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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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00:27:38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사실 이미 한 번 밀렸던 걸 다 들어봤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는 네 개 정도 다시 밀려있으나 여유를 느끼니 좋군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스카이민혁 - 바퀴벌래 (2020.6.4)


 벌써 네 번째 정규 앨범이라고 합니다. 사실 3집이 나왔는지도 모르던 상태인데, 2개월만에 나왔군요. 하긴, 노래를 들어보면 어떻게 앨범이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여튼 저는 "사랑의 파워" 이후로 처음 들어본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세 가지 파트로 나눠져있습니다. 초반이랄 수 있는 1-6번 트랙은 긍정 파워가 넘칩니다. 거의 염따의 주접(?) 같은 나레이션과 무조건 긍정과 성공을 주장하는 싱잉 랩입니다. 은근히 감성적인 데가 있어서 스카이민혁의 감성 곡이 이런 건가 합니다. 7-10번 트랙은 하드코어해집니다. 악을 써대고 욕도 남발하며, 갑자기 래퍼의 목을 뽑아버리는 얘기를 하기 시작하죠. 남은 부분은 일관된 성격은 아니고 초반과 중반의 스타일이 섞여있습니다.


 "사랑의 파워"는 초반 곡들 같은 스타일 뿐이었지만 빡센 랩도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들으면서 궁금한 건 이겁니다: 둘이 같은 사람이 맞나? 얼핏 칭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석연치 않습니다. 뭐랄까, 중반에 접어드는 순간 새로운 앨범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들리면서 감상이 완전히 단절되는 느낌이었어요.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처럼 순수한 가사로 노래하던 그가 갑자기 다 죽여버릴 것처럼 쌍욕을 난무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순히 '둘 다 할 수 있으니까'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하나의 앨범으로 묶였다면 그만큼 스타일 변화에 대해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빠르게 새 앨범이 나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 그냥 곡을 만들고 모아놨을 뿐이기 때문에.


 한편 그는 좀 더 열심히 해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말을 거듭합니다. 다시 들으면서 궁금증에 빠졌습니다 -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어떤 음악이 되는걸까? 그의 음악들은 대부분 매우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차원에 머물러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음악스럽게' 포장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요. 위에서 언급한 '초등학생 일기장' 같은 느낌과 일맥상통합니다. 해서 저는 차라리, 중반부의 하드코어한 트랙이 더 듣기 좋았습니다 - 여긴 그래도 포장을 거쳤거든요. 사실 이런 날것을 그대로 싣는게 좋다 나쁘다 평가할 부분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누군가 좋아할만한 이유는 있어요. 단지 저로써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쉽게 그려지지 않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 트랙들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후반부 트랙들은 그래도 그럴듯한 훅 메이킹과 곡의 전개, 플로우 디자인 등이 있고, 너무 하드코어한 건 좀 날을 다듬었고, 싱잉 랩은 유치하지 않게 곡을 짠 느낌이 있거든요. 이런 문제의 표상과 해결책의 실마리가 한 앨범에 존재한다니 참 특이하네요.


 "랩 못해서 미안ㅋㅋ" 아웃트로에는 다음 앨범은 30일 정도면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새 앨범이 지금과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풀어놓은 듯한 음악 스타일이 고민이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 대신, 변화 없이 정체되는 건 어떤 스타일이건 가혹한 평가에 놓일 수 있습니다. 현재로썬 그의 다음 앨범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게 사실이군요. 그래도 이런 상식을 깬 스타일을 자기의 영역으로 만든 것처럼, 생각지 못한 돌파구를 찾아내어 저를 놀래켜주기를 바라보겠습니다.



(2) PAXXWORD - PAXXTAPE (2020.6.4)


 작년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 곡과 믹스테입을 올려온 듯한 PAXXWORD는 올해 2월 첫 EP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의 두 번째 EP이고, 저에게는 그를 처음 접하는 앨범이었습니다 - 저번 앨범이 나온 건 보긴 했는데 들어봐야할 게 많아서 스킵했던 차였습니다. 이번에 듣는 김에 전부 슥 들어보긴 했지만요.


 결과적으로 처음에 무시했던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분명, 이번 앨범이 첫 번째 앨범보다 더 날이 서있단 느낌이 듭니다. 살짝 이펙트를 섞은 듯한 금속성을 띈 목소리로 (이때문에 초반에는 IndEgo Aid가 살짝 생각 나긴 했습니다) 강하게 밀어붙이다가도 멈블 랩스러운 플로우로 오가는 현란함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작은 얼핏 들었을 때 전형적인 트랩 색깔을 많이 취한 듯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강렬한 전자음이 난무하는 비트 위에 (앨범 소개글인 '최고의 튜닝은 순정'을 반영하는 바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라임 느낌도 살짝 나는 하드코어한 랩이 PAXXWORD라는 래퍼를 더 기억에 남게 하는 것 같습니다. 타이틀곡인 "TERRAFORMING"은 이런 스타일의 최고 상태를 본 느낌이에요.


 개중에는 "FREEZ" 같은 상반된 스타일도 있지만, 분위기에 엇나가지는 않되 기본적인 '하드함'의 틀을 지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다만 마지막 트랙인 "POKET"의 경우 클리셰로 느껴지는 머니 스웩 가사가 살짝 아쉬웠습니다 - 앞에서는 여러모로 임팩트가 충분했기에 뒷심이 부족한 느낌이었달까요. 아무튼 첫인상이 상당히 좋은 래퍼입니다. 아는게 아직 별로 없는데 더 많은 걸 알아가고 싶네요.



(3) 오담률 (김농밀) - 소년챔프 (2020.6.5)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 이후, 그것을 통한 전대미문의 인지도의 상승 효과 때문에 오디션을 전전하는 래퍼들이 생겨났고 오담률은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당시 "Chin Chilla"란 랩네임을 쓰던 그는 처음 고등래퍼 때 인상적인 그루브의 운용을 보여주었지만 이후로 실질적인 결과물과 발전상 없이 결국 '오씨'로만 기억되고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비난도 다 품고 센스 있게 넘기려는듯, 공사장에 앉은 소년의 모습을 한 자켓과 함께 첫 앨범 "소년챔프"가 나왔습니다.


 당연히 타임라인만 봐도 그렇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앨범이란 증거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앨범 발매 얼마 전 만든 랩네임 "김농밀"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대신, 옛 랩네임이 된 Chilla가 여기저기에 쓰였죠. 그렇다면 스타일도 예전 그대로인가 우려할 수 있는데, 우선은 그나마 새로운 것이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Intro"나 "개"처럼 속삭이는 톤은 나름 새롭게 느껴집니다. "전래동화" 같은 본격적인 오토튠 싱잉 랩도 그렇고요. 애초에 보여준 게 별로 없어서 그렇다는 걸 떠올려보면 참 아이러니하지만요.


 일찍 나왔으면 참 좋았을 뻔했습니다. '오디션 참가 전문'이란 기형적인 커리어 덕택에 그는 보여준 것도 얼마 없는데 리스너는 이미 지겨워하고 있는 신기한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오담률하면 연상되는, 특유의 그루브를 찍어내기 위한 여유롭고 가벼운 플로우와 라이밍은, 새로운 걸 시도했다고 해도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 프레쉬하게 느껴졌던 그 스타일은 이제 와서는 오히려 올드하게 느껴지고, 때문에 앨범에서 의도했던 바이브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각적인 것에 많이 치중되어있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좁았고, 그나마 주 무기라고 들고 온 것에 우리는 면역이 되있는 상황입니다.


 오담률에게 질리지 않았다면 효과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계속 같은 식으로 끝마디를 처리하는 건 처음 듣는 사람도 좀 단조롭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만의 개성은 있긴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앨범은 더 빨리 나왔어야 했습니다 - 아직 그에 대한 신비로움과 기대치가 있을 때 말이죠. 누군가는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앨범을 잘 들었다고 합니다. 그건 그거대로 슬픈 얘기 같네요. 어쨌든 오담률은 처음 고등래퍼 싸이퍼에서 랩을 했을 때 같은 임팩트를 남기려면 아직 별로 써먹어보지도 못한 그의 무기를 어서 갈아치워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여태까지의 작업 속도를 유지한다면, 애써 새로운 답을 내놓아도 빠르게 뒤쳐지고 말 거란 걸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PS 원래 본명보다 랩 네임으로 지칭해서 글 쓰는데, 스트리밍 사이트 아티스트 페이지는 물론이고 크레딧까지 "오담률 (김농밀)"이라 되어있어서 일단 병기했습니다.



(4) GGM Records x Lil Yu x Lil Soda Boi - Percoset Army (2020.6.9)


 지난 앨범에서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새로운 앨범이 나왔습니다. GGM Records의 이름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 앨범은 Lil Yu와 Lil Soda Boi를 소개하기 위한 자리에 더 가깝습니다. 인스타와 사클, 앨범 소개글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는 둘은 복면은 안 쓰고 다니니 GGM은 아니고, Lil Soda Boi는 심지어 미국인 같군요.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을 통해 한국 씬에서 활동한다고 하니... 한국 래퍼들이지만 철저히 미국 빈민가 컨셉으로 활동하는 GGM Records의 특성 상 가능한 일 같습니다.


 짧은 텀으로 나왔으니 그 사이에 GGM의 퍼포먼스가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자연스럽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싱잉 랩들을 들려주며, 전작에서 살짝 예고편처럼 등장했던 Jr. Eagle도 이번에 조금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멤버들 랩을 구분 못하고 있으며 (옛 시절처럼 가사에 아티스트 표기가 있으면 좋겠네요...;) 총 쏘고 경찰 욕하고 마약을 거래하는 내용이 어색하지만 이를 배우의 연기처럼 대입해서 본다면 나쁘지 않게 연기하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할 거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마지막 트랙은 아예 GGM Records 멤버의 참여가 없는 것에서 보듯, GGM은 서포트 역할에 더 걸맞습니다. 이를테면 이번 앨범 전곡의 비트가 Lil Soda Boi 프로듀싱이고 믹스 마스터링을 Lil Yu가 맡았죠. 때문에 GGM이 보여주던 스타일을 이어가면서도 색다른 느낌이 납니다. 특히 예전에 비해 좀 더 텐션이 오른 비트들이 그렇습니다. 안정적인 느낌이 더 많았던 전작들과 달리 (타입 비트의 비중이 높아서겠지만) 이번 앨범은 그덕분에 살짝 실험적인 느낌도 납니다 - "Jesus"나 "On My Own" 같은 게 좋은 예겠네요. GGM이 기존에 하던 것과 많이 다르다면 다른 색깔인데, 그래도 본인 것들처럼 소화하는 걸 보면 이것도 스킬인가 합니다.


 앨범이 어떻게 받아들여진들 허슬은 인정해야겠고, 짧은 간격으로 냈지만 본작만의 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슬슬 익숙한 건 익숙해져가고 있고, 이제 좀 멤버들의 개성도 고려하면서 듣고 싶은데 그게 저는 쉽지가 않네요; 아무튼 GGM 음악을 잘 듣고 있는 분들에겐 이번 앨범도 기분 좋게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Percocet의 스펠링은 오타라고 말해주세요...



(5) Kid Kki - THERMATIC (2020.6.10)


 Kid Kki라는 낯선 이름의 래퍼는 사운드클라우드에 가도 올해 나온 "KID"라는 믹스테입 외에는 올라온게 없는, 한 마디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보이는 뮤지션입니다. 4곡으로 이루어진 EP "THERMATIC"은 Tommy Strate의 도움을 크게 받아, 전곡 프로듀싱 및 두 곡에 피쳐링으로 그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Tommy Strate의 기존 음악을 알고 있다면 일단 어떤 계열이겠구나 하는 건 연상이 갑니다. 그리고 Kid Kki의 음악은 어떤 의미로 그 이상을 들려줍니다.


 우선 앨범을 듣기 전 주의사항을 한 가지 알려드리죠 - 조용한 환경이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무 것도 안 들릴테니까요. Kid Kki의 랩은 읊조린다는 차원을 넘어 거의 단어들이 입 안에만 담겨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는 그의 믹스테입 "KID"를 들어봐도 확인 가능한 부분입니다. 헌데 "KID"는 타입 비트와 기존 MR을 썼던 반면, 이번 앨범은 Tommy Strate가 그의 스타일에 맞게 매우 미니멀한 비트를 줬기 때문에 효과가 배가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세팅은 얼추 적절합니다. 당장 "24 hours"의 가사를 들춰보면 알겠지만 마치 최면을 걸듯 큰 내용이 담기지 않은 가사를 조용히 반복하면서 청자의 귀를 간질이는 겁니다. 심지어 멜로디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멈블 랩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들었던 Verbal Jint의 "마취중진담"의 충격이 떠올랐습니다.


 뭐라고 하기 어려운 앨범입니다. 지극히 실험적이지만, 실험적인 의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해보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Tommy Strate는 좋은 파트너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비트 스타일은 적절하지만 "그런거 안 해" 같은 그나마 텐션 있는 곡을 하나 넣기도 했고, 본인 랩은 Kid Kki와 비슷한듯 대조적인 면이 있어서 입체감을 더해줬습니다. 이외에는, 호불호를 떠나 '특이점'이란 느낌이 드는 경험이었습니다. 굉장히 흥미롭기는 하나, 이러한 스타일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신중히 나아갔으면 좋겠네요.



(6) Sik-K - HEADLINER (2020.6.11)


 돌아보면 Sik-K는 앨범마다 다양한 색깔을 띈 아티스트입니다. 보통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스타일이 한 가지로 굳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특히 오토튠 싱잉이 그런 케이스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대단한 듯도 합니다. 그래서 Sik-K란 아티스트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에 모든 앨범이 부합하는 건 아닐 수 있을텐데요, 개인적으로는 "BOYCOLD"와 "FL1P"이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제일 가까운 듯합니다. 그의 싱잉 랩은 결코 감미로운 건 아닙니다. 오히려 오토튠이 과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디스토션 걸려 찢어지는 소리가 그의 개성과도 같으며, 멜로디 메이킹이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HEADLINER"는 전작과는 다른 색깔을 띈 또 하나의 앨범입니다. 아마도 앨범 소개글에 적힌 말 중 '팝스러운 멜로디'가 제일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장 폴 리히터의 인용구에서 암시하듯 "HEADLINER"는 다양한 상황의 사랑 노래로 채워져있으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대중적인 색깔로 연결이 됩니다.


 다시 위에서 했던 얘기로 돌아가, 개인적으로는 Sik-K의 '찢어지는 소리'를 어떻게 활용했는가가 앨범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였습니다. 때로는 Sik-K가 오토튠을 줄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트가 강렬하기도 했죠 - 같은 이유로 저는 Sik-K와 락 사운드가 정말 잘 어울린다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앨범의 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앨범 내 새로운 시도가 집중되어있는 부분이죠.


 눈에 띄게 대중적인 코드를 타는 "달링" 같은 곡의 경우, Sik-K의 거칠거칠한 톤이 상당히 불협화음으로 느껴졌습니다 - Crush가 더 곡의 주인에 어울린다 느꼈어요. 제일 큰 문제는 3-5번 트랙인 듯합니다. 이 부분은 Way Ched 비트가 쓰인 부분인데, 나머지 Boycold와 GXXD에 비해 미니멀 트랩 색을 띈 Way Ched의 비트는 Sik-K의 톤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아니 Sik-K가 조정을 해줬으면 좋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저는 "ADDY"는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를테면 pH-1 같은 순한 맛 싱잉 랩이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후반부는 제가 알던 Sik-K로 돌아오면서 듣기 편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꽉 차게 곡을 진행해가는 건 잘하는 거 같아요. 대중적인 코드와 본인 스타일의 균형도 잘 잡은 거 같고요. 전반은 그 균형이 깨졌던 거 같습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뒤쪽으로 갈수록 평소 하던 뻔한 것이 나와 아쉽다는 반응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는 Sik-K의 '하던 것'에 대해선 아직 호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남는 찜찜한 뒷맛은, 어쨌든 귀에 편한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인듯 합니다. 물론 언급했듯, 이것이 Sik-K의 개성 중 하나이고 포장하기 나름이라 한다면, 저 역시 큰 불만은 없지 싶습니다.



(7) 킹치메인 - Ω (오메가) (2020.6.12)


 "오메가"는 킹치메인의 첫 정규 앨범으로, "시대정신"과 텀은 짧지만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요컨대, 전작은 평소와 다른 붐뱁 래퍼의 면모를 확고히 지킨 '시도'였다면, 본작은 평소하던 음악을 확장시켜 완성한 '진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킹치메인은 쇼미더머니 시즌 8에서 단체곡 음원 미션까지 진출하였고, 당시 공정성 논란이 심했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취라 평할 수 있을 겁니다. 허나 '단톡방 성희롱 참가'라는 과거가 밝혀지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쇼미는 오히려 오점을 널리 알리는 자리가 되었고,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가 붙어버렸습니다.


 본작에는 그 짧은 기간에 일어난 상승과 몰락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알파"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길을 떠난 그는 "자유로"에서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희열을 맛봅니다. 허나 "소문"을 기점으로, 과거의 잘못이 발목을 잡고, 이윽고 후회는 "기도"와 "벌"에서 극대화됩니다. "오메가"는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라는 이문재 시인의 시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의 첫 구절을 인용하여 출발했으며, 이는 희망 찬 새출발의 메세지로 보일 수 있지만 마지막 트랙 "오메가"의 가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라고 말할뿐, 나무가 되는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그의 미래는 열린 결말이고,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한 편의 소설을 직조함에 있어 특이한 결을 더한 건 랩 스타일입니다. 속사포 같은 그의 플로우는,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음절들을 압축시켜 서로 뭉쳐놓은 느낌입니다 - "킁"이 연상된다는 일부 의견은 이 발음법 때문일테지만, "킁"의 여유로운 바이브와는 정반대입니다. 이런 타이트함 사이사이 자리하는 장음은 마치 점점이 터지는 폭죽 사이 크게 터져 오래 남는 불꽃을 보는 듯합니다 - 정작 Hanabi (일본어로 불꽃놀이)는 비트메이커인데 불꽃놀이는 래퍼가 하는구나 싶어서 재밌더군요.


 (중간에 등장하는 "변"은 곡 스타일도 그렇지만 유일하게 피쳐링이 있다는 점에서도 이질적입니다. 저는 이것을 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활동하던 시기에 대한 액자식 구성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전체 흐름에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 더욱 크게 보아 "시대정신" 자체가 이 앨범의 3번 트랙에 녹아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Hanabi가 전곡을 프로듀싱한 비트와 킹치메인의 랩 스타일까지, 화려하고 신비로운 아우라가 물씬 우러나며 독특한 웅장함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탄탄하면서 리스너에게 어떤 판단을 강요치 않는 서사까지, 과연 "오메가"는 범상치 않은 앨범입니다. 다만, 특유의 밀도 높은 랩은 쉽게 피로해지고, 인상적인 멜로디가 잘 생기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 따라 부를만한 음이 기억에 남지 않고, 실제로도 별로 없달까요. 더불어, 스토리가 중요한 앨범이지만, 사실 가사를 봐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뭉개지고 뭉쳐진 랩의 딜리버리은 좋지 않습니다. 요컨대 "오메가"는 편한 앨범이 아닙니다. 몰입시키는 점도 있지만 완벽한 이해를 위해선 리스너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첫 인상이 좋지 않다면 쉽게 이끌어내기 어렵겠죠.


 분명한 건 이 앨범은 킹치메인이 평범한 아티스트가 아님을 증명하하기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태도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진취성까지 그의 이름을 쉽게 잊히지 않게 해줄 요소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앨범 후반부에 담긴 얘기처럼, 그의 앞날은 순탄치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어느 뮤지션도 타인에게 행해진 죄에 대한 대가를 전부 치르는데 성공한 적이 없고, 킹치메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로 인해 본인이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현재와 같은 에너지로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군요. 저는 그의 과거를 옹호하거나 앨범의 가치로 환산시킬 생각은 없고, 단지 좋은 음악을 앞으로도 듣고 싶을 뿐입니다.



(8) MELOH - Heart Full of Empty Love (2020.6.15)


 "사인히어"로 이름을 알린 후, 싱글 작업과 피쳐링 등으로 놀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MELOH가 드디어 앨범을 냈...다고 하려는데 이것도 트리플 싱글이긴 하더군요. 흠흠. 아무튼, 피쳐링 때는 오토튠이라든지, 랩 같은 플로우를 탄다든지 해서 생각하던 이미지와 좀 달랐는데, 그 이미지가 본인 작품에 담기는 거 같습니다. 전체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 그의 매력이랄 수 있는 담백하고 깔끔한 음 처리가 돋보입니다. 국내 작품 중에선 (제가 이해하는) PBR&B의 모습에 제일 부합하는 스타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네요. 잘 들었습니다... 이 이상 얘기는 다음 기회에...



(9) BewhY & Simba Zawadi - Neo Christian (2020.6.15)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기독교적인 랩 가사는 돈 자랑이나 범죄 얘기보다 더 거부감을 일으키는 듯합니다. 기독교 자체에 대한 인상이 안 좋은 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비종교인에겐 이해, 공감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죠. 극단적으로 '가사를 버린다'라고 한다면 그걸 뒤엎을만큼의 음악 퀄리티가 있어야했는데 이게 또 쉽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예전 CCM 힙합을 시도한 케이스들은 찬송가와 궤를 같이 해야했기에 순하고 착한 모습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밋밋한 음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틀을 깼다는 점에서 BewhY는 인정해야할만한 아티스트고, 반향은 비교적 적었을지언정 Simba Zawadi의 "Elijah's Demo" 역시 준수한 앨범이었습니다.


 BewhY의 스타일은 언제나 공격적이고 웅장했으며, 이는 본인과 Dejavu 식구인 Viann의 프로듀싱이 뒷받침해줍니다. 위에서 언급한 '찬송가스러운 힙합'과는 완전 정반대로, 날선 신스음과 거칠고 투박한 베이스, 빠른 템포, 촘촘히 짜여진 플로우 등은 그가 보여왔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Simba Zawadi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케미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특히 "힘"에서 평소보다 더 강하게 뱉은 플로우는 그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굳이 세게 나가지 않더라도 차분하고 진중한 목소리가 BewhY와 대비를 이루는 한편, 뜨거운 어조로 쓰인 가사는 그 안에서 조용한 울림을 줍니다. 


 앨범의 전체적인 색깔은 사실 BewhY를 생각하면 됩니다 -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살아있죠. 특히 Viann의 비트는 앨범 중에 상당히 건조한 편으로, 너무 타이트함이 지나쳐서 문제인 BewhY와 합이 안 좋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여전히 적당한 멜로디 요소와 변주를 쓴 GRAY 비트와의 합은 상당히 좋군요. 이 합이 쇼미더머니 때부터 꾸준히 터져주고 있다는게 어찌 보면 재밌습니다. 한편으로 제일 튀는 트랙 하나, "어디로"는 앨범 내의 배치와 의도는 좋았지만, 사운드적인 흐름 안에서는 쳐지는 편이고, 오토튠 싱잉이 뜬금없게 느껴지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앨범 서사로써는 알맞은 장치였기에 더욱 아쉽습니다.


 저는 종교인은 아니라서 내용에 대해선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힙합엘이에 Dimension 님이 쓰신 분석 글을 보고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쨌든 그 글이 없었으면 끝까지 모르는게 많았을 것입니다. 비종교인으로써 느끼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거리감을 뒤집어 들으며 즐거운 앨범이었나를 따진다면, 글쎄요. 위에서 말했듯 BewhY의 과유불급은 여기서도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Simba Zawadi는 묻히지도 않고 오버하지도 않고 아주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했던 것 같고요. 뭐, CCM을 집중해서 듣게 하는 힘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처럼 공감 못할 리스너를 대상으로는 작지 않은 결실이 아닐까요.



(10) Poem - 5500/2 (2020.6.15)


 Poem은 이 시리즈에서 다룬 적 있는 이도 더 나블라, idolo의 크루인 evelihood의 마지막 멤버 한 명으로, idolo와는 "P_A1COHOL"이라는 팀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첫 믹스테입인 "5500/2"는 의도적인듯한 혼돈이 가득합니다. 딱히 기승전결이랄만한 게 없고, 가사는 의식의 흐름대로 막 적혀있습니다. idolo가 제가 알던 스타일과 정반대의 빡센 랩을 뱉은게 재밌네요 - 아니나다를까 다음에 얼터 이고를 만든다는 소문이. 애초에 P_A1COHOL이라는 팀이 '술 마시고 벌어진 일'이라는 컨셉으로 되어있어서 이런 정신줄 놓은 컨셉을 쓰게 되는 듯합니다.


 듣고 나서 이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의식의 흐름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면, 그게 예술 기법인지 개소리인지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정답은 없는 부분일 겁니다. 개인 취향도 작용할테고요. 허나 분명 비슷하게 만들어진듯한 작품도 어떤 건 조잡하게만 느껴지고 어떤 건 세련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리고 Poem의 믹스테입은 제가 듣기엔 후자의 경지에는 못 미칩니다.


 우선 Poem은 피쳐링으로 접할 때도 기본이 탄탄한 래퍼는 아니었습니다. 플로우가 개성적이지 못 했고, 톤은 평이하고 약했으며, 발음이나 박자 감각도 흔들렸습니다. 그가 지향하는 음악이 이런 기초 수준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테지만, 기초를 알고 있어야 그것을 마음껏 비틀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이렇다할 개성을 잡지 못한 것은 이 장르에서는 치명적입니다. 저는 "INTRO"를 처음 듣고, 게으른 래퍼를 디스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랩을 일부러 못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운드 이펙트가 쓰였는데, 이조차 큰 창의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목소리에 디스토션을 걸고, 피치를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정도. 그게 차별화가 없이 앨범 거의 전체에 깔려있습니다. 물론 "롸잇나우"의 패닝을 비롯한 효과나 "$UGARPOWER"의 톤 변화 같은 게 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기보다 뭐라도 걸리란 식으로 막 쏟아부은 느낌입니다. 섞이지 못한 장치들은 하나의 그림을 이루지 못하고 정신 없는 불쾌함만 유발하고 말뿐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움을 전부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말하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대로 랩의 기초가 탄탄했다면 그럼에도 설득력을 가졌겠지만, 현재로써 이 앨범을 들어야하는 이유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건 그래서 위험한 수단입니다. 함부로 썼다간 생각 없는 시도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evelihood는 멤버 셋이 다 색이 다르지만 비정형적인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Poem이 하는 스타일도 잘 다듬으면 중요한 색깔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현재 하는 걸 잘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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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6-19 01:07:54

네오크리스천에 대한, 저와 같은 비종교인 리스너 분들의 반응이 궁금하던 차에 글 잘 보고갑니당.

2020-06-19 12:49:45

은근히 킹치메인이 작업 열심히 하더라고요~ 퀄이 나쁜편도 아니구!! 기대가 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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