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HOP-TALK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48
 
1
4
  468
Updated at 2019-09-14 12:21:55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쇼미가 시작해서 그런지 의외로 앨범들이 점차 안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좀 걸렸습니다. 하지만 저도 휴가 시즌이 겹치면서 현재는 오늘 올리는 것들 제외하고도


밀린 앨범이 두 개군요. 아무튼 시작합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기리보이 - 갑분기 (2019.8.2)




 아무래도 허슬하는 사람은 끝없이 자기 복제라는 함정과 싸우기 마련입니다. 짧은 기간 사이에 스타일이 휙휙 변한다면 그건 다양성보단 불안정을 더 의미하겠죠. 지난 앨범이 좋은 평을 받은 기리보이도 점차 음악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들린다는 여론이 늘어나는 기미가 보입니다. 어차피 스타일을 확립하고 정제해가는 과정이 있다면 그 속에서 유사성 정도는 감안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지만, 이번 EP도 여튼 그 의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Minit이 전곡 프로듀싱을 했다는 점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클럽 메가믹스 테크노 같은 분위기의 Minit 비트는 파워풀하고 청량감을 안겨주긴 하지만 후렴 직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드럼롤이라든지, 규격화된 패턴이 있어서 뻔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여럿 존재하고, 아니나 다를까 전작 "도쿄"와 이번 곡들을 대입시켜보면 거의 일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 앨범 수록곡들도 나름의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이를테면 "파티피플"의 브라스 세션이라든지, 평소보다 좀 더 힘주어 외치는 기리보이의 후렴이라든지, Minit의 화법 안에 전개된 기리보이의 찌질감성 "party is over"라든지. 친숙한 느낌일 뿐 앨범 자체는 짧고 굵게,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간결한 앨범이란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 이 친숙함에 대한 개인적 반응의 차이가 앨범에 대한 호불호 (어쩌면 더 나아가서 당분간 기리보이 디스코그래피에 대한 호불호)를 만들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좀 더 신선한 맛을 원하는 건 있지만, 당분간은 이번 앨범의 이 정도로 괜찮습니다. 어차피 기리보이는 워낙 무궁무진한 시도를 하는 터라 지금의 모습으로 미래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2) 현시인 - 시집: 眞心 (2019.4.17)




 뜬금없이 옛날 앨범으로 돌아갔지만, 여튼 힙합엘이 게시판에 올린 '한탄' 글을 계기로,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앨범입니다. 스스로의 예명을 "시인", 앨범 제목을 "시집"으로 지은 것부터 예상되듯, 이 앨범은 사운드보단 메세지에 크게 치중한 앨범입니다. 구성을 보자면, 앨범 소개 자료, 그리고 인트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삶, 사람, 사랑, 그리고 향, 바람, 시"가 각각 주제가 되어 한 트랙씩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을 이루는 요소'라고 얘기하면서, 각 단어에서 파생된 진솔한 얘기를 풀어나갑니다. '시'라는 표현에 대해 지레 겁을 먹을 수 있지만, 가사는 어렵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각자 고유의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맘에 드는 점은, 얘기들이 하나같이 슬프고 어둡지만 담담한 어조 때문에 극단적 감정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일을 피했다는 것입니다. DSEL과 야간캠프가 반반씩 제공한 비트는 평범하고 무난하기 때문에 맞춤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담담함을 잘 감싸주는 옷이 된 것 같군요.




 다만 이건 좀 다르게 비평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이 앨범은 사운드적인 강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이런 앨범에 현란한 랩스킬과 바운스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부분에서는 감정 전달이 용이하도록 좀 더 몰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 냉정하게 말하면, 의도된 어조가 아니라 단순히 목소리 운용 기술의 부족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플로우는 고정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쉽게 지루해질 수 있으며, 이 역시 앨범의 특성상 면죄부를 줄 수도 있겠지만, "향" "바람" 등 랩 템포가 여타 트랙에 비해 다소 변칙을 보이는 트랙에선 박자를 절거나 발음, 억양이 뻣뻣해지는 것을 무시하기 어렵군요. 메세지 면에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한 가지로는, 삶, 사람, 사랑... 들을 자신의 구성 요소라고 얘기했지만 실제 스토리텔링에선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만 취하는 듯한 점입니다 (하긴 "그리고"가 구성 요소는 아니니까 완전 그런 컨셉으로 간 건 아니구나 싶지만). 이는 좀 더 근본적으로 파헤쳐보면, 다른 소재를 통해 얘기하는 것이 결국 물질주의적인 세상과 그 속에서 느낀 결핍의 토로라는 공통 화제로 모이기 때문에, 즉 실제로 하고 싶은 얘기는 주어진 소재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단점으로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는 트랙들의 얘기가 큰 틀에서는 다 똑같게 들려 아쉽더군요.




 오랜만에, 6월달에 들은 24Oz의 "어른"이란 앨범이 생각났습니다. 큰 장식 없이 투박하고도 순수하게 자기 얘기를 한다는 점에선 탱의 "품바"도 연상되었고요. 하지만 두 앨범에 비해 현시인의 차분한 스토리텔링은 분명 차별점이긴 합니다. 솔직히 말해, 현시인이 반드시 음악을 해야하는, 이 씬의 필수 요소인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겠죠. 다만 최근 들어 점점 희귀해지는 스타일의 음반이었음은 분명하고, 좀 더 나아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랩을 들려줬으면 하는 건 분명합니다. 더불어, 현시인 역시도 아직 하고픈 얘기가 아직 많을거라 믿습니다. 3개월 여의 기간이 지나 본인이 직접 한탄을 하기 전까진 존재도 모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저는 이렇게 한 명의 아티스트를 더 알았고, 다음에 뭐가 나온다면 더 준비된 자세로 감상해보겠습니다.






(3) Young West - Neo World (2019.8.6)




 MKIT Rain의 멤버 중 (적어도 저에게는) 가장 베일에 가려져있던(?) 멤버 Young West의 새 EP입니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기보단, 그냥 제가 친숙하지 않은 스타일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MKIT Rain의 다섯 명 중 제일 클라우드 랩, 멈블 랩 스타일이 강하여 집중해도 잘 들리지 않는 발음과 반복되는 구절, 뚜렷한 코드가 없이 흘러가는 멜로디 등으로 몽환적인 기운을 이끌어냅니다. 스타일만 놓고 봐선 같은 레이블의 Loopy의 예전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훨씬 더 산만하고, 덜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생각되고, 근래 들은 앨범 중에선 Wikiyoung이 연상되는군요 (Wikiyoung과 비교해선 더 깔끔하긴 한듯;). 장르 팬이 아니라서 늘 이런 류의 앨범을 어떻게 느껴야하는지 곤혹스럽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여섯 트랙들의 차이가 확 와닿지 않아서 앨범을 돌리는 내내 그냥 한 자리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끝난 느낌이었습니다 - 마지막 트랙 "Amazing"이 뭔가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는 느껴졌지만 마찬가지로 앞의 트랙과 눈에 띄는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더군요. 하긴, 이 장르가 원래 그런 걸 노리고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늘 그렇듯 제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할 부분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Young West의 음악 세계를 조금 더 알았다는 데에 만족하렵니다.






(4) 안병웅 - Bartoon: 36 (2019.7.17)


    M.S.F. - The Beginning (2019.7.23)




 안병웅은 많은 이들이 쇼미더머니 시즌 8을 통해 알게 된 래퍼일 것입니다. 저도 이름만 좀 익숙하고 제대로 들은 건 쇼미를 통해서였는데, 그 후 좀 찾아보니 Mic Swagger 시즌 4 맨마지막 에피소드인 "Open Mic"에서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Poy Muzeum 최근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하기도 했군요. 가사를 보면 "Beddy"라는 이름을 쓴 것 같기도 한데 그걸로 나오는 검색 결과가 없네요. 한편, 동료 래퍼인 Taebin과, Owen Ovadoz를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한 이름의 비트메이커 Candid Creation까지 셋이서 만든 팀 "M.S.F." (Make Some Flavor)의 앨범도 본인의 믹테와 일주일 정도 간격으로 최근 발표하였습니다.




 방송에서도 90년대 골든 에라 붐뱁을 표방하는 걸로 홍보되었던 만큼, 이 스타일은 두 앨범에서도 아주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기존 비트를 꽤 쓴 "Bartoon: 36"에는 Craig Mack이나 Dr. Dre의 비트도 들어가있어서 초이스부터 그런 티가 풀풀 나죠. 하지만 두 앨범은 목적이 꽤 다릅니다. "Bartoon: 36"은 안병웅의 스펙트럼의 넓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붐뱁하면 연상되는 묵직하게 쏘아붙이는 랩으로 포문을 열지만 (이번 쇼미더머니 2차에서 했던 곡 "Who the Best"도 여기 수록곡) 중반 전후로 등장하는 색다른 분위기의 곡에 좀 더 흥미가 갑니다. 이 구간의 곡들은 90년대 느낌을 놓지 않으면서도 몽환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Puff Pass" 같은 재밌는 가사까지 얼핏 ATCQ나 De La Soul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역으로 힘을 푼 발음과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듯한 독특한 하이톤은 Qim Isle이 연상되더군요 (사실 Poy Muzeum 앨범에 피쳐링했을 때만 해도 이거 혹시 여자 래퍼인가... 했던;). 




 반면 M.S.F.의 팀 앨범은 공격적인 붐뱁 스타일에 초점이 잡혀있습니다. 이는 팀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전부 보여주기보단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임팩트를 남기려는 의도로 생각됩니다. '청각적인 쾌감'을 논한다면 저는 "The Beginning"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Bartoon: 36"의 다양한 스타일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는 앨범 구성 자체는 만족스러워요 - 구성만 놓고 보면 정규 앨범으로도 손색이 없죠. 다만 전형적인 패턴의 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올드 스쿨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느껴지는 단조로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반면 M.S.F.의 앨범에선 여러 가지 패턴으로 그 단조로움을 깨고자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Taebin의 역할도 큽니다. 사실 둘의 케미가 엄청 좋다고 하긴 좀 찜찜한데, 이건 사실 안병웅의 하이톤이 너무 독특해서 팀으로 잘 안 묻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병웅이 부족했던 무게감을 적당히 보태주고 쫀득쫀득한 타이트함을 제공하여 곡을 훨씬 듣기 좋게 만들어줍니다. 더불어 Candid Creation의 비트도 그들이 취하고자 하는 매력은 놓지 않으면서 세련되어서 몰입하기 좋고요. 사운드알못이 말하기 어렵지만, "Bartoon: 36"은 "The Beginning"은 물론 기타 영상에서 나온 안병웅의 랩에 비해 타격감이 덜한데 믹싱/마스터링의 역할도 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근데 같은 사람이 믹싱했는데..a).




 쇼미에서 심사위원들 평처럼, 아직은 뭔가 모를 미숙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목소리는 양날의 검이라 쓰기가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우선 자신이 하는 스타일의 매력을 알고 그걸 적극적으로 취하는 태도와 포텐은 무시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한영 혼용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최근 들었던 래퍼 중 제일 한글-영어 간 전환이 자연스러운 래퍼였던 거 같습니다 (근데 "The Rules"의 R 발음은 왜 그러지). 앞으로 보여줄 것들을 더욱 기대해봅니다.




PS 디깅으로 믹테 소개 및 많은 꿀정보를 주신 DJ Sam 님께 감사.







(5) C.Cle - Lowrider (2019.8.8)




 C.Cle은 201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래퍼입니다 - 멜론에서 검색해보면 2005년 디지털 싱글이라면서 당당하게 Necro의 "Gory Days" 자켓을 박아놓은 무언가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아마추어 시절 "Necro"란 아이디를 썼던 것 + 현재의 사클과 비슷했던 한국 웹사이트 "밀림"에서 디지털 싱글을 펑펑 내주던 시절의 산물인 것 같습니다. 흔적이 남아있다는 걸 조금 충격. 아무튼 그는 한국의 지펑크 아티스트를 자처하며 소소한 활동을 이어왔고, 2018년부터는 "Dish Crimson"이라는 '힙합 밴드'를 조직하여 함께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적어도 Dish Crimson의 조직 이후로는 쉴틈 없이 작업물을 발표해왔으며, 이번 "Lowrider"는 그의 첫 정규 앨범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지펑크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 앨범의 장르는 그것 하나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물론 익숙한 신스 소리가 군데군데 들리고, 전체적으로 웨스트 코스트를 표방한 듯한 칠링한 분위기가 깔려있긴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한라산", "You Don't Jockin My Style" 같은 트랩이나 "제주도 드라마" 같은 밴드 세션이 강조된 곡들도 있습니다. 이건 그가 Dish Crimson 활동을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그는 지펑크 아티스트란 말로만 표현하기엔 좀 스펙트럼이 넓어졌단 뜻이겠죠. 이건 장점으로 봐야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앨범, 더 나아가서 C.Cle이란 아티스트를 감상하는데 집중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과 같은 맥락이라 해야할지, 앨범의 제일 큰 문제는 큰 한 방의 부재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추상적인 이 구절을 감상 쓸 때 끌어다쓰기 싫어하지만, 정말 "Lowrider"는 한 방 없이 조용하게 시작하여 끝나는 앨범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느긋함을 기반으로 한 C.Cle의 랩은 큰 변화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고 매듭을 짓습니다. "Lowrider" 같은 분위기의 곡에선 나름 빛을 발하지만, 트랩 곡들이나, 나름 격한 감정 고조가 있었던 "제주도 드라마"에선 해로웠던 것 같군요. 불현듯, 지펑크인데 펑키하지 않은 것은 옳은 현상인가 고민이 되네요.




 앨범이 전달하는 메세지는 따뜻하고 훈훈합니다. 특히 제주도에 대한 자부심이 전체적으로 앨범에 물씬 풍겨나는 점은 맘에 드는 부분입니다. 사운드 면으로도 깔끔하게 잘 빠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스타일적으로, 누군가에겐 따분하고 흐릿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 연출이 본인의 실수라기보단 의도로 보이기 때문에 왠지(?) 안타깝군요. 단순히 자극적인 음악에 길들여진 귀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지 조심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6) Rakon - Rock on 24 (2019.8.9)




 Rakon은 Zene the Zilla의 원 소속 그룹으로 유명한 "Young Thugs Club"의 멤버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그래서 Zene the Zilla와 비슷한 스타일의 트랩 앨범이겠거니 하면서 앨범을 한 번 돌린 후, 저는 Young Thugs Club의 곡들을 다시 돌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예전에 들었을 때 이런 래퍼가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면서요. 그만큼 Rakon의 앨범은 신선한 반전의 충격이었습니다. Eddy Pauer, Playoungstic, SLO 등 트랩 쪽에서 굵직한 프로듀싱진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에서 던지는 자못 무겁고 진지한 화두는 전형적인 트랩으로 느껴지는 비트를 비틀어버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 물론 "산책" 같은 스트링 세션이 트랩 앨범에 나올 거라고 예상치 못한 점도 있었긴 하지만요. 이때문에 방방 뛰는 트랙이어야 했을 것 같은 "Thugs' Night"도 여운이 남아서 묵직한 곡으로 들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소리만 따졌을 때, 전반적으로 Zene the Zilla와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좀 더 저음역대가 강한 목소리는 Zene the Zilla에게 아쉬웠던 부분도 해소시켜주는 듯합니다 (사실 이번 "Thugs' Night"을 듣고 제가 "야망꾼"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사운드 작업 부분의 차이 때문이 맞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Young Thugs Club의 기존 팬들이나 트랩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군요. 커리어적으로는 그의 본격적인 첫 솔로 작업물인듯한데, 후에도 좋은 작업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DOX-A는 Dawn Dox로 이름을 바꿨나 보네요.







(7) Rare - 돌아가는 길 (2019.8.9)




 개인적으론 다시 보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반가운 이름입니다. Rare는 10여년 전 Grand Prix와 아우라지 크루를 필두로 하여 부산 씬의 입지가 급부상할 때, 아우라지 소속으로 활동했던 래퍼였죠. 이외에도 UTR, Diamond Quality 등 이런저런 소속은 있었지만 아우라지와 공연 시리즈 Alive가 대체로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였고, 지금은 정상수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알려진 Blasta와 "Rare and Blasta"란 이름의 팀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2009년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 후 (중간에 싸이월드에서 회사 홍보곡 같은 걸 만든 걸 본 거 같기도 하지만) 10년만의 컴백이로군요. 참고로 이름은 원래 대문자 표기였던 거 같은데 앨범 보도 자료엔 Rare로 되어있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은 이라면 Rare의 새 앨범은 한 번 듣고 지나가게 될 공산이 커보입니다. Rare가 예전 활동할 때 가장 주무기로 삼았던 것은 그의 다이나믹하고 신나는 보이스 컨트롤이었죠. 근데 이번 앨범에는 그게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확 죽었습니다. 약간 죽이는 것 정도는 괜찮았을 겁니다 - 애초에 너무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오가는데다, 차분한 곡에서도 그 분위기가 튀어서 잘 묻지 않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완전히 그런 특징이 거세되고 나서 현재의 랩은 그저 평범하고 힘 없게 느껴질 뿐입니다. 신나는 곡을 의도했던 "Color"의 경우는 컨디션 안 좋을 때 녹음하셨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이런 에너지의 추락은 비단 보이스뿐만 아니라 랩 전반에서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저는 마디를 비워도 빈 자리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그루브이고 래퍼의 스킬이라고 생각하는데, Rare가 마디를 비운 자리는 그저 구멍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더군요. 과거 기억을 갖고 있든 없든 너무나 심심하고 평범한 랩 뿐입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비트 초이스는 기존 Rare가 했던 음악을 잘 계승하여 다양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마 타입 비트들인 거 같긴 하지만). 더불어 성숙이 느껴지는 가사가 찬찬히 읽어보면 꽤 공감되고 몰입이 되더군요. 하지만 단점에 비해선 너무 소소한 점들이라 앨범의 전체평에 크게 반영시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랩을 해서 감각을 잃어서 그렇다... 라고 하기엔 또 하루 두 시간씩 차 안에서 랩 연습을 했다는 가사가 있어서..ㅠ 냉정하게, 이번 앨범은 "반가운 이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군요...





(8) ACACY - Tragedy (2019.8.14)




 badassgatsby와의 합작 앨범 이후로 오랜만에 각 잡고 들어보는 ACACY의 앨범입니다. 전작인 "You classified us."에선 포부보단 비교적 평범한 트래퍼의 인상이 있었는데, 이후로 나왔던 싱글들도 그렇고 이번 앨범도 그렇고, ACACY의 정체성이 일반적인 트랩과는 다르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은 어떤 한 사람과의 관계 변화를 토대로 앨범을 꿰뚫는 서사를 담으면서, 진중함이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곡 분위기들도 많이 바뀌어서 비트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트랩보단 이모 힙합에 가깝다고 느껴지지만, 대개의 이모 힙합에서 느껴지는 쳐지는 로파이함보단 ACACY의 목소리 톤과 플로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에너지 있게 느껴집니다. 특히 후반부, 서사에서 절정과 결말을 맞는 "절정"부터 "SINCEWHEN"의 구간은 장엄함까지 느껴지는 인상 깊은 부분입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가장 트랩 스타일에 가까운 곡이었던 "Vanity"의 경우 비트와 탑 라인이 불협화음이라 나쁜 의미로 튀게 느껴졌다는 점 (근데 또 곡 서사에서 보면 필요했던 곡 같긴 합니다. 멜로디컬한 노래들이 몽환적이고 아스라하게 전환되는 첫 부분이죠)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서사에 분명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임에도, 그렇게 쉽게 스토리가 이해되고 몰입되지 않는다는 부분 - 앨범 정보를 통해 세세한 보충 설명까지 곁들여놓았지만 개인적으론 보충 설명과 가사가 접목이 잘 안 되어서 더 혼란스럽더군요. 아직도 '너'가 사랑하다 이별한 대상인지, 부러워하다 멀어진 친구인지, 아니면 아예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대한 비유인지 고민이 되네요. 이러나 저러나 저는 꽤 맘에 든 앨범입니다. 그저 트래퍼라고 생각했던 아티스트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근 들었던 Rakon의 앨범도 연상되는 부분이었습니다. juiceovealcohol을 탈퇴해버렸지만 Khundi Panda가 여기에 참여했다면 지금까지의 콜라보 중 제일 어울렸을 것만 같군요.







(9) Sama.D - Before Dawn (2019.8.14)




 지난 정규 앨범 "SAMADhi" 때 이후로 앨범 단위로는 2년만의 앨범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이번 앨범의 장단점은 지난 "SAMADhi" 때와 같게 들립니다. 언제나와 같이 랩은 담백하고, 라임의 선택과 전달은 정확합니다. 가사를 안 봐도 정확하게 캐치되는 발음과, 어렵지 않게 캐치되는, 그렇지만 얕거나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가사 내용은 그의 강점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가지고, Sama-D는 지난 정규 앨범보다 좀 더 트렌디한 스타일을 시도했습니다. 전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비트에서 Sama-D 랩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느낌은 장점보다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불어, 나름 오토튠을 건다든지 하는 식으로 새로운 걸 시도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이라고 느끼는 건 저뿐이려나요. 피쳐링한 LoDi가 어느 정도 이 갭을 줄여주긴 했기에, 두 트랙밖에 참여 안 한게 아쉽습니다. 구체적으로 "I Don't Care"의 인트로 랩 리듬감이라든지, "Whop"이나 "Text Me Back"의 약한 훅 메이킹 등이 마음에 걸리네요.




 저번 앨범도 이런 식으로 좀 안 좋은 점만 얘기했었지만, 개인적으로 Sama-D에 대해선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음악이 여러 가지로 왔다갔다 하는 감은 있지만, 랩에 있어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맘에 듭니다. 아주 예전, 개화산 크루 때의 스타일이 그에게 제일 어울려보이긴 하지만 지금 하기엔 너무 오래된 과거죠. 부디 기대치를 충족하는 멋진 옷을 찾기를 바랍니다.





(10) 하회와 모아이 - $illy (2019.8.17)




 "H.U.N.C.H.O."라는 곡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어느새 기리보이의 샤웃아웃을 받고 있는 듀오 "하회와 모아이"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H.U.N.C.H.O." 당시 트로트와 트랩을 섞은 트로트랩이라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소개한 바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느껴지는 이 뽕끼는 앨범 전곡에서 물씬 느껴집니다. 트로트 삘의 곡을 이벤트성으로 만들었던 경우는 몇 차례 있었지만 아예 본격 기믹으로 삼았던 팀은 제가 알기론 처음 보는군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유머러스함이 이들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는, 그들의 포부보단 좀 뻔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여유롭고 느긋하게 타는 리듬과 구성진 목소리가 차별점이긴 하지만, 표현이 어쨌건 지향하는 스웩과 익숙한 코드와 전개의 비트 등은 낯익은 트랩 스타일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재치와 유머가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한 나머지, 이런 점을 인지하고서도 뻔하지 않은 매력을 느낄 수 있군요. 이 유머가 유치함만으로 남지 않으려면 음악적으로도 더욱 받쳐주는 역량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지켜볼 일이고 이번 앨범은 나쁘지 않게 기억에 남을 스타트인 듯하네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2
Comments
1
2019-08-20 06:34:54

현시인과 m.s.f 관련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조건 욕하지도 무조건 칭송하지도 않는 시각.
현실도 바쁘실텐데 열일하시는 거 리스펙합니다!

WR
1
1
2019-08-20 11:28:49

영광입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