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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MIC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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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19:15:38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번 시리즈에는, 김미정 앨범과 GEMma 앨범에 관한 후기는 안 쓰기로 했습니다.

그냥 들으면서 영 힙합은 아닌 거 같아서... 뭐 그럭저럭 듣긴 했습니다만~

(리얼 힙합에 대한 논쟁을 부추기려는 건 아닙니다ㅋㅋ)

 

그리고 드디어 2020년 앨범이 등장하였습니다! 

아직 2019년 것 좀 남아있긴 하지만 여튼 리스트에 추가하던 순서로는 처음으로 2020년 것이네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lil asian*+ - H E L L* (2019.12.21)


 힙합엘이 게시판 죽돌이로써, 음악보다 특이한 어그로 전략이 더 기억에 남았던 뮤지션입니다. pierre bourne과 작업했다든지, 24hrs가 앨범에 참여할 예정이라든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소식들을 정말 아기자기(?)한 말투로 써서 올리던 분이었죠 - 이런 류의 캐릭터의 공통적 특징인 자유로운 반말까지.. 뭐 암튼. 그 앨범이 나오긴 했습니다. 24hrs가 진짜 참여하긴 했네요.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Jiho Givenchy의 앨범입니다. 일정한 틀 없이, 전곡 프리스타일 같은 자유 분방한 느낌에 거침 없이 질러대는 톤과 가사와 멈블 트랩 풍의 비트가 그렇습니다. 다만 Jiho Givenchy랑 직접 비교한다면 그쪽은 약간 멜로디컬한 비트도 있었던데 반해, 이 앨범은 정말 독하기만 합니다 - 특히 IMonthebeat란 비트메이커의 비트는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베이스만 때려대는 수준. 조금 더 얘기를 확장하자면 이것이 노래가 맞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Bill Stax의 벌스와 Viann의 비트가 약간의 듣는 의의를 더해줍니다 (24hrs 벌스는 개인적으론 감흥이 없었어서...).


 취향 탓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음악들이 참 많기야 하지만, 이번 앨범은 두 번 돌리기 꺼려질 정도로 저와는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HELL"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얼추 성공한 것도 같군요. 저에게는 아무런 목적 없는 소음과 욕설이 난잡하게 섞인 덩어리 같습니다. 때로는 제가 트랩 매니아가 아니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앨범을 안타까워하기도 하는데, 이번 앨범은 그냥 이렇게 헤어지고 싶네요.



(2) Norovein & ZZANG GU - 출소자들 (2019.12.25)


 만약 Norovein의 이전 앨범을 들었다면, "출소자들"이 어떤 앨범인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마도 사실이라고 믿겨지는) 둘의 소년원/구치소 경력을 토대로 풀어나가는, 때로는 갱스터스럽고 때로는 웃긴 이야기들 정도로 앨범을 소개할 수 있겠죠. 이는 이전 앨범에서도 보였던 소스이고요. ZZANG GU라는 래퍼가 더해졌지만 사실 앨범을 들으면서 둘을 구분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앨범의 메인 곡들은 지극히 단순화되어있고, 후렴이 벌스와 맞먹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반복적인 구성입니다. Norovein을 '수퍼비의 랩학원'으로 안 사람은 그를 '거친 매력'으로 기억할 수 있을텐데, 곡들이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이런 건 느끼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개성이랄 수 있는 가사는 유머러스하기보단 유치한 경우가 많고, 한 부분에선 과거를 뉘우치다 갑자기 부자 스웩을 부리고 다음 순간 상대방을 패려고 하는 등, 클리셰적인 표현만 갖다붙였을뿐 흐름이라는 것이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Uneducated Kid와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특징적인 기믹을 잡았지만 그만큼 위트 있는 사운드를 끌어내지 못하다보니, 금방 질려버리고 자신도 그 기믹 (이 얘기에서는 기믹이 아닌 진실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안에 갇혀버리는 겁니다. 보너스 트랙을 들어보면 여전히 한계가 느껴질지언정 적어도 할 수 있는게 더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 왜 이런 것들을 메인 파트에는 쓰지 않았을까요? 메인 파트를 듣는 내내 청각적인 임팩트에 목이 말라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좋게 평가됐던 부분들이 이건 아니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다음에 Norovein의 이름을 보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편견 속에 듣게 될 거 같네요.



(3) Ja Mezz - The Pink Album (2019.12.27)


 "The Pink Album"은 '사랑과 감사',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goodevil"이나 Money Mezz를 예상했던 사람이라면 당황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Ja Mezz는 부모, 가족, 친구, 심지어 환경에까지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이에 맞추어 비트는 무척 가볍고 밝아져서, 예전에 비해선 심심한 느낌이 납니다. 랩도 가벼워졌죠. 모든 곡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작사를 해서 ("goodevil"의 정반대랄까요) 일부 곡은 동요 같은 느낌도 납니다 - 특히 "우와"는 제 딸래미 (참고: 19개월)에게 들려줘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럼에도 유니크한 느낌을 더해주는 건 Ja Mezz 특유의 허스키한 톤입니다. 예로부터 심심하게 랩을 해도 느낌 있게 곡을 뽑는데는 그의 톤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면 구성이 단순하진 않으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첫째로 저는 (개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 음악 스타일이 몰입도가 약하기 때문에 곡 수를 줄이는게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Mama"와 "Santa"는 같은 부모님에 관한 곡이라 할 수 있고, "steve jobs freestyle" 같은 곡이 있어야했는가도 의문입니다. 특히 이 앨범은 아웃트로 파트가 지나치게 긴 감이 있습니다. "MMM (Blessed)"가 첫째로 '감사 파트'를 마무리한 후, "혼잣말"이 다시 한 번 감상을 정리하는데, 그 후의 두 트랙 (특히 "자"는...)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어렵더군요. 굳이 더 흠을 잡자면 "09년 왕십리"는 전체 구성에서 중앙에 단독으로 위치하기엔 너무 튀는 감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뭐가 됐든 메세지에 집중한 앨범으로 받아들이고 감상을 여기 맞추면 그 맛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연말에 나온 따뜻한 앨범이란 표현이 잘 맞긴 합니다. 그저 이런 걸 빼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밋밋한 앨범이라 자주 듣지는 않을 거 같았습니다 - 예컨대, 말 그대로 연말의 따스함을 원치 않는 시기에는 그리 생각나지는 않을 거 같군요. Ja Mezz가 앨범을 허투루 생각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지는 않고, 결국 이번의 의도가 저에게 한 번 어긋난 것이겠죠. 정규마다 워낙 다른 모습을 보여왔기에, 이것으로 그에게 실망하기에도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저 편하게 그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습니다.



(4) IMJMWDP - Cumpilation (2019.12.29)


 스윙스 사단의 컴필레이션은 첫 앨범을 제외하곤 늘 퀄리티에 대해 격한 논란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파급효과"가 워낙 거대한 앨범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컴필레이션을 비교적 무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파급효과"를 굳이 뛰어넘으려는 부담을 갖지 않고 즐기듯이 만든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소지가 다분할 겁니다. 송캠프 과정까지 일부 공개되었던 "Cumpilation"은 그런 느낌이 제일 뚜렷합니다.


 결국 이전 앨범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레이블 내외의 참여진들이 섞여 조금 잡다한 느낌이 들었던 "SERIES"보다는 깔끔하고, "IM"과 비슷하면서 부담을 더욱 덜어낸 느낌입니다. 이는 이번에 sAewoo가 메인 프로듀서로써 중심을 잘 잡아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앨범은 IMJMWDP로 나왔지만, 앨범에서 비중 면으로나 퍼포먼스 면으로나 제일 주목되는 건 WDP 멤버들입니다. sAewoo의 비트는 진부한듯 신선하고 힘이 있으며,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도 빠지지 않습니다. YUNHWAY도 랩과 보컬 둘 다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Jhnovr에 대한 말이 좀 있지만 저는 이런 분명한 보컬 선을 추가하여 다른 컴필과 차별화시키는 공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다듬을 여지는 있긴 합니다). 무엇보다 Lil Tachi의 스타일과 텐션이 흥미롭습니다. Playboi Carti를 연상시키는 단순한 플로우와 독특한 톤이 단순한 멍청트랩으로 소비되지 않은 까닭은 역시 탄탄한 프로덕션입니다.


 곡들이 평균적으로 일정 수준에 닿아있고, 특별하게 튀는 곡 없이 잘 정리되어있습니다. 누군가는 유기성을 언급하였는데, 저는 컴필레이션에서 이 정도면 가져야하는 유기성은 다 가졌다고 봅니다. 게다가 송캠프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업들이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데가 있었을 거란 걸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 결국 팬심에서, 참여진과 앨범 볼륨 등에서 나옵니다. 탈퇴 멤버들이 아쉽단 얘기야 의미 없으니 언급 안 하지만, 기존 멤버인 기리보이, 노창, C Jamm이 빠졌고 (생각해보니 이 셋이 섞였으면 색깔이 엄청 달라졌을 거 같긴 합니다), Kid Milli와 Justhis의 존재감이 너무 희박합니다. 전성기(?)보다는 크기가 줄었지만 그래도 세 개의 레이블이 뭉친 건데 8트랙으로 끝내는 게 정말 맞는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비중이 적지만 역시 존재감을 남기고간 Blacknut과, 아직 음악하는구나 확인시켜준 Osshun Gum과 Goretexx는 반갑네요.


 예상했던 것보단 작은 크기의 컴필레이션입니다. 이걸로 뭔가 이루기보다는, 멤버들의 중간 체크 (특히 상대적으로 노출도가 적은 WDP)라는 느낌이 더 강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하게 건진 멤버는 Lil Tachi 뿐이었던 거 같고, 나머지는 이미 아는 모습에서 생존 신고를 한 정도. 크기가 아쉽지만 퀄리티 면에선 딱히 불만인 건 없어서 이번 앨범은 이 정도 감상으로 적당할 거 같습니다.



(5) hyeminsong - CATHARSIS (2019.12.26)


 흔치 않은 여성 비트메이커라는 포지션과, 사전 정보가 없음에도 피쳐링은 물론 앨범 소개글까지 Dickids(는 사라졌지만 여튼) 멤버들이 지원 사격을 나선 부분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앨범 "CATHARSIS"입니다. 소개글을 적은 bumby는 hyeminsong을 잘 하기보다 다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먼저 보고 뭔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담긴 앨범을 예상하고 듣기 시작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견 이 앨범은 '한국형 이모 트랩' 앨범의 패턴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재밌는 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제 귀의 기준으로 그러한 예는 "Next Stop"의 순간적인 드럼 필인, "흰 길"의 카우벨(...여튼 종소리) 소리나 좌우로 바뀌면서 난리를 피우는 하이햇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디테일과 악기에 걸린 각종 이펙트들은 인스트루멘털에 공간감과 미묘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름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는 건 아니긴 합니다. 사운드알못으로써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럼 부분이 너무 빈약하게 느껴지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 악기는 아기자기한데 드럼 소리에 집중이 되면 김이 도로 빠지는 느낌. 한편으로 피쳐링진들 간의 차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이는 어쩌면 hyeminsong의 비트가 실은 비슷비슷했다는 걸 의미할지 모르겠군요. 실제로, 처음 두어 번 돌릴 때는 8번 트랙 "야반도주" 쯤에 이르러 앨범이 적당히 끝나야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는데, 이게 서서히 앨범에 물리고 있다는 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은 나머지 트랙의 분위기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데서 상당히 특이한데, 뭐 저는 유쾌한 농담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군요 - 앨범 소개글에 적힌 트랙별 소개가 얼추 힌트를 제공하긴 합니다만...


 늘 핑계로 삼지만 제 취향과 편견으로 캐치 못한 매력이 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한국형 이모 트랩'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hyeminsong의 앨범을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특히 '자세히 보아야 예쁜' 앨범이라는 점이 듣는 경험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PS 이 앨범 후에 접한 GEMma 앨범 크레딧에도 이름을 올렸던데, 이런 락큰롤도 하는구나 하고 신기하더라고요.



(6) Jay Greenn - greennvinyl (2019.12.27)


 또 한 번 연이 닿아 처음으로 들어보게 된 래퍼 Jay Greenn입니다. "미안해" 가사에 따르면 음악을 한지 8년차라고 하는데, 그의 첫 활동은 2014년 믹스테입부터 확인이 됩니다. "Jay Young"이란 이름으로 두 장의 믹스테입을, 이름을 바꾸고 낸 믹스테입만도 다섯 장일 정도로 꽤 부지런하게 지냈으며, 이번 앨범은 음원 사이트에 등록된 첫 앨범 단위 작업물입니다. 그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ODD, 2DATYPE, SOD 등 다양한 단체가 나오지만 우선 현재는 'seeherwave'라는 크루에 속해있는 거 같군요.


 앨범을 틀면 여유롭고 따사로운 분위기의 비트 위 느긋하게 늘어지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Jay Greene의 랩이 시작됩니다. 친근한 대화 톤으로 던지는 랩과 노래는 얼핏 pH-1을 연상시키는데, 앨범의 색깔은 Crucial Star를 언급하는게 더 가까울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무척이나 포근함이 강조된 앨범입니다. 아예 노래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반주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멜로디는 이 앨범의 큰 미덕입니다. 여기에 생활 밀착형으로, 오밀조밀한 묘사와 의외로 탄탄하게 배치된 라임들이 가사에 무척 공을 들였겠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단점을 찾는다면 이 스타일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특징들을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긋한 랩 스타일은 살짝 새는 발음과 부정확한 박자를 야기하고 사람에 따라선 곡의 깔끔함을 해치는 요소로 인지될 수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랩 스킬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보니, 어느 정도 박자에 변화를 두었더라도 따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노래가 그 사이사이 분위기 환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구체적인 예를 들면, 3번 트랙 "미안해"는 싱잉 랩과 노래가 반반씩 섞인 후렴으로 시작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곡을 시작하는 랩이 나올 때 약간 물리는 느낌이 나다가 (이는 1번 트랙이 5분에 가까운 길이로 호흡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래가 나오면서 그 지루함이 해소되는 걸 느꼈습니다. 또 4번 트랙 "자유로"는 노래 후렴도 싱잉 랩의 발성을 사용하여 불렀는데, 때문에 제게는 제일 감흥이 덜한 곡이 되었군요. 조금 더 랩에 집중된 "이 파도가 지나가면"을 제외하면 곡에서 랩의 존재감이 덜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문제점인 거 같습니다.


 트랩이나 기타 강렬한 걸 선호하는 분이라면 졸린 음악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다분하겠지만 저는 그게 포근함의 다른 이름이라고 반론하고 싶네요.또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가사 때문에, "이 파도가 지나가면" 즈음에 도달해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좋았습니다. 이 곡은 계속 나아가자는 용기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의 인스타를 보면 이것이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뮤지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책하기엔 저도 너무 늦게 이름을 알아버렸군요. 그저 후회 없는 결정과 행복한 앞날이 있길 기원할 따름입니다.


PS CD only 트랙으로 "율무"가 존재하는데 저는 스트리밍으로 들어서 못 들어봤습니다. 이 트랙은 조금 걱정되는게 인스타의 앨범 프리뷰에 잠깐 공개된 걸 들어보면 뭔가 불협화음스러워서 당황..;


PS2 유튜브에 greennvinyl을 쳐보면 Jay Greenn이 앨범을 내기 전 만든 셀프 다큐가 있습니다. 여기에 적은 정보는 대부분 거기서 얻었으며, 그를 알고 싶은 분들은 시청해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7) 원쨩 - 종합+병원 (2019.12.30)


 원쨩은 본래 "Happymil O5o" (해피밀 오우어)라는 이름으로 2019년 5월 첫 싱글을 발표했던 뮤지션입니다. 사실 저는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지만, 여성 트래퍼라는 것에 더해 오타쿠 이미지를 차용한 특이한 느낌으로 은근 장르 매니아들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던 것 같군요. 최근 그녀는 LBNC에 합류하면서 이름을 바꿨고, "위하여" 컴필레이션에 곡 하나를 수록한 데에 이어 새 EP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녀의 첫 싱글 '먹잠누티', 즉 '먹고 자고 눕고 티비 보는' 생활에 관한 얘기는 첫 트랙에도 언급이 되면서 이 앨범에도 일부 계승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정신에 걸맞게, 앨범 트랙들은 몹시 즉흥적이고 느긋하게 만들어진 듯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쓰자면, 생각 없이 만들어진 모양새입니다. 제목을 재활용하는 후렴을 제외하자면 벌스의 존재감이 매우 미약하며 발성도 약해서 대부분의 목소리를 오토튠에서 빌려쓰고 있습니다. 멜로디 라인이 한정적이기도 하거니와 맨뒤 두 트랙은 반주와 불협화음마저 일으키는 듯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6트랙 중 4트랙이 Errday Jinju 프로듀싱이며, 5번 트랙의 2절이 그라는 사실이 조금 믿기 어려웠습니다.


 간간히 Jvcki Wai 같다는 평을 보았는데, 저는 동의하진 않습니다 - Jvcki Wai 느낌을 받기엔 너무 임팩트가 없어요. 원쨩 이전에도 오타쿠 이미지를 차용한 경우는 간간히 있어왔는데, 이들도 하나의 장르 (결국 '카와이 트랩'에 근간을 둔)를 점점 만들어가는 듯한 한편, 서로의 차별점을 만드는데 소홀한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트랩을 만들었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결국 캐릭터에 음악이 먹힌 또 하나의 케이스라는 우려가 드는군요. 뭐 장르 팬들과 차붐이 발견한 - 그리고 제가 보지 못하는 - 매력이 있으리라 믿고, 앞으로 어떤 발전상을 보일지 기다려보겠습니다.



(8) Simahoy - Pop Talk (2019.12.30)


 한국 트랩 씬에서 은근한 존재감을 갖고 있던 Simahoy의 첫 믹스테입입니다 - 2014년 Bad Joyscoutt로 처음 이름을 보았으니, 누구의 말마따나 활동 경력이 꽤 있는데 믹스테입이 처음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요. 그나저나 Lil Kpopp이라고 이름을 바꿨던 거 같은데 이젠 안 쓰는건지 아니면 aka인지 모르겠습니다 - 사실 앨범 제목도 "Pop Talk"고, 가사 중간중간 KPOP이라고 등장하는 걸 봐선 완전히 이름을 버리진 않은 거 같기도.


 좋은 트랩, 나쁜 트랩 얘기를 떠나서 "Pop Talk"는 Simahoy의 작품 중 제일 난해한 앨범이라고 느껴집니다 (물론 제가 Simahoy를 잘 듣지는 않았긴 하지만...). 당장 작년 EP "Bluelight"도 그전의 활동보다 조금 더 약기운 가득한 늘어지고 몽환적인 기운이 있었는데, 이번 "Pop Talk"는 두 단계쯤 더 나아갔습니다. 랩이 조금 있지만 전체적으로 오토튠의 비중이 늘었고 몽환적인 기운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드러나는 면모 중 제일 인상적인 건 박자 무시를 하고 자기 템포로 달리는 랩 - 그리고 여기에 어울려주는 비트입니다. 뚜렷한 후렴-벌스의 구조가 없고, 싱잉과 랩이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며, 비트도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구조는 최근 그냥노창의 "춤추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 같은 선상에 놓기엔 너무 다른 스타일이지만 전반의 무질서함이 뒤로 가면서 차분하게 정돈되는 구조도 그렇습니다.


 듣기엔 매우 불편한 앨범이나 다양한 모습이 담긴 것은 좀 더 재밌는 들을 거리인 듯합니다. 가사적으로도 성공, 돈, 차의 클리셰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마냥 생각 없이 쓰인 표현들은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곡은 "Rich OD"였는데, The Quiett의 정형화된 랩과 주고 받는 기묘한 조합이 좀 기억에 남았던 거 같습니다.


 이렇듯 '멍청트랩'으로 분류하기 좋은 클라우드 랩 장르에 여러 실험적으로 보이는 시도를 섞은 건 좋지만, 때문에 리스너들이 겪을 괴리감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 같긴 합니다.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듣기에도, 하면서 듣기에도 좀 어정쩡한 면이 있는 거죠. 물론 저 같은 붐뱁충은 운명적인 거리감이 있으니 별개이지만... 그래서 은근히 Simahoy의 음악들을 많이 들었던 이들도 이런 불편감을 호소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뭐, 저는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모르지만 이런 다양한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앨범을 들으면서 같이 찾아내 들었던 "Bluelight" EP가 더 즐기기 편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9) mndst8 - mndst8 0.0 (2019.12.30)


 개인적으로 '작년의 발견' 중 하나였던 truz의 소속 크루 mndst8가 컴필레이션을 발표했습니다. Fridayy, QLLE, truz의 비트 위에 네 명의 래퍼 Dante, truz, colethewaves, J6가 참여했으며, 이 래퍼들이 13개의 트랙에 경쟁적으로 참여했단 인상이 강하게 전해집니다. truz의 "365PRDS"도 그랬듯 진한 붐뱁 스타일을 차용하여 각자의 스킬을 뽐내고 있으며, 요즘의 트렌드랄 수 있는 트랩 스타일을 패러디한 마지막 트랙 "liltypebeat cypher"로 스탠스를 강화하며 앨범을 마무리 짓습니다. 


 실로 젊음의 열정과 패기가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이미 첫 신고식을 잘 끝낸 truz 말고 세 멤버도 붐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나름 나쁘지 않은 발성과 라임을 선보이면서 곡을 꽉 채웁니다. 가사 역시 공을 들여 적은 티가 나고요. J6의 발음이 좀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잘 살리면 개성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제가 truz의 앨범에 심취해있다가 들어서인지 기대만큼 앨범을 즐기지는 못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피로도입니다. 각 참여진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땜핑을 보여주고자 거침 없는 플로우로 곡을 꽉꽉 메우고 있고, 이는 "365PRDS"에서도 느껴졌던 '귀의 피로'를 더욱 배가시킵니다 -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truz를 빼고는 비슷한 목소리일 뿐더러 (구분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플로우 패턴이 거의 모두가 같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대부분의 곡은 간주는 물론 전주나 후주도 없이 그야말로 랩으로 꽉꽉 메워져있습니다. 이 '먹통'의 느낌 안에 "Life's Ride"나 "Jane Dough"의 'la la la la' '오 오 오' (참고로 가리온 "약속의 장소" 오마주) 같은 부분은 전혀 즐겁지 않고 오그라들기만 하더군요. 훅 메이킹이 빈약해서 대강 들을 경우 그냥 쭉 랩으로만 간 곡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는 칠링한 느낌이 드는 비트가 주로 선택되었고 멜로디 선이 불분명한, 애매한 느낌이 많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조적으로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는 듯한 랩은, 때로는 왜 이럴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Jane Dough"의 후렴을 "제인 또우!"로 들었습니다...). 그나마 후반부 QLLE의 신스를 활용한 비트가 조금 변화를 주면서 숨을 돌리게 해줍니다. 


 컴필레이션이므로 크루의 색깔을 대표할 수 있는 곡으로 채웠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후반부의 전개는 분명 이들이 힘을 뺄 의도가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 근데 이만큼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정도의 유연함이 아직 멤버들에겐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멋진 붐뱁이 반드시 파워풀한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힘을 주지 않아도 멋있고 듣기 좋은 붐뱁 앨범을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막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크루이고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부디 그 방법을 연구하며 발전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0) Cox Billy - Black Comedy iiii (2020.1.1)


 "Re:MIND" 앨범이나 GRVV에 대해 괜찮은 느낌을 갖고 있던 저로써는 요근래 Cox Billy가 보이는 행보가 참 안타깝습니다. 밉보인 래퍼는 이 씬에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이만큼 싫어하기 쉬운 캐릭터가 이 씬에 또 있을까 싶군요. 구설수에 올라 위태로운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중 드디어 그의 어그로가 결실(?)이 되어 이 앨범이 나왔군요.


 이번에도 음악만 놓고 보자면, 저는 이 앨범이 괜찮게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Cox Billy는 그래도 활동 경력이 꽤 있는 래퍼고 그로 인해 쌓인 짬을 무시할 수 없죠 - MBA와의 사우스 힙합, Bigdeal Squads와의 붐뱁, Romantic Factory에서의 팝 랩에 요근래 트랩까지, 엥간한 분야는 다 건드려본 그였고, 특히 독특하고 유연한 톤은 이번 트랩 장르에 무척 어울립니다. 특히나 상대 속을 긁고 싶다면 최적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죠. 직간접적으로 모든 트랙은 돈과 헤이터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이는 진부한 주제지만 의외로 뻔한 얘기란 느낌이 안 들도록 씨니컬한 표현을 자유자재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Crime" 같은 곡에서 대표적으로 보이는 톤 운용도 눈에 띕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이야기 주제는 더욱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How to Get Rich"는 Swings 사단을 향한 노골적인 디스를 포함한 곡인데, 여타 디스곡과 달리 이번 디스곡에 음악적인 비판은 사실상 들어가있지 않습니다. 그저 돈 얘기 뿐이죠.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Cox Billy의 돈에 대한 집착은 일반적인 스웩 내용이 아니라 전형적인 '열폭'으로 읽히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음에도, 거의 대부분이 한 번쯤은 은밀하게 해봤을 생각이라는 점이 저는 되게 재밌었습니다. 이 이유로, "Alter Ego"의 가사, '내가 제일 힙합인거 같은데, 솔직함의 끝임'이라는 말은 묘하게 설득력을 가집니다.


 사운드가 되게 지저분하게 믹싱되어있다는 점이 또 특징인데, 개인적으로는 본인을 더 추하게 만드는 전략의 일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솔직히 정도가 좀 지나쳐서 귀가 아픈 트랙이 있긴 했습니다. 또 이런 식으로 얘기할 경우 "해빙"은 여전히 좀 아쉬운 트랙입니다 - 위치로나, 내용 면으로나. 갑자기 감정 잡겠다고 만든 건 아니겠지만, 좀 더 앨범을 집중되게 하려 했다면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Alter Ego" 후반부 정도로도 괜찮았지 않았을까 해요.


 Cox Billy는 그렇게 어그로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그 모습이 마냥 밉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얻는만큼 잃는 것도 컸던 전략이었던 건 여론을 살펴보면 맞는 듯하군요 - 아니, 정말로 얻는 것이 있었는지 확신이 서진 않습니다. 더불어 그냥 신인이 아니라 나름 준수한 실적을 거두었던 적이 있는, 어느 정도 짬이 쌓인 래퍼가 이 전략을 택했다는 건 이유를 떠나 완전히 곱게 보이지는 않는군요. 앞으로도 전 Cox Billy가 음악을 내면 기대를 하고 들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단, 본인도 요근래 잃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좋겠네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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