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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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7 14:02:55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여러분 드디어 밀린 감상의 끝이 보여요! 2019년에 앨범 안 내면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다들 러쉬하더니, 1월은 숨고르기하는 것이 보이는군요.

해서 일단 계산으로는, 대략 다음 글이면 밀린 감상 전부 다 따라잡을 거 같네요!

물론 이번에는 시리즈 중단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Kidk Kidk - Kidk Kidk from th Underground (2019.12.24)


 10월에 "번쩍해"가 나왔을 때 다음 앨범을 "빈민가의 꿈 2"라고 얘기한 적 있는데, 잠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지 바뀐건지 몰라도 이 앨범이 나왔습니다. 저번 앨범과 크게 달라진 건 많지 않습니다. 오토튠의 비중이 커졌다는 차이점이 크지만 그 외에는 평소 쓰던 방법론 그대로입니다. 아, 가사가 조금 더 안정적이 되었단 인상을 받긴 했어요 - 전작처럼 억지스럽게 '부자 스웩'과 '빈민가'를 나란히 내세우진 않습니다. 이번에는 그저 밑바닥에서 온 자신의 노력 이야기를 할 뿐이죠.


 차이가 없는 건 아무래도 음악 쪽으로, 위에서 말했듯 오토튠이 가미되긴 했지만 멜로디 면에서 상당히 단조롭고 플로우가 타이트하게 짜여있기 때문에 오토튠을 가미한 효과를 많이 보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듣는 Kidk Kidk 앨범으로써, 랩이 메인인 트랙 "오래"를 들으면서 살짝 그의 거친 목소리로 전개되는 그의 랩이 전보다 더 호감으로 느껴지더군요.


 저번 앨범 감상 후기 때 가사를 특히 많이 지적했었는데, 사실 이번에 다시 그 앨범을 돌리면서 굳이 이런 장르 앨범에서 가사 얘기를 많이 했어야하나 후회(?)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적으론 아직 귀를 즐겁게 할만큼의 뭐가 있진 않아서, 인상 깊은 앨범이라고 말하긴 여전히 좀 부족하네요.



(2) SKOLOR - MATERIA (2019.1.2)


 2014년 첫 싱글을 발표한, 나름 짧지 않은 커리어를 가진 트래퍼가 되었지만 여지 없이 저는 이번 기회에 처음 듣게 되었네요. 정확히는 과거에 빡센 랩을 할 때 한두 곡 정도 들었고, 이후에 일본어를 랩에 쓰더라... 정도는 알고 있긴 했습니다. EDPD라는 크루에 속해있고, 이번 앨범은 "WTMM" "Bethere" 이후로 세 번째 앨범이며, 특이하게 최근 디지털 싱글이 안 들어가고 그전에 나왔던 "PRA" "Star Trail"이 수록되었군요.


 첫인상은 STAREX 크루 스타일의 트랩 (일명 '카와이 트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어를 쓴다는 점까지 겹쳐서 Lil 9ap이 많이 떠올랐던 거 같아요 - Lil 9ap은 싱잉 랩만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오토튠이 가미되긴 했지만 꽤 매력적인 목소리라고 생각을 했고, 멜로디 메이킹이 나쁘지 않네요. 이런 멜로디 전개 능력은 후반부의 서정적인 트랙 "Star Trail" "DRIVE" 등에서 빛을 발하는 거 같습니다 - 앞부분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아티스트와 막 차별된다는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런 노래 파트의 비중 덕분에 멜론에서의 분류가 '인디음악'까지 붙어있나 봅니다.


 첫 만남으로는 나쁘지 않은 앨범이었습니다. 다만 이쪽 장르 아티스트들이 대개 그렇듯 완벽하게 개성적이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제가 좋게 들었던 멜로디 메이킹이 본인의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그리고 늘 그렇듯, 앞으로 또 쭉 듣다보면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겠죠.



(3) Young Kay - 202020 (2020.1.3)


 아마도 20살이 된 기념으로 낸 트리플 싱글인 듯합니다.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해서 혼란스러웠던 전작과 달리 이번 스타일은 고등래퍼에서 보여준, 붐뱁 래퍼에 가까운 스타일로 만든 세 곡이 실려있습니다. 전에 보여줬던 랩 스타일이 특출난 건 아니었긴 합니다 - 대개의 고등래퍼들이 그랬지만 뭔가 트렌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텅 트위스팅에, Young Kay의 경우 너무 저음으로만 깔려있어서 깔끔함 이상의 매력을 느끼진 못 했던 거 같습니다. 이번 앨범도 그 정도의 감흥입니다만, 적어도 혼란스러웠던 저번 앨범보다는 괜찮네요. 마지막 트랙 "안아줘"는 오토튠 싱잉으로 훅을 처리했는데, 이 정도 스타일 간의 타협이라면 가장 괜찮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오디션이 끝나면 잠잠해지는 래퍼들과 달리 최근에 GI$T랑 공연도 열고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보이는데, 본인이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타협을 어떻게 이뤄낼지, 다음 작품에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4) 스카이민혁 - 사랑의 파워 (2020.1.3)


 사운드클라우드 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는 필청 아티스트처럼, 때로는 랩을 우습게 보는(?) 관종 어린이처럼, 극과 극의 반응을 받아오던 스카이민혁의 새 앨범입니다. 사실 저 두 개의 반응 중 부정적인 쪽을 더 믿어서 안 듣고 있었다가, 이번에 호기심으로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트리밍에 올린 첫 앨범일 줄 알았더니 이게 세 번째더군요. 본래도 꽤나 허슬러라고 알고 있긴 했고요.


 딱 트랙 제목들만 놓고 봐도 다가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유치하고 오글대는 색깔을 오히려 자신의 무기로 삼아 거리낌 없이 활용하는, 그런 이미지요. Takuwa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살짝 더 나아간 거 같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행복을 설파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곡 사이사이 들어가있는 주접에 가까운 애드립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여기에 밝은 분위기로 지극히 가볍고 단순하게 만들어진 비트들까지 합치면 마치 캠페인 송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과거 음악 몇 곡을 들어봤을 때 미친듯이 질러대는 노래들이 몇 개 있었는데 우선 그런 부분은 힘을 조절한 거 같고, 지르는 걸로 불편한 일은 다행히 없습니다. 트랙 중 "레디-액션"은 상당히 특이한데, 붐뱁의 양식에 맞춰 찍은 비트를 자기 식대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카와이 트랩 류의 뮤지션들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스카이민혁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습니다. 그게 음악적인 것보다 태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특이하네요. 앨범 소개글처럼 그는 수퍼히어로에 가까운 캐릭터 설정으로, 앨범 내내 흔들림 없는 행복에 관한 이론을 얘기하며, 분명 이런 긍정적인 그림은 아마 전세계 힙합을 뒤져도 흔치 않을 것이긴 합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힙합의 매력으로 이 곡들을 접근하는 건 무리입니다. 리듬감은 커녕 때로는 박자도 무시하고 지멋대로 폭주하기 일수이고, 제 취향에 비춰볼 때 오글거림이 위험 수준에 달해있기 때문이죠. 허나, 스카이민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쨌든 캐릭터로 승부 보는게 요즘의 씬이라면, 음악적으로는 어정쩡해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인상을 남기는 건 큰 강점일테니까요.



(5) FR:EDEN - 소설: 후폭풍 (2019.12.28)


 FR:EDEN이라는 이름을 추천으로, 또는 피쳐링으로 보았던 건 꽤 된 거 같지만, 다른 여러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이번 새 앨범이 나온 계기로 제대로 처음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듣기 전에 찾아본 정보로는 2017년 경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을 키워가기 시작했고, 과거엔 "Young & Gift"라는 크루도 있었지만 지금은 따로 없는 거 같기도 하군요. R&B 보컬이라고 생각하고 찾아 들었는데, 재밌게도 처음엔 '힙합 루키'로 설명되었더군요.


 요즘에 누가 안 그러겠냐마는, '힙합 루키'로 설명되었다는 건 FR:EDEN을 R&B에 국한해서 듣는 건 위험하단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단위 작업물로는 전작인 "The OF Course"만 들어봐도 랩과 보컬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으며, R&B 씬의 흐름이 그렇지만 노래의 기교보다는 '플로우' 디자인에 좀 더 치중했단 느낌입니다. 그래서 FR:EDEN의 노래는 담백하고 편안합니다. 중간중간 엉뚱하게도 래퍼인 Coogie의 목소리가 저에겐 겹치기도 했으니까요.


 "소설: 후폭풍"은 이별 전후로 남자가 겪는 일들과 감정 변화를 순서대로 그려낸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앨범의 처음을 여는 "혹시 니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의 너무나도 일상적인 단어 선택에 잠시 당황을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상당히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 사실 이게 장점이라기보단 때문에 표현들이 진부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허나 마지막 "니가 이겼어"에 이르러 확 무거워지는 무게는 느낌 있는 반전으로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워낙 멜로디 메이킹이 친근하게 잘 되어있어서 들으면서 그루브를 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비슷한 계열이랄 수 있는 Jeebanoff에 비해서 좀 더 몰입하기 쉽다고 생각했어요. 이는 FR:EDEN의 몫도 있지만 저번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전곡 프로듀싱을 맡은 OPO의 공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스타일에서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밴드 사운드가 큰 비중으로 쓰였기에 언니네 이발관이나 Peppertones 같은 인디 락의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라임 플레이가 있지만 랩은 이번에 빠졌는데, 나쁜 결정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랩을 못하는 건 아니더라도 저는 FR:EDEN은 보컬로 듣고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진성 R&B 팬보다는 신선한 느낌을 찾는 가요나 인디 밴드 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앨범이었습니다. 뭐가 됐든 앞으로 FR:EDEN의 이름을 다른 앨범에서 본다면 좀 더 집중해서 듣게 될 거 같네요.



(6) GEMma - DODO FUNK! (2019.12.27)


 싱잉 랩의 등장으로 힙합 장르의 경계는 한 번 무너졌으며, 여기에 이모 힙합이란 장르가 생기면서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애초부터 락에서 유래했던 이 장르는 10년 전만 해도 '좋은 랩 음악'에서 상상할 수 없던 거의 모든 것 - 불분명한 발음과 가사, 약한 발성, 희미한 드럼 라인 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그 안에서 또 나름의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일반화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지나 결국 랩이 없는 Post Malone 앨범이 베스트 랩에 선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GEMma의 이번 앨범은 규모가 훨씬 작지만 그 장르 파괴의 현장을 제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듣고 락 앨범이 아니냐고 합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의 분류도 분명히 락으로 되어있죠. 어째서 한국 힙합으로 보고 얘기해야하는지 근거를 들기 쉽지 않지만, 과한 오토튠과 찢어지는 발성은 어쨌든 Jvcki Wai 이후로 내려오는 이모 힙합의 한 시류와 닿아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봐도 영어 비중이 높고 우울하면서 툭툭 끊어지는, 이 장르에서 흔하게 보는 스타일의 가사입니다. 하여, 락 사운드라는 건 가장 당황스러운 요소이면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를 걷어내면 차별점을 두기 어려울 수 있었을테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락 사운드라는 것의 핵심은 강렬한 일렉 기타가 아니라 드럼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축 늘어진 이모 힙합과는 달리 곡들을 꽉 채우고 내달리는 드럼 라인은 임팩트가 다릅니다. 여기에 밀리지 않는 목소리와 중독적인 멜로디 라인은 분명 GEMma의 재능입니다. 마지막 두 곡 정도를 제외하곤 전부 이렇게 센 곡이다보니 들으면서 쉽게 질리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포인트는, 오토튠 싱잉이 제공하기 힘든 시원시원함이 시원한 락 사운드에서 빠져있어서 오는 괴리감인 거 같습니다. 반응들에 Avril Lavigne, Liz Phair 같은 여성 락커들이 언급되곤 하지만 어쨌든 GEMma는 가창력이 대단했던 건 아니니까요. 이게 한국 힙합에 한 발을 두고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태까지 락과 접목한 곡을 낸 경우야 많았지만 아예 방향성을 이렇게 잡은 건 신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전에 냈던 싱글들이 평범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꽤나 도전이었을테죠. 참고로 이런 사운드를 프로듀싱한 비트메이커는 Hoshi와 hyeminsong 둘로 되어있는데, hyeminsong도 본인 앨범에선 전혀 이런 색이 아니었었기에 놀라웠습니다. 암튼, GEMma의 어린 나이를 고려해보면 많은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번 앨범이 그저 한 번의 독특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향후 방향에 대해 연구가 많이 따라야할 겁니다. 락 사운드를 걷어내도 GEMma만의 매력이 있을지, 혹은 락 사운드와 더 어울리는 자신을 만들 수 있을지.



(7) Nafla - u n u part.1 (2020.1.6)


 일단 이 앨범은 듣기 전부터 우려가 컸습니다. 선공개로 나온 "슬픈 노래만 들어" "러브미"가 다름 아닌 노래였기에 (이때문에 세 번째 선공개인 "멀로"를 안 들었더라는;) 뜬금 없이 Heize 같은 노선을 타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죠 - "been"이 수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 "u n u"는, 그런 사전 정보가 없던 사람들에겐 여전히 큰 당황을 야기할 것입니다. 하드코어한 붐뱁 래퍼 이미지를 굳힌 Nafla가 8곡 내내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만 하다니! 게다가 뒤의 세 곡은 싱잉 랩이 아니라 그냥 노래라고 해야할만한 곡들입니다. 어떤 심경에서 이런 앨범이 나왔는지 심히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이런 충격을 극복 후 앨범을 들어보면 그래도 Nafla는 Nafla라고 할만한 부분들은 있습니다. 전반부 랩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파트에서 Nafla의 랩은, 부드러워졌을지언정 평소의 쫄깃한 그루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Been"이 처음 나왔을 때도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 이외에 여전히 Nafla다운 면모가 섞여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앨범도 그런 것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무리 없이 감상 가능합니다.


 문제(?)는 랩을 거의 버리는 후반부인데, 이건 여태까지 보여준 적이 거의 없는 모습이니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죠. 저는 여전히 의외의 매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반부 노래 파트에서는 어색하나마 약간 랩의 쿠세가 섞여있었다면 후반부는 이마저도 완전히 버리고 가냘프게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릅니다. 워낙 가느다란 목소리이기 때문에 몰입하기엔 약하다 느껴질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울적함을 자아내는데는 참 적절하다 느꼈습니다. 의외로, 중간중간 감미로운 떨림도 있어요. 이 모든 것이 기존 래퍼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상당히 특이한 청각적 경험이 되고, 좀 웃기지만 '요즘 무슨 있길래 이런 노래를 부르나'하면서 오히려 더 감정 이입이 되는 것도 같더군요ㅎㅎ


 Nafla의 소프트한 면을 드러내고자 하는게 목표였다면 그 목표에 매우 충실하고 준수하게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즐겁게 듣는데 가장 큰 벽은 평소 Nafla의 모습 뿐일 거 같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한 명의 보컬로 그를 인정해야하는데 여기서는 의견이 좀 갈릴 거 같군요. 제가 좋게 들었던 건 어쩌면 이렇게 노래하는게 이벤트성일 거란 믿음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u n u"는 정규 앨범으로 기획되었다고 들었는데, 앨범의 절반을 이런 모습으로 채웠다면 part 2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잘 안 가는군요 - 완전히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일까요? 2가 나왔을 때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8) MILLHAM - 3DWRLD (2020.1.6)


 MILLHAM은 STAREX 크루 소속 멤버로, 활동이 비교적 많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작년 7월에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이미 공개되었던 믹스테입에 "U=U" (역시 사클로 먼저 올라왔던 곡)를 추가하고 자켓을 바꿔 낸 앨범으로,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처음 올라가는 작업물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슬슬, STAREX 크루라는 말을 듣자마자 예상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STAREX의 아티스트들은 서로가 조금씩 차이가 있고, 앨범 단위로 따져봐도 거의 대부분 그 예상에서 살짝살짝씩 빗겨나가있죠 ('그 예상'을 만든 Futuristic Swaver 정도만 적중한달까?). MILLHAM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랩을 베이스로한 거야 똑같지만 이쪽은 이모 힙합이라고 불리는 이미지에 제일 들어맞는 쪽 같습니다. 나머지 STAREX 멤버들과 차별점을 만드는 가장 큰 포인트는 전곡 비트를 만들어준 Dayrick의 비트 같군요. 기타 스트링을 비중 있게 사용한 비트가 흔히 쓰이던 신스 위주의 비트랑 다른 울림을 전달합니다 (뻔한 드럼 라인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MILLHAM의 랩에서 차이를 찾자면, 조금 더 느긋하게 박자를 탄다는 점 정도? 대개는 타이트하게 마디를 메꾸었는데 이쪽은 천천히 힘을 빼고 플로우를 타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크게 보면 머리 속에 그린 그림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식 이모 힙합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벌스와 훅이 구분 가지 않을 정도의 반복적인 가사와 플로우 패턴, 단조로운 멜로디, 부주의한(?) 박자와 발음 등의 클리셰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게 마지막으로 추가된 트랙인 "U=U"는 확실히 좀 다릅니다. 목소리가 살짝 더 선명하고 멜로디의 폭도 더 넓어졌어요. 그래서 앨범이 더 아쉬운 면도 있지만... 모르겠네요 좀 더 나중에 나왔다면 다른 그림이 되었을까요?


 첫 트랙을 들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다른 감성을 전해줄까 싶었지만, 결국엔 개성을 집어내기 쉽지 않은 아티스트였습니다 - 들으면서 오랜만에 WONJAEWONJAE가 생각났네요 우선. 또 나오는 앨범을 듣다보면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려면 일단 작업물이 많이 나와야할 거 같네요.



(9) Dbo - 3 (2020.1.7)


 앨범 단위로는 단 4개월만에 새로운 작품인 "3"는 이번에는 믹스테입이라는 분류 하에 발표되었습니다. 그걸 인식해서인지, "3"는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감상 후기 중 Dbo가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해본 거 같다는 얘기가 있었고 어떤 얘기인지는 이해합니다 - 트랙마다 조금씩 스타일이 다르고, 특히 "Giant Snake Head"나 "I Need a Bad Girl"에 나오는 톤 체인지는 Dbo의 음악에서 잘 못 보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입 비트 느낌이 많이 나는 미니멀한 트랩 비트에, 평소 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랩을 풀어놨기 때문에 그런 시도가 엄청 임팩트 있게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히 Dbo는 Dbo였고, 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이나마 그의 기괴한 박자 센스와 기묘한 가사를 즐기게 되었지만, 비트의 어시스트 없이 즐기기엔 조금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 인상적으로 들었던 "Sticky Wire"와 비교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사운드도 좀 조용하게 믹싱된 거 같고요. '실험'이라는 감상평을 이해하지만, Dbo가 막 실험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저, 요근래 어떤 작품보다도 부담을 버리고 하고 싶은 걸 막 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믹스테입인 거 아니겠습니까.



(10) Quadro - [ DRAWTHAT ] (2019.11.6)


 갑자기 옛날 앨범을 꺼내든 이유는 누군가의 추천 때문입니다. 늘 그렇듯, Quadro란 래퍼를 듣게 된 건 (아니,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우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확인되는 첫 기록은 2016년이군요. HighSoul Music이란 크루의 리더로, J.sel과 "C!KLO", 그리고 KeYgeN과 "diveVision"이란 팀 활동도 겸하여 한 장의 EP와 다수의 싱글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diveVision"의 경우는 프로듀싱 팀으로 그가 비트메이킹도 맡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데, 전곡을 프로듀싱했던 전작 "seoulites"만큼은 아니라도 Quadro의 첫 정규인 이 앨범에도 두어 트랙 정도는 자신의 비트가 들어가있습니다. 


 이 앨범을 추천한 분은 제게 "[ DRAWTHAT ]"을 '아티스트로써 건강한 느낌이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 아마도 무리한 기믹을 갖지 않고 깔끔하게 음악을 만들었단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Quadro의 음악은 깔끔합니다. 그전 EP인 "seoulite"에서도 그는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소재로 담담하면서도 또렷하게 얘기를 풀어냈고, 이는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 전개가 명료하고 딜리버리가 상당히 깨끗해서 가사를 굳이 보지 않아도 내용이 잘 전달된단 점이 이 부분과 좋은 시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전작과 이번 앨범 사이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오토튠 싱잉을 시도해왔고, 이는 이번 앨범을 전작에 비해 다채로운 색을 갖게 하는데 공헌했습니다. 멜로디 메이킹 역시 편히 듣기 좋게 잘 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들은 래퍼 중 Rudie Miller가 떠오르더군요. 흠 잡을데 없는 깔끔한, 그러나 기억에 오래 남기엔 2퍼센트 부족한. "Nothing" "자국"까지만 해도 보이던 순수한 패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힘준 트랙인 "Troubles"부터 바래기 시작합니다. 이는 그가 쓰는 랩 디자인이 무난한 수준의 스킬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기"를 기점으로 접어드는 후반부는 이 문제가 제일 심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ㅡ 피아노 연주를 베이스로 전개되는 "흉" "Flower" 구간은 사실 평범한 '발라드 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트랙 "초승달 Remix"가 그나마 처음에 보여줬던 프레쉬함을 어느정도 살려놓고 끝을 맺는듯 합니다. 더 사소하게 트집을 잡자면, 저는 "자국"에서 Quadro의 벌스가 플로우를 몰입도 있게 짜는 능력의 한계라 여겼으며, 스토리라인의 진행감에 초점을 뒀다는 것이 무색하게 흐름이 좀 러프하게 느껴졌단 점 정도가 있겠습니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제 생각에 "모닝"은 첫트랙으로 끌어내는게 제일 덜 튀지 않았을까 하네요).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수퍼비가 다수의 참가자한테 '스타일이 좋고 큰 단점은 없는데 이걸로 성공하려면 세상에서 제일 잘해야한다'는 평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너무 기믹, 캐릭터를 강조하는 것 같아 완전히 동의는 못 했지만 불행히도 "[ DRAWTHAT ]"은 그 평가가 잘 부합하는 케이스 같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좋다고 할, 그러나 더 찾아듣게 할 힘은 약한 음악. 씬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너무나도 많은 뮤지션들이 그 단계에 머물러있습니다 ㅡ 아마도 제일 넘기 힘든 문턱이 아닌가 싶습니다. Quadro가 그 단계를 넘을 프레쉬함을 찾을 수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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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0-01-17 21:17:11

 잘봤습니다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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