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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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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0 15:27:0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앨범이 많이 쌓이다보니 속도 있게 쓰려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덕분에 힙플에 올리는 글에 인스타글 미리보기 기능이 추가 되었습니다! (?)

이렇게 앨범이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10년치에서 탑 10을 뽑는지 신기합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okodomo - WWW.III (2019.12.6)


 고등래퍼 시즌 3 제 1의 기대주에서 제일 실망스러운 참가자로, Sokodomo는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참으로 다이나믹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첫 앨범은 다시 그의 포텐셜을 증명해야하는 막중한 책임 하에 있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첫 싱글 "Go Home"은 너무 욕심이 과해보이기도 했는데, "WWW.III"의 맥락에서 보니 나름 괜찮아보이는군요. 이 '욕심'이 결국 이번 앨범의 매력을 결정하는 포인트였더군요.


 일견 들었을 때의 음악은 본래 알려진 4차원 컨셉에 잘 부합합니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은 고등래퍼 때의 음원이 얼마나 Sokodomo 답지 않았는가 였죠. 가장 특징적으로 들리는 건 수많은 목소리와 스타일을 뒤섞어 마치 오페라 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이게 2번 트랙에서 4번 트랙까지 이어지면서 앨범의 가장 강한 색깔을 더합니다. 이 강한 색깔 때문에, "West Side Cling"이 마치 지펑크를 표방하는 듯 특유의 신디사이저를 썼지만 지펑크로 생각되지 않고, "Bike"가 단순한 올드 스쿨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프로덕션에 꽤 다양한 사람이 참여했는데도 나름의 통일성이 보장되는 건 Sokodomo의 아우라가 강한 탓도 있을 겁니다.


 후반부, 특히 "Want Love"에서 그 개성이 좀 줄어들고 (완전히 사라지진 않습니다) 뭔가 대중적인 분위기로 간 건 좀 아쉽습니다. 워낙 화려하게 이것저것이 난무하다보니 '편하게' 랩을 감상하긴 좀 어려워보이기도 합니다. Sokodomo의 랩이 좋긴 좋지만 조금 몰입될 듯하면 갑자기 목소리가 변조되어 나오고, 갑자기 리듬 패턴이 바뀌거든요. 한편으로 가사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사 위주로 듣는 곡이 아니기 때문에 큰 단점은 아니라 생각했고, 오히려 Ugly Duck 파트가 상대적으로 빛바랜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누군가는 또 영어 비중에 대해 지적할지 모르지만, 역으로 영어 랩의 그루브를 참 잘 활용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과감한 컨셉을 택하는 것은 남들보다는 위험이 있는 길입니다. 때문에 자신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기회를 아쉽게 보내버린 것이 본인에게 뼈저린 아픔이었을텐데요, "WWW.III"는 이를 만회하면서 기분 좋은 첫 스타트를 끊는 앨범인 것 같습니다. 부디 다음 작품이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해줬으면 합니다.



(2) Lutto & Venko - LUTTO X VENKO (2019.12.6)


 Lutto를 알게된지 얼마 안 되긴 하였지만, 레게톤의 싱잉 랩과 긍정 바이브로 그를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이기에, 매너리즘까지 얘기할 순 없지만 (사실 그 정도로 깊이 파지도 않았기도;) 어느 정도 비슷한 틀에서 음악이 나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비트메이커 Venko와 합작으로 만들어진 앨범은 그 틀마저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여러모로 Lutto가 흔하게 하지 않던 스타일이 이번 앨범에 실려있습니다. "로얄럼블"에서는 싱잉을 버린 타이트한 랩을 하기도 하고, "벌어 또 써"의 코드도 평소 보여주던 코드랑 좀 다르죠.


 앨범 소개글에는 세계의 여러 장르와의 접목을 얘기하는데, 뜬금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만큼의 거창한 목표가 다 담겨있지는 못합니다 (근데 역으로 그게 그리 중요한가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번 앨범은 Lutto의 입장에서 스펙트럼을 전보다 넓게 가져갔고,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낯설지 않고 충분히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최종적으로, 긍정을 많이 버린 현실에 찌든 모습을 가사에서 얘기하지만 사실 그의 밝은 바이브는 어느 곡에든 저변에 깔려있고, 이것이 Lutto의 매력인 듯합니다. 제 생각에 이번 앨범은 Lutto를 많이 들었던 사람일 수록 그 매력이 더할 것 같습니다. 과거의 커리어에 비추어볼 때, 그가 한 자리에 정체하지 않고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는 앨범이니까요.



(3) Pullik - 0.5 (2019.12.7)


 고등래퍼 시즌 2에서 "박준호"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Pullik이, Grandline (GRDL) 합류 후 잠잠한 활동을 이어가다 드디어 첫 EP를 발표했습니다. 다양한 참여진이 있지만 낯선 이름이 대부분인 그의 크루 EUMCHA1LD 멤버들이 여럿 참여한 것이 우선 눈에 띄는군요.


 앨범은 기존에 생각하던 GRDL의 색깔에 얼추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Geeks로 대표되는, 힙합을 놓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코드를 공략하는게 제가 생각하는 GRDL의 주 방향이었습니다. Mckdaddy의 합류는 과거 TakeOne이 그랬듯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GRDL은 Stella Jang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참고로 이건 전혀 비꼼의 의미는 없고, 오히려 저는 이런 방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Lil Boi가 나간 상태에서 Pullik은 그런 활동을 이어갈 주자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아직은 미숙한 부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랩 실력만 놓고 본다면 크게 흠잡을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물 흐르듯 매끄럽게 풀어놓는 플로우와 스토리텔링 등은 랩을 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도 듣고 쉽게 좋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늘 말하지만, 거기까지인게 문제인 거죠. 대다수의 고등래퍼 참가자들에게서 보이는 문제였지만, Pullik 역시 방송에서 뭔가 기억될만한 순간을 남긴 적은 별로 없습니다 - "MADMAX"가 히트를 쳤다 하지만 그건 락적인 비트와 Woodie Gochild가 많은 걸 했던 거 같습니다. 이번 앨범 곡들은 "Stay"와 "히어로" (조금 더 보면 "Summer Splash")를 보면 대부분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는 말랑한 곡들이라 이런 캐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고요. 때문에 "Summer Splash" 같은 단체곡에서 누가 Pullik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건 저뿐인가 싶습니다.


 더불어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고등래퍼 참가자들에게서 보였지만) 가사적으로도 주제를 얕게 한 번 건드려만 보고 지나가는 점도 아쉽습니다. 휴대폰, 장거리 연애, 자취 등의 소재가 참신한 얘깃거리가 될 수 있지만, 처음 그 단어를 떠올렸을 때 생각날 법한 얘기들 정도만 하고 끝난다는 거죠. 이런 점들은 비슷한 코드의 곡들이 채워졌단 점과 맞물려서, 앨범 내 곡들이 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긴 한데 다 같은 곡들처럼 들리게 됩니다. 마지막 "Phone Call"이 마무리를 짓는 형식의 곡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의 마무리도 애매해지는 편이죠.


 결론적으로 아직 랩 좀 하는 사람의 앨범일뿐, 씬에서 두각을 드러내기엔 어딘가 부족한 앨범입니다. 다른 말로는, "고등래퍼의 누구누구가 앨범을 냈다"란 말을 듣고 그려지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실패했달까요. 하지만 저는 Pullik의 나이와, 이제야 막 시작인 그의 커리어를 고려할 때 이번 앨범이 큰 패착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도리어 너무 오래 조용히 있었죠. 지금은 활발한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기억시키고 자신의 모습을 찾을 때입니다. 그렇기에, 당장에 대박 앨범을 낼 거란 기대는 할 수 없지만, 부디 Pullik이란 이름은 더 자주 볼 수 있길 바랍니다.



(4) Lil 9ap - Lil 9ap (2019.12.8)


 Airplaneboy에 대해서 뚜렷한 인상이 없는 건 트랩 장르에 대한 제 마음의 벽이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어쨌든 STAREX 크루로 대표되는 분야의 트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나마 일본어를 좀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 정도였죠. Lil 9ap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꾼 것이 많은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연이어 듣다보니 저도 약간은 그의 매력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전작 "Lil Basquiat" 시리즈에 비해서 "Lil 9ap"은 조금 더 본인이 할 수 있는 분야를 확장시킨 느낌입니다. 사실 STAREX 류의 트랩이다 라고 하기에는 Lil 9ap은 싱잉 랩을 적극 사용하는 편은 아니었죠. 반면 목소리가 느긋하고 끈적하게 비트에 잘 달라붙는 타입으로 (이번 앨범 "Seiko"에서 Owen과 상당히 대비되는 색깔입니다) 단순한 트랩에만 국한짓기엔 아까운 면이 있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트랩의 색깔을 유지하지만, 전반부는 랩으로, 후반부는 싱잉으로 통일시킨 느낌이 있는데, 본인의 스타일은 잘 유지하면서 전후반의 색깔을 더 강하게 대비시켜 듣는 재미가 커졌습니다. 특히 "Seiko" "skbdbd" 같은 하드한 랩 트랙은 붐뱁을 듣는 것 같은 감흥도 있습니다. 제가 말했던 느긋하게 타는 목소리의 매력을 잘 살려주는 거 같습니다.


 싱잉 랩 부분은 곡들이 다소 짧고, 전형적인 느낌에서 많이 벗어난 건 아니어서 많이 인상적이었다고 생각은 안 되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잘 묻는 거 같긴 합니다. 결국 그의 톤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이었네요. 일본어는 여전히 비중이 많고, 외국어를 쓰는 것 자체는 별 문제는 없으나 반대로 일본어를 쓴다고 해서 한국어와 다른 감흥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Lil 9ap의 일본어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일본 랩에 별 느낌이 없는듯). Airplaneboy의 커리어를 잘 따라왔던 분이라면 Lil 9ap의 안정적인 스펙트럼 확장이 반가울 수 있을 거 같군요. 비록 제 마음의 벽까지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5) Leebido & HD BL4CK - APPETIZER (2019.12.9)


 HD BL4CK의 "Youth"와 단 6일 간격으로 발표되었으며, "Youth"에서 가장 많이 이름을 실은 Leebido가 콜라보 파트너라는 사실 때문에, 그저 "Youth"와 비슷한 앨범을 하나 더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던게 사실이었습니다. 우려와는 반대로, "APPETIZER"는 "Youth"에서 보여주지 못하던 것을 모아 만든 앨범입니다. 전반적으로 하드 트랩의 성향을 띄고 있으며, Leebido도 랩 스킬을 보여주는데 좀 더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모 힙합에 대한 주관적 취향 탓일 가능성이 높지만, "Youth"에서 답답하게 느껴지던 HD BL4CK의 비트가 이번 앨범에선 시원하게 뚫립니다. 드럼이 좀 더 깊고 울림이 진해졌으며, 코드가 전형적인 패턴을 따를지언정 임팩트가 좀 더 있어보입니다 - 이번 앨범 아트워크가 RAUDI던데 RAUDI의 앨범이 많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건 Leebido의 랩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스킬은 갖추고 있지만, 줄줄줄 풀어놓기만 하는 같은 리듬 패턴으로 일관하는 랩이 쉬이 질리곤 합니다 ("Grave Freestyle" "HICKEY" 등 어느 정도 변화를 주는 트랙은 있지만 소수입니다). 여기에 Leebido 특유의 속삭이는 느낌이 섞인 목소리가 좀 더 지루한 느낌을 악화시키는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전작 "TETSUO"에서의 단점을 이어가고 있는 거 같네요. 더불어 "양처럼 웃고 뱀처럼 벌어" "How Can I Lose?" 같은 트랙에 나오는 두꺼운 목소리는 Leebido가 맞는지 궁금하네요 - 작사엔 다른 사람이 없던데, 너무 목소리가 달라서 재밌기보단 좀 뜬금 없었습니다. 가사가 얕은 수준에 머무른 듯한 건 장르적으로 안 맞는 비판일지 모르겠지만 여튼 제겐 또 하나의 불만거리였습니다. 


 "Youth"를 들으면서 느낀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새로운 걸 제시하지는 않는 앨범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앨범은 충분히 즐길 수 있긴 하나, 제 기준에서는 (특히 이런 비트에서라면) Leebido의 랩이 좀 더 공격적으로 센스 있게 뚫고 나갔으면 좋았을 거 같군요. 지난번 쇼미더머니에서는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걸 보았는데, 라이브로 보면 좀 다를까요? 아니면 그냥 붐뱁충이 발견 못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6) Mac Kidd - Death Peace Smile (Mixtape) (2019.7.17)

    Mac Kidd - Death Peace Smile (EP) (2019.12.10)


 Mac Kidd는 2015년 첫 믹스테입을 발표한 래퍼입니다. 처음에는 Sik-K의 Yelows Mob에 속해있기도 했더군요. 2015년 두 장의 믹스테입 후 활동하다 2년 쯤 공백기를 가지고 (군대?) 최근 와서 다시 활동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Death Peace Smile"이란 같은 제목으로 5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믹스테입과 EP가 나왔는데, 전 EP로 먼저 접했습니다 - 당시 이름은 듣고 추천도 받았지만 일단 듣기를 보류했더랬죠.


 최근 나온 EP는 Mac Kidd의 랩만 따지면 5분이 안 될 짧은 분량의 앨범입니다. 매우 심심하고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규격에 맞춘 듯 정확한 박자와 라임 패턴으로 뱉는 랩이 신기하게도 재밌게 들리는 이유는 Mac Kidd의 톤 운용이 매우 맛깔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간은 억지라고도 느껴지지만 분위기 상 오히려 센스로 여겨지는 라임에 사용된 어휘들도 매력이라 생각했습니다. 앨범이 짧다보니 역설적으로 이 EP가 5개월 전에 나온 믹스테입의 예고편 역할을 한다 생각하고 들어보게 되었죠.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만큼 믹스테입도 거의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앨범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건 놀리는 듯한 투의 쫀득한 Mac Kidd의 랩입니다. 이런 무드와 대비되는 곡들이 믹테에도 EP에도 있는데, 믹테에는 후반 세 곡이 부드럽고 말랑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한편, 믹테에서는 "몽롱"이란 곡이 이모 힙합풍으로 진행됩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이쪽보다는 그냥 트랩 랩 쪽이 더 끌렸습니다 - 그 맛깔나는 톤의 매력이 잘 안 사는 거 같았거든요. 특히 "몽롱"은 분위기는 그런데 메세지는 똑같이 놀리는 투다 보니까 뭔가 되게 언밸런스하고 오그라들더군요. 근데 보면 그런 신선한 언밸런스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도 꽤 있는 거 같습니다.


 믹스테입보다는 EP가 랩이 더 깔끔하게 정돈되고 각이 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가사를 열어보면 글자 수가 정확하게 맞아서 예쁘게 정리되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틀 안에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재밌게 진행시키는 게 Mac Kidd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한국 트랩에서 랩 하나로 승부 보는 사람이 잘 없어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 약간 '얌전한 Kor Kash'라고 평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ㅎ 신작이 나오면 또 체크하고 가야할 트랩 래퍼가 하나 더 늘어버렸군요.



(7) niahn - late night (2019.12.10)


 전작 "overthinking"에서 "extape" 때의 몽환적인 느낌을 버리고 편하게 노래한 것이 이벤트성이라 생각했는데, "late night"을 보니 스타일 변화에 더 가까운 거 같습니다. 이번에도 세 곡짜리 곡이며, 비록 마지막 곡 "Rodeo"가 예전 스타일을 떠오르게 하지만 나머지 두 곡은 발라드가 생각나게 합니다. 은근하게 오토튠이 들어있는 목소리이면서도 따뜻한 풍으로 짜인 멜로디와 비트가 상당한 마력을 지녔군요. 스타일의 변화 방향에 있어 기리보이의 "치명적인 앨범 III"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앨범 역시 힙합이라는 생각을 하고 듣긴 좀 애매한 편입니다. 하지만 좋은 곡은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가로등"은 힙합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들어보라고 추천해줄 것 같습니다.



(8) BaDa_kokkiri - Anger of My Life (2019.12.10)


 전작 "Pain My Life"와 연작 비슷한 느낌으로 나온 새 EP입니다. EP라고 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발표된 곡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라는 점 (덕분에 곡 자켓이 전부 다릅니다), XXXTENTACION의 "Look At Me"를 이용한 곡이 있다는 점, 대부분의 곡이 1분 대의 짧은 구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믹스테입이라 보는 것이 더 맞을 듯합니다. "Pain My Life"의 후속작 같지만 둘은 대비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멜로디에 좀 더 집중하여 이모 힙합을 연출했던게 전작이라면, 이번 앨범은 트랩 메탈이라 정의할 수 있는 시끄러운 곡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죠.


 이번 앨범은 오토튠이 없습니다. 물론 트랩 메탈도 많이 해왔지만, 튠랩에서 강세를 보여왔던 BaDa_kokkiri임을 생각할 때는 의외인 점입니다. 멜로디를 빼더라도 듣는 재미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중독적인 훅 만드는 솜씨는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훅들이 전부 한 마디 가사 쓰고 그걸 4~8회 반복하는 형태라 진부하다는 지적을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딱 1분만 줘봐"의 훅은... 그런 마디를 루핑시킬 줄은). 나머지 부분은 아무래도 트랩 메탈의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합니다. 무조건 질러대는 식이기 때문에 가사를 보고 있지 않으면 곡 별로 정확한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 비트도 그렇게 특징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요. 여기서 훅 메이킹이 빛을 발하는(?)데, 곡을 듣고 나면 열에 아홉은 훅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사실 벌스 자체가 짧게 짜여있어서 훅을 세 번 반복하면 사실상 그 곡은 훅 뿐인 셈이죠.


 오히려 가사는 "Pain My Life"보다 더 재밌게 들었던 거 같습니다 (비록 뒤에 가사가 안 올라온 두 곡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오히려 가사에 뭔가 더 공을 들였을듯한 전작에서의 가사가 약해보이는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그만큼 BaDa_kokkiri가 공격에 최적화된 래퍼라는 뜻일 수도 있겠고요. "Pain My Life"와 나란히 놓고 보면, BaDa_kokkiri가 할 수 있는 것을 50/50씩 각 앨범에서 보여준 느낌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Age of Tune Star"가 상대적으로 100을 보여준 앨범이라 생각하기에 이 "My Life" 시리즈는 불완전해보입니다. 한 앨범은 파워가 부족하고, 한 앨범은 음악적 요소가 약해보이는 겁니다.


 최근 BaDa_kokkiri의 음악은 과도기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본인 역시 여러 가지를 실험하는 단계라 하였는데, 어찌 보면 아직 본격적으로 씬에 깊숙히 들어가지 못한 시점에서 그런 실험을 하는게 맞긴 하겠죠. 다만 그런 시도가 늘 그렇듯 첫인상과의 괴리가 저를 불만스럽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결정은 아티스트가 내리는 것이고 리스너는 따르는게 맞을테고, 본인이 찾던 답을 찾는다면 흔들리지 않고 곧게 나아갔으면 좋겠군요.



(9) Golden - Hate Everything (2019.12.11)


 돌연 Golden이란 이름으로 돌아온 G-Soul의 전역 기념 새 EP입니다. 얼마 전 Crush의 앨범을 얘기하면서 8-90년대 R&B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 느낌은 90-00년대 R&B라고 하면 될까요? Brian McKnight, Boyz II Men 같은 음악이 연상되는 발성, 바이브레이션과 애드립이었습니다 (Brian McKnight는 Crush 앨범 때도 얘기한 거 같은데, Crush랑은 꽤 상반되는 색깔이라 생각하는데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Golden의 과거 앨범들을 잘 들어보지 않아 어떤 맥락으로 이번 앨범의 변화를 보면 되는지 애매하지만, 담백하고 감각적인 R&B가 대세인 가운데 오랜만에 찐한 감성을 느껴보았네요. 마지막 곡을 빼고는 전부 영어인데, 영어로 풀어내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개인적으론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트랙이 사족 같이 느껴졌을 정도). R&B 앨범은 늘 제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가 힘드네요... 동시에 글 끝맺는 것도...



(10) 이주민 (Yizumin) - Freedom Ain't Free (2019.12.12)


 화지의 송캠프를 통해 모인 래퍼들로 만들었다는 컴필레이션 "Freedom Ain't Free"입니다. 최근 "EPISODE" 앨범도 그렇고, 송캠프를 통한 새로운 콤비네이션을 시도하는 게 많이 보이네요. 스트리밍 시대의 특성 상 참여진을 확인하기 영 불편한데, 지니 매거진을 보면 보컬 Brandy, 래퍼 Xyro, Xeeyon, Kid K, IKYO, Jambino, 비트메이커 Eggu, Evol Beats, The o2, Os Noma, Squalowave, Ha gon 이렇게 열두 명이 참여한 프로젝트로군요. 


 앨범 곡들이 어떤 느낌인지 묻는다면 화지의 "Zissou"를 언급하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화지는 기획자일뿐, 음악적인 개입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기껏해야 "5AM"의 후렴에 참여했다는 것 정도? 근데도 신기하게 랩이나 비트에서 화지의 냄새가 강하게 납니다. 밴드 구성의 chilling한 바이브 위 다소 건조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힘을 빼고 여유롭게 뱉어대는 래퍼들, 자유에 대한 얘기, 펑키한 멜로디 등등... 이는 카피캣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며,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멤버들의 싱잉 랩이나 아기자기한 라이밍 등에서 나름의 개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진행되는 비트는 Primary Skool을 연상케하는 차분하면서 흥겨운 비트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 Eggu의 비트가 곳곳에 감초처럼 자리하고 있고요.


 그렇게 흥겹고 그루브 넘치게 시작한 앨범은, 어찌된 일인지 두세 곡 못 가 제자리에서만 도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정말로, 곡들은 화지 2집의 일부 곡 (저는 특히 "UGK"가 강하게 떠오르더군요)을 듣는 느낌으로 통일되어있어 심하게 말하면 한 곡을 반복 재생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래퍼들 간의 구분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거니와, 한 사람 벌스하고 훅하고 하는 구성이 4인 정도가 참여한 꽤 크기가 큰 곡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다보니 의미 없이 늘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chilling한 바이브이지만 굴곡이 없고 임팩트가 약한 비트는 때로는 너무 잔잔해서 이 지루함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보컬인 Brandy가 참여하고, Os Noma가 신스로 변화를 준 마지막 곡 정도만 분위기 환기로 느껴질 뿐입니다.


 글쎄요, 프로듀서가 한 곡씩 맡았지만 결국 다양한 사람이 편곡 및 세션 추가로 참여하면서 참여진이 천편일률적으로 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화지의 개입은 없지만 화지의 팬들이 참여해서였을까요? 실력자들과의 즐거운 만남이라 생각되었던 앨범이 김 새는 마무리를 맺는 거 같아 조금 아쉽더군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었겠고, 저 역시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하곤 했지만, 참여진들의 역량을 제대로 보려면 각자의 솔로 앨범을 기다려봐야겠군요.


PS 뜬금 없고 새삼스럽지만, 스트리밍 시대가 오면서 파트 구분을 찾기 어려워진 가사 표기는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에선 정말 깊은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인 거 같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영 헷갈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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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2-20 20:01:05

진짜 듣는 귀와 관점이
참 날카롭습니다. 멋지십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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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 09:32:35

그렇지 않습니다 흘흘

WR
2019-12-22 09:32:52

감사합니다 >_<

2019-12-27 11:26:34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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