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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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19:20:45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갈수록 글의 길이가 폭주하는 거 같아서 일기장이라는 말하기도 좀 찔리긴 하지만...;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kitsyojii - Yanbian 2 (2019.10.25)


 이번에 LBNC (구 Layback Records)에 새로 합류한 kitsyojii가 합류와 함께 발표한 EP입니다. 이는 그가 5월에 발표했던 "Yanbian"의 후속이기도 하죠. 비단 이번 앨범 뿐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는 연변 거지, 범죄자 컨셉을 내세워 노래를 만들어왔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기믹인지 확인하긴 어렵고, 노래에 등장하는 거지 Gang, HOFGANG이 진짜 음악 크루인지 뭔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한국 감성에 범죄 얘기를 대놓고 하는 것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들을 거리가 되어줍니다.


 그 근원은 자신이 정해놓은 기믹의 틀에 갇혀 따분해질 수도 있는 리스크를 다양한 표현과 소재로 어느 정도 극복해냈기 때문입니다.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삽화들과 잘 어울리는 kitsyojii의 캐치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도 한몫합니다. 약간 거친 톤도 은근 테마와 잘 달라붙는 데가 있죠. 즉슨, 그저 컨셉으로만 밀고 나갔으면 금방 재미 없어졌을 것이지만 음악으로만 놓고 봐도 kitsyojii의 앨범은 들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소속사를 옮긴 덕에 전곡 지원을 해준 마진초이의 비트도, (장르 탓에 번뜩이는 재치는 좀 줄어있지만) 빠방한 서포트를 해줍니다.


 저는 "Yanbian" 믹스테입을 들어본 적이 없고 kitsyojii는 이름만 듣다가 (kitsyojii를 열심히 미시던 힙합엘이 태풍 님 덕택...) 수퍼비의 랩학원에서 음악을 처음 들어보았고, 제대로 된 결과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예상보다 신선하고 끌리는 스타일이라고 느껴지네요. 다만, 위에서 '어느 정도 극복해냈'다는 그 기믹의 틀에 언제든지 도로 갇힐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레이블에 합류하여 자신과 다른 스타일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하게 될텐데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군요. 우선은 이제 막 알아가는 뮤지션이니 긍정적인 쪽으로 기대를 해봅니다.



(2) APRO & Leellamarz - [Leellamarz] is Different (2019.10.25)


 "Room Service"에 이어 이번에도 Leellamarz 신작은 비트메이커와 콜라보 앨범입니다. APRO란 이름이 사알짝 낯익었는데 다름아닌 "힙합왕-나스나길" OST에서 본 이름이더군요... Basterd란 팀에서 Voxx란 이름의 래퍼로 시작하여 현재는 비트메이커로 전업한 거 같고요.


 앨범 설명에는 "Different"를 코드로 하여 희.로.애.락을 담아냈다고 되어있습니다. 듣고 나니 살짝 정신 없는 앨범의 흐름이 이해되더군요. 장르적으로 볼 때 노래-랩-노래-랩의 순서로 되어있습니다. "Room Service"에 이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Leellamarz의 노력이 다시 보입니다. 뭐, 퍼포먼스 자체는 '릴러가 릴러했다' 정도일 거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의 노래보단 랩이 더 좋고, 노래에 있어선 "..." 같은 고음을 담아낼 정도의 내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처음 "MARZ 2" 시리즈를 듣기 시작했을 때보단 멜로디도 부드러워지고 (특히 오토튠을 버린 건 진짜 좋은 선택 아닌가 합니다) 매력적이게 되었지만... 가벼운 목소리로 이리저리 다이나믹하게 튀는 랩이 전 더 기대가 되네요.


 APRO의 비트도 무난하지만, 어쨌든 Leellamarz의 노래와 랩, 두 양극단의 분위기에 선 퍼포먼스에 맞게 비트를 잘 만들었습니다. 특히 랩 비트에서 임팩트 있게 후려치는 일렉 기타와 베이스 음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약간 Goosebumps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노래에 받친 비트도 수려하게 마무리되어있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로 랩에 좀 더 집중하다보니 비트도 이쪽이 더 기억에 남는군요. 앨범은 Leellamarz의 이름 때문에 찾아듣는 사람이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APRO란 이름을 더 기억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모든 걸 말하기엔 너무 짧은 앨범이니 더 길게 지켜봐야겠죠.



(3) KOREANGROOVE - YAGWANG 2 (2019.10.26)


 KOREANGROOVE는 부현석의 크루로 알려진 Friemilli의 멤버입니다. 이번 앨범은 올해 1월에 나왔던 "YAGWANG"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죠. 앞서 앨범을 냈던 Friemilli의 멤버 - 부현석과 Rakun과 달리 KOREANGROOVE는 오토튠 싱잉 랩을 주 전공으로 삼은 뮤지션으로, "YAGWANG"이나 이번 앨범이나 그의 싱잉 랩이 주가 됩니다. 앨범 초반은 비교적 발성에 힘이 덜 들어가있고 하이톤인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러던 것이 "Picture Perfect"부터 거칠어지고 좀 더 전형적인 트랩에 가까워집니다. 후반부 두 트랙에선 랩도 나오고, 마지막 "My Cosmos"에 이르러 다시 초반의 스타일로 돌아오면서 앨범은 마무리를 맺습니다.


 아직 KOREANGROOVE의 목소리를 잘 몰라서 그런지, 이렇게 다른 스타일을 보여줄 때마다 저는 다른 래퍼의 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싱잉 랩인데도 음역대가 달라지면서 목소리가 많이 달라져서, 처음엔 없는 피쳐링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알고 보니 팀이었던건가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뮤지션이 앨범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고 스펙트럼이 넓은 것은 오히려 장점에 가깝겠지만, 왠지 이번 앨범에서는 집중력이 분산되는 효과를 낳더군요.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지만, 각자 다른 스타일 간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단 느낌이었습니다. "YAGWANG"은 비교적 한 스타일로 쭉 나갔던 탓에 참신한 맛이 있진 않아도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었던 것과 대비됩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부분은 "YAGWANG"과 비교하여 탑 라인이 약해진 느낌이라는 점. 이번 앨범은 가끔가끔 Futuristic Swaver가 생각날 정도로 몽환적이고 단순한 멜로디가 좀 더 비중이 컸습니다. 특히 "Picture Perfect" 같은, 비트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차라리 그저 순수 랩, 혹은 싱잉이라도 좀 더 타이트하게 뱉은 쪽 ("Moon Slide", "CHING!" 등...)에선 이런 부분을 덜 생각해도 되서 그런지 좀 더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싱잉 랩을 내세우던 뮤지션인데 랩이 좀 좋으니 그쪽으로 더 팠으면 좋겠다고 하는게 맞는지 헷갈리는군요. 종합 선물 세트 같지만, 저에겐 내용물이 각자 놀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한 앨범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4) Gem I - 귀중품 (2019.10.26)


 웃기지만 Gem I를 알게 된건 힙합엘이와 힙플에 올라오던 자기 홍보 글을 통해서였네요. 홍보 글은 잘 읽진 않지만 글이 나름 정성스럽게 (?) 쓰여있기도 했고, 뮤직비디오가 같이 올라와있던 "Accessory"가 살짝 끌려서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적어도 2017년부터 비트메이커 MasteClass와 "The Colored Paper"란 팀으로 활동했으며 (이 팀은 작년 12월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MFM Presents"라는 레이블 (혹은 크루?)에 소속된 듯합니다. Gem I에게 "귀중품"은 솔로로 내는 첫 앨범 단위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단연 제일 매력적인 포인트는 비트입니다. 때론 재지하게, 때론 EDM스럽게, 다양한 스타일의 비트가 있지만 전부 귀가 피곤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레인지가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Gem I 음악의 중심축이기도 합니다. 그의 랩 (적어도 지향하고 있는 모습은)은 매끄럽고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며, 라임이나 리듬 구조에 있어서도 이래저래 고민한 티가 납니다.


 결국 무난무난하다는 것은, 잘 다루지 않으면 심심하고 허전해지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INNout" 같은 트랙은 좀 더 터져줘도 됐을 거 같고, "Accessory"에서 후렴 전에 마디를 비우는 부분은 그루브가 살기보단 정말 빈 구멍으로 느껴집니다. 중간중간 멜로디가 들어가는 부분은 멜로디가 되게 어정쩡하게 들어가있어서 비트랑 어울리지 못합니다. 약간 굳어진 습관 같아 보이는 발음, 발성도 사람에 따라선 거슬리는 포인트로 작용할 겁니다.


 이 단계의 래퍼들은 딱 흠잡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과도기를 흔하게 겪습니다. Gem I도 그런 거 같아요.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귀에 꽂히진 않습니다. 결국엔 남들과 차별화되는 뭔가를 잡아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앨범 프로덕션이 꽤 맘에 들었어서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되지만,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혹은 아예 이대로 나아가야할지는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겠죠. 사실 이전 작품들을 거의 안 들은 상태에서 이 앨범만으로 얘기하는 거라 정확한 감상은 아니긴 한데, 앞으로 그에 대해서 정보를 더 쌓아가면서 판단해보겠습니다.



(5) EK - WOLF (2019.10.28)


 피쳐링이나 쇼미더머니를 제외하면 솔로 활동을 자제(?)하던 EK가 드디어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좀 오래 전 인터뷰 (힙합보부상)에서 본인의 솔로 활동보다 MBA가 먼저다 라는 태도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 있었는데, 이제 MBA 다른 멤버들도 사인히어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소개가 되었고, 본인도 쇼미더머니 시즌 8에서 활동을 잘 마쳤으니 솔로 앨범이 나오기 적기였을 겁니다.


 트랩 앨범을 두고 '절제미가 보인다'라는 말을 하면 아마 웃겠지만, "WOLF"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EK는 특유의 보이스 덕에 어느 장르에나 잘 붙었지만, 기본적으로 얇은 톤이기 때문에 빡센 랩을 해도 폭발력이 있는 하드코어 랩하곤 대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워낙 정박적인 리듬 패턴이기 때문에 더 그랬죠. "WOLF"는 이런 EK의 특징을 이해하고 딱 현재 할 수 있는 것만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보여준 앨범 같습니다. 비트는 대부분 미니멀하게, EK의 보컬을 잡아먹지 않게 비워주고 있으며, 여기에 깔끔하게 전반은 랩, 후반은 오토튠 싱잉으로 나누어, 분야별로 자신의 능력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피쳐링진도 본인의 영역을 많이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단 두 명만 선정이 되었죠. 누군가는 심심하다, 밋밋하다 정도로 얘기하지만 전 과하지 않았다고 해석이 되며, "WOLF"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맞지 않는 한 곡, 엔딩 트랙인 "Don't Worry"는 신선한 반전이자 훌륭한 대미를 장식하는 곡입니다. 확실히 앞서 '잔잔했던' 분위기를 뒤엎기 때문에 주목이 많이 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EK를 트랩 래퍼에 가깝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곡이 많다고 앨범을 좋게 듣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것까지도 정말 요소 요소가 적당량 들어갔던 앨범 같아요. 그때문인지, 요즘은 짧은 데도 길게 느껴진 앨범이 많았던 데 비해 이번 앨범은 대부분 3분이 넘는데 짧게 느껴지더군요. 솔로 커리어의 시작으로써 상당히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한듯한 앨범, "WOLF"였습니다.



(6) Slyme Young - Success, Love & Rhymes (2019.10.28)


 혹시 2009년 나온 김태우의 "사랑눈"이란 곡에 듣도 보도 못한 래퍼 둘이 참여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 둘은 '슬라임' '드로플렛'으로, 당시 정글라디오 같은 아마추어 커뮤니티에선 꽤 유명했던 이름이었습니다. 둘은 "Liquid"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가요계 언저리에서 이런저런 앨범도 냈었고, 그 중 '슬라임'은 믹스테입, 싱글 및 다수의 프로젝트, NTL이라는 소규모 레이블 설립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 2016년 이름을 바꾸게 되니 그게 Slyme Young입니다.


 이처럼 Slyme Young은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짧지 않은 커리어를 가진 동시에, (솔직히 고리타분한 구분이지만) 음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애매한 정체성을 가져왔던 래퍼입니다. "Success, Love & Rhymes"는 그에게는 두 번째 EP로 (참고로, 멜론에는 '슬라임'과 'Slyme Young' 페이지가 따로 있어서 정확한 디스코그래피는 둘을 다 확인해야합니다), 본인 이름 "SLYME"을 풀어쓴 원뜻의 구절이었다고도 하네요.


 그래도 커리어의 길이가 있기 때문인지 랩에선 농익은 느낌이 납니다. 쏘아붙이는 듯한 톤은 타이트한 플로우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 2010년 전후 음악을 시작한 아마추어 래퍼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죠. 개인적으로 연상되었던 Nuttyverse도 비슷한 시기니까요. 다만 그런 랩을 들을 수 있는 곡은 많진 않습니다. 앨범 9곡 중, 인트로와 아웃트로,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면 결국 "Morning Coffee Freestyle"을 제외하고는 예의 사랑 노래들이거든요. 물론, 사랑 노래라고 퀄리티를 무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가요계 언저리(?)에 있었던 경험 때문인지, 대중적으로 보면 역시 퀄리티는 어느 정도 받쳐주는 느낌입니다. 특유의 목소리 때문에 살짝 들어간 오토튠이 그리 거슬리지 않고, 멜로디가 편하게 비트와 어울리는 편입니다. 


 결국 앨범은 또 하나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앨범입니다. 크게 보았을 때는 단점이라고 지적할만한 부분이 잘 보이진 않습니다. 앨범 구성 면에서 사랑 노래가 너무 한 곳에 몰려있다보니 편견 아닌 편견을 갖고 들어버렸다는 점, 그래서 그의 목소리 강점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허나, 애초에 타겟이 하드코어 힙합팬이 아니었다면 크게 생각할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죠 - 그러면 오히려 '힙합적인' 트랙들이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구성을 짤 때 비슷한 분위기로 잘 섞어서, 그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으레 이런 앨범이 그렇지만 사운드에서도 살짝 맥 없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특히 "Fragile Thought"가 하필 E-Sens의 "CLOCK"과 샘플이 같아서 비교가 좀...;), 어떤 부분은 Slyme Young의 목소리가 과하게 쥐어짜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헌데 저는 이 앨범은 그냥 힙합 매니아 입장보다는, 라이트 유저 용 앨범으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점에선 결국 인지도, 제작비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더 이 앨범의 결과를 좌우한다고 봐야할까요. 개인적으론 나쁘지 않은 재회였지만, 분명하게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는게 씁쓸하군요.



(7) ONiLL - The Illian (2019.10.29)


 두 달만에 새로운 EP입니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되는 뮤지션인데 상당히 부지런하네요. 틀자마자 나오는 먹먹한 붐뱁 비트는 전작 "Tie Your Shoes"보다는 "Cassette Tape"의 바이브를 잇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90년대 붐뱁, 소위 '먹통 힙합'을 주무기로 하였고, 이번에도 전곡 프로듀싱으로 무장하여 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죠. 


 붐뱁충으로써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Cassette Tape"을 듣고 꽤 기대되는 뮤지션이라 생각하였지만, 조금 더 차가워진 머리로 들어본 이번 앨범은 "Cassette Tape"와 거의 동일선상에 있고, 그래서 더 단점들이 눈에 띕니다. 기본적으로 붐뱁은 댐핑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터져주는 맛으로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ONiLL의 음악이 너무 잔잔한 것이 문제입니다. 단순한 루핑과 살짝살짝만 끼어드는 샘플 기반으로 한 비트는 사실 제 취향 선에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읊조림'에 가까운 건조한 랩톤이 문제입니다. 이전에 "Cassette Tape"에 대해 글을 쓸 때 비트와 케미가 괜찮은 스타일이라고 했고, 그 말을 번복하는 건 아니지만, 연이어 듣다보면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앨범 전반은 약간 "Tie Your Shoes"에 더 가까운 차분한 무드라 더 그렇습니다. "Trespass"를 기점으로 조금 더 하드해지는 후반부는 그나마 낫지만, 여기서부터 등장하는 피쳐링진들과 비교할 때 단조로움은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묵직하고 하드코어한 스타일을 연출하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 읽겠지만, 이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잘 달라붙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후반부에 가선 약간 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보이는데, 결론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완전히 만족스럽게 터진 건 없습니다. 비트메이커가 주업이라고 오해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래퍼로써 자신을 각인시킬 거라는 걸 알았으니, 조금 더 귀를 잡아끄는 랩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8) Jiho Givenchy - WHOLE LOTTA CASH (2019.10.29)


 사람마다 여러 가지 포인트가 있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쇼미더머니 시즌 8에 대해 제일 빡쳤던 점은 Jiho Givenchy가 3차 예선까지 올라갔다는 점이었습니다. 과연, 캐릭터 하나는 뚜렷하긴 하죠 - 근데 어느 선까지 그를 음악가로 인정해야하는지가 문제였던 거고, 저는 적어도 방송 안팎에서 알고 있는 모습을 기반으로는 음악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앨범이 나왔다고 할 때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이 많아 결국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보았네요.


 밑도 끝도 없이 귀가 아픈 돈 자랑을 늘어놓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앨범은 비교적 차분합니다. 그렇다고 숨겨두었던 랩 실력을 드러냈느냐 하면 그건 아니죠. "WHOLE LOTTA CASH"는 어떤 면으로는 매우 신선합니다. 전통적인 벌스와 훅 구조를 탈피하고, 그냥 비트를 듣고 되는대로 늘어놓은 듯한 랩이 가득합니다. 듣다보면, '프리스타일 같다' 수준이 아니라 '프리스타일이어야 한다' 수준의 느낌이 듭니다. 내용도 잘 이어지지 않고, 박자나 라임 등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한 거 같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결국 요즘 형식을 벗어던지는 트랩이 유행했기 때문인 것 같군요. 내용도 사실, 일단 한 곡에 들어있는 문장들이 돈 얘기, 여자 얘기이긴 하니까 ("You the One" 같은 사랑 노래도 있습니다 사실) 굳이 앞문장과 안 이어져도 주제에 충실했다고 볼 순 있겠죠. 어쨌든 Jiho Givenchy에 대한 불호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인 오버스러움이 빠져있기 때문에, 앨범을 듣는게 예상보단 쉽습니다. 더불어 "Whole Lotta Cash" "Love is Fuck" 같은 캐치한 후렴구도 인상을 좋게 해주는 요인 중 하나이죠.


 앨범이 좋냐 안 좋냐 하면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힙합 트랙의 음악적 요소를 다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평가를 하려면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거든요. 여튼 생각보다 들을만 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래서 굳이 '이 앨범은 기필코 피해야한다'라고까지 말은 안 하겠습니다. 다만 앨범을 좋아하려면 음악의 기준을 많이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 같은 붐뱁충에게 그런 거 요구하시면 안 되죠...



(9) Hoody - Departure (2019.10.29)


 이 시리즈를 하면서 꽤 유명했던 아티스트조차도 처음으로 각 잡고 들어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Hoody도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찾아듣지 않았던 건 수많은 피쳐링에서 Hoody가 존재감을 드러낸 곡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개인 취향 차이가 분명 있겠지만, 제 생각엔 바이브레이션 비중이 적고 가성 같은 보이스톤이다보니 보통 곡 주인들이 갖고 있는 파워풀하고 화려한 목소리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첫 정규 앨범인 "Departure"는 Hoody 목소리만을 위한 환경을 꾸며주고 있어, 그동안 못 발견했던 매력을 한꺼번에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힙합엘이 인터뷰에선 특별히 감정이나 시간 순서에 따라 트랙을 배열한 것은 아니라 하였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단순에서 복잡으로, 일반적에서 개인적으로,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변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Hoody 본인도 뒤쪽으로 갈수록 무거운 트랙을 뒤로 배치하긴 했다고 말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댄스 가수들이 생각나는, 레트로 팝 분위기의 트랙에서 출발하여, 뒤로 갈수록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많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멜로디 메이킹이 정말 깔끔하게 잘 되어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래퍼들이 멜로디 만드는 것만 듣다가 오랜만에 R&B 앨범을 들어서 그런 걸까나요, 정말 군더더기 없이 어레인지가 되어있더군요. 뒤쪽에 있는 곡들을 무게 있는 트랙이라 칭한다면, Hoody의 목소리로 켜켜이 쌓인 감정선을 전부 담아내기엔 약간 부족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멜로디가 아름다워서 별로 불만이 생기진 않습니다. 역으로 피쳐링진으로 참여한 Gray와 J.Clef가 이 앨범에선 너무 화려하고 강렬해서 조금 안 묻는 것 같았습니다. 과거 Hoody를 못 느꼈던 상황이 역전되는 걸 보면 정말 본인 주도적으로 앨범을 잘 만든 듯합니다. 이게 아무래도 정규 앨범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적어도 앞으로, Hoody란 이름을 발견할 때 조금 더 기대를 갖고 들어봐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10) du7 - The du7 Vol.1 (2019.10.28)


 du7은 Lnb의 Lemac이 이끄는 크루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이 나오고 나서야 Lnb가 듀오라는 걸 알았습니다...). H!GHLY BASS, hong2, Radd, Ski Dash 등의 멤버가 있으며,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멤버들의 작업물은 hong2의 EP, 사운드클라우드까지 확장할 경우 올해 들어 나온 멤버별 믹스테입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크루를 소개하는 첫 기회일듯한 이번 앨범은 Lemac이 총 프로듀싱을 맡았고, 여기에 대체로 단체곡 형식으로 멤버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곡에 참여하였습니다.


 프로듀서가 이끄는 크루라서 그런지 처음 귀에 들어오는 건 비트와 사운드입니다. Lemac 혼자여서 그런지, 혹은 자신이 이끄는 크루여서 그런지, 타 아티스트에게 Lnb가 준 비트에 비해 훨씬 실험적이고 과감한 전개가 눈에 띕니다. 그야말로 꼴라주 형식이라고 부를만한 각종 사운드 소스의 조합이 질서를 이루며 진행되고, 그것이 각 래퍼들에 소리에 맞춰 변주되는 모습은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참여 래퍼들의 개성도 무척 뛰어납니다 - 무엇보다 멤버들이 저마다 차별화되는 보이스 톤을 가졌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저는 'Grack Thany 조용한 버전'이란 비유가 떠오르더군요. 낯선 이름과 낯선 목소리들이지만 듣는 재미 하나는 보장되는 앨범입니다.


 굳이 단점을 집자면, 래퍼들이 지나치게 사운드 쪽에 집중한 듯, 가사가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유치하고 단순하여 가사를 몰랐을 때가 조금 더 좋았다는 것. 그리고 컴필레이션이지만 단면적인 모습만이 강조되어있어서 래퍼들이 가지고 있는 포텐을 조금밖에 확인 불가하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해, 아직 이것만 듣고는 각 래퍼들이 솔로 앨범을 만들 때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추측이 안 됩니다 (이미 솔로 앨범/믹스테입이 있는 래퍼한테 말하기는 주제넘으려나요). hong2의 랩을 듣고 노창이 쉽게 떠오른다는 점도 누군가에겐 걸리는 부분일텐데, 이점에서는 1번 2번 트랙 두 트랙 뿐이고, 또 hong2의 솔로 EP는 랩이 아니라 보컬에 치중하여 완전 다른 스타일이란 점이 특기할만 합니다. 여튼 앨범 분위기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들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론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함이었습니다. 유일하게 피쳐링으로 참여한, 나름 유명인인 YunB의 존재감이 잘 안 느껴질 정도였어요. 이게 그들이 단순히 '이상한 사람들인 척'을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 믿습니다. 이 좋은 첫인상이 이어가기 위해서, 위에서 말한대로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군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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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1-04 19:45:07

와 어마어마합니다.

중간중간 재미를 위해 자켓사진이나 대표곡 유튜브 등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어쩌면 자극적으로 별점이라도 ㅎㅎ

여튼 정말 많은 앨범을 꾸준히 들으시는 것 대단하시네요.

인스타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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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20:01:52

어라어라 이거 용준님이신가요
와이 만 보고 와이요 님인가 했는데 가만 보니 (그 사이 0.01초 YG인가 했던 순간을 지나) YJ..
흐흐

뭔가 제가 강박증 비스무리한 것 때메 양식을 중간에 바꾸는걸 싫어해서 사진이나 노래를 추가 안했습니다ㅡ 사실 인스타 시작한건 사진을 추가하고 싶어서라는 무시무시한 진실..
별점은 제 취향이 워낙 편향되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점수 매길만한 자격은 안된다 생각합니다ㅎㅎ

인스타 아이디는 danceddotone이에용!

2019-11-04 20:30:06

반가워요. 팔로우했어요. 

인스타보니 토탈 621개 이군요. 워우. 

 

WR
1
2019-11-04 20:46:56

흐흐 감사합니다
아드님이 완전 작은 클론이네요ㅎㅎ

2019-11-04 21:02:18

네 ㅎㅎ

2019-11-04 20:04:38

이렇게 다 들으시면 음악적인 스팩트럼이 엄청 넓어지시겠어요,,,

 

전 엄두가 안 나던데 

WR
2019-11-04 22:26:48

뭐 정해진 범위에서만 들으니까 꼭 그렇진 않을 거 같아요

대신 뭔가 있어보이게 글 쓰는 건 좀 늘어나는 거 같기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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