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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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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21 19:06:24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다음주부터 2주간 숙영 훈련 끌려갑니다... 매우 우울합니다ㅠ 물론 군의관은 그냥 자리 지키고만 있으면 되긴 하는데 전파 안 터지는 곳으로 간다하니 제 머리가 터집니다.

훈련 기간 동안은 월-금 하루 한 앨범씩 정도만 인스타에 올려보려 합니다. 하다가 안 되면 그냥 중단하고..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anta Paine - Santa Presents (2020.7.31)


 Tommy Strate의 믿음직한 비트메이커 파트너 Santa Paine이 저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걸린 작은 콜라보 트리플 싱글을 발표한데 이어, 정규 앨범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소속사가 "Kim's Lounge"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걸 보면 회사는 준비 중인 거려나요.


 전작 "Quarantine"에서 피아니스트의 면모를 보였던 것처럼, 이번 앨범도 시작과 끝, 그리고 타이틀곡에서 그의 피아노 솔로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아주 감성적인 앨범이 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죠. Tommy Strate와의 작업에서 보여줬던 성격의 이모 트랩은 초반을 지나 조금씩 나오면서, "검머외"에서 텐션를 올려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론 이 장르 차이가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그니처 사운드가 느린 템포라 박자가 안 맞는 것도 5% 정도 작용합니다). 사실 충분한 호흡을 가지고 이뤄진 전환이었고, 하이 텐션이 오래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괜히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피아노가 주가 되는 파트의 경우 말 그대로 악기가 거의 피아노만 등장하기 때문에 곡은 미니멀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이건 중간에 장르가 바뀌어도 어느 정도 이어집니다. 사실 Tommy Strate의 음악 자체가, 듣기에 따라선 매우 심심하고 조용하고 감질맛 나는 느낌이었죠. 이 말은 Santa Paine의 앨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지만, 그래도 본작에서는 그만의 감성을 좀 더 가져오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 비교하자면 둘 다 멍하니 가라앉은 무드 같지만, Tommy Strate는 술이나 약에 취해서 (...), Santa Paine은 우울에 취해서 같은 느낌? 그런 Santa Paine의 감성을 뻔하지 않게 풀어낸 게 EK와 Owen의 피쳐링이었던 거 같아요. 특히 EK의 싱잉 랩이 좀 재밌더군요.


 어쨌든 심심한 맛이 있는 앨범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모 트랩에 대한 호감이 있어야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isemasterminsu의 예상치 못한 등장은 작지만 언급하고 넘어갈만한 재밌는 이벤트였습니다. 조금 과장되게는, 트랩이라는 상반될 것 같은 장르에 피아니스트라서 낼 수 있는 색깔이 스며들어 낸 작품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한편으로 '텐션 높은 구간'에는 "High Surf"라는 다음 EP를 예고하는 듯도 한데... 거기선 다른 걸 보여줄 거 같으니 기다려봅시다.



(2) Ourealgoat -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 (2020.8.1)


 끊임없는 허슬을 보여주는 Ourealgoat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으로 그가 올해 발표한 곡이 50곡을 넘어섰으니 정말 놀라운 작업량입니다. 이런 작업량 덕분에 Ourealgoat의 독특하고 매니악한 톤은 훨씬 친근해졌고, 그의 음악이 가진 특징도 뚜렷해졌습니다. 얼핏 트랩으로 분류해야할 것 같은 사운드지만 과거 붐뱁 음악 같은 비장한 메세지와 이를 돕는 그의 비트, 톤이 가진 여운과 양이 많은 가사, 그리고 적재적소에 위치한 라임 등을 통해 마디마디를 꽉 메우는 플로우,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으려나요. 이렇게 트랩과 붐뱁의 양쪽 특징을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취한 덕분에 붐뱁충인 저도 생각보다 빨리 그의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죠.


 이번 앨범도 위의 특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제목과 앨범 커버부터 비장함이 돋보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Ourealgoat는 전곡을 프로듀싱하였는데, 콰이어나 스패니쉬 기타를 사용한 비트들이 투사의 분위기를 돋굽니다. 사실, Ourealgoat의 음악에 대해 이번 앨범을 가지고 더 논할 건덕지는 많지 않습니다. '첫 정규 앨범'이라 하지만 실은 스타일이나 볼륨이나 그가 발표했던 EP ("Professor in the Jungle"이 제일 비교할만 하겠군요)와 다를 바 없거든요. 어떤 면으로는 EP보다 더 정돈되고 안정적이라,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작업량이 많은 래퍼는 늘 매너리즘에 갇힐 리스크를 지니고 있습니다. Ourealgoat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워낙 독특한 스타일이라 개성이 완전 빛을 잃진 않았지만, 점차 스펙트럼의 테두리가 굳어가는 듯한 느낌은 아쉽습니다. '정규 앨범'이란 타이틀을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정규에 걸맞는 범위를 커버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해서 이번 앨범은 듣기 전 기대치에 비해서는, '그냥 11곡을 더 냈구나' 정도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첫 정규가 전환점이 되어, 앞으로 계속 관심을 끌 수 있는 뮤지션으로 자리잡기를 기원합니다.



(3) ROOTS - ROOTS (2020.8.2)


 ROOTS는 일렉 계열에서 DJ로 로컬 클럽씬에서 활동해오던 아티스트입니다. "FA" 소속으로, 2019년 말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싱글을 발표하고 있는데요, R&B, 힙합 같은 것도 슬쩍슬쩍 건드렸지만 뿌리는 테크노 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EP "ROOTS"는 FA 소속의 래퍼들 Blase, Dive, Ponyromo 등의 참여로 힙합과의 콜라보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본인의 뿌리인 테크노 성향이 짙은 작품으로 (그래서 ROOTS인가...), 동일한 포지션으로 곡을 발표했던 AViN의 앨범이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곡들은 테크노 하면 생각나는 날카로운 신스음과 듣기만 해도 조명이 번쩍이는 것 같은 다이나믹한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 마지막 두 곡은 분위기에 변주를 주지만 사실 마지막에 있다보니 보너스 트랙 같은 느낌이 더 있달까요. 노래들이 이런 전형성을 띄고 있고, 짧고 단순하기 때문에 앨범은 금방 지나갑니다. 워낙 하드한 트랩을 해왔던 피쳐링 래퍼들이 많아서 비트와의 조합은 좋긴 한데, 어딘가 뻔한 면모가 많이 보입니다 (작은 앨범이기 때문에 제작 의도 역시 거창하진 않았겠지만). 하드 트랩이나 테크노 계열의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가볍게 돌려보길 권할 순 있겠지만, 저에게는 휘발성이 강하게 느껴졌던 "ROOTS"였습니다.



(4) Shinin'Cloud - HOWTOBECROOK (2020.8.2)


 Shinin'Cloud는 어떤 신인인가 하면서 정보를 찾다보면 뜬금없이 6년 전 나온 싱글이 하나 나옵니다. 당시 High End Skool 크루 소속, MC Meta & DJ Wreckx 랩 컴피티션 우승 경력 등이 언급되지만 이미 너무 옛날 얘기 같기도 하군요. 본작은 2015년 믹스테입 "New Day"를 끝으로 긴 공백을 가지던 그에게는 컴백 작품이기도 합니다. 최근 "DI-ANA"를 통해 본인의 음악관을 펼친 Alive Funk가 전곡 프로듀싱을 해주었다는 점이 일단 특기할 만합니다.


 이 앨범을 저는 들어볼만한 '붐뱁 앨범'으로 소개 받았고, 그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들으면서 이 소개 문구는 본작에 대한 심각한 오해 및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 물론 붐뱁의 문법에 따라 짜인 앨범이 맞습니다. 특히 거칠게 박아넣는 랩톤은 Loxx Punkman을 쉽게 연상시키는 거친 매력을 가지고 있죠. 헌데 이외에는 신기하리만치 고전적인 문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큰 실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선 붐뱁에서 중요시되는 땜핑 있는 리듬감이 이 앨범은 상당히 약합니다. 이번에 실린 Alive Funk의 비트가 베이스가 약하고 의외로 단조로운 루핑 구조를 가진 점 때문에도 그랬지만, Shinin'Cloud의 마디를 꽉 채우는, 4/4 박자를 반쯤 무시하는듯 내달리는 플로우 역시 문제의 중심(?)입니다. 랩 설계할 때 음악적인 것에 고민 자체가 약했는듯 리듬에 있어서의 라임의 역할이랄지, 훅의 역할이랄지 (훅이 없는 곡도 꽤 있습니다) 하는 양념들이 많이 빠져있습니다. "King's Grave"나 "O World" 같은 곡은 이런 언급한 문제들이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개성이 있고 잠재력이 있는 래퍼입니다. 묵직하게 공격하는 톤도 그렇고, 드넓은 어휘 폭을 갖추어 비장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시적인 가사도 꼽을만 합니다 - 사실 가사의 경우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화려하게 전달하려다보니 전달력이 썩 좋진 못합니다. "ONE ID"란 곡이 스토리텔링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스타일에 맞는 프로덕션을 만나거나, 아니면 본인이 조금 힘을 빼고 우리에게 '낯익은' 작법을 차용하는 것도 괜찮은 길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실제로 앨범에서 마지막 두 곡은 제일 리듬감이 살아있어 베스트로 꼽을만 한데, 이 두 트랙이 그의 2015년 믹스테입 수록곡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붐뱁 앨범'이란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말에 관하여, 저는 그의 스타일이 오히려 뭔가 과거에 없던 스타일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지극히 고전적인 장르 '붐뱁'의 잣대를 적용하려니 아쉬운 부분이 많아지는 거죠. 그를 위해선 본인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좋은 파트너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상적인 후속작으로 다시 돌아와줬으면 좋겠군요.



(5) RAUDI - SEOUL NIGHT PART II (2020.8.3)


 본작은 2019년 9월 나왔던 "SEOUL NIGHT"의 속편입니다. 그 사이 RAUDI는 래퍼로써의 모습도 가끔 보여줬지만, 비트메이커로써 여러 개의 싱글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왔죠. 


 "SEOUL NIGHT PART II"는 트랩이라는 정체성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마치 사이드 A와 B처럼 전작과는 상반된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전작은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와 로파이 신스 등을 활용하여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형성했다면, PART II는 (앨범 소개글에 나온 단어를 인용하여) 'lit'한 분위기의 트랩입니다. 이를 위해 틴 드럼 같은 가벼운 악기로 좀 더 빠르고 텐션 있게 곡을 전개해갑니다.


 전작에 비해선 좀 아쉬운 앨범이었습니다. RAUDI의 음악이 엄청나게 독특했던 건 아니고,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이번 앨범은 더욱 트렌드에 부합하는 비트를 뽑은 느낌이었습니다. 좋게 들은 피쳐링 벌스도 있지만, 대개는 이 위에 정석적으로 박자를 타서 그렇게 재미가 많이 있진 않았던 거 같아요 (ROOTS의 앨범 후에 이 앨범을 들었는데, Blase의 느낌이 두 앨범에서 거의 똑같아서 과장 좀 섞어 같은 앨범인줄...). 그래도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면, Chillin Homie의 완전 트랩 시도와 EPTEND의 쫄깃한 랩, Paloalto의 단단한 클라스를 인증하는 벌스, 그리고 KOR KASH 정도가 있겠군요.


 아마 이런 음악도 요즘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게 드릴...인가요?-_-) 국내 힙합보다는 빌보드에서 좀 더 자주 들을 것 같은 비트. 사운드 구현, 밸런스 등은 제가 내공이 부족해서 다루지 못하고, 단순히 느낌만 보면 그래서 조금 더 뻔하고 심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Sneak Peek"가 무엇으로 이어지는 것일지 아직은 호기심이 이는군요.



(6) yovng trucker - yorter (2020.8.3)


 "S K I D" 시리즈를 이어가던 중에 나온 3곡짜리 작은 앨범입니다. yovng trucker가 최근 네이버 나우 "Soul Food"에 나와서 되는대로 작업하고 대충 곡 모이면 앨범으로 낸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부산물인 거 같군요. 3곡짜리니 할 얘기가 많진 않지만, "S K I D" 시리즈에 비해 발랄한 분위기는 눈에 띕니다. 다만 비트가 STAREX 크루 느낌의, 제가 살짝 알러지가 있는 부류라서 호감이 완전히 가진 않네요. yovng trucker의 새로운 스타일도 적응은 아직 안 되었지만, 그래도 발랄한 분위기 속의 유쾌한 멜로디가 싫진 않네요. 특히 본래 갖고 있던 유머 센스랑 조화가 좋아서, 개중에는 세 곡 짜리라도 충분히 임팩트를 느끼실 분이 있을 거 같습니다.



(7) Clarity - 삼위일체 (2020.8.4)


 몰랐는데 Clarity 이름으로 나온 앨범은 1년 반만이군요. 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멤버들이 나름대로 계속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공백기라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세 멤버 모두 다 깔끔한 랩으로 승부를 해왔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첫번째 장점도 깔끔함입니다. 개인적으로 늘 신경 쓰였던 Life of Hojj의 포지션이 이번 앨범에선 그래도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거 같아서 덜 찜찜하고요. 깔끔한 랩에 가사와 리듬도 적당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센스를 지니고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비트가 너무 빈약하게 들렸습니다. 잘 못 만들었다기보단 스타일 문제겠지만, 안 그래도 심심하게 들릴 수 있는 랩에 비트가 조용조용하다보니, 신나게 하려고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까지 그냥 심심하게 지나갑니다. Donutman이 저번에 "Raphouse on Air" 나와서 부른 건 좀 다른 색깔을 시도하려는 모습이었는데 Clarity는 이렇게 깔끔함 하나로 승부를 보려는 걸까요. 지난 앨범과의 텀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아쉽군요. 작은 앨범이기 때문에 아직 보여주지 않은 뭔가 있다고 믿고 기다려보겠습니다.



(8) Zene the Zilla - FLOCC (2020.8.5)


 스스로 똥을 싼 경험이라고 언급했던 쇼미 시즌 8이 지나고 Zene the Zilla가 새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주 작업을 했던 SLO가 이번에는 아예 총 프로듀서로 전곡의 비트를 프로듀싱 또는 공동 프로듀싱했고요. FLOCC는 "Family Love Over Cash or Clout"의 약자던데, flock과의 발음 유사 때문인지 '새떼' 컨셉 (?)이 여기저기 등장하는군요.


 Raphouse on Air에서 Zene the Zilla는 원래 새 앨범이 랩쉿이 될 예정이었으나 SLO의 권유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찬성하는 결정입니다 - 물론 S+FE 크루에서 보여준 류의 트랩 랩도 좋지만, Zene the Zilla가 진정 빛을 발하는 건 날렵하면서 파워풀한 싱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의 붐뱁 트랙은 어색하게 느끼는 편입니다). 해서 이번 앨범은 이 스타일에 완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ITX"에서의 화려한 춤사위가 연상되는 다이나믹한 탑 라인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플로우 설계부터 꽤나 스킬풀하게 다가옵니다. 


 다만, '정규'라는 단어의 고전적인 의미에 비해선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빠지게 들립니다. 이유는 짧은 트랙들도 많거니와, 맨뒤 두 트랙을 제외하면 분위기를 띄우는 데 집중한 트랙이 대부분이고, 그 분위기를 띄우는 패턴이 거의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 특히 가사 표현력 같은 건 전부터 꽤 클리셰적이라고 느껴지곤 했어요. 어떤 트랙은 멜로디 운용 같은데 있어 오히려 너무 과하지 않았나 들리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가볍게 이어지던 중에 등장하는 후반부 감성적인 두 트랙도 좀 뜬금없이 들리고요. "감기" 같은 감성을 할 줄 아는 걸 알기에, 전체적인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시도를 조금씩 해볼 수 있진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도 쇼미의 만회를 위해 열심히 공을 들인 티는 납니다. SLO의 비트는 가끔은 뇌절 같이 들려도, 어쨌든 들으면 흥이 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I GOT" 같은 건 꽤나 신선한 시도였다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우러나오는 아우라는 아쉬울지언정, Zene the Zilla가 선보일 수 있는 스킬 면에서는 최대치에 가깝게 보여준 앨범이었던 거 같습니다.



(9) H!GHLY BASS - THAT'S ENOUGH (2020.8.7)


 du7 크루의 컴필레이션이 발표된 후 첫 타자는 H!GHLY BASS였습니다. du7는 원래 어느 하나 독특한 멤버가 없지 않았고, H!GHLY BASS는 상상 가능한 가장 저음의 톤으로 랩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니까 전곡 프로듀싱을 Lemac과 본인이 했더군요... 혹시 LnB의 Bass가 이분인가요?


 "THAT'S ENOUGH"에 대한 느낌은 du7에서 느꼈던 감흥과 거의 비슷합니다. 로파이한 비트 위에 극히 절제된 로우톤과 씨니컬한 어투. 조용히 듣고 있다보면 앨범이 어느새 끝나있습니다. du7 컴필레이션과 마찬가지로 매우 재밌는 앨범이긴 한데, 분위기가 워낙 바닥에 가라앉아있어서 어느 상황에 추천을 해야할진 모르겠네요 - 그렇다고 진지한 앨범 느낌은 아니거든요. 이건 독특한 스타일의 노선을 걷는 래퍼들은 한 번씩 마주치는 문제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개성이 강하다보니 앨범 내내 같은 소리만 듣다 끝나는 것도 누군가에겐 질릴 수 있겠습니다 - 사실 이건 후반부로 가면서 비트의 텐션이 조금씩 더 뜨고, 피쳐링진이 적재적소에 있으며 앨범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개성이 강하다보니 사실 du7 컴필에서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예상되던 그대로 솔로 앨범이 나온 것 같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군요. 그래도 리스너의 귀를 사로잡을 무기 하나 있는 걸로 아직은 괜찮은 것도 같습니다. 다음 앨범을 들으면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10) D-Hack - D-SEKAI (2020.8.8)


 "D-SEKAI"는 D-Hack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자주 중소 규모의 EP를 내왔던 그가 작년 9월 "D TO YUMELAND" 이후로는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 단위의 결과물입니다. 그전 앨범인 "D-CLASS HERO"는 D-Hack이 자신의 음악 인생 1막을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었고요. 이 모든 정황이 "D-SEKAI"는 왠지 다른 앨범일 거 같다는 분위기를 풍기게 하고, 무척 다행히도 실제 내용물도 그렇습니다.


 D-Hack의 스타일은 '오타쿠 트랩'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립니다. 커버, 뮤비, 음악 무드 어느 하나 '알록달록'이란 말이 어울리는 색깔과 경쾌한 비트, 빠른 템포, 신나는 싱잉, 일본어 가사 등등 그 분위기를 축으로 음악이 모두 형성되어있죠. 제가 D-Hack에 호감을 갖지 못했던 것은 붐뱁충으로써 장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겠지만, 기본적으로 억센 그의 목소리가 딱히 경쾌한 싱잉과 어울리진 못하고, 멜로디를 캐치하게 짜지도 못한다고 느껴서였습니다.


 "D-SEKAI"는 싱잉 래퍼로써 한 단계 진화한 D-Hack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억센 목소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감정을 담는 도구로 활용하게 된 듯해요. 그래서 통통 튀는 비트 대신 좀 더 강렬한 비트를 택했고, (당연히 진짜 락에 비할 건 아니지만) 락적인 감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번 앨범은 그동안 앨범 단위 결과물의 거의 전곡을 책임졌던 J;KEY의 비중이 줄어들고 Pateko, 888UnPublic 등 여러 비트메이커가 참여를 하였습니다. J;KEY 본인도 "UNDER THE SEKAI" 같은 좀 더 빵빵한 비트를 찍어준 것 같지만, 어쨌든 이러한 결과로 풍부하고 폭 넓은 프로덕션이 가능해져 듣기 좋은 앨범이 완성된 듯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D-Hack의 어조는 전작들보다 진중합니다. 대책 없는 긍정적인 기운은 가치 있지만 (물론 본능적으로 장르에 대한 거부감 있는 리스너의 입장으로써) 오글오글대기도 했는데, 그런 느낌이 완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에 본인의 성공에 대한 욕구와 열등감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토로하는 게 풍부해진 프로덕션과 잘 맞물려 더 몰입하게 해주었습니다. 음악 인생 새로운 챕터를 선고하고 나온 EP "D TO YUMELAND"는 전혀 변한게 없지만, 이번 앨범이라면 새 챕터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입니다. 듣기 전부터 편견이 생기게 하는 이름이었으나 이제 그 편견을 깰 때가 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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