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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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5 16:23:48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번 글의 두 번째 앨범 "Plan A"가, 이 시리즈에서 1000번째로 다룬 앨범이었습니다.

카운트가 다르다보니 힙플에 올린 거는 아직 94편인데, 추후 100편이 되면 그건 그거대로 상당한 감흥이 있을거 같군요ㅎ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Kidk Kidk - 빈민가의 꿈2 (2020.7.24)


 EP를 연이어 내던 Kidk Kidk이 비교적 긴(?) 공백기를 거쳐 새 앨범을 냈습니다. 그의 첫 앨범이랄 수 있는 "빈민가의 꿈"을 계승한 앨범이로군요. 들으면서 직전 작업물이자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뺄 수 없는 수퍼비의 "Kidk Kidk (Feat. Superbee)"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했습니다. 직전 "Kidk Kidk From" 시리즈라든지 그전 앨범들은 그의 특징이 잘 안 사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저음의 톤이 랩이든 싱잉이든 뚜렷하게 살아있거든요. 특히 노래만 들어서는 가난한건지 부자인건지 알 수 없던 전작들에 비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빈민가 출신'의 이미지를 좀 더 잘 그려냈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걸리는 건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조용하게 믹싱된 것? 다른 앨범 듣다 이 앨범을 들으면 소리가 작고, 그래서 더 심심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호미들의 피쳐링 벌스도 믹싱의 영향을 받은건지 덜 깔끔하게 들렸어요. 어쨌든 전작들보다는 확실히 Kidk Kidk을 기억할만한 건덕지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앨범에서도 좋은 음악 들었으면 좋겠네요.



(2) Osshun Gum - Plan A (2020.7.25)


 리스너들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던 Osshun Gum의 1집이 발매되었습니다. 인스타에 앨범 모드라고 쓴게 진짜 앨범 모드였을 줄은... 아무튼, Just Music 영입 이래로 끊임없이 Swings의 결정이 옳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만큼 작업에 있어 많은 부담이 따랐을 것입니다.


 활동이 얼마 없었기에, Osshun Gum이란 뮤지션의 이미지는 사운드클라우드 시절에 머물러있습니다. 고등래퍼 때의 "뭔말알"이나 "띵", 혹은 "Series" 등 컴필에서의 모습은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긴 듯합니다. 본작은 Osshun Gum이 겪은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의미가 크며, 일부 팬들에게는 그동안 아닌 척했던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과거 모습을 너무 기대했을 때 실망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비해 "Plan A"의 Osshun Gum의 변화는 '성숙'과는 좀 다릅니다. 당연할 수 있지만 혼자 하던 때에 비해 사운드의 풍성함, 견고함 정도는 달라졌습니다. 그의 이모 힙합이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으니 이건 긍정적으로 봐야겠죠. 하지만 대개는 그가 사클에서 보여준 방향으로의 깊이가 더해졌길 바랐을테고, 변화의 방향이 그쪽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성 면에서는 얕아진 거 같습니다. 그런 메세지보다는 사운드로 더 승부를 보려고 했단 느낌이 듭니다.


 때문에 앨범 중반의 업되는 분위기의 곡은 마치 테크노 댄스곡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초반과 후반이 그의 과거 감성을 계승하는 곡일텐데, 전보다 더 중독적인 멜로디와 훅 메이킹과 전자음 활용에 포커스가 맞춰진 듯합니다. 뭐 사실 이런 것도 능력이기에, 굳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memory" 수록곡들로 남아있는 그의 능력의 다양한 활용이 좁아진 듯한 건 아쉽군요.


 글을 좀 횡설수설 쓰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고, Osshun Gum만의 개성도 분명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의 감성에서 더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포기한듯한 느낌이 아쉽습니다. 제 생각에 그 시절 감성은 이제 Wet Boyz가 하고 있는 거 같네요ㅎ 오래 준비해온 앨범이란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습니다. 걸린 시간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편한 옷을 찾는데 쓰였을 거 같군요. 리스너로써 느끼는 낯섦은 변화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언젠가 겪어야했던 과정이라 치고, 그냥 이제 적응할 수 있도록 이대로 자주 모습을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이 구축해나가야할 것이 적지 않아보이네요.



(3) DJ Wreckx - My Kona (2020.7.26)


 저번 앨범과는 짧은 간격을 두고 발표된 인스트루멘털 앨범입니다 - 부지러한 활동을 예고하는 전초전인 듯하군요. 이 앨범은 그가 2년간 지냈던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코나에서 있었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을 포근하게 불러일으키는 무드의 편안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전작과 제작 방식부터 차이를 끌어내는 부분으로, 전작에서 살려냈던 전통적인 붐뱁 스타일을 기대하고 들었다간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트랙들은 간단한 멜로디 드럼 루프 위, 잼을 하듯이 연주되는 키보드, 기타, 색소폰 등이 들을 거리입니다. 노래들의 배경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들을만 해보입니다. 다만 여행을 못 가는 시국이...



(4) Khundi Panda - 가로사옥 (2020.7.26)


 네이버 나우 오디오 쇼 "Broken GPS"에 Dejuva Group이 출연했을 당시, BewhY는 Khundi Panda의 "가로사옥"에 대한 계획만을 듣고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이는 앨범의 설계부터가 얼마나 치밀하고 매력적이었는지 보여주는, '건축 3부작'의 훌륭한 피날레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하는 일화였습니다. 그리고 여느 걸작들이 그렇듯(?) 오랜 세월 확실치 않은 발매 시기를 가지고 떠돌다가, 드디어 온전한 앨범 형태로 "가로사옥"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저는 "가로사옥"이 최근 나온 "녹색이념" "밭" "Founder" (개인적으로는 "오메가"도 추가) 등을 잇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로사옥"은 위가 아닌 앞으로 길어지는 집, 다름아닌 그가 거쳐온 시간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루키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러 자신에 대한 어떤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의 심리를 면밀히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Khundi Panda를 고집이 세고 강한 인간이라 생각했기에, "가로사옥"도 그런 내용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내용물은 놀랍게도 인간적이고 여렸습니다.


 끊임없는 열등감, 질투심,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은 이번 앨범의 키워드로, 이를 솔직하게 끄집어내기 위해 Khundi Panda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언급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 리스펙도 디스도 아닌 새로운 형태로 씬의 뮤지션을 소재로 삼는 것은 꽤 신선한 시도(?)로군요. 흔하지 않은, 또는 만들어낸 단어들로 이루어진 제목들은 주제를 어떻게든 명확한 심상으로 조각하려는 의도이며, 여기에 각 트랙마다 붙은 아트워크도 감상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본래부터 구체적인 표현을 즐겼던 Khundi Panda의 가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번에는 전곡이 한글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를 낙심하게 했던 여러 과정을 거쳐, 후반부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부터 "집"에 걸친 현실 인정의 결말은 흔히 보던 고난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부정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부정'에서 '수용'까지의 5단계가 떠올랐습니다 (이 비유를 "밭" 감상 후기에 적은 적이 있죠).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닫힌 방을 마주하는 이곳에서, 계속 벗어나고자 하다 좌절하는 것이 아닌, 이를 또다른 집으로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큰 여운이 남습니다 (이때의 일러스트는 척 봐선 탈출을 그리고 있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블랙박스"의 조급한 심정과 그것을 반영한 빠른 드럼은 "집"의 긴 호흡과 여운 짙은 반주와는 상당히 상반됩니다.


 이런 음반은 항상 사운드를 핑계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Khundi Panda의 톤은 강하고 날카로운 데다, 플로우를 짜는 패턴에 특정 공식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터라 (마디 첫 글자의 강세나 'ㅍ'의 파열음, 리듬을 살짝 건너뛰어 조금 빠르게 타는 방식 등) 조금이라도 불호인 사람은 쉽게 질리게 됩니다. 벌스가 거의 같은 템포로 이루어지고, 숨고르기를 해줘야할 훅이 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Khundi Panda의 산문체와 맞물려 가사가 감상의 부담이 되고 사운드는 장황하게 들리기 쉽습니다. 개인적으론 더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것을 비트가 잘 보완해줬다 생각했습니다 - 아니나다를까 대부분의 비트가 스토리에 따른 변주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의 화음을 담고 있습니다. 전부 흡족스러웠지만, 이번에 처음 들어본 yeonju라는 비트메이커의 비트가 상당히 인상적이더군요.


 해서 "가로사옥"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음반입니다. 이를테면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어폰으로 들을 앨범은 아니죠. 대신 천천히 가사를 곱씹고 소화하는 수필입니다. 이런 앨범이 누군가에겐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만, 저는 곱씹을수록 많은 맛이 우러나오는 작품들이 너무 좋습니다. "가로사옥"은 그동안의 걸린 세월이 이해될만큼 심오한, 한 뮤지션의 진정성 넘치는 고백의 기록입니다. 리스너로써 부끄러울 수 있는 얘기를 털어놓아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네요.



(5) 스카이민혁 - 라이프 세이버 (2020.7.27)


 예상대로(?) 두 달이 되지 않아 나온 그의 새 정규 앨범입니다. 의외로 조금 다른 느낌이 있기는 하네요. 전작과 직접 비교하자면, 전작의 '하드코어 스타일'은 빼고, 언제나 앨범에 담아내던 긍정 정신은 살아있는 반면 앨범의 절반 정도에서 진지한 모습을 담아내려했습니다. 무드를 어떻게 잡든 남녀노소 전부 이해에 어려움이 없을듯한 직설적인 화법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진지한 곡이 안 어울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던 거 같아요. 빈첸이 피쳐링으로 참여했다는 것도 재밌고요.


 이외에는... 익히 알던 스카이민혁의 곡들입니다. 휴식기를 짧게 가졌기도 하지만, 작업 기간을 더 가졌다고 해서 스타일이 바뀌진 않았을 거 같네요. 안 해본 감성들을 해보려는 건 알겠지만, 근간이 되있는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보니 그닥 새롭게 느껴지진 않는 거 같아요. 그게 어떤 면으론 장점 같기도 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설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겠죠. 이번 앨범도 이 이상은 할 말이 없군요.



(6) RAVI - RAVI SUMMER EP "PARADISE" (2020.7.28)


 정규 앨범 발표까지 바쁘게 달렸던 Ravi가 이번엔 꽤 오랜만에 작은 앨범을 냈습니다.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여름을 노린 EP라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원체 그가 만들어오던 음악이 트렌디하긴 했는데, 여기에 그의 스타일의 여름 코드가 적용되니 상당히 팝적인 음악이 완성되었습니다. 때문에 노래를 들어보면 가요 앨범을 듣는 기분이 상당히 많이 납니다 (몇몇 곡은 뮤직비디오도 머리 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맞춰 화려한 랩 대신에 대중적인 코드의 싱잉 랩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예전처럼 귀가 피곤하진 않습니다. 대신에 듣는 재미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 "IF I"에서 BIG Naughty와 비교해보면 벌스에서의 창의성이 비교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낸 앨범들이 다 좋아할만한 건 아니었지만 (실은 싫어하는 면이 더 컸...) 그래도 주목할만한 포인트는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저에겐 별 인상 없이 지나갈 거 같습니다. 애초에 한 레이블의 수장이자 아이돌 멤버 출신으로써, 타겟층을 다르게 잡은 앨범을 내는 게 전혀 나쁜 전략은 아니지만요.



(7) Coral J - Aquarium (2020.7.28)


 Coral J는 비트메이커로, Sharkrama 및 그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있던 Kerykeion, Ruve 등이 소속된 Hypekidz에 소속되어있습니다. 과거를 열심히 찾아보면 YJuneS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작품을 2016년부터 찾을 수 있지만, 이런 이유로 Sharkrama의 앨범에 참여한 비트를 통해 접한 분이 제일 많을 것 같습니다. 역으로 이번 EP에 수록된 네 곡 중에 세 곡이 Sharkrama 참여곡인 걸 보면 서로의 커리어에 꽤나 비중을 차지하는 사이 같습니다.


 수록곡들은 전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Coral J는 이런 음악을 하는 비트메이커다 라고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사실 곡의 짜임새 자체는 꽤 기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곡이 별로인 건 아니지만 또 엄청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고, "초심" 같은 곡은 특히 보컬 파트에서는 비트가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트보다는 Sharkrama가 본인 앨범에서 안 보여준 스타일을 좀 보여줘서 그걸 듣는데 더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Sharkrama가 스타일의 맛이 더해지고는 있어도 여전히 속사포의 단조로움이 있고, 비중 있는 피쳐링진이었던만큼 앨범을 건조하게 만드는데 약간은 보탠 것 같네요.

 

 본격적인 첫 행보이니 거창하게 뭐가 있다기보단 작은 목표만을 세운 앨범 같습니다. 실제로 아직 얻을 수 있는 건 Coral J라는 비트메이커가 있다는 정도뿐. 그 이상의 성취는 조금 더 후를 기다려봐야할 것 같네요.



(8) 추서준 - Cold/Warm (2020.7.29)


 추서준은 사운드클라우드 등지에서 활동하던 래퍼 겸 보컬로,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화려하고 레어한 피쳐링진에 호기심이 동해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앨범 소개에 보면 본작은 '갑자기 만들어보고 싶어서 만든' 앨범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의미를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곡들이 대개 짧고 조용하여 정신을 차리면 앨범이 끝나있는 느낌입니다.


 추서준의 보컬 스타일 자체가 가라앉아있고, 오토튠이 아주 살짝 걸려있어 마치 허스키한 톤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 나는데, 비트마저 상당히 감질맛 나게 찍혀있어서 뭐랄까...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잘 짜는 거 같긴 한데, 곡들이 상당히 흐린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곡 길이도 짧은데 피쳐링 벌스까지 껴있는 경우 정말 스쳐지나가는 느낌...


 이런게 굳이 나쁜 점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앨범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취향으로는, 이런 무채색의 밀도 낮은 앨범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다시 돌릴만큼 끌리지도 않는군요. 이게 '갑자기 만들어보고 싶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타일이 이런건지, 아티스트에 대해 모르는게 아직 많아 더 많은 판단은 보류해야겠습니다.



(9) Dbo - CIAO (2020.7.30)


 첫 정규 앨범 "심현보"가 있은 후, Dbo는 바쁘게 믹스테입 "4"에 이어 EP "CIAO"를 발표하였습니다. 솔직히 "4"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건너뛰어버렸고 (...) "CIAO"를 듣게 되었는데, 어떤 의미로 충격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들어본 Dbo의 곡들 중 제일 깔끔하고 감미로운 곡들이 담겨있습니다. 이게 마냥 이전 곡들을 비하하고 이번 곡을 찬양하는 건 아닌 것이, 원래 Dbo는 음정, 발성, 박자에 대한 통념을 무시하고 하는 랩으로 유명했었단 말이죠. 근데 이번 곡들은 음정이나 박자가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물론 발성 부분이나, 군데군데 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마저 없었다면 Dbo가 아니었겠죠. 그래서 들으면서 이번에 믹싱을 맡은 Aepmah (구 소리헤다)가 '실수로' 모든 음정과 박자를 튜닝해버린게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음모론을 제외한다면, 어쨌든 껄렁해보이던 한 사람이 갑자기 정장을 입고 나타나 그윽하고 기품 있는 노래를 부르는 신선한 충격을 맛 볼 수 있습니다(?). Gaka 프로듀싱이라고 트랩 삘 나고 그런 거 없습니다.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랩보다는 감성적인 노래에 포커스가 맞춰져있기 때문에 Dbo에게서 예상치 못하던 모습을 접한다는 것에 엄청 색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Dbo의 랩이 '안 깔끔해서'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굳이 좋은 멜로디의 곡이 나왔는데 싫어할 필요 있나 싶기도 하네요.



(10) 박대현 - Nomadic Dann (2020.7.30)


 믹스테입 "Nomadic Dann"은 박대현이라는 래퍼의 첫 작업물입니다 - 제가 디깅을 못한 걸 수 있지만 따로 나오는 건 없군요. 제목처럼, 그는 nomad (유목민)처럼 옮겨다니며 살았던 경험을 이번 앨범에 녹여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곡들이 조금씩이나마 '이동'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죠. 즉 이 앨범은 이야기를 풀기 위한 앨범입니다.


 첫 작품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괜찮게 빠진 앨범입니다. 톤이 완전하진 않아도 꽤 안정적인 편이며, 부담스럽지 않아 이야기를 들려주기 적절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사의 경우도 괜찮은 수준을 보여줍니다. 담겨있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여러 가지 답답함, 슬픔, 갈망 등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과하지 않고 덤덤하게 일관된 어조로 전달된 부분이 좋았습니다. 앨범의 거의 모든 요소가 이 이야기를 축으로 만들어져있고,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앨범이 피할 수 없는 건 듣는 재미에 대한 비판일 것이고, 사실 박대현은 아직 이를 카운터할만한 기술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게 당연합니다. 사실 그걸 고려하면 꽤 선방했다고 생각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같은 리듬과 억양 때문에 점점 질리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감안하고 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생각해요. 다음 작품이 어떤 형태로 나올지 몰라도, "Nomadic Dann"은 박대현의 이야기꾼으로써의 가치는 적당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야 있지만, 아직 첫 걸음이니 착실히 보완해나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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