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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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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22:28:26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ICE BOYZ GANG - Multiverse (2019.11.14)

    ICE BOYZ GANG - Pablo Escobar (2020.3.12)


 ICE BOYZ GANG은 ISE LEAN, Carter Bang, IYAN 셋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2018년부터 곡을 올리기 시작, 작년에 첫 믹스테입 "아무렇게 살래 Vol.1"로 이름을 처음 알렸죠. "Multiverse"는 그들의 첫 정규였으며, 이후 트리플 싱글 하나와 오늘 소개할 EP "Pablo Escobar"가 발표되었습니다.


 얼핏 3인조라는 점과 트랩 뮤직, 그리고 자유분방한 이미지 (인스타를 가보면 벗고 놀기 좋아하는 이들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호미들과 살짝 겹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제일 잘 살아있는 "아무렇게 살래 Vol.1"를 들으면 호미들보다 더 날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Multiverse"와 "Pablo Escobar"에 실린 음악은 마치 잘 짜여진 계획 하에 움직이는 곡을 듣는 느낌입니다.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죠.


 "Multiverse"부터 간단히 얘기해봅시다. 무려 17곡이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앨범은 다른 세계를 향한 동경, 우주로의 이륙, 불시착 이후 등 세 단계의 서사로 앨범을 진행해나갑니다. 첫 파트와 마지막 파트는 상당히 감성적입니다. 만약 ICE BOYZ GANG의 에너지를 기대했다면 두 번째 파트에서 살짝 감을 잡을 수 있는 정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큰 규모의 앨범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서사의 설계와, 각 파트의 수록곡들이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인 매력을 발휘하는 점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즉흥적으로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좋은 근거입니다 - 생각 없이 곡만 만들어서는 짜올리기 힘든 치밀한 구조입니다.


 이번에 나온 "Pablo Escobar"는 큰 서사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안정적인 느낌이 그대로 있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머니 스웩이란 소재를 채택했지만 곡들 내내 과하게 흥분하는 법이 없습니다. 네, 사실 "안정"이란 ICE BOYZ GANG의 음악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정확하게 앞 마디의 라임과 플로우 패턴을 이어가며, 튀는 구석은 없지만 비트와 잘 어우러지는 탑 라인은 한국 힙합 씬 내 양산형 트랩 음악과 오히려 비교되는 포인트입니다.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음악에는 빈 부분이 더 많습니다 - 한 마디 내에서 딱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만큼만 랩을 하고 넘기는 겁니다.


 "Multiverse"에서 보여준 서사와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정확한 랩, 그리고 세 멤버들끼리 다소 비슷하지만 그래도 개성적이고 탄탄한 발성까지 큰 흠을 잡기 어려운 팀입니다. 신인답지 않은 완숙함이 있죠. 다만 어쨌든, 에너지를 느낄만한 곡이 흔치 않은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간혹 "아무렇게 살래" 믹스테입을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날것의 바이브가 그립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셋이나' 랩할 사람이 있음에도 아끼는 것 없이 곡에 주어진 분량만큼 무조건 정직하게 소화해내기 때문에 곡들은 대부분 4분 전후로 이루어지며 (그리고 "Multiverse"는 다시 말하지만 17곡이었습니다), 안정적인 랩을 쫓다보니 플로우 패턴에선 사실 멤버들 간의 개성을 느낄 새가 거의 없고, 듣다보면 그 랩이 그 랩 같아지기도 합니다. 이 안정이 그들이 추구하는 바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부산물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이 틀을 깨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단점으로 여겨질지언정 그런 틀은 기본이 단단히 잡혀있다는 뜻이고 이는 다른 루키들 사이에서 튀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포텐셜이 있으니 앞으로 더 놀라운 곡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사실 "Pablo Escobar"만 말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과거 작업물을 찾으면서 들은 "Multiverse"가 인상적이어서 이렇게 긴 글이 되었네요.



(2) DeepHartt & WONJAEWONJAE - KOREAN MALE (2020.3.12)


 각각 소소하게 싱글을 내면서 솔로 싱글을 이어오긴 했지만, 콜라보 앨범이자 두 멤버에게 앨범 단위의 결과물로는 9개월 만인 "KOREAN MALE"입니다. 둘의 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크게 낯설지 않은 종류의 '한국식' 이모 힙합이 담겨있습니다. 전작 "PYEONGTAEK TO OITA"와 비교하자면, 커진 규모만큼이나 조금 더 깊이 있게 들립니다. "좋은밤좋은아침"이나 "문자 줘" 같은 곡이 좋은 예일 거 같아요 - 확실히 전작의 빈약하고 얕은 비트와는 비교가 됩니다. 비트메이킹 뿐만 아니라 사운드 엔지니어링에서도 좀 더 힘 있어진 거 같군요. 단순히 제 취향대로 좀 더 땜핑이 있어져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둘의 랩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두 아티스트의 곡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너무 평이하게 들립니다. 장르적 특성에 너무 박한 걸지 몰라도, 박자나 멜로디 등이 상당히 단순한 패턴에 머물러있고, 재밌게 만들려는 고민이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 탑 라인이 저음역대일 때는 특히 그 따분함이 배가됩니다. 원인 중 하나로는 과한 오토튠을 들 수 있습니다. 역시나 취향 탓일 수 있지만, 본인 목소리로 줘야하는 매력과 느낌마저 오토튠에 묻어버린 것 같달까요. 단순한 패턴, 기계적인 목소리는, 분명 크레딧을 보면 둘이 랩한다고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되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실제로 저는 크레딧을 보고서야 두 사람이 다 랩을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랑 데모" 같은 곡은 오토튠을 뺐던데 (제목을 보니 다른 앨범 수록곡의 데모 곡인 걸까요? 확실히 곡 구성부터가 좀 튀긴 하는데) 이런 시도를 좀 더 해봐도 됐을 거 같은데 말이죠.


 전작보다 발전된 모습은 반갑지만, 아직은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는 완성되지 못한 거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식' 이모 힙합하면 떠오르는 그대로의 음악입니다. 둘의 콜라보로 돌아오든 각자의 앨범으로 돌아오든 다음에는 둘의 이름을 기억할만한 요소가 더 있었으면 좋겠네요.



(3) Superbee - Rap Legend 2 (2020.3.13)


 연예인(?) 걱정은 하는 거 아니랬지만, 근 1년여 사이 Yng & Rich Records는 생각만큼의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응을 받았던 '수퍼비의 랩학원'은 우승자들을 약속한 대로 6개월 내에 부자를 만들어주지 못 했으며,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을 Uneducated Kid 새 앨범도 엇갈리는 의견 속에 지나갔습니다. 막 들어온 Yuzion을 빼면 남은 건 대장 수퍼비 뿐이었고, 그래서 유튜브도 접고 빡세게 앨범 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Rap Legend 2"는 '나 돈 많다' '나 랩 잘한다'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조롱일 수 없는 이유는 실제로 수퍼비는 돈이 많고 (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전 국세청이 아니고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 랩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청각적 쾌감을 앨범을 들을 때 가장 큰 기준으로 삼는다면 "Rap Legend 2"는 확실히 탑급입니다. 찰지게 조여대면서 말 그대로 때려박는 수퍼비의 랩은 이전과 비교해도 확실히 물이 올랐습니다. 너무 돈 얘기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순 있으나 저는 그렇게만 치부할 정도로 간단한 얘기를 쓰진 않았다 생각합니다. 더불어 센스 있는 펀치라인들도 몇 개 보입니다. 뻔해질 수 있는 머니 스웩이라도 뻔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문제는 없는 거죠. 주제 면에서 궤를 달리 하는 "Kidk Kidk"의 경우는 어떤 면으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남는 건 지나친 텐션 때문입니다. 앨범은 자신의 랩 실력을 이 자리에서 증명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듯, 가사와 플로우가 전부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밀고 당기는 스킬이 없이 그저 타이트하게 마디를 채웠기 때문에, 듣다보면 그 랩이 그 랩 같아지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이는 텐션에 어울리게 비트도 빡센 것들을 갖다썼기 때문이죠. '수퍼비의 랩학원' 1차 예선 때 어떤 참가자한테 수퍼비가 '알았어 알았어 당신 랩 잘해!'라고 하는 장면이 좀 떠오르더군요. 맥너겟 TV에서 이번 앨범을 얘기할 때 면도가 '귀에다 계속 기관총을 쏴대면'이란 말로 총평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요컨대, 앨범을 좀 더 재밌게 만드는 노력을 했어야할 겁니다. 1집이었던 "Rap Legend"도 비슷했을 수 있지만, 2주 후 나온 "Original Gimchi"가 이를 카운터하는 효과를 보여줬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2주 후에 뭐가 나오진 않았는걸요.


 수퍼비는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참가자들에게 좋은 음악 만드는 것만큼 자신을 각인시킬 재밌는 기믹, 컨셉 등을 고민해보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랩 실력만으로 인정 받는 위치 (뭐 초기의 디스전이 도움을 주긴 했겠죠)에 오른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분명 인정해줘야 하는 대단한 일입니다. 허나 결국 본인의 말대로입니다. 요즘은 Eminem도 '너무 잘하기만 한다'면서 비평 받는 시대입니다. "Rap Legend 2"는 싱글로 떼놓고 보면 멋진 곡들의 모음집이긴 합니다. 하지만 12곡 내내 이어지는 격렬한 롤러코스터를 견디게 할만큼의 요소가 있었는가 하는 부분에서 아쉬움은 남는군요.



(4) unofficialboyy - drugonline (2020.3.13)


 저번 앨범 "unofficialboyy EP"로 느꼈던 unofficialboyy의 음악은 트랩의 트렌드대로 만들어진 듯하면서도 묘한 뭔가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집니다 - 비교하자면 묘한 기분은 이번 앨범에서 더 강합니다. 전작은 'trippy'한 느낌 (전작에서 말했듯 한글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고, 전체적으로 흐느적거리는 클라우드 랩 특유의 무드가 강했습니다. Ian Purp에서 404NOTFOUND 전체 프로듀싱으로 옮겨오면서 타격감 짙어진 드럼 라인 위 깔리는 비트는 쌩뚱 맞게도 Grack Thany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만큼 일반적인 트랩은 아니라는 뜻이죠. 


 unofficialboyy는 trippy를 버리진 않았습니다. 힘 없이 짜내고 중얼거리는 듯한 톤은 곡의 대부분에 깔려있죠. 근데 이게 강렬한 비트랑 만나니까 의외의 조합으로 여겨지고, 비트에 완전히 파묻히지는 않도록 사운드 어레인지를 잘 한 느낌입니다 (물론 뚫고 나오진 않습니다. 그건 의도한 바도 아니었을 거에요). 여기에 "Insane"이나 "예감"처럼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얻는 반전 효과도 있습니다. 더불어 가사. 이런 류의 경우 가사를 전혀 신경 안 쓴듯 쓰기 마련인데, 의외로 라임이 치밀하고, 뼈 있는 메세지를 던지기도 합니다. 그저 또 하나의 트랩 앨범 같으면서도 마냥 가볍게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박혀있습니다.


 뒤로 갈 수록 멜로디컬한 요소가 줄어들고 로파이하게 변해가는 구성은 어쨌든 생각 없이 듣는 앨범이 맞았나보나 싶습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전반부 때문에 마냥 가볍지 않은 재밌는 경험으로 마무리되는군요. 유난히 큼직한 줄기 서너 가지로 요약되는 듯한 한국 힙합 트랩씬에, unofficialboyy는 이번 앨범으로 그 사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은 영역 하나를 확보한 듯합니다.



(5) HOFGANG - HOFGANG Vol.1 (2020.3.13)


 HOFGANG은 과거 Audio Game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듀오의 새 이름입니다. 허나 Joystick, Playback이 각각 kitsyojii, kaogaii로 이름을 바꾸고 스타일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에 이 앨범은 Audio Game의 컴백이라기보단 HOFGANG의 첫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편할 거 같습니다 - 특히 kitsyojii는 과거가 전혀 생각 안 날 정도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으니까요. LBNC Records를 통해 나오는 앨범인만큼 마진초이가 전곡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두 멤버 다 크게 바뀌었지만 그중 kitsyojii는 개인적으로 동일 인물이라는 걸 부정하게 될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반면 kaogaii의 경우, 솔로 작품은 더블 싱글 뿐이지만 Playback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고 있죠. 이로 인해 생겨난 괴리가 HOFGANG에게는 풀어나가야할 숙제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트랙의 진행에 따라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트로인 "Sail Away"는 사실 Audio Game 때의 트랙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후 "돼지표 본드" 쯤부터는 kitsyojii의 뻔뻔한 범죄자 컨셉을 차용하고 있죠. 제가 kitsyojii에 너무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저는 그의 컨셉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앞부분은 그 컨셉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뒷부분은 kaogaii와의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그런 kitsyojii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면? 중간 부분은 어느 정도 타협점이라 할 수 있는 트랙으로 kitsyojii의 멜로디 비중이 줄어있고, 주제도 어느 정도 일반적인 방향에 맞춰있는데, 이 안에서 kaogaii의 랩과 kitsyojii의 싱잉 랩의 조화는 괜찮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아쉬운 것뿐이죠. 분명한 건 Audio Game 때보단 리스너에게 이름을 기억시킬 매력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필요한만큼의 임팩트만 가지고 있는 마진초이의 비트도 좋았습니다. 앞으로 둘의 스타일을 어떻게 조화시켜나갈지 추후의 앨범에서 확인해보도록 하죠.



(6) 40 - Notebook (2020.2.18)


 40이란 아티스트가 한창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기인 2010년대 초반은 제가 음악을 잘 못 듣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름과 피쳐링 (심지어 친구의 컬러링도)으로 접하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었네요.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최근에 앨범이 나왔다길래 들어봤습니다.


 기억 속의 40은 슬로우 잼에 어울리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한 R&B를 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이번 앨범은 상당히 담백하군요. 전곡의 주요 멜로디를 구성하는 악기가 키보드 하나 뿐입니다. 가성의 비중이 큰 발성으로 허스키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여전한데, 반주와 어울려서 가볍고 은은한 분위기를 잘 내는 것 같습니다. 감성적인 가사도 좋고요. Crush 최근 앨범의 전반부가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역으로 40도 90년대 R&B를 표방하는 아티스트인가 생각이 들었죠. 단순한 구성과 비슷한 코드 때문에 거의 전곡이 하나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게 느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하나 기억에 박히는 곡 없이 무난무난하게 진행된단 뜻이기도 하죠. 제게는 조금 너무 밋밋한 감상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40의 실력은 둘째 치고 이 분위기가 취향에 맞는지가 앨범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할 거 같네요.



(7) Jambino - 누워버릴까 (2020.2.18)


 Jambino는 사운드클라우드 페이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작업물을 발표하기 시작한 래퍼입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과거 작품은 싱글 하나 뿐이지만 사클에 가보면 앨범이 두 개 정도 올라와있고, 나름 꾸준하게 작업을 해왔던 듯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의 적잖은 수는 작년 말 화지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송캠프 프로젝트 'Yizumin'을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Yizumin 앨범 감상 후기를 쓸때 말했지만, 다소 구분 안 되는 참여 멤버들 간의 스타일 때문인지 멤버들에 대한 기억이 좀 희미했는데, 뒤늦게나마 Jambino가 첫 EP를 발표한 것을 보고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Yizumin 때의 바이브를 생각하고 앨범을 돌릴 경우 상당한 반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가느다란 톤과 치밀한 라임 구조를 가진 싱잉 랩이라는 기본 틀은 동일하지만 워낙에 앨범을 구성하는 바이브가 다르기 때문이죠. 펑키한 세션 위에서 이루어졌던 Yizumin과 달리, rennis t라는 비트메이커가 전곡을 프로듀싱한 "누워버릴까"는 이모 힙합 계열이며, 매우 미니멀한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 첫 트랙 "d!lq"부터 허전하기 짝이 없는 비트 위에 Jambino의 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실은 Jambino의 랩을 계속 돌려듣다 보면 자연스레 "킁"이 생각납니다. 가녀린 발성에 살짝 덧입혀진 오토튠도 그렇지만, 박자를 제멋대로 줄이고 뭉개는 특유의 발음과 전체적으로 유지되는 경쾌한 코드 때문입니다. rennis t의 비트는 "킁"과는 매우 반대되는 느낌으로 작곡되었고, 때문에 비슷한 싱잉 랩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식으로 소비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Jambino의 싱잉 랩은 매우 정확합니다. 길게는 3글자까지도 한 음절에 밀어넣고는 스타카토처럼 콕콕 찝어 부르는 창법과 반복되는 멜로디는 그의 음성이 정확히 악보에 따라 연주되는 키보드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무엇보다, 비트가 미니멀해서 대개의 곡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생각보다 트랙들이 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킁"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을 포함하여 "누워버릴까"는 약점이 분명합니다. "니 마음 내 마음" "아마" 같이 플로우 패턴이 좀 바뀌는 곡들은 있지만 대개는 거의 비슷한 패턴의 플로우와 비트, 탑 라인이 존재합니다. 거기에 Jambino 특유의 라이밍도 한몫합니다. 의식의 흐름 따라 멋대로 전개되는 내용에 더불어, 라임을 위해 거침 없이 이뤄지는 문장 구조 파괴 및 도중에 문장을 끊어버리는 플로우,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억양 때문에 "누워버릴까"의 내용 전달력은 매우 안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앨범을 들을 때는 그저 Jambino의 멜로디를 멍하니 따라가게 되는데, 그게 생각보다 들을 거리가 다양하진 않은 거죠.


 그래도 너무 나쁜 앨범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소 실험적일 수 있는 시도에 반해서 꽤 흥미로운 결과물이 탄생했거든요 - 어쨌든 멍하니 따라가게 한다면 중독성은 있다는 것이겠죠. "킁"과의 유사점을 지적했지만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일입니다. 그래도, 다음 작품은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평범한 리스너로써 들긴 하네요.



(8) Hanmmaa (유홍) - Dance wit Me! (2020.3.14)


 Hanmmaa (유홍은 본명이지만 일단 같이 표기하는 경우가 많더군요)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 중인 래퍼입니다. 적어도 2017년부터, 6uoyn이란 이름으로 낸 믹스테입도 있던 거 같지만 현재는 다 내려갔고, 음악을 제대로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후 첫 믹스테입 "Dance wit Me!"를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앨범이 올라와있는 여러 인터넷 페이지를 보면 본인이 많이 힘들게 작업했다는 얘기가 빠지지 않고 적혀있습니다. 실제로 "Dance wit Me!"는 공 들인 앨범입니다. 약간 문맥에서 벗어나보이는 9번 트랙을 제외하면 사람들과 술판을 벌인 후 벌어지는 일과 교차하는 감정을 비교적 자연스러운 흐름의 여러 곡에 담아냈습니다. Hanmmaa는 주제에 따라 여러 가지 랩 스타일을 소화해내며, 안정적으로 곡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적당한 변화를 주는 플로우와 리듬감을 살리면서 너무 딱딱하지 않을 정도의 라임 비중, 뻔한 단어를 피하는 표현들까지, 각 요소별로 뜯어봐도 큰 단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중간중간 들어간 스킷까지, 한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큰 서사를 탄탄하게 전개시키고자 한 노력은 분명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Dance wit Me!"는 좀처럼 큰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앨범입니다. 분명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긴 하는데 점차로 곡들은 따분해지고, 기억에 남는 파트가 적습니다. 오히려 맥에서 벗어난 "Light is Over"가 분위기를 새롭게 환기시키면서 끝을 맺어 인상적이었던 거 같아요. 위에서 말했듯 큰 단점을 집기 어려운 대신, 2%씩 부족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 이런 현상을 만든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맥아리 없는 발성이 그 중 한 가지로 느껴집니다. 뭔가 아스라한 느낌의 톤은 포인트를 줘야할 곳에 충분히 힘을 주지 못하고, 훅의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운드 후작업 부분으로 보완할 수 있는 구석이 있을 거 같은데, 환경 탓이겠지만 이번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 했던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앨범에서 Hanmmaa만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냉정히 말하여 Hanmmaa의 랩은 특색 없이 밋밋하여서, 기술적으로 괜찮더라도 감흥이 덜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이 문제는 약한 발성과도 어느 정도 맞물려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창작에 있어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청자에게 각인될 본인만의 이미지가 없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뒤집자면, 나름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가장 큰 벽 하나를 앞두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지나친 낙관론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기본부터 다져온 아티스트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 벽을 넘는 순간 좀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기대해봅니다.



(9) BlueWhale - WARP (2020.3.16)


 고등래퍼 시즌 3에서 최진호라는 이름으로, TangTheAwesome (권영훈)과 함께 제8기후대라는 크루를 알린 주역이었던 BlueWhale이 첫 EP를 발표했습니다. 비록 그 후 출연한 싸인히어에선 존재감이 다소 미미했지만, 고등래퍼에서는 준수한 랩 실력보다도 다른 참가자들이 하지 않고 건드리기도 쉽지 않은 R&B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목을 끌었던 참가자였죠.


 고등래퍼 출연 당시 자신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곡이라 밝혔던 "Drama"의 프로듀서 MoonMean이 이번 앨범 전곡을 만들었습니다. 앨범에 담긴 스타일은 BlueWhale이 당시 보여준 것의 업그레이드 판입니다. 수록곡 4곡이 조금씩 다른 스타일이라 방향성에 맞춰 진하게 녹아있는 감성을 느끼는 재미가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고등래퍼 당시의 트렌드처럼 감각적인 느낌을 내려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비트나 랩이나 청각적인 쾌감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설계가 되어있는 것이 강점이랄 수 있습니다. 특히 MoonMean이란 비트메이커의 역량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아마 BlueWhale과 비슷한 나이대일텐데 다양한 악기를 조화롭게 다뤄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임팩트를 주는 노하우가 있더군요.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 스타일 나름의 맛을 감안하면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짧은 커리어와 경험 탓일지, 의도한 대로의 느낌이 잘 우러나오진 않는 것 같습니다. 사운드 작업의 문제일지 본인의 역량 문제일지, 개인적으로는 첫 트랙 첫 마디의 애드립을 들을 때부터 생각보다 목소리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근히 박자나 코드 전개가 조금씩 현란할 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듯한 건 저만 그런지 모르겠군요. 특히 (마찬가지로 고등래퍼들에게 만연하던 문제인) 메세지 전달이 잘 안 되는, 그저 멋에만 집중한 듯한 가사 전개는 아쉽습니다. 원래 제가 맞춤법충이라 문법 안 맞는 영어로 가사 쓰는 걸 매우 싫어하는데, 전형적인 나쁜 예를 갖춘 느낌입니다 - 나름 제가 해석하는 사람인데 해석이 잘 안 되요...


 분명 그 나이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포텐셜이 크고 야심도 있어보이는 점은 좋습니다. 그만큼 본인의 목표가, 그리고 청자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아직 다듬을 것도 많아보이는군요. MoonMean은 그에겐 좋은 파트너인 거 같습니다 - 앞으로도 많은 콜라보를 보여주겠죠? 둘 다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 보여주면 좋겠네요.



(10) Josh Im - Gemini (2020.3.17)


 Josh Im은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래퍼입니다 (2019년 싱글에는 버지니아 주 기반이라고 되어있었긴 합니다).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첫 싱글이 작년에 나왔고, 사운드클라우드에는 2017년부터 곡이 올라와있긴 합니다 - 이 앨범 전에 "Extended Playlist"라는 다섯 곡짜리 앨범도 있었고요. "Gemini"는 우연한 기회에 들어보게 된 그의 최근작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처음 그의 목소리와 랩을 들어보는 입장에서 감상을 제일 잘 요약할 수 있는 건 '옛날 스타일'이라는 단어 같습니다. 특별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 대부분의 리스너들은 그러한 이유로 앨범 듣는 재미를 부족하게 느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Josh Im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쪽보다는 낮게 깔려 비트와 어우러지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데, 문제는 발성이 약하다보니 어우러진다기보다는 묻히는 느낌이 강합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웅얼대는 느낌인거죠. 여기에 플로우가 매우 담백한 편이기 때문에 리듬이나 그루브에서 이를 보완하지 못 하고, 단조로움만 남아있어 듣는 재미를 많이 해칩니다. 이런 단점은 "Blood Type" 같은 차분한 노래에서 더욱 드러나지만, 사실 그가 신나는 곡을 한다면 괴리감이 더 심해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3년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작품 활동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메세지 전달에 있어서 그래도 뻔하지 않은 소재를 택하고, 어렵지 않고 진솔하게 풀어나가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라임도 나쁘지 않게 골라 쓰고 있고요. Roko Tensei라는 비트메이커의 말랑말랑한 비트와 이런 그의 경향이 합쳐져, 2000년대 초중반 한국 힙합씬에서 유행했던 '감성 힙합'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마 Josh Im은 '청각적인 것보다 메세지에 집중한' 음악을 지향하였을 것입니다 - 저도 최근에 제 음악에 대해서 그런 주장을 했다보니 찔리긴 하는데, 그러한 메세지도 결국 귀에 와닿지 않으면 본래 가진 힘을 많이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모든 문제가 Josh Im의 실력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 사운드 엔지니어링 자체가 좀 맥아리 없게 된 까닭도 있고, 환경 탓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건, 어떤 면으로든 그가 목표하는 지점까진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거겠죠. 

3
Comments
2020-03-31 22:37:53

와... 정말 아티스트들이 이걸 보면서
얼마나 감사해할까요 ㅠㅠ
늘 대단하십니다!

WR
2
2020-03-31 22:47:49

그러기를 바랍니다ㅠ

2020-04-02 13:51:06

허슬러!!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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