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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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22 21:48:56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금요일 밤에 올리려고 했는데 업로드할 때 자꾸 에러가 나서 이제 올리네요..

던말릭 글을 기대하셔서 긴장 좀 많이 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용

마침 제 새 믹스테입도 내일 나온다죠. 어떤 앨범이냐고요? 그건 홍보글이 되니까 안 되요 총총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Don Malik -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 (2020.3.6)


 적어도 국내 힙합씬에서는, 트렌드가 바뀌고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온전하게 붐뱁에만 치중하는 뮤지션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신선함을 제공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하는 창작자 입장에서 오로지 붐뱁만을 만든다는 건 매우 불리한 전략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Don Malik은 그런 씬 안에서 꿋꿋이 90년대 골든 에라를 표방해온 흔치 않은 아티스트입니다. 그러던 그는 2018년 VMC와의 디스전에 이어 미투 운동으로 인한 누명을 쓰면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 했고, 겨우 근래에 들어서야 Dopplegangem 크루와 함께 재기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 중 가장 또렷한 흔적, 사막과 같았던 그의 커리어에 선인장으로 선 그가 피워낸 꽃 "선인장화"입니다.


 붐뱁 음악은 어떤 이미지로 소화되는가를 한 번 생각해봅니다. 아마 빡센 이미지, 어두운 샘플 루프, 딥하게 때려대는 스네어, 약간의 랩 스킬 정도가 연상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인장화"는 사실 이 공식에 따르지 않습니다. 앨범은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평소 Don Malik의 어투대로 소재와 거리를 두고, 씨니컬하면서도 날카로운 말투로 주장을 펼칩니다. 이 주장은 Don Malik은 그의 커리어 내내 워낙 흔들림 없던 터라 이번에도 여지 없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다만, 힙합에서 본인의 영역과 할 수 있는 것을 역설했던 지난날과 달리 이번에는 개인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있긴 하죠. 심심치 않게 떨어지는 묵직한 가사 ('미워하려면 미움 받는 연습이 먼저니' 인상적이었던 구절 중 하나)는 감상을 내내 인상적인 경험으로 만드는 가장 큰 추진력입니다.


 그럼에도 "선인장화"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첫 문단에서 순수한 붐뱁의 약한 입지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약간의 레이백과 늘어지는 목소리로 한 마디 내내 끊이지 않는 그루브를 만드는 Don Malik의 랩은 큰 장기이지만, 한 벌스에 고르게 펴져있는 그의 플로우는 확실한 임팩트를 원하는 리스너에겐 역효과를 낼 것입니다. 특히 이번 앨범처럼 담담한 스토리텔링인 경우는 더욱요. 청각적 쾌감에 대한 고려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훅이 호흡을 정리해주는 효과도 크지 않고, "같은 옷" "전염" 같은 신나야할 것 같은 곡도 그리 신나지 않습니다. 취입된 비트마저도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져있죠 - '그' J.U.가 대여섯 곡이나 줬음에도 뭔가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입니다.


 들으면서 E-Sens의 "이방인"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Don Malik 랩이 E-Sens랑 닮았다는, 데뷔 초기에 돌았던 해묵은 떡밥을 끄집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앨범의 제작 의도와 구성이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본작을 감상함에 있어 제일 초점을 맞춰야하는 것은 담겨있는 서사이고, 그 측면에서 "선인장화"는 실로 단단하고 무거운 앨범입니다 - "이방인" 때도 말했듯, 잘 만든 '하드코어 앨범'입니다. 피지컬이 발매되지 않아 트랙리스트에만 이름을 올려둔 미공개곡 두 곡 ("Hotbox"는 선공개됐으니)이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다만 가벼운 감상을 원하는 분들한테 "선인장화"는 상당히 삼키기 힘든 알약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애초에, Don Malik은 쉽게 삼키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 같지만요.



(2) TELEO - LUA (2020.2.27)


 TELEO는 2019년 1월 첫 EP를 발표한 비트메이커입니다. 첫 EP "RE:BORN"의 전곡에는 최근 이 시리즈에서 소개한 적도 있는 FELIX DA RAIN이 참여했으며,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시피 그와 같은 크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번에 "AI SURGERY" 앨범 얘기할 때 Pastelinthehouse가 크루인 거 같다 했는데 요번에 보니 Khronic Vibe가 크루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군요). 이번 앨범은 그의 두 번째 EP입니다.


 앨범 소개글을 보면 기존의 '어둡고 무거운' 힙합 장르와 반대되는 노선을 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데, 그로 인한 결과랄지, 앨범은 하우스, EDM의 색채를 아주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사실, 그쪽 장르로 나왔다고 해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거에요. 꽤 전형적인 코드 전개와 빌드업 공식을 따르기 때문에, 1-3번 트랙은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별개로 신나고 에너지 있게 만들어지긴 했어요.


 다른 TELEO의 작품과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차이는 전면에 나선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BORN"을 자세히 듣진 못 했지만 그때만 해도 피쳐링진의 보컬을 메인으로 두고 서포트를 하는 프로듀서의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비트가 할 말이 많습니다. 특히 신스 스트링 ("wish u find me again"에서는 색소폰)의 존재감이 상당히 큽니다. 잼을 즐기듯 자유로이 풀어나가는 스트링 연주는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색이라고 생각합니다. "Nights" 같은 트랙에선 피쳐링진의 목소리와 충돌하는 것도 같긴 한데, 반대로 아무도 방해(?)할 사람이 없어진 "Mecha Melotronica"에서는 화려한 갈라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TELEO의 작품 세계를 알 정도로 오래 들은 건 아니지만 감히 얘기하건대 "LUA"는 늘 한 발짝 물러나있던 비트메이커가 이번에는 앞으로 나와 만든 앨범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그니처 사운드가 메챠메챠인 것을 제외하면 (...), 어찌 보면 일렉트로니카 계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리를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만 힙합 장르 내에서 행해진 시도라는 점은 충분히 눈 여겨볼만 합니다. 올해 다양한 것을 준비 중이라 하니 추후에 어떤 걸 낼지 기대해보겠습니다.


 

(3) 反武 (반무) - 暴力時代(폭력시대) (2020.3.4)


 반무는 血紅姉妹 (혈홍자매), Youngtag, hira로 이루어진 3인조 그룹입니다. 혈홍자매의 경우는 래퍼로써 2019년과 2020년에 EP를 한 장씩 발표했고, 정확치는 않지만 인간미, 폭력시대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해왔던 듯한데, 나머지 두 래퍼에 대한 정보는 확실치가 않네요. 반무의 이번 앨범에서는 혈홍자매는 프로듀서 (+커버 아트)로만 참여하고, 랩은 Youngtag과 hira가 전담하였습니다.


 단연 이번 앨범은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거칠고 어두운 사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앨범 소개에 Memphis rap, Phonk 등으로 소개되어있는데 제가 원체 음알못인 터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간단하게 공부를 해봤을 땐 랩보다는 비트의 성향을 뜻하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확실히, 로파이한 질감과 빵빵한 저음역대로 무장하고 있지만 괴물 같은 파워가 비트에서 나오는 건 아니죠. 혈홍자매의 비트는 두 래퍼의 퍼포먼스를 깔끔하게 서포트해주는 훌륭한 기반 역할을 하고, 그 이상으로 반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랩입니다. 특히 hira의 퍼포먼스가 놀랍습니다. 중성적인 톤임에도 (진짜로 여자 래퍼인가 했어요 처음엔;) 전체적인 분위기에 눌리기는 커녕, 폭발할 때는 오히려 분위기를 리드하는 스펙트럼은 엄청난 재능입니다 - 최근 다른 피쳐링 곡이 나와서 같이 들어보니 180도가 다른 분위기임에도 곡에 잘 녹아들더군요. 반무 밖에서도 주목해야할만한 플레이어 같습니다. 물론 Youngtag의 랩도 hira와 좋은 시너지를 이루어, 앨범의 퀄리티 상승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폭력시대"는 분명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려도 이상하지 않을 스타일입니다. 그럼에도 꽤 많은 이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은, 무작정 세게만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전체 틀 속에서도 힘을 뺄 곳은 빼고 더 줄 곳은 주는 식으로 훌륭한 컨트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혈홍자매의 비트와 hira의 랩 톤이 그것을 위한 중요한 재료였던 거 같고요. 유사한 스타일이라 볼 수 있는 트랩 메탈 (일단은 국내 힙합 한정. 국내 것만 들어봐서;)의 경우 거친 욕설과 락 사운드, 그라울링 등으로 요약되는 다소 뻔한 모습으로 일률화되어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도 개성을 발휘했고요.


 다만 일률화는 이런 극단적인 스타일이면 하나 같이 피하기 쉽지 않은 현상인데, 이런 약간의 우려를 제외하고는 저는 이번 앨범을 아주 재밌게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이라 (뭐 한국사람의 "환상"이 있긴 한데 그분은 워낙 스타일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가 되네요.

 

 

(4) KOREANGROOVE & Eddy Pauer - 부셔 (2020.3.7)


 단연 Friemilli 크루에서 제일 왕성한 작업량을 보여주는 KOREANGROOVE의 새로운 앨범입니다. 이번에는 Eddy Pauer와 콜라보를 했군요. 취향의 벽이 높은건지 아직도 KOREANGROOVE의 매력을 잘 모르는 저로써는 이번 앨범도 그냥그냥 들은 거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들은 그의 작품이 Chamane "2345 Remix"여서 그거와 대비되어 좀 더 편하게 들은 거 같긴 한데, 이게 창법의 변화인지, 아니면 Eddy Pauer의 비트 덕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래 나왔던 "YAGWANG 2" "Common Vibes Pt.2"와 비교하면 온전히 싱잉 트랩만 실려있어서 좀 더 집중이 되는 효과는 있는데... 무난한 건 여전합니다. 실은 Eddy Pauer 비트도 저는 슬슬 비슷하게 느껴져가는 형국이라... "부셔"의 멜로디는 조금 기억에 남긴 했지만 나머지는 그냥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끝난 가벼운 앨범 같네요.



(5) Ash-B - OK Bish (2020.3.7)


 개인적으로 본격 트랩 래퍼로써의 변신을 꾀한 첫번째 작품 "Slaying Ash"는 그냥 무난한 클리셰로만 채운 앨범일뿐 큰 감흥이 없다는게 결론이었습니다. 근데 그 후 Ash-B가 RapHouse on Air에서 보여준 라이브에서 뭔가 느낌이 오더니, 이번 트리플 싱글에서는 호감으로 돌아서버렸습니다. 전작에 비해서, 랩을 맛깔나게 맺고 잇는 것이 좋아져서 그루브감이 훨씬 커졌습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게 하는 것만 봐도 소기의 성공을 거둔 앨범이 아닌가 합니다. 톤도 훨씬 안정되고 탄탄해졌고요. "WOO" 같은 건 "Slaying Ash" 때부터 쭉 있어왔던 곡임을 감안할 때 사운드도 전체적으로 힘 있어지면서 임팩트를 주게 된 거 같습니다 (아님 그냥 제가 예전에 대충 들었을 수도 있겠죠...;). 큰 기대가 없었는데, 요근래 보여주는 모습들은 기분 좋은 반전이로군요. 좀 더 규모 큰 신작을 내면 기분 좋게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Lil Yaon - MEOWORLD vol.1 (2020.3.8)


 Lil Yaon은 IndEgo Aid의 크루인 5101 크루의 멤버로, 본래 "조슈아 심"이란 랩 네임으로 활동하던 래퍼입니다. IndEgo Aid와는 콜라보 앨범 "달토끼"를 내기도 했죠. 저는 사운드클라우드를 잘 듣지 않기(보다는 못하기..) 때문에 Lil Yaon의 랩을 접할 기회는 "달토끼"와 Ourealgoat의 최근 Raw Sh!t Cypher 정도 뿐이었습니다. 여담으로 곡이 업로드된 시기는 천차만별인가봅니다 - 1번 트랙이 3개월 전 업로드라고 되어있어서 옛날 믹테를 이제 발견한 건가 싶었네요.


 "MEOWORLD"의 감상은 한 마디로 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모습이 녹아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다양하고 통제 불능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 앨범 커버가 살짝 잘 어울리는 부분이군요. 대략 두세 트랙마다 분위기가 바뀌는데, 크게 둘로 나누어 4번 트랙까지를 오토튠 싱잉 트랩으로 묶을 수 있겠고, 이후부터 살짝 난해한 랩 트랙으로 약간 "달토끼" 때의 모습이 겹쳐보이기 시작합니다 (8번부터 다시 좀 트랩 색깔이 가미되면서 돌아오긴 합니다). 곡들을 관통하는 건 뭔지 모를 무질서한 바이브랄까요. 가사도 제공 안 되었는데다 전반부의 곡들은 요란한 오토튠 때문에, 후반부 곡들은 현란한 이펙트와 플로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믹싱 자체도 보컬과 MR이 그렇게 잘 분리해둔 거 같지 않아요). 곡들은 대부분 2분도 되지 않는 짧은 길이로 구성되어있어,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무드에 귀를 맡기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트랙에 도달해있습니다.

 

 의도적인 혼란이었을 것 같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4번과 5번 트랙을 기준으로 하여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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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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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 21:51:31

무슨 오류인지 모르겠는데 저 글 이후로 한 글자만 써도 nginx 어쩌고 하는 에러가 나면서 올라가질 않네요ㅠ 나머지는 리플로 답니다.

 

워낙 다르기 때문에 들으면서 좀 난감했습니다. 덕분에, 이 앨범이 좋았다 싫었다, Lil Yaon이 좋다 나쁘다 를 얘기하는 건 이른 거 같습니다. 감상을 덧붙이자면 전반부 트랩은 사실 어디서 들은 듯한 느낌이 많이 났고, 후반부의 읊조리는 랩이 더 느낌을 잘 살려서 후반부가 제 취향엔 더 맞았던 거 같습니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vol.2이 추후에 나온다면 한 번 더 확인해보도록 하죠 (근데 이것의 후속편이면 마찬가지 분위기로 나오는 거 아닌가).



(7) B JYUN - BREAK THE LINE. (2020.3.8)


 본래 붐뱁 래퍼로 시작했던 B JYUN은 지난 앨범 "SOVISIONARY"에서 싱잉 래퍼로 노선을 달리하였고, 이후 이 장르를 완벽하게 다듬어오는데 커리어를 할애했습니다. 실수로 이 시리즈에서 놓쳐버린, 작년 Catchup과의 합작 앨범 "전야제"를 거치면서 그는 싱잉 자체를 더욱 다듬어갔고, 간간히 Penomeco가 연상되는, 얼터너티브 R&B와 랩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뮤지션이 되었습니다. "BREAK THE LINE."은 그러한 노력이 맺은 커다란 결실입니다.


 앨범에는 B JYUN의 다양한 퍼포먼스가 담겨있으나 위에서 말했듯 노래하는 B JYUN이 훨씬 강조되어 있습니다 - 예를 들어, "POLARIS" "COMEDY" 같은 곡은 전혀 힙합의 작법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죠. 누구든 사전 정보 없이 이 곡을 듣는다면 인디 싱어송라이터의 작품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만큼 B JYUN은 정말 노래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짜놓은 멜로디는 반주와 조화롭게 어울리며 여기 래퍼로써의 억양이 사이사이 섞여 만드는 감칠맛나는 그루브와 리듬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충분합니다. "SOVISIONARY" 때는 잘 느끼지 못 했던 여유마저 물씬 풍깁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앨범의 길이입니다. 좋은 곡들이 많이 수록되어있지만, 15곡 내내 집중을 시킬 정도는 아닌 거 같습니다. 뒤로 갈수록 차별화되는 트랙이 별로 없다고 느낀 것이 이유인 거 같기도 하고요. B JYUN의 목소리가 좋기 때문에 오토튠이 조금만 들어가도 저는 몰입에 방해가 되더군요. 그리고 어김없이 나오는 저만의 딴지, 문법 안 맞아서 해석하기 어려운 영어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경쾌하게 듣기 좋은 앨범입니다. 조금 더 단촐했다면 자주 들으며 즐겼을 것 같군요. 



(8) Slyme Young - Lonely Together (2020.3.8)


 Slyme Young의 이번 앨범은 우울을 주제로 한 4곡짜리 작은 EP입니다. 앞서 전작을 소개하면서 Slyme Young을 어중간하게 대중성에 걸친 래퍼 중 하나로 소개하였고, 이번 EP도 그런 성향이 있습니다. 우울한 음악이고 트렌드도 있고 하니 우선 이모 힙합의 색깔을 띄고 있는데 생각보다 그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진 않거든요. 뭐 저는 이모 힙합에 약간 거리감을 느껴서 그런지, 조금 더 가벼운 쪽이 좋았습니다. 특히 의도적인지 환경 탓인지 사운드가 어설프게 마감된 이모 힙합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앨범은 여러모로 싱잉 랩과 비트의 요소요소가 깔끔하게 어레인지된 것을 느낍니다. 사실, 이런 사항이 종합된 결과물은 오토튠을 제외하면 인디 락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뭐 듣기 좋으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물론 따라오는 클리셰적인 장치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엄청난 발견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면 또 큰 실망을 안겨주는 앨범이 되긴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9) Ian Ka$h - 20/20 Express (2020.3.10)


 "20/20 Express"는 아주 짧고 굵은 앨범입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이 앨범의 의도가 명확해보입니다 - 신인 래퍼들의 소개죠. 하나 같이 낯선 이름의 피쳐링진들이 참여한 세 곡은, 앨범이 플레이되는 10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귀 아프게 울려대는 둔탁한 808 베이스와 빠르게 몰아치는 비트는 확실히 전작인 "Late Night's EP"와 비교하여 꽤나 대조적이긴 합니다. 참여한 래퍼들도 열심히 스킬을 뽐냅니다 - 가사는 거의 의식의 흐름에 가까우며 소리에 집중한 면이 큽니다. 뚫고 나오는 파워는 무시 못할 수준이긴 하지만 하나 같이 어디에선가 들은 느낌이라는 건 좀 아쉽습니다 (이럴 때마다 Coogie가 대단하다는 걸 느낍니다. 이 스타일 후발 주자들이 다 그와 비슷하게 들리니... - 물론 자신도 카피캣 논란을 피하진 못 했지만;). 랩이나 비트나 순간적인 강렬한 경험에 집중되어있는 앨범이기 때문에 그 의도에 맞게 들어주면 적지 않은 청각적 쾌락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왠지 그 경험의 기억이 오래 남지 않을 것 같은 건 저만 느끼는 것일지요.



(10) JJK -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2020.3.11)


 참으로 오랜만인 JJK 앨범입니다 - 그리 오래된 줄 몰랐는데, 직전 정규였던 "고결한 충돌"이 5년 전 앨범이고, 마지막으로 나온 트리플 싱글도 대략 2년 반 정도 되었더군요. "고결한 충돌" 당시가 그의 아들이 태어나기 직전이었으니 이제 대략 네다섯 살 정도 되었겠네요. 실로, 애아빠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생겨나, 내 삶의 중심을 다른 존재에게 주어야하는 거니까요. 근 몇년 간 JJK가 플레이어보다 '유명 랩 레슨 선생님'의 활동이 더 커보였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앨범을 들어보기 전부터 우려를 낳습니다. 오랫동안 씬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더 이상 젊은 날의 그가 아니기 때문에. 물론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 이는 지난 EP "Alley Cat"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때의 모습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면, 이번 앨범도 예전의 쭉쭉 뻗는 발성 대신 다소 가래 낀듯 탁한 목소리로 채워졌다는 데에 실망할 것입니다 - "일루와"로 모든 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할테죠.


 그럼에도, 저는 이번 앨범은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자연히 "고결한 충돌"이 연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고결한 충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맞지 않게 현란한 플로우로 내달리는 것도 그랬지만, 내용적으로 너무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행히(?) 저도 애아빠가 되었기에 이번 앨범에서 괴리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본작에서도 있을 법한 문제입니다.


 허나 제 의견으로는 이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고결한 충돌" 때보다 세련되어졌음을 느낍니다. 아이가 깨워 아침에 일어나는 하루의 시작부터, 외출 갔다가 돌아와 다음날 아침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곡들이 잘 배열되어있습니다. 시간 뿐만이 아니라 감정의 수순도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드라이브 BGM마저도 카봇이어야하는 웃픈 상황에서부터, 밤이 되면서 찾아오는 갈증, 회의, 고민으로 전환되면서 심각해지는 무드, 그리고 희망이 고갤 드는 마무리까지. 특히 후반부는 비단 자식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의무를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 모두와 공감대가 닿을 구석이 있는 얘기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풀어내는 가사적인 표현도 너무 마음에 듭니다. 주제를 가볍게 다루지도 않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가사가 없도록, 현실적이면서 시적인 가사입니다. 


 귀로만 평가한대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Don Sign이 전곡을 프로듀싱했는데, 안정적인 노선의 붐뱁 비트로 그저 무난무난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주제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을 정도의 감성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JJK의 라임과 플로우 디자인은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특히 라이밍은 단순히 모음으로 맞추는 게 아닌, 발음을 고려치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단어들이 많은게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 예전부터 대단하긴 했죠. 예전부터 왜 랩이 과소평가 받는지 알 수 없는 래퍼였습니다. 한편 중간중간 아내나 꿈 속의 아들 파트는 피치 조정해서 한 건 줄 알았는데 크레딧을 보니 다른 래퍼더군요. 이런 장치도 듣는 재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데 기여했던 거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JJK가 "Makes the Way"나 "360도" 같은 걸 앞으로 못 낸다면 그건 아쉬운 점이 맞습니다만, 적어도 이번 앨범을 통해 나름 건재한 랩 실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증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모습으로써의 그를 포용한다면 본작이 가지고 있는 울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0-03-22 22:00:34

삼키기 힘든 알약... 멋진 표현입니다!

2020-03-22 22:06:34

반무 앨범 정말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희라는 정말...

저는 싸클에서 이 곡을 즐겨듣습니다. 02년생인걸로 아는데 실로 미친 실력...

WR
2020-03-22 22:32:22

안 그래도 사클 찾는데 hira로 검색하니까 안 나와서 포기하고 있었다는... 감사합니다ㅋㅋ

2020-03-23 08:59:03

최고는 딱 한개고 최악은 너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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