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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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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13:26:47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역시 쉽게 절 놔주지 않습니다. 이번 편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하였으나 꾸준히 늘어나는 신작들...

pt.70도 작성은 확정입니다. 그래도 끝이 보이긴 보이는데... 과연?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oceanfromtheblue - khaki (2020.1.9)


 FR:EDEN처럼 피쳐링진에서 많이 봤지만 정작 본인 결과물은 찾아듣지 않고 있던 R&B 보컬입니다. 최근 HD BL4CK 앨범에서 특히 좋게 들었었기 때문에 새 앨범이 나왔다는 걸 볼 때 거리낌 없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만족스럽네요. 노래 잘 한다는 것이야 기본으로 깔고, 리듬감 있는 멜로디 전개와 "사랑해" 같은 인상적인 가사들. 가장 저를 놀라게 했던 부분은 프로듀싱 능력입니다. 신스 악기를 다루고 쌓는 스타일이 범상치 않군요. 때문에 중간중간 들어간 인터루드도 (둘 다 oceanfromtheblue 비트인 건 아니지만) 앨범 구성에 상당히 부드럽게 껴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이 모든게 합쳐 상당히 그루비한 느낌을 즐기며 앨범을 들었습니다. 이번에 할 말이 길지 않은 것은 딱히 흠을 잡고 싶지 않은 앨범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피쳐링에 oceanfromtheblue의 이름이 보이면 좀 더 그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될 거 같네요.



(2) 개미친구 - 배설 (2019.8.7)

   개미친구 - 안녕 (2019.12.27)


게시판에 은근히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어서 들어보게된 개미친구는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자랑합니다. 2017년 첫 믹테를 발표 후 사클을 통해 나온 믹테만 (내린 것까지 포함) 27개 (트랙수는 천차만별이지만)이고, 2019년 처음 스트리밍 사이트에 음원을 올린 후 7장의 EP와 하나의 싱글, 그리고 2장의 타미즈와의 콜라보 EP을 등록시켜놨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으로, 첫 믹테 발표 시엔 세 개 정도의 크루를 언급한게 보이지만 지금은 따로 소속은 없는 것 같군요. 하지만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거의 비슷한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ㅡ 대표적으로 프로덕션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codename을 들 수 있군요.


게시판에서 노창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공공구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의식의 흐름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쉽게 속뜻을 간파하지 못하게 달려가는 가사와, 때로는 박자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플로우, 씨니컬한 어조가 그랬습니다. 이것을 제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앨범이 가장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배설"입니다. 가장 최근 올라온 것이다보니 "안녕"을 덧붙여 올렸는데 사실 "안녕"에선 "배설" 같은 바이브는 많이 빠져있습니다. 모르고 들으면 당황스러울 수 있는 반전이죠.


공공구와의 가장 대조되는 면은 어렴풋이 보이는 푸근함 같습니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끊임없이 사랑을 얘기합니다 ㅡ 때론 개인적인 경험으로, 때론 일반적인 의미로. 분노한 듯이 속마음을 털어놓다가도 결국 그 주제로 돌아오곤 합니다. 이를 표현하는 개미친구의 탁한 목소리, 어쿠스틱한 바이브를 가장 자주 차용하는 비트들과 다소 어설프게 부르는 노래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술을 직접 다루는 가사는 거의 없지만 술 냄새가 진하게 나는 듯한 것도 이런 요소들 덕분 같아요. "안녕"이 '뜬금없는' 것도 이런 부분에서 생각하면 너무 멀리 나간 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안녕"과 "배설" 사이 나온 두 장의 EP는 조금씩 차분하고 정돈된 목소리로 랩을 바꿔오고 있었습니다.


장단점은 스타일의 유니크함을 고려할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유니크함은 분명 커다란 무기고 장점이지만, 어쨌든 거칠게 사운드 믹싱이 되어있고, 러프하게 전체적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깔끔한 음악들을 찾는 이들이 좋아할 음악은 아닙니다 ㅡ 술 냄새 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에요. 또한, 노래를 다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허슬러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유효타'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얼핏 들어본 옛날 노래와 비교해선 스타일이 많이 잡혀가긴 했지만 다행히도(?) 27장의 믹테를 다 따라가지 않고 처음과 끝만 비교했기에 허슬의 효과에 대해 부담 없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겠죠. 참 궁금합니다. 무엇이 있기에 그는 이토록 창작을 하고 있는지. 만약 그가 성공하여 좀 더 삐까뻔쩍한 환경에서 음악을 만들면 변하게 될지. 솔직히 그의 다작 속도를 따라잡을 자신은 없지만, 이제 알게 됐으니 조용히 주시해봅니다.



(3) East Frog - 착각 (2020.1.10)


 Snacky Chan의 레이블 Dynasty Musik 소속 래퍼 East Frog의 두 번째 EP입니다. 전작 "공해" 얘기할 때도 말했지만 그가 Snacky Chan 회사에 있다고 빡센 붐뱁을 한다고 생각하면 앨범을 들을 때 당황할 수 있습니다. 흔히 East Frog를 얘기할 땐 장기하가 언급되곤 하는데, "착각"은 그렇진 않지만 어쨌든 그런 얘기를 듣게 한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여유로운 바이브가 마찬가지로 깔려있습니다. 비트는 상당히 정통 붐뱁스러운데 재밌는 일이죠.


 East Frog의 랩은 정확하고 담백합니다.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노래에다가 화려한 스킬을 뽐내기도 좀 곤란하겠죠. 때문에 늘상 따라오는 장단점이 이 앨범에도 고스란히 있습니다. 딜리버리가 아주 좋고 듣는데 부담이 없는 반면, 조용하고 낮게 깔린 톤과 정박에 맞춘 플로우는 심심함을 유발하기 딱 좋습니다. 취향이 작용하겠지만 만약 저와 같다면 터져주지 않는 음악에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사소한 단점으로, 피쳐링으로 참여한 이들이 East Frog의 바이브와 너무 차이가 나서 몰입이 깨진단 점이 있었네요.


 뭐, "공해"에 이어 들은 바로는 이러한 스타일이 나름 안정적으로 확립되어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이를 재밌게 꾸미는 것이겠죠. 전작에서는 포크 송 분위기를 차용했는데 그게 너무 장기하스러워서 좋게 들리진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인데, 잘 해결책을 찾아나가길 바랍니다.



(4) Kid Wine - Love Wine (2020.1.16)


 작년 5월 "All We Got"과 쇼미더머니 "자식들" 비트로 생존신고를 했던 Kid Wine의 새 EP입니다. 이번에도 전곡 프로듀싱을 도맡아 하였고요. 이번 앨범에서야 안 건데, "WaterWineGang"이라는 이름이 시그니처 사운드이군요 - 크루인지 그냥 본인의 브랜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이름에 띄어쓰기가 없었던 거 같은 건 착각인가요.


 아무튼, "All We Got" 때는 깔끔한 매력의 오토튠 싱잉 랩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Love Wine"은 거의 동일합니다. 첫 트랙인 "미로"가 약간 다른 바이브를 가지고 있고, 오토튠이 전체적으로 줄어든 느낌이 든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 앨범이라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고보니 더욱 분명해집니다 - Kid Wine은 팝 코드의 트랙을 만드는데 능하고, 그냥 래퍼라기엔 보컬 실력이 출중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힙합 (의 범위는 무의미하달 정도로 애매해졌지만) 앨범이라기보단 R&B 앨범으로 보는게 이 앨범을 감상하는데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들으면서 먼저 연상되는 아티스트는 Justin Bieber였거든요.


 다만 이번 앨범에서도 비슷한 코드, 비슷한 템포로 이어지는 곡들에 더 이상 큰 감흥이 전달되지 않는게 문제입니다. '팝적인 트랙'이라는 얘기는 더욱 나아가, 흔한 가요를 듣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번 앨범처럼, 의외로 힙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일 거 같군요. 뭐, 어차피 하드코어 힙합을 하려는 건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까 지향점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어디에 목표를 두었건 본인만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게 될까봐 우려되는군요.



(5) 뱃사공 - 기린 (2020.1.16)


 뱃사공이란 인물은 크게 "탕아"로 대표되는 거침 없는 돌아이 캐릭터와 "위로"로 대표되는 속 깊고 선한(?) 캐릭터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 앨범 "탕아"는 좋았지만 그 캐릭터가 번갈아 나오면서 너무 냉온탕을 오가는 구성이 옥의 티였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기린"은 두 가지 캐릭터 중 후자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한 곡을 제외하고 chilly라는 비트메이커가 총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아련한 느낌의 기타를 사용한 슬로우 템포의 곡으로 대부분의 분위기가 맞춰져있습니다. 이 위를 느릿느릿 걷는 뱃사공의 랩은 어느 때보다도 완숙한 느낌입니다. 여유롭되 심심하지 않게, 우직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곡을 채우는 목소리와, 무엇보다 따뜻함이 진하게 배어있는 가사는 이 계열의 음악에서는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앨범을 통해 본인의 단단하지만 한없이 인간적인 고집을 내세우고, 이를 가진 타인에게 공감하고 상처를 매만지는 목소리는 울림이 큽니다.


 "탕아" 때 왔다갔다하는 분위기가 아쉬웠다면 이번에는 하나로 모았기 때문에 전혀 그런 문제점은 없습니다. chilly의 비트는 모던 락의 느낌이 물씬 배어나오지만 그다지 어색한 점은 없고 뱃사공의 감성을 배가시켜줍니다. 다만 "너"에서 "잘자"로 이어지는 구간이 특히 너무 쳐진다는 점은 있는데, 앨범의 의도로 볼 때는 피할 수 없는 문제였을 것도 같습니다. 특히 Peejay의 비트로 앨범을 마감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고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올리는 전략은 상당한 효과였다고 봐요.


 1월에 나온 앨범 중 가장 기대되었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앨범 같군요. 딩고 스포일러 영상에선 지인들이 (물론 농담이겠지만) 매번 거지 바이브를 재탕한다고 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표현하는 깊이로는 아직 더 멀리 가져가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완전 깽판 힙합 앨범까지 잘 뽑힌다면, 뱃사공이란 인물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Lovo Verdi - Moonlight (2020.1.15)


 개인적으로는 "수퍼비의 랩학원" 참가자로 처음 이름을 알게 된 래퍼입니다. 그 역시도 제가 모르는 사이에 홀로 커리어를 꿋꿋이 쌓아가고 있었는데, 2018년 "Halted"를 시작으로 (당시는 "Lobo Da King"이란 이름을 쓴듯) 정규 한 장을 비롯한 다수의 싱글을 발표했습니다. 중간에는 "DVIN"이란 크루에도 속해있던 거 같은데 최근 앨범에는 이름이 나오진 않네요. 그리고 프로듀싱도 해서, kidpool이란 비트메이커와 "NOFF"라는 프로듀싱 팀을 꾸리고 있기도 하군요.


 과거의 곡을 전부 들은 건 아니지만 Lovo Verdi의 스타일은 꽤 뚜렷합니다. 즉, 오토튠 싱잉 랩을 기반으로 하여, 착 가라앉은 바이브의 진한 감성을 담은 곡들이 주를 이루는데 (목소리가 조금 두꺼운 Tommy Strate가 연상됩니다), 그 와중에 '밤에 듣기를 권장한다'는 테마를 가지고 나온 이 앨범은 더욱 딥하게 들어가는 분위기로 이모 힙합보다는 슬로우 잼 R&B에 가깝다는 인상을 줍니다.


 비록 본인의 비트가 이번 앨범엔 거의 안 실린 듯하지만, 하나의 분위기를 축으로 무겁게 깔리는 비트들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Lovo Verdi의 음악 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것들만 적절하게 초이스된 거 같아요. 흠.. 이런 류의 음악에 대해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듣다보면 너무 비슷하고 쳐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 전곡이 거의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중간에 들어간 kani와 Killagramz의 피쳐링은 목소리 뿐만 아니라 그 아래 깔린 비트의 변화까지 포함해서 이런 분위기를 리프레쉬해주는 데 중요한 장치인 듯합니다. 더불어 한 단계 더 묵직하게 내려가는 "Eclipse"는 앨범의 좋은 마무리였던 거 같습니다.


 해서 저는 "Moonlight"가 크게 뒤쳐지는 앨범이란 생각은 안 드는군요. 싫은 점에 대해서는 취향이 더 작용하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 그가 하는 음악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긍정적인 거 같습니다. 조금 더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듬을 필요가 있겠지만, 이모 힙합의 팬이라면 행보를 따라가봄직한 아티스트란 생각이 드네요.



(7) JUPITER - Love This Chaos (2020.1.15)


 태풍 님의 새 앨범 소개 목록을 읽던 중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들어보게 된 앨범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아티스트였지만 첫 믹스테입이 2016년 나온, 나름의 커리어를 갖고 있는 래퍼로군요 (더 찾다보면 "No Fake Shit"이란 미니 앨범이 2013년에 나와있는데 동일 인물인지 좀 헷갈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랩 뿐만 아니라 프로듀싱까지 본인이 도맡아한다는 점. 그리고 이번 앨범 크레딧에는 365LIT의 크루인 USB (Under Seongsu Bridge)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보 및, Zene the Zilla, Rakon 등의 피쳐링진 등을 기반으로 또 흔한 트랩 앨범이겠거니 했던 제 예상은 첫 트랙부터 보기 좋게 깨어졌습니다. 이 앨범에서 귀를 훅 잡아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듣는 이를 압도하는 듯한 비트입니다. 본인 이름에 어울리는 거대한 스케일의 곡들은, 과감하고 역동적인 구성이 어떤 면으로는 앱스트랙트 힙합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소스를 따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Chandelier"는 PBR&B의 느낌이 나고, "SILENCE"는 테크노 음악 같은 신스 구성이 들립니다. 여기에 스트링 세션 같은 느낌의 "Weakness"에 좀 더 턴업시키는 트랩에 가까운 "방출"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음악들이 공유하는 웅장한 앰비언트 사운드는 실로 "Love This Chaos"를 놀라운 앨범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랩 퍼포먼스가 그리 뒤쳐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죠. 이는 톤과 리듬 패턴도 그렇지만 오토튠의 설정까지도 포함하며, 단순히 트랙 별로 다른 스타일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트랙 내에서도 여러 가지 목소리를 바꿔가면서 쓰고 있습니다. 담백해보이는(?) 싱잉 랩부터 목소리를 철저히 뭉개버리는 이펙터까지, 사실 이 앨범은 목소리 역시도 마찬가지로 악기의 하나로 사용된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JUPITER의 모든 과거 곡을 들어본 건 아니고 사실 꽤나 짧은 감상 시간을 가졌지만, 이번 앨범만큼 사운드의 비중을 크게 가져간 건 전작들에선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 이때도 비트는 잘 찍었지만, 근래의 앨범들은 R&B로 분류되기도 할 정도로 이지 리스닝한 부분이 많았고, 느낌을 공유한다 볼 수 있는 "UNIVERSE 2017" 앨범도 살짝 설익은 느낌입니다. 거꾸로 말해, "UNIVERSE 2017"에서 본인이 지향하던 바를 이번에 한 단계 끌어올려 완성시킨 것 같습니다. 뒤늦게 알아버렸지만, 이번 앨범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는 게 다행인 것도 같습니다. 개성적인 아티스트를 새로이 알아가는 과정은 늘 즐겁고, 앞으로 그가 무엇을 내놓을지 기다리는 과정 또한 그러리라 기대합니다.



(8) KRTK 24 7 - 9년만에 대학교를 졸업한 지현우는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생명의 근원인 지구를 지키기위해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2020.1.16)


 당연하게도, 이 앨범을 들어보게 된 계기는 신기하리만치 긴 앨범명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KRTK 24 7은 누구인가 알아보던 중, 그가 8-9년 전 아우라지 크루의 멤버로 개인적으로 꽤 관심을 많이 가지고 EP 앨범도 한 장 샀던 Critic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놀랐죠. 같은 지역 출신이자 라이벌이라고 할 수도 있을 Prizmoliq을 향한 디스곡 "Busanfornia"가 제가 아는 마지막 기록이었는데, 그뒤로도 꾸준히 KRTK 24 7로, 때로는 '지현우'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하고 있었단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다 들어보지는 못 했어도 (일단 직전 앨범 "51 Mixtape"이 51곡입니다. 이보다 많은 수록곡을 가진 개인 앨범이 있던가요?) 최근 곡 몇 개를 들어보면 지금의 KRTK 24 7과 과거의 Critic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잔뜩 힘을 준 저음의 랩과 타이트한 플로우로 조용한 힘이 있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의 그는 매우 가볍고 담백하게 랩을 합니다. 작년 가을쯤 본인이 곡을 프로듀싱하면서부터 이 성향은 더욱 강해졌으며, 9월에 나온 싱글 "기차"가 '포크/블루스'로 분류되어있다는 것만 봐도 어떤지는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힙합 곡하면 생각할 수 있는 드럼 루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여섯 번째 트랙에 이르러서일 정도로 앨범은 조용하며, 이 6번 트랙 정도를 제외하면 랩이 아니라 독백에 가까운 느낌이 납니다.


 앨범 제목에도 불구하고 자연 얘기를 눈에 띄게 하는 트랙은 5번 트랙 정도이고, 나머지는 여러 분야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옮겨 싣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가사는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 라임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티가 나고, 진부하지 않은 문체로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죠. 전달이 잘 되는 건 사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나레이션 투의 플로우 때문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얘기하면 이 앨범에서 청각적 쾌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가장 랩곡의 분위기를 띄고 있는 6번 트랙의 경우 뜬금없이 b-soap스러운 발음과, 2절에 가서 왠지 뭉개지는 박자감 등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이걸 빼면 결국 이 앨범은 KRTK 24 7의 '이야기 앨범'에 가까워지는 겁니다.


 뭐, 잔잔한 비트와 조곤조곤한 말투가 편안함을 제공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는 있겠죠. 허나 굳이 힙합을 듣고픈 사람이 이 앨범을 고를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최근 그의 곡들을 들어보면 애초에 힙합적인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관심사에서 떠난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건 과거의 Critic은 아니라는 거.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마무리짓는게 나을 거 같네요.



(9) Idolo - 비 내리는 단칸방 (2020.1.17)


 Idolo는 이전에 이 인스타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으로 한 번 다룬 적 있는 래퍼입니다. evelihood라는 크루의 멤버이며, 우울감이 짙게 배인 이모 힙합 류의 음악을 했었죠. 몇 개의 믹스테입이 있지만 "비 내리는 단칸방"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첫 업로드된 앨범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앨범이 예전 작업물에 비해 전체적으로 세련되게 빠졌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적으로나 소리적으로나 과거에는 너무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는 느낌에 거부감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걸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잘 다듬은 거 같습니다.


 한편으로 Idolo는 비트메이커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 앨범을 듣다 알았는데, 음악을 EDM으로 시작하여 2018년 한 덥스텝 앨범에 리믹스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이력이 있더군요. 듣고나서 보니 갖가지 이펙터로 임팩트를 주는 방식이 그런 과거의 영향을 받았나 싶었습니다. 모든 곡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 "비 내리는 단칸방"은 전체적으로 매우 가라앉은 분위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튀지 않으려는 모습이 강합니다. 비트만으로 볼 때 단순한 피아노 루프가 반복되는 위에서 단순한 플로우로 읊조리듯 랩으로 이어나간다든지, 하는 것이죠. 다만 피쳐링을 한 poem이 모든 벌스를 맡은 "달 (episode 2)"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비틀고 전개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러한 스타일 역시나 전작에서도 보였던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훨씬 세련되게 적용되었습니다. 이번에는 Idolo의 로우톤과 합쳐 그 침잠하는 무게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져서 좋습니다.


 아직 완전한 음악은 물론 아닙니다. 사실 Idolo의 퍼포먼스 자체는 의도한 대로 나온 것 같지만, 사운드 면에서 왠지 본인의 성에 차지 않는 것들이 나왔을 것 같았습니다 - 특히나 이펙터들은 소리의 날카로움과 강렬함에 많은 신경을 써야되는데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있더군요. 엔지니어링은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환경의 영향도 받을테니, 비난부터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운드알못인 본인이 이런 말해봤자...;). 저는 일단은 Idolo의 발전상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네요. 그렇기에 "비 내리는 단칸방"은 듣기에도 나쁘지 않았고,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하는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결론 짓겠습니다.



(10) twlv - K.I.S.S. (2020.1.18)


 Yng & Rich 중 아직까지 온전한 앨범이 없던 twlv도 드디어 첫 정규 앨범을 냈습니다. 이때까지의 twlv의 존재감이 제겐 워낙 애매했던 탓에 우려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앨범은 나쁘지 않게 잘 뽑힌 거 같습니다. 오토튠을 살짝 가미했기 때문에 직접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전체적으로 Chris Brown의 느낌이 많이 나는군요. 다시 생각해보면 흔한 스타일임에도, 요근래 한국 R&B 앨범에서 이런 류의 메인스트림 R&B를 들은게 오랜만이란 생각이 듭니다. 요근래 수학자, 호미들의 앨범이 사운드적으로 아쉬웠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우려되는 부분이었는데, 사운드도 꽉 차게 잘 뽑아낸 것 같습니다. The Need라는 비트메이커가 거의 전곡을 담당하였으며,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이것저것 다 해본 느낌입니다 - "California"는 비교적 나머지에 비해 튀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타이틀곡이었군요.


 앨범에서 기발하거나 획기적인 뭔가를 발견할 순 없지만, 어차피 목표하는 바가 그건 아니었을 거 같습니다. 이따금 멜로디가 애매해져서 김 새는 트랙이 사이사이 껴있던 거 같지만 중대한 실책은 아니었던 거 같고요. 신인 R&B 가수의 첫 앨범으로 적절한, 메인스트림 코드에 충실하게 내용물을 채워낸 앨범 "K.I.S.S."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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