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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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23:06:05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진짜 밀린 앨범이 많아서 바쁘게 듣고 쓰다보니 벌써 다음편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제 대기 리스트엔 8개의 앨범이 있단 사실 믿어지십니까 크흡.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태빈 - NMS (nomosloth) - 泰斌 (2019.10.1)


 태빈은 최근 쇼미더머니를 통해 유명해진 안병웅과 "M.S.F."라는 팀을 하고 있는 래퍼입니다 - 저번에 이 인스타에 M.S.F.의 5곡짜리 EP를 소개하기도 했죠. 같은 팀이란 것에서 예상할 수 있듯, 태빈의 스타일도 90년대 먹통 붐뱁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Years Ago"란 트랙 가사에 보면 프리스타일 모임인 윗잔다리 사이퍼에 참여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얼핏 '프리스타일 전문가'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 단순하고도 분명한 라임과 정확한 박자 감각, 그리고 직설적인 가사 등이랄까요. 이 부분들은 어찌 보면 안병웅과의 유사점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태빈은 M.S.F.에서 안병웅의 하이톤과 대비되는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로우톤이랄 것까진 없지만 쫄깃쫄깃한 중저음 톤의 목소리는 확실히 안병웅보다는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대로 땜핑이 더 확실하게 들어가니까요. 얼추 그 정도가 제일 큰 차이점이랄 수 있겠으며, 이외에는 비슷비슷합니다. 대신 6곡의 작은 믹스테입이기 때문인지 한 가지 무드로 일관된 부분은 안병웅의 "Bartoon: 36"과는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생각해보면, 90년대 붐뱁 앨범들이 다들 다양한 분위기의 곡을 수록한 건 아니긴 했죠 (제가 느끼는 미국 힙합 앨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적 포인트로 삼긴 뭐하지만, 따지고 보면 M.S.F.의 EP가 보여준 것에서 더 나아간 건 크게 없습니다.


 이번 앨범은 "nomosloth" (아마 no more sloth, 더 이상 게으름은 없다?)란 테마 하에 만들어진 작은 EP였기에, 음악적으로 큰 성취를 하기보단 활동 경력이 적은 그에게 워밍업에 가까웠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생각을 할 필요는 없고, 태빈에 대해 리마인드가 되었다면 나름 성공인 거 같습니다. 태빈도 태빈이지만, 나름 신박한 조합인 M.S.F.의 신작을 빠른 시일 내 볼 수 있다면 좋겠군요.



(2) GI$T - 감정 (2019.10.2)


 고등래퍼에서 다양한 경연용 스타일을 보여줬던 GI$T는 지난 4월 나온 EP를 통해 '감성 싱잉 래퍼'(라는 표현이 오글대지만 넘어갑시다)로써의 정체성을 보여줬고, 이번 정규 앨범은 그 노선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작 "CHILD"의 연장선이랄 수 있지만, 훨씬 더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을 다루고 있어 지난번의 GI$T보다는 Vinxen 같은 우울한 음악들이 더 연상됩니다.


 작지 않은 규모의 앨범이지만, 본인이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들에 아주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통일성은 좋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트랙이 3/4 박자 기반이고, 이 때문에 빽빽한 플로우가 주를 이뤄 가사 양이 많은데, 여기에 멜로디까지 입힌 것을 생각해볼 때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나쁘진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간은 음역대가 제한적이라 듣다 보면 피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타이트함 때문에 다소 희생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절절히 토해내는 감정 표현이 좋긴 하나, 저는 전체적으로 앨범의 구성 요소들이 전작보다도 1차원적으로 느껴졌습니다. 3박자 리듬은 타이트한 느낌을 연출하긴 좋지만 지루함을 피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 함정을 GI$T가 솜씨 있게 피했던 거 같진 않습니다. 특히 이러한 곡들이 전반에 모두 몰려있고, 오히려 후반부에 가서 리듬과 플로우를 다양화하고 있어, 앨범을 순서대로 들을 땐 전반부 넘어가는게 살짝 부담스럽습니다 - 배치만 잘 하면 되는 문제였기에 더 아쉽네요.


 더불어 가사적 요소, 즉 주제의 표현 그리고 라임까지도 너무 단순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소재를 반복하기만 하고 트랙 간의 차이를 두지 않아, 위에 서술한 음악적 특징까지 겹쳐서 듣기 지치는 느낌이 있습니다. 전작 "CHILD"는 편안한 무드였기 때문에 이렇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Idolo의 앨범 때도 얘기했듯 우울하다고 얘기하는 걸 예술성 따지는 게 웃기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앨범으로 나왔으니 리스너로써는 이런 식으로 따지는게 옳을 거 같습니다. 싱잉 래퍼로써의 재능은 분명 있긴 합니다만, 나머지가 잘 받쳐주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 그가 정한 노선이 단순히 사운드로 승부 보는게 아니라 감성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는 단점입니다. 정규 앨범의 크기를 생각할 때 아직 이 정도를 커버할 정도의 경험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군요. 어린 나이에 정규를 낸 포부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미래에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보겠습니다.



(3) Syler - ADHD (2019.10.4)


 전작 "More People More Problems" 이후 1년만에 내는 앨범입니다 - 물론 그 사이에 Syler는 New Area 컴필레이션과 몇 장의 싱글을 내기도 했죠. 이번 앨범의 설명글을 보면 프로듀서 Jay Dope와 함께 ADHD처럼 충동적으로 다작하다가 나온 곡을 두서 없이 정리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설명에 충실하게 앨범은 믹스테입의 느낌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3분을 넘어가는 곡이 단 한 곡일 정도로 곡 길이는 대체로 짧으며, 대부분의 곡에서 Syler는 벌스 하나만을 맡았습니다 - 피쳐링이 하나를 더 하거나, 그냥 벌스 하나 훅 하나로 끝나는 형식입니다. 여태까지 Syler 앨범 얘기할 때는 왠지 모르게 비어있는듯한, 그루브 안 타지는 랩 플로우에 대해서 얘기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없는 건 아닙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Syler의 목소리는 얇기도 얇지만, 뭔가 터지는 걸 억누르는 방향으로 힘을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플로우가 대체로 빈 자리를 많이 남기는 구조로 짜여있기도 해서, 뭔가 몰입력은 떨어지는 거 같습니다. 다만 이번 앨범은 전작보다도 강한 트랩 삘을 Jay Dope가 더해줬는데, 요란하게 오가는 전자음들이 이 구멍을 그나마 좀 메워준 거 같습니다. 즉 비트와의 조화가 꽤 좋았달까요.


 애초에 의도가 두서 없는 작업이었다면 할 말 없지만, 짧은 벌스, 짧은 곡, 획일화된 구성 등 때문에 한 곡마다, 그리고 앨범 전체가 끝나고 나면 뭔가 더 있을 거 같은데 끝나버린 찝찝한 기분이 많이 듭니다. 이 텐션을, 이 분위기 전환을 이어서 뭔가 더 해야하는데 그냥 갑작스럽게 끝나버리는 거죠. 마지막 트랙인 "Rockstar"도 유일하게 이모 힙합 스타일의 트랙입니다. 그동안 요란하게 뛰어놀다가 갑자기 무겁고 차분해지니까, 이 새로운 분위기를 조금 더 이어나가면서 확립을 해줘야 설득력이 생기는 건데 그냥 그대로 끝입니다 - 그리고 물론 벌스 하나의 "Rockstar"도 2분 짜리 트랙입니다.


 이런 작업 방식이 새로운 시도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차라리 볼륨을 크게 늘렸으면 이런 단점이 보완이 되지 않았을까 싶군요. 완전히 미국 믹스테입 스타일로요. Syler의 랩이 가진 단점에 대한 보완의 실마리를 찾은 건 좋지만 예상치 못한 점 때문에 개운치 않은 감상이 된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네요.



(4) 염따 & 창모 - 돈 Touch My Phone (2019.10.4)


 갑툭튀해버린 대세 싱잉 랩 장인 두 명의 프로젝트 EP입니다. "돌아가" 아웃트로에 왜 이게 갑툭튀했는지 대략적인 힌트를 던져주는 군요... 그만큼 그냥 가볍게 들으라고 만든, 세 곡밖에 안 되는 앨범이라... 말 그대로 낼름(?) 듣게 된 거 같습니다. 재밌는 건 편곡을 근거로 세 곡 중 1번과 3번 트랙의 비트는 창모, 2번 트랙은 염따 것이었을 거 같은데, 은근 그래서 특징이 갈리더군요. 창모 트랙은 리듬감이 좀 더 살아있어서 통통 튀는 느낌이고, 염따는 훨씬 칠링하는 분위기... 붐뱁충인 제가 들으면서 열광하기엔 사실 너무 말랑했습니다. 창모 염따 각자 창모 염따했던 앨범 정도로 요약...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앨범도 짧으니 오랜만에 글도 짧게 끝내야겠어요.



(5) K.vsh - Insane and Out (2019.10.6)


 ...꽤 자주 본 이름이었는데 트랩 래퍼로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Kor Kash랑 헷갈린 것도 아닙니다), 첫 트랙 들으면서 '오 노래도 잘 하네?'라고 생각을 했네요. 흠흠. 피쳐링에서 은근히 이름을 보아오던 분인데, 앨범으로는 이번 앨범이 두 번째 EP로군요. 제대로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좋은 앨범이네요. 


 랩 앨범 아니면 할 말이 줄어드는 저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음색과 좋은 리듬감이 제일 강점인 거 같습니다. 앨범엔 샘플링 기반의 힙합 비트에서 아주 미니멀한 비트까지 여러 스타일이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바운스감 넘치는 "o"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1번 트랙을 들으면서 약간 힘이 딸리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탑 라인이 편안하게 짜였기 때문에 트집 잡으려고 듣는 거 아니면 별로 신경 안 쓰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도 크게 느꼈던 건,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좀 rough하게 잡혀있는건데, 이게 약간 다듬지 않은 느낌을 주려는 의도에 따른 거일까요, 아니면 사운드 후작업이 이상하게 된 걸까요. 편안한 느낌에 어울리는 사운드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뭐, 좋습니다 앨범. 비슷한 장르의 범주 안에 있다보니 jeebanoff를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적어도 다음엔 K.vsh란 이름을 볼 때 트랩 래퍼라고 착각하는 실수는 안 하겠죠...



(6) FELIX DA RAIN - SAFE ZONE (2019.10.10)


 FELIX DA RAIN은 힙플 게시판에 자기 홍보하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당시 음악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정규 3장 EP 1장이라고 얘기를 해서 새삼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들어보진 못하다가, 최근에 또 새 앨범이 나와서 들어보게 되었네요. 디깅을 해보면 2017년부터 활동 시작, InGenius란 크루의 멤버인 듯하고, 과거 Kold란 이름을 썼던 것도 확인됩니다. 믹스테입도 적어도 두 개 더 있는 거 같은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내린 거 같네요. 본인과 타 사이트의 기준이 달랐는지, 다른 이유였는진 몰라도 현재 확인 가능한 디스코그래피는 전부 EP고, 이 앨범은 네 번째 EP입니다.


 FELIX DA RAIN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점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발표한 앨범들까지 포함하여, 전곡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결과물이 본인이 작사/작곡/편곡을 도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완전하게 퀄리티에 만족할 순 없지만 아티스트 본인의 환경을 고려할 때 꽤 준수하게 뽑히는 거 같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오토튠 싱잉 래퍼입니다 - 과거 앨범에는 그냥 트랩 랩도 좀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100% 싱잉 랩이네요. 과거 올린 글을 보면 Post Malone도 언급 나오고 락 스타일 언급도 나오는만큼 그쪽에 관심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이번 앨범 비트도 기타 샘플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장조의 코드와 경쾌한 신스를 섞어 가볍게 어레인지를 했기 때문에 헤비 메탈 사운드보단, (굳이 비교하자면) "킁"과 같은 사운드를 지향했다고 보는게 맞을 거 같습니다.


 들으면서 제일 연상되는 아티스트는 Futuristic Swaver입니다. 방금 언급한 밝은 분위기의 비트와 싱잉 랩 때문만이 아니라 빽빽한 플로우 패턴, 자주 등장하는 돈 얘기 (후반부에 가선 개인적인 얘기가 더 나오지만)와 살짝 거칠게 느껴지는 오토튠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비트나 싱잉이나 멜로디 메이킹이 괜찮은 편이라 느껴지는데, 오토튠과 플로우의 케미는 그닥 제 취향은 아니네요. 빽빽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플로우에서 오토튠은 삐걱이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것도 Futuristic Swaver에게 느끼는 부분이긴 했죠). 깔끔하게 짜인 비트와도 다소 불협화음의 느낌이 있고요 - 아마 과거에 트랩 스타일의 랩을 하던 영향으로 이어지는 거 같긴 하군요.


 STAREX 크루로 대표되는 한국 트랩 스타일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거 같진 않지만, 기타 위주의 경쾌한 코드는 의외로 차별점을 둘만한 포인트인 거 같습니다. 아직 본인의 랩 퍼포먼스에선 그만큼의 차별점이 발견되진 않는 거 같네요. 낮은 인지도가 본인의 실력 때문은 아닌 세상이지만, 적어도 양산형 스타일 중 하나로 남지는 않길 바랍니다. 부지런하게 작업하는 아티스트이니 방향이 잘 잡힌다면 곧 발전상을 확인할 수 있겠죠.



(7) NaShow - Underground Ego (2019.10.11)


 전작 "Dark Side of BLULIGHT"로부터 3개월만에 나온 새 앨범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가 유튜브에서 연재하는 랩 라이브 시리즈 "Bars"에서 세 곡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사실 전작에 "Bars" 곡이 포함되어있는 건 최근에야 알았더라는...;). 다만 전작이 싱잉 랩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그를 대표하는 타이트한 랩 위주로 담겨있기 때문에, "Dark Side of BLULIGHT"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방향은 정반대인 앨범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LE에서 NaShow를 "과잉의 미학"이라고 하는 리플을 봤는데, 이해 가는 표현입니다. 저번 앨범 글에도 설명했듯 BLULIGHT Music을 세우기 전의 스타일만 봐도 NaShow의 스타일은 상당히 피로감을 주기 적당한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Diz'One으로 활동할 때보다 억세고 앙칼져진(?) 목소리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마디를 꽉 채우는 속사포 플로우와 짧게 끊어치는 라임이 모두 그랬습니다. 이번 앨범은 대체로 벌스 하나로 길게 끌고 가는 컨셉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히 감상에 앞서서 우려가 생겼죠.


 개인적으로는, 그 우려에 반하여 의외로 부담 없이 감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좋았던 부분 중 첫 번째는 비트와의 케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NaShow와 웅장한 느낌의 트랩 비트는 피로감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그리 좋은 조합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이번 앨범에 실린 비트들은 가볍고 그루브감 있는, 비교적 고전적인 스타일의 붐뱁 비트들이었는데 이런게 훨씬 랩을 펑키하게 들리게 해줬던 거 같습니다. 더불어 완급 조절이 보이는 플로우 - 뭐, 위에 언급한 '과잉'이 여전히 메인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무작정 파워 플레이이기 보단 재밌게 랩을 다룬다는 느낌이 있더군요. 그런 면에서 마지막 곡이자 "Bars" 시리즈의 마지막 (9번째) 영상었던 "탓"이 제일 많이 힘을 뺀 트랙인 건 뭔가 꽤 의미 있어보입니다. 앞으로 부드러움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방향을 잡는 걸 시사하지 않나... 하는 건 너무 앞서가나요.


 "Give Me That" 뒤에 나오는 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속사포 랩 스타일이 버림 받은 것은 아마도 그 스타일의 궁극의 모습이 너무 하나로만 귀결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속사포가 아닌", "육두문자로 중지로 씹지 않고도 즐겨줄", "말도 안 될 단어 나열 의미 부여하지 않는" "올드 스쿨로 클래식 찍은" 스타일도 전 기대합니다. 사실 요근래의 앨범을 통해 NaShow는 다른 방향 - 싱잉 랩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고 그 모습도 환영합니다. 다만 붐뱁충인 저는 역시 이런 순수 랩이 잘 만들어졌을 때 몸이 더 반응하고 마네요.



(8) 한국사람 - 환상 (2019.10.11)


 "전설"을 통해 한국사람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거의 걸작으로 추앙 받는 이 앨범은, 힙합 내에서 클리셰처럼 쓰이던 '기존의 틀을 거부'라는 표현이 (과거 틀을 거부했단 앨범이 얌전하게 보일 정도로) 그 무엇보다 잘 어울려보였으며 동시에 너무나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스타일과 전개에 헛웃음만 연발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전작 "꽃뱀"이 꽤 정상적(?)이었던 것에 반해, "환상"을 들으면서 그 충격을 다시금 느끼고 있습니다. 힙합의 정의는 다양하고 모호하지만 뭐가 됐든 이번 수록곡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락과의 접목 수준이 아니라 아예 락을 했다고 보는게 더 적절할 테고, 디테일하게는 락 안에서도 여러 장르를 품고 있습니다. 이중 단연 앨범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Korn이나 System of a Down이 연상되는 하드코어 메탈의 곡들입니다 (서태지가 연상된다는 글을 몇 번 봤는데, 서태지의 오랜 팬으로써 그 말을 듣고 경계(?)했지만, 확실히 씨니컬한 어조와 톤 그리고 코드가 5-6집 때의 서태지를 생각나게 할 때가 종종 있네요)


 "환상"이란 제목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앨범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왔다갔다하면서 맨살을 드러낸 부정적 감정들이 폭발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앨범의 내용물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선의 전개라는 것 없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공격적이었다 차분했다 하는 곡들을 순서대로 듣다보면 거의 물에다 들었다 놨다를 당하는 기분입니다. 대부분의 가사는 잡히는 뚜렷한 주제 없이, 오직 선명한 심상을 가진 단어만 몇 개 남으며, 발음을 흘리거나 앞뒤 안 가리고 쏟아내거나 여러 소리를 뒤섞거나 왜곡시켜 놨습니다. 거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말아달란 느낌까지 듭니다.


 난잡하고도 공격적인 소리와 난해한 가사, 혼란스러운 구성까지, 한 번 돌리기가 무척 힘든 앨범입니다. 저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다만, 여러 번 돌리다보니, 쏟아지는 이미지에 뭔가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앨범 발매 전 사악하게 변한 한국사람 헤어스타일 짤을 보았는데, 그와 잘 어울리게도 이 앨범은 악마 같습니다. 진실로 예측 불허한 아티스트 한국사람, 드디어 이번을 계기로 그의 정체(?)에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하네요.



(9) Sharkrama - 초월인류 (2019.10.13)

    Sharkrama - 잔여물 (2019.10.13)


 전작 믹스테입 "진화인류"의 후속편이 나왔습니다. 둘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되지 않지만, "초월인류"는 EP로 발표되었으며, "잔여물"은 믹스테입의 형태고, 아마 이름만 봐서는 앨범 작업 중 남은 곡들을 모아 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론부터 말해, 저는 "초월인류"보다 "잔여물"이 EP 같았습니다. 두 앨범 다 Sharkrama가 전작들에서 꾸준히 보여줬던 우울감 깃든 속사포 랩들을 메인 줄기로 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없기에 더 진화한 인간이라는 전작 "진화인류"에 담긴 의미에서 더 발전한 "초월인류"는, 그 테마 때문인지 훨씬 우울과 분노, 씨니컬함의 농도가 짙습니다. 내용에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사운드 면에서 여전히 Vinxen이 연상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반면 "잔여물"엔 그래도 다른 평범한 주제들을 끌어오는 편입니다. 목소리 운용도 조금 더 다양하게 되었고요. 통일성을 해친다고 생각하여 뺀 걸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EP와 믹스테입의 기준을 따져볼 때, 오히려 EP가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재미 없게 뽑힌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특히 부정적 감정이 더 가득한 EP에서는 랩의 밀도를 더욱 높이면서 박자가 어그러지는 (Bully Da Bastard 작품들에서 종종 보는) 경우도 있어 몰입이 방해가 되더군요.


 원래 곡들을 통해서 EP 한 장 더 내고 끝낸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는데 그 EP가 드디어 나와버렸으니 Sharkrama는 여기까지려나요. 제가 팬을 자처하고 있진 않지만, 마지막이라기엔 영 개운치 못한 맛이 많이 남는군요 - 특히 "잔여물"이 이러하니 더욱요. 어느 쪽이든 본인이 원하는 결정을 하길 바라며, 음악으로 돌아오면 또 한 번 더 들어보겠습니다.



(10) 차붐 - Sweet & Bitter (2019.10.14)


 맛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Sweet & Bitter"입니다. 본래 험악한 건달 이미지였던(?) 그가 쇼미더머니에서 나름 개그 캐릭터로 통한 것이 반영된 것인지, 앨범의 첫 인상은 전작보다 확실히 가볍다는 것입니다. "Sour"는 확실히 찐하고 얼큰한 앨범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기반으로 그려낸 희로애락은 여운과 감동이 있는 것이어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죠. 이번 앨범은 "Sour"와 비교하면 '청량'하다는 표현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진초이가 총 프로듀싱을 맡았지만 미니멀하고 얇은 느낌이 드는 비트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차붐의 랩은 요즘 유행어를 적절히 섞은 가사와 추임새로 꽤 유머러스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단순하면서 캐치한 라이밍과 중독적인 후렴구까지 더 하면, '트렌디하다'는 결론이 나올 조건이 마련됩니다.


 "Sour"나 "죽어도 좋아" 같은 느낌을 예상했다면 이번 앨범은 아쉬울 것입니다. 저는 "Sour"에서도 "엿"이 제일 먼저 꽂혔던 사람이라 이번 앨범 같은 컨셉이 반가웠습니다. 오히려 "옳은 일" "두둠칫" 같은 후반부에 배치한 무거운 곡이, 그 찐한 감성을 재현해야한다는 강박 같이 느껴졌습니다. 어차피 맛 시리즈는 각 맛에 따라 곡을 나열하고 있으니 이번엔 그냥 이런 곡들로 채워도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 가사가 중간중간 비약이 심해서 잘 이어지지 않고 그냥 이미지의 나열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침 이 직전에 들었던게 한국사람 "환상"이다보니 은근 비교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 물론 "환상"만큼 혼란스럽진 않았지만요ㅎ


 확실히 '안산 양아치'스러움은 줄어들었습니다만, 곡 전체에 스며든 특유의 아우라는 여전합니다. 과거 "엿"을 통해 확인했던 장난끼 많은 모습을 더욱 각인시켜줬다는 데에서 저는 이번 앨범에 호감을 표시하고 싶네요. 남은 건 "Salty"인데, 이건 좀 독하게 나오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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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0-22 01:03:34

600개 리뷰 달성 축하드립니다 ..!!

WR
1
2019-10-22 08:04:50

TMI 이번글의 9번 앨범이 601, 602번째 앨범입니다. 600 딱 맞추고 하루 쉬려고 순서 바꿈..

WR
1
2019-10-22 10:01:59

제가 후루룩 쓰는 글과 님의 트랙별 리뷰는 길이도 노력도 다르죠
숫자로 단순 비교할 건 아니에요 50여개란 숫자도 대단한겁니다~
중요한건 안 놓는거 아닌가합니다 그럼 언젠가는 더 큰 숫자에 도달하니까

2019-10-22 11:07:36

와근데 비교적 인지도가 많이 부족한 아티스트들의 앨뱀도 거의 다 들으시나봐요...리스펙함다..

WR
2019-10-23 19:43:33

지나가려다 앨뱀에 답글을 달지 않을수가 없네요
거의 누군가 소개해주거나 계기가 있어서 들어요. 진짜 제대로 디깅하는 분들에 비해선 상당히 수동적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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