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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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08 16:49:0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휴가 갔다오느라 지금 열 개가 넘게 밀려있습니다. 프로젝트 이름이 부끄럽지(?) 않아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harkrama - 진화인류 (2019.7.6)


 이번 쇼미더머니에서 영비와의 사건으로 잠깐 이름이 유명해졌던 Sharkrama의, 현재로썬 가장 최신 믹스테입이자 앨범입니다. 좀 더 디깅을 해보면 싱글 두 장과 믹스테입 한 장이 더 있으며, EP 한 장 더 내고 은퇴할 거라고 여러 곡에서 얘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 랩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이게 EP를 버리겠단 뜻인가 아닌가는 잘 모르겠네요.


 방송에서 비춰진 이미지와 그후 공개된 디스곡 "안상구"만 듣고 보면 타이트한 붐뱁 곡을 하나보다 싶은데, 랩 플로우는 얼추 맞지만 작업물들이 매우 우울한 색깔을 띄고 있습니다. 곡마다 꽉꽉 채우고 있는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와, 텅 트위스팅을 하듯 밀도 높게 전개되는 속사포 랩은 Vinxen을 쉽게 연상케 합니다 (앨범 중 "이가사이해못함제발그냥뒤져"는 목소리만으론 조원우가 연상되기도 했네요). 워낙 빽빽하고 평탄하게 진행되는 플로우 구간의 비중이 높아서 지루해지기 쉽지만, 어느 정도는 목소리를 다양하게 가져간다든지 ("고 김광석처럼"), 이펙트와 스킷을 활용해서 앨범 감상에서 숨 돌리는 구간을 만들고 뜻을 더 잘 전달하려 한다든지 한 노력의 흔적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플로우가 지루해지는 건 막기 어렵습니다. 정확한 박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속사포 랩인데도 가끔가끔 리듬과 어긋나게 급해지는 부분도 귀에 들리고요. 가사 보다보면 '표현에 노력했는데 그건 알아봐주지 않고 내용에만 집중하더라'라는 몇 번 등장하는데, 뭐 가볍게 쓰인 것들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 전작 "현주소"의 마지막 트랙 "적응"에서 출발하여, 적응에 또 다른 이름 '진화'를 붙이고 얘기를 하는 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태도에 어울리는 무거운 표현과 전개들도 허투루 볼 부분은 아니죠. 하지만 일반적으론 공감하기 힘들 독한 내용과 같은 내용의 반복 및 타이트한 플로우 등은 그의 가사에 대한 감흥을 줄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뭐가 됐든 포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사포를 주무기로 삼는 래퍼 중 신인들은 주로 목소리에 지나치게 힘을 섞어 훨씬 귀가 빨리 질리게 되곤 하는데, 그렇지 않게 부드러운 발음과 톤을 사용한 것만 해도 플러스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가 결국 은퇴를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앨범만 봐선 랩이 아니면 그 응어리를 어디에 풀게 될까 궁금하더군요. 가지고 있는 포텐을 살려 부디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온 EP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Van Noir - 무인번화가 (2019.9.19)


 Van Noir는 솔로 작품으로는 이번 믹스테입이 처음인 루키입니다. Khundi Panda가 앨범 커버 디자인을 맡았고 인스타에서 샤웃아웃을 한 것을 계기로 LE에 글이 올라왔고 저도 그런 경로로 알게 되었네요 (참고로 커버 디자이너로써의 Khundi Panda는 "Flatcakezombie"라는 이름을 쓰나봅니다). TMI로, 타입 비트가 많아져서 요즘은 좀 찾기 힘들어진 "기존 비트를 사용한 믹스테입"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 때문에 선입견이 들어서 그런가요, 앨범을 듣다보면 Khundi Panda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약간 과도하리만치 정확하게 짚는 발음과 현학적인 표현과 일상적인 표현을 오가는 작사법, 씨니컬한 주제 의식 등, Khundi Panda가 목소리를 바꾸고 냈다고 해도 믿을 법할 정도입니다. 뭐, Khundi Panda 스타일이 흉내낸다고 흉내내지는 스타일은 아니긴 하죠. 여튼 Van Noir의 낮게 깔린 톤은 Khundi Panda보다는 좀 더 안정적이고 '대중적'인 듯합니다. 앨범이 전달하는 서사도 탄탄합니다. 크기는 커졌지만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씬을 빗댄 "무인번화가"란 컨셉에 맞추어, 처음 랩을 시작했을 때의 얘기부터 돈과 현실 앞에 좌절하고 체념하기까지의 감정 흐름을 트랙 순으로 자연스럽게 배치해두었습니다. 박자가 이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타이트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플로우 등, 허투루 만들어진 트랙은 분명 없어보입니다.


 Khundi Panda와의 유사성이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고 가장 큰 단점일 수밖에 없는게 아쉽습니다. 만약 Khundi보다 Van Noir를 먼저 들었다면 나름 준수한 주제 의식을 가진 랩 앨범으로 호평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 그 유사성을 빼놓고 판단한다면 이 앨범은 모든 요소가 치밀하게 계획되고 구현된듯한, 수준급의 완성도를 가진 앨범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기에 여러 가지로 발전할 수 있는 포텐셜을 변호하듯 언급하게 되는군요. 추후 좀 더 자신만의 모습을 갖춘 후에, 제대로 된 감상을 해보고 싶네요.



(3) 흠 - Autism (2019.9.18)


 흠은 전에 저에게 말 그대로의 순수한 충격을 안겼던 '전위예술가' 이도 더 나블라가 비트메이커 Jasin과 결성한 프로젝트 팀입니다. 이번 앨범은 종말을 예견하는 환청과 복잡한 언어 구사를 유발하는 '노바 바이러스'의 1호 환자 "노바"의 말을 기록하였다는 설정 하에 제작되었습니다 (많이 축약한 얘기이니 앨범을 감상하고자 하는 분들은 보도 자료를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일단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그나마 좀 쉬워졌구나'였습니다 - 전작인 "중독"이 워낙에 아주 기본적인 것마저 뒤튼 실험적 요소가 많아 여러모로 충격적이었기에 비교하게 되어서인지, 이번 앨범은 나름 평범한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첫 트랙인 "실험실"은 위에 언급한 설정이 없다면 다소 거칠지언정 일반적인 힙합 앨범의 인트로 트랙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보입니다. 이렇게 쉬워졌다고 해서 이도 더 나블라가 변질(?)되었다든지 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합니다. 어쨌든 앨범마다 의도하는 컨셉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있는 거니까요. 이런 '변화'의 원인 중 하나는 기존 타입 비트를 썼던 저번과 달리 한 사람의 비트메이커와 팀을 이뤘기 때문일 거 같습니다. 어쨌든 Jasin의 생각도 래퍼와 균형 있게 반영되어야 했기에 '음악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긴 어려웠을 테니까요. 이렇게 완성된 작업물은 TFO의 "ㅂㅂ"나 XXX의 "Language"를 조금 연상시킵니다.


 물론 제가 '쉬워졌다'라고 얘기한 것이 쉽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기존 형식의 해체가 이루어지는 전개입니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인트로 트랙 같았던 "실험실"에서 출발해, 점차 소리가 찢어질 정도의 볼륨 변화와 과도한 이펙트, 그리고 끊기고 겹쳐 한데 뒤엉키는 소리들의 집합 끝에, '언어를 잃어버린' 트랙 "부서진 시"에 도착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부서진 시"에는 가사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의도적으로 가사 보기엔 빠져있는 듯하며, 이마저도 뒤로 갈수록 디스토션을 통해 내용을 듣기 어려워집니다 - 그 와중에 특수문자로 라임을 맞춘 건 신기...). 종말의 예언, 혼란스러운 현실, 구원을 위한 실험 등의 설정을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구성은 불확실하고 비관적인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는 열린 결말이라 이해되며, 각종 상상의 개입으로 이야기가 부풀어가는 경험은 자못 즐겁습니다.


 "Autism"은 장르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앨범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감히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조심스러웠던 이도 더 나블라 전작에 비하면 분명 친근한 면모가 있고, 그로써 의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청각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특히 소리가 시끄럽게 겹치고 뒤엉키면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로 인해 충격은 덜해졌을지언정, 좀 더 지속 가능한 모습으로 변화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도 더 나블라가 Jasin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찾아낸 것은 반가운 소식이며, 앞으로도 자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4) Wet Boyz - Project X2: DDABULL (2019.9.23)


 따스한 이모 힙합을 선보이던 Wet Boyz가 이번에는 Eddy Pauer와 힘을 합쳐 앨범을 제작하였습니다. 전형적인 트랩 비트를 주로 만드는 Eddy Pauer와의 조화가 자못 궁금했는데, 첫 인상은 Eddy Pauer의 입김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듣다보면 단순히 둘 중 누가 더 영향이 컸는가라기보다, 앨범 컨셉에 따른 결과인 걸 알게 됩니다. 전작 "인의기훈"에선 따뜻한 감성의 싱잉 랩이었던반면 이번에는 코믹하고 가벼운 테마가 주를 이룹니다. 하회와 모아이가 좀 생각나는군요.


 개인적으론 "인의기훈" 때의 모습이 좋았기에 이런 컨셉은 상당히 당황스럽긴 합니다. 물론 전에도 간간히 보여줬던 모습이니 뭐라할 건 아니지만, 두 멤버의 녹아드는 '미성'으로 "별난방디" 같은 곡을 듣고 있자니 뭔가 두 배로 오글대는 듯하군요. 더불어 Eddy Pauer의 비트는 Futuristic Swaver 스타일의 트랩 (이거가 뭔가 따로 부르는 단어가 생길 법도 한데 아직도 모르겠네요)으로 아주 전형적인 트랩 비트의 전개를 보여주며, 이 위에 깔려있는 멜로디도 전형적인 단조롭고 반복적인 코드 진행입니다. 저 같은 붐뱁충으로써는 불호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의도한 느낌이 엉성함으로 느껴지는게 문제입니다. 그래도 기존 트랩 팬에겐 이런 면들은 스타일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코믹한 가사를 센스 있다고 보는 쪽도 있겠죠?



(5) Layone - Fixiboy (2019.9.23)


 "래원"이란 이름으로 이번 쇼미에서 활약했던 Layone의 이번 앨범은, 레이블 OUTLIVE에 합류하고 나서 발표한 앨범이자, 원래 작년에 나왔던 본인의 믹스테입 "Fixiboy"를 보완하여 내놓은 앨범입니다. 트랙리스트와 가사는 동일한 반면, 비트가 바뀌고 피쳐링이 더해졌으며, 재녹음이 이뤄졌으니 약간 '리믹스 앨범'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을 처음 들을 때, 비교하게 될 두 가지 포인트가 있을 겁니다. 첫번째는 근래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줬던 촐싹거리는 모습과 상반된, 차분하고 우울한 무드. 두 번째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되었던 오리지널 "Fixiboy"와의 차이점.


 전자의 시각에서는 놀라운 반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원시원하지만 다소 Sokodomo와 유사하다고 느꼈던 방송에서의 랩과 정반대이면서도, 그 모습을 배제하면 꽤 설득력 있는 음악들입니다. Layone이 구사하는 이모 힙합은 자연스럽고, 내용이 가볍지도 않으며, 멜로디 짜는 능력도 나쁘지 않아보입니다 (특히 "13 Reasons Why"의 후렴에 보면 싱잉 랩이 아니라 싱잉 자체가 괜찮은 거 같아요). 


 후자의 시각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오리지널이 좋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아마 이모 힙합의 감성이 훨씬 로파이한 음악에서 펼쳐졌던 예전의 것에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일 겁니다. 이번 비트는 믹싱도 좀 더 비트가 힘 있고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되었고, 비교적 "웅장"해졌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전 어쨌든 사운드 빠방한 것에 끌리는 사람이라 이번에 새로 나온게 더 끌릴 수밖에 없네요. 또, 추가된 피쳐링 벌스를 제외하고라도, Layone의 랩이 이런 비트 변화에 맞추어 좀 더 발성이 단단해지고 땜핑 있게 녹음됐습니다. 이것은 쇼미에서 보였던 랩과의 간극도 다소 줄여주기도 하고, 장르적 특성을 지키면서 지나치게 쳐지거나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분명 오리지널에서 많은 걸 바꾸었지만 꽤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음을 뜻합니다.


 무엇보다, 방송에서 아예 다른 스타일을 선보였고,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시점에 자신의 과거 스타일을 재보강해서 나왔다는 것은 향후 그가 세우고 있는 계획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단순히 의미 있는 시작이었어서? 스펙트럼이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아니면 앞으로 쭉 이런 음악을 할 거여서? 뭐가 됐든간에 카메라 앞에 보여줬던 것 그 이상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라 반갑습니다. 직전에 던진 질문의 답을 보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눈 여겨봐야겠군요.



(6) Rhythm Power - Project A (2019.9.24)

 

 오랜 시간 동안 리듬파워의 실패는 일종의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방사능으로 낸 첫 EP에서 리듬파워로 바꾼 후 낸 첫 EP로의 변화는 아마 국내 힙합씬에서 제일 커다란 몰락이자 실패한 전략 사례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 이후로 리듬파워가 뭔가 작업물을 낼 때마다 관심사는 '방사능 때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가' '자기들이 가진 포텐을 이번엔 제대로 발휘했는가'였습니다.


 리듬파워의 세 래퍼는 코믹해보이지만 사실 본질은 개성적인 톤과 폭발적인 에너지에 있습니다 - 이 두 가지를 버리고 코믹함에만 집중하면 리듬파워 첫 EP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 거죠. 그 이후 나온 디스코그래피들은 점차 포커스를 에너지에 맞춰가는 과정이었고, 이번 앨범 "Project A"에 이르러서는 꽤 다루는 솜씨가 탁월해졌습니다. 이번 앨범은 코미디는 없고 센스만 있습니다 - 팬들이 원하던 방향이 이걸 겁니다. 더불어 초반을 수놓는 올드 스쿨 비트와 그라임 비트는 그들의 에너지를 담는 최적의 그릇입니다. 초반 세 트랙에 이런 비트를 배치하면서 앨범을 듣자마자 바로 집중이 빡 되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6AM"부터 이어지는 다음 트랙에서는 살짝 루즈해집니다 - "Project A"가 그나마 좀 타이트한데, 제 생각엔 기리보이가 첨가한 신선함이 제일 큰 이유였던 거 같습니다. 이건 리듬파워의 결정이 잘못 됐다기보다 약간 딜레마입니다. 사실 팀으로도, 솔로로도 감성적이고 차분한 곡은 여러 번 있었죠. 종종 등장하는 싱잉 랩 역시 세 래퍼 다 어색함 없이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잔뼈가 굵은 분야입니다. 하지만 셋의 개성이 너무 에너제틱한 쪽으로 발달해있다보니, 그 강점을 희생해야되는 비트는 늘 약간의 허전함이 남는 거 같아요.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방사능 EP는 돌아보면 그런 분위기의 트랙이 없었죠 (그나마 달달한 트랙인 "My Kind of Girl"이 있었긴 한데, 개인적으론 앨범 중 제일 손이 안 가던 트랙입니다). 정답에 가깝게 트랙을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시 받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긴 하군요.


 팬들이 원하던 폼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지만, 스펙트럼을 넓혀가려는 시도는 자꾸만 삐걱대는 느낌이 납니다. 아예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가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딜레마를 타개해야할 것 같군요. 뭐가 됐든, 리듬파워는 훌륭한 실력을 가진 그룹임에는 틀림 없고 아직 발전 과정에 있으니, 리스너인 저는 당장의 문제보단 이뤄낸 성과에 주목을 하면서 기다리는 게 더 옳겠죠.



(7) Sik-K & Coogie - S.O.S. (Sink or Swim) (2019.9.24)


 본래 같은 Yelows Mob으로 시작했던 둘이 다른 소속으로 잘 나가던 와중 프로젝트 EP를 냈습니다 - 사실 전곡 GXXD 프로듀싱이니 3자 프로젝트라 봐도 무방하겠군요. 우선 저는 밋밋한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GXXD의 감각적인 프로듀싱은 여전하지만 두 래퍼의 퍼포먼스에 원인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근데 이 밋밋함은 역량 부족이라기보단 둘이 세운 방향의 어쩔 수 없는 부산물 같은 느낌입니다.


 이때까지의 작업물을 통해 Coogie는 타이트한 래퍼로써의 모습도 선보인적 있고, Sik-K는 락 스타일의 앨범도 괜찮게 소화한 적 있습니다. 이번 앨범은 이런 모습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싱잉 랩 위주로 제작되었습니다 - 유일하게 Coogie의 그냥 랩이 실린 "HigherATM Freestyle"은 보너스 트랙으로 실려있죠. 저는 두 래퍼 다 귀를 확 잡아끄는 멜로디 메이킹 능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Coogie의 경우 깔끔한 목소리가 싱잉 랩에서 큰 장점이 되지만, 멜로디 메이킹은 그의 전작 "Emo #1"서부터 단조롭고 정형화되어있어 보였고, 식케이는 특유의 오토튠 기법 때문에 내지르지 않고 낮게 깔은 음역대에선마치 잡음 낀 레코드처럼 멜로디와 효과음이 뒤죽박죽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 두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플로우 역시 이런 류의 노래들이 그렇듯 매우 반복적인 리듬, 매우 패턴화된 추임새와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곡 구성도 간단하고 짧은게 많아서, 앨범은 한번에 훅 끝나는데 감흥이 대부분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분위기가 좀 튀는 "Goin Up"에선 다른 어프로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두 래퍼가 이 문제를 타개할 역량이 부족했다는 생각보단, 전체적으로 그냥 가볍게, 친한 친구끼리 놀듯이 만들었다고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래퍼의 케미는 상당히 괜찮습니다. 이번 앨범을 두고 누가 누구에게 먹혔느니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제 의견으론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될 정도로 한 사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앨범은 아닙니다. 실패라기보단 이번 앨범을 좋아할만한 타겟층 자체를 넓게 두지 않은것 같군요. 두 아티스트 (그리고 GXXD) 또는 이쪽 장르의 팬을 위한 '타임 킬링용' 같다는게 최종적인 인상입니다.



(8) Grack Thany - Grack Thany Presents WAFER (2019.9.25)


 한국 씬 앱스트랙트 힙합에서는 유일하다싶을 정도로 존재감을 갖고 활동하는 앱스트랙트 힙합 크루 "Grack Thany"의 컴필레이션입니다. 지난 컴필레이션 "8luminum" 이후로 1년 10개월만입니다 - 이번 컴필 선공개 싱글을 제외하면, 2019년 한 해 동안은 Moldy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활동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공백은 더욱 길게 느껴집니다.


 앨범의 특징은 전작과 비교할 때 잘 드러납니다. 주로는 랩에서 매우 큰 비중을 담당하고 있는 Moldy의 스타일 변화가 주 원인입니다. 그의 플로우의 진폭도 커졌거니와, 오토튠을 비롯한 각종 이펙트가 "8luminum"에선 별로 없었는데 이번엔 잔뜩 들어있습니다. 이런 색깔은 새로운 이름의 래퍼 Nubset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곡마다 돈에 초점이 맞춰진 단순 반복적인 그의 가사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dumb down'시키고 있고, 이게 Moldy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마치 트랩 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작보다 외부 피쳐링진을 더 많이 기용한 것도, 이런 '트렌디'한 색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으려나요. 비교적 프로덕션의 변화 폭은 그리 크진 않지만, 이런 랩의 변화를 맞추기 위해 칙칙하고 로파이한 색깔이 상대적으로 줄고, 요란하고 화려합니다. 여기에 기존 비트메이커들의 스타일이 겹치면서 일으키는 불협화음이 나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결국 이번 앨범의 감상 포커스는 'dumb down'된 무드를 어떻게 다루는지 주목하는 것이고, 호불호의 기준도 마찬가지일거 같습니다. Moldy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았을 경우는 다소 엉뚱한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특히, '트랩처럼' 들리는 것이 그들의 장르를 고려할 때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군요. 비트가 갖고 있던 느낌이 한풀 꺾인 것 같달까요. 랩에서 Moldy가 많은 비중을 도맡다보니 그들이 표현하려는 게 무엇이었든 아웃풋이 너무 일률적이 되었고, 앨범의 큰 볼륨이 더 크게 느껴지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괜시리 앨범 제목의 "Presents"라는 표현이 이번 앨범은 그들이 가능한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를 선보이는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앱스트랙트 힙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반되었다는 것 가지고 뭐라 하는 것은 우스운 얘기겠죠 - 어차피 정해진 틀을 뒤집어엎는 게 그들의 업이라면, 제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성공했단 의미니까요. 그래도 저는, 그런 점 때문에 약간은 "불편"한 앨범이었던 거 같습니다. 다음 "Presents"를 기대해봅니다.



(9) myunDo & 최서현 - HOUSE PARTY (2019.9.25)


 myunDo와 최서현에겐 실로 오랜만의 근황 신고이면서, 새로 만들어진 Ballin All Day의 공식적 첫 작업물인 듯하군요. "HOUSE PARTY"는 제목에 충실하게 하우스 파티 전후의 이야기를 담아낸 짧은 앨범입니다. 최서현이 싸인히어에서 불러서 올싸인을 받아 화제가 된 곡 "HOUSE PARTY"가 딱 중심에 있는 트랙이죠.


 커버 사진에 보이는 myunDo가 살이 빠져보이는 건 제 착각인가요. 그때문인지(??) 앨범은 예상보다 가볍습니다. 둘은 대부분의 트랙에서 오토튠 싱잉으로 무장하였는데, 멜로디가 꽤 귀를 사로잡습니다. 전곡의 비트를 PRISMFILTER라는 작곡 팀의 개별 멤버들이 만들었는데, 이 팀은 뉴이스트, 세븐틴 등의 아이돌 팀에게 곡을 주던 팀인 거 같고, 그래서인지 곡 자체가 상당히 캐치하고 예쁘게 뽑혔다는 느낌입니다. 가사나 플로우 등은 전혀 어려운 부분이 없고 아주 심플합니다.


 이때문에 myunDo의 헤비한 트랩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큰 실망을 할 것입니다. 얼핏 들어서는 최서현과 살짝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톤 자체가 가벼워졌습니다 - 오토튠 때문인가 싶었는데 랩을 한 "OVER N OVER"도 비슷하더군요. 하드한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순화시키고 죽였다는 느낌이 있어서 어떤 분들에겐 매우 밍밍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최서현은 상대적인 하이톤으로 뚫고 나오는 매력은 있지만 아직도 그를 찾아 들어야하는 매력은 좀 애매합니다 (전 '올싸인'을 받은게 곡 자체보다 신나는 분위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앨범을 하드코어 힙합 리스너의 시선에서 보자면 그저 그런 가요 앨범 같습니다. 가요의 시선으로 보면 캔디 같이 달달하게 즐기기 적당해보이지만, 최종적으론 Ballin All Day에게 기대하던 게 이것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군요. 특히 myunDo에게 있어서 기다렸던 모습과 좀 상반되어 못내 아쉬움이 생기는 앨범이었습니다.



(10) Trippy Kev - Kev from the Future 2 (2019.9.23)


 이름은 얼핏얼핏 들었던 거 같은데 이번이 처음으로 들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추천사(?)는 "Bradystreet을 좋아하면 분명 좋아할 것"이었습니다. 과연, 성별도 헷갈릴 정도의 하이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이펙트인지 아님 가성인지는 모르지만)과 트랩 비트 + 싱잉 랩의 조합은 백이면 백 Bradystreet을 연상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Bradystreet의 아류란 생각은 많이 들진 않습니다 - 요컨대, 이름 그대로 "Trippy"한데서 차이가 납니다. 영어 비중이 높은 가사나 목소리에 더한 이펙트 등 적은 딜리버리 비중과 한두 음 정도의 극도로 좁은 음역대 등은 이런 점을 만드는 제일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Bradystreet와 동류이면서도 분명 다른 영역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기에, 후반부로 가서 오히려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그럼으로써 Bradystreet와 좀 더 겹치는) 곡들은 퀄리티와 별개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부분으로, 피쳐링진 중 YunB는 Trippy Kev의 Trippy함에 대한 몰입을 좀 깼던 거 같아 마무리 트랙으로 어울리지 않았던 거 같네요. 이런 점들을 제외하면, 꽤 재밌는 경험을 준 아티스트였습니다. 말마따나 "미래에서 온 Kev"라는 말이 어울리는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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