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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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17:00:18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짧은 근황으로 5월부터는 이태원에 있는 주한미 연합사령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Dilla - 사춘기 (2020.3.18)


 Dilla는 2017년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래퍼입니다. 초창기에 ThatSIGNs 컴피티션 최종 4인에 선정된 경력이 있으며, 공식 발표는 없었던 거 같은데 현재 Beautiful Noise 소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번 앨범 발매 회사도 Beautiful Noise입니다). "사춘기"는 데뷔 이래 활동이 드문드문하던 가운데 나온 첫 EP입니다.


 Dilla를 처음 듣는 분들은 백이면 백 E-Sens가 떠오르고 말 것입니다. 사실 특유의 레이백 실린 플로우와 발성을 E-Sens와 연관 짓지 않는다는게 더 힘들 거 같아요. 결국 E-Sens와 유사하다는 것은 의도 여부와 상관 없이 Dilla에겐 넘어야할 큰 산입니다. 그건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최대한 E-Sens에 대한 얘기를 배제하고 적어보겠습니다. 전에 발표했던 두 개의 싱글 "자리" "꼴통"에서도 Dilla는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가사가 돋보였고, "사춘기" 역시 완숙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줍니다. Pe2ny, Fredi Casso, Young Vass 등이 이에 맞는 무게 있는 비트를 제공하였으며, 만약 그의 과거 싱글까지 고려한다면 이야기 소재가 다소 중첩되는 감은 있지만 단어 선택이나 주제 전개가 부드러운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플로우는 아니라도 분위기 상 고전 붐뱁으로 분류될만한 raw함이 알맞게 앨범에 배분되어있습니다.


 다만 그의 아이덴티티나 다름 없는 레이백 플로우는 생각보다 다양하진 못 합니다. 특히 살짝 격앙된 톤의 높이와 마지막 글자를 끄는 방식이 거의 90%의 라임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처음에 들을 땐 흥미로울지언정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외로 신선함을 빠르게 잃어갑니다. "새끼" 같은 느릿한 비트는 다소 소화하기 버거워한다고 느껴지기도 했고요. 오히려 "서울 안에서" 같은 조금 속도감 있는 비트도 좋은데 앨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진중하고 쳐지는 쪽으로 맞춰져있습니다. raw한 맛을 살리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결국 이 모든 비평은 다시 E-Sens란 이름 앞에서 무너집니다. 오리지널리티에 예민한 분들은 음악을 튼지 얼마 못 되어 카피캣이란 단어를 쓸테고요, 위에서 얘기했던 스토리텔링마저 공교롭게도 E-Sens의 장기이기도 했습니다 (하긴 E-Sens의 장기가 아닌 걸 찾긴 쉽지 않지만). 그나마 Dilla만 하는 거라면 중간중간 섞인 싱잉이 있는데, 묘하게 이게 랩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2017년 첫 싱글을 냈을 때부터 이러한 평은 계속 따라붙는 터라 많은 연구가 필요할텐데요, 첫 EP는 확실한 타개책을 내놓진 못한 거 같습니다. Beautiful Noise에 들어갔으니 우선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해보겠습니다.



(2) 김승민 - Rio Loves Tokyo Part.1 (2020.3.20)


 저번 앨범도 그랬지만 김승민은 본인이 내는 작업물과 우리가 익히 아는 이미지가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쇼미더머니는 경연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 피쳐링 곡들에서는 싱잉 랩도 있었지만 타이트한 랩도 많이 구사했던 거 같은데, 본인 결과물에서는 철저히 오토튠 싱잉 랩을 택하는 거 같습니다. 전작 "Island"가 그랬어서 처음 들었을 때 좀 당황스러웠던 거 같아요 (여기 인스타에 썼던 글을 보는데 솔직히 당황스러움 때문에 너무 안 객관적으로 쓴 거 같군요...;).


 해서 이번에도 오토튠 싱잉 랩입니다. 이모 힙합으로 분류될 것이고, 락적인 성향을 다분히 띄고 있죠.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훨씬 감각적으로 배치된 소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 트랙은 들으면서 엉뚱하게도 빅뱅의 노래들이 생각나더군요. 그만큼 노래가 예쁘게 뽑힌건가 싶었습니다 - Minit이 원래 대중적인 스타일로 잘 뽑아오긴 했는데 그 장점이 잘 발휘된 케이스인 거 같네요. 마지막 곡을 빼면 실연 후의 사랑 노래들인데, 의도적으로 흘리는 발음이 마치 술에 취해 주정하는 느낌이라서 감정을 더 잘 싣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감각적인 멜로디는 4, 5번 트랙에 이르러서 다소 빛바래는 거 같아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MIA" 같은 트랙은 앨범 안에서 그런 감정 몰입과 멜로디가 제일 정점을 기록한 결과물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은 익히 알고 있던 김승민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김승민이 갑자기 급발진하는 플로우를 보여주는 건 좀 단조롭고 딱딱하게 들려서 좋아하진 않는 편인데, 마지막 트랙 "받아인생쓰기"는 가사 내용 때문인지 크게 거슬리지 않고 들었네요.


 제 의견으론 김승민은 오토튠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너무 좀 시끄럽게 적용하는 편인 거 같아요. 원래가 목소리가 거친 편인데, 거기에 오토튠이 들어가고, 거기에 노래만 부르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추임새도 들어가니까 가끔씩 조금만 곡을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단 생각은 했습니다. 그거 외에는 크게 흠잡을 데는 없었던 거 같네요. "Island" 때보다 적응(?)이 되어서 그런가봅니다. Pt. 1이란 이름을 달고 나왔으니 이것도 연작인가보군요. Pt. 2가 나오면 이어 들어보겠습니다.



(3) Authentic - 's house (2020.3.18)

    Owell Mood - Owell's Mood (2020.3.22)


 Authentic은 Legit Goons 소속 비트메이커입니다. 일부 외부 작업이 있지만 대부분 뱃사공, Jayho, Legit Goons 컴필레이션에 그의 작품이 실려있죠. 한편 Owell Mood는 최근 Hi-Lite Records에 합류한 보컬로, Paloalto와는 "Pina Colada" 때 첫 공식 작업물이 나왔던 것으로 압니다. 이전 커리어는 모르고 있었는데 Cozy Cave라는 크루에 속하여 2018년 여름에 싱글을 하나 내기도 했군요. 관계 없어보이는 두 아티스트를 묶어 글을 쓰는 이유는 물론 Authentic의 이번 앨범이 인스 두 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Owell Mood가 피쳐링하여 '첫 앨범 전의 첫 앨범'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을 이어 들으면서 Owell Mood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인상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부터가 좀 비슷하지 않나요?...)


 "Owell's Mood"와 비교하여 Authentic의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타나 피아노만을 사용한 어쿠스틱한 구성으로 인해 우러나오는 차분함입니다. 악기들도 전부 먹먹한 느낌이 들게 믹싱되어있고 호흡도 전체적으로 느립니다. Authentic이 이전에 만든 곡들에서도 이런 잔잔함은 보여줬지만 이번 앨범은 훨씬 더 합니다 - 블랙 뮤직 앨범을 기대한 이들을 당황케할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Radiohead나 넬 같은 음악에 더 가까워보이네요.


 때문에 Owell Mood의 가녀린 목소리가 빛을 더 발할 수 있습니다. "Owell's Mood"와 "'s House"는 지향하는 바가 다릅니다. "Owell's Mood"는 Hi-Lite 소속으로써 첫 자기 소개를 하는 앨범이기 때문에 자신의 스펙트럼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때문에 곡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고, 슬픈 것에서 밝은 것까지 어느 정도 범위를 갖고 있지만, "'s House"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할 수가 있죠. 때문에 "Owell's Mood"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반면 Authentic의 앨범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만큼 여운이 강해서, 몇 번 듣고 나니 Owell Mood가 '슬픈 보컬'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다른 곡들의 감상에도 영향을 미쳤던 거 같습니다. 어떤 면으론 "Juice" 같은 곡도 에너지가 충분치 않게 들리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는 거 같네요 (심지어 "Pina Colada"도 슬프게 들립니다;).


 여튼 두 앨범 다 Owell Mood가 가진 목소리의 힘이 작용하였음은 틀림 없습니다. 가벼우면서도 가늘게 뽑는 발성이 약간 DEAN도 생각나게 하더군요. 감성적인 가사도 좋았습니다. 사실 "'s House"를 무난한 R&B 앨범처럼 생각하고 틀었던 터라 첫 인상은 힘이 없다는 쪽이긴 했습니다. 익숙해진 후엔 다른 매력이 보이긴 했지만 후반부의 쳐지는 느낌은 완전히 극복 못 한 것 같습니다. 너무 한 가지 이미지에 사로잡혀 편견이 생기는 건 청자로썬 좋지 못한데, 앞으로 나올 Owell Mood의 작품이 그 편견을 깨주었으면 좋겠군요.



(4) Skinny Chase - King of Comedy (2020.3.23)


 Jolly Records 소속, Coleslaw의 멤버 Skinny Chase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Jolly Records는 미국 기반이지만 아무래도 활동도 많고 한국어 쓰는 모습도 은근 보였었기에 Skinny Chase는 꽤 친근한 이미지이긴 하죠. 


 이번 앨범을 고전적인 붐뱁의 귀환을 내세운 작품 중 하나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 충실하게 붐뱁의 문법에 따른 비트와 랩, 플로우, 그리고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건조한 분위기는 과연 골든 에라 힙합이라고 할만하죠. 근데 Skinny Chase의 랩은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다릅니다. 처음 "비빔밥"으로 시선을 끌었을 때부터 그의 랩은 힘을 한껏 뺀, 읊조리는 것에 가까운 랩이었습니다. 약한 발성이라기보단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 흔히 붐뱁하면 생각나는 강력하게 쏘아붙이는 랩과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처음 들었을 때 '래퍼스러운 목소리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바 있습니다.


 이번 앨범의 비트도 대부분 Skinny Chase가 만들었으며 "그리움만 쌓이네"를 샘플링한 "Ciaos & Deuces"처럼 익히 보여왔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 몇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미니멀한 구성의 붐뱁 비트입니다. 이 의도된 허전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King of Comedy"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격필살" 정도를 제외하면 그는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 앨범 내내 그러한 톤을 듣자면 조금 답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Us"에 피쳐링한 James Keys의 목소리와 벌스는 이런 톤에는 안 어울렸던 거 같습니다 - 더 꽉 찬 구성의 곡에서 어울렸을 거 같아요.


 이 부분을 넘는다면 "King of Comedy"는 재밌는 앨범입니다. 솔직담백하고 유머러스한 표현이 섞인 가사들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플로우와 라임 등,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숨겨진 단단함이 있습니다. 또 Skinny Chase는 이번 앨범을 거꾸로 듣기를 의도했다고 하죠. 사실, 정방향으로 듣는게 더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 일반 앨범들은 파워풀한 '일반적인' 모습을 먼저 내세우고, 후반으로 가서 분위기를 잡으면서 더 '개인적인' 모습을 꺼내기 마련이죠. 거꾸로 듣게 되면 이게 뒤집혀서 꽤 신선한 느낌인데, 본인 말대로 '무협 영화의 기승전결'을 생각하면, 일에 치여 사랑에 치여 살던 사람이 깨달음을 얻고 고수와 대련, 희극지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스토리가 완성됩니다. 표준을 벗어난 사운드의 흐름이 어색할 순 있지만 또 한 번 Skinny Chase의 유머 센스가 빛을 발하는 부분 같습니다.


 진짜 붐뱁 앨범이라고 거론되고 있는 분위기와 반대로, 너무 고전적인 것을 기대하면 실망이 클 수 있을 듯합니다 - 왠지 Marc Antoniio가 많이 참여 안 한 것도 파워를 조절하고자 한 이유였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다 때려부술 듯한 남성적인 강한 힙합보다, "King of Comedy"는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하면서 완성된 이야기를 작품으로 옮긴 B급 영화의 냄새가 납니다. 저도 센 걸 좋아하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돌리다보면 그런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앨범인 건 맞는 듯하군요.



(5) Nafla - u n u part. 2 (2020.3.24)


 두 장의 선공개 싱글을 거쳐 "u n u"의 두 번째 파트가 나왔습니다. 워낙 충격 변신(?)을 했던 첫 번째 파트였지만 덕분에 어느 정도 "u n u"의 컨셉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때문에 파트 2의 곡들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파트 1에 비하여 래퍼로써의 이미지가 다시 강조되었다는 게 강점입니다. Heize가 연상되는 R&B 보컬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던 전작과 달리 본작은 본래의 비음 강한 Nafla의 톤을 물씬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태워"처럼, 보컬 트랙에서도 애써 다른 목소리를 내려하지 않고 원래의 목소리로 부른 점이 좋았습니다. 뭐 "운명"처럼 그런 발라드 톤이 아예 사용 안 된 건 아니지만, 여튼 Nafla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좀 더 딥하고 강렬한 감정이 전달되는 듯하고, 개성도 살아있어 좋더군요. 그 외에, 센치한 테마는 유지하되 단순히 사랑, 이별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 확장시킨 것도 좋았고요.


 단점이라 하긴 사소하지만 피쳐링진들의 존재감은 별로 크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바꿔 말하면 Nafla가 앨범 주인으로써 존재감이 컸단 얘기겠죠. 다만 래퍼로써의 모습을 다시 가져왔다해도 "u n u"의 컨셉 상 예의 역동적인 플로우를 볼 수는 없습니다. 여러 번 듣다보면 살짝 진부한 가요 느낌이 나기도 하고, 위에서 개성적이라고 칭찬했던 목소리가 마지막 트랙 쯤에 가면 질리는 듯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u n u" 컨셉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긴 단점이라 Nafla의 역량 부족으로 연결하고 싶진 않습니다. 완전히 그의 포텐을 맛보기엔 조금 아쉬운 앨범이지만, '감성 래퍼'로써의 새로운 시도가 파트 1보다는 더 와닿게 먹혔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음... 그래도 다음엔 빡센 것도 내주겠죠.



(6) Sik-K - Officially OG (2020.3.24)


 Sik-K가 Goosebumps와 의기 투합하여 낸 "Officially OG"는 그가 낸 앨범 중에서 독특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Goosebumps 특유의 미니멀하고 건조한 트랩 비트부터가 "FLIP"이나 "Boycold"에 실렸던 풍성한 밴드 사운드하고는 반대편에 있죠. 이에 맞추어 Sik-K의 랩도 멜로디 요소가 줄어들고 한결 랩핑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카피캣 논란이 지금까지도 잘 안 떨어지고는 있지만, 오토튠 싱잉 랩을 초창기에 꺼내든 주자 중 한 명이란 면에서는 신선한 시도 같기도 합니다 (물론 랩을 했던 시절도 있기야 하지만...).


 Sik-K의 랩과 Goosebumps의 비트 스타일을 고려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앨범이 지나치게 단조로워지는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사실 저는 이에 대해 앨범을 옹호할만한 말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Goosebumps의 비트가 별로였다는 말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 비트를 충실하게 찍었으며, Simon Dominic과 함께 했을 때처럼 살짝 비어보이지만 필요한 그루브감은 다 챙겨가는 매우 효율적인 비트메이킹을 했다 생각합니다 ("DO MAIN 2020"에 쏟아지는 비난은 이해합니다. "숨이 차" 정도의 바이브를 목표했던 거 같은데, 저도 좀 아쉽긴 하네요).


 다만 Sik-K의 경우 비트의 약점을 커버하지 못하고 같이 무너지는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Sik-K가 그다지 캐치한 멜로디를 만드는 데 특화된 아티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트와의 케미를 통해 아우라 있는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데 능숙했다면 모를까요. 근데 줄곧 이 앨범에서는 본인이 하드코어한 랩을 해야할지 싱잉 랩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느낌입니다. 어정쩡하게 남은 단조로운 탑 라인은 오히려 불협화음처럼 느껴져서 몰입을 많이 깼습니다. 랩으로 승부한다고 해도, 특유의 노이즈 섞인 느낌의 오토튠이 거슬리기도 하거니와 플로우가 엄청났던 래퍼가 아니었는걸요 - "NO HOOK"이나 "DO MAIN 2020" 같은 피쳐링진을 기용한 곡에선 대비 효과가 너무 큽니다.


 여담으로 "OFFICIALLY OG"의 소개글에는 '모두가 인정하고 음악적, 태도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배 아티스트들의 참여'란 표현이 있어 선 세대에 대한 리스펙을 담은 앨범인가 싶었습니다. 그런 컨셉이 있는 앨범인지 아닌지 좀 헷갈리네요 - 확실한 건 "VJ IS CLASSIC"은 되게 쌩뚱맞았습니다 (하긴 트랩 곡으로 리스펙을 표하다니 신선하긴 하네요).


 짧지 않은 커리어를 이어오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온 Sik-K의 실험 정신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선뜻 성공이라 보기 어렵군요. 물론 Sik-K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도 작용했을 겁니다. 그의 오토튠을 좋아한다면 이번 앨범을 신선하게 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허나 저에겐, 어느 하나를 확실히 보여주지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듯한 퍼포먼스만이 들려 안타깝습니다.



(7) 야간캠프 - 나쁜 이모지 (2020.3.19)


 제게 야간캠프라는 이름은 낯이 익지만,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첫 싱글이 2017년에 나왔고, 아마 LOLLY의 크루(라고 일단 알고 있는)인 Webside의 멤버인 거 같다 하는 정도군요. 몇 번의 피쳐링으로 랩을 들으면서 저에게는 사실 Kid Milli 아류 중 하나 정도로 간주되던 래퍼였습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야간캠프가 프로듀서로도 활동한다는 걸 알았고, 그것도 결코 무시 못할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쁜 이모지"는 만만치 않은 앨범입니다. 첫 인트로부터 감성적인 초반, 웅장한 중반과 강렬한 트랩의 후반 비트를 이어붙여놓음으로써 본인 색깔의 다양함을 과시합니다. 과연, 그 후로 이어지는 트랙들도 하드한 트랩 세 곡, 이모 트랙 두 곡, 그리고 실험성이 짙은 두 곡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상반된 색깔의 트랙들이 이어짐에도, 각자가 띈 색깔이 매우 극적이고 확실하여 오히려 야간캠프의 독특함 아래 하나로 통일되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야간캠프의 랩이 돋보이는 것은 전반부 뿐이고, 그 랩도 타격감 있는 발음이나 강렬한 바이브를 주는데 치우쳐 있습니다 - 가사를 열어보면 암호 같은 말들의 나열이거든요. 즉, 그의 보컬은 거의 대부분 비트를 완성시키는 악기로 쓰였습니다 - 이 표현을 자주 썼지만, 이 앨범에서만큼 표현이 적절한 데가 없군요. 원래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지나칠 뻔한 앨범인데, 기분 좋은 반전이었습니다. 앞으론 그의 행보를 좀 더 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8) 슬리피 - HOPE (2020.3.25)


 비단 힙합 팬이 아니어도 다들 익히 알고 있을 TS 엔터테인먼트의 갑질과 횡포 끝에 슬리피는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되어 활동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PVO"라는 레이블 (크루인 줄 알았는데 앨범 내용 보면 레이블인듯?)을 새로 차리기도 하였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은 앨범이 이번 앨범 "HOPE"입니다. 보너스 트랙을 제외한 다섯 트랙은 전부 이 과정에서 얻은 소회와 희망찬 메세지를 담고 있으며, 만약 슬리피의 팬이 듣는다면 감동적이라 할만한 서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감동을 얻지 못한다면 "HOPE"는 사실 빈약한 앨범입니다. ASSBRASS, COUP D'ETAT 등이 참여한 비트는 꽤 들을만 하지만, 슬리피의 랩 자체는 크게 힘이 있진 않습니다 - 랩을 여러 면에서 따져볼 때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뭔가를 잘 보여주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퍼포먼스 측에서는 충분한 임팩트를 갖추지 못하고 그루브감을 살리지 못하는 톤이 제일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앨범의 제일 큰 문제를 꼽으라면, 사실상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섯 트랙을 서로서로 차별화시키지 못하는 얕은 가사 깊이 같습니다. 세세한 부분에서야 조금씩 다르기야 하지만, 전 기획사와의 갈등 - 해방 - 새 레이블의 대표 - 잘 될 거 같다 이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노래들은 계속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다섯 번 연속으로 감동을 느낄 팬심이 없다면 이를 지루하지 않게 느끼긴 힘듭니다. 보너스 트랙은 꽤 좋았는데 자세히 들리니 슬리피 벌스가 없는 거 같더군요...;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바입니다. 다만 이는 좀 더 온전히 본인의 실력으로 평가받게 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원래는 더 잘하는데 가요계에서 활동하느라 저런 음악이 나온다'라고 하던 이들이 실상 하고 싶어하는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굳이 음악 스타일로 나누어서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말하고 싶지 않으나, 만약 슬리피가 생각하는 것이 힙합 매니아들을 타겟으로 한 음악이라면, 실력 면에 있어서 좀 더 비정한 평가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9) GGM Records - Indictment (2020.3.27)


 GGM Records는 작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단체 중 하나입니다. 모두 다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등 비밀스러움이 컨셉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되며, 다른 이름으로 과거에 더 활동했을 거라고 추측하고들 계시더군요. 밝혀진 멤버는 GGM Babygoat, GGM Lil Dragon, GGM Pandamontana, 4seasonguap, BabyHo, Junior Eagle 등입니다. 작년에 랩하우스 온 에어가 주목하는 신인으로 염따가 짤막하게 언급해서 이름을 아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 컴필레이션은 작년 말에 두 개의 싱글을 통해 선공개된 세 곡에 네 곡을 더한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간략한 정보를 써보자면 네 멤버들이 전부 오토튠 싱잉을 하며, 상당히 차분하고 멜로우한 바이브의 비트들을 초이스하여 실었습니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것 중 하나로, 피쳐링진 PULL UP 22의 가사를 제외하고는 전곡이 영어라는 것 - 영어를 더 잘 해서... 라기보다는 느낌에 따른 선택으로 보입니다. 내용적으로도 미국 힙합을 따라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 총이나 마약, 경찰 얘기들이 거침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영어가 어색하단 느낌은 많지 않습니다.


 앨범 전곡이 비슷한 분위기로 채워져있어서 저는 서로서로 구분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반복적인 느낌은 덜 했습니다. 그윽한 분위기에 조용하게 이어지는 플로우가 엄청 신선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흡입력은 나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급한 대로 전곡 영어라는 점과 전곡이 비슷하다는 부분이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나머지 둘에 비해 비중이 높은 Babygoat와 Lil Dragon의 퍼포먼스가 확실히 조금 더 자연스럽습니다. 4seasonguap, Pandamontana의 랩은 "Bleedin" 같은 곡에서 좀 실망스럽게 다가오네요 (레이백인지 믹싱 실수인지 헷갈리게 하는...;).


 어쨌든 싱글 끝에 컴필레이션까지 발표하였으니 확실하게 활동 개시를 한 셈이군요. 피쳐링에서도 GGM의 이름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고요. 저의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자주 찾아듣지 않을지 모르지만, 장르 팬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포텐에 좀 더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10) 한요한 - 원기옥 (2020.3.28)


 이 시리즈를 하면서 앨범을 들을 때, 앨범의 단점을 생각하면서 내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이 아티스트를 감독한다면 뭘 개선하였을까 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한요한은 그런 상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뮤지션 중 하나입니다. 이는 한요한의 장기가 무엇인지 딱 잡히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요한은 이제 세션맨이 아니니 기타 실력은 접어두고, 그가 랩을 잘 하는 래퍼다, 혹은 노래를 잘 하는 보컬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분명, 뭐든 때려부술 듯한 파괴력 있는 샤우팅과 평소의 유머러스한 모습은 기억에 남기기 쉬운 좋은 캐릭터가 되었지만, 좀체 이것이 음악에 녹아나지 않는 듯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그의 스펙트럼을 좁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EXIV"에서 이를 인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이번 앨범 "원기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IV"와 "원기옥"의 차이는 "TO ALL THE FAKE RAPSTARS"가 빠지고 "취소해"가 들어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익히 보여왔던 밝은 톤과 빠른 템포 위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으셈' 류의 메세지, 혹은 사랑 노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청룡쇼바" 때 처음 선을 보였던 한요한 표 감성이 다시 한 번 주 재료로 사용된 것입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반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드러납니다. 이번에도 한 트랙을 제외하고 총 프로듀싱을 맡은 Minit은 평소대로 팝 스타일의 비트를 만들었습니다. 후렴으로 빌드업하는 패턴도 유사하며 (그나마 드럼롤은 비율이 줄었네요, 전작은 전곡이었던 거 같은데;), 이 위 한요한은 한 줄의 가사를 돌려가며 후렴을 완성시킵니다. 락스타를 외치지만, 사실 곡의 짜임새는 가요계에서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 이것을 저는 "소리쳐"의 후이 파트가 나올 때 여실히 느꼈습니다. 곡 주인보다 훨씬 잘 묻어났거든요.


 결국 노래들은 잘 만든 락도 아니고, 힙합도 아니며, 잘 하는 랩도 아니고 보컬도 아닙니다. 이런 어정쩡함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는 시원시원하고 화려하여, 듣고 나면 감각적으론 나름 충족이 된 듯하지만 남는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공연장에서 들으면 대단히 좋은 곡으로 느껴질 거 같긴 합니다). 이는 "원기옥"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요한이 늘 가져왔던 문제입니다. 차라리 "불꽃"처럼 딥하게 들어갔다면, 혹은 "TO ALL THE FAKE RAPSTARS"처럼 다 때려부수는 쪽으로 더 발전시켰다면? 완전히 자기복제 논란을 벗어날 순 없었을 테지만, "원기옥"은 지나치게 하나의 코드로만 가버려서 모든게 아쉽습니다.


 뭐, 반대로 그 하나의 코드 안에선 나름 빵빵한 사운드에 속이 시원해하는 분들이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제가 그저 의도치 않은 헤이팅을 하고 있는 걸까요 - 존재감과 결과물의 괴리가 크다보니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어도 기대감이 쉽사리 생기지 않게 되었군요. 그러면 나는 한요한의 앨범을 총 감독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지휘를 했을까? 잘 모르겠군요. 기존의 모습을 재탕하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순 없지만, 이때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것이 반드시 하나쯤은 있어야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Minit 말고 다른 비트메이커는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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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4-06 17:22:23

이태원으로 오시는군요!
영어실력은 어디 가시나 낭중지추시네요 ㅎㅎㅎ

WR
1
2020-04-06 22:34:35

아 영어실력으로 가는 건 아니에요ㅎㅎ 사실 안 그래도 가서 영어 좀 써보나 했는데 아쉽게도 미군은 볼 일 없다고 하더군요ㅋ

2020-04-06 20:15:32

스키니체이스 앨범 좋았네요
장르음악이란 게 거기서 거기라 뭔가 독특한 포인트가 어필되면 되게 좋게 들리는데 스키니체이스는 그런 부분을 잘 자극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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