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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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3:15:56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밀감싹!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365LIT - FUCK THE RULE (2019.12.11)


 365LIT은 2019년 본격 활동을 시작한 래퍼입니다. 실제 사클 계정에는 2년 전부터 곡이 올라와있으며 이번에 소개할 앨범 수록곡들도 다 과거에 올라왔던 곡들이긴 하더군요. USB Gang이란 크루를 이끌고 있는 것 같고, 피쳐링 활동 같은 걸 보면 Friemilli (혹은 더 앞서서 A.D.#.D.?)와 친분이 있는 거 같네요.


 전곡 본인 프로듀싱이란 점은 특기할만 하고, 노래 스타일은 'banger'란 표현이 어울릴듯한 트랩 곡입니다. 상당히 정직(?)하게 꾸미지 않은 발성으로 랩을 하는 걸 들을 수 있는데, 전체적인 스타일이 Sheck Wes 영향을 받았단 말이 많이 나오는 듯하지만 이 발성 때메 저는 Lil Pump가 더 떠올랐습니다. 중독적인 후렴구와 그냥 뱉고 있는 것 같은 가사, 그리고 HEY!를 대표로 하는 수많은 추임새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가사에서 생각보다 재밌고 재치 있는 표현들을 발견하는 분들도 있을거고,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에전에 힙합엘이에서 이런 느낌의 미국 트랩곡을 '멍청트랩'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는데,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다 싶던 적이 있었죠. 저는 (정말 아무런 디스의 의도 없이) 이 앨범이 한국형 멍청트랩의 좋은 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호불호도 거기서 나뉘겠죠. 생각없이 턴업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추천할 수 있는 앨범이나, 저는 취향도 아니긴 하지만 365LIT의 발성이 끝내 걸리는군요. 한 가지 더 본작의 흠을 잡자면 마지막 트랙 '얼음동동'이 너무 흐름을 깼다는 것 - 너무 '멍청'하지 아니했던 까닭입니다(?). 암튼, 꽤 흔한 스타일인거 같으면서 또 이걸 기조로 삼는 아티스트가 한국에 잘 없긴 했군요. 어떻게 해도 카피캣 소리 듣기 딱 좋아서 그랬겠거니 싶지만, 이렇게 새로이 이름을 알린 365LIT이 부디 좋은 흔적을 남기길 바랍니다.



(2) San E - Ballad Rap Song (2019.12.12)


 우려와는 달리 (?), "Ballad Rap Song"은 발라드 랩 앨범이 아닙니다. 그 단어에서 쉽게 연상되는 특색 없는 벌스, 피쳐링 보컬의 달달한 후렴, 중독성에 초점을 둔 곡 구성 등으로 안일하게 채워진건 아니란 뜻이죠. 그저, 한 단어로 요약하기 힘든 산이의 또다른 EP로 보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Brand New Music에서 나온 이후로 많은 이들이 산이가 다시 '정통 래퍼'로 돌아오길 기대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는 사람 얘기" 같은 곡이 그닥 그의 의지에 반해서 만들어졌던 것 같진 않습니다. 인기에 영합하려 한다기보다 산이는 '광대'를 기꺼이 자처하는 캐릭터란 뜻입니다. 이런 태도는 그가 호스팅한 '쇼미가버린 에잇'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발라드 랩이 아니라고 해서, 유려한 플로우와 스킬을 기대할 수 없는 겁니다.


 이번 앨범엔 다양한 곡이 있습니다. 그래도 3, 4번 트랙은 전형적인 가요 힙합의 구성과 내용을 따르고 있는 한편, 1, 2번 트랙은 이모 힙합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법하고, 마지막 트랙은 다름 아닌 섹스 송입니다. 산이의 퍼포먼스는 기본은 받쳐주지만 안정적으로 비트와 붙지는 못하는 거 같습니다. 그나마 진지하게 만들었단 티가 나는 내용 때문에 진지하게 감상을 해보지만, 언젠가부터 전 늘 산이의 랩이 툭툭 끊기고 어색하게 들리더군요. 다만 피쳐링에 참여한 얼돼와 가은의 목소리가 신선하면서 좋았고, 특히 "발라드랩" 트랙 크레딧의 작곡, 작사에 산이와 Stardust만 있는 걸 봐선 가은의 후렴도 산이가 만들어준 거 같은데 괜찮게 뽑혔단 생각을 했습니다.


 '광대'를 자처하는 산이의 퍼포먼스는 이후 나온 "One Top"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좋은 음악에 대한 관점은 바뀔 수 있는 개인 고유의 영역이고 산이의 영역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걸 인정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산이가 내는 음반이 딱 마음에 들 일은 없겠구나 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 아쉽네요.



(3) Somdef - MorningMare (2019.12.13)


 워낙 전작인 "Some Definition of Love"가 말랑하고 듣기 편한 앨범이었기 때문에 "MorningMare"도 비슷한 선상의 앨범이 아닐까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작이 사랑이란 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통일성을 갖췄다면  "MorningMare"는 다시 Somdef가 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하여, "사랑할 수 없는 이유"의 가요적인 바이브에서 "No Rules"의 하드코어 붐뱁 스타일까지 앨범엔 다양한 곡들이 실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젯밤" 같은 테크노나 "Imaginary" 같은 댄스홀 등 타장르의 접목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은 과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작과 본작을 이어 들으면서 Somdef는 참 안정적으로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시에 앨범 소개글에선 그가 엠씨들에게 맞춤형 비트를 만들어준다고 얘길 하고 있는데, 얼추 타당해보이는 한편 의외의 조합도 몇개 정도는 있었던 거 같습니다. 대표적인게 "어젯밤"이었고, "Insomniac"과 "Imaginary"도 각각 Kid Milli와 Tommy Strate에게선 흔하게 못 보는 스타일이지 않나합니다. 하지만 뭐, 말했던 것처럼 대개는 피쳐링 래퍼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맞춰 제작된 비트들입니다. 참여진들의 퍼포먼스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부 평타 이상은 해준듯하며, 특히 "Reality"의 Dok2 랩은 싱글 선공개됐을 때부터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프로듀싱 아티스트가 만든 컴필레이션형 앨범으로 개인적으로 강렬한 인상이라고 하기는 무리지만 Somdef의 안정감에 따른 결과인듯 합니다. 기리보이나 sokodomo는 특히 본인 최근 앨범 수록곡이 재현된거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게 마냥 좋은 감상은 아니었습니다. 허나 색깔이 달라도 듣기 편안한 앨범이란 평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내릴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다양한 트랙들이 주는 다채로움이 전작보다 본작을 더 기억에 남게 할 이유가 되겠네요.



(4) Lil Poet & KOREANGROOVE - Common Vibes 2 (2019.12.13)


 과거 Rakun이란 이름을 쓴 적 있는 Lil Poet과 함께 Friemilli 크루로 활동 중인 KOREANGROOVE의 합작입니다. 제목에 2라고 되어있는 것처럼 2016년 나온 "Common Vibes"의 후속작이며 (이걸 조사하면서 안건데 당시 KOREANGROOVE는 "Groovy"란 이름을 썼더군요. 또한 당시 둘은 "북서울러" 크루), 겉보기엔 EP처럼 생겼지만 일단 믹스테입이라고 합니다.


 전작 "In My Pride"와 "YAGWANG" 시리즈를 통해 알고 있는 둘의 이미지가 달라서 잘 섞일지 궁금했는데, 흠... 결과물이 생각처럼 잘 어우러져 나오진 못한 것 같습니다. 트랩 스타일로 만든 세 트랙에서 Lil Poet의 랩은 다소 경직된 것처럼 느껴지고, 여전히 부현석을 연상시킵니다. KOREANGROOVE는 저번 앨범과 마찬가지로 본인만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느낌이에요 - 곡마다 목소리도 좀 달라서, 피쳐링한 Chamane과 헷갈리고 그렇더군요. 결론적으로 Lil Poet이나 KOREANGROOVE나 다른 뮤지션이 아닌 이들을 선택해야하는 이유를 아직 확신하지 못하게 합니다. KOREANGROOVE는 저번 앨범도 그렇고 트랩을 밀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올드 스쿨 느낌으로 간 마지막 트랙 "Common Vibes"가 랩을 더 안정적으로 담아낸 듯합니다 (Lil Poet이야 원래 이쪽이 베이스였고요).


 KOREANGROOVE가 쇼미더머니 예선에서도 모습을 보이고, 랩하우스에서도 The Quiett이 인상 깊었다고 하는 거 보면 역시 방구석 리스너의 한계가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앨범을 들은 사람으로써는 이번 앨범도 인상적이진 못 했습니다. 아직 Friemilli에 부현석을 제외하고는 두각을 드러낸 멤버가 없다는 점이 답답하기는 저도 마찬가지네요.



(5) 그냥노창 - 춤추자 (2019.12.14)


 복귀를 한 건지 안 한 건지도 헷갈리던 노창이 신곡을 낸다고 했을 때 그게 30곡짜리 앨범일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미 노창 스타일의 음악이 진입장벽이 높다는 걸 알기에 1번 트랙을 틀기 전부터 위압감이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그리고 노창은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저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보이는 음악들임에도, 앨범은 세밀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략 3번 트랙까지가 앨범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그다음부터 "Secpa" 정도까지는 광기 어린 분노와 자기혐오가 뒤섞여 전달됩니다. 이때의 노창은 난폭하고 공격적이며, 싫어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습니다. "나나였지" "우리"를 거치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가라앉고, 이때부터 앨범의 호흡은 매우 길어집니다. 마치 명상이나 수면에 드는 듯한 형세로, 10분이 넘는 트랙들이 포진해있는 것도 여기입니다. 가사는 서정시의 형태로 바뀌어 난해하고 함축적인 형태를 띕니다. 마지막, "춤추자2"와 "초대장"에서 어떠한 타협에 이른듯한 평화로운 어조로 그는 청자를 '춤'을 추자고 초대합니다.


 음악적이기에 앞서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인 형태를 거부한 (후렴을 갖고 있는 노래가 별로 없습니다) 구성, 동어 반복과 파편화되었다 할만한 전개 등은 시인 이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앞뒤 안 가리고 던져대는 전반부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후반부로까지의 변화가 매우 섬세하며, 이 서른 개의 트랙 내내 (물론 인스트루멘탈을 제외하고) 거의 집착에 가깝게 되뇌이는 '춤추자'라는 문구가 강하게 각인됩니다. 대부분 노창이 말하려는 바를 정확히 알아듣진 못하겠으나 왠지 감정이 전달된다는 반응인 것은 여러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되어있는 가사 속에도 그의 맨 감정만은 뾰족한 가시처럼 드러나있어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현대 예술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어려우면서 쉬운... 와중에 사용된 수많은 레퍼런스도 재밌는 이스터 에그입니다.


 프로듀서로써도 이미 자신을 입증한 노창인만큼 비트도 엄청납니다. 곡 내에서 서너번씩 엎치락뒤치락하는데다, 듣다보면 거의 안 쓰이는 악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창의 목소리가 워낙 변화무쌍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그런 비트에도 노창의 랩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있는 '넘겨도되는트랙'들은 일종의 인터루드로 역할을 하게 되는데, 드럼이 없어진 인스트루멘탈 위주의 트랙이지만 묘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이 있군요.


 좋고 나쁜 점에 대해 일반적인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는 앨범은 아닙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언급할 단점은 너무나도 거대한 크기입니다. 서른 곡이라는 곡 수는 서사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는데 도움을 줬지만 어쨌든 노창의 지극히 개인적인 말투로 개인적인 얘기를 듣고 있기엔 부담을 느끼지 않기 어려운 크기입니다. 역으로, 이런 섬세한 흐름이 있어서 저는 곡 하나만 떼놓고 듣는 것이 의미가 많이 반감된다고 생각했어요 - 예를 들면 오페라의 아리아를 따로 듣는 건 그런대로 좋긴 하지만, 맥락에 들어갈 때 빛을 발하는 것처럼? 그렇다고 30곡을 가볍게 듣고 싶을 때 들을 순 없는 거죠.


 결정적으로 노창이 그런 편안한 리스닝을 감안하면서 앨범을 만드는 일은 없겠죠. 이 앨범은 노창이 해오던 음악의 한 단계 진화 형태라는 의의가 있다 싶습니다. 원래가 호불호 강한 스타일이 진화를 했으니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노창의 잘못도 리스너의 잘못도 아닌 겁니다. 그저, 그의 음악 세계에 있어 "춤추자"는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을 거란 걸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6) Various Artists - 위하여 (We Higher) (2019.12.16)


 뜬금 없이 등장한 이 컴필레이션 앨범은 차붐의 주관 하 앨범 내고 공연하고 그걸 핑계로 회식하자는 코믹한 의도 하에 제작된 앨범입니다. One Funch라는 곳에서 딩고 컨텐츠 비슷하게 제작 비하인드를 연재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12월 초에 1편이 나온 후로는 아무 소식이 없네요.


 Chaboom을 제외하면 씬의 신예들을 컨셉으로 모집했기 때문에 아직 루키인 멤버들이 대부분입니다 - 특히 "원짱"이라는 래퍼의 정체는 아리송하네요.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잡은 곡들이 좀 많은 거 같지만, 또 다 그렇지는 않고, 더 넓게 연말 분위기에 맞춰있냐고 하기도 애매합니다. 흔히 보지 못하는 이름들이 참여해 신선한 건 맞지만, 참여진들의 원숙함의 문제인지 앨범 테마의 문제인지, 곡들이 대체로 가볍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짧은 곡이 많아서도 그렇지만, 그들이 늘상 하던 것을 좀 재미 없게 풀어냈다면 표현이 맞을 거 같습니다. 대다수의 비트를 작업한 마진초이도 차붐이나 "서울테잎" 때에 비하면 많이 무딘 느낌. 그나마 차붐은 와중에 조금 신선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친구들로 급조된 앨범인듯한 인상이 많이 듭니다. $iga A의 "Day Night"이 좀 궁금한데 이건 심지어 권리사 요청으로 내려갔더군요 (샘플 문제인가...). 게다가 같이 연재되어야 하는 영상 컨텐츠도 안 나오고, 제작자들에게도 의도했던 것보단 훨씬 김빠지는 결과물이지 않나 싶습니다.



(7) Jinbo - Don't Think Too Much (2019.12.16)


 뭔가 허슬러의 이미지가 있는 Jinbo도 이번이 6년만의 새로운 정규 앨범 3집이라고 합니다. "Don't Think Too Much"는 자유로움이 가득합니다. 들으면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앨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루스 락 스타일의 "사랑꾼" 다음이 바로 테크노 스타일의 "Don't Think Too Much", 힙합 단체곡이라고 소개하는 "Coolest Fire Ever"의 다다음 트랙이 90년대 한국적 발라드 성향을 띈 "눈을 감아도"인 등등,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종일관 변화합니다. Beautiful Disco와 Daul의 참여가 있지만 거의 전곡을 Jinbo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운드적으로 과감하고 훌륭한 앨범이지만 그런 왔다갔다 하는 분위기가 다소 정신없이 느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묘하게 앨범이 그리 들쭉날쭉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다양한 스타일에서, 랩과 보컬 사이에서 능청스럽고 유연하게 변화하는 Jinbo의 특징 때문일 듯합니다. 이 앨범을 들으며 생각해보면 Jinbo는 노래나 랩을 기깔나게 잘하는 뮤지션은 아닙니다. 때론 그의 목소리가 맥 없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야말로 쿨한 아우라가 풍기는 앨범이고, 노래 기술이 다 말해주지 못하는 멋이 있습니다. 청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느낌에 맡겨 듣는 것이 "Don't Think Too Much"의 올바른 청취법일 듯하군요.



(8) Sharkrama - I'MMATURITY (2019.12.17)


 이미 "초월인류"라는 EP가 나와있긴 하지만,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니 드디어 여러 번 언급하던 EP가 나온 건지도 모르겠군요. 이에 앞서 "본인이 락스타인줄 알고 하는 노래" "돈벌고싶다" (원 표기는 무시하고 썼습니다..) 등의 믹스테입을 미뤄두다가 내려가서 못 들은게 좀 아쉽군요.


 전체적인 "I'MMATURITY"의 느낌은 앞선 앨범들과 비슷합니다. 여전히 Sharkrama는 마디마디를 꽉 채운 속사포의 랩을 뱉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하여 이번 앨범에서 유심히 들어야할 것은 성숙입니다. 그저 자기 혐오와 염세적인 생각만을 뱉던 내용은, 여전히 비판적이지만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보는 쪽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맞춰 그저 날이 서있기만 하던 톤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비록 1년된 곡이긴 하지만 "If"나, "사상역"에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좋은 예이자 Sharkrama의 작사 능력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곡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목소리의 운용이 조금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뭐 정확히는 "진화인류" 믹스테입에서도 보였던 거지만), 전에 비해 듣기 훨씬 편안합니다. 다만 오히려 격앙된 감정을 담아내기에 목소리가 너무 무난하다고 느껴집니다 - 이는 "남아있어야해"나, "협상타결"에서 Kerykeion의 목소리와 대비될 때 좀 더 느껴지는군요.


 나아진 면은 있지만 결국 고질적인 문제는 대체로 따라온 편입니다. 어쨌든 그루브감을 느끼게 하기 어려운 속사포 랩이고 Sharkrama도 딱히 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더 했단 생각은 안 듭니다. 다만 마지막 트랙 "협상타결"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있고, 본인도 조였다 풀었다 하는 부분이 있어 집중도가 더 있는데, 나머지 곡들은 비교적 짧고 훅이 없는 형태가 많아 약간 마지막 트랙을 위한 빌드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뭔가 터져주지 못하고 잔기술만 즐비한 랩처럼 들리는게 제일 아쉽군요.


 그래도 이번 앨범에는 EP만 내고 은퇴하겠다는 얘기가 빠져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두 믹스테입에도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음악보다는 예술로 결정했다는 언급이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둔다는 의미는 아닌 거 같기도 하군요. 천편일률적이 되기 쉬운 패턴인데, 아마 사운드보다 메세지에 집중하다보니 달리 그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약했던 걸로 보인다면 억측일까요. 다만 "I'MMATURITY"에서 보여준 변화가 잠시 작아졌던 기대를 키워주긴 했기에, 다음 앨범이 나오면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9) 27RING - 27WAVE (2019.12.17)


 래퍼들이 이름을 바꿀 때는 흔히 스타일 변화가 수반되고, 그건 27RING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Safari Explosion의, M.I.B.의, Royal Class의 SIMS 시절 크게 튀지 않는 붐뱁 래퍼로써 활동하던 그는 이름을 바꾸고 트랩을 주종목으로 변경하였으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랩 스킬에 대한 포텐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27RING으로써의 첫 앨범인 "27WAVE"는 이 랩 스킬이 빈틈 없이 꽉 차있는 앨범입니다. 랩을 치워두고 본다면, 락적인 악기 구성으로 차별화를 둔 "주머니" 정도를 제외한다면 전곡이 거의 비슷한 코드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SKIT"이라고 명명된 50초 짜리 트랙마저도 마찬가지의 랩을 포함하고 있죠. 이 정신 없는 랩의 향연이 크게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27RING이 그만큼 화려하게 발음을 흘렸다 조였다, 달리다 말았다 하면서 비트를 잘 가지고 놀기 때문입니다.


 내내 달리는 느낌인 것이 지루할 법하나, 개인적으로 대비되는 느낌인 Qwala나 Asol의 벌스가 오히려 앨범에서는 몰입이 깨지는 아쉬운 포인트였던 거 같고, 27RING의 시종일관 높은 텐션에 대해선 별다른 불만이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2분 내외의 짧은 트랙들이 가득한 것도 물리지 않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개인적으로 단점은 딱히 찾기 힘든 앨범이었지만, 굳이 딴지를 놓자면 다음 앨범에서는 이렇게 한 가지 텐션으로만 밀고 나가긴 어려울 거 같군요. 신인(?)의 패기가 잘 살아있는 파워풀한 작품이었습니다.



(10) Verbal Jint - 연말결산보고서 (2019.12.17)


 5월달까지 만들었던 것이 본인도 재미 있었는지 결국 "연말결산보고서"가 등장하고 말았습니다. 전작처럼 간단한 비트에 일상 얘기를 나열한 트랙들이 많지만, 일부는 평범한 노래처럼 듣게 하려고 만든 흔적도 보입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이 이 앨범의 큰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Verbal Jint가 랩을 잘 하고 가사를 잘 쓴다는 점은 다시 언급할 필요 없을 것이며, 이런 일상적인 가사에서 특히 센스가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안 그래도 담백한 비트에, 너무 많은 일들을 요약하여 나열하려니 플로우가 툭툭 끊기는 느낌이 유독 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12월부터 6월로 거꾸로 가는지, 뭔가 의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해가 잘 가지 않더군요 - 특히 12월이 제일 완성된 구성을 갖고 있는 터라 처음부터 등장해버리니 다음 트랙들이 더더욱 초라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일 겁니다. 과연 이 트랙들은 다시 찾아 들을 매력이 있는가? 이벤트성이 심한 트랙이기에 즐겨듣는 곡이 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한 가지 더. "Otherside"가 만들어졌는데 발표된 앨범이 결산 보고서들 뿐이라는 점이 상당히 아쉽군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5
Comments
3
2019-12-27 23:24:27

한 해동안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2020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저도 내년엔 열심히 살아야겠워요 흑흑

1
2019-12-28 10:42:28

어마어마하네요 ㅎㅎ 잘 읽겠습니다.

1
2019-12-28 11:36:02

리스펙!

1
2019-12-28 14:09:33

크...

WR
2019-12-29 10:53:35

모두 새해에도 화이팅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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