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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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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22:55:1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오늘의 잡담: 봄이여 오라. + 이번 달 돈이 너무 많이 깨져서 더 춥네요...

후반부에 트랩 앨범만 너무 연이어 들었더니 많이 피곤해졌습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Ourealgoat - Gonna Go Far, Kid (2020.2.7)


 "Raw Sh!t Vol.1" 감상 후기를 쓰고 끝 마무리를 반은 습관적으로 'Ourealgoat의 솔로 앨범은 어떨지 들어봐야겠네요~' 했는데, 포스팅을 한지 하루만에 나와버린 솔로 앨범!-_- 살짝 민망했지만 어쨌든 바로 이어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Songwaygoya가 그랬듯 Ourealgoat도 솔로 앨범에선 좀 업된 느낌입니다 (랩에 대해서 썼지만 비트도 마찬가지).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이어나갔던 "Raw Sh!t"에 비해서 여기서 Ourealgoat는 톤을 세게, 그리고 높게 맞춘 듯합니다. 때문에 전작에 비해 가사가 의외로 조금 더 분명하게 들리고, 지루할 거라는 우려도 약간은 불식시켜줍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닙니다. 앨범에 실린 트랙들은 본인 파트만 따지면 거의 2분 미만의 짧은 트랙들인데, 훅이 상당히 긴 데다 솔로곡의 경우 훅-벌스-훅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때문에 훅의 비중이 곡에서 크고, 벌스와 느낌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그냥 고저의 변화 없이 곡을 듣다가 어느샌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좀 있었습니다. 요즘 트랩곡들의 구성이 이런 경우가 많으니 그렇다 칠 수 있겠지만, Ourealgoat의 플로우에선 벌스와 훅이 평탄하게 이어지는 건 다른 래퍼들보다 더 단점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피쳐링진이 있는 곡에선 훅을 맡은 그가 존재감이 별로 없어서 벌스를 했던가? 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 Songwaygoya와의 케미가 좋았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어쨌든 매니악한 캐릭터 치고는 여전히 매력은 있어보이는데... 양날의 검이라는 것도 분명해지는 거 같군요. 매력을 활용한 재밌는 음악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2) BRWN - To HER (2020.2.8)


 가만 보면 BRWN도 상당히 부지런한 아티스트로군요. 작년만 해도 4장의 EP와 두 장의 싱글을 발표했고, 마지막 EP "The Black Dessert 2"로부터 3개월만에 4곡 짜리 작은 EP를 들고서 돌아왔으니까요. 앨범을 틀면 익숙한 BRWN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바이브레이션이 시작됩니다. 첫 트랙까지는 기존에 알던 BRWN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그렇게 감상을 하는 찰나, "내가"가 나오면서는 놀랐습니다. BRWN이 평소에 하지 않았던, 팝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대중적인 멜로디 전개와 바이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 "The Black Dessert" 때가 연상되지만 더 나아간 듯). 기존의 목소리 특징은 유지하되 완전히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 들으면서 '이런 것도 하는구나'했습니다ㅎㅎ "내가"만한 '도전'은 없지만 나머지 곡들도 어느 정도, 평소에 쓰지 않던 감정 표현이나 멜로디 전개가 있어 BRWN을 들어오던 분들이라면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RWN의 난해할 수 있는 보컬로 대중적인 멜로디를 듣는다는 것 자체로 재밌는 경험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나 "cozy"를 듣고 확실히 다른 노선을 가는 아티스트이구나 싶긴 했습니다. 즉슨,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절절한 감정 몰입과 힘찬 고음이, 가냘프게 떨리는 BRWN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르게 힘겹게 들려 어색했거든요 ("cozy"에서 절규하는 듯한 발성은 그래도 나쁘진 않았는데). 반대로 "내가"를 제외하면 비트는 전작들에 비해 좀 더 미니멀하게 짜인 면이 있어서 방향성이 일치하고 있는 것 같진 않네요 - 감상에 있어 포인트라면 포인트고, 옥의 티라면 티입니다. 저는 "또"는 좀 너무 간 거 같단 생각은 들었습니다ㅎ


 생각해보면 BRWN은 앨범마다 작은 도전을 항상 해왔습니다. 그의 스타일 특징이 워낙 뚜렷하다보니 사소해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해당 앨범에서만 시도해본 것들이 있었죠. "To HER"도 그런 부분을 중심으로 들어보면 재밌을 텐데, 뭐 워낙에 호불호가 갈릴 보컬이고 윗 문단에서 말한 특징과 결부되어 BRWN의 목소리를 단점이라 느끼는 사람은 더 단점이라 느낄 수도 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전 나름 재밌게 들었네요. 다음 앨범에서의 도전을 기다려보겠습니다.



(3) Untell - 나의 (2020.2.9)


 Untell의 세 번째 믹스테입 "나의"입니다. 이 앨범은 특이하게도 최초의 기억이라는 5살부터 현재의 나이 20살까지, 각 나이에 1-2트랙씩 배정을 한 후 보너스 트랙 두 곡을 합쳐 21곡의 구성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나의"를 듣는 사람은 자연스레 Untell의 삶을 초반부터 현재까지 같이 거슬러 오르게 되죠.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매우 충실한 앨범입니다. 감정은 딱 필요한만큼만 들어가있고 그 외엔 상당히 담백합니다. 예를 들어 첫 트랙인 "첫 기억"에는 어머니의 자살 기도라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소재로 다뤄지지만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차분합니다. "첫사랑" "힙합" 같은 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래퍼와 "Do U Still Wanna Lie" 등의 전작을 고려하면 스킬풀한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터라 이런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스타일의 중추는 유지하면서, 목적을 위해 유연하게 변형시키는 재능이 범상치 않군요. 


 오직 청각적 쾌감이란 면에서만 보았을 때 흥겹게 한 번 주행하기는 조금 어려운 앨범입니다. 개중에 임팩트 있는 곡이 있지만 대개는 비트부터 편안한 멜로디의 반복이 많고, 톤과 리듬이 평탄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장광설처럼 다가올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옛날 기억이 흐릿해서 전달에 초점을 두기 때문인지) 대략 "친구 박중권"을 기준으로 앞부분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 1에서 3번 트랙 정도까지는 그냥 들으면 마치 비트에 변주가 있을뿐인 한 곡처럼 느껴질 정도에요. 목적이 뚜렷했기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목적의 달성 면에서는 수준급으로 잘 되었다 생각해요. 위에서 스타일을 유연하게 변형시켰다는 말을 했습니다. 플로우만 그런 것도 아니고, 원래 한영혼용을 즐겨쓰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 (옛날 벌스를 갖다쓴 "18살의 나와"가 좋은 예시죠) 이번 앨범은 영어의 비중이 상당히 낮습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은 흠잡을 데 없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함에 그치지 않고 깊이 있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주제를 전개하는 모습은 모범 답안에 가깝습니다. 정밀하게 묘사되는 가족사와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들을 듣고 있다보면 Untell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죠.


 "일탈"이나 "힙합" 같은 경우는 좀 더 힘을 줬어도 되지 않나 싶어요. 듣는 포인트가 적은 앨범이다보니 이런 부분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군요. 뭐, 제가 생각하는 믹스테입의 의미에 오랜만에 잘 부합하는 앨범인 것도 같습니다 - 멋으로 승부하다가 잠시 옆으로 비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스무살이라는 숫자에 어울리는 성숙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4) RELOAD - ALT (2020.2.9)


 DJ 겸 프로듀서라는 RELOAD의 첫 앨범입니다. C Jamm의 백업 DJ라고도 들었지만 이외의 유용한 정보는 잘 못 찾았습니다. 곡마다 두세 명씩의 래퍼를 피쳐링으로 참여시킨 5곡짜리 EP로, EDM 스타일로 찍은 트랩 비트라고 하면 적당할까요? 화려하게 난무하는 전자음 위로 대부분의 래퍼가 타이트한 랩으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AVIN의 앨범이 잠깐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 단순히 장르 면에서요.


 가볍고 신나게 즐기기 적당한 비트들이긴 한데, 아티스트 본인이 의도한 것은 이것보다 더 하드한 앨범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운드 얘기할 때마다 딴 소리하는 걸까봐 불안하지만 뭔가 원래 나와야하는 소리보다 많이 눌려있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피쳐링 랩들이 대부분 비슷한 스타일의 타이트한 속사포라 얼핏 듣기에는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차별점이 있는 "Farewell"이 제일 재밌게 들었던 거 같네요 - HunnyHunna의 바뀐 스타일 듣는 재미도 있었고. "SHOONG"도 훅 때문에은근히 말이 나왔던 거 같은데 마찬가지로 타이트한 랩 사이에서 분위기 환기 시켜주는 역할은 적절했다 생각합니다 - 어차피 무대에선 이런 훅이 먹힐 거에요ㅋㅋ


 제가 제작 의도를 오해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첫 트랙을 들으며 기대했던 뻥 뚫리는 효과가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말마따나 가볍게 듣기엔 문제 없는 앨범이었습니다.



(5) Uneducated Kid - 선택받은 소년: The Chosen One (2020.2.9)


 어쩌면 예상했던 대로, Uneducated Kid의 첫 정규 앨범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그것도 자세히 보면 부정적인 의견이 조금 더 우세해보입니다. 대략 1년 전 "Hood Star"가 평단과 리스너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전성기를 이끌어갔던 것과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군요.


 실은 Superbee와 만든 "Catch Me If You Can" 때부터 이런 사태는 예견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감상평에서도 말했지만 Uneducated Kid의 성공은 대단한 랩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허세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기믹이 신선하게 작용하여 듣는 이들의 뇌리에 박혔던 탓이고, 랩은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단 이런 컨셉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 그런 컨셉의 후발 주자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신선함이 퇴색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원조를 뛰어넘기도 했죠.


 큰 성공이 있은 후 팬들은 언제나 본질은 유지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어주길 바랍니다. 소소했던 생존 신고 몇 차례를 제외하면 비교적 조용했던 Uneducated Kid의 컴백에 대해 팬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뻔뻔함은 그대로, 랩 스킬은 두 배로 키워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두 가지만 놓고 보자면 이번 앨범에서 그의 뻔뻔함은 줄고 랩 스킬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약을 팔고, 검은 조직과의 연루를 주장하던 황당함이 이번에는 평범한 머니 스웩으로 대부분 대체되었습니다. 가사는 개인적으로 해석을 하면서 보았던 낯익은 표현들이 차용되있거나, 왠지 라임 찾다가 끼워맞추려고 만든듯한 1차원적인 비유들이 많습니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Uneducated Kid가 쓴 신선한 펀치라인의 예를 들며 (예: '제한 속도는 안 지켜 벌금을 내면 되거든' 최근에 과속 벌금 낸 입장에서 상당히 와닿던..) 반박하고, 재밌는 가사들이 사이사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한 곡당 타율이 상당히 낮아서 전체적인 의견을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랩에 있어, 탑 라인은 이때껏 쓰던 것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거의 같은 박자로 마디마다 채워서 뱉는 (+추임새 한번) 플로우 역시 이제는 뻔하며, 전작의 "Money Holic" "실미도" 같은 파워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ㅡ 그 파워가 그의 기믹을 더욱 빛나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Don't Talk" 같은걸 반례로 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리듬 패턴은 기본 방식에서 속도만 빨라졌다 생각하며 아무튼 힘은 채 못 닿는 느낌). 마지막으로 "Hood Star"에서 보여준 다채로움도 이번엔 약했습니다. 결국 소재나 음악이나 색깔이나 한 가지로 통일되버린 채 기존의 것을 재활용한데 그친 앨범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질리 만무했죠.


 그렇다고 아예 망작이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순 없습니다. 저는 Uneducated Kid의 지난 두 장의 EP와 본작이 어찌 보면 그때그때의 본인 위치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작에선 세상 무서울 것 없어진 벼락부자가 본작에선 세상을 어느 정도 알게된 그냥 부자(...)로 변해 노래를 부른다고 보면 이번 앨범에 담긴 모습은 일종의 '성숙'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랩도 적어도 기존의 틀 안에서는 더욱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트에 대해선 찬사를 보내고 있고 저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모 힙합 트렌드 때문에 몽환적인 비트만 듣다가 이런 웅장하고 꽉찬 비트와 사운드를 들으니 시원하더군요.


 왠지, Uneducated Kid를 본작으로 처음 접할 경우 이 앨범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본작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실망했던 사람들이 실망한 이유는 과거의 벽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역으로, Uneducated Kid도 변한 씬의 상황에 맞게 좀 더 앞으로 나가야했는데 제자리에 머무른 것을 잘못이라 할 수도 있겠죠.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번 앨범은 전작만큼의 임팩트는 없지만, 무작정 폄하를 받는데는 반대하고 싶네요.



(6) Kidk Kidk - Kidk Kidk From The Future (2020.2.10)


 한달 반에 나온 Kidk Kidk의 새 앨범입니다. 제목이 유사한걸 보니 전작과는 연작 느낌도 있군요. 기본적인 스타일은 같지만 방향성은 "Underground"와는 대비되는 면이 있습니다. 듣기 편한 싱잉 랩의 비중이 꽤 되었던 "Undergeound"와 달리 이번 앨범은 좀 더 하드합니다. 때문에 플로우의 타이트함은 비슷하지만 이번 앨범 수록곡들이 더 타이트하게 여겨지는거 같습니다. 주제 면에서도 머니 스웩이 더 강화되어 자기 과시가 강해졌습니다. 차이는 이 정도고, Kidk Kidk의 디스코그래피로써 새로운 느낌은 크게는 없습니다. 전작의 싱잉 랩보다도 더 전형적이다보니 그냥 전체적으론 '그렇구나'하고 넘어가게 되는거 같네요. 이제 Kidk Kidk의 앨범도 세 장 째 듣게 되는건데, 알면 알아갈수록 눈에 띄는게 별로 없는건 안타깝군요.



(7) kumira - when we hurt (2019.2.10)


 kumira는 2018년부터 곡을 발표해온 R&B 보컬입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아티스트이지만 사운드클라우드에서는 만 명 넘는 팔로워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뮤지션이죠. 최신작인 "when we hurt"는 작년 8월에 나온 "When I met you"의 후속작을 겸하는 작품으로, 제목에서 보다시피 전작은 이제 막 만난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본작은 헤어지는 연인의 아픔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즘 R&B 신인들이 그렇듯, kumira의 음악도 매우 감각적입니다. 비트 초이스도 좋지만 탑 라인을 만들고 또 쌓는 능력이 출중해보입니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 가는 가사에 칭찬을 보내고 있군요. 이 정도만 되어도 사랑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는 충분하겠죠 (자꾸 '젊은 사람'이란 표현이 나오려고 해서 문제...;). 그런 센스에 집중해서 듣는다면 이번 앨범 뿐만 아니라 kumira의 디스코그래피를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찝찝한 구석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kumira의 보컬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여, 쭉 뻗어가는 느낌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량감을 받을만한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Love Song pt.2"의 후렴 부분 같은 데서는 섬세한 컨트롤이 완전하진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사실 컨트롤보다 튜닝의 문제인지도). 이를테면 고전적인 의미로 노래를 잘 하는 가수는 아닙니다. 허나 직전에 언급했듯 창법의 차이고 초점의 차이인 터라 이 자체로 kumira를 폄하하긴 이른 거 같습니다. 어느새 트렌드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연출해내는 분위기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고, 이 부분에서 kumira도 가치가 있는 뮤지션일 것입니다. 다만 아직 길지 않은 커리어이니만큼, 조금씩 보이는 부족한 부분을 향후에 완벽하게 다져가면 좋겠습니다.



(8) Ashiroo - Born Broke Die Rich 2 (2020.2.11)


 믹스테입 "Born Broke Die Rich" 이후로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만에 후속작입니다. 앨범 소개글에 '살아있어서 다행입니다'라는 말이 있어서 뭔가 제작기간이 많이 힘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없군요. 


 앨범은 "2020"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살짝 색깔이 나뉩니다. Suwoncityboy의 비중이 큰 전반부는 "Born Ready"의 가사처럼 '멜로디 없는 비트를 패 죽이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작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작에 비해서 더 미니멀해진 게 눈에 띕니다 - 그리고 이 차이가 사실 2의 핵심입니다. "2020" 뒤로는 싱잉 랩으로 곡을 끌고 가면서 전반부에 비해 훨씬 멜로디컬해지지만, 이 미니멀함은 거의 유지됩니다.


 Ashiroo의 걸걸한 목소리는 이런 비트와 어울려서 동물적인 느낌을 줍니다. 가사가 반복적인게 많고 타이트하게 몰아치는 구간도 군데군데 있기 때문에 그렇죠. 다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에서 느꼈던 파워만큼은 못 느꼈습니다. '텁텁하다'라는 표현이 제 주관적인 감상을 잘 요약하는 것 같습니다. 힙합엘이에서는 이번 앨범을 신난다, 턴업된다 등으로 얘기하기도 하였지만 전 그런 찜찜함만 남더군요.


 뭐... 이외에도 트랩 팬들에게서 반응이 좋은 걸로 보아서 그저 제 취향 때문일 거 같기도 합니다. 확실히 이런 텁텁한 스타일 (최근에 들은 걸로는 lil asian이 생각나네요... 좀 극단적이었지만;)은 트랩 중에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분야입니다. 저 역시 전작은 좋은 감흥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섣불리 비관적인 평가를 내리진 않겠습니다.



(9) Yammo - Please Wipe My Versace Tears Away Without Gloves (2020.2.12)


 저는 '붐뱁충'이란 단어로 저의 좁은 스펙트럼에 대한 핑계를 댄 적이 많습니다. 밀.감.싹.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그 스펙트럼은 그나마 넓어졌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있음을 체감할 때가 있습니다. Yammo는 오래 전부터 그런 대표적인 예 중 하나였습니다. Big Deal Squads의 멤버일 땐 잠깐 붐뱁을 했고, 최근 싱글 "4 AM"도 그런 예이긴 했지만, Yammo는 초창기부터 트랩에 최적화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죠 - 필터를 거친 듯한 특이한 톤과 흘리는 발음, 자유로운 박자 감각, 그리고 프로듀싱 스타일까지. 활동은 꾸준하면서도 은근히 조용했지만 트랩 팬들 사이에선 Yammo 매니아가 꽤 있는 듯하고, 저는 아직까지 Yammo를 (Big Deal 때 냈던 "You Got Gun" 같은 걸 제외하면) 느껴본 적 없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이름이 길어서 옮겨 쓰기 좀 뭐한 (...) 이번 앨범은 그러한 트랩 스타일을 이어가면서 살짝 변화를 준 앨범입니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이모 힙합이겠죠. 훨씬 몽환적이고 칠링한 분위기에 오토튠의 비중이 커졌고, 빡센 랩이 중간중간 있지만 대체로 목소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이번에도 전곡 본인 프로듀싱으로, 랩 뿐만 아니라 비트메이킹으로도 인정 받아왔던 그인만큼 본인만의 느낌을 갖추려는 흔적은 여기저기 보입니다. 다만 여기서도 저의 심리적인 벽은 계속되는 듯합니다. 우선 이모 힙합에 어울리는 톤으로 옮겨가면서 Yammo의 목소리의 장점보단 단점이 부각되는 느낌입니다. 멜로디는 대체로 신선한 건 없고 거의 전형적인 코드 전개에 머무르는 듯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예민한 부분인 영어 발음. 투박한 영어 발음이 그루브를 많이 깨는 듯 들렸습니다. 


 여전히 첫 문단에서 말했던 Yammo만의 특징은 조용하게 빛을 발하는 듯하지만 이전 앨범들에 비해선 약하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차분한 바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번 앨범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더군요. 재밌는 건, 나왔을 당시엔 무표정하게 들었던 "Childhood Pt.3"도 이번 기회에 다시 들으니 괜찮은 앨범이란 걸 발견했다는 거죠. 그것처럼, 오늘은 이 앨범을 느끼지 못하지만 다음에 재발견할 기회가 있을까요.


 

(10) ITOWNKID - YAMA, TRAPPER OF THE CENTURY (2020.2.13)


 그의 첫 앨범 (잘 찾아보니 2018년 "환멸"이란 믹스테입이 있긴 하더군요) 이 31곡이 될 거라고 처음 밝혔을 때 탄식을 한 것은 비단 언제 다 듣고 글을 쓰냐는 푸념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가 완전히 아니라곤 말 못하고요). 아직 스타일이 제대로 서지 않은 래퍼의 앨범에 곡이 많다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YAMA, TRAPPER OF THE CENTURY"는 그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앨범 안의 ITOWNKID의 퍼포먼스는 고등래퍼 3 당시 '서민규'의 랩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약간의 허스키함이 개성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붐뱁과 트랩을 나누기도 살짝 이른 감이 있는, 기본 형태의 랩 스타일이었죠. 스스로를 금세기의 트래퍼로, 미래의 목표를 전설적인 트래퍼로 삼는 것까진 응원할만합니다. 허나 31곡이라는 곡 수와 그의 설익은 스타일이 합치면 당연하게도, 앨범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트래퍼라고 외침에도 "똥파리" 같은 하드코어 붐뱁이 들어가있고, "GRAB.DROP.POP" "또"처럼 갑자기 톤을 깔기도 하고, "모르잖아" "Fill" 같은 이모 힙합이 갑툭튀하기도 합니다.


 이런 '예외'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ITOWNKID의 랩은 평범해서 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카피 논란이 있는 것이 의외네요 - 그저 클리셰가 많을 뿐,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의 뚜렷한 이미지를 전 받지 못했습니다. 가사는 대개의 고등래퍼들이 그랬듯 정말 본인 얘기가 맞는지 (맞다고 주장하니 일단 믿지만) 궁금한 내용과 의미 없이 흐름을 깨는 한영혼용으로 점철되어있고요. 물론 포텐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회개"의 100마디라는 쉽지 않은 규모를 몰입도 있는 스토리텔링과 플로우를 생각보다 잘 이끌어가는 것에 놀랐습니다. "Vㅔ르사체" 같은 곡의 유머 센스도 있고요. 그러나 이들마저도 '예외 케이스'라 생각될 정도로 잠깐잠깐이었을뿐, 대체로는 밍밍합니다. "YAMA" 같은 강한 비트를 이겨낼만한 파워를 못 갖췄다 생각해요.


 굳이 모든 앨범이 통일성 있고 서사가 있어야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다 끌어모아 나열하는 앨범도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저변에 깔린, 흔들리지 않는 뮤지션의 캐릭터가 자리할 때입니다. 31곡을 담아 내는 전략은 ITOWNKID 본인의 시점에서는 악수였습니다 - 그저 "쌓인 곡 대방출" 같은 느낌 뿐입니다. 본인이 외치는 대로 legendary trapper가 되려면, 좀 더 단단한 모습을 보여줘야할 것입니다.


PS 엄청난 곡수에도 불구하고 곡들을 다 모아보면 CD 1개에 들어갈 분량 (78분여 정도...)은 되더군요 - 사클 only였던 "Taxi Freestyle"까지 합쳐서... 계산이었던 걸까요?ㄷㄷ

2
Comments
WR
1
2020-02-20 14:05:27

그래도 이 시리즈 하면서 저도 예전보단 트랩 대하기가 수월해지긴 했습니다ㅋ

Updated at 2020-02-23 06:05:55

Ourealgoat 은근히 매력있는 캐릭터죠.
언텔은 어느 정도 완성돼있는 아티스트 같습니다.

요즘 나오는 신생아 래퍼들은 자기 자신을 트래퍼로 부르는 것에 대한 묘한 무언가가 있나봐요. 이것또한 하나의 유행인 것 같네요. 무분별한 양산형 트랩도 좋지만 트래퍼들도 의미없는 한영혼용을 줄이고 가사에 힘을 들이면 조금 더 손이 갈텐데요 참.. 워크룸에서 작업물들 들으면서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아무거나 박아놓으면 멋있어 보이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물론 저는 rnb나 로파이를 더 많이 듣고 좋아하지만 순간의 하입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게 힙합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트랩보단 붐뱁충에 가깝게 되는 것 같아요.

글 잘 봤습니다.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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