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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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8 15:56:26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끔찍한 훈련은 오늘 끝났습니다.

도중에 쇼미더머니 지원서에 첨부했던 영상 중 비트 있는 랩 영상을 다시 틀어봤는데, 비트 소리가 거의 안 들리더군요. 즉 비트 없는 영상만 두 개 첨부한 셈.

이번에 쇼미에서 안 부르면 이거 때문이라 생각해야겠습니다. 흑.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Paul Blanco - MINE (2020.8.15)


 갑자기 나온 Paul Blanco의 세 곡짜리 작은 EP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BIPOLAR"에 있던 곡들보다 훨씬 좋게 들었습니다. "BIPOLAR" 감상 글 쓸 때 말했지만 "BIPOLAR"는 조금 뻔한 느낌 때문에 심심하게 들었는데, 이번에 실린 세 곡은 나름의 딥함을 가지고 있는 동시 곡마다, 특히 비트에서 디테일한 부분이 살아있는게 좋았습니다. "Money" 같은 곡은 Paul Blanco에겐 꽤 신선한 시도도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본인이 프로듀싱에 많이 참여했던데, 보컬로써야 알고 있었지만 프로듀서로써의 능력도 재발견하게 해준 EP 같습니다.



(2) J;KEY - ROMANTICO 1/2 (2020.8.16)


 개인적으로 J;KEY하면 여러 D-Hack 앨범에 총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것이 먼저 떠오르지만, J;KEY는 독자적으로도 짧지 않은 활동을 펼쳐온 플레이어입니다. 2014년 첫 믹스테입을 발표한 후 이번 앨범을 제외 네 장의 EP를 발표했으며, YTC4LYF와 D-Hack의 크루 KINGdumbs 크루에 속하여 활동하기도 했죠. 이번 앨범은 본래 "INTERLUDE"라는 이름으로 발표될 예정이었던 것 같지만, 아마 2부작으로 선회한 듯 "ROMANTICO 1/2"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표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앨범이 J;KEY를 처음 접하는 앨범이었습니다. 듣기 전에는 D-Hack과 비슷한 발랄한 트랩을 할 거라고 예상을 했었죠. 실제 뚜껑을 열어본 내용물은 보컬의 비중이 높은 진중한 느낌의 앨범이었습니다. 락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청량감 주는 멜로디 라인을 전개해간다는 점에서 Jayci Yucca 같은 아티스트가 먼저 떠오르더군요. 빠른 템포는 제가 예상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락 사운드 외에 스트링이나 신스를 적절히 배합하여 만들어낸 풍성한 사운드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J;KEY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강한 힘이 있어 락 사운드에 잘 어울리더군요.


 아티스트에 대한 첫 소개로는 나쁘지 않은 앨범이었습니다. 역시 듣기 전에 편견을 가지는게 위험한 일인 듯합니다 - D-Hack 음악 스타일이 맞지 않아 J;KEY 음악을 듣는 것도 좀 미뤄왔었으니까요. 첫 만남을 기분 좋게 가졌으니 예고된 2편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들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3) 부현석 - FRONT LINE (2020.8.16)


 "FRONT LINE"은 부현석이 입대를 앞두고 한달 만에 만들었다는 EP입니다. 짧은 기간을 두고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여러 가지 스타일이 오밀조밀 잘 들어가있다는 느낌입니다. 처음엔 파워풀한 붐뱁 느낌의 랩으로 시작하여, 앨범 정확히 중반부부터 싱잉 랩을 이용한 감성적인 (동시에 어느 정도 야마는 유지되는) 곡으로 끝을 맺어가는, 아주 모범적인 전개가 7트랙 내에 펼쳐집니다.


 규모나 제작 기간을 보면 알지만 당연하게도 전작 "neighborHOOD"에 비해 임팩트는 적습니다. "FRONT LINE"은 마치 부현석 샘플러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확하게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 적절한 수준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단단한 톤과 랩핑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작 같은 인상 깊은 가사나 서사는 없지만 배경을 고려할 때 그런 걸 바라는 건 욕심 같아보입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부현석의 장점만 담백하게 드러난 앨범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입대 전 짧고 굵게 작업한 앨범이라는 배경이 재밌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작업 속도를 자랑했다는 느낌도 드네요. 그게 앨범 자체의 퀄리티보다 더 인상적인 점이 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당분간은 신작이 없을테니 다음을 기대한다는 말은 여기 맞지 않고, 군생활 잘 마치고 돌아와서 커리어를 잘 이어가줬으면 합니다. 



(4) Hi-Lite Records - Legacy (2020.8.16)


 "Legacy"는 Hi-Lite에게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앨범입니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끊임없이 언급되는 '"Hi-Life" 시대'의 Hi-Lite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테스트, 연이어 영입된 신인들의 소개 자리, 그리고 궁극적으로 Hi-Lite Records는 지금 어떤 음악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요약일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질문은 성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Hi-Lite Records는 다양한 색깔을 지녔니다. Sway-D, Swervy의 실험성과 Owell Mood, Soovi의 감성을 나란히 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레이블이 커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렇기에 저는 레이블 컴필레이션이 굳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오히려 푸드 코트처럼 다양한 맛을 살리면서 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Soul Company 컴필처럼?). 


 반면 "Legacy"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포문을 여는 용도로 잘 쓰이는 1번 트랙이 가장 차분한 "Simple Things"라는 것부터가 의미 있어보입니다. 여러 바이브가 등장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위로의 메세지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Simple Things"가 열어둔 문제를 마지막 "Kid Rock"이 잘 닫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앨범 색깔은 예상보다 훨씬 편안한 파스텔톤입니다. 이는 최근 영입된 보컬 3인방 Owell Mood, jerd, Soovi에게 최적의 환경입니다. 특히 jerd의 중성적인 매력과 플로우는 제일 인상적인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뻔하게도 아쉬운 점은 일부 멤버들이 이 색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살짝 톤다운했다는 겁니다. 그나마 YunB나 Sway-D를 위한 "Organization" "송석현 vs 송석현" 같은 트랙들이 있지만 이건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체면 차리기식 같았습니다. Swervy의 퍼포먼스는 안정적이지만 그녀의 과감한 반항아 기질은 여기에 없습니다. Reddy가 "500,000" 등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색깔도 찾기 어려웠고요.


 전체적으로 "Legacy"는 컴필레이션이 택할 수 있는 방향 중 밸런스를 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목적에 입각하여 감상하면 상당히 완성도 높은 앨범임은 맞습니다. 큰 볼륨과 중간중간의 '일탈'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전개가 흔들림이 없을 뿐더러, G2, Evo를 참여시킨 팬 서비스도 있고요. "Hi-Life"와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으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음악 취향 때문에 "Hi-Life"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강한 색 때문에 Huck P 같은 아티스트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느꼈고요) 단순히 '음악적 충격'이라는 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Hi-Lite의 가치는 이런 컴필레이션이 아니라 멤버들 각자가 이루는 성취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 컴필로 Hi-Lite의 변화 성공 여부를 점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이미 Hi-Lite는 변화에 성공을 하였고, "Legacy"는 뭔가를 증명하기보단, 10주년을 맞이하여 올디에겐 뒤를 돌아보는 기회를, 뉴비에겐 발돋움을 시키는 정거장 같은 앨범이라 생각이 드네요.



(5) DNERF - 알파카의 하루 (2020.8.17)


 Crucial Star가 세운 Starry Night Music 소속 듀오 DNERF가 첫 EP를 발표했습니다. DNERF는 지샤넬과 윌리로 이루어진 팀이며 두 멤버 다 프로듀싱, 랩, 싱잉을 겸하고 있습니다. 소속부터 앨범 자켓까지 모든 단서는 그들이 대중적으로 친근하고 말랑한 음악을 할 거란 것을 암시합니다. 두 명의 톤부터 꽤 밝은 느낌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Crucial Star가 잘 하는 감성하곤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들의 음악은 오글거림과 발랄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이 EP에서는 특히 첫 곡이 그랬고, 후반으로 갈수록 좀 더 안정적인 밸런스를 찾는 느낌이었는데, 이러한 감상은 순전히 개인적 취향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힙합 하드코어 리스너를 위한 음악은 절대 아닙니다. 이것이 퀄리티를 정하지도 않습니다 - 나름 정해놓은 틀 안에서는 괜찮은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지샤넬의 살짝 늘어지는 톤은 곡 분위기와 독특하게 잘 어울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다음 앨범부터는, 적어도 저는 굳이 찾아 듣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어쨌든 이제 커리어의 시작에 들어섰으니 부디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멋지게 펼쳐갔으면 좋겠습니다.



(6) G2 - WATER (2020.8.17)


 Hi-Lite로부터 독립한 G2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정규 앨범입니다. 오랜만에 모습을 선보이는 것이 Hi-Lite 컴필 참여였고, 시기를 맞춰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는 게 재밌네요. 바로 전작이었던 "tHROWING uP bUTTERFLIES"는 G2에겐 쓰디쓴 경험이었습니다. 실험성을 내세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 라는 평이었는데, 글쎄요 이번 앨범 나온 김에 간단히 훑어 들어봤을 땐 왜 사람들이 그걸 어색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프레쉬하고 좋던데 말이죠.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WATER"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정규 앨범 치고는 살짝 작은 규모와 살짝 짧은 러닝 타임에, 대부분의 곡을 G2는 피쳐링진과 벌스를 나누었습니다. 총 프로듀싱을 맡은 UGP는 무난한 붐뱁 스타일의 비트를 제공하였고요. 늘 G2의 걸걸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하드코어한 스타일로 가는 것이 답이다 라고 해왔지만, "WATER"를 들으며 돌아보니 이렇게 한 계단 내려와 안정적인 톤으로 뱉는 것도 나쁘진 않군요. 오히려 너무 깊고 묵직한 느낌을 내려했던 "All In"이 좀 아쉬웠고, 이 안정적인 톤에 살짝 양념을 친 "Buena Vista"를 개인적으로는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이렇게 몹시 안정적인 앨범이다보니, 과연 G2여서 얻는 이점이 무엇인가 의문이 생깁니다. 분명 빠지는 데 없는 앨범이긴 합니다만, 뭔가 모르게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앨범이 정규보단 EP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냥 부담을 버리고 살짝 쉬어가는 느낌이랄까요? 다시 돌아보면, G2 본인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아직도 찾는 중일지 모르겠습니다. "WATER"는 해답이라기엔 너무 평범한 패션인 것이 아쉽습니다. Hi-Lite를 나가 인디펜던트로 활동을 시작한만큼, 과거의 실패를 신경 쓰지 말고 과감한 도전을 해주었으면 좋겠군요. 그게 저는 G2에게 더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7) Pluma - V (2020.8.17)


 고등래퍼 시즌 3를 통해 처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Pluma의 첫 EP입니다. 5곡 중 3곡은 앞서 싱글로 발표된 곡들이므로 실제로는 여태까지와 비슷한 속도로 두 곡의 신곡을 발표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시리즈를 연재하다보니 이번에 제대로 고등래퍼 후 Pluma의 활동을 보게 되었고요.


 고등래퍼 당시 그의 모습은 Coogie 아류라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저의 가벼운 안면인식장애로 인해) 생김새도 상당히 닮았다 느꼈지만, 정해진 리듬 패턴에 따라 뱉는 싱잉 랩이 꽤나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이죠. "V"에서도 싱잉 랩은 계속 되지만 어느 정도 그때보단 나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Pluma 본인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는 캐치되고, 같은 스타일의 싱잉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흔적이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볍기만 했던 과거의 모습보다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는 노래 실력과 멜로디 메이킹이 개선된 결과입니다. 단순히 청량감만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면 그저 그런 뻔한 노래가 되었을 법한데, 이번엔 뻔하지만은 않은,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라인이 많이 들렸습니다. 가사는 아직 어린 티가 좀 난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Vivid"는 괜찮더군요.


 수록곡 중엔 작년 말에 나온 곡들도 있기 때문에 갑자기 이정도까지 좋아졌다는 건 아닌 걸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방송 후 발전상에 대한 좋은 이정표를 세운 거 같습니다. 특히 아직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Pluma 역시 향후를 기대해볼 수 있는 싱잉 래퍼에 포함시켜야겠네요.



(8) 우원재 - BLACK OUT (2020.8.18)


 AOMG의 우원재가 첫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호불호" 같은 싱글이나 밝아보이는 모습, 그리고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이번 앨범은 조금 편하게 작업하고 있다는 발언 등 때문에 "BLACK OUT"은 우원재 스타일의 대중적인 음악이 될 거라 예상을 했었습니다 - "af"에서 보여준 것도 그런 방향성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정작 나온 "BLACK OUT"은 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상당한 스케일과 깊이를 가진 작품입니다.


 '일반인'의 위치에서 쇼미더머니 6를 통해 스타로 성장하기까지 우원재는 상당히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BLACK OUT"은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심경의 변화를 천천히 얘기합니다. 그에게 약점이었던 단조로운 플로우는 메세지가 정확하게 잡히고 나니 편한 스토리텔링 톤으로 들리는군요. 비트와 목소리 필터 등 각종 장치가 분위기를 멋지게 꾸며주기도 하지만, 우원재 본인의 플로우도 상당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징기스칸"에 나오는 Womp Womp 오마주는 그가 트렌디한 랩을 소화할 때 어떤 모습인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던 전과 달리 매끄럽고 맺고 끊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 앨범을 대단하게 만드는 데는 거의 전곡을 프로듀싱한 비트메이커 KHYO의 몫이 큽니다 (Kiddo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일까요?). 마치 싸이키델릭 락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비트들은 상당한 공간감을 가지고 우원재의 목소리에 훨씬 입체감을 더합니다. 때문에 인트로부터 시작되는 위압감은 이번 앨범을 감상이 아니라 '체험'하게 해줍니다.


 그런 거대한 분위기와 동떨어져있기에, 많이들 지적하는 "칙칙폭폭 Freestyle"의 뜬금 없음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 사실 한 트랙이 아니라 "JOB" "징기스칸"까지 세 트랙을 '힙합 구간'으로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게 더 맞을 거 같습니다. 사실 이 구간 트랙들은 분위기가 아닌 랩으로 승부하는 곡들이고, 그 퍼포먼스가 상당히 좋아 미워하고 싶진 않습니다. '성공으로 인해 허세와 자만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잘 알았고요. 전후의 아우라가 너무 세서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이 어색하게 들리곤 하는 듯합니다.


 꽤 오랜만에 만나보는 '서사시' 같은 앨범입니다. 스토리로써의 서사도 괜찮았지만 음악의 힘을 크게 느끼게 해주었단 면에서 더욱 보석 같네요. "af" 때 저는 우원재의 색깔이 AOMG가 보여주는 부분적인 대중성에 어떻게 녹아들지 관심을 가졌고, 당시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었지만 미처 해결 못한 괴리 때문에 찜찜한 어색함이 남아있었습니다. "BLACK OUT"은 AOMG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답이었음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마치 새로운 아티스트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 같군요.



(9) 안병웅 - I Ballin (2020.8.18)


 자만으로 읽혔던 인터뷰로 인해 그의 첫 공식 앨범 "Bartoon 24"는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저는 안병웅의 실력을 여전히 인정하는 편입니다. 인터뷰 사건만 없었어도 전작의 평균적인 평가도 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어찌 되었건 안병웅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자기 증명의 과제를 던진 셈이 되었고, Wavy 입단 및 '그 인터뷰' 이후 첫 결과물인 "I Ballin"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러지를 유발하는 앨범 제목의 문법 오류를 건너뛰고 들어보자면, 여전히 그는 랩을 잘 합니다. 비트 자체가 기존에 하던 올드 스쿨 붐뱁에서 탈피를 한만큼, 새로운 도전이 주제가 되는 앨범인데, 랩적으로도 "Bartoon" 시리즈를 비롯하여 여태까지 보여줬던 플로우 패턴을 잘 탈피한 듯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패턴에서도 맛깔나게 적재적소에서 텐션을 올렸다 풀고 있고요. 가사의 경우는 기존에 욕하던 분들이라면 이번에도 기대를 접어두시길 바랍니다. 다만 저는 저번 감상 후기에서도 말했듯 이 가사가 적어도 안병웅 랩 스타일 내에선 못 쓴 가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사운드를 자아내는 단어 구성은 나름의 들을 거리란 게 제 의견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문제는 그것보다는 이 비트가 과연 안병웅에게 어울리는가 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앨범은 새로운 조합을 소개하는 자리니, 그것을 어색한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순 있겠죠. 허나, 특유의 여린 발성 및 하이톤인 랩에 SKOPE의 미니멀한 비트의 조합은 영 김 빠진 콜라 같습니다. 안병웅은 자의든 타의든 익히 붐뱁 래퍼로 알려져왔고, 이는 그의 개성적인 플로우 패턴이 주는 땜핑이 받쳐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땜핑이 심히 결여되어있습니다. 믹싱의 잘못인지, 아니면 안병웅의 발성 문제가 이제야 제 귀에 들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붐뱁하던 사람이 트랩해서 의 문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아직 커리어 초반에 있는 어린 래퍼로써 새로운 시도는 적극 환영입니다. 세 곡이라는 작은 규모는 '실험의 장'으로썬 적당한 크기 같기도 하군요. 본인은 얼만큼 만족하고 있을지 몰라도 저는, 아직 더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가 속한 레이블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뻔하지 않은 '실험'을 많이 들어볼 수 있겠죠?



(10) Siggie Feb - 마스크를 끼자 (2020.8.19)


 제목에서 코로나 예방을 위한 캠페인 송을 상상하셨다면 머리를 비우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번 앨범은 4곡짜리 작은 앨범으로, 제목부터 Siggie Feb 특유의 유머 센스가 돋보이는 앨범입니다. 음... 사실 유머가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곡 주제에 따라 4곡 전부 다른 랩 스타일로 해두었는데, 이게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조금 장난처럼 들립니다. 기본적인 Siggie Feb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막 눈살이 찌푸려지는 거나 하지는 않지만, 음악적으로 뭔가를 더 얻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반대로 유머에 집중을 한다면 중독적인 훅(?)과 의도된 억지 라임 덕분에 피식할 수 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보는 이름인데 그의 랩이 어땠는지 일깨워주진 못해서 아쉬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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