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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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18:01:0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하루 하나씩 인스타에 올리면서 좀 편했는데 이제 다시 속도를 올려야할 것 같습니다

1, 2월은 뮤지션들이 쉬더니 3월부터 달리기 시작하는군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Taeb2 - Love Box (2020.2.6)


 Taeb2는 이제 막 20대가 된 어린 나이의 뮤지션입니다 - 유튜브 계정을 디깅해보면 고등래퍼 3 당시 지원 영상도 올라와있습니다. 음악한지는 2년 차가 되어가는 듯하나 사클 및 음원 사이트에 작업물들은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이번 앨범은 그의 두 번째 EP입니다. 사족이지만 아는 비트메이커 중에 TaeB가 있어 이름을 처음 봤을 때 동일인물인가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의 유튜브 계정에는 본 앨범의 프리뷰라면서 앨범에 대한 간단한 셀프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앨범은 '사랑'이라는 테마를 잡고 전곡을 채운 앨범입니다. 담겨있는 노래들이 상당히 산뜻하며, 이 위로 얹혀지는 Taeb2의 목소리는 시원하고 청량감 넘치게 달리는 느낌입니다. 비단 본작 뿐만 아니라 다른 노래들을 들어봐도 멜로디 짜는 감각이 나쁘지 않습니다. 비트부터가 꽤 감각적인 걸로 수록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음악들이 생동감 넘치게 신나게 듣기 좋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매우 대중적인 코드 내에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앨범을 즐기려면 이 특유의 가요스러운 분위기를 즐길 줄 알아야합니다. 사실 예전 노래를 들어보면 본인의 얘기를 풀어내는 경우도 꽤 있었지만, 본작이 하필(?) 사랑 노래만 담기로 한 관계로 (재밌게도 유튜브의 셀프 프리뷰에서도 이 때문에 좀 힘들었다고...) 지루함을 안겨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쳐다보자면 비슷한 바이브의 비트에 비슷한 코드, 심지어 피쳐링진 1명씩 두고 벌스를 주고 받는 방식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근거가 있는 얘깁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각 노래가 어떤 상황에 쓰여야하는지를 풀이한 앨범 자켓 후면이 있지만, 실제로 가사를 보면 '너의 모든 것이 좋아'라는 얘기를 되풀이하기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 그래도 주제 때문에 반복에 빠질 위험이 컸는데 이를 빠져나올만한 역량이 덜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외에 조금 사소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건, 목소리가 좀 맥아리 없는 느낌이랄지. 발성이 약해서인지, 믹싱의 실수인지 모르겠는데, 신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엔 목소리가 좀 얇고 약해서 어색할 때가 있고, 오토튠 이펙트에 지나치게 먹히는 감이 있었습니다 (피쳐링진들이 모두 오토튠을 안 써서 좀 더 대비되는게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 첫 인상은, 래퍼에게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노래 연습을 조금 더 했으면 더 좋은 노래가 나오겠다'였습니다. 그리고 타이트하게 플로우를 타는 걸 자주 넣는데, 왜인지 모르게 글자를 너무 많이 우겨넣는 느낌이 가끔 들었습니다. 뭔가 박자가 쳐지는 느낌? 이건 저만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건지 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전작 "Blue: That's Me Be"나 본작에서 보여준 멜로디 메이킹 감각은 인정할만 한 거 같습니다. 셀프 인터뷰 영상에선 앞으로는 앨범보다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더 활동할 거 같다고 하니 이 시리즈에서 다시 언급하려면 좀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좋은 활동해줬으면 좋겠네요. P.S. 1번 트랙 제목부터 문법이 틀려서 맞춤법충은 울었습니다.



(2) FELIX DA RAIN - AI SURGERY (2020.2.12)


 FELIX DA RAIN은 저번 앨범 "SAFE ZONE"으로 처음 접하고, 인스타를 통해 소개도 했던 아티스트입니다. 상당한 작업량과 넓은 스펙트럼에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되었고, 그때 작업 중이라던 첫 정규가 이렇게 나왔더군요.


 듣기 전에 앨범의 트랙리스트부터 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앨범은 FELIX DA RAIN의 솔로 앨범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SOAOA, 세네글자, BFex, r00mb0y 등 그의 지인들 (아마 Pastel, 혹은 Pastelinthehouse란 이름의 크루 같군요)이 모여 참여한 컴필레이션 같은 형태입니다. 수록곡 중 두 곡은 기존 발표 곡을 단체곡 리믹스한 것이고, 13번 트랙은 FELIX DA RAIN 다음 앨범에 대한 예고편, 14번 트랙은 FELIX DA RAIN이 비트만 찍은 곡입니다. 즉, 앨범을 컴필레이션을 듣는 느낌으로 들어야 그나마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badmovie (skit)"은 음원 제공이 안 되어있는데, 그렇다고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네요).


 이번 앨범은 과거 EP들에 비교해서 훨씬 넓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주 장르인, 경쾌한 트랩 비트 위 오토튠 싱잉이 주축을 이루지만, 곡에 따라선 하드코어해지기도 하고, 이모 힙합의 성향을 띄기도 합니다. 나름 FELIX DA RAIN의 포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너무나도 왔다갔다 하는 나머지 주축이 없다시피 하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이 앨범은 참여진이 너무 많습니다. FELIX DA RAIN을 포함한 멤버들은 곡 분위기에 따라 기꺼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었고, 요즘 스트리밍 사이트 가사란에는 누구 벌스인지 표기가 따로 안 되어있는 관계로 앨범을 몇 번을 돌려도 누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뭘 잘하는지 파악 불가한 사태가 벌어지고 맙니다. 멤버들 대부분이 개성이 너무 약하고 다른 아티스트를, 혹은 서로를 닮아있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가사 중에 '쓰다만 네 벌스 갖다 베꼈네 키드밀리' 이런 벌스가 있는데, 이런 분들이 "LAN!" 같은 곡을 만들면 어째요...). 만약 FELIX DA RAIN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차라리 그전 EP들을 듣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 느껴지고, 사실 앨범 후반부로 가면서 뭔가 총체적으로 열악해지는 사운드도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거 같은데 뒤로 갈 수록 랩이나 비트나 튠이나 어수선했던 건 저뿐이었을까요. 다음 앨범 선공개라는 "200102"가 제일 깔끔했던 트랙인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넓은 스펙트럼은 여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증명하길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꾸준한 작업과 결과물을 통한 야망이 엿보이지만, 조금 더 효과적으로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 같네요.



(3) 100KGOLD - APOLOGY (2020.2.21)


 100KGOLD는 Jay Co Bees 크루 소속의 뮤지션 중 한 명입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이름을 본 건 같은 Jay Co Bees 소속인 부레의 앨범에서였고, 그 후 통편집되었던 거 같지만 쇼미더머니 8에 이름이 뜨는 걸 보긴 봤네요. 음악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2017년부터 음악을 해왔습니다. 아직 EP나 LP 같은 앨범 단위의 작업물은 없는 듯하고, "APOLOGY"는 세 곡 짜리 맥시 싱글입니다.


 예전 곡이나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100KGOLD의 목소리가 먼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상당히 두껍고 힘을 준 듯한 목소리에 오토튠을 적용하고 겹쳐놓으니 노래 전체에 중후한 무게감이 깔립니다. 과거 곡들은 이런 특징과 리듬감 넘치는 비트 때문에 레게 같기도 했는데 이번 앨범은 사랑 노래들이라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100KGOLD의 목소리는 그대로고, 특히 본인 스타일에 맞춰 선택된 찐한 비트 위에 탑 라인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어울립니다. 구분이 의미 없어지고는 있지만, 살짝 R&B 가수의 싱잉 랩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에 Kimchidope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오토튠을 이용하여 연출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뜩 힘이 들어간 듯한 목소리가 부담스럽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분들도 있을 겁니다 - 아무래도 또 느릿한 노래들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피쳐링진들이 잘 어우러져 들어가서 큰 불편은 없었고, 특히 마지막 "Tear You Down"에서 아예 그 느낌만으로 노래 전체를 끌고 가는 듯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어쨌든 다음 앨범이 나오면 들어보고픈 호기심이 일게 만들 앨범, "APOLOGY"였습니다.



(4) Walter - Rose Garden II (2020.2.24)


 두 달만에 2편으로써 찾아온 Walter의 이모 힙합 트리플 싱글 "Rose Garden II"입니다. 사족이지만 재밌게도, 이번에도 2번 트랙에는 콸라가 등장합니다 (yovng trucker이긴 하지만). 전작의 음침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계승하면서, 본작은 전작보다 조금 더 고저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Burn to Ashes"가 딱 평균 정도의 분위기라면, 조금 더 업되어있는 "Life"와, 아예 바닥까지 깔아뭉갠 "Rainy Season"으로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비슷한 곡 세 곡으로 느껴졌던 전 앨범과 달리 이번에는 듣는 재미를 느끼는 동시 Walter의 스펙트럼을 알아가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전작을 좋게 들은 분들은 II를 더 좋게 듣지 않았을까요. 그나저나 매번 느끼지만 오사마리는 어떻게 솔로 활동할 때 모습이 팀 활동 때랑 이리도 다른지;



(5) RAVI - EL DORADO (2020.2.24)


 VIXX의 '랩하는 걔'에서, 각종 믹테와 EP 끝에 크루까지 만들어버리더니 끝내 첫 정규까지 만들어버린 RAVI입니다. 앨범을 듣기 전에 '오토튠이 부담스럽다' '귀가 피곤하다'란 반응을 보았고, 그걸 듣고 RAVI가 이번 앨범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딱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 그전과 똑같이 만들었다는 의미죠.


 RAVI는 참 화려한 걸 좋아합니다. 비트는 우주전쟁 급으로 격렬하고, 이 위에 RAVI의 랩은 여전히 몇 겹으로 겹친 듯한 오토튠과 지뢰밭 같은 추임새, 그리고 폭주하는 발음과 타이트한 플로우로 채워져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피쳐링진까지 삐까뻔쩍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단점들은 여전합니다. 적당선을 모르고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이펙트와 애드립이 앨범을 전체적으로 채우고 있으며, 아마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라할만한 불협화음의 문제도 여전합니다. 기본적으로 싱잉 랩을 기본으로 하지만 RAVI의 멜로디는 은근히 불협화음이 잘 일어납니다 - 오히려 이런 부분은 아이돌 출신으로써 더 안 그럴거 같은데 말이죠. 의도한건지는 몰라도, 대개는 신선한 불협화음이 아니라 그냥 곡을 고려하지 않고 멜로디 한두 음씩 올렸다 내렸다하며 불렀단 인상이 큽니다.


 그래도 RAVI를 계속 들어왔던 저로써는 이번 앨범의 퍼포먼스는 이전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째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쉴드를 치게 되는 거 같지만, 화음 문제는 예전보단 '그나마' 해결되어서 멜로디가 듣기 좋은 곡들도 좀 있습니다. 그의 랩이 피곤한 건 맞는데, 참 다행인 것은 총 11곡 중 인트로 한 곡만 빼고 전부 피쳐링진이 존재하며, 피쳐링진들이 전부 퀄리티 있는 벌스를 취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앨범, 듣는 재미 꽤 있습니다. 처음 듣는 분들이 겪을 혼란은 모두 예상 가며,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댈 순 없어도 참고 계속 RAVI 음악을 듣다보면 저처럼 '괜찮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RAVI는 정규 1집까지 큰 틀은 계속 똑같은 것으로 유지해왔고, 작게나마 보여왔던 변화는 대개는 그 틀을 공고히 만드는 방향이었습니다. 이제 RAVI 보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깨끗하게 이것이 RAVI의 스타일이라 인정하는게 좋겠습니다 - 사실 여기서 오토튠이 확 빠져서 담백해지면 되게 어색할 거 같긴 하네요. 그리고 솔직히 가사나 일부 플로우는 그냥 '랩 지망생' 수준을 넘어섰다고 느껴지긴 합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는 RAVI 앨범은 좀 해탈 모드로 듣고, GTCK가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지를 기대해봅니다.



(6) AP - 2017 (2020.2.24)


 Nafla의 초창기 크루로 잘 알려진 42 Crew의 멤버였던 AP의 앨범입니다. 동시에, 비트메이커 Chillo와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제작되어, Chillo 단독 프로듀싱으로 이루어져있기도 합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스트리밍 사이트에 AP를 검색하면 두 명이 나오는데, 활동도 비슷한 시기에 랩 장르인 것도 같아서 좀 헷갈리지만 어쨌든 둘은 이름만 같은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무난무난한 앨범입니다. 이모 힙합을 살짝 섞은 한국 트랩 앨범이란 표현을 생각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그 느낌의 오토튠 싱잉 랩이죠. Chillo의 비트도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져있고 AP의 퍼포먼스도 크게 흠잡을 데는 없습니다. 다만 뭔가 임팩트를 주는 것은 어려워보입니다. 톤이 워낙 무난무난한 터라, "전화" "이모지" 같은 쳐지는 곡은 좀 따분하기도 했고요, 예상되는 일이긴 했겠지만 Loopy, Nafla, Doup'Doug, Chillin Homie 등의 피쳐링진들이 대부분 곡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만큼 탁 튀는 매력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겁니다. 장르 팬에게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앨범 같습니다. 다만 늘 그 2%, 부족한 2%가 문제네요.



(7) Chamane - 234 (2020.2.26)


 일명 원조 '더 콰이엇 키드'로, 쇼미더머니 시즌 3 이후로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된 Chamane은 GVOY 설립으로 박차를 가하려는 찰나 개인적인 사정과 군복무로 오랜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234"는 아주 오랜만에 그 공백기를 마치고 나온 그의 컴백작입니다. Kid Wine과 Don Sign이 비트를 제공했으며, 마지막 트랙 가사를 보면 FRML 크루에 합류한 듯합니다.


 FRML 크루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그의 스타일 변화에 대해서도 약간의 힌트를 제공합니다. 본래 깔끔한 붐뱁 스타일이었던 그도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오토튠 싱잉 랩을 스타일에 도입했고, 기존 스타일과 대략 1대1의 비율로 앨범에 녹아있습니다 - 크루 멤버에 빗대보면 부현석 + Koreangroove... 정도랄까요. 냉정하게 말해, 제가 기억하는 Chamane은 나쁘지 않은 하드웨어 (톤, 발성...)를 가졌지만 귀를 잡아끄는 매력이 다소 부족한 밋밋한 캐릭터였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랩을 놓고 따져보자면 그 약점이 크게 바뀌어보이진 않지만 ("2AM in Seoul"이 이런 단점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싱잉 랩을 도입한 것은 그래도 밋밋함을 덜어주는 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이 이상의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앨범입니다. 사실 저는 오토튠 싱잉 랩을 도입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가사 내용까지 요즘의 래퍼들과 비슷해진 데 실망했습니다. 또한, 튠이 들어가서 듣는 재미가 늘었을지라도 아직 박자와 톤을 재밌게 운용하는 것에 부족해보입니다 (그게 '밋밋함'으로 요약이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그저 Chamane이 돌아왔구나, 이 정도의 의미 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크루와 함께 제2의 출발을 하는 그가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8) Long Drive - EP.01 (2020.2.26)


 Long Drive라는 이름을 기억에 집어넣게 된 건 이 앨범이 처음이지만, 사실 이들은 씬에서 은근 많은 크레딧을 남겨온 이들입니다. 최석민, 김동환으로 이루어진 2인조 팀으로, 2016년 우태운 싱글 "내꺼 빼껴"부터 Crucial Star, Donutman, Chamane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한 바 있습니다. 덧붙여 INCREDIVLE과 "PlayBall"이란 케이팝 프로듀싱 팀을 만들어 P.O. 및 블락비 바스타즈 앨범에 곡을 취입하기도 했죠. 또 케이팝스타 시즌 3과 5에 출연한 정진우와도 여러 인연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 앨범에도 참여했죠).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Long Drive의 이름으로 처음 나오는 작업물인 "EP.01"의 음악들은 살짝 Groovy Room을 연상시킵니다. 참여진 목록만 보고도 흥미가 당기는 피쳐링진 말고도, 전통적인 힙합적인 바이브보다는 팝 코드가 더 많이 섞여있단 점, 그리고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다양한 신스 악기의 향연 등이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마지막 두 트랙은 비교적 심플하지만, 나머지 곡들은 정말 아기자기하게 여러 악기들이 채워져있습니다. 이 악기들이 전후좌우에 배치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만드는 하모니는 상당히 인상 깊습니다. 이들이 또 단순한 루핑이 아니라 곡의 진행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것까지, 그저 스타일로써가 아니라 실력적으로도 Groovy Room이 연상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단점이라고 하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런 악기들은 대부분 고음역대가 깎여있고 저음역대로 승부 보는 느낌입니다. 뭉툭하게 깎인 피아노 소리와 신스가 포근함을 가진 독특한 무드를 자아내는 건 맞는데, 일부 곡들은 저음으로 너무 치우쳐있다보니 보컬에 쉽게 묻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의 열악한 청취 환경에서는 때로는 아예 비트 볼륨을 너무 줄여서 믹싱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 이어폰으로 듣고 나서야 아 이런 소리가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제 열악한 환경 탓이니 단점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same thang"처럼 보컬의 밀도가 큰 경우는 조금 아쉽습니다. 화려하게 차린 진수성찬 같은 비트가 의도만큼 빛을 발하지 못하고 낭비되는 느낌? 그리고 피쳐링진들의 경우 흥미를 끈 것만큼의 멋진 퍼포먼스는 딱히 기억에 안 남네요.


 듣기로는 이 앨범을 시작으로 올해 여러 장의 싱글과 EP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앨범으로 좋은 첫 인상을 가져가고, 앞으로 Long Drive만의 매력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9) 넋업샨 & Beautiful Disco - Shine (2020.2.27)


 깜짝 공개된 넋업샨과, SuperFreak의 비트메이커 Beautiful Disco의 합작 EP입니다. 6곡으로 되어있지만 이중 홀수 번째 트랙은 1분 남짓의 짧은 인터루드 형식 인스트루멘탈이라 단촐한 느낌의 앨범이죠.


 이때까지 Beautiful Disco는 다양한 분위기의 비트를 찍었고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따스하고 감성적인 바이브가 담겨있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와중에도 독특한 밀고 당기는 리듬이 담겨있어 비범한 구석이 조금이나마 있습니다. 이 위에 깔리는 넋업샨의 랩은 평소대로의 우직함을 보여줍니다. 가사적으로 요 몇 년 사이 냈던 것 중 제일 시적인 표현들이 담겨있어 저 옛날 Napow 시절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굳이 단점을 꼽아보자면, 비트가 부드럽게 타기가 좀 어려운 형태의 리듬이라 편하게 그루브 타기 좋은 곡들은 아니었다는 점. 넋업샨은 대체로 능숙하게 이를 타지만 간혹 몰입이 깨지는 부분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빨라지는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따스함 때문인지 올드 리스너로써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 Soulman의 목소리도 참 오랜만에 듣는 거 같네요. 다만 단순히 넋업샨의 옛날 랩 느낌은 아니고, Beautiful Disco의 비트 덕분에 전에 있던 무엇과도 완벽하게 닮지 않은 새로운 시너지가 이는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부분은 없어서 가볍게 듣는 분들은 크게 인상 깊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많이 반가워하며 들은 앨범이었습니다. 



(10) Tommy Clazzy - The Gold in Journal (2020.2.28)


 Tommy Clazzy는 작년 "META FICTION"을 발표했던 TOMSSON과 비트메이커 Lucid Beats가 결성한 팀입니다. Lucid Beats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2018년 경부터 활동을 시작, Bdaal과 함께 "Boominear"란 팀으로 싱글을 낸 적도 있습니다 (이 "Boominear"는 Bdaal과 객원 멤버 1인 구성으로 가는 팀 같은데, 사실 작업물이 많지 않아서 2013년 Kloud 9th와 낸 앨범을 제외하면 Bdaal + Lucid Beats 구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TMI로 TOMSSON이 Boominear 곡에 피쳐링한 적은 있지만 이전까지 TOMSSON의 앨범에 Lucid Beats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즉, 이번 앨범이 둘의 첫 완전한 콜라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종이와 펜으로 작사, LP판을 이용한 샘플링이라는 아날로그 작업을 고수했다는 소개글에 걸맞게, 앨범은 90년대 골든 에라 힙합 (혹은 2000년대 중반 한국 힙합?)의 향수를 풍깁니다. Lucid Beats의 비트는 인트로나 "명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고전적인 샘플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위에서 TOMSSON이 뱉어내는 붐뱁 냄새 진한 랩은 좋은 케미를 이룹니다. 개인적으로, TOMSSON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알차고 단단한 앨범이었다 생각합니다. 아주 느슨한 연상이지만 Huck P가 낸 앨범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어요. 곡에 담긴 메세지들도 좋습니다. 보너스 트랙인 하드코어 랩 트랙 "Tommy Gun Mode"를 제외하면 다양한 소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담겨있는데 너무 어렵지도 않고 무리하지 않게 잘 풀어낸게 보입니다.


 이런 '골든 에라', 또는 한국 힙합 팬이라면 Soul Company나 Big Deal의 전성기 당시 음악에 공감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라고 권유해볼만한 것 같습니다. 허나, 단점 역시 뚜렷합니다. TOMSSON의 전 앨범과 비교해봐도 랩이 비교적 얌전한 편인데, 이는 앨범 컨셉에 맞추고자 한 것이었겠지만 다른 때보다 훨씬 플로우와 톤이 일정 틀에 갇혀있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박자 - 기발하다 할만한 리듬 패턴이 거의 없습니다. 딱, 한 마디를 1/16으로 나누어서 그 16자리에 정확하게 글자가 일치해있는 느낌이랄까요.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이어지는 톤과 리듬 때문에, 후렴도 엥간해선 벌스에 비해 잘 튀지 않고 곡 진행을 루즈하게 만듭니다. 비트부터 다른 느낌이었던 "명장면"이나, 컨셉 방향이 달랐던 "Tommy Gun Mode"를 제외하면 이러한 문제는 앨범 전체에 깔려있습니다.


 우선 제가 사랑하는 붐뱁에 충실한 앨범이 오랜만에 나와서 반갑습니다. 래퍼와 비트메이커 합이 상당히 잘 맞는 팀 같네요. 하지만 요즘 리스너들에게 이 시기 붐뱁을 들려줬을 때 으레 언급되는 단점 (주로 '따분함'으로 귀결되는)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게 붐뱁이란 장르의 한계는 아닌데 말이죠. 앨범 주제 때문에 그랬다면, 다음에 "Tommy Gun Mode" 같은 선상에서 앨범이 뽑힌다면 더욱 듣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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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3-06 18:47:23

Tommy Clazzy 들어봐야겠네요

2020-03-06 19:01:58

차메인은 저도 실망이었고
탐 클래지는 바로 들어보러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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