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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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2-11 00:47:0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기생충 때문에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저도 일하다가 우왁 우왁 하면서 소식을 접했는데요.

그와 별개로 음악 감상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밀렸던 걸 겨우 따라잡고 나서 아이유 앨범이나 주구장창 듣겠다 했지만 실은 밀린 싱글들 듣고 나니까 다시 앨범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저주인가요 흑

다시 한 번 열심히 따라잡아서 아이유랑 Eminem 앨범 들을랍니다.

그럼 갑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Lil Tachi - Boombap Mixtape 2 (2020.1.30)


 "Cumpilation"에서 단연 주목할만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Lil Tachi가 그 기세를 몰아 첫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트랩임에도 "Boombap", 첫 앨범임에도 "2"를 붙였다는 익살은 재밌지만, EP임에도 "Mixtape"을 붙였다는 말은 조금 수긍이 안 갈 정도로 앨범은 믹스테입의 색깔을 진하게 띄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뚜렷한 흐름이 없이 무식하게 많은 트랙 수가 그렇습니다. 사실 믹스테입이라 쳐도 한국 앨범에서는 흔치 않은 구성인 단순 나열식 트랙 구성에, 왠지 대충 만든 듯한 앨범 커버와 가사 미등록의 전통까지 답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2번 트랙, thw는 아무리 봐도 'the'의 오타인데요, 이걸 그대로 트랙 제목 뿐만 아니라 가사에까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Boombap Mixtape 2"는 Lil Tachi의 나이에 걸맞는 매우 본능적인 앨범입니다. 다른 말로는 'raw'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WeDaPlugg라는 나름 빠방한 빽이 있음에도, 앨범은 기리보이의 비트를 일부 썼다는 걸 제외하면 전부 탈주닌자클랜끼리의 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애초에 피쳐링진도 표기를 안 했지만요). "pull up fuckin club" "맥심" 같은 트랙의 재밌는 브레이크도 raw함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죠. 비트는 다양한 색깔과 템포가 담겨있지만 어느 하나 복잡하지 않고, Lil Tachi는 다양한 톤과 플로우를 보여주지만 사실 주어진 비트를 단순히 탈 뿐입니다. 계산이 더 담겨있었다면 아마 오토튠을 좀 더 쓰거나 ("억천배" 같은 데에 쬐끔 들어있긴 하지만) 호화로운 피쳐링진을 대동했을 때,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맨몸으로 태클하는 느낌이 가득한, 매우 흥미로운 작업물입니다.


 외국 힙합을 잘 듣지 않기에 저는 하나도 언급할 수 없지만, 분명 Lil Tachi의 앨범에는 카피캣 시비가 걸릴 것입니다. 듣다보면 익숙한 플로우가 담기는 것은 특별히 자신이 받은 영향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면이 더 크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그때 들었던 그 곡의 플로우를 써야지, 라고 의도했을리는 없을 겁니다). 나이든, 커리어든, 본인의 영역을 만들기엔 아직은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쉴드를 칠 생각은 없고, 분명한 취약점이지만, 저는 그보다 어린 나이에 트랩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특히 느낌에 따라 좌우되는 음악이고, 그 느낌을 주무기로 하여 만든 이런 raw한 바이브는 Lil Tachi를 단순한 트랩 새내기로 볼 수 없게 하는 듯합니다.


 인스를 빼도 20곡이 넉넉히 넘는 구성에 거의 랩으로만 승부를 보며, "춤을춰" 같이 듣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마냥 길게 이어붙인 트랙 등은 감상을 지치게 만들긴 합니다. 해서 의미를 따지지 않고 그냥 앨범을 보자면 완전히 좋은 점수를 줄 순 없을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단연 다음 행보가 기대되게 했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본인은 물론, 탈주닌자클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2) Chillin Homie - Savior from the Hell Part. 1 (2020.2.1)


 두 번의 쇼미 출연 끝에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른듯한 Chillin Homie가 발표한 첫 앨범입니다. 타격감 강한 붐뱁 랩을 무기를 삼았던 대로 그의 앨범도 강렬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 전략에 제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일렉 기타입니다 - "송곳니" 한 트랙을 제외하면 전 트랙이 일렉 기타의 아찔한 연주를 멜로디의 주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비트는 앨범의 가장 뚜렷한 강점이자 약점일 것 같습니다. 분명 일반적인 붐뱁 비트보다 강한 인상을 남길 순 있겠지요. 근데 앨범 대부분의 곡에 같은 악기와 비슷한 코드를 깔아버리는 것은 오히려 모두를 평범하게 만들어버렸단 생각이 듭니다. 곡 구성도 기승전결 없이 평탄하게 루프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기타가 소모되는 건 다소 아깝단 느낌마저 생기는군요. 비슷한 맥락에서 랩도 그저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려는 데만 주력한 듯합니다. 요컨대, 앨범에는 세련됨이 부족합니다. 그저 질러대는 악만 크게 느껴질 따름이죠.


 악도 하나의 매력으로 느낄 여지는 있으며, 어쨌든 어느 정도 강렬함을 안겨주고자 하는 전략은 성공한 것도 같습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인상이 깊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대로 트랙은 기타를 안 쓴 "송곳니"가 제일 인상에 남는군요 - 그것과 단체곡 'Sons of Anarchy"도 대단하긴 한데, 플레이타임 짧은 앨범에 단체곡을 넣는게 자기 것을 보여주는 데 약간 방해는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가지, GROOVL1N의 멤버이지만 그 영향으로 오토튠과 신스, 트랩 드럼이 난무하는 길은 가지 않은 건 다행 같습니다 - 물론 이런 쪽도 나중에 센스 있게 섞어주면 좋을 거 같긴 하지만 (그래서 Pt.1인가요?). 이제 랩 잘하는 건 알았으니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곡을 들고 돌아와줬으면 하네요.



(3) Lionclad - Plastics (2020.1.8)


 최근에 알게 된 비트메이커입니다. 여성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핑거 패드 연주자로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죠. 처음 보는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과거 "Red Bull 서울소리" 앨범에 한 곡을 취입했었군요. 그전에는 Latakrz라는 크루의 멤버로 2016년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고요. 


 Lionclad의 음악은 힙합 및 트립합, 일렉트로니카로 분류되곤 합니다. 분류란 건 의미 없지만 이는 그녀의 음악이 가진 몽환적이고 어두운 면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거 같습니다. 핑거 패드 연주라는 것을 고려하고 들었을 때와 아닐 때가 감상 소감이 다르지만, 대체로 생각했던 만큼 챱핑이 심한 비트도 아니고 이펙트가 시끄럽게 난무하지도 않는, 조용히 젖어드는 타입의 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4년 전 앨범이긴 하지만 첫 정규는 간단히 들어보면 힙합의 범주에 좀 더 국한된 느낌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짧지만 좀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군요. 길이 때문에 아쉽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나저나 "My Love" "I Want to Hide"는 작사에 본인 크레딧이 올라와있는데 그러면 이게 샘플이 아니라 본인이 불렀단 걸까요... 오호...



(4) Ourealgoat & Songwaygoya - Raw Sh!t Vol.1 (2020.1.17)

    Songwaygoya - Way Go Yard (2020.1.23)


 이 인스타로 처음 만나게 된 또 다른 트랩 래퍼 Ourealgoat와 Songwaygoya는 역시 그리 길지 않은 디스코그래피를 갖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사이트 기준 2019년에 나온 싱글 한두 장이 다이며, 참여진만 봐서는 "수퍼비의 랩학원"에 출연했을 거 같은데 딱히 예선 합격자 명단엔 보이지 않네요. 크레딧에 적혀있는 FDT는 크루인가 싶기도 하고요. 유튜브를 통해 둘은 "Raw Sh!t Cypher"라는 컨텐츠를 진행했고, 이 컨텐츠를 이용해 "Raw Sh!t Vol.1"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Songwaygoya는 단 6일만에 솔로 EP를 한 장 더 발표하니 이게 "Way Go Yard"입니다.


 Ourealgoat의 랩을 들으면 본인 이름에 지나치게 충실한 '염소 바이브레이션'부터 귀에 들어올 것입니다. 딜리버리를 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일종의 특이점이 온 멈블 랩 같은 이 스타일에 얼마나 친해지느냐가 앨범을 즐기는 데 있어 제일 큰 관건이랄 수 있습니다. 의외로 저는 괜찮게 들었는데, Ourealgoat의 프로듀싱과 Songwaygoya의 랩의 서포트가 큰 이유였다 생각합니다. 본인이 전곡 프로듀싱한 비트들은 단순하지만,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랩과 상당히 좋은 케미를 이룹니다. 더불어 중간중간 치고나오는 아주 대조적인 느낌의 Songwaygoya 랩이 좋은 조화를 이루더군요.


 다만, 아무리 그래도 18곡이란 트랙 수를 이어 듣긴 쉽지 않았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독특한 스타일은 그 특징 하나에 꽂혀 뮤지션이 시도한 변화를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앨범 중반부 살짝 업되는 텐션과 중후반부에 배치된 피쳐링진이 어느 정도 지루함을 타파하는 역할을 하지만, 비슷한 로파이한 트랙에 첫 훅을 Ourealgoat의 목소리로 여는 것은 몇 트랙 지나서 살짝 물리는 감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솔로 앨범이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Raw Sh!t"에서 좋은 서포터 역할을 했던 Songwaygoya는 본인 앨범에서 가진 걸 아낌 없이 쏟아냅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더 업되어있습니다. 플로우에 있어 리듬 디자인이나 톤 운용도 훨씬 자유롭습니다 ("추진" 훅에서 보여준 박자 감각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힘을 뺀듯 안 뺀듯 내뱉는 하이톤의 랩은 Ourealgoat만큼의 유니크함은 없을지언정 앨범 하나를 끌고 갈만큼의 역량은 되는 듯합니다. 본인 앨범을 셀프 프로듀싱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영역을 갖출 준비가 되었다 볼 수도 있을 거 같고요. 결론적으로 큰 단점을 찾기 어려운, 가볍게 즐길만한 트랩 앨범입니다. 


 두 래퍼 다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은 신인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첫 발을 뗀 거 같습니다. 다만 특히 Ourealgoat는 본인의 스타일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긴 하겠군요. 두 래퍼 다 다음에 낼 작업물을 기다려봅니다.



(5) IFI - IF I (2020.2.4)


 IFI라는 이름 하에 나오는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나, 실제로 그는 Rovxe라는 이름으로 2018년 겨울에 정규 앨범을 하나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전히 믹스 & 마스터 크레딧에는 Rovxe란 이름이 적혀있네요). PLUMA가 속한 FRANK 크루의 멤버이기도 하며, 첫 정규는 17살 나이에 나왔다는 부분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겠습니다.


 "IF I"는 4곡으로 이루어진 작은 앨범입니다. 일부 랩에도 참여했던 전작과 달리 순수히 자신의 비트에 게스트들을 초빙하여 만든 앨범이죠. 사운드알못인 저는 이런 컴필레이션 형식의 앨범을 마주할 때마다 늘 다른 비트메이커와 이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내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IFI도 처음 돌릴 땐 딱히 눈에 띄는 차이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집중해서 들어볼 때, "IF I"의 장점이라면 4곡들이 각자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포인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단 점 같습니다. 이를테면 "경성주막"에는 색소폰이 전체 멜로디를 리드하면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죠. "Like a Star"는 HOMEBOY의 목소리를 작게 믹싱하여 다른 악기들 사이에 묻어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켰고요. 반대로 팝적인 코드를 타고 여러 악기를 쌓아올려 만든 "Wait..."도 있고, "MEMO"가 어찌 보면 흔한 이모 힙합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거 같긴 하지만, 일렉 기타의 참여로 좀 더 강렬하게 만들려고 했던 티는 납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다채로운 프로듀싱을 꽉 채워 할 수 있다는 건 재능이 맞는 거 같습니다. 전작과 비교해도 좀 더 비범해진 데가 있죠. 다만 그러한 포인트들이 완전히 곡을 색다르게 만들어주기보단 구석에 색깔 하나 더 한 정도로 그친 듯한 느낌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저는 아이디어가 트랙 전체를 움직인 듯한 "Like a Star"가 제일 인상적이었네요. 비단 IFI 뿐만 아니라 많은 비트메이커가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할 겁니다. 대중적인 코드가 나쁜 것도 아닌데 개성을 강조한다고 완전히 반대 노선을 취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우선은 섣불리 판단하기보단, 이름도 바꾸어 돌아왔으니 앞으로 IFI의 이름 하에 나오는 여러 곡을 보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해가도 좋을 것입니다.



(6) i11evn - 마포구 1짱 (2020.2.5)


 "F.O.G." 이후로 10개월만의 컴백입니다. i11evn을 향한 제 복잡미묘한 애정(?)은 지난 앨범 얘기하면서 썼던 바 있죠. "F.O.G."는 사건 이후 컴백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도 하고, 몽환적이고 우울한 바이브로 본인 커리어에서는 꽤 실험적인 앨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마포구 1짱"은 대조적으로 과거 액티브하게 활동하던 때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악을 테마로 잡고 있습니다.


 "마포구 1짱"의 마지막 트랙 "Youtube Freestyle"에는 유튜브 계정 주소가 나오는데, 실제로 그는 올해 들어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계정 자체는 "F.O.G." 음원 업로드 때문에 이전부터 있었긴 합니다). 앨범에 실린 네 곡은 실은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퍼포먼스로 선공개된 곡들이죠. 이게 이 앨범을 들을 때 있어 중요한 포인트 같습니다. "마포구 1짱"은 하나의 테마를 잡고 탄탄하게 이뤄나간 앨범이 아닙니다. (유튜브를 이제 막 시작한 거긴 하지만) 활동을 정리 요약하고, 생존 신고 겸 홍보 역할을 하는 앨범이죠. 또한 곡들은 저마다 리스너/시청자를 캐치할만한 포인트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론 랩 스킬이 있겠고, 워드 플레이라든지, 사람들 흥미를 끌만한 소재로 가사를 쓴다든지 하는 거죠.


 음악만 놓고 봤을 때 i11evn의 랩은 생각만큼 시원하게 터져주진 못 합니다. 지난 "F.O.G." 때도 경직되고 평범한 느낌은 있었지만 이건 앨범 분위기에 맞추려는 하나의 시도였다고 보면, 이번에는 랩 잘 하는 걸 자랑하기 위한 트랙들인데 예전의 기량이 100%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i11evn의 목소리 자체가 약간 쥐어짠 듯한 톤이라서 딱딱한 느낌을 갖고 있는데, 이걸 극복할만큼의 유려한 플로우를 개발하지 못한 듯합니다. 말했다시피 이 앨범은 유튜브 영상으로 올라간 곡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순서나 구성 같은 걸 심하게 논할 필요는 없지만, 뜨금 없이 Geeks 스타일로 감성에 차 노래를 부르는 "Without You"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이 곡 하나를 놓고 보자면, 보컬에 맞춘 녹음과 엔지니어링이 아니라서 매우 빈약하게, 데모 곡처럼 들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음 앨범은 예전의 감각을 더 되찾는 건 물론이고 앨범답게 만들어진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군요. 아직 공백기로 인해 워밍업이 끝나지 않은 탓일지. 저는 어쨌든 랩 잘하는 유튜버가 아니라 래퍼의 음악을 듣고 싶은 거니까요.


 사족. "Swimming in My Own Lane"의 비트는 과거 Danclock의 "I'll Change You"라는 곡으로 이미 발표되었던 곡입니다. Scary'P가 타입 비트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어서 재사용이 된 듯합니다. Danclock 앨범 좋게 들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한 번 더 언급...



(7) Hash Swan - Silence of the REM (2020.2.5)


 최근 들어서 조용했지만 Hash Swan이 보여줬던 행보를 되돌아보면, 그 역시도 싱잉 랩을 위주로 한 이모 힙합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Hotel Walkerhill"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작 "Peridot"부터가 그러했죠. 늘 Hash Swan의 유니크하면서도 가냘픈 톤을 어떻게 비트와 조화시킬 것인지가 그를 프로듀싱하는 것의 관건이었고, 이런 스타일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마음 편한 감상을 가능하게 해줬습니다.


 Hash Swan의 첫 정규라는 "Silence of the REM"은 그렇게 변한 스타일을 좀 더 본격적으로, 좀 더 성숙한 형태로 보여줍니다. "Peridot"은 기존 Hash Swan을 생각하더라도 '가능했다' 친다면 이번 앨범은 좀 더 본인이 할 수 있는 테두리를 적극적으로 바꾼 느낌이죠. 꿈이 일어나는 수면 단계를 뜻하는 "REM"을 영화 "양들의 침묵" 원제에 치환하여 만든 제목은 그가 각종 현실에서 겪는 문제들을 어떤 톤으로 다룰 것인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냘픈 톤처럼 그의 태도는 나약합니다. 이것이 기존에 섬세했던 그의 작사 스타일과 어우러져 상당히 세밀한 감정 묘사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기존 Hash Swan 가사는 살짝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어렵게 쓰려는 강박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 단어는 꽤 고차원적인데 비유나 표현이 그다지 깊지 못한 괴리 같은 게 있었죠. 이번 가사는 그런 강박을 내려놓은 듯, 대체로 비유가 적당한 수준에서 쓰여지고 있고, 그의 감정을 좀 더 잘 전달 받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이런 약한 어조로 이어지는 앨범이 누군가에겐 자기 복제로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확실히 임팩트를 뺀 담백한 음악들은 인상을 남기기 비교적 어려워 대부분의 곡들이 뭉뚱그려져 기억에 남아, 비슷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죠. 완전하진 않지만, 이부분을 프로덕션이 잘 보완했다고 생각합니다. TOIL의 밴드 스타일 작곡은 그야말로 물이 올랐습니다 - 비우는 부분 없이 세세하게 모든 악기를 채우면서도 과하지 않게 조절하는 법을 압니다. 재밌는 게, TOIL과 협업을 했던 비트메이커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참여한 dkash가 잘 하는 것이 라틴 스타일 비트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TOIL의 비트가 그런 리듬이 많고 dkash는 아니더군요. 의도된 건지는 모르지만 좀 더 재밌게 듣는 포인트였습니다.


 단점을 끄집어내자면 결국 약한 어조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곡들이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공감하지 않으나, Hash Swan의 조용한 목소리가 종종 묻혀서 색깔이 약해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특히 피쳐링진의 인상이 강할 때 곧바로 밀리는 듯합니다 - 대표적인 예는 역시 "거미줄"이겠죠. 이 곡은 SURL의 버전으로 듣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제 생각에 이 앨범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Ambition Muzik의 Hash Swan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 Holmes Crew나 Wayside Town의 Hash Swan으로써 접근했을 경우 뭔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그 두 크루가 너무 싱잉 랩으로 일률화되는 듯해서 (뭐 Shupie가 최근 빡센 걸 내주긴 했지만a) 아쉬워지려고도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스타일은 Hash Swan이어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목소리가 잘 쓰여질 수 있는 방도를 찾은 거 같아 기쁘네요 ("알렉산더처럼 왕"도 좋았긴 하지만.... 아무튼!).



(8) 만수 - 내가래퍼가될상인가 (2020.2.6)


 지난 앨범 "연리지"부터 2년 반, 그 사이에도 싱글 하나밖에 없었으니 실로 긴 공백기를 거쳐 나온 신작입니다. 늘 같이 하던 C.Why aka Fredi Casso가 지난 싱글 "불효새끼"에 함께 하지 않더니, 이번 앨범은 QUIZQUIZ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만들어졌군요. 때문에 C.Why가 만들던 90년대 붐뱁 같은 느낌의 비트 대신, 뭔가 트랩 비트로 쓸 것도 같은 전자음 소스를 활용한 비트가 앨범을 채우고 있습니다.


 저는 만수란 래퍼를 모르겠습니다. 나름 발성과 톤은 잘 갖춘 거 같은데 왜이리 곡들이 재미가 없을까요. 그저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비트를 타는 랩 스타일이라고 하는 건 이제는 의미 없는 쉴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행히도 "내가래퍼가될상인가"는 그 단점을 유지하고 더 강화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앨범 제목부터 여러 트랙에서 만수는 유행어를 끌어다 쓰면서 유머 센스 있는 작사가가 되기를 노리는 듯하지만, 그의 유머 타율은 매우 낮습니다. 이유는 그 소재를 이어받아 풀어낼만큼의 센스가 부족한 탓입니다. 예를 들어 "라떼는 말이야"는 순수히 벌스만 본다면 대체 왜 제목이 이렇게 붙여졌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TMT"는 길이도 짧고 훅까지 붙어 얘기가 꽤 간결(?)한지라 전혀 말을 많이 했단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비단 가사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꺾고 짜내어가면서 만수는 게속 자신의 센스를 어필하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그저 억지스럽게 애쓴다는 느낌만 전해질 따름이죠.


 랩으로 옮겨오면 문제는 더 드러납니다. 이 시대에 라임을 갖고 지적하는게 생경한 느낌이 들지만 만수의 라임 디자인과 패턴은 실로 박자감을 깎아먹는 방향입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다음절 라임에 더 신경을 써서 그런가요? 이렇게 라임을 쓸거면 강세를 이렇게 주지 말지! 하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가장 만연한 문제는 벌스와 훅을 통틀어 청자를 몰입시킬만한 흐름이 부재하다는 겁니다. 때문에 벌스의 끝은 끝답지 못하고, 훅의 시작은 시작답지 못합니다 (전 진짜 "오다리 교정법"의 훅은 훅인 줄 처음에 몰랐는데, 두 번 반복하더라고요;). QUIZQUIZ의 단조로운 비트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부분이긴 했지만 래퍼가 할 수 있는게 분명 더 있었습니다.


 나름 시간을 두고 만수의 곡들을 들어왔습니다. MBC 다큐를 언급하는 거야 의미 없지만 그래도 '모두의 마이크' 우승 경력을 생각하면 제가 놓친 무언가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서요. 공백이 컸던 걸까요, "내가래퍼가될상인가"는 제 기억보다도 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모든 건 저 한 명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저와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면 만수에겐 꽤 커다란 변혁이 있어야 할 것만 같군요.



(9) Cimoe - 강변은 바다를 그리워한다 (2020.2.7)


 작년 "CIMOESSAY"로 좀 더 본격적인 커리어의 포문을 연 Cimoe의 신작입니다. 맥시 싱글이란 분류 하에 3곡이 수록되었으며,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세 곡 전부 강을 소재로 삼고 있죠. 


 싱글이라고 하지만 작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노래에 담겨지는 이야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Cimoe의 스타일 덕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은 노래마다 약간씩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주로는 과거라는 단어 하나로 연결되며, "만월" "강변은 바다를 그리워한다"는 이를 바탕으로 추억을, "동녘"은 이제 맞이할 날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구조만으로 두 가지의 시선으로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군요. 가사는 이번에도 엄청납니다. 사실 양날의 검이라 느껴지는 이 특징은 이번에도 똑같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실로 뛰어나게 벼려내어진 구절들이나, 편하게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단번에 소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매 구절이 치밀하게 짜인만큼 쉬어가는 구간이 없어 '감상'보다는 '정독'을 요구하는 가사들입니다.


 한 가지, "CIMOESSAY"와 비교하여서 음악적인 부분에선 어느 정도 성취가 있어보입니다. 사실 분위기 자체가 다르긴 했죠 - "CIMOESSAY"는 길을 여는 포부가 있었고,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자신의 뒤와 앞을 살펴보는 것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전작에서 경직되고 날카롭다고 느껴졌던 톤이 이번 앨범에서 좀 더 부드러워 듣기 쉬워졌고, 특히 "동녘"에서의 플로우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 경직을 풀어내는 노력이 이룬 가시적인 결과물인 듯합니다. 아직 남아있는 단점도 있긴 합니다 - 경직은 줄었을 뿐 존재하긴 합니다.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틀리지 않겠다는 긴장이 소리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마디 사이사이 들어가있는 여백이 여백의 미가 아니라 뻘쭘한 침묵으로 느껴지는, 센스 있는 디자인 미숙도 조금 아쉽고요. 이건 마디를 랩으로 그냥 메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센스 있게 밀고 당기면서 처리해야할 부분인데, 역시 좀 더 풀어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씬 안에 Cimoe의 자리는 아직 좁지만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침범하기 쉽지 않은 테두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소리에 좀 더 치중하는 오늘 씬트렌드에 극단적인 정반대에 서있다는 점도 흥미롭거니와, 가사를 시처럼 읽었던 예전을 생각나게 해서 더 반갑기도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저는 전작에 비해 음악적으로 개선된 점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네요. 그의 인스타에는 3월과 5월에 이미 신작을 예고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아무쪼록 '동녘'을 넘어 좋은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길 바랍니다.


(10) Rovxe & Goldash - BLANK (2020.2.7)


 IFI의 앨범 글을 쓴지 얼마나 됐다고 새로운 앨범이 나왔습니다. Rovxe인데 이름을 바꿨나봐요! 라고 얘기해는데 민망하게 Rovxe란 이름으로 말이죠. 조금 더 파보니, 저번에 highgel 님이 언급하신대로 탈주닌자클랜에도 속해있는 것도 있고, 랩할 때는 Rovxe, 프로듀싱할 때는 IFI란 이름을 쓰나보군요. IFI가 새로운 이름도 아닌 것이 저번 정규 앨범에도 IFI 비트가 약간 들어가있습니다...; Goldash는 낯선 이름이지만 마찬가지로 정규 앨범에서 다섯 곡 정도를 참여했던 비트메이커고요.


 래퍼로써의 Rovxe는 또 다른 이모 힙합 래퍼입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던가 하는 건 아직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멜로디도 아직은 전형적인 코드 전개를 보이고, 개인적으로 좀 많이 꺼려하는 문법 안 맞는 영어 (리드머에서 한영혼용을 인정할 거면 이런 걸로 까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그냥 맞춤법충의 고질적인 취향으로 하겠습니다 흑)가 난무하는 것도 일종의 '전형적'인 타입이랄 수 있죠. 다만 랩과 싱잉 중간 지점에서 플로우를 전개할 때 ("Won't"가 가장 좋은 예인 거 같네요) 좀 귀에 꽂히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뭐, FRANK 크루와 탈주닌자클랜 크루라고 한다면 그안에서 감성을 담당하는 멤버가 될까요?


 이번 앨범에서 귀를 잡아끄는 건 Goldash의 비트였습니다. 전작에 수록된 곡과 비교해봐도 훨씬 각종 필터와 이펙트, 그리고 악기 사용을 통해 Goldash는 더욱 풍부한 감성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런 트랩 장르에서 "아"처럼 스트링 세션을 세련되게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는 않거든요. "Introduction" 같은 걸 생각해보면 Rovxe가 좀 더 독특한 전개를 펼칠 수 있도록 어레인지를 한 것도 Goldash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아티스트로 당연하겠지만 앨범의 퀄리티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여, IFI에 이어 Rovxe란 아티스트를 알아보게 되었고 나쁘진 않았지만 저는 Goldash가 이번의 발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눈에 띄는 작업물이 많지 않은데 이름이 보이면 좀 더 집중해서 들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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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20-02-11 00:37:00

릴타치는 29트랙에 가사도 3-4곡밖에 안 공개했던데요...ㅎㄷㄷ

2020-02-11 19:37:55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WR
2020-02-11 22:15:47

감사합니다^^

2020-02-12 10:02:57

라이언클래드, 해쉬스완 되게 좋게 들었슴다

해쉬스완 앨범은 개인적으로 해쉬스완 보컬 빼고 듣고 싶어요 해쉬스완이 구리다는 건 아닌데 약간 뜨는 느낌

WR
2020-02-20 14:11:59

IFI와 Rovxe는 동일인물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다른 인물이에요!ㅜ 죄송합니다 치명적 실수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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