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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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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17:50:52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제 이거 끝나고 앨범 네 개 남았습니다. 휴가(?)가 머지 않았군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lyme Young - SLR2 (2020.5.25)


 이 시리즈에서 두 번 정도 다룬 적 있는 Slyme Young의 새 EP "SLR2"는, 작년 10월에 나온 "Success, Love & Rhymes"의 후속작입니다. 실은 지난달 네 곡 짜리 미니 앨범으로 "1.5"가 나온 적 있었는데, 그 네 곡 중 세 곡이 리마스터되어 본작에 실렸습니다. 


 전작에 대해서 했던 얘기를 일부 반복하면서 이번 앨범 감상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Slyme Young은 팝적인 색깔을 많이 띄고 있는 래퍼입니다 - Geeks가 대표 주자를 맡았던 세계죠. 때문에 그의 앨범에는 매니악한 것이 실리지 않고, 오직 대중적이고 듣기 편안한 곡들이 선정되어 수록됩니다. 본작의 곡들을 살펴보면 그런 원칙 하에 두 갈래의 곡들이 실려있습니다 - 요약하자면 '싱잉 랩'과 '하드코어 랩'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둘 중에서 저는 싱잉 랩 트랙들을 더 즐겁게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단조로운 멜로디가 아니라 진짜 노래처럼 멜로디 라인이 짜여있기 때문에 몰입하기 쉽고, 앨범이 전체적으로 그렇지만 사운드가 잘 빠졌기 때문에 훨씬 어울립니다. 반면 하드코어한 랩은 그가 가진 팝 코드가 얹혀지면서 클리셰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컨대, 빠른 리듬의 플로우 속 억센 발음과 라임의 강조로 대표되는 쿠세로, 2010년대 아마추어 래퍼들에게서 많이 보이던 경향이죠. 랩을 잘 한다고 하는 거야 무리는 없지만, 생각보다 유효타가 적습니다. 감각적인 것으로 치우친 현대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쿠세가 좀 부담스러워서였을 수도 있겠네요.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Geeks를 떠올리면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대강 감이 오실 거 같습니다. 팝적인 면에서 본다면 환기 역할을 하는 장치, 대표적으로 보컬 피쳐링이 좀 들어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좀 듭니다 - "If I Die" 아웃트로에 어렴풋이 나오는 여자 목소리가 꽤 느낌이 좋았거든요.


 그가 정말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이 음악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여튼 이런 음악의 단점은 다양한 것이 잘 안 나온다는 점입니다 - 실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죠. 뭐, 누누이 말했지만 모든 앨범이 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음악이 각자의 목적이 있는 거고, 그런 면에서 "SLR2"는 전작보다 깔끔해진 사운드 등으로 제 몫을 다 했다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2) Os Noma - Openness Sphere (2020.5.21)


 작년 한 해 동안 본인 더블 싱글 외에도 VINXEN, IndEgo Aid, Yizumin 프로젝트 등과의 작업으로 근근히 이름을 알려오던 그의 첫 앨범입니다. Os Noma는 늘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롭고 극적인 음의 신디사이저를 사용해왔습니다 - 칠링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던 Yizumin 프로젝트 때도 그 성향은 완전히 숨겨지지 않습니다. 비로소 본인 앨범에 온 만큼 그 성향은 유감 없이 드러납니다.


 첫 트랙부터 매우 강렬하게 내려칩니다. 기계음을 연상시키는 온갖 악기들의 향연과, 아마 기억하는 한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빡센 랩을 선보인 IndEgo Aid의 트랙이 이 분위기를 잇습니다. 인상 깊은 인트로이자 편한 앨범이 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허나 이 앨범에도 청자를 배려(?)하는 부분은 있는데, 가운데를 맡고 있는 "차라리" "진담" 두 트랙의 (상대적으로) 부드러워진 악기가 왠지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다시 어둡고 무거워지면서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불친절한 분위기로 맺습니다. 마지막 곡 제목 "Feat. You"는 저는 참 역설적으로 보이더군요.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음의 악기와 노이즈를 사용하였던만큼 편하게 들을 수 있지는 않지만,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었습니다. 요컨대, 혼란스럽지만 정돈된 느낌입니다. "1over" "차라리" 같은 나름 감미로운 보컬 곡이 수록될 수 있던 것은 그런 밸런스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여담으로, 두 곡에 참여한 여성 보컬 잭앤웨일이 Album Director로 되어있습니다. 얼핏 안 맞는 조합 같아 재밌는 부분이었습니다). 또 그런 소스 내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색깔까지, 뜯어보면 재밌는 요소가 많은 앨범 같습니다.


 프로듀서들이 솔로 앨범에서 예상치 못한 색깔을 보여주는 경우는 꽤 많이 있었습니다. Os Noma 앨범도 그런 셈이지만, 본인이 기존에 하던 것과 완전한 별개가 아니기에, 당황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본인 인스타 보면 군대 가기 전에 여러 콜라보 프로젝트가 더 나올 예정 같던데, 아마 나오는 앨범마다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을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군요.



(3) Comma - Expansion Beattape (2020.5.21)


 반가운 이름에 간단하게만 적어보려합니다. Comma는 여기서도 한 번 다뤄본 적 있는 붐뱁 프로듀서로, 저번 앨범은 "Shuxin"이란 레이블을 통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별도의 소속이 표기 안 되어있네요. 전작들이 많은 피쳐링진을 대동한 컴필레이션 형태의 앨범이었던 반면 이번 앨범은 비트 테입입니다. 스타일은 역시 아주 클래식한 색깔을 띈 붐뱁 - 옛날 느낌을 위해 카세트 테이프를 통한 작업을 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현란하고 웅장한 구성을 띈 인스 곡들이 요즘 트렌드인 반면 이 앨범은 착실하게 샘플 작업을 통한 루핑으로 이루어져있어, 옛날 느낌이 나는만큼 단순 감상용으로는 단조로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틀이 갖춰져있으니까요 - 랩을 얹기 위한 인스트루멘털이라 봐도 편할 거 같습니다. 근데 제 생각엔 랩을 얹기에는 악기가 충실하게 차있어서... 잘 모르겠네요. 마지막 Sikboy가 피쳐링한 트랙은 앞 트랙에 비해 좀 더 텐션이 있지만 크게 보면 같은 스타일입니다. 90년대 바이브를 좋아하시는 분은 한 번쯤 들어볼만 합니다. 저는 Comma의 1집을 많이 좋아했기에 반가운 이름에 돌려보게 되었네요.



(4) Agust D - D-2 (2020.5.23)


 다들 아시겠지만 Agust D는 무려 방탄소년단 멤버인 SUGA의 얼터 이고입니다.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는데 이 믹스테입 자체도 두 번째더군요. 쓰는게 뭔가 무섭지만 어쨌든 투머치토커 본성을 참을 순 없기에 후기를 적어봅니다.


 BTS가 힙합이냐 아니냐는 아마 그룹이 망할 때까지 식지 않을 답 없는 떡밥이지만, 여튼 멤버들은 열심히 랩을 해왔습니다. 주제에 대해 제 의견을 보태기 전에, 우선 가요적인 면에서 볼 때 BTS가 잘 갖춰진 랩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단 건 짚고 넘어가야지 않을까 합니다. 결코 짧지 않은 활동과 최고 수준의 음악적 환경 속에 그들도 어쨌든 나름의 연륜이 생겼고, BTS의 곡에서는 다른 보컬과 어우러져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그 스킬이 "D-2"에선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낸 솔로 작품은 그 꼬리표를 떼는 데 열중이었고, 여기서 그 흔적은 강한 어조, 딥해보이는 주제 선택 (이를테면 사랑 노래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바이브 수록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다양한 바이브를 보여주기 위해, 대략 Zico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아이돌 랩 특유의 파워풀하고 현란한 플로우와 액센트는 의외로 초반 서너 곡을 지나면 많이 죽어듭니다. 10트랙을 전부 돌리고 난 후 "D-2"의 인상은 생각보다 우울하고 무겁습니다. 그저 생각 없이 멋부리기만 하는 앨범을 예상했다면 적어도 그 예상 정도는 뒤엎어줄만 합니다.


 랩은 크게 흠잡을 데 없습니다. 적어도 가요계의 기준에서는 말이죠. 대중들에게 '잘하는 랩'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을 맞추다보면 디테일이 떨어지고 개성이 바래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이를테면, 초반에서 하드코어 래퍼, 후반에서 사색가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어조는 죄다 과장이 섞여있는 동시에 진부합니다. "어떻게 생각해" 같은 트랙에서 욕은 열심히 날리는데, 뭔가 뼈 아프게 때리는 한 방은 없습니다 (전세기나 빌보드 얘기가 실제 스웩이라는 건 좀 멋지긴 하지만...). "사람" "혼술" 같은 트랙도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임팩트를 줄만한 효과를 열심히 넣다보니 알맹이 크기가 줄어든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D-2"는 BTS에서 Suga가 보여줬던 것의 확장판 정도입니다. BTS 곡에서 느꼈던 그것과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 BTS 안 좋게 듣는 분이라면 이 앨범을 가까이 하는 건 불필요할 겁니다. 다양한 감성을 담았지만 임팩트를 주는 공식이 동일하다보니 어떤 부분은 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힙합이 아니라고 굳이 부르짖을 필요는 없습니다 - 애초에 힙합은 점수 매겨서 지정하는 장르가 아니니까요. 또한 저는 BTS가 이룬 위업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는 쪽이며, Suga의 랩이 거기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무 매니아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건 피곤할 때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본인도 'X도 관심없네'라고 하니까요.



(5) Swervy - Undercover Angel (2020.5.24)


 Hi-Lite 입단 후 커리어 제2막을 연 Swervy. 비록 본인에게 상처를 안긴 사건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드디어 첫 정규가 발표되었습니다. Hi-Lite에서 나온 거긴 하지만, 그녀의 영혼의 단짝(?)이랄 수 있는 SUI Film이 전곡 프로듀싱에 랩 피쳐링과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보태어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였습니다. 과거 대표곡 "Unmainstream"이 얘기하듯 Swervy의 매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함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때문에 그녀의 음악은 힙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번 앨범 역시 테크노 리듬이나 라틴, 락, 심지어 동요까지 끌고 오는 등 여러 장르를 짬뽕하여 그녀만의 기묘한 색을 뽐내고 있죠.


 한 가지 먼저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Swervy가 Hi-Lite를 통해 활동의 기반이 넓어진 것을 매우 반가웠했지만, 그 전후로 들었던 그녀의 음악은 뭔가 모르게 제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첫 번째로 발성에 있습니다. Swervy의 톤은 애초에 얇고 여립니다 - 그녀가 연출하고자 하는 분위기와는 보통 정반대이죠. 이를 보상하기 위해 오버스러운 연기를 하거나 빠른 랩을 차용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지만 저는 자꾸 김이 새더라고요. 특히 비교적 건조한 목소리로 빽빽하게 뱉어내는 랩 플로우는 그루브감이 없어 쉽게 질렸습니다. 쇼미더머니의 결과를 객관화하긴 어렵겠지만, 1차 예선에서 처음에 탈락한 것은 반주조차 빠지다보니 그 단점이 더욱 부각되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비슷한 맥락은 좀 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이 독특한 감성이 자꾸만 '이성적으로' 연출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순전히 느낌이므로 정말 이렇게 작업했을 거라 지적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내려놓지 못하고 여기선 이렇게 하는게 멋있을 거란 계산 하에 넣는 장치들이 있어보였습니다. 그런 장치들은 대개는 원하던 효과보단 부자연스러움만 배가시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뭔가 곡들이 연출하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몰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소신 있게 발언하자면 "Undercover Angel"도 이런 단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딩고 앨범 스포일러를 통해 적은 연출 의도와 방향성은 좋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음악으로 드러난 것이 자꾸 2% 부족하게 느껴지는군요. 다만, 단조로운 랩은 대개 멜로디가 있어 보완이 되거나, 억지로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비트에 잘 어울렸습니다 - 전자는 "Alibi", 후자는 "왜 이래" 같은 곡이 예가 될 거 같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이런 단점을 SUI Film의 프로덕션이 매우 잘 커버해줍니다. 그녀가 곡에서 표현하려는 감정이 하나의 아우라로 변하게 하는데는 SUI Film의 비트의 공이 컸다 봅니다. 딩고 앨범 스포일러에서는 유기성을 강조했는데... 너무 강조하는 걸 들어서인지 막 엄청나다 까지는 못 느꼈...


 리스너로써 기대를 많이 한만큼 욕심도 커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당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여론이 아무 이유가 없진 않겠죠. 어쨌든 SUI Film은 확실히 Swervy의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또 그려놓은 그림의 스케일에서 그녀의 야망을 읽을 수도 있고요. 비단 여성 래퍼로 국한짓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뮤지션입니다. 하지만 왜 자꾸 8살 짜리 아이가 수퍼맨 망토를 두르고 힘자랑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걸까요. 첫 정규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니 앞으로 보여줄 것을 더 기대해보겠습니다.



(6) CATSUP - CATSUP Compilcation Vol.1 - Fast Good (2020.5.22)


 CATSUP SOUND는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아티스트들이 뭉쳐 만든 크루로, 과거 '아우라지'를 필두로 부산 힙합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특히 반가워할만한 집단입니다. 2020년 1월 LADEAT의 싱글로 첫 발을 뗀 이들은 G.L. (APEX, 청천), RARE, MISTA-C, 왜냐구 (Whenya9), Zoo 등 현재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그 시기 부산 힙합을 중점적으로 들었던 분들은 낯익은 이름들이 포진해있죠 - LADEAT은 당시 hs90이란 이름으로 비트를 몇 개 찍었고, 저는 MRSD와 마라도나만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반가움을 안고 틀어본 앨범의 결과는... 서글픕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과거 2000년대 초창기 Master Plan 컴필레이션이 떠오릅니다 - 안 좋은 의미로요. 여러 멤버 중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는 멤버는 오직 APEX와 청천 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천은 단 한 트랙에서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APEX는 5곡, 그것도 4곡이 전반에 모두 포진되어있습니다. 나머지 래퍼들의 랩은 뭔가 총체적 난국입니다. 아~주 너그럽게 보아서 Zoo까지는 뭔가 갖춰져있는데, 나머지는... 눈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LADEAT의 비트입니다. 아우라지의 전성기 당시는 Scary'P (물론 그는 Grand Pics이긴 했습니다), SonQ 같은 빵빵한 프로덕션의 지원 아래 작업물을 내놓았었습니다. 헌데 LADEAT의 비트는 촌스러운 미디 느낌이 살아있는 비트로 그때만큼의 포스를 내기는 커녕, 멤버들이 내고자 하는 붐뱁 느낌 자체를 잘 살려내지 못합니다. 이외에, 곡의 구성도 그저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랩하고 훅하고 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압수"는 5분을 넘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없습니다) 산만한 전개를 정리할만한 장치가 부족합니다. 2000년대의 느낌을 계승하여 오직 라임만 좀 강력한 수준이랄까요.


 뭐 하긴 왜냐구나 MISTA-C 자체는 엄청 음악성 있는 작품을 내놓던 뮤지션은 아니었습니다 - 특히 MISTA-C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타이틀로 활동했을 거에요 (팬티스타킹 갖고 랩하던 충격적인 뮤비가 아직 기억에 남아있네요...). LADEAT도 랩을 한 건 최근 들어서니까요... 라지만 나름 '부산 울산 경남 최고의 힙합 크루'라는 포부 아래 나왔다면, 이정도 실망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현재의 트렌드를 따라잡고 획기적인 뭔가를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며, 꾸준하지 못했던 활동에 예전보다 폼이 떨어졌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슬픈 충격이었습니다. 와중에 "압수"의 내용이 매우 아이러니하네요. 우선 이번은, 청천 랩을 좀 더 들어봤으면 좋겠다 까지만 소망하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7) Blase - PAY OFF (2020.5.24)


 전작 "WAGWAN" 이후 비교적 짧은 간격을 두고 나온 트리플 싱글입니다. 텀이나 스타일로 봐선 "WAGWAN"에 넣지 못한 곡인 거 같기도 합니다 - 전체적으로 "WAGWAN"에 비해서 힘을 빼고 여유롭게 랩을 하여 대비가 많이 됩니다. 애초에 트랙이 적기도 하지만 "WAGWAN"에서 지적했던 귀의 피로가 생길 일이 없어 좋습니다. 비트는 공통적으로 미니멀한 사운드를 이용한 트랩 비트가 실려있는데, 저는 이런 단순한 소리를 최소한으로 쓰고도 빈 자리 없이 그루브를 이어가는 비트가 좋더군요. 큰 의도가 있는 싱글이 아니기 때문에 할 말은 많지 않습니다. 새로운 게 없어서 별로라는 반응을 봤는데, 뭐 꼭 새로워야 좋은 건 아니잖습니까. Blase가 랩을 잘 한다는 것 정도는 이 싱글로도 얘기 가능할 거 같습니다.



(8) Kimchidope - Lose Control (2020.5.24)


 최근 콜라보 싱글이 나오긴 했었지만, 꽤 오랜만에 보는 솔로 작업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애절함 묻어나는 오토튠 싱잉이 꽤 인상 깊었던 터라 공백기 동안에도 이따금 "SEPTEMBER Kimchidope"나 "Don't Hate Me" 앨범이 떠오르곤 했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Lose Control"은 그 두 앨범과는 다릅니다. 물론 이모 트랩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크게 보면 같은 스타일이랄 수 있지만, 멜로디가 강조되었던 전작들에 비해 "Lose Control" 노래들은 싱잉 '랩'의 특징을 더 띄고 있습니다. BadMax와 DeepHartt가 만든 비트들도 전에 실렸던 트랙들에 비해 더 전형적인 트랩 비트의 색깔을 띄고 있죠. 때문에 탑 라인이 단조로워졌고 코드가 반복적으로 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유의 진한 오토튠 싱잉은 여기에도 묻어나는데, 멜로디가 강조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멈블링이 더 돋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작보다 더욱 발음을 흘리고 뭉개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런 트랩 느낌에 더 가까워진 것을 반가워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Kimchidope 음악을 좋아했던 게 싱잉 때문이어서 아쉬웠습니다. 한 가지 좋았던 걸 꼽자면 가사. 전곡 사랑을 주제로 했는데, 느낌에만 치중해서 영어 비중이 높고 (그것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 영어;) 이 단어 저 단어 이어붙여놔 암호 같이 들리는 가사가 아니라 오랜만에 트랩에서 보는 내용 전달 잘 되는 가사였습니다. 특히 "Work"의 가사는 꽤 기발하다 느꼈어요.


 하긴 Kimchidope가 노래만 부르는 아티스트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그가 래퍼로 분류되어있긴 하고 "Cyber Lover" 같은 랩 앨범을 내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번 말했듯 리스너가 아티스트의 선택 자체를 뭐라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맨처음에 말했던 그리움은 조금 더 오래 이어질 거 같습니다ㅎ



(9) Cheetah - Jazzy Misfit (2020.5.25)


 "Jazzy Misfit"은 치타가 김은영이란 이름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초미의 관심사"와 연계하여 제작된 앨범입니다 - 극중에서 재즈 가수로 나오는데 그 재즈 가수가 부른 노래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트랙 "Kick It"을 제외하면 (아니 포함하더라도?), 재즈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곡이며, 때문에 랩이 아니라 노래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치타의 랩은 부담스럽고 알맹이는 부실한 음악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지만, 이 앨범은 노래를 한 앨범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로 피해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그 부담스러움은 그럼에도 후반부로 갈 수록 똑같이 적용되지만 (특히 "Need Your Love" 같은 노래는 더 담백했으면 어땠을까) 듣기는 훨씬 좋습니다. 다만 개중에 랩 트랙이라 할 수 있는 "Kick It"은 거의 문제가 비슷하긴 합니다... 아무튼, 생각보다 노래를 잘 짜고 잘 부르네요. 제가 모르는 장르에 대해 더 할 말은 없고, 한 번씩 들어보시길~



(10) Kingchi Mane - 시대정신 (2020.5.25)


 비록 제대로 들은 앨범은 "Boy from the Trap" 뿐이었다지만 "시대정신"은 제가 Kingchi Mane이란 뮤지션을 대함에 있어 상당히 놀라게 만든 앨범입니다. 스킬풀한 오토튠 싱잉 랩으로 무장했던 전작과 반대로 "시대정신"은 저와 같은 붐뱁충의 피를 끓게 할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우선 "누명"을 오마주한 커버와, TakeOne, Verbal Jint, Justhis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앨범 소개글, 그리고 이 세 아티스트 곡의 MR과 제목, 가사 일부를 차용한 트랙리스트까지 앨범의 의도는 매우 명확합니다. 확실히 그가는트랩 음악을 할 때도 의미 없는 머니 스웩은 지양고, '트랩 보이'의 스탠스로 치열함, 처절함을 그려내곤 하였습니다. 그 태도를 계승하되, '힙합 정신' (너무 오글대는 단어라면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라고 합시다)과 연결시켜 지극히 클래식한 스타일로 담아낸게 이번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요즘 스타일 (심지어 붐뱁 음악까지 포함하더라도)와 반대편에 서있으며, 강렬한 흑백의 색을 띄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조된 것은 메세지입니다. 11트랙 내내 그의 태도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결연함으로 차있으며, 단단하고 강렬한 그의 목소리와 합쳐 인상적인 시너지를 냅니다. 한 마디도 허투루 적히지 않은, 진지하면서도 어렵지 않고 선명한 그의 가사는 최근 본 앨범 중 가장 저의 취향에 맞았습니다. 랩톤은 어떤가요. 실로 오토튠이 섞였을 때는 진가를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듣노라면 투사의 이미지가 전혀 오글거리지 않게 그려지는 걸 느낍니다.


 고전적인만큼 한계는 뻔합니다. 글자마다 강세가 들어간 그의 랩은 TakeOne을 연상시키는 건 그렇다치고, 리듬을 맞추는데도 힘이 들어가있어서 매우 딱딱하다는 인상도 듭니다. 메세지가 제일 강조된만큼 감각적인 부분이 약세이기 때문에 벌스는 장광설로 느껴질만큼 길어졌고, 후렴이 차별성을 두지 못합니다 - "막다른 길"을 제외하고는 일명 '훅다운 훅'은 없습니다. 처음 가볍게 들을 때는 대부분이 훅 없는 노래인 줄 알았어요. 이런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두세 트랙 못 가 귀가 피로해질만한 여건은 다 갖추고 있다할 수 있겠죠. 그의 전작을 살펴볼 때 그가 그런 감각적인 걸 못 해서 안 한 건 결코 아닐 거고, 앨범 컨셉에 따라 듣는 입장에서 감안해줘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내 힘줘 얘기해야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참고로, 많이들 지적하고 있는 믹싱 상태의 경우는 제가 워낙 막귀인지라 그닥 제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장단이 나누어진 작품이며, 저처럼 듣고 흥분한 사람일지라도 약점을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겁니다. 그래도 본인이 의도한 의미를 고려할 때 탄탄하게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믹스테입'의 옛 시절 의미대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고요. 쇼미더머니 출연과 과거에 지은 죄, 그리고 최근 폭행 사건까지, 짧은 기간 너무 굴곡이 많은 아티스트입니다. 그 굴곡이 부디 사람들의 앨범 감상을 방해하고 그가 담아낸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길 바랍니다.

4
Comments
WR
2020-06-02 15:07:17

처음 님 소개로 언메인스트림 들었을때는 오? 했는데 의외로 저는 그 느낌이 빨리 식더라고요.

Updated at 2020-06-02 15:31:02

shuxin은 레이블이라기보단 크루였습니다..

레이블화를 목적으로 하긴 했었습니다만 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WR
1
2020-06-02 17:02:53

오 정보 감사합니다ㅎ

2020-06-03 16:14:43

붐뱁충으로서 이번 킹치메인 믹테는 정말.. bb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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