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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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6:07:22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코로나 이제 끝나나 했는데... shiiit...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Various Artists - 2020 대한민국 -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2020.4.25)


 원래 방송 관련하여 나오는 컴필레이션 앨범은 앨범보다는 방송의 부산물 같은 느낌이라 따로 듣질 않는데, 이번 앨범은 방송에 안 나온 곡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따로 듣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글은 안 쓰려고 했는데 또 손이 근질근질... 해서 써봅니다.


 올드 팬들을 자극하는 '대한민국' 시리즈의 이름을 달고, "2000 대한민국"을 오마주한듯한 커버와 단체곡으로 시작하는 앨범 구성 등 여러모로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애초에 방송부터도 요즈음의 힙합 팬들을 포섭한다는 의도를 내세웠지만 기대치가 높진 않았을 겁니다 - 그만큼 한국 힙합은 많은게 변해있기 때문이죠. 억지로 '요즘 것'을 따라하기보단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방송 및 앨범의 제일 큰 방향이었고, 때문에 주석과 얀키 정도를 제외하면 아티스트 이름에서 연상되는 색깔을 얼추 갖춘 곡들이 수록되있다 할 수 있습니다 (주석의 경우도 최근 곡들을 들어왔다면 큰 반전은 아니죠).


 예전 시기의 힙합은 랩 외에는 내세우는 것이 많지 않았고, 소리에 비해 메세지의 비중이 컸으며, 장르적으로 지금보다는 좁았습니다. 이 안에서 차별화를 꾀한 이들만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수 있었고, 때문에 랩톤과 가사 투 정도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들어버린 나이와 비례하여 줄어든 과감함, 그리고 위치에 따라 고려하게 되는 대중성이 차이점이 됩니다. 사실 후자의 경우 정말 아티스트들이 대중적으로 친근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기보단, 전자에 따라오는 결과인 경우가 더 많을 거 같습니다.


 때문에 올드 팬으로써는 지금의 앨범이 그때만큼의 임팩트를 남기기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있고, 실제 결과물도 그렇습니다. 원래가 강렬한 랩을 했던 Double K (Illson)와 배치기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곡들에 심심함이 못내 남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를 제외하고) 스타일적으로 새로운 걸 크게 시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차이점이 적용된 결과, 앨범은 매우 담백합니다. 이를 특징으로 받아들일지 단점으로 받아들일지는 사람따라 다를 것이나, 저는 의외로 요즘 음악에 많이 길들여졌는지 아쉬운 포인트가 되더군요. 이 음악들을 2000년 초반에 들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철저히 방송국 입장에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대한 흥행 가능성을 얼마나 점쳤을지 궁금합니다. 방송은 예상했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다 갖고 있었고 결과도 비슷했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예상만큼 있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 같군요. "2020 대한민국"은 방송의 소박한 마무리로, 마찬가지로 딱 예상한만큼의 앨범이었습니다. 반가운 이름들이 있긴 했지만, 저는 각 아티스트들의 이후의 작업물에 더 집중해볼 참입니다.



(2) Yami Tommy - beyond the door (2020.4.28)


 ASH ISLAND가 이끄는 이모 힙합 크루로 알려진 "PABLO MU2IK"의 멤버로, 최근 Cloudybay (참고로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Cloudybay가 멤버인 걸 알았네요a), 이승화가 결과물을 낸 데 이어 Yami Tommy도 첫 EP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PABLO MU2IK의 메인 프로듀서(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추정)로써 최근 작품엔 다 참여헀던 Pateko가 이번에도 전곡 프로듀싱을 해주었습니다.


 PABLO MU2IK 크루는 장르적으로 통일되어있기 때문에 사실 큰 틀에서는 멤버 간의 차이가 미미합니다. Yami Tommy의 스타일 역시 락 스타일의 비트와 조금 어두운 바이브 및 약간의 오토튠이 가미된 싱잉 랩입니다. 만약 차이를 얘기한다면, 비교적 감미로운 축이었던 나머지 멤버들에 비해 좀 더 까칠한(?) 느낌이 있다는 정도일까요. 이게 락 비트에 꽤 잘 어울리긴 합니다. 또 멜로디 메이킹도 준수해서 나름 청각적 쾌감이 자리한 앨범인 것도 맞고요. 순수 랩으로 승부한 단체곡 "PABLO Freestyle"도 앨범 내의 독특한 들을 거리라 할 수 있겠군요.


 PABLO MU2IK 멤버들의 작품에는 다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이미 낯이 익은 스타일이라는게 제일 큰 단점이고 극복해야할 부분이겠습니다. 비단 소리뿐만 아니라 가사적으로도 클리셰적이고 뜯어보면 별 얘기 없는 표현들이 주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이것이 앨범 자체를 못 듣게 만들 정도로 큰 문제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일정 정도의 흡입력은 가지고 있는 앨범입니다. 마찬가지로 PABLO MU2IK 멤버에게 적용되는 말로, 젊은 나이에 어울리는 패기와 센스가 좋습니다. 오리지널리티에 민감한 분들이라면 기억에 남는게 없겠지만, 특히 이모 힙합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앨범이 플레이 목록에 못 들 이유는 별로 없어보이네요.



(3) 짱유 - 파도 (2020.4.28)


 확실히 저는 짱유의 음악 세계를 잘 모릅니다 - 기본적으로 와비사비룸이 활동할 때는 제가 음악을 잘 못 듣던 시기였죠. 그럼에도 와비사비룸 노래들과 "KOKI7"로 접한 짱유와 쇼미더머니 시즌 8의 짱유는 좀 달랐습니다. 전자가 난해하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후자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후자의 모습이 담겨 나온 새로운 정규가 이번 "파도"입니다.


 자연히 앨범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워졌습니다. 사실 짱유의 속사포 랩은 극히 딱딱하고 정박적이라, 빠르게 랩한다는 것 자체가 감탄을 자아내는 포인트는 아닙니다. 때문에 랩이 주는 청각적 쾌감은, 이를테면 Simon Dominic과는 조금 다른 타입의 것입니다. "파도"에는 짱유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를 통일해주는 것이 시원하게 뻗은 짱유의 목소리고, 이것이 청각적 쾌감의 코어가 되줍니다. 특히 랩보다는 싱잉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 크게 지르는 노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느껴진달까요.


 앨범 구성이 다이나믹한 건 특이합니다. 강렬한 "MICrotrip" "Brrrrr"로 시작하여 "다 괜찮아질 거야"까지의 가라앉는 코스, 그 후 "海"로 다시 띄운 독한 분위기를 "끝이 없는 여정"까지 신나게 마무리하기까지, 곡의 전개 자체가 너울치는 파도를 보는 거 같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짱유 목소리 자체가 앨범의 축이 되어 넓은 스펙트럼에 전부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듯합니다. 저는 이번 앨범을 짱유가 정의하는 '열정'이라고 느꼈고, 꽤 즐겁게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 앨범에 실망하는 분들은 이때까지에 비해 '대중적'이 된 짱유의 모습에 심심함을 느껴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확실히 전작에서의 독특한 재치는 덜해졌습니다. 이게 정말 쇼미더머니를 통해 청자를 고려하게 되어서일지, 아니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 중 또 하나를 새로 소개하는 건지는 모르겠군요. 아무튼 듣는 깊이 은근 얕은 저로써는 이번 앨범으로 그를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 앨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봅니다.



(4) 하회와 모아이 - 흥과 뽕: 흥 Part (2020.4.29)


 3주 만에 나온 두 번째 파트 "흥 Part"는 예상을 뒤엎고 정말로 "뽕 Part"와 확실히 구분된 음악을 들려줍니다. '트로트 랩'이라는 이름 아래 몽환적인 싱잉 랩으로 일관하던 둘은 여기에서는 나름 하드한 트랩을 들려주는데, 그러면서도 하회와 모아이 식의 유머 센스를 잃지 않습니다. 원래도 주제 선정과 표현의 독특함이 있던 팀이었지만 이런 스타일과 함께 보여주니 그 독특함이 더욱 도드라지는 듯하네요.


 강점이라고 불러야할 유머 센스는 어떤 면으로는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때로는 Uneducated Kid, 때로는 Takuwa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모두를 만족시키기 극히 어려운 바, 멜로디 없는 랩으로 꺼내놓은 것은 양날의 검을 더욱 날카롭게 한 결정 같더군요. 그럼에도 "너희는 힙합이라면서" 같은 과감한 주제도 건드린다는 점은 높게 봐줄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여전히 하회와 모아이는 취향을 타는 유머를 구사하고 있지만, "흥 Part"의 의의는 그 유머가 한 가지 스타일만 있는 건 아님을 보여줬다는 점인 듯합니다. 이는 또한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더 남아있다는 걸 의미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릴 이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5) 부현석 - neighborHOOD (2020.4.30)


 Boiling Point의 세 번째 주자로 선정된 부현석의 정규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하고 묵직한 앨범입니다. 아마도 본의 아니게(?) 붐뱁 래퍼로 비춰졌던 그의 이미지를 뒤집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볼 수 있습니다. 여유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지난 EP "BROKE BOI SAID"와 비교하여, "neighborHOOD"는 어둡고 삭막한 환경에 대비되는 그의 주변 사람들을 향한 우정과 성공에 대한 욕구가 좀 더 선명한 색채로 묘사되어있습니다.


 노래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 힙합에선 매우 흔한 소재인 'hood' 'gang' 따위 소재가 노원구에서 자란 시절과 그의 주변 동료들로 치환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힙합에서 이런 소재를 보면 과장이거나 픽션인 경우가 많으나 부현석의 묘사는 오히려 진정성 있게 들립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가 음악적인 부분으로, 싱잉 랩의 형태를 빌렸지만, 비트 스타일도 그렇거니와 저는 상당히 붐뱁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막힘 없이 뚫린 단단한 발성은 분위기에 따라 "BROKE BOI SAID"보다 훨씬 임팩트 있게 들리며, 여러 프로듀서가 참여했지만 통일성 있게 선택된 비트들도 무드 설정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 특히 비트에서 자주 사용된 기타가 너무 좋네요. 이런 사운드적인 기반이 완벽하여 부현석의 랩이나 싱잉이 시원시원하게 들리는 동시에 메세지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사소하게 걸리는 부분이라면, 메세지의 무게에 비해 짧은 곡들이 많아서 조금 어색했다는 것. 몰입도가 있어서 더 끌고 나가도 됐을 거 같은데 아쉬운 트랙들이 좀 있네요. 


 Boiling Point 프로젝트는 이제 막 세 번째이지만 선정되는 아티스트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색깔의 120%를 재현해내주는 것 같습니다. 부현석 역시 그냥 붐뱁 래퍼, 또는 Friemilli 크루의 색깔에 묻어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건 반가운 반전이로군요. 예전부터 그의 스킬은 확고했지만, 사운드에 힘이 실리는 것이 내는 시너지 효과를 확인한 느낌이 듭니다. 앨범으로 봐도 괜찮은 앨범이지만, 이런 재발견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Boiling Point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6) 만수 - 역세권 전세 (2020.4.30)


 세 달 좀 못 되는 기간만에 다시 나온 네 곡 짜리 작은 EP입니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소재로 여러 가지 분위기의 곡이 담겨있으며, 음악 얘기가 아닌 현실이 소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사도 훨씬 현실 밀착형으로 적혀있습니다. 이번에는 전곡 비트를 Jasin이 찍었는데, 평소 생각하던 이미지와 달리 감성적이고 편안하면서도, 이름 때문인지 살짝 러프한 음이 섞여있는 듯합니다. 만수의 거칠거칠한 목소리하고는 꽤 합이 좋습니다.


 저번 앨범 "내가래퍼가될상인가" 얘기를 할 때 제가 그렇게 좋게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마 저는 만수랑은 코드가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주된 이유는 이번에도 분위기에 맞지 않게 화가 나있는 듯한 톤과, 유머러스하려고는 하지만 어색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표현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불협화음을 가장 느낀 트랙이 "흥선대원군"이었는데, 뭐 내용에 관한 개인적 감상은 제가 프로불편러라 치고, 가사를 제대로 듣기 전에는 '오 웩 엠씨를 까는 내용인가'라고 느꼈을 정도로 너무 빡셉니다. 진짜 이 톤과 비트를 가지고 딱 웩 엠씨 까는 내용으로 바꿨으면 사실 괜찮다고 느꼈을 법한데요. 표현들이 아기자기하다가도 왠지 오버하는 거 같고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좀 있습니다.


 뭐, 그나마 저번 앨범보다는 불편함을 느낀게 많진 않았습니다. 좀 더 진중한 트랙이 많았기 때문에 '오버'가 줄어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위에 말했던 문제와 더불어 군데군데 촌스러운 디테일이 있고, 본인의 목소리를 더 멋지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믿습니다. 그 포텐 가득한 하드웨어 때문에 기대하면서 들어보게 되지만, 적어도 저는 아직 취향에 들어맞는 걸 발견하지 못 했네요.



(7) Cimoe - 낭중지추 (2020.5.1)


 청각적인 것의 비중이 커진 시대에 Cimoe가 택한 방법론은 무모해보이면서도 값집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고심한 흔적을 역력히 남긴, 가사의 힘을 되돌아보게 하는 음악은 그 자체로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다시 돌아가서 청각적인 것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그의 랩 실력이 몰입도 있는 감상의 발목을 늘 잡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낭중지추"는 반갑습니다. 이때까지 그의 앨범 중 가장 음악적인 앨범이거든요. 이번엔 분명히 랩톤의 운용이 있고, 플로우의 변화가 있으며, 라임의 강조가 있습니다. "만년설"과 "직역되는 문화"의 엇박으로 풀어가는 플로우도 그의 당찬 주장에 잘 어울리는 듯하군요. "진눈깨비"를 제외한다면 가사 내용부터가 래퍼로써의 자신의 입지를 무척 강조하고 있는데, 이 비장함에 걸맞는 묵직한 JA의 비트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이 묵직함은 다시 Cimoe의 강렬하고 거친 목소리와 합이 잘 맞습니다. 이번 곡들이 더욱 울림이 있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아직 완전하진 않습니다. 고질적으로 존재해왔던 문제점인, 타이트하게 풀던 랩이 갑작스레 여백을 남기고 멈출 때 이 여백이 여운이 아닌 쌩뚱맞은 공백으로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격하게 흘러가던 플로우가 후렴에서 정형화될 때의 어색한 괴리도 있죠. 그의 강렬한 목소리는 늘 다루기 힘든 무기처럼 임팩트를 남기다가도 어떤 노래에선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는 "진눈깨비"가 그랬고, 이런 류의 감성을 지닌 곡들이 늘상 그래왔습니다. Cimoe의 문체는 이런 감성을 진한 색채로 잘 그려낼 수 있기에 투박해지는 사운드가 더없이 아쉽군요. 마지막으로 피쳐링으로 참여한 MC 메타와 P-Type의 랩이 Cimoe의 벌스와 온도가 많이 달라 조화롭지 못한 느낌이 있는데, 이건 뭐 사람에 따라선 문제까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어차피 Cimoe와 같은 래퍼에게서 엄청난 랩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음악이라는 양식을 빈 만큼 좋은 음악으로 느껴질만큼의 최소한의 형식만을 바라는 게 맞을 겁니다. 저는 진실로 그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것이 이번 앨범이었다 생각합니다. '불변이 온당한, 변하고 싶지 않은 자세'에 왈가왈부하는 데 약간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현재의 발전 방향으로 가다보면 결국 청자로써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8) kitsyojii - FLAVA (2020.5.1)


 kitsyojii의 새 EP입니다. 이제 와서 보니까 거의 두 달마다 뭔가 나오더군요 (지난 3월은 HOFGANG EP). 꽤나 허슬러네요. "FLAVA"에서 보여주는 스타일은 kitsyojii가 기존에 밀던 색이랑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니, 그의 발칙함이 익숙해진 지금은 전보다 훨씬 저에게 잘 먹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도한 건지 전보다 더 말랑하고 부드러운 비트를 많이 썼지만, 여전히 kitsyojii는 뻔뻔하게도 돈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집착과 과장을 섞어 씁니다. 처음 "Yanbian"을 낼 때에 비교하여 범죄 이야기는 줄었지만, 센스는 어디가지 않았습니다.


 멜로디 라인도 시원시원하고 좋고, 특히 일반적인 싱잉 랩이 노래 같은 템포와 플로우를 짜는 반면 kitsyojii의 경우는 순수한 랩 같은 타이트한 플로우를 짠다는게 저에게는 매력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벌써 자기 반복에 질려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저는 앨범을 들으면서 빵빵 터집니다. 처음 접할 때만 해도 이 정도 감흥을 줄 거라곤 상상 못 했는데, 이젠 얼마나 대박을 낼지가 궁금한 래퍼가 되었습니다.



(9) Icey Blouie - Save World 2020 (2020.5.4)


 Icey Blouie는 STAREX 및 Stonship 소속으로, 오래전부터 이름은 들어왔지만 음악은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 래퍼입니다. 벌써 2016년부터 활동을 이어왔으니 경력이 꽤 되는 셈이고, 이번 앨범이 첫 정규 앨범이라고 하지만 Futuristic Swaver와 함께 만든 "Cinderella 99"가 있으니 그의 커리어에서는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각 잡고 들어볼 일이 없었던 이유는 결국 STAREX 크루가 하는 음악이 거기에서 거기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솔로 작업물을 많이 안 들어왔대도, 이미 피처링 등에서 들었던 게 있기 때문에 크게 저의 믿음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두진 않았죠. 


 결국 이번 앨범 감상의 결론도 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클라우드 랩이라고 하던가요, STAREX 내에서 뭔가 더 몽환적이고 박자와 발성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형식의 랩이 그의 특징이라고 할 있습니다. 불행히도 제가 제일 못 듣는 부류이기도 하죠.


 물론 장점을 찾아보자면 안정적인 톤과 후반부 트랙에서 특히 드러나는 감성 등을 논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대부분 트랙에서 소위 자유로운 형식이 적어도 저에게는 박자감을 깨고 곡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개중에 "Young Boy Hustle" 정도는 인상적인데, 래퍼의 몫보다는 프로듀서 Dayrick이 비트를 잘 찍은 거 같기도 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Dayrick은 저번 Loopy 앨범도 그렇고 은근 비트들이 기억에 남네요).


 이런 허술해 보이는 면들이 의도적인 부분이고 어떤 분들은 선호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해서 Icey Blouie 앨범에 대해 좋은 기억이 많이 남지 않는 건 결국 제 좁은 취향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장르가 뭐든 저 역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늘 존재했는데 말이죠. 여튼 정확한 감상은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닌거 같습니다.



(10) 개미친구 -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2020.5.4)


 우연히 "배설"이란 앨범을 통해 알게 된 개미친구는, 전에 포스팅에서도 말했듯 엄청난 허슬링의 뮤지션입니다. 이번 앨범은 그로써는 상당히 장기간의 공백(?)이었던 5개월이란 시간만에 나온 EP입니다 (사실 사클 쪽을 안 뒤져봐서 공백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왠지 아닐 거 같음).


 저처럼 "배설"을 통해 알았던 분은 마지막 앨범 "안녕"의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당황스러웠을지 모르겠는데, 이번 앨범은 그 연장선, 확장판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초반 곡들을 들으면 '사랑에 관한 앨범이구나'란 생각이 들지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부터 돌연 분위기가 심각해집니다. 이는 개미친구가 으레 보여주던 의식의 흐름 따라 가는 전개와 잘 부합합니다. 앞에 있는 곡들도 그냥 사랑 노래로 치부하기엔 참 특이한 표현들과 사상들이 많죠. 이런 것들을 일상적인 장광설처럼 늘어놓는게 개미친구의 개성이고, 이와 함께 캐치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후렴까지, 좋아하기 어렵지 않은 곡들입니다. 다만 후반부 분위기 전환은 상당히 갑작스러워서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완전히 공감되는 전개는 아닌 거 같습니다.


 "배설"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이런 부드러운 분위기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그런 색깔에서도 본인의 개성을 유지하는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운드적인 면에서 민감한 귀를 가진 분이라면 저예산 느낌 나게 만들어진 앨범의 사운드가 다소 거슬릴 수는 있을 거 같네요. 그의 실력이 온전히 빛을 발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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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0-05-11 19:15:11

Boiling Point 3번째가 나왔었군요!
꼭 들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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