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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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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 16:10:35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들을게 또 2주치 정도 밀렸네요.

근데 뭐랄까, 대형 앨범의 빈도는 조금 줄어든 느낌도 있고요.

그래도 새로운 발견은 꾸준히 있어서 재밌는 거 같습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Esenswings - 일반인 (2020.8.22)


 아직도 이름을 볼 때마다 이런 아티스트가 실존하는게 맞는지 되묻는 사람들이 있는 '그 래퍼'의 새 EP입니다. 어그로스럽게 시작했지만, 이 시리즈에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벌써 세 번째입니다 (첫 앨범 "키보드에서 마이크"는 Ubermensch란 이름으로 낸 거니까?). 이번 앨범 내용을 참고하면 완전히 커리어에 올인한 건 아니라도 꽤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30 Dangers"의 Deepflow 벌스처럼, 꽤 진지한 걸 뱉으니 진지하게 대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저는 이번 앨범이 전 앨범보다 더 아쉽게 들렸습니다. 사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애매한 컨셉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누가 봐도 "이방인"을 노린 커버와 앨범 제목, "30 Dangers" "이겨낼 거야" 등의 패러디 같은 곡 제목은 아무래도 감상할 때 방해되는 건 사실입니다. 어쨌든 노래를 들었을 땐 그런 농담으로 들어야할 노래들은 아니거든요. 뭐 이미 래퍼 이름부터가 진지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됐든 몰입 안 되는 장치가 있는 건 좋은 점으로 볼 순 없을 거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그저 음악으로만 얘기한대도 아쉬운 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Esenswings가 했던 음악은 올드 스쿨 느낌의 붐뱁에 가까웠는데, 요번 앨범엔 싱잉 랩들이 꽤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외적인 문제일지 몰라도, 그의 싱잉 랩은 가볍고 진부하게 들립니다. 감성적인 곡에만 써서 그런지 랩하는 목소리보다 빈약한 듯도 하고요. 오토튠을 깔끔하게 사용하는 데 미숙한 부분도 군데군데 들립니다. 그런가 하면, 랩 디자인을 함에 있어서도 플로우가 단조롭습니다. 예전 앨범에서는 이게 그냥 우직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해서 좋았는데, 이번처럼 어정쩡한 조크 컨셉을 갖고 나왔을 때는 뭔가 김이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단체곡 "라러젠"... 13분 넘는 곡은 엥간한 참여진이 아니고서야 다 듣기 어렵습니다. 자녹게도 아니고, 너무 무모한 기획 아니었을까요?


 첫 앨범 "키보드에서 마이크" 때부터 Esenswings는 악플러에서 뮤지션으로의 환골탈태를 포인트로 내세우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네, 단순히 커뮤니티 사이트 죽돌이었던 사람이 세 번째 EP를 발표한 건 그냥 치부하기엔 좀 무게가 있는 사건입니다. 허나 이제 와서 그의 태도에 부응하여 엄근진하게 얘기하자면, 아직 그 변화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기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어보입니다 (사실 활동명부터가 불리한 셈이죠 이건...). 과거 글에서 그의 앨범을 논할 때는 차라리 이 컨셉을 활용하여 재밌는 걸 더 보여주길 바랐었는데, 이제는 좀 더 진중한 래퍼로써 다음 스텝을 밟길 바랍니다.



(2) 바끼리 - Swimming in the Deep Sea: Korean Tunechi (2020.8.16)


 BaDa_Kkokiri에서 바끼리가 되면서, 그는 이름 뿐만 아니라 모든 걸 싹 갈아엎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작 "Rebirth"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고 합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오토튠 싱잉을 기반으로 한 트랩퍼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기믹의 비중이 높아보였던 직설적인 가사와 고성방가(?) 형태의 싱잉에서 차분하고 정돈된 랩으로의 변화는 상당한 고민을 수반한 듯 보였습니다. 이번 앨범은 전작의 '부활'을 지나, '깊은 바다로 헤엄쳐가는' 과정에 있는 앨범으로, 스타일 변신의 임팩트가 사라진 후 좀 더 객관적으로 그의 현 위치를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깔끔한 가사와 플로우, 멜로디 메이킹은 바끼리의 강점입니다. 그의 새로운 스타일은 여러 면에서 안정적입니다. 과하게 선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와 진중하게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논하는 가사, 그리고 다양하게 그와 대비를 이루는 피쳐링진의 벌스 등, 대부분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무난한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도 뚜렷하게 


 허나 변신의 임팩트가 사라진 지금, 안정적이라는 것은 단점으로 더 느껴지곤 합니다. 단순히 바다코끼리 시절의 과거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훅-벌스-훅의 구조는 거의 모든 트랩 곡들이 취하는 구조니까 그렇다 치고, 대개 16마디로 적힌 훅에 비해 벌스는 12마디 정도로 존재감이 매우 희미합니다. 뭐, 원래 벌스보다 훅이 인상을 남기기 마련이겠지만, 벌스가 그저 자리 채우기로 느껴지는 건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을 거 같습니다. 피쳐링진이 없는 솔로곡은 고정된 구조, 고정된 길이로 상당히 짧은 곡이 되곤 하는데,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Interlude로 표시된 "담에"와 타이틀곡인 "약속할게"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군요. 플로우 패턴도 곡마다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화됩니다.


 바끼리로 바뀐 이후, 현재까지 그의 커리어는 아직까지는 의도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육지로 올라오는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하였고요. 이런 계획적인 행보와 진지한 태도는 향후 그가 도달할 모습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다만 '부활' 속에 그가 버리고 온 것이 아쉽지 않으려면 아직 이 과정에서 챙겨갸아할 것이 좀 있어보입니다. 그가 아낌없이 애정을 표하고 있는 우상 Lil Wayne처럼, 유연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3) Wonstein - Zoo (2020.8.23)


 저에게는 원슈타인은 뭔가 모르게 미지의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싱어일까 래퍼일까 (쓸모는 별로 없는) 고민을 불러일으키는데다, 독특하고 변태적인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발라더 뺨치는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했거든요. "Zoo"는 그에겐 두 번째 앨범이지만, 지난 앨범이 폐기되려다 만 믹스테입이었다 하니 제대로 된 첫 프로젝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여기서도 원슈타인은 그런 모순된 이미지를 조화롭게 끌어내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앨범 커버부터가 자신은 범상한 아티스트가 아님을 예고하는 듯하지만 (...), 앨범이 품고 있는 감성은 얕지 않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고양이 Freestyle" (애초에 프리스타일로 인트로를 열다니) "GOAT" 같은 특유의 유머 센스도 놓치지 않습니다. 원슈타인은 적어도 고전적인 개념에서 대단한 보컬이 아닙니다. 노래를 들으면서도 사실 음정이 약간 어긋난 부분들이 몇 군데 들립니다. 이상하게도 찬찬히 뜯어보면 마냥 부르기 쉬운 노래들은 아닌데, 그걸 대충 부른듯한 느낌이 나면서, 또 매우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 모순된 현상은 원슈타인의 특유의 톤과 가사 센스, 리듬감 모든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의 창법은 랩할 때와 더 유사하여, 랩과 노래를 오가는 데 있어 전혀 어색함이 없고 노래 전체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관찰한 것들을 동물에 비유하여, 앨범 전체를 "Zoo"에 빗댄 컨셉이나, 보너스 트랙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일화들을 엮어 엄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등의 작사 능력은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


 이런 느낌대로 부르는 가수가 원슈타인이 유일하진 않을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비교할만한 대상을 찾기가 어렵네요. 이런 기묘한 매력 때문에 앞으로도 저는 계속 갸우뚱하면서 음악을 찾아듣게 될 것 같습니다. 


PS "Late Night Walker"는 크레딧에도 트랙리스트에도 별다른 피쳐링진이 없는데요, 2절의 여자 목소리는 그럼 피치 조정일까요? 그거 치곤 되게 자연스러운데...



(4) HUMBLE B - THIS IS MY (2020.8.25)


 HUMBLE B라는 이름은 낯선 이름이지만, 예전부터 한국 힙합을 들어오셨던 분은 45RPM의 전 멤버 "G.R."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본래 미국 유학 때문에 음악을 그만 둔다고 했던 그가, LA에 근거지를 두고 Soul Market이란 팀 활동을 하고 있단 것과 목사가 되었다는 깜짝 근황을 전하면서 이름을 바꾸고 새 앨범을 냈습니다. 오랜 한국 힙합 팬으로썬 일단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THIS IS MY"는 크리스천 힙합 앨범입니다. 목사가 되었다는 근황답게, 일종의 포교 활동으로써 앨범을 발표한 셈이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내용에 거부감이 있을 듯한 분들은 바로 피해가기 바랍니다. BewhY의 그것을 생각하기엔 음악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뿐더러, 훨씬 직설적인 어조로 신앙을 권유하고 논하기 때문에 개신교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이 앨범을 좋아하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올드 힙합 팬으로써 들어보게 되었는데, 그것도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이 HUMBLE B의 랩은 예전 G.R.의 모습이 잘 겹쳐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이번 앨범의 기조를 트랩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과거 했던 랩 패턴과 차이가 있을 뿐더러, 톤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뮤지션들은 트렌디하지 못할 지언정 그래도 톤이나 발성은 나름 잘 잡힌 경우가 많은데, HUMBLE B는 제가 G.R.로 기억하는 것보다 이 부분이 더 약하게 들렸습니다. 2, 3번 트랙은 아마 교포 그룹으로 생각되는 The Untitled Project와 함께 하여 영어 랩도 하는데, 랩으로써의 영어 발음 자체도 뭔가 흘리고 부정확한 느낌이 있어요. 마치 어중간한 멈블을 하는듯, 심지어 중간중간 Dbo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트랩을 택하긴 했지만 완전하게 트랩의 느낌을 이해하고 만들어진 앨범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음악 분위기와 메세지의 괴리가 더더욱 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트랩 자체가 이 이야기에 안 어울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건 거꾸로 BewhY의 케이스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결국 설득력 있는 음악을 하는가 가 관건일 것입니다.


 종교인이 아닌 것이 앨범 감상에 꽤 악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힙합 매니아에게 이 앨범을 권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오랜만에 돌아온 이에게 옛날 페르소나의 굴레를 얹고 싶지 않으나, 적어도 G.R.이 그립다면 이번 앨범은 더더욱 피하시는게 좋을 거 같습니다.



(5) Futuristic Swaver - Swag Society 2 (2020.8.25)


 작년 말에 나왔던 "Swag Society"의 후속작이랄 수 있는 신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작을 잘 들었기 때문에, "Swag Society 2"가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Swag Society"는 Futuristic Swaver가 Laptopboyboy로써는 조금 부담을 내려놓고 래퍼로써 집중하는 한편, 주변 동료들의 비트를 받아 작업하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이번 앨범 크레딧을 까보니 Laptopboyboy의 비중이 적어도 절반 이상은 되어서 그 추측은 틀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앨범들보단 외부 프로듀서진이 많긴 하지만).


 늘 그의 앨범을 듣고 썰을 풀 때마다 같은 얘기로 귀결되는 거 같아 망설여지지만, Futuristic Swaver의 작법은 상당히 엄격한(?) 공식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어디서 들어도 그의 랩 그의 비트라는 걸 알 수 있는 지경이 되었죠. 본인임을 나타낼 수 있는 확고한 스타일을 갖는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저는 점점 그의 곡과 곡, 앨범과 앨범 간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물론 외부 프로듀서진이 있기 때문에 "Novacane"의 브라스라든지 "Nightmares"의 은은히 깔리는 기타음 같은, Laptopboyboy라면 거의 쓰지 않을 악기와의 신선한 조합을 듣는 재미는 있지만, 말했다시피 전작보단 이런 신선함이 적습니다. 아니, 본인의 비트는 물론이고 외부 프로듀서 비트도 이번엔 좀 더 Laptopboyboy 스타일에 맞춘 느낌이었어요 (Seoul Metro Boomin이 뭔가 터뜨려줄까 했는데 이조차도...). 이런 상황이라, 굳이 "Swag Society 2"가 그의 다른 앨범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뒤집어 얘기하면, Futuristic Swaver는 초심을 유지하며 확고한 그만의 영역을 구축한 아티스트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을 본래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지금도 좋아하는데 무리가 없겠죠. 다만 저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앨범이 나올 때마다 전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만 받고 가네요. "BFOTY"나 "Swag Society" 때의 반전이 있었기에 그것을 기대하면서 앨범을 들어보지만, 이번 앨범은 제 기대에는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6) FameUs Records - Famous FameUs (2020.8.26)


 5개월 전 나왔던 "God FameUs"에 이어 FameUs Records의 두 번째 컴필레이션이 발표되었습니다. 컴필에 대한 글을 쓸 때 항상 제가 들먹이는 두 가지 방법, 멤버들의 개성을 살리거나 한 가지 방향을 정하거나 이 두 가지 중 전작이 후자였다면, 이번에는 전자입니다. 거의 전곡이 단체곡 같은 느낌으로 나왔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BE'O를 제외하면 전원의 솔로곡이 들어가있고 (사실 "바람에" 같은 곡이 MALKEY와 얼돼 벌스가 짧아 BE'O의 솔로곡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에 따라 훨씬 다양한 스타일이 담겼습니다.


 때문에 전작에서 너무 비슷한 느낌으로 일관하는 것에 실망했던 분들이라면 이번 앨범에서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양한 분위기에 따라 멤버들 각자의 특기도 잘 살아났으며, 스킬적인 면도 챙겼기 때문에 San E의 기존 팬들도 반가워할 거 같습니다. 아직은 BE'O와 MALKEY의 포지션이 겹치는 것 같지만, 반대로 둘 다 괜찮은 센스를 보여줬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연히 통일성에 대한 문제를 삼을 순 있겠지만 저는 "God FameUs"에서 이미 보여줬던 것이 있고, 이번에 다른 방향을 시도한 것이라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앨범 다 공통적으로 트랙별 무게감은 살짝 딸리는 면이 있어 보이지만, 이건 앞으로 두고 보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PS 크레딧에 보면 프로듀싱은 물론 작사에까지 Yung Drip이란 멤버가 참여한 흔적이 보이는데요, 곡을 들어서는 어느 부분인건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숨겨진 멤버인건지 누군가의 얼터 이고인지 좀 궁금하네요.



(7) Alt - 100Percent (2020.8.27)


 제목부터 전에 나왔던 "50Percent" 시리즈의 후속작이자 완결편이란 느낌이 납니다. 꼭 시리즈 범위 안에 있어서라기보다 Alt는 원래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하기에 "100Percent" 역시 전작의 감성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한 말투 같은 플로우와 일상적인 소재를 비유로, 혹은 액면 그대로 가사에 옮겨놓는 소박함이 그의 음악의 핵심이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앨범에서는 제가 듣는 환경이 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번 앨범과 사운드 면에서 몇 가지 다른 점이 느껴졌습니다. 우선 비트가 저번보다 더 구성이 풍부해졌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봤자 미니멀한 건 거기서 거기일지 몰라도, 약간 더 땜핑이라든지 그루브라든지, 그런 것들이 더해졌달까요. 이는 랩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훅이 더 캐치해진 것 같네요. 센스는 전작에서도 어느 정도 돋보였지만 이번에 더 빛을 발한 듯합니다. 다만, 벌스가 짧아서 훅이 너무 자주 돌아오는 구성은 별로더군요.


 막귀다보니 믹싱 언급은 늘 두렵지만, 저번에 비해 목소리가 좀 먹먹하게 믹싱된 것처럼 느껴지는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문제 없이 들었지만 제가 인지할 정도의 문제는 예민한 분들에겐 크게 거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믹싱까지 합해서, "100Percent"를 비롯한 Alt의 모든 앨범은 저예산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빠방한 프로덕션을 가진 앨범에선 못 보여줄 B급스러운 느낌이 가득하고, 적어도 그 틀 내에서 50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오른 것은 비단 제목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뭐가 됐든 그의 스타일이 나름대로 온전히 가치를 지닐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도달했다 생각되는 앨범이었네요.



(8) E SENS - Marigold Tape (2020.8.27)


 "Marigold Tape"은 "The Anecdote" 5주년을 기념하여 E SENS의 정식 미발매 곡들 중 네 곡을 추려 발표한 앨범입니다. 그저 이제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왔을 뿐 전부 뻔질나게 들어본 곡들이라 새로운 앨범이란 느낌은 없고,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시리즈와도 맞지 않습니다 - '밀린 감상'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워낙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리즈 안에 넣어놓고 싶었습니다. 특히 E SENS의 감성의 끝판왕 중 하나라 생각되는 "비행"이 스트리밍 음원으로 등록되었다는 데에 (+노래방에 등록되게 해주었다는데) 저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행" 다음으로 좋아하는 미발매 곡은 "Everywhere"라 들어가주길 바랐는데, 차분한 곡들로 추리면서 자연스럽게 빠진 것 같습니다 (애초에 너무 옛날 곡이긴 해서 나중에 챙겨줄지도 의심스럽...). 수록곡들이 어떻고 저떻고를 논하는 거야, 현재로썬 E SENS라는 아티스트명으로 충분할 것 같군요. 특히 "이방인"에서는 대체로 부재했던 종류의 감성이라, 다 아는 곡인데도 여전히 반갑게 맞이하게 되네요.



(9) Bryn - VELVETMOTH (2020.8.27)


 짧지 않은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처음으로 나오는 공식 작업물입니다. "VELVETMOTH"는 'MOTH' 시리즈의 첫 번째로, 사랑 앞 Bryn의 가장 약한 모습을 담았다고 하죠. 같은 크루인 LnB가 전곡의 비트를 제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Bryn이 하는 음악하면 좀 몽환적인 느낌의 트랩이 먼저 생각납니다. 특히 오토튠을 가미한 신비로운 느낌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그녀의 아이덴티티랄 수 있는데요. 결론적으로 "VELVETMOTH"는 그런 앨범이 아닙니다. 'R&B 앨범'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았는데, 확실히 래퍼 Bryn이라기보단 싱어 Bryn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맞을 듯한 앨범입니다. LnB도 그런 느낌으로 평소에 하던 스타일보다 좀 더 딥하고 감성적인 비트를 주었고요, 그나마 천천히 짚어가는 라이밍 스타일은 래퍼 Bryn의 흔적처럼 남아있습니다. 원래부터 Summer Walker의 열혈 팬임을 밝힌 바 있었던 그녀이지만 음악이 Summer Walker 같다는 생각은 한 적 없는데, 반대로 이번 앨범은 반대로 영향이 강하게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래퍼로써의 그녀를 기대한 사람은 좀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 앨범은 '대중적'이라는 수식어에 여러모로 알맞습니다. 멜로디나 가사나 꽤나 직설적으로 작업되어있죠. 그래서 평소의 '신비로운' Bryn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겐 실망으로 다가올 수 있더라도, 음악 자체는 대중적인 틀 안에선 그래도 잘 만들어진 거 같습니다. 그래도 Bryn의 목소리는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있고, LnB가 심도 있는 바탕을 잘 깔아준 거 같아요. 특히 첫 작품부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MOTH' 시리즈에 대한 호기심도 커집니다. 다음은 하드코어 랩이라죠? 그녀의 총천연색을 하나씩 풀어낼 시리즈로써 앞으로 나올 앨범들도 기대해볼만한 것 같습니다.



(10) 담예 - The Sandwich Artist (2020.8.30)


 앨범 단위로는 꽤나 오랜만인 담예의 신작입니다. 나름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긴 했지만,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씬에 계속 있었단 느낌이 묘하게 안 드네요(?). 이번 앨범은 작년 1월에 나온 "Life's a Loop"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정규 앨범입니다.


 일견 "The Sandwich Artist"는 정규 앨범이란 스케일에 어울리지 않는 단촐한 앨범입니다. 트랙 수와 러닝 타임만으로 봐도 그렇고, 샌드위치점 알바생이라는 소재로만 얘기를 풀어내다보니 서사가 그리 멀리 가지 않는 까닭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확실하고 구체적인 소재 선정과 생활 밀착형인 토픽이 앨범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 소개글에도 써있듯 "Life's a Loop"은 '음악적 욕심을 한껏 부린' 앨범이었고, 그에 비해 "The Sandwich Artist"는 상당히 소소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바로써 느끼는 희노애락이 길지 않은 앨범 속에 전부 촘촘하면서도 적당히 담겨있습니다.


 이번에도 담예는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했으며, 세션 외에 눈에 띄는 피쳐링진을 따로 두지도 않았습니다. 힙합이라는 부담은 저번보다 훨씬 벗어던진 듯합니다. 저번 앨범에 관한 포스트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보단 온몸을 흐느적거리기에 적합한 느낌'이라고 표현한 적 있는데, 그런 그루브가 훨씬 더 강조되었습니다. 가스펠 요소를 가져온 "구인구직"부터 레트로 풍의 신디사이저가 독특한 풍미를 만든 "샌드위치 드림"까지 담예 표 프로덕션이 빛을 발합니다.


 한편 저는 (적어도 매우 평범한 의미로) 담예의 랩과 싱잉이 생각보다 잘 하진 않는다고 얘기한 적 있었습니다. 단단한 발성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톤이 특출난 것도 아닙니다. 가성의 비중이 큰 노래에는 여전히 미묘하게 음정이 나간 부분이 군데군데 들리고요. 사실 이런 부분들은 후작업에서 얼마든 만질 수 있었을텐데 그대로 둔 건 담예표 그루브의 일부란 거겠죠. 이해는 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될 것도 같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싱어가 하는 랩, 래퍼가 하는 노래 같단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해서 담예의 음악은 들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그루브에 몸을 맡길 준비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단촐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1집에 비해 그의 음악 세계를 더욱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굳이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대며 이러쿵 저러쿵하는 게 바람직한 감상법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죠. 저의 개인적인 기호와 상관 없이, "The Sandwich Artist"는 담예란 뮤지션에게 빠져들고 싶은 분들께 강하게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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