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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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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 23:03:3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하루 두 개씩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데, 요즘은 하루에 세 개씩 앨범이 나오고 그러더군요... ?!

시리즈 제목을 "밀리는 감상 싹 다 하기"로 바꿔야할 판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도 달립니다... 헉헉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탱 - 탱쓰부르쓰 (2019.11.25)


 올해 4월 "품바"로 아무런 정보 없이 나타났던 탱이, 역시 이번에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새로운 EP를 발표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붐뱁을 토대로 본인의 개성을 보여줬던 지난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의 토대는 락 쪽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확연히 복고풍의 냄새가 나는 음악으로, 잠깐잠깐 80년대의 한국 락 음악들이 겹쳐 들립니다. 이 위에서 그는 여러 가지 상처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상처의 원인은 현실적인 성취의 결핍이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갖고 노는 여자이기도 하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죠. 스킷의 형태를 띈 5번 트랙에서 무척 개인적으로 보이는 얘기와 함께 이 고민들을 일단락시키는 듯하다가, 마지막 트랙에서 의미심장한, 불완전한 마무리를 짓고 끝납니다. 투박하지만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서사이나, 앨범의 크기 상 이를 모두 담아내기엔 좀 작았던 것도 같군요.


 저번 앨범에서 탱은 본인의 스타일을 다듬지 않고 날것으로 보여주는 쪽을 택했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자가 제멋대로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며, 저는 부분도 몇 군데 있는 가운데, 딜리버리가 꽤 정확하여 마치 감정을 토해내는 장광설을 듣는 느낌이 있습니다. 약간 더 메세지로 중심이 옮겨간 이번 앨범에서 나쁜 장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노래의 비중이 늘었는데 이 노래도 상당히 걸걸합니다. 술에 취한 채 고래고래 부르는 느낌을 살리려 했던 걸까요. 어찌 보면 처절해서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벌스가 거침없이 토해지는 느낌임에도, 오히려 코러스가 훨씬 과잉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위에서 말한 랩이 분명 누군가에겐 어설프게 들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이는 "품바"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말했듯 이번 앨범에선 서사와 분위기로 조금 보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허나 "내일 죽을래" 같은 3/4 박자를 타기엔 탱의 랩 스킬이 조금 설익어 보이네요.


 탱은 창이란 래퍼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던 것도 한 가지 이유라지만, 둘 다 큰 정보가 없는 뮤지션이며, 어느 정도 자기 스타일이 확고하고, 정확한 스킬보단 그대로 끌리는 대로 내뱉는 쪽을 택하면서 어설픔과 독특함의 경계에 서있다는 면에서요. 그 경계를 벗어나는 건 본인의 음악 세계의 분명한 징표가 될만한 것을 남겨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번 앨범은 탱에게는 나쁘지 않은 경과 같습니다. 다음 앨범에서 좀 더 관찰해보기로 하죠.



(2) Basick - Soft (2019.11.29)


 상당히 조용하게 나온 Basick의 신작입니다. 제목 그대로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곡들만 모아놨습니다. 필연적으로(?) 전부 사랑 노래이고, 트랙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전부 보컬 피쳐링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뽕끼 넘치는 발라드 랩일까봐 걱정될 수 있지만 의외로 듣는 재미가 있는 앨범입니다. 한 가지 재미는 Basick이 앨범 안에서 시도한 다양한 스타일입니다. 1에서 3번 트랙까지는 랩 트랙인데, 저마다 톤이 다릅니다. 싱잉 랩이 등장하는 4번 트랙과 5번 트랙도 다르고요. 좀 더 고전적인 형태를 띈 샘플 루핑의 6번 트랙과 몽환적인 루핑의 나머지 트랙도 대비됩니다. 그야말로 'soft'란 단어를 빼면 가지각색 곡들의 콜렉션입니다.


 전작 "whatiwant"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도 하드한 랩이 먼저 연상되는 Basick에게서 이렇게 힘 빼고 멜로우한 바이브로 가는 것도 듣기 나쁘지는 않습니다. 뭐, "A Piece of Art" 같은 분위기가 좀 오글댈 수 있고, 가사적으로 결국엔 전부 전형적인 사랑 노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걸릴 수는 있겠습니다. 의도한 바인 건 알지만, 무난무난한 노래만 6트랙을 내리 듣다보면 졸릴 수도 있을 거고요 (특히 위에서 말했듯 마지막 트랙을 제외하곤 좀 몽환적인 분위기입니다). 허나 최근의 시도들이 그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시도라면 이번 앨범도 얼추 합격점은 거두지 않았나 싶군요. 특히 그의 근간을 이루는 붐뱁 스타일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는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일부 팬들이 기대했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아직까진 그의 실력을 갖고 이뤄지는 실험들을 저는 재밌게 지켜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3) 창모 - Boyhood (2019.11.29)


 오랜 기대 끝에 창모의 새 앨범이 나왔고, 생각보다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반응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점은 구체적으로, 앨범에 생각보다 많이 깔려있는 샤방샤방(?)한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에 달려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아이야" "Holy God" "Selfmade Orange" 같은 내달리는 랩으로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며, 더불어 (네이버 나우 "Broken GPS"에서 말했던 걸로 기억나는) '이번 앨범은 어두울 것이다'라는 발언도 있었기에 이런 밝은 분위기는 어떤 이들에겐 배신감에 가까운 반전일 것입니다. 이 경우 대개 "위업" (더 나아가선 "2 Minutes of Hell" "더 위로"까지)만을 건졌다는 반응으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확실히 피쳐링에서 래퍼로써의 모습을 점점 더 각인시켜왔던 그였지만, Superbee와 낸 "Maserati" "억"이나 "닿는 순간"의 대다수의 곡을 돌이켜보면 하드코어한 스타일이 그닥 그의 취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말랑한 이번 분위기가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습니다. 한편 창모의 랩은 타격감이 엄청납니다.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으면서 몰아치는 억센 발음은 기관총에 비유할만 하죠. 멋지긴 한데, 저는 알게 모르게 여기에 피로감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발성법을 창모는 노래에도 적용하기 때문에 뭔가 툭툭 끊기고 거친 느낌이 꽤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원인이었습니다. 근데 이번 앨범은 그런 힘이 꽤 빠지고 담백한 느낌도 있습니다. 창모의 음악에 있어선 상당히 신선한 감성입니다.


 물론 밝은 분위기가 다소 뜬금 없었다는 부분은 저도 동의를 해요. "Remedy" 같은 곡이 특히 그렇습니다 - 막 가요 트렌드를 따라갔다는 말은 전혀 동의가 안 되지만 곡이 전체적으로 어정쩡한 느낌은 있더군요 (더불어 창모가 짠게 분명한 멜로디를 청하가 부르니 언밸런스함이;). 허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장조의 바이브는 다릅니다. 특히 "Hotel Walkerhill"과 "S T A R T"는 앨범의 마무리로써 약간 뭉클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분위기 전환 때문에 창모의 본 장점 (결국 랩 얘기겠죠)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견에 일부 동의하지만, "빌었어" 등의 지르는 창법이나 "메테오" 같은 과장된 비유가 모두 창모의 캐릭터가 다른 방법으로 녹아난 거라 생각해요. 이는 과거에 알던 그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이어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운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으나 사운드알못이라 이걸 어디서부터 칭찬하고 비판해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제 무지함이 안타깝군요. "Boyhood"는 불호를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도 '틀림'보단 '다름'이었을 거 같습니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만 못 만들어진 앨범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Boyhood"는 동일 배우들이 12년간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목이라고도 하죠. 이를 의도하였건 아니었건, 성공만 쫓던 한 소년이 확신을 가지고 성공을 말하고 주변 사람을 돌아보는 여유마저 갖춘 이야기와, 점차 굳어가던 스타일이 틀을 깨고 한 단계 성숙한 모습에 참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4) Mckdaddy - sideshow (2019.11.30)


 앨범 정보글에 따르면 "sideshow"란 단어는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흥을 돋우는 소규모 공연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는 Mckdaddy가 자신의 메인을 다시 보여주기 전 잠깐 다른 것을 준비했다는 얘기와 상통할텐데요, 정보글이나 최근 "7interview"에서 했던 얘기에서나 실제로 Mckdaddy는 기존과 다른 것을 했음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얘기가 엄청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의도는 기존에 Mckdaddy가 잘 보여줬던 템포가 빠른 하드코어 트랩 랩에서 벗어난 것을 얘기하겠죠. 그렇게 치면 수록곡들은 확실히 부드러운 분위기라서, 템포가 느려서, 랩이 아니라 노래라서 다르다고 할 순 있겠습니다. 드럼 패턴도 전형적인 트랩의 것이 아니나 붐뱁 패턴을 따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김심야, 우원재, Paloalto 등의 피쳐링진을 의외로 본 사람들이 많겠죠. 근데 뭐, 저는 이때까지 보여준 것에서 충분히 연상 가능한 것들이라서 낯설지는 않더군요. 이를테면 붐뱁 스타일은 저번 앨범 마지막 트랙 "Sneak"에서 훌륭히 보여준 바 있었고요, 최근 Owen이나 dana kim 노래에 피쳐링한 걸 생각해봐도 처음 일어나는 시도는 아닙니다. 음... 사실 앨범 퀄리티랑 크게 상관 없는 부분인데 괜히 길게 딴지 거는 것 같아 미안해지네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Mckdaddy의 의도는 도리어 지금까지 해온 것의 너비에 대해 자신 없어하는 것 같아보여 안타까웠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Mckdaddy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번 앨범도 자연스럽게 좋아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더 '새로운 시도'에 주목을 해보자면, "Woke Up Like This"에서 보여주는 멜로우한 감성이나 "sideshow"에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실력 등이 있겠죠. 확실히 그동안엔 텍스트보다 사운드에 더 치중하는 타입이었기에 이야기를 전달하고 묘사하는 부분이 제일 새롭게 다가왔던 거 같습니다. 또, 이전에 비해 다채로운 것이 담겼다는 것도 장점이랄 수 있습니다. 싱잉 랩은 원래부터 이펙트를 먹인 것만 같은 Mckdaddy의 목소리에 오토튠을 까는 것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이 또한 익숙하게 (...) 즐길 수 있었습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Mckdaddy의 극도로 얇은 톤은 참 위태위태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분명 유니크하긴 한데, 발음이나 박자가 어그러질 때 다른 사람보다 좀 더 확연하게 티가 나는 느낌이랄까요? 객관적으로 볼 때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톤인 거 같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좋은 듯하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번에 탄 편안한 템포가 그런 '빈틈'을 줄여주면서 조금 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했네요.


 "sideshow"는 Mckdaddy의 또 하나의 앨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 스펙트럼'이란 그의 설명을 낮잡아볼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픈 말은 이렇게 따로 시간 내어 증명을 하지 않아도 원래 할 수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점이랄까요. 때문에 ("sideshow"의 의미에 '소규모'가 들어있어서인지) 이번 앨범은 그리 거창해보이진 않지만, 다음으로 그가 보여나갈 모든 것에 좋은 인트로가 될 것 같습니다. 아, 혹시나 저와 반대로 이럴 줄 몰랐다(?)는 분들이 있었다면, 다음에 나오는 Mckdaddy의 노래들을 더 유심히 봐야할 것입니다ㅋ



(5) Belle - D!ARY (2019.11.25)


 민망하지만, Belle의 앨범을 들어보게 된 건 힙합엘이 태풍 님의 새 앨범 소개 리스트 중 '여자 래퍼'란 말에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2016년 첫 싱글을 발표한 후 별다른 소속 없이 활동을 이어왔으며, "D!ARY"는 그녀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에는 'SoFlo Records'라는 소속이 표시가 되어있네요.


 Yuzion과 비슷한 뻔한 여성 트랩 래퍼일 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상당히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이를 궁금케하는 특이한 하이톤이 일단 첫 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트랩 비트에다가 전형적으로 싱잉 랩을 했다고 하면 더 이상의 흥미는 안 생겼을텐데, Belle은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감상을 흥미롭게 하고 있습니다. 랩을 했다가 싱잉이었다가, 오토튠을 넣었다가 안 넣었다가, 음역대를 높였다가 낮췄다가 등, 앨범 트랙마다 특징이 살아있죠. 이에 따라 노래들도 전형적인 트랩이었다가, 어떤 노래에서는 실험적인 느낌도 들면서, 다소 직설적이고 어려보이는 가사에 대한 보완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굳이 아쉬웠던 거라면 곡 안에서 벌스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 반복적인 부분의 비중이 너무 크게 느껴졌단 점 정도겠습니다. 이건 아마 미처 못 생각했다기보단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했던 일일 겁니다 가장 반복이 많은 "NO SECRET"이나 "DIARY AFTER MELATONIN"의 경우는 이런 반복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면서 나름의 독특한 연출 효과를 내기도 하니까요. 트랩 래퍼들이 틀에 갇혀있는 것을 많이 보곤 하는데, 이런 식의 대안을 내놓는 래퍼라면 앞으로 챙겨볼만할 것 같군요. 미래에 그녀가 보여줄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6) EPISODE - EPISODE I (2019.11.27)


 "EPISODE"는 Horim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맨처음에 크루인가 했더니, 약간 시즌제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송캠프 형태로 모여서 음악을 만드는 건가보군요. 보컬 Horim, Soulette, 초영과 래퍼 Simba Zawadi, Symba J, O'Domar, TakeOne이 먼저 눈에 띄지만, 비트메이커와 기타, 피아노, 베이스 세션들도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네오 소울, R&B, 재즈 등 흑인 음악의 틀 안에서 다양한 색으로 음악이 만들어졌으며, 빈틈 없이 다채롭게 채워진 악기들의 화음이 실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Horim의 곡을 오랜만에 들어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Soulette의 목소리가 상당히 여운이 많이 남는군요. 너무 빨리 끝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름답고 포근한 경험입니다.


 괜한 딴지이지만, 이런 류의 음악에서 래퍼들은 너무 뻔한 형태로 등장했다 사라지고, 결과적으로는 겉도는 그림이 되어서 늘 아쉽습니다 (비슷한 예로 Kumapark 앨범이 기억나는군요). 하긴 허밍과 톤만으로 많은 걸 전달할 수 있는 노래에 비해 ('대안'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뭔가를 끊임없이 말해야하는 랩을 자연스럽게 섞는 건 어려운 거 같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분 좋은 스타트 같습니다. 더 많은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보겠습니다.



(7) 을를이가 - 우리 아빠는 소시민 (2019.11.30)


 어떠한 계기로 우연히 들어보게 된 믹스테입입니다. "을를이가"는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결과물도 거의 없는 그야말로 무명의 뮤지션입니다. 얼핏 보이는 가사에 대한 태도가 매력적으로 보여 듣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범 제목을 보고 가족 얘기를 포함한 스토리텔링이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으나 담긴 얘기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함축적이며, 직선으로 진행되기보단 한 가지 테마, 즉 '소시민'이란 단어를 축으로 하여 맴도는 형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은 '우리 아빠'이지만 결국 타겟은 자신이 되고 맙니다. 같이 올라온 설명글에는 '나는 꿈을 쫓으며 소시민이라 욕하는 아버지가 진 짐을 질 자신이 없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비판은 '백열전구' '종량제 봉투' '아무개' 등 여러 단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사에서 그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시들어가는 시체를 안고 나아가려는' 듯하지만 결국 '닻'처럼 정체합니다. 누군가 다가와 공감하고 사랑해주길 바라지만 결과는 백열전구처럼 와장창 깨집니다. 앨범 전체에 걸쳐 어렴풋하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무력감은 좋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여운 속에서 일부 트랙, 특히 후반부에서 신나는(?) 곡들이 등장해도 역설적으로 속뜻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로써의 기능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음악이 문제가 되는 건데요. 우선 아티스트는 최대한 불안정한, 날것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하며, 이러한 이유로 최소한의 공간감을 위한 리버브 정도 외에는 믹싱/마스터링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곤두박질"에서는 녹음 중 마이크 선 연결이 불안정하여 잡음이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이조차도 그대로 실었다고 하죠. 의도는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다음 문제입니다. 이 앨범을 듣는다면 첫 트랙에서 눈살을 찌푸릴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 Dbo가 노래 부르면 이럴까 싶더군요. 노래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도 음정, 발성 등 기본적인 요소가 하나도 갖춰져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티스트의 말을 듣고 본다면 이러한 것들도 어느 정도는 의도 안에 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곡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보단 방해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아낙수나문" (돌연 유치해진 표현을 사용하여 흐름 속에 튀는 바람에 곡 자체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에서의 강한 어조나 "곤두박질"에서 살짝 작아진 목소리, "귀로 듣는 서울"에서의 편안한 톤은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그외의 곡들은 가사에 담긴 감정이 고려가 하나도 안 되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장난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첫 트랙 "소시민"의 자켓으로 시인 이상의 사진을 쓸 정도로 그는 이러한 형식에 대한 도전에 관심을 많이 보였던 것 같으나, 저는 틀을 깨고자 하면 단순히 기본적인 것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더 하는 적극적인 해결책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가사에서도 좀 걸리는 부분은 있었긴 합니다. 군데군데 들어가있는 '시발'이 다소 뜬금 없다고 생각된 게 몇 개 있었고, 위에서 말했듯 축을 중심으로 맴도는 느낌의 서사라 어떤 결론 없이 매듭 지은게 조금 아쉽더군요 ("귀로 듣는 서울"에 울려퍼지는 "별일 없이 산다"가 나름 조소적인 피날레라고 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앨범을 들으면서 여러 아티스트가 생각났는데, Dbo, 얼돼를 거쳐 한국사람이 제일 을를이가의 지향점과 매치될 거 같기도 합니다. 하기사 전 한국사람의 앨범도 별로 이해를 못하는 편이니, 그저 세속적인(?) 귀를 가진 제가 캐치 못하는 것이 있을 거 같기도 하군요. 미래에 보여줄 모습은 그 간극이 좀 좁혀질지요.



(8) 기리보이 - 치명적인 앨범 III (2019.12.2)


 이 앨범에 관해서 힙합플레이야에서 '기리보이는 힙합인가요?'라는 고민글(?)을 보았습니다. 힙합의 경계는 날이 갈수록 허물어져가고 있고 전 그게 매력 중 하나라고도 생각하지만, "치명적인 앨범 III"는 정말 그렇습니다. 기리보이가 최근 인터뷰에서 앨범 제작 기간 동안 힙합, 락을 다 끊고 윤종신 노래를 들으면서 감성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처럼, 앨범에는 발라드의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번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제설"에 스트링 세션이 등장할 때 아, 이 앨범은 이렇구나 를 느낄 수 있습니다.


 "100년제 전문대학"과는 여러모로 대비됩니다. 발라드 감성이기 때문에 곡들은 대체로 무겁고, 이와 같은 맥락으로 통통 튀는 바이브가 강조되었던 전작과 달리 여러 악기들이 곡 안을 꽉 채우고 묵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리보이의 멜로디 메이킹은 물이 올랐고 ("와츠롱" 같은 건 아예 평소의 한계를 깨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위기에 의외라할만한 피쳐링 - 안병웅, 나플라 - 이 재밌게 곡에 녹아드는 것은 기리보이의 총괄 프로듀싱 능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리보이의 전매 특허랄 수 있는 찌질함이 이번에도 주 소재지만 발라드 감성이 짙어지니 개인적인 얘기보단 일반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들으면서 자아내는 감정은 상당히 무겁습니다.


 여담으로, 앨범이 스트리밍으로 공개된 8곡 뒤에 앞서서 싱글로 공개되었던 이혼서류-을-호랑이소굴까지, 11곡이 들어있는 구조인데, 마지막에 세 곡이 붙는게 맞는 흐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지"가 앨범 내에서 제일 튀는 분위기라 극초반이나 후반에 들어가는게 맞다 생각했거든요. 객관적으로 들으려 해도 보너스 트랙 세 곡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리보이는 첫 앨범인 "치명적인 앨범 I"을 떠올리면서 제일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음악을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제가 기리보이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군요. 확실히 기리보이는 누구보다 일찍 힙합 장르의 벽을 허물어왔으며, 이제 장르 하나에 묶어두기엔 너무 커진 존재입니다. 힙합이 맞다 아니다는 언제나 의미 없는 얘기였고, 어쨌든 앨범은 심금을 울리니 좋은게 좋은 거려나요. 그래서 이 앨범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세계를 상대로 낸 앨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분위기가 이래놓고 보니, 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9) Boyrock - 3 (2019.12.3)


 전작 "After Vacation" 이후 10개월 남짓만에 새로 나온 앨범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랩 트랙은 단 하나만 포함되어있고 나머진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인스트루멘털로 채워져있습니다. 그리고 전작과 마찬가지로, 루핑 기반의, 큰 변주가 없는 칠링한 분위기의 곡들이기 때문에 어떤 뚜렷한 인상이 많이 남는 곡들은 아닙니다. 이런 것을 저번 "After Vacation"에서 좀 안 좋게 말했는데, 역으로 랩이 얹어질 용도였다면 나쁘지 않았겠단 생각이 드네요. Illinit이 피쳐링한 "Body Control"의 인스나 나머지 트랙이나 결국 같은 선상이거든요. 어찌 보면 The Quiett의 "Q Train"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시절 인스트루멘털 앨범이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죠). 사소한 얘기로, "Way Out"과 "Sunset Drive"에 들어간 보컬 샘플은 차분하게 감상하기에 쬐끔 몰입이 깨지더군요 저는. 여튼 복잡한 걸 자로 재지 않고 무난한, 편안한 바이브의 비트를 찾는다면 한 번쯤 들어볼만한 거 같습니다 (복잡한 걸 자로 잴 능력도 없는 제가 이런 말하는 게 되게 찔리긴 하네요).



(10) HD BL4CK - Youth (2019.12.3)


 HD BL4CK은 지금까지 낸 앨범을 모두 정규 단위로 규정하고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라 "Youth"는 여섯번째 정규, 올해만 치더라도 세 번째 정규가 되었습니다. 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업량이죠. 허나 개인적으로는 작업량에 비해 결과물의 임팩트가 적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뭐, 비트메이커가 앨범을 만든다면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인스트루멘털을 담아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쪽과, 비트메이커의 앨범이지만 랩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자신은 서포터로써 래퍼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쪽이 있을텐데, HD BL4CK은 현재까지의 앨범에선 "Pieces" 정도를 제외하면 후자의 포지션이었고, 그런 거라면 작업량이 나름의 성공을 향한 과정이자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앨범은 지난 "Leave"와 유사하게 이모 힙합의 틀을 갖췄습니다 - 여러 가지 스타일을 병행했던 "4" 때와 비교해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한 가지 방향을 잡으려는 느낌입니다. "Leave" 때와 달리 랩으로 참여한 트랙은 얼마 없고요, 인스트루멘털 트랙인 "Lighter Intro"와 "꿈에 취해 Intro"가 단순 피아노 연주곡인 걸 감안해보면 확실히 랩이 중심이 된 앨범입니다. 여전히 전 이번 앨범에서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4" 때를 생각나게 하는 광범위한 피쳐링진은 장르 팬에게는 선물일 수 있겠지만, 비트에 집중해본다면 꽤 전형적인 악기와 코드, 루핑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그냥 무난하게 듣게 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트랙 "텐데"가 가장 이모 힙합과 거리가 먼 곡이라는 건 저에게 이번 앨범 곡들 (아니 사실 이모 힙합 자체가?)이 어필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참여 비중이 높은 Leebido의 팬이라면 이번 앨범이 또 반가울 수 있겠지만, 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참여진들 중에서도 크게 기억에 남는 건... oceanfromtheblue와 차붐 정도일까요? 그냥 어중간한 장르의 공식을 답습하여 만든 앨범 같다는 말을 하면 제가 너무 독한 걸지요. 뭐, 이모 힙합의 팬이라면 이번 앨범에서 다른 가치를 더 발견할 수 있긴 할 겁니다. 저는 아쉽게도 이번 것도 이렇게 넘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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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WR
2019-12-08 23:03:57

우리 힙플의 대표 리뷰어이신 highgel 님 혹시 들어본 적 없다면 Belle 앨범 추천드립니다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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