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아티스트 리뷰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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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17 23:16:48

오늘 프로듀서 앨범으로 첫 정규 다이아나 (Di-Ana)를 발매한

프로듀서 얼라이브 펑크 (Alive Funk) 에 관한 극히 개인적인 리뷰를 해볼게요.
전문 리뷰어가 아니라 그냥 두서없이 그냥 써보겠습니다! ㅎㅎㅎ
 
2016년에서 2017년 넘어가던 겨울이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40살이 되던 저는 삶의 무게로 잊고 지냈던 것들 가운데
그대로 놓치고 지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을 다시 찾아서 해보기로 마음 먹었고,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때 (90년대) 부터 좋아해왔던 힙합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가상악기도 인터넷도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 신디사이저 1대와 외장모듈(Roland SC-88) 한 대로
케이크워크 프로그램으로 자작곡을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디 레슨을 찾게 되었습니다.
커뮤니티 홍보(PR) 게시판에 컴퓨터 음악 레슨생을 구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있었습니다.
 
대부분 홍보하는 분들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이런 아티스트들도 안다.', '나는 무슨 곡들도 프로듀싱했었다.'
'나한테 오면 후회 안한다.', '내가 다 가르쳐줄 수 있다' 등...
 
그런 홍보글 사이에 얼라이브펑크의 홍보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지만, 내 스타일이 당신에게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일단 상담해보고 샘플 레슨을 받아보고 결정해달라.
아무리 잘 가르치려고 노력해도 배우는 사람과 성향이 맞아야 좋은 레슨이 이뤄지므로,
무작정 등록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란다.' 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실 일단 레슨비를 받고 보자는 일부 무책임한 프로듀서들하고는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여겨졌기에 상담을 받고 샘플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이도 많고 90년대 미국힙합을 좋아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자기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데, 레슨생들 중에는 그런 음악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가르쳐볼 기회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본인도 즐겁게 가르칠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레슨에서 붐뱁, 지펑크라는 90년대 미국 힙합의 두 갈래를 바탕으로 가르쳐주셨고,
붐뱁을 통해서는 샘플링 기반의 작법을, 지펑크에서는 미디 연주 기반의 작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매주 숙제를 통해서 곡을 만들어가면, 잘한 점은 칭찬해주시고 부족한 점은 고쳐주면서
리스너로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장르별 특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이로는 저보다 열살 정도 어린 분이었지만 음악 성향은 저랑 상당히 겹쳤습니다.
7~80년대 Quiet Storm, Funk, Synth Pop부터 90년대 힙합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서로가 다른 곳에서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레슨 이외에도 좋은 음악적 공감대를 쌓아갔습니다.
음악적 성향이 비슷한 것 이외에도 놀랄만한 것은 악기 연주실력이었습니다.
힙합으로 음악을 시작한 분이 아니라, 학창시절에 밴드에서 악기 연주를 통해 시작한 분이라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등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점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제가 베이스라인을 가져가면, 즉석에서 기타 솔로, 신스 솔로, 피아노 코드 추가 등을
실제 연주로 얹어주곤 했는데, 그 자체로 너무나 멋진 연주라 제가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즉석 연주가 얹어지면 허접했던 제 과제물 미디파일은 멋진 음악으로 변했고,
얼라펑 쌤은 제가 만든 음악 틀이 좋아서 자기도 좋은 연주가 떠올랐다며 겸손하셨죠...
 
그러던 어느날 저한테 질문을 던지시더군요.
"직장인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직업을 갖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답하자,
많이 놀라면서 학창시절에 샘같은 분 한 분 계셨다면 제 학창시절이 달라졌을텐데...
라며 더욱 서로를 리스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겨울방학+봄방학 동안 두달 남짓의 레슨이 끝나고
저는 학교 현장으로 돌아왔고, 레슨 과정에서 만들었던 비트들을 그대로
묻어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기존 비트들을 가다듬고,
새로운 비트들을 추가로 만든 후에 제가 미흡하나마 랩까지 얹어서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1집 훈장질)
 
그런데 비트에 랩이 있다고 곡이 완성되고 앨범이 되는 건 아니더군요.
믹싱과 마스터링이라는 과정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라펑 쌤께 제 비트들과 아카펠라 벌스들을 가지고 갔더니
바쁘지만 이런 90년대 스타일 힙합이라면 즐겁게 도와드리고 싶다면서
기본 레슨비만 받고 한곡한곡 장인정신으로 믹싱을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이미 충분히 좋다고 느끼는 사운드가 되었음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사운드가 나올때까지 저와 함께 수정에 수정을 고집하셨고,
제가 미디로 찍은 베이스나 신스 리드 멜로디가 너무 좋다며
이왕이면 직접 연주하면 더 좋을 거 같다면서 직접 베이스나 기타나 신스 세션을
무료로(?) 도와주시는 자비를 베푸시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직접 만든 곡이나 프로듀싱한 작품들을 제게 들려주시곤 했는데
너무나 멋진 곡들이 많아서 얼른 정규앨범을 내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앨범'으로서 명확하고 납득할만한 컨셉과 스탠스가 준비되기 전에는
함부로 앨범을 내진 않겠다며 수많은 명곡들을 계속 아카이빙하더군요.
솔직히 제가 그 상황이었으면 앨범을 여러장 내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그렇게 제 1집이 나오고 2년이 흘러서 지난 겨울에 제 2집 앨범 준비가 녹음까지 끝났습니다.
당시에는 얼라이브 펑크가 정규앨범 막바지 작업중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믹싱을 부탁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음악 얘기 나누러 놀러갔더니
정규 앨범 준비가 상당히 되어있다며 음악들을 들려주고 참여진도 대략 귀뜸해주더군요.
그 자리에서 들었던 곡들이 뱃사공과 딥플로우가 함께 한 '가죽자켓' (당시엔 뱃사공 목소리만...)과
QM이 참여한 'SEOUL', 그로스토가 참여한 'Metro', 호림과 차붐이 참여한 '이불위 Di-Ana' 등이었습니다.
랩과 함께 들었을 때도 좋았지만, 연주 자체가 샘플링 기반이 아닌 실제연주 바탕이어서 그런지
듣는 동안 피로감이 없고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랩 없는 연주곡 버전이 더 좋은 곡들도 있었죠)

그 과정에서 제일 놀랐던 점 중에 하나는 바로 피쳐링을 구할 때 연줄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원래 알고 있던 아티스트들 (그로스토, 차붐, 오도마, 부현석, 보나조이 등) 을 제외한
나머지 아티스트들에게 컨택할 때에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연락하지 않고
직접 이메일이나 DM을 통해 비트를 보내고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서
답이 오는 아티스트들과 음악적 협의를 통해 작품을 완성해가더군요.
사실 이게 당연한 걸 수도 있고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비즈니스로 접근하거나 인맥을 통해 쉽게 갈 수 있는 부분인데도,
순수하게 자신의 음악과 의지만으로 아티스트의 참여를 얻어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자 장인정신에 가까운 고집이었기 때문에
옆에서 봤을 때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첫 정규앨범을 마무리하고 있던 얼라펑 샘께
제 2집 마무리 믹싱이 뜻대로 안되어서 힘들다고 했더니,
제 앨범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도와주고 싶다며 흔쾌히 믹싱을 도와주던 모습에서는
정말 큰 감사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5월쯤으로 계획했던 앨범(Di-Ana)는 몇가지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여러분을 포함한 힙합 리스너분들께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화려한 피쳐링때문에 주목하실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샘플 기반 힙합이 아닌 연주 중심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몇 분만이라도
똥고집으로 비춰질만큼 지독한 그의 음악철학과 열정에 대해서
다시 곱씹어 보시면서 앨범을 다시 한번 들어보신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졸린 눈을 비비며 장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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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6-18 08:29:35

선생님의 스승이라니..멋진 이야기네요
앨범 꼭 들어보겠습니다

WR
2020-06-18 14:54:31

서로 호칭이 선생님이에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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