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Nini Blase-변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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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1 00:54:40
  앨범리뷰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는 니니 블라세 (Nini Blasé)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작년에 두 장의 EP를 발매하며 나름 활발한 활동을 보인 여성 래퍼이며, 트랩과 이모, 그리고 보깅과 같은 생소한 장르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그녀의 작업물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스월비 (Swervy)의 파랑 뮤직비디오 속 하얀 머리 여성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작년 10월 3곡짜리 EP앨범을 발매한 이후, 제법 긴 공백을 가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이번 앨범은 이전 작업물들보다도 더욱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이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마광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1991년도에 발표된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성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며 다양한 이들과 성행위를 즐기는 ‘사라’라는 여대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교 사상이 만연한 한국에서, 그것도 유명 사립대학의 교수가 쓴 책이라는 이유가 더해져 ‘즐거운 사라’는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마광수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와 더불어 ‘즐거운 사라’는 금서로 분류되어 정식적으로 재발간 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시중에 발매된 소량만이 중고로 비싸게 거래되는 실정이다. 일명 ‘마광수 필화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마광수는 문인들 사이에서 배척을 받게 되었고, 말년까지 우울증을 겪다가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니니 블라세가 씬에서 느낀 염증을 바로 이 ‘마광수 필화사건’에 빗대어 풀어냈다.

 
첫 트랙 ‘뷔페’는 이 앨범 전반에 깔린 분위기에 비해서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이 곡만큼은 ‘사라’에 이입하여 쓰여졌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유적 표현, 그 속에서 굉장히 은밀하게 욕망을 내비치는 모습이다.

 
이어지는 ‘씹선비즘’과 ‘변절자’ 또한 비트는 밝게 들리지만, 가사는 굉장히 슬프게 들린다. ‘씹선비즘’에서는 ‘사라’와 ‘마광수’의 자아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평가를 보고 느끼는 염증을 냉소적으로 풀어냈다. 그 반면 ‘변절자’에서는 스스로마저 변절자라 인정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애써 더 담담한 척하며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스월비의 ‘Undercover Angel’ 앨범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피쳐링으로 참여시킨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이리라.

 
이 앨범의 모티브가 된 마광수가 그러했듯, 이 앨범의 마무리도 그렇게 밝지는 못하다. ‘조서 (skit)’에서는 마광수가 그러했듯 ‘음란물 제작 및 배포’ 등의 죄목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렸고, 마지막 트랙 ‘Swan song’에서는 삶에 대한 회의감을 내비친다. 모티브가 된 사건, 마지막 트랙의 전반적인 분위기, 그리고 ‘변절자’ 뮤직비디오 말미에 나오는 장면 등등. 이 앨범은 자살을 암시하며 마무리가 된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고,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각자의 잣대로 작품을 판단하고, 작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고는 한다. 비단 문학과 음악뿐 아니라, 때로는 개그 프로조차도 여러 잣대로 난도질당하는 사회이지 않은가. 물론 지금 시대에는 마광수처럼 법정에 서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진영논리에 휩싸여 편을 나누는 사회 속에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내려지는 평가는 굉장히 잔혹하게 느껴진다.

 
니니 블라세는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래퍼이지만, 그와 동시에 ‘MMWM’과 같은 곡에서 자주적인 여성성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여성 래퍼라는 이유로 받는 희롱도 있었을 것이고, 당당한 모습을 내비친 탓에 그와 반대급부로 아니꼽게 보는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실제 사건을 오마주한 이번 앨범은, 그 사건 속 인물이 그러했듯 자살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씬에서 너무나도 염증을 느낀 나머지 때로는 씬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까? 아무튼, 작품 속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현실 속의 그녀만큼은 그 어떤 논란과 질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5점 만점에 3.5.

 

 

 

사족을 달자면..

실제 사건에 대한 오마주. 심지어 오마주의 대상이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분명 엄청난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고인을 욕되게 하는 행동일 수 있으니 말이죠.

사실 그런 의미에서 저 또한 이번 리뷰는 리뷰를 적기에도, 감히 점수를 매기기에도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이 앨범은 굉장히 성공적인 오마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앨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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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1
2020-07-21 01:01:19

이 글 읽으실 것 같으니 댓글로 남깁니다.

 

샘님 앨범도 꼭 리뷰 해드리겠습니다.

1
2020-07-21 08:11:06

다시 리뷰 쓰시는군요!

1
2020-07-21 08:27:19

리뷰 컴백이 너무 반갑네요!
앨범은 아직 들을거 밀려 못 들어보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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