을 수 있지만 "Universe"는 댄스로 분류되더니 이번 껀 랩/힙합으로 분류가 되어왔네요. 확실히 랩의 비중이 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Minit 감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진짜 작정하고 장르를 구분해서 만든건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어찌보면 Minit은 좋은 프로듀서의 조건을 갖췄음에도 클리셰 논란의 피해를 보고 있는 아티스트고, 어쩔 수 없이 앨범 나올 때마다 여느 때의 드럼롤과 브레이크다운이 후렴 전에 등장하나 집중하게 됩니다. 이번 앨범 첫 두 트랙은 그런 것이 없지만, 나머지 세 트랙은 Minit 공식 그대로 진행됩니다. 사실 이것도 그렇지만, 악기 선정에 있어서도 그에게 어느 정도 공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전곡이 'Minit스럽'습니다.


 지난번 앨범을 듣고 클리셰적인 구성도 풀어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껀 딱히 기대만큼의 새로운 발견은 없었습니다. 선공개 싱글이기도 했던 "zone"이 속이 꽉찬 파워풀한 트랙 (특히 Paloalto의 랩이)이라 조금 인상적이었던 정도? 때문에, "Universe"가 저에겐 아직 호감이 더 가는 앨범이네요. 뭐 어차피 리스너가 뭐라 왈가왈부할 수 있는 레벨의 프로듀서는 아니고, 앨범 활동이 메인이 아닌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불평은 이 정도에서 접겠습니다.



(10) 김효은 - LOVE-HATE (2020.9.28)


 그동안 잠적했다 실종됐다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얘기들이 많았던 김효은이 별안간 첫 정규를 발표했습니다 - 나오고 나서 보니 솔로 작업물은 이게 올해 처음이더군요; 가장 쉽게 인지되는 변화는 완전히 이모 힙합 스타일의 싱잉 랩으로 노선을 굳혔다는 것입니다. 처음 김효은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하드코어 붐뱁 래퍼로 오래 남을 듯했지만, 한 번 트랩으로 노선을 바꾼 후 변화는 참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 어떤 면에서는 더 어울리기도 했죠. 아예 싱잉으로 간 것에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지만 전작인 "UNTITLED"나 중간중간 나온 피쳐링 곡들을 보면 예견되었던 행보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손쉬운 비교 대상인 전작 "UNTITLED"와 놓고 보면 목소리가 조금 더 가벼워진 게 귀에 들어옵니다. 인상적인 저음의 톤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터라 어색할만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어색함도 없고, 더 편안한 감상이 가능해서 훨씬 좋았습니다. 이와 함께 탑 라인을 짜는 것도 조금은 더 유연해진 것 같아요. 요약하자면 김효은의 곡 중 제일 듣기 편한 곡들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이건 상대적인 얘기일뿐, 이번에도 총 프로듀싱을 맡은 RAUDI는 하드한 비트를 써줬고, 김효은은 곡에 따라 차분하게 부르기도 하지만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육중함을 완전 버린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랩을 넣어줬으면 했다는 바람들이 게시판에 얼핏 보입니다. 이 스타일이 본인에게 맞는 옷이라 느끼기에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만 그래도 존재감이 분명했던 랩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완전히 삭혀지진 않는군요. 이와 별개로, 김효은이 가진 아우라를 걷어내고 나면 곡들 자체는 평범합니다. 워낙 김효은은 냉정하게 말해, 하드웨어가 타고 났을뿐 기발함이 번뜩이는 디자인의 곡을 만든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사 내용과 멜로디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긴 합니다.


 종합적인 점수는 김효은과 이 장르에 대한 기존의 호감이 크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때문에 주관적으로 이 앨범을 좋게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 하겠습니다. 몇 가지 개선이 있지만 언뜻 사소해보이고, 크게 보면 그게 그거 같기도 한데다, 랩을 버렸으니 스펙트럼이 더 좁아져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그래도 돌아볼 때, 트랩을 택한 건 초창기 틀에 갇혀있던 김효은에겐 나름 좋은 돌파구였던 거 같습니다. 입대 전 마지막 앨범이란 소문을 들었는데, 이후로 어떻게 되려나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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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10-07 23:30:18

전 김효은 가볍게 듣기 좋더라고요.

WR
2020-10-08 16:11:02

생각보단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2020-10-08 11:23:16

몇 년 전만 해도 김효은이 이런 방향으로 갈 줄은 몰랐죠
Rakon 앨범 들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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