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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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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15 16:26:42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제 640여개의 앨범을 얘기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인 330여개가 올해 나왔더군요... 

그 사이에 알게 된 아티스트가 더 많아져서 더 많이 들은 거기도 하지만

올해 정말 미친 거 같아요ㄷㄷ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ACACY - two weeks (2019.11.6)


 3개월 만에 "Tragedy" 이후의 신작을 내놓은 ACACY입니다....저는 솔직히 그보다 오래 된 줄 알았는데. 아무튼 이번 앨범 "two weeks". 워낙 개인적이고 무거운 얘기를 다뤘던 "Tragedy"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톤으로 돌아올 거란 예상이 있었고, 그 예상은 거의 맞습니다. 대략 소개를 하자면 트랩이라는 장르를 유지하면서 ACACY가 하는 다양한 느낌을 보여줬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ragedy"보다는 과거 badassgatsby와 콜라보했던 앨범 "You classified us."와 일부 겹치는 면도 있고, 또 어떤 면으로는 지금까지의 모습 중에서 제일 하드하게 몰아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볍게 한 번 짚고 넘어가는 앨범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빡센 무드, 밝고 긍정적인 무드,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 느낌의 이모 힙합까지, 정말 다양한 걸 하고 있는데, 아직 ACACY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생각이 제대로 안 서서인지 중심축이 약한 느낌입니다. "Moving Walk" 같은 트랙에서 오토튠을 뺀 랩은 특히 약하고 묻히는 듯하며, 하드한 것은 Khundi Panda가 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TOLD"의 Simba Zawadi는 영 맞지 않는 옷을 입힌듯...). 그나마, 가사에 있어서 여타 트랩처럼 허투루 쓰지는 않는 느낌인 건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 말했듯 "two weeks"는 "Tragedy"를 끝낸 후 잠깐의 숨 고르기 같습니다. 짧은 제작 기간과 앨범 길이가 그것을 더 대변하는 듯합니다. 덕분에 할 말이 준 건 아쉬운데, 사실 제일 아쉬운 건 아직 ACACY만의 무엇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나머진 다음 앨범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2) TOMSSON - META FICTION (2019.7.5)


 TOMSSON은 대구 등지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해온 MC이자 M.T.A.T. 크루 소속 멤버로, 이번 앨범은 1집 "PULP FICTION"의 후속작이자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뜬금없이 발매일이 왜 7월이냐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피지컬 발매가 7월 5일 먼저 이루어졌고, 4개월만인 11월 6일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죠. 선공개 싱글이 다섯 개 있었지만 아무래도 과감한 전략이었는데, 솔직히 블라인드로 앨범을 살 정도로 잘 아는 아티스트가 아니다보니 결국 전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된 후에야 듣게 되었습니다.


 틀기 전부터 17곡이라는 곡 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는 전작 "PULP FICTION"도 마찬가지였는데, "META FICTION"은 전작에 비해 서사가 좀 더 강화되어있습니다. 앨범 설명글을 참조하면 첫 트랙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삼아, 아티스트의 감정 추이를 따라가면서 만들어졌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를 유념한 채로 들어보면 대략 4가지 정도의 단계가 나오는 거 같습니다. 이 중 1-3번 트랙과 15-17트랙은 현재를 묘사하는 페이즈 (1페이즈와 4페이즈가 좀 다르긴 함)이고, 그 사이 과거에서 서서히 현재로 오는 단계를 "화" 정도의 트랙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뭐가 됐든 17곡이란 곡 수는 다루기 까다로운 크기입니다. 이를 밀도 있게 따라오게 하려면 구성이 보통 치밀해야하는 것이 아닌데, 개인적으론 TOMSSON의 야심은 인정하나 역량이 그 정도였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정도 트랙을 이끌어가기엔 좀 허전하고 루즈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TOMSSON의 랩은 이른바 '먹통 힙합'이라 하는 고전적인 붐뱁 형태에 잘 어울리는 건조한 톤과 타격감이 강조된 발음, 정확한 박자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1집은 모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2집은 비트 면에서 좀 실험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대체로 비트들이 미니멀한데, 이 음악과 TOMSSON의 케미가 완전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나마 첫 파트가 제일 균형 잡혀 보이지만, 너무 짧습니다. 심지어 그 다음엔 곧바로 무드가 착 가라앉죠.


 TOMSSON이 좀 더 하드하게 갔어도 좋을 부분이 몇 군데 있기도 합니다. 가사 전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을지, 라임 패턴이 자꾸 바뀌고 박자에 여지를 두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Nobody Know"나 "053 Remix" 정도만 되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 정도의 청각적 쾌감을 주는 트랙은 찾기 힘듭니다. 그렇게 희생하여 얻은 가사는 나쁘지 않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고르고 전개한 티가 나고, 내용이 쏙쏙 들어오진 않지만 적어도 너무 심한 겉멋으로 전달력을 해치는 단계까진 안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음악적인 부분이 아쉽습니다.


 마지막 파트에서도 16번과 17번 트랙은 좀 사족이었던 거 같아요. 전반적으로 밀도 있게 압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스트리밍이 아닌 피지컬로 몇 달 앞서 발매하고, 트랙 수 꽉꽉 채워 앨범을 만든 패기는 응원하고 싶지만, 욕심만큼 따라와주지는 못한 거 같아요. 그래도 선명히 드러나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집에 지지를 보내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3) Vegaflow - V1 (2019.11.6)


 뭔가 신작 리스트에서 볼 일이 없을 것만 같았기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공존하는 이름입니다. 사운드클라우드 이전 아마추어들의 성지였던 "밀림"에서 2000년대 중반을 휩쓸었던 Wassup Crew란 크루가 있었는데, 거기에 Tr2top이란 듀오의 멤버로, 그리고 솔로로 활발히 활동했던 멤버였죠. 마찬가지로 꽤 탄탄한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크루 늘픔패거리에도 속해있었고요. 제 기억은 한동안 잠잠하다 2013년 믹스테입 "What Chu Lookin At Vol.1"을 냈던 것까지였는데,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2016년부터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면서 조용히 활동 중이었네요. "V1"은 그렇게 3년간 발표된 싱글 중 7곡 (일부는 리마스터링)과 신곡 8곡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앨범 내 퍼포먼스는 Vegaflow에 대한 기억 그대로입니다. 본래 거친 톤으로 하드코어 힙합을 표방했던 그였으며 (물론 소속 크루의 방향 때문에 이런저런 스타일 많이 했지만), 이번 앨범에도 목소리를 긁는 듯한 발성과 웅장하고 빵빵한 느낌을 내려는 하드 트랩 비트 (예전의 더리 사우스 스타일과 일견 비슷한)가 수록되어있습니다. 3년 간의 싱글 중엔 "넌 나의 겁" "바보가 됐어" 등, 이런 래퍼들이 종종 하는 발라드 감성의 싱글들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필요한만큼 배제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주 흐름을 형성하는 건 원래 Vegaflow가 하던 빡센 랩, 그것입니다.


 유행을 따라가려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모습을 싫어하는 저이기에 이런 모습이 우선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이 들으면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곡과 과거 싱글 발표 곡들의 편차가 있어, 트랙을 걸러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편 Vegaflow의 랩 퍼포먼스는 크게 흠잡을 데는 없지만, 의외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파워는 잘 터지지 않습니다. 곡 수가 많다보니 거의 비슷한 범위를 유지하는 목소리의 힘은 얼마 안 가 익숙해지고 답답해집니다. 앨범 구성이 일부 싱글 모음집 같은 형태이기 때문에, 비슷한 흐름으로만 가다가, 후반부 "M.O.M."에서 갑자기 가라앉는 것도 조금은 갸우뚱합니다. 트랙에서나 앨범 전체에서나, 좀 더 다이나믹함을 줬다면 좋았을 거 같군요. 끝으로 가사도 뻔한 표현과 뻔한 메세지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자기 과시라는 주제 자체를 뭐라하는 건 아니지만, 독특한 주제가 아니라면 표현이 개성적이어야 보완이 될 테니까요 (이런 면에서 "조져"가 의외로 센스 있게 느껴집니다). 중간중간 들어간 사회 비판은 공감보다는 뜬금 없게만 다가옵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굳은살"에 나온 이야기는 Vegaflow와의 재회를 더욱 각별하게 해줍니다. 다수의 노래에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씬에서 더 인정받으려 하기보단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초점을 둔 것 같군요. 이에 대한 제 반응은 복잡합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정체된 모습을, 이보다 더 할 필요 없으니까, 어쨌든 반가우니까 로 넘기기엔 찝찝함이 가시지는 않네요. 포텐은 분명히 있고, 이번 앨범이 첫 정규이자 과거 작품들을 정리하는 단계였다면, 앞으로 나올 모습에서는 다른 신선함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4) PENOMECO & ELO - ODD (2019.11.7)


 PENOMECO & ELO라는 말로 대강 모든게 설명되는 짧은 앨범입니다. R&B보단 가요의 시선으로 보는게 더 적당해보이고, 그렇다고 나쁜 앨범이란 뜻은 아닙니다. 막 팔짱을 끼고 트집을 잡아보자면, "LOVE?"에 Grey 피쳐링은 상큼한 분위기가 너무 뜬금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지 않았나 싶고, "BODY"와 "DEEP"은 크게 차별되는 트랙은 아닌 거 같습니다 ("BODY"의 아웃트로를 고려하면 의도적인 거 같기도 하고). "VIEW" 정도가 그나마 신선한 느낌은 있지만, 말했듯 가요의 시선에서 보면 되는 앨범입니다. 안 좋은 얘기를 몇 개 끄집어냈지만,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괜찮은 앨범일 겁니다. 저는 아직까지 ELO가 기억에 남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고 (듣다보니 역으로 사인히어에서 이름을 알린 MELOH가 조금 생각나는군요.. 심지어 이름도 비슷하네ㄷㄷ)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들었습니다. 도리어 R&B가 아니라 래퍼로 시작한 PENOMECO가 보컬로 더 인상적이라는 게 재밌는 거 같군요. 암튼 이 앨범은 이 정도 얘기면 제 감상은 다 된 거 같습니다.



(5) Dana Kim - First Anxiety (2019.11.4)


 원래는 커버를 보고 안 들어봐도 되겠다 (?) 하면서 지나가려 했는데, 은근히 좋은 평이 주변에서 들려와서 호기심에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정보가 전혀 없는 신인인데, 우선 커버가 줬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실력의 기반이 되는 보컬이라는 건 인정해야겠습니다. 미니멀한 구성으로 몽환적 느낌을 주는 비트 위에 천천히 부르는 절제된 멜로디가 살짝은 비범하게 보이기도 하는군요. 다만 듣다보면 KATIE도 생각나고, 일전에 들은 형선의 앨범도 생각나고... 아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Mckdaddy 피쳐링과의 의외의 케미는 재밌네요.



(6) 수학자 - 수학의 정석 (2019.11.8)


 999_nilbog라는 이름의 무명 래퍼에서 수퍼비의 랩학원 우승자로 신세 역전(?)에 성공한 수학자는, 랩학원 방송 때도 정형화되지 않은, 본능적으로, 느낌 가는 대로 뱉는 듯한 특이한 랩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으며 '한국의 Young Thug'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Yng & Rich Smalls라는 이름으로 준우승 팀 호미들과 함께 Yng & Rich Records에 반쯤 발을 걸친 그가 드디어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심지어 농담처럼 언급되던 "수학의 정석"이 앨범 제목으로 채택이 되어버렸군요.


 '코리안 Young Thug'이란 별명은 사실 칭찬보다는 벗어야할 굴레에 가까울 것입니다. 특히 수퍼비의 랩학원은 오리지널리티 있는 참신한 컨셉을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보았고, 어쨌든 외국의 누군가가 겹치는 건 좋은 부분은 아니죠. 확실히, 수학자의 자유로운 싱잉과 발성은 Young Thug이 얼추 연상될만도 합니다만 (저는 Danny Brown도 생각나더군요), 본인의 것이 완전히 없진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가르칠 수 없는 'feel'이라는걸 다룬다는 자체로 대단한 부분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Young Thug과 다르게 느꼈던 건 퀄리티적인 면입니다. 아, 물론 수학자가 Young Thug처럼 랩을 할 수 없는 건 지금으로썬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설익은 면을 못 본 척 할 수도 없겠죠. 느릿한 플로우는 그루브가 있다기보단 비어보이고, 가사에는 클리셰의 비중이 높고 위트는 쉽게 발견되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feel을 무기로 했던 사람답지 않게, 삑사리나 저는 박자 등등 자유로움을 대변해야할 부분이 계산된 연기처럼 보이는 건 저뿐인가요. 그저 신인이니 많이 긴장하고 경직되있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좀 더 비트 위에서 뛰어노는 바이브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몸을 많이 사리는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사운드에 대한 실망이 큽니다. 나름 그래도 돈 버는 레이블에 들어갔는데, 사운드에 대한 투자가 이 정도였던 걸까요? 원하는 방향성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오는 음원 정도의 느낌밖에 나지 않습니다. 분명 제가 사운드알못이긴 하지만, Superbee의 랩마저 묻힐 정도라면 비트와 엔지니어링에 문제가 있었던게 아닌가 합니다 (유튜브 에피소드에서는 본인이 맡기는 미국 스튜디오에 맡기겠다고 했는데, 농담이었던 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큰 편차를 내버리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가지 결함 속에서 저는 Young Thug의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분명 기대되는 신인이긴 했습니다.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대놓고 랩 실력이 아닌 다른 강점을 찾는다는 점이 신선하게 작용하기도 했죠. 하지만 나름 기대하고 있던 결과물은 다소 성급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무슨 짓을 써서라도 우승자는 씬에서 성공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한 덕에 Superbee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돌아가야할 길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엔 이제 막 시작한 래퍼입니다. 앞으로 지켜볼 나날이 많이 남아있죠. 저도 다음 행보부터는 조금 더 내려놓고 보아야할듯 하네요.



(7) RAVI - Limitless Pt.1 (2019.11.8)


 RAVI의 작업 속도가 굉장합니다. 2개월 반만에 새 EP가 발표되었습니다 - 그것도 Pt. 1이란 이름을 달고; 그리고 이 글을 쓰는 13일에는 싱글이 하나 더 드랍. 힙합씬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비교해도 상위권에 드는 허슬입니다. 지지난 앨범 ("R.OOKBOOK")에서 조금씩 말이 나오던 GROOVL1N이란 단체는 더욱 전문적인 형태를 갖췄으며, 이번 앨범은 GROOVL1N 가족끼리의 작업 비중이 높아 본인을 매개로 입지를 단단히 하려는 의욕이 엿보입니다.


 앨범 자체는 크게 전작과 달라진 걸 못 느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RAVI의 퍼포먼스 자체는 정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대부분은 이미 습관으로 굳어버려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 보입니다. 현란한 텅트위스팅을 앞세운 스킬풀한 랩이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아무리 들어도 RAVI가 하는 것은 지저분한 장치가 너무 많아보입니다 - 특히 저세상 텐션의 추임새들... 이것을 뭐라 비유해야할지; 오토튠 싱잉을 즐겨하지만, 이런 텐션 높은 벌스 때문인지 아니면 멜로디 때문인지 비트에 잘 묻는 경우가 없습니다 - 그래도 지난 앨범에선 멜로디가 강조된 탓인지 좀 노래 같았는데 이번 꺼는 그냥 무작정 오르락내리락... 웬일로 "BADA$$"와 "BRAG"는 오토튠을 빼서 조금 듣기 편하긴 했습니다. 이런 랩의 지나친 지저분함은 피쳐링진과 비교할 때 더욱 극명해집니다. 전작은 그나마 Cosmic Boy, GXXD의 비트가 이런 걸 보완해주긴 했는데, 함께 한 YUTH, Flash Note 등의 비트메이커는 RAVI의 취향을 저격시켜주긴 했을 거 같지만 단점을 보완해주는 단계까진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영 재밌게 듣진 못 했네요.


 힙합하는 아이돌, 제2의 은지원 쯤으로 느꼈던 RAVI의 행보는 갈 수록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GROOVL1N에는 ChillinHomie가 영입되었는데, 그렇다고 그를 '아이돌 가수 밑으로 들어갔댄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건 RAVI가 일궈낸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정도로 컸다는 의미가 될 겁니다. 이 성과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나 전작 "NIRVANA II" 감상글 마지막에 적었듯, 그것이 앨범의 호감도를 대변할 순 없습니다. Pt.2가 예고되어있으나, 제 예감으로는 Pt.1과 그리 다르지 않은 흐름으로 갈 것만 같군요. 그러면 그땐 글을 좀 짧게 적어야지...



(8) Zico - Thinking Pt.2 (2019.11.8)


 2주 가량의 간격을 두고 Pt.2가 발매되면서 드디어 Zico의 정규 1집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Pt.1을 들으면서 빡센 건 Pt.2에 넣었나보다 하는 추측을 했지만, 선공개곡 "Balloon"과 "남겨짐에 대해" 뮤비 티저를 확인하고선 전혀 그렇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Pt.2를 들을 때는 감상의 초점이 조금 현실적으로 맞춰진 상태였고 그때문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Pt.1보다는 괜찮게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 감상의 이유 중 하나로는 Pt.1보다 좀 더 정돈되고 집중된 무드라는 걸 들 수도 있겠습니다. 다양한 분위기가 들쭉날쭉 서있던 Pt.1에 비해 Pt.2는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주를 이룹니다 - 뱅어 트랙으로 들어간 "another Level"도 막 밝은 트랙은 아니라 의외로 크게 튀진 않습니다. 다만 온전한 Zico의 랩의 비중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트랙은 제휘가 모든 보컬을 담당한 발라드 곡이죠 - "사랑이었다"처럼 프로듀서의 포지션만을 담당한 트랙입니다. 이런 곡들은 특히나 가요적인 성향을 띄기 때문에, 뭐가 됐든 래퍼 Zico의 모습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사는 저번 파트보다 더 좋았습니다. 이번 곡들이 전체적으로 가라앉다보니 좀 더 집중이 될 수 있는 거 같네요 - 특히 "Balloon"에서 풍선과의 비유로 간결하게 본인의 감정을 표현한 건 꽤 감명 깊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다양한 비유, 펀치라인을 최대한 덜어내고 쓰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게 결과물로 표현된 건 전작보다 본작에서 더욱 드러나는 거 같습니다. 여전히 Zico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이 다이나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게 다이나믹한 곡을 만나면 상관 없지만 반대의 곡에서 반대의 바이브를 드러내기 위해 조절하는 건 발전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앨범의 맥락으로 볼 때 "Dystopia"에서의 랩도 덜 스킬풀해도 되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거듭 말하듯, 전작보단 자연스러워진 거 같아요.


 최근 힙합엘이와의 인터뷰로 Zico 작품에서 느껴오던 의아함은 대개는 해소가 되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제 취향에 부합하진 않습니다. Pt.2는 일관성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Thinking"이라는 큰 앨범으로 1과 2를 합치면, 여전히 혼란스러운 면이 있는 구성입니다. 아마추어 래퍼,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시작하여 어느덧 한 레이블의 대표까지 맡게된 Zico는 어느 때보다 본인의 야심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래퍼가 아닌 보컬로,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로, 플레이어가 아닌 대표로. 어찌보면 예견되었던 과정이고 어떤 면으로는 박수 받아 마땅한 과감한 행보죠. 그게 한데 몰려 나타나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좀 집중력이 분산되는 거 같아요. 늘 Zico의 앨범이 샘플러 같이 느껴졌던 이유도 거기 있고, "Thinking" (1+2)은 어찌보면 제일 심한 편인 겁니다. 이제 막 KOZ를 시작하여 새로운 챕터를 열어가는 거라면 앞으로의 먼 길이 남아있으니, 차근차근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갔으면 좋겠습니다. 여튼, 화산에 비할만한 잠재력을 가진 아티스트인 건 맞다고 생각되기에.



(9) ASNP (에이시안네이플) - Did he bake this pizza? (2019.11.8)


 예상하셨겠지만, 딩고 다모임에서 이름을 보고 기억에 남은 상태에서, 마침 앨범이 나왔길래 들어본 케이스입니다. H&B Company라는 회사 이름 외에는 소속이나 과거 커리어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고, 8월에 나온 싱글에도 신예 프로듀서라고만 되어있어서 활동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거 같군요. 여담으로 '에이시안네이플'의 영어 철자가 사운드클라우드 주소를 제외하면 어느 곳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ㄷㄷ 앨범 제목에 피자가 있는 걸 보니 네이플은 '나폴리' (Naples)인가 보네요.


 얘기는 장황하게 풀었는데 앨범에 대한 감상은 큰 건 없었습니다. 트랩 비트로 이루어진 앨범인데... 뭔가 튀는 느낌은 없었던 거 같아요. 딩고 다모임 때 가지고 온 비트에서 베이스가 언급되었는데, 전 그 비트나 (사실 딩고 영상은 배경음으로 녹음된 거니까 그렇다치고) 이번 앨범이나 베이스가 막 제대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마지막 트랙 "Follow Me @asnpasnp" (본의 아니게 인스타 홍보를;)이 좀 프레쉬한 느낌이 있었지만, 나머지 랩 트랙은 그냥 흔히 보는 트랩 노래였단 느낌. 더불어 낯선 이름의 래퍼들이 피쳐링진에 많이 참여했는데, 이 래퍼들도 아직은 자신의 것을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보였습니다 - 각자 뻔한 가사 피하고 참신한 비유 쓰려는 건 마음에 들었어요.


 스트리밍에 앨범을 제외하고 유일한 작품인 싱글 "24 Hours"는 붐뱁 트랙으로 이번 앨범과 결이 다릅니다...만 악기 쓰는 방식이나 코드 전개는 트랩스러운 게, 이 사람은 트랩 프로듀서다 싶더군요. 아직은 이름만 기억해두고, 매력은 앞으로 발견해가야할 거 같습니다. 



(10) S+FE - 안전제일 1탄 (2019.11.9)


 돌연 등장한 크루 S+FE의 컴필레이션입니다. 낯선 이름인데, 제가 알기로는 앨범 참여진이 크루 멤버들 뿐입니다. 즉, 래퍼 Zene the Zilla, Kor Kash, Luka Lavish에 비트메이커 badassgatsby, stevenc4stle, TRAP GAKA가 멤버인 거죠. 좀 더 알아보니 Luka Lavish가 Lukydo로 활동하던 시절의 앨범 "isyous+fe" 수록곡 "you ain't s+fe"가 리믹스 버전으로 이번 앨범에 실렸고, 적어도 이름의 유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최근 한국 트랩 앨범과 조금 다르게, 랩이 무척 강조되어있는 모습입니다. Zene the Zilla의 이런 속사포 랩을 들어볼 수 있을 줄 몰랐네요. 비트가 별로인 건 아니지만, 한 걸음 정도 물러나 기반을 깔아주는 역할까지만 하는 듯하고, 앨범의 관전 포인트는 위에서 난리난듯 놀아제끼는 세 멤버입니다. 피쳐링진으로 표시된 각 곡의 참여 래퍼가 얼핏 보면 다양한 조합 같지만 실은 순서만 다를 뿐 전곡 세 명인데 (아마 벌스 순서로 쓴듯), 이러다보니 약간 팀 같은 느낌도 나고, 일관성 있게 셋의 조합을 듣는다는게 좋은 점인 거 같기도 합니다. 사실 Luka Lavish의 비교적 '차분한' 톤과 Kor Kash의 자유로운 톤 (Korean Young Thug는 여기 있었습니다)이 워낙 극과 극이라 잘 묶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스타일을 돌아가면서 듣는게 재미는 있네요.


 셋 다 어느 정도 내공이 있어서 플로우, 라임, 가사 내용이 뻔하지 않고, 무엇보다 '안전'이라는 뜬금 없어 보이는 컨셉은 예상치 못한 신선함이 있어서, 뇌절에 가까울 정도로 반복해도 그렇게 질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턴업되는 곡들 위주지만 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칠링하는 분위기의 곡도 넣어놓아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큰 목표를 세우고 만든 앨범은 아닌 것 같지만 머리 비우고 들을만한, 깔끔하게 잘 빠진 작품입니다. 2탄에선 어떤 느낌으로 끌고 갈지 기대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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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9-11-15 16:59:56

저도 톰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느꼈어요. 비트가 심심해서 더욱.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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