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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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21:04:0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훈련에 와있습니다. 앰뷸런스에 숨어 이 글을 올리고 있네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Tommy Strate & Wiz World - SAFARI (2020.8.8)


 Tommy Strate와 신예 프로듀싱 팀이라고 하는 Wiz World의 콜라보 앨범입니다. 요즘 들어 나오는 소규모의 콜라보 앨범 시리즈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다른 앨범과 비교하여 특징이라면 오랜만에 Tommy Strate가 조금 텐션 있는 비트를 탔다는 것. 꽤나 비트를 여유롭게 타던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듣는 재미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감상은... 이 정도까지만...;



(2) Fredi Casso - Pale Blue Dot (2020.8.9)


 C.WHY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머리 속에서 Fredi Casso는 붐뱁을 느낌 있게 찍는 비트메이커였습니다. 만수나 QM 앨범에서 보여준 역량은 저 같은 붐뱁충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죠. 그렇기 때문에 "Pale Blue Dot"은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컴필레이션 형태의 붐뱁 앨범이 될거란 예상은 앨범 제목과 적은 피쳐링진, 우주 테마로 통일된 곡 제목만 봐도 틀렸음을 알 수 있었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고 나서도 반전은 충분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앨범 제목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를 부르는 별명입니다. 트랙 제목들도 "Voyager", "40AU", "Golden Record" 등 관련 용어들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이를 동반하는 비트의 구성은 '불편함을 야기하는 전자음의 꼴라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는 우주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지이면서 본능적인 공포를 야기하는 암흑이라는 점이 충실히 반영된 걸까요. 특히 (저작권 문제로 유튜브에서 확인 가능한) "Mama Love" 같은 곡에서 확인 가능한 샘플 짜깁기는 장관입니다. 이 전위적인 느낌은 Viann을 연상시키도 하는데, 이 와중에 가끔 확인되는 붐뱁스러운 땜핑과 리듬이 그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간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필연적으로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운 앨범입니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세 래퍼는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전체의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감을 잡기 쉽지 않죠. 굳이 포장하면 이런 아리송함도 우주 테마에 맞긴 하네요ㅎ 쉬운 접근은 거부하지만 장엄하고 심오한 앨범이자, Fredi Casso의 프로듀서로써의 역량을 재확인하게 한 앨범, "Pale Blue Dot"이었습니다.



(3) Sharkrama - 진주특별시 (2020.8.11)


 지난 번 시즌 쇼미더머니 이후로, Sharkrama가 보여준 작업량은 놀라운 것이었고, 그보다 놀라운 것은 작업량에 비례한 그의 발전이었습니다. 현재에 비하면 처음 제가 그를 알게 된 "초월인류" 믹스테입 (EP 말고)은 속사포와 우울한 얘기 두 가지에만 치중한 좁은 스펙트럼의 앨범이었습니다. 점차 랩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 그는 4개월이 안 되는 간격으로 정규 두 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두 번째 작품이 이번 "진주특별시"입니다.


 "666"이 랩의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 발전 양상을 확인했다면 "진주특별시"는 메세지 전달 및 음악적 색깔에서까지 그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소신고"에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능력과 "1945"에서 분위기를 조였다 푸는 여유, 그리고 "파동" 같은 감성을 시도하는 것까지 저는 그의 발전의 증거로 들 수 있다 생각합니다. 


 LE에서 이 앨범에 대한 비판적 리플들을 보았습니다. 그걸 읽은 영향인지, 다시 몇 번을 돌리면서 빈틈은 조금씩 보이더군요. 대개는 서사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확실히 (적어도 랩적으로) 강한 모습만을 보여왔던 지난 앨범에 비해 이번 앨범은 무드의 폭이 넓고, 그래서 감성적인 그와 하드코어한 그가 공존합니다. 이게 좀 하나의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 초반에 "말소신고"에서 "시가렛" "맥거핀"으로 '급발진'한다든지, "파동"으로 마무리를 해놓고 뜬금없이 "주마등"으로 살짝 잔잔함을 흔들어놓는다든지.


 특히, 속사포 랩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지 결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의 아이덴티티에 가까웠던 속사포이지만, 그 플로우가 등장할 때마다 다른 파트에 비해 지극히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그루브를 깨뜨리는 정도가 심합니다. "나이테" 같은 곡처럼 나머지 파트와의 불일치로 뜬금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요. 속사포가 아닌 곡에서 그의 매력을 더 많이 느끼고 있기에, 이를 유지한다고 하면 좀 더 센스 있게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실은 늘 그의 작품에서 있어왔던 문제이지만 다른 부분이 메꿔져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문제 제기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쨌든 Sharkrama는 허슬에 비례해 퀄리티의 상승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예 붐뱁 래퍼로써 서서히 자리매김해간다는게 개인적으로는 많이 응원을 하고 싶게 하는군요. LE에 썼던 글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지친 기색이 보였는데, 작품 활동을 길게 보고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4) Masta Wu - Father (2020.8.11)


 YG와 헤어진 후 이따금씩만 모습을 보이던 Masta Wu가 EP로 돌아왔습니다. 명예 BANA 멤버라는 얘기답게 앨범의 피쳐링진과 프로듀싱진까지 전폭적인 서포트를 받아서 말이죠. 그동안 YG에서 나왔던 앨범은 가요계에 대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고, Masta Wu의 끈적하고 조용하게 읊조리는 랩은 대중의 기호와는 차이가 났던만큼, 전 앨범들은 상당한 언밸런스를 보여준 바 있었습니다.


 인디펜던트로 나온 Masta Wu의 앨범은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강화시켰다는 티가 팍팍 납니다. 10%도 안 되는 한글 가사의 비중과, 그의 랩스타일에 맞게 조용히, 허나 둔탁하게 울리는 비트만 봐도 그렇죠. 본인이 직접 프로덕션에 꽤 비중 있게 참여하였다는 점이, 스스로 비트를 찍은 것이 패인 중 하나로 꼽혔던 1집과 비교해보면 참 격세지감입니다. 지원 사격을 해준 김심야, E-Sens, 250도 전부 Masta Wu의 색깔에 잘 어우러지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날카롭게 찌르는 김심야와의 조화가 이리 좋을 줄은 몰랐네요.


 개인적으로 "M.T.L.A." 때는 너무 루즈하게 느껴졌던 랩인데, 본인에게 완전히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세트에서 보여준 모습은 상당한 임팩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들어내는 그루브가 상당히 이국적이라, Roc Marciano라는 래퍼가 연상되더군요. 그에 맞게 지원해준 BANA도 대단하고요. 너무 짧은 앨범이고 어쨌든 Masta Wu의 랩이 조용조용하기 때문에 감상이 너무 휙 지나가는 느낌인 것 하나는 단점이라 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YG에서 나온 이후로 임팩트 있는 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것을 할지 이정표로 삼기엔 더 없이 적절한 EP였던 거 같습니다.



(5) twlv - ANTIFORMAL (2020.8.11)


 twlv의 새 EP "ANTIFORMAL"의 앨범 소개글은 '그냥 여름이니까!' 한 줄입니다. 요즘 여러 아티스트가 그랬듯 twlv도 여름 컨셉으로 만든 소품집이라는 거죠. 이에 맞게 가볍고 통통 튀는 비트에 댄서블한 그루브로 노래를 부르는 twlv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좀 더 템포가 있고, 라임도 많이 챙긴 느낌이라 R&B 보컬이라기보다 싱잉 랩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실제로 비트도 그런 트랩 류의 느낌이 많이 나고요.


 필연적으로 음악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보니 R&B 느낌을 예상했던 분들에겐 좀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정식 데뷔작이랄 수 있는 "벼락부자애들" 때도 이런 식으로 보컬이나 랩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긴 했었죠. 그래도, 곡들이 소위 여름 느낌에 너무 부합해서 전형적으로 들리는 건 아쉽습니다. 오히려 보너스 트랙 느낌의 진지한 트랙 "홀로"가 여운이 더 큽니다. 이런 감상이 취향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ANTIFORMAL"은 가볍게 만든만큼이나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앨범이 될 거 같습니다.



(6) Leellamarz & Panda Gomm - BAMBOOCLUB [B] (2020.8.12)


 미리 예고되었던 "BAMBOOCLUB"의 B 사이드는, 예상과 달리 "DOPE"가 수록되지도, 붐뱁의 분위기를 띄지도 않았습니다. 클라우드 랩이라고 해도 될까요? 이를 포함한 이모 트랩의 분위기가 물씬한 비트 위에, 흘리는 발음과 오토튠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히 초중반부 트랙들의) Leellamarz의 랩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새로운 시도 같습니다. Panda Gomm의 비트는 선이 명확한 편이지만 무드에 맞춰서 훨씬 로파이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라는 표현이 틀리면 말해주세요...). 그래도 항상 메인이 되는 악기 하나를 살려서 적당한 주조 및 디테일한 멜로디 메이킹을 통해, 비트가 흐리멍텅하지 않고 존재감 살게 하는 건 그의 특기인 듯합니다. 


 우리는 끊임 없는 허슬로 Leellamarz를 알지만 그는 여러 차례 이에 대한 강박감과 피로감을 언급한 바 있었고, 특히 '이제 뭘 더 해야할지 모르겠는' 상태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답은 [A]보다 [B]에 좀 더 잘 실려있는 듯합니다. Leellamarz하면 떠오르는 간드러지는 보컬은 "BAMBOOCLUB" 두 편에서 몽환적인 색채를 더해 표현되었고, 이런 실험이 [A]보다 [B]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양상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낸 색깔은 첫 트랙에서 얘기하는 '트랩 말고 내 것'을 한다는 말을 의미 심장하게 들리게 하네요.


 Panda Gomm과의 콜라보는 "BAMBOOCLUB" 뿐만 아니라 몇 개의 더블 싱글도 나온만큼 뮤지션 입장에서도 리스너 입장에서도 좋은 케미를 느끼게 해준 좋은 프로젝트였던 거 같습니다. Leellamarz는 너무 앨범이 자주 나와서 손해 보는 면이 많다는 평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 과정이 그를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뮤지션으로 만든 것은 틀림 없는 듯합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프로젝트로 돌아올지 기다려봅니다.



(7) Life of Hojj - Lover Boy Mixtape (2020.8.12)


 Clarity의 트리플 싱글이 신호탄인지, Life of Hojj도 새 오피셜 믹스테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믹스테입은 '바람둥이'로써의 화자를 설정하여 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놔 나름의 통일성을 꾀했는데요. 개인적으로 Life of Hojj는 사운드적으로 깔끔하고 기본이 탄탄하지만 (이는 Clarity 3인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그 이상의 뭔가 없이 심심함이 많이 느껴졌던 뮤지션이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조금 나은 것도 같지만, 아직 그의 목소리라고 특정할 수 있는 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건 여전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앨범이 그전 앨범보다 나은 건 그런 분명한 컨셉이 있어서, 곡들마다 몰입하기가 쉬웠고, 또 랩적으로도 전보다 발성이 살짝 더 탄탄한 느낌이라 듣는데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일 거 같습니다. 믹스테입으로 나왔지만 지금까지 그의 앨범 중 제일 앨범다운 탄탄함이 있었던 앨범 "Lover Boy Mixtape"이었습니다.



(8) Tabber - Deep End Mix Tape (2020.8.13)


 DEAN이 이끄는 you.will.knovv의 신예로 작년 말부터 각종 피쳐링 및 무대에 섰던 Tabber가, "3AM Freestyle"로 남긴 여운이 가시기 전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처음인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you.will.knovv는 DEAN의 존재감만으로 실로 범상치 않은 집단의 아우라가 풍겨왔었고, Tabber는 그에 못지 않은 음악성을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줍니다.


 스스로를 얼터너티브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Tabber의 음악에서 처음 풍겨오는 이미지는 '음산함'이었습니다. 대부분 2xxx!가 찍은 비트는 딥한 울림을 가지고 있으며, 이 위에 얹혀진 Tabber의 목소리는 그런 이미지를 한층 더 심화시킵니다. 중후한 목소리는 상당한 포스가 있습니다. Paul Blanco를 생각나게 하지만, 미국 R&B 스타일이랄 수 있는 Paul에 비해 Tabber의 음악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더욱 독특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옛날 The Weeknd가 살짝 연상되었습니다). 가사나 라임 구조도 딱 필요한 만큼의 얘기를 하고 빠질 수 있도록 깔끔하게 만들어진 거 같고요.


 믹스테입이라 그런지 뭔가 모르게 거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 자체도 풍기는 분위기에 나쁘지 않게 어울립니다 (다만 이런 느낌에 예민한 사람은 예민하게 느낄 거 같습니다). 실험성을 갖고 있지만 감미로운 DEAN이나 Miso와 반대편에 선 듯한 멤버라 그가 you.will.knovv와 함께 그려갈 그림이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트랙이 셀프 프로듀싱인 점을 생각하면 (2xxx!에 비해 디테일한 맛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다방면에서 활동할 것을 예상해봐도 괜찮겠죠.



(9) 서출구 - Spill (2020.8.13)


 행방이 묘연한 래퍼하면 늘 거론되던 서출구가 2년만에 16트랙이나 되는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Black Label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이번 앨범은 다른 회사를 통해 발매되었군요.


 앨범 감상 전에 명심해야할 것 하나는, 프리스타일 배틀 래퍼 서출구는 과거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서출구가 배틀 래퍼로 활동한지 오래 되었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이번 앨범이 배틀이라거나 '길거리' 같은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띄고 있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Spill"은 그 단어 의미 그대로 감정을 쏟아내는 앨범입니다. 슬픈 어조로, 때로는 격한 목소리로 배신감, 공허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가감없이 담아낸 결과 앨범은 자연히 애상적인 색을 띄게 되었습니다. 그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소문이 무성했던 ADV와의 불화가 연상되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고요. 전작 "COSTUMES"에서 보여준 것이 한 단계 진화한 버전이라 보면 편할 거 같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출구의 보컬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 보컬이 단순히 래퍼가 노래를 한다든지, 싱잉 랩을 했다든지 수준이 아니라, 정말 감정에 몰입하여 진지하게 하는 그 노래입니다. 타이틀곡 "그림자"만 봐도 랩을 찾아보기 어려운 곡인 것처럼요. 일단 '길거리' 서출구를 예상하고 틀었던 부분은 기겁하면서 노래를 끄게 만들기 충분하겠죠. 서출구 노래 실력이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특히 프로듀싱진 중 한 명인 leanon의 스타일이 얼터너티브한 느낌이 있어서 때로는 힙합보다는 감성 EDM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 서출구는 앨범의 유기성을 매우 신경 썼다고 하는데, 음... 나름 생각한 줄거리는 있을테고 이를 연상도 가능하지만, 사실 앨범 내의 조울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NWP" "CMRN" 두 트랩곡이 갑자기 우울한 곡들 사이에 등장한다든지, 결말부에서 "그림자"로 차분해졌던 분위기를 다시 "빌어먹을"로 끌어올리고 "Anyways"로 끝을 낸다든지. 동시에 가사가 쉽지 않은 편이어서 노래를 한 번 듣고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캐치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출구가 준비한 스토리라인에 밀착하여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dingo에 올라온 앨범 스포일러 영상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치우고 오직 랩 앨범으로만 판단한다면? 잘 하긴 하는데, 쉽게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스킬적으로는 전작보다 훨씬 화려해지긴 했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살짝 트렌드가 지나간 랩 스킬을 듣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서출구가 원래 랩 디자인으로 주목 받던 건 아니었습니다 - 과거 그가 했던 랩은 담백함과 촌스러움에서 왔다갔다 하던 면이 있었죠. 이제 와 이런 분위기의 곡에 그때 시절의 플로우를 가져올 순 없겠지만, 새로운 걸 찾아냈다기보단 이미 있는 걸 재활용해 가져온 느낌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워낙 그가 노래와 비트, 이야기로 연출하는 분위기가 진해서 온전한 랩 앨범으로 느껴지지 않는게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체로 일관성 있게 그려냈지만, 편하게 그 감정에 이입하기엔 부산스러운 장치가 너무 많았던 거 같습니다. 앨범 커버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목걸이를 대동하고 나타난 느낌입니다. 이 상태에서 16곡을 소화하는 건 좀 버겁더군요. 뭐, 이젠 '힙합스러움'이 반드시 앨범 퀄리티를 정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특히 "COSTUMES"와 비슷한 방향을 띄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서출구는 이런 뮤지션이 되었구나 생각하는게 옳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이런 변화가 낯설지 않게, 이제 자주 좀 모습을 비춰줬으면 좋겠군요. 일단 그의 가냘픈 보컬부터 적응을 해야할 거 같지만요.



(10) Northfacegawd - 700 EP (2020.8.14)


 STAREX 컴필레이션을 통해 재발견된 래퍼 Northfacegawd이 기세를 몰아 솔로 EP를 발표하였습니다. 컴필레이션에서 인상적이었던 그의 빡센 톤과 특유의 스웨깅이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컴필레이션에서도 그랬지만, 더도 덜도 않고 딱 필요한만큼의 가사를 뱉으면서, 곡마다 하나씩 뇌리에 박히는 인상적인 구간을 만들어내는게 상당한 능력 같습니다.


 앨범 크기가 크기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컴필레이션보다는 보여주는 모습이 적습니다. 그가 컴필에서 보여줬던게 비단 하드한 랩뿐만은 아니었죠 - 여러 가지 무드의 랩과 싱잉을 모두 선보였었으니까요. "700 EP"도 후반부 두 곡이 조금 다른 분위기였긴 하지만, 아무래도 비트가 전체적으로 비슷하고 단순한 분위기였기에 초반 세 곡은 특히나 비슷비슷하게 들렸고, 그래서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맞는데도 불구하고 금방 물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컴필레이션에서 본 모습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기에, 이번 EP에서의 아쉬움을 그에 대한 평가로 잇기는 섣부르고, 추후 좀 더 규모가 큰 앨범에서 다양한 모습을 다 뽐내는 걸 볼 수 있다면 좋을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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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8-21 21:11:56

굿

2020-08-21 21:18:16

 2002년부터 댄스디님을 알고있는데 여전히 대단하십니다^^

디씨트라이브에도 활동하시죠?

응원합니다. 닥터 댄스디님.

WR
2020-08-22 06:58:28

와우 2002년이면 제가 활동 시작한 해니까 정말 올드 유저 님이신거군요! 응원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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