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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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16:21:12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번 편은 더더욱 쓰기 어려운 앨범이 몇 개 있었네요. 아 더더욱 날림으로 쓰고 싶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IndEgo Aid - EOP : Earth OvErcoming PoEtry (2019.12.3)


 "EOP"와 전작 "ELP"의 비교는 각 앨범의 커버 그림과 비슷합니다. 주제 의식은 유지한 상태에서, 표현의 깊이가 색연필로 그린 그림에서 수많은 개체들이 캔버스를 채운 유화의 그것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건 폭 넓은 프로덕션입니다. 저는 "ELP"가 너무 한 방향으로, 어울리지 않는 밝음과 부드러움이 들어있다 생각했는데, 이를 완전히 버리지도 않으면서 저의 아쉬움까지 커버할 수 있는 강약과 고저를 모두 얻어냈습니다. 앨범 전체에 걸쳐 다각도로 활용되는 신디사이저는 메탈릭한 IndEgo Aid의 톤과 좋은 궁합을 이루며 본인의 색깔이 무엇인지 명확히 합니다. 크레딧을 열어보면 IndEgo Aid가 작곡, 편곡 등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그가 랩 멜로디를 짰기 때문이 아니라 비트메이킹에 깊이 있게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풍부해진 프로덕션의 근거이자 IndEgo Aid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컨셉은 유치해보일 수 있지만 이를 유치하지 않게, 그러나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솜씨도 좋습니다 - "ELP"에서도 보여준 바 있는 능력입니다. 그는 "ELP"에서의 밝음을 가장 본인이 하고 싶은 색깔에 가깝다고 한 적 있었고, 저는 IndEgo Aid의 씨니컬한 시선에 주목을 하는 편인데, 프로덕션과 마찬가지로 가사에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개성적인 표현이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점도 어느 정도는 "ELP"와 공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켓" 같은 곡은 좀 더 시원하게 터져주길 바라는데 아직 너무 조곤조곤한 게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트 역시 조금 더 날뛰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피쳐링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트를 뚫고 나가는 힘은 조금 약한 편입니다. 이거는 어찌 보면 본인의 목소리를 비트 위에 얹기보단 섞는 방법을 택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로 든 "로켓"에서 후렴 목소리를 뒤로 뺀 것이 그런 의도의 예일까요? 사실 목소리 운용의 차원에서도 훨씬 다채로워졌기 때문에 지적보다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야심을 숨김 없이 드러낸 앨범입니다. 크레딧에 작곡/편곡 뿐만 아니라 믹싱까지 본인이 전부 도맡았으니까요. EP라는 규모에 걸맞지 않은 14곡이란 큼지막한 규모도 그렇습니다. 듣다 보면 다이나믹한 구성과 대형 페스티벌 무대 마냥 가득찬 음향, 그리고 때로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독특한 시도들 (예로 "달동네")에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건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혹은, 아직 본인의 아웃풋으로 야심을 다 소화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이제 두 번째 솔로 EP에 접어든 뮤지션에게서 이만큼의 도약을 확인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응원을 하는게 옳지만, 조급함이 있다면 마음을 편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그는 이번 앨범이 정규의 규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EP를 낸 것은 본인이 구상하는 정규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정규에서는 얼마나 큰 세상을 구현해낼지 기대가 되는군요.



(2) Shupie - Smiley Joseph Vol.1 (2019.12.4)


 현재까지 Shupie가 SillyShu나 Holmes Crew 앨범을 통해 발표해온 부드러운 싱잉 랩 스타일의 곡을 예상하고 이 앨범을 틀면, 1번 트랙부터 베이스 드럼과 랩이 뒤통수를 치고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스타일도 그의 커리어 어딘가에서 있었을 거라 의심치 않지만 어쨌든 제가 알고 있는 Shupie에게서는 반전에 가까운 하드한 랩 트랙들입니다. 앨범 소개글에는 "Smily Joseph aka Shupie"라는 말이 있어, 혹시 랩을 하는 얼터 이고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타일을 랩으로 바꾸면서 프레쉬함은 SillyShu보다는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이트하게 라임을 배치하여 플로우를 이어나가는 스타일은 국내 씬에선 Coogie를 연상케 합니다. 허나 제가 늘 주장하듯 누굴 연상케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나쁜 음악인 건 아닙니다. 실제로 Shupie의 랩 메이킹은 꽤 쫄깃하고 톤이 Highprixx의 트랩 비트에 잘 달라붙어서 그루브를 느끼기 충분했습니다. 어떤 의도인지 함부로 예상하자면 아마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랩해보자 하고 만든 앨범 같습니다. 앨범의 작은 규모와 피쳐링진과 딱 한 벌스씩을 교대하는 간단한 구조가 제 추측의 근거입니다.


 재밌게도 2개의 랩 트랙 후에 1개의 싱잉 랩 (즉 SillyShu 때의 스타일)이 나오는 순서를 지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랩으로 쭉 통일해봐도 괜찮지 않았을까 - 만약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대도 너무 기존 스타일로 돌아가진 않았다면 -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Shupie가 결국 하고 싶은 건 SillyShu의 음악이라는 걸 얘기하는 걸까요?ㅎㅎ 뭐가 됐든 가볍게 듣고 즐기기 좋은 앨범입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듣게 된 Hash Swan의 하드한 벌스도 반갑고요. 제가 "vol.1"이라는 이름 달고 나오는 앨범 치고 vol.2를 본 적이 그리 많진 않은데, Smiley Joseph이 어떤 캐릭터인지 다음 후속편에서 더 구체화되었으면 좋겠네요.



(3) Code Kunst - All About Us (2019.12.4)


 Code Kunst와 Niia의 콜라보 앨범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죠. 사실 Niia에 대해 잘 모르는데, 듣기 편안한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Code Kunst의 비트는 특유의 보컬 컷과 가냘픈 분위기가 다 들어가있지만, 아마 R&B 앨범이라 보통 앨범에서 내뿜던 아우라가 다 실리진 않은 거 같네요. 편하게 듣기 좋은 앨범이고, 그 이상은 할 말이 없습니다. 가끔은 저도 이렇게 짧게 글을 쓸래요...



(4) Ruddie Miller - STATION (2019.12.2)


 Ruddie Miller라는 래퍼의 디스코그래피는 2018년 12월 The Hills, Jay Hook과 함께 낸 콜라보 EP가 시작입니다. 이후 솔로 싱글 한 장을 발표한 후 한국컨텐츠진흥원의 지원 하 발표한 첫 솔로 EP가 이번 "STATION"입니다. 저는 K팝스타를 잘 안 봐서 몰랐는데, 시즌 2에서 "라쿤보이즈"라는 팀의 멤버로 화제가 되는 무대를 꾸몄던 것도 같군요. 실제로 이번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맥케이도 라쿤보이즈의 멤버였다죠.


 "STATION"의 노래들은 '대중적'이라는 말로 느낌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Ruddie Miller의 랩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잘 빠졌으며, 얼핏얼핏 등장하는 노래도 래퍼로써는 괜찮은 수준의 실력입니다. 탑 라인도 무난하게 잘 짜여있고, 발성도 탄탄합니다. Ruddie Miller를 알아가는 도중에 라쿤보이즈의 "Thriller" 영상을 봤는데, 그 당시에 비해 목소리를 더 단단한 형태로 꾸민 것이 눈에 띕니다. 이런 기본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STATION"은 이모 힙합을 표현의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곡은 본인 내면의 우울한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걸 다양한 톤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깔끔하게 표현되고 있죠.


 헌데 대중적으로 만들어지는 앨범들은 '무난함' '탄탄함'을 넘기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Young Kay, Benzamin, 김근수, 김선재 등 해당하는 래퍼는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약점 중 하나는 본인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곡들이 너무나 전형적인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순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죠. 아마 첫 앨범이고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싶었을 겁니다. 제 주관적 취향이 문제일 수 있지만 저는 한 가지 주제를 향해 집중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적어도 저의 귀에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앨범의 분위기가 들쭉날쭉인 것이 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우울한 감정이 다수라고 했지만, 2번 트랙과 7번 트랙은 희망찬 바이브를 안고 있습니다. 중간에 자리잡은 5번 트랙의 전반부 "징징"은 랩 스킬을 뽐내는 트랙이고요 ("징징/비행기모드"는 제일 구성이 괴상한 곡 중 하나입니다. 우울한 무드가 랩 스웩 [가운데에] 끼워져있는 형태거든요. 어떤 의미론 실험적입니다). 곡을 순서대로 듣고 있자면, 분위기를 잡을라치면 갑자기 아닌 척하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트랙 "clear"는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주지 못하고 붕 뜨는 느낌인 것도 구성에 대한 제 불만 중 하나입니다.


 실력을 갖춘 신인의 풀이 급속도로 커진 씬에서, 그만큼 확실한 임팩트를 남기는 아티스트를 찾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게 특히 유행에, 대중적인 코드에 부합하려했던 티가 난다면 더 그렇죠. 만약 누군가 이 앨범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Ruddie Miller가 랩을 못 해서라기보단, 잘 한다는 걸 증명하지 못 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 가지 분야에의 집중과 꾸준한 결과물이 훗날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5) Walter - Rose Garden I (2019.12.5)


 오사마리 크루 중 마지막 남은 솔로 앨범(?)이 드디어 트리플 싱글의 형태로 발매되었습니다. 재밌게도 Qwala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오사마리의 음악과 많이 대비되는 음악을 하는 거 같습니다. Walter가 하는 스타일도 우울하고 가라앉은 이모 힙합 스타일이라는 데에서 어떤 면으로는 Frogman과 비슷합니다. 다만 강렬한 락 사운드가 첨가되었다는 부분이 차이점이로군요. 특히 "Faces of Truman" 후반부처럼 추가된 이펙트들이 뭔가 우울한 무드를 넘어서 음산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면에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앨범입니다. 다만 방향 자체가 Frogman이랑 조금 겹치고, 오사마리 내에서의 활동도 본인의 캐릭터가 비교적 약했다보니 Walter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을 논하기엔 이른 거 같습니다. 앨범 제목에 I를 달고 나왔으니 아마 근시일 내에 II를 만나볼 수 있을테고, 그러면 Walter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겠죠?



(6) Crush - From Midnight to Sunrise (2019.12.5)


 앨범 단위로 따지면 이 앨범은 Crush의 2집 앨범이지만, 5년 전 나온 1집과 비교하기엔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그 사이 Crush는 밴드 Wanderlust와, 또 크루 Fanxy Child와 함께 활동하면서 훨씬 원숙하고 개성적인 색깔을 띄게 되었죠. 1집 자체도 준수한 앨범이었지만, 2집은 Crush가 근 몇 년간 이루고 터득한 것들의 정수가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감상에 앞서 Zico의 네이버 나우 라디오 "Thinking"에 Crush 출연한 편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소울과 R&B에 대한 이해도가 겉도 제대로 핥지 못하는 정도이기에, Crush가 담은 각종 장치와 오마주를 음미하지 못합니다. 그런 저 역시도 어렴풋하게 들은 Brian McKnight, Musiq Soulchild 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앨범입니다 - "Alone"에서는 그 시절 한국식 R&B 발라드도 연상되고요. 재밌는 건 그 와중에 "티격태격" "Ibiza" 같은 트렌디한 스타일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다는 겁니다.


 이런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문외한인 제 귀에도 넘쳐납니다. 단순히 시퀀싱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에 보컬을 얹는 것을 거부하고 풀 세션으로 거의 앨범 전체를 메꾸었으며, 악기 선택도 색소폰, 브라스, 무그 신디사이저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습니다. 힙합이 많은 것의 베이스가 된 요즘과 달리 드럼의 비중이 적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 허밍, 스캣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든지, 굳이 깔끔한 녹음에 집중하지 않고 살짝 박자가 어긋나거나, 한 호흡에 음정을 왔다갔다하면서 음표가 끊기는 느낌 등이 전부 살아있습니다. 집중해서 듣다보면 흡사 잼 라이브 세션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Crush의 보컬은 어떤가요. 불필요한 힘을 빼고 편안해진 그의 목소리는 반주에 완벽하게 녹아납니다 - 일견 DEAN과 겹치는 느낌도 있긴 해요. "Ibiza"에서 랩과 노래를 유연하게 오가는 솜씨는 감탄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물 같은 유동성이랄까요. "Thinking" 방송에서 Zico는 Crush를 보고, 자신이 그리는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부럽다고 하였는데, 이런 유동성이 그 능력의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또 이 유동성을 기반으로 부드럽게, 아침에 "Wake Up"하여 밤에 "잘 자"까지 이르는 흐름도 인상적입니다. 이 흐름을 LP판으로 플레이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티격태격"을 기준으로 해서 "Sunset"에서 다시 새로운 뭔가가 시작되는 분위기가 납니다 (제대로 감상한게 맞는지는 모르지만;). 후반부는 대체로 전반부에 비해 차분한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Ibiza"가 그래서 후반부에서 너무 외로운 위치에 있어보인다는 거였네요.


 녹는다는 표현이 매우 잘 어울리는 음반이었습니다. 데뷔 당시 노래를 잘하는 가수였을 뿐인 Crush는 그동안의 EP에서 맛보기하던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이번 2집으로 크게 펼쳐보인듯 합니다. 겨울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여서 더 뽕에 취해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계절이 변하더라도 본작의 가치에 대한 공감을 할 사람은 절대 저뿐만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7) Ice Puff - Welcome to ICE DEN (2019.12.5)


 오디션 전용 래퍼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던 Ice Puff가 드디어 수식어를 떼기 위한 첫 단계, 앨범 발표를 했습니다 (그전에 믹테가 있긴 했지만). 이는 Ice Puff의 음악을 온전히 보여주는 기회인 동시에 그의 새로운 크루 AQUA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예상했듯 "Welcome to ICE DEN"은 트랩 비트 위 트럭마냥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의 랩이 잔뜩 담겨있는 앨범입니다 - "SWAY"를 제외하면 초점은 화려한 랩 스킬에 집중되어있습니다. 날카로운 하이톤과 단단한 발성은 방송에서도 이미 증명된 바, 청각적인 쾌감을 주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이 역시 예상하긴 했지만) 곡들이 전형적인 형태를 띄고 있어서 그 이상의 신선함은 없다는 게 취약점입니다. 특히 "RACER"는 Sway D 비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전형적인 Sway D 스타일로 뽑힌 것이 신기할 따름... 그리고 스타일 때문에 귀 아프게 느끼는 분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Ice Puff 앨범을 찾아듣지는 않을 것도 같은...). 뭐, 개인적으로는 딱 예상대로 나온 것 같습니다. 아직 커리어가 앞으로 창창하기 때문에 과한 시도를 할 필요도 없었고, 본인이 잘 하는 걸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Welcome to ICE DEN"은 잘 만든 앨범이라고 할 수 있고, 현재 그의 상태를 정확하게 캐치한 기록입니다. 막 커리어에 본격 시동을 건 그에게는 이제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가가 관건이겠죠.



(8) AVIN - TRANCHE (2019.12.5)


 AVIN은 본래 힙합 프로듀서가 아닙니다. 비록 Sik-K의 Yelows Mob에 속해있긴 하지만, 그는 2017년 경부터 EDM계에서 DJ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9년에는 아시아모델어워즈 EDM 아티스트상을 수상할 정도로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다행히 FRNK, Viann 등의 비트를 통해 우리는 전자음이 쓰인 힙합에 익숙해졌지만, 어쨌든 시작점이 힙합은 아니라는 걸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앨범은 강렬한 드럼과 속도감 있는 구성, 날선 전자음 등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인스트루멘털 트랙으로 실려있는 "Whole Wheel" "Love Creation"은 EDM하면 흔히 떠오르는 구성을 잘 차용하고 있습니다. "Take It Away"나 "WEEKEND" 같은 여유로운 트랙들도 있지만, 이들도 잘 들어보면 악기 구성이나 드럼 라인에서 힘 있고 경쾌한 무드가 느껴집니다. 결국 진가는 "GROTESQUE"나 "WAR"처럼 에너지 있는 비트와 그 에너지를 소화할 수 있는 래퍼가 만났을 때 보이는 듯합니다. 일견 이런 곡들은 빠른 템포 때문에 트랩 장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바이브가 힙합하고는 약간 다른 건 사실입니다.


 인스 트랙, 그리고 첫 트랙인 "Dirty Lovely"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장르를 구분하여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정보를 모르고 듣는게 신스를 여타 비트메이커에 비해 과감하게 쓸 줄 아는 신선함 때문에 더 좋은 감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유로운 트랙이 들어간 건 단순히 EDM DJ로만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란 추측을 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 있는 곡을 듣고 싶은 힙합 팬에겐 AVIN과의 만남은 좋은 자리가 될 겁니다.



(9) Laptopboyboy - RAP univ-erse (2019.12.5)


 재밌게도 Laptopboyboy의 이름으로는 처음 발표된 앨범인 이 앨범은, 그가 컴피티션으로 선정한 5인의 신인 비트메이커와 함께 제작한 프로젝트 앨범입니다. 그렇게 선정된 이들이 JIRIM IN PANT$, HOOSHI, Pr!d3, ONEMOREDAY, oo kiki이며, 앨범의 구성은 이들이 제작한 곡 한 곡씩 5곡에, Laptopboyboy 곡 2곡, 그리고 기존 Futuristic Swaver 곡을 Pr!d3를 제외한 비트메이커들이 한 곡씩 리믹스하여 4곡, 총 11곡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참여한 루키들은 Laptopboyboy 스타일의 트랩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천편일률적인 트랩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습니다. oo kiki는 드럼 구성은 트랩에 가깝지만 콰이어 샘플링으로 붐뱁의 느낌을 잘 섞었으며, ONEMOREDAY의 "Thankful"은 붐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HOOSHI의 "REMY" 리믹스는 EDM 같은 구성을 보여주고 있죠. 완벽하게 다섯 명이 구별된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각자의 개성이 조금씩은 살아있어서 이를 구분하며 듣는게 나름 재미 요소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개성을 살려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호화 피쳐링진입니다. Futuristic Swaver 앨범에서는 예상하기 힘들 Mckdaddy, 차붐, B-Free 등의 피쳐링은 기존 비트에 해당 MC들의 색깔을 진하게 묻혀서 곡을 더 튀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는 역으로, 후반부에 배치된 리믹스 트랙과 비교하여 각자의 색깔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도 합니다. EDM 구성이 재밌었던 HOOSHI는 사실 D-Hack과 Futuristic Swaver가 참여한 "BOKURAGA"에선 일반적인 카와이 트랩의 색깔이고, "Thankful"의 ONEMOREDAY가 "U Cannot"에서는 그리 붐뱁스럽지 않은 것처럼요 (악기 구성만 좀 다른...). 그 와중에 두 곡 취입한 Laptopboyboy는 언제나의 그 스타일입니다.


 비트 평가를 제가 잘 못 해서 더 딥하게 들어갈 수는 없고, 사실 한두 곡으로 이제 막 본 비트메이커를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도 웃긴 일이죠. 한 가지, oo kiki의 작법 때문에 그랬겠지만 "Acid Rain" 리믹스는 비트와 노래의 코드가 조금 불협화음인 건 아쉬운 점입니다. 그리고 "Super Mario Shit"이 꽤 재밌었어서 Pr!d3의 비트도 하나 더 듣고 싶었던 점도요. 아무튼 트랩 팬들에겐 들을 거리가 많은 패키지이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나중에 이름들을 발견하면 한 번씩 더 떠올려보기로 하지요.



(10) IOAH - PSYCHOFETISH (2019.12.6)


 최근에 비트메이커들이 새로운 앨범을 내는게 눈에 많이 보입니다. 여러 앨범의 크레딧에선 이름은 익숙했지만 온전히 자기 소유의 결과물을 들어본 적 없던 상태여서, 이런 경향은 그 비트메이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재밌게도 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지자 공감 따위 집어치우고 마음껏 다른 차원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전에 FRNK가 그랬고 최근엔 Viann이 그랬었죠. 그리고 IOAH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범을 틀자마자 나오는 삐 소리는 듣는 사람의 편안함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의지 표명 같습니다. 곧이어 나오는 온갖 노이즈와 기계음의 복합체로써 만들어진 비트들은 그런 의지를 강하게 이어갑니다. 얼핏 들으면 FRNK와 Viann과 비슷하지만 좀 더 둔탁하고 묵직한 것이 이수호의 느낌에 더 흡사한 거 같습니다. YUNHWAY와 Kid Milli가 한 곡씩 피쳐링을 하였는데, 여기서도 보컬은 지극히 악기의 용도로 사용된 느낌이 납니다. YUNHWAY의 보컬은 본 녹음부터 속삭이듯 불러서 본래 익숙한 색깔과 좀 다르고, 여기에 이펙트를 먹여 "소음들"과 뒤섞었습니다. 그나마 "Testing"은 양반이고, Kid Milli가 피쳐링한 "HUB"의 경우 랩이 부분만 들어가있기도 하지만 벌스를 재조립하고 뒤틀어서 더욱 기괴하게 들립니다. 이런 불협화음과 소음이 만들어내는 불길함은 마지막에 가서 절정을 이루고 사라집니다 - "Intro"부터 "Salvation"까지 이어보면 그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앨범 설명글인 "The end of century"가 상당히 와닿는 듯하며, 마지막 트랙이 '구원'이란 뜻임을 감안하면 더욱 재밌습니다.


 IOAH가 그동안 다른 랩, R&B 앨범에서 보여줬던 감성을 여기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 앨범은 또다른 앱스트랙트 힙합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봐야할 것이고, 당황스러움이 걷히고 나면 나름 IOAH의 세계에 몰입시키는 강한 힘은 있습니다. 물론 친해지는 것은 좀 별개의 이야기지만, "PSYCHOFETISH"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PS 5번 트랙 제목 "Pseudoaneurysm" ("가성동맥류")은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왔는데 퍼지지 않고 주변 연조직에 의해 국한되어 '고여있는' 경우를 뜻합니다. 영상 검사로 얼핏 보면 동맥 벽이 풍선처럼 늘어난 동맥류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피가 흐르지 않을 뿐 실제로 출혈이 일어난 것이기에, 위치와 크기에 따라 그냥 눌러 지혈할 수 있는 것부터 초 응급인 것까지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맥박과 연관이 지어지면서 또 재밌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기 전 Pseudoaneurysm이 뭐냐고 제게 물어본 사람은 없습니다.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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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Updated at 2019-12-13 17:58:55

lil9ap님의 카레는 제가 클리어 할터이니,인디고에이드님과의 식사를 클리어하시길..
리뷰 늘 잘 보고있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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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4 13:46:28

ㅋㅋ카레 후기 알려주세요 성공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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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4 08:20:56

크러쉬의 정규에서 보여주려는 색깔이 저도 좋더라구요~

 물론 귀에 쏙쏙 박히는 가요 감성은 좀 빠져있지만,

그래서 더 정규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와 색깔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정규 1집은 아무리 첫 시작이었다고 하지만, 음악과 가사에서 모두 좀 아쉬웠거든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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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4 13:47:17

가수에서 아티스트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삼십년 지나면 크러쉬 음악 샘플링한 붐뱁 비트가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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