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PENMIC
HIPHOP-TALK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47
 
1
9
  592
2019-08-04 23:50:52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요즘도 은근히 감상은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힙합씬은 진짜 뭐가 많이 나오는 거 같군요.
하지만 쇼미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러쉬가 느려지겠죠?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E SENS - 이방인 (2019.7.22)

 힙합 팬들이 제일 기다려오던 앨범 중 하나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연한듯 폭발적인 호응이 이어지고 있으며 저 역시도 찐하게 앨범을 감상 중입니다 - 당연히 한정판 구매도 했고요. 그 와중에, 저는 이 찬사로 가득한 여론이 꽤 신기한데도 있습니다.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발언이지만 이는 앨범이 별로라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이방인"은 준비 기간 끝에 결국 정규로 발표되었지만 본래 믹스테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흔적은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3분이 되지 않는 곡들이 많고, 비트는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 등지에서 활동하는 외국 프로듀서들의 비트로 대개는 무난한 루핑에, 일부러 비워둔 자리가 많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제일 문제적 프로듀서 FRNK의 비트마저도 이번엔 얌전합니다). 무난하다는 건 실력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분위기의 흐름이 평탄하고 변화폭이 좁다는 거죠. 사이사이 끼어있는 좀 단조로웠다는 반응은 이것을 반영하는 걸 겁니다. 전에 박재범의 "The Road Less Traveled" 얘기할 때 말했던, 소설책보다는 포트폴리오 같은 느낌이 이번에 많이 났습니다. 전작 "The Anecdote"에서 "A-G-E"의 공격성, "Writer's Block"의 느긋함, "Next Level"의 유쾌함, "The Anecdote"와 "Unknown Verses"의 진중함 등 다채로운 감정선이 있던 것과 대비됩니다. 트랙들이 전달하는 바이브의 예상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건 "MTLA" 정도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이러한 특징은 E SENS의 랩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DANCE"가 나오기 전까지, 트랙 간, 그리고 트랙 내 벌스 간에 두드러진 차이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사와 플로우, 라임 전부 평소하던 대로의 방식을 거의 밟아나갑니다. 심지어 훅조차 별다른 장식을 두지 않았어요. 많은 이들이 한정반 only 트랙인 "DON"과 "서울"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그 두 트랙도 큰 틀에서 보면 뻔합니다. 딱 E SENS가 했을 그런 노래 두 곡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돌릴 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결국 E SENS의 역량이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XX아들같이" 뮤직비디오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차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 E SENS의 랩은 그냥 막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이야기를 듣는 자연스러움이죠. 이야기는 굳이 리듬을 기깔나게 타거나 목소리를 다이나믹하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도 소리 면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E SENS의 랩도 마찬가지입니다 - 라임에 괄호를 치듯 그의 플로우를 박자 면으로 분석해보면 별다른 스킬이 없습니다. 그냥 그가 쫀득하게 얘기를 들려주고 있을 뿐이죠. 가사도 그렇습니다. 사실 E SENS의 가사는 어렵습니다 - "RADAR"의 훅이 난리입니다만, 대체 그 레이더는 뭘 감지해서 델렐레거리는지 한 번에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없을 겁니다. 근데 우리는 그걸 잘 눈치 못 챕니다. 일상적인 단어와 말투로 전달되다보니까 되게 쉬운 얘기를 듣는 것 같거든요. 그 와중에 터지는 펀치라인들. 말할 것도 없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듯 전달되었기에 더욱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일치하는 느낌이 있고 그 쾌감이 있습니다. 

 무난하고 뻔하게 흘러가던 노래들에 E SENS의 퍼포먼스가 얹혀지자 지루함은 통일성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을 듣고 느낀 첫 인상은 무서울 정도로 단단한 앨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처음 트랙리스트를 보고 "비행"이나 "쉬게" 같은 노래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으나 정작 앨범을 들으니 어디에 끼워넣어야할지 생각도 안 들게 하는게 그 단단함입니다 (물론 이건 Dbo, Okasian과의 콜라보 곡을 뺀 과감한 결단 등도 한몫 했겠죠). 내지르지 않는 ("05.30.18" 빼고...) E SENS의 랩이 따갑게 와닿게 만드는 사운드 작업도 훌륭합니다. 제가 말한 '신기한 찬사의 여론'은, 앨범이 요즘 트렌드에 완벽하게 반대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호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E SENS의 능력 때문이겠죠. 오로지 랩으로만 일궈낸 성과.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하드코어 힙합'입니다. "이방인"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하드코어 힙합 클래식이었습니다.

PS 화제의 앨범이니 자진납세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비트를 '무난함'으로 느낀 저와 완전히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글을 몇 개 보았습니다. 분명 제가 사운드알못이라 생긴 차이점일 겁니다. 개인적으론 비트 내의 꽉 찬 악기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가볍고 단순한 루핑 비트의 퀄리티를 구분하고 평가할 정도로 귀가 좋지 못합니다. 이 이유 때문에 "The Anecdote"의 비트가 제 취향에 가깝고, "이방인"의 비트들을 비슷비슷하다고 얘기한 것이니, 너무 노여워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 pH-1 - Summer Episodes (2019.7.23)

 여름 특집으로 나온 트리플 싱글입니다. 이번에도 전작 "HALO"의 성공을 이끈 파트너 Mokyo가 세 곡 전부를 프로듀싱해주었죠. Mokyo의 샘플링 기반으로 한 풍부한 프로덕션은 이번에도 여전한 한편, "Summer"라는 테마에 맞게 "HALO"에 비해 좀 더 업템포 기반의 가벼운 곡들이 수록되어있습니다. pH-1의 깔끔한 랩도 여전하지만, 이에 맞춰 밝고 경쾌하고, 특히 싱잉 부분이 싱잉 랩보다 진짜 노래라는 느낌이 있네요. 원래가 보컬 능력도 괜찮았었기에, 거부감이 있거나 뜻밖의 변화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전체적인 성격 때문에 이번 앨범은 조금 가요스럽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를테면 "Olaf"나 "Malibu"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이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네요. 뭐, 스타일의 변화라기보단 말 그대로 테마에 맞춰 잠시 한 가지 면을 보여주는 것일거라, 설령 불호로 느껴지더라도 pH-1을 미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3) Zene the Zilla - 야망꾼 (2019.7.24)

 Zene the Zilla가 Ambition Muzik에 합류하였습니다 - 계속 인디펜던트로 할거라더니 반전이로군요 (막 배신감 느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ㅋㅋ). 그리고 최근 Ambition Muzik에 합류했던 Way Ched와 Leellamarz가 그랬듯 Zene the Zilla도 이때까지 준비해왔던 앨범을 연이어 터뜨렸습니다. 다름 아닌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Zene the Zilla의 랩은 줄타기 쇼를 보는 듯한 에너지와 다이나믹함이 주무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제일 좋아했던 곡이 Woodie Gochild의 "Roll Cake" 피쳐링 벌스였고, 최근 나온 "백조의 호수"도 나쁘지 않았었는데요, 유독 저번 정규와 "감기" EP는 그런 느낌이 충족되지 않았었습니다. "감기"는 좀 진지한 테마로 가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이번 앨범은 전작에 비해선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풍성해지고 힘 있어지긴 했는데, 여전히 절 만족시키기엔 2% 부족했었습니다. 이전 곡들과 비교해보면 왠지 Zene the Zilla의 발성이 바뀐 듯한 건 저뿐인가요? (아님 믹싱의 탓일는지) 최근 들어 유독 보컬이 얇아지고 붕 뜬 느낌이 듭니다. 또 점차 가사에서 다루는 소재와 표현이 한정적으로 변하는 것 - 특히 제가 가사 해석하면서 보던 표현들이 그대로 옮겨진 것도 아쉬웠습니다. 어떤 분들은 급조한 느낌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이런 거였을까요. 그나마 앨범 후반부로 가면서 좀 더 리듬 타게 만들어주긴 합니다만, 예전만큼의 '아 이거!'라고 할만한 부분은 없네요.

 나름 정규라서 그런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흔적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뜻밖의 붐뱁을 시도한 "야망꾼 Freestyle"은 그닥이었습니다 - 물론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어색함이 분명 있더군요. 의외의 시너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반면 "부재중 전화"는 앨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애잔한 바이브는 "감기" 때에서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그때보다 발전한 느낌입니다 - 이제 와서 돌아보면 "감기"는 주제와 톤을 약간 다운시켰을 뿐 음악적으론 평소 하던 트랩에서 달라진 게 없었던 거 같은데, "부재중 전화"는 뭔가 한 단계 더 나아간 듯했습니다. C Jamm이 "킁"에서 보여줬던 느낌이랑도 좀 비슷했고, 그래서 피쳐링도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 이게 의외의 시너지였던 거 같네요. 

 최근의 모습을 고려하면 "야망꾼"은 그 스타일의 범위 내에선 나름 잘 뽑힌 편입니다. 제가 느끼는 아쉬움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좀 깔려있습니다. 근데 아직 저는 이게 Zene the Zilla가 정말 바꾸고자 해서 바꾼건지, 아님 뭔가 요즘 놓치고 있는건지 헷갈리네요. 이때문에 Ambition Muzik에 들어가서 보여줄 행보를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지켜보게 됩니다. 그래도, 좀 더 빠방한 활동 기반을 갖춘 Zene the Zilla를 축하하고 앞으로를 기대해보겠습니다.


(4) BewhY - The Movie Star (2019.7.24)

 쇼미더머니 시즌 6로 혜성 같이 씬의 중심부로 도약한 이래로, BewhY가 좋은 래퍼인가는 늘 뜨거운 화두였습니다. 이런 논쟁이 결론이 날 리가 없지만,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랩은 잘 하지만 좋은 프로듀싱이 필요한 래퍼" 정도였습니다. 이는 그가 그리도 케미가 맞는 AOMG의 Gray를 버리고 직접 "Dejavu Group"이란 레이블을 세운 것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분명 숨어있었을 겁니다. 그랬기에 이번 앨범이 전곡 그의 프로듀싱으로 채워졌다는 소식은 기대보단 염려를 안기기 충분했습니다.

 음악적으로 그의 노래가 얼마 못 가 질렸던 이유는, 빼곡히 들어찬 라임과 플로우 (일부는 3/4박자를 자주 썼던 탓이기도 한 거 같습니다), 특유의 꼬는 발음 등이 폭격처럼 쏟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멋진 스킬이더라도 그것만 이어질 경우 금방 '평범'한 것이 되어버리는 법. 예컨대 변화구가 필요했고, Gray의 프로듀싱은 그런 변화구를 잘 유도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 "The Movie Star"에서 보여지는 프로덕션은 솔직히 그 이상이라고 느꼈습니다. 웅장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자주 활용되는 오케스트라 세션 때문만은 아닙니다. 특유의 공격적인 현악기 선율은 타이트한 그의 랩을 잘 포장해주며, 로파이한 베이스와 드럼은 타격감을 배가시켜줍니다. 현란하면서도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비트의 전개는 BewhY에게 필요했던 변화구가 되어주며, 중간중간 들어간 싱잉이 과열을 방지하는 쿨다운 같은 느낌으로 적재적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앨범 전체의 차원에서도 "주연" "장미는아름답지만가시가있다" "초월" 등의 트랙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피쳐링진들도 훌륭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VJ를 언급하는데, 저는 Crush와 Khundi Panda의 랩도 엄청 좋게 들었습니다. 선공개곡 "찬란"을 들을 때까진 이번에도 BewhY의 음악은 과할 것이다 라는 예상을 했지만 (사실 "찬란"은 앨범 전체 컨텍스트에서 들어도 여전히 좀 과한 느낌) 결과물은 과히 그 예상을 깨뜨리고 뛰어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세지입니다. 앨범 제목처럼 BewhY는 앨범을 영화처럼 구성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으며, 화려한 포부가 점차 화려한 현실로 변하는 과정을 트랙 전체에 걸쳐 서서히 보여주면서, 이 과정을 주연과 주인공의 차이로 한 단어로 요약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근래 들은 한국 힙합 앨범 중 이렇게 큰 스케일을 느낀 적이 있나 싶습니다 - 웅장함을 느끼는게 악기 요소 때문만이 아니라는 얘기는 이것입니다. 앨범 전체가 그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에 구성은 통일성을 넘어 정말 "The Movie Star"를 '한 편'이라는 큰 덩어리로 계산하게 만듭니다. 영화라는 주제에 맞게 영화 관련 어휘를 자주 사용한 것과, 다음 트랙의 제목을 가사에 활용하여 유기성을 강조한다든지 하는 요소의 소소한 재미도 있습니다. 이 소소한 재미의 백미는 마지막 트랙 "주인공"에서 각 트랙의 제목을 따서 쓴 가사와 세 가지 비트를 오가며 랩하는 것입니다 - 크레딧롤이 올라갈 때 영화 장면들을 요약하는 컷씬과 배경으로 나오는 2-3곡의 OST가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뻔할거란 생각으로 돌려보았던 앨범은, 돌리면 돌릴수록 BewhY를 말 그대로 '거장'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뭐, 앨범을 호감으로 보는 데에는 BewhY 기존 랩 스타일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작용할 것입니다. 어쨌든 그의 랩의 기본 골격은 평소 하던 것들이니까요. 그런 사람들에겐 아마 비트와의 조화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어 더욱 지루함을 안겨줬을지도 모릅니다 - 앨범 커버 때문인지 몰라도 전작에 비해 '흑백'의 느낌이 많이 나는 앨범인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BewhY가 프로듀싱을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프로듀싱은 딴 사람한테 맡기지'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면, 그건 이 앨범을 안 들어본 사람의 설레발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크기에 대한 평가는 제각기일 수 있으나, BewhY가 이 앨범으로 무언가 이뤄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5) Yenjamin - Luv is Rage (2019.7.26)

 '김윤호'라는 이름으로 고등래퍼 시즌 2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Brand New Music 소속인 Yenjamin의 앨범입니다. Kiff Clan의 멤버이기도 했죠. 앨범 제목이 Lil Uzi Vert와 겹친다든지, 그림이 KYLE.을 연상시킨다든지 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앨범은 같은 레이블 동료인 GREE가 많이 생각납니다. 이는 그가 내세우는 스타일이 뭔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번 앨범이 그가 고등래퍼에서, 또는 지난 더블 싱글에서 보여준 모습과 거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건 그렇다고 치고 넘어갑시다. "Luv is Rage"에선, GREE가 경쾌한 올드 스쿨 느낌의 "벨튀"를 타이틀로 삼았듯 Yenjamin도 비슷한 분위기의 "Pull Up"을 타이틀로 삼은 반면, 수록곡들은 이모 트랩이나 모던 락 분위기 가득한 곡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트랙은 멈블 랩 같고, 어떤 트랙은 오르내림이 연상되기도 하는 등, 스타일의 중심이 잘 안 잡히고 계속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듯합니다. 노래들 자체의 어정쩡한 완성도와 산만한 구성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합니다 - 적어도 Young Kay와 달리 피쳐링진은 이번에 없긴 하네요. 정말 이번 앨범이 그의 의도대로라면, 향후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통해서 설득력을 갖춰야할 것 같군요. 아, 하나, 세 곡의 비트를 제공한 HAIFHAIF가 Lo Volf 앨범 때는 예상 못한 모습을 보여준 건 흥미로웠네요.


(6) Roof Top - 18 days (2019.7.28)

 지난 앨범 "Unfair" 후 한달 여만에 나온 EP입니다. 트랙 수는 저번보다 늘어났지만, 왠지 모르게 저번 앨범보다 더 "맛보기"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마도 1분여 짜리 곡 두 곡을 포함해 대체로 짧은 길이와 구성의 곡들이 수록되어있고, 피쳐링진도 없으며, 곡들이 대체로 심플한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에도 한 곡 빼고 모든 곡의 비트를 제공한 GXXD의 프로듀싱은 훌륭합니다 ("takeitback"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전형적이고 무난한 두 멤버의 랩에 적절한 조미료를 쳐주는 건 이 프로듀싱의 힘이고, 역으로 말하면 둘만의 아우라는 불충분할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결론도 나오긴 합니다. 뭐, 그래도 비트 역시 앨범의 퀄리티를 구성하는 요소이니 완전히 별개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죠. 저번 앨범보단 좀 꽉찬 느낌은 덜 하지만, 그냥 생각 없이 가볍게 들을만한 트랩 앨범 정도인 듯합니다.


(7) STi - 6am: unhappy people :( (2019.7.30)

 사실 개인적으로는 잊고 살던 이름이었습니다. 앨범 단위로는 2년 여만이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싱글은 계속 발표해왔더군요. 팬이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266의 해체 이후 첫 싱글 "Discovery"를 낼 때부터 알아왔기에 우선은 반가움이 마음 속에 솟아납니다. 제 머릿속 STi의 디스코그래피는 공백이 길어서 너무 예전 모습과 비교를 하는 것이 그렇지만, 훨씬 생생하고 풍부해진 사운드가 우선 느껴집니다. 특히 옛날 음악은, 미디 악기를 그대로 쓴듯한 촌스러운 사운드가 거슬렸던 적이 적지 않게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밝고 경쾌한 색이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색을 그려내는 게 기억 속의 STi의 음악이었고, 이번 앨범도 그런 식으로 감정의 줄타기를 능숙하게 보여줍니다. 제목부터 "unhappy people"이지만, 마냥 어두운 음악은 없거든요.

 다만, 기억 속 STi의 보컬 능력은 비슷한 수준인 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본래 STi는 싱어보다는 프로듀서로써의 능력이 더 조명 받는 뮤지션이었고, 이 음반을 놓고 보아도, 탑 라인을 만드는 능력이나 작사, 라이밍 디자인 등은 나쁘지 않게 봐줄만하지만 깊이가 얕은 와중에 감당하지 못할 기교만 들어간듯한 목소리는 여전한 아쉬움입니다. "담에봐"나 "어긋날 착"처럼 평소보다 더 가성이나 저음을 활용하려 할 경우에 이 약점은 극명하게 드러나는군요. 이걸 빼고라도 전반적으로 약간씩 음정이 불안정하게 들리는데, 이게 단순히 테크닉의 문제인지, 사운드 후작업의 문제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군요.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여러 래퍼들을 참여시켰음에도 거의 전곡에서 비슷한 식으로 뻔하게 소비된 듯한 느낌이었다는 정도. 결국 그의 보컬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이 앨범 (더 나아가 STi의 디스코그래피 전체)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해줄 것입니다. 아마 본래 STi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에겐, 오랜만에 반가운 선물이 되어줬겠지만요.


(8) Jayci Yucca - Cloud Star (2019.7.31)

 Wayside Town 소속 Jayci Yucca의 새 앨범입니다. 전작 "YUCCA PROJECT"를 통해 처음 접했기 때문에, 보컬로써의 인식이 훨씬 강하기는 하지만, 그 앨범에서도 "T.T.C." 같은 트랙이 있었던 걸 보면 특별히 스펙트럼에 제한을 두는 거 같진 않습니다. 이번 앨범만 봐도 전작과는 색이 많이 다릅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트랩 스타일을 더 입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게 처음 보여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에게 안 맞는 옷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어색하거나 질색할 일은 없지만, "YUCCA PROJECT"로 처음 접했던 저로써는 전작에 보여줬던 감미로움과 감성의 폭이 크게 축소된 건 좀 아쉽습니다. 탑 라인은 거부감 없이 잘 짜지만 아무래도 단순해졌고, 트랩치고는 에너지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렇습니다 - 특히 선공개 싱글이기도 했던 "인어공주"는 좀 더 통통 튀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밋밋하게 들은 건 저뿐이려나요. 마지막으로 씨티 팝 스타일의 비트에 목소릴 얹은 "떠날래"의 경우 여기다가 트랩 화법으로 하는 건 약간 언밸런스였던 거 같다는 느낌도 있었네요. 쉽게 접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은 건재합니다. 엄청 거부감이 일만한 트랙은 없어요. 다만 딱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번엔 없었던 게 전작과의 차이 같습니다.


(9) Yuzion - Young Trapper (2019.8.1)

 창모의 샤웃아웃과 더불어, 여고생 트랩 힙합퍼라는 점에서 요즘 들어 소소하게 이름을 알리는 뮤지션인 듯하더군요. 요즘 들어 많이 느끼는 거지만 이런 류의 음악은 좋아할 사람은 따로 정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Laptopboyboy, WavyPang이란 이름을 프로듀서진에서 보았을 때 예상했던 음악과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성별 때문에 다른 뮤지션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내는 목소리, 그리고 "henzclub" 같은 재밌는 가사 내용은 흥미롭지만 그 이상은 더 언급할만한게 없습니다. 도리어 가사는 돈을 곧 벌고 성공하겠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내용과, 전혀 그녀에게 어색하기만한 전형적인 머니 스웩 및 마약 얘기가 서로 모순되는 가운데 공존하고 있어서 듣는 입장에선 더욱 오글댔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Ballin'"에서는 약 안 먹어도 너네 거보다 좋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In My Pocket"에서는 하얀 가루와 주머니 속 마리화나를 자랑하고 있죠). 현실의 자신과 상상 속, 목표로 하는 자신을 그려낸 곡이 따로따로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아직 자기 것이 제대로 서지 않은 어리숙함만 보일 뿐입니다. 이대로 스타일 완성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게 요즘 트랩의 트렌드이지만, 저는 그래도 부디 어린만큼 추후 더 많은 발전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10) Gim Goyard - THE RICH;; (2019.8.2)

 4개월 남짓만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는 앨범으로써는 처음이긴 하군요. 전작 "돈보다 위" 믹스테입에서 받았던 느낌은 거의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 좀더 랩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으로, Nafla 같은 느낌은 전작에 비해 더 풍깁니다. '정돈되었다'란 느낌은 좋은 의미로만 말한 것은 아니고, 발음을 약간 끌고 흘리는 느낌이 나름 개성을 더해줬던 면이 있어서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장르는 하드 트랩이며, 꽉꽉 차있는 느낌의 랩이 가득합니다. 군데군데 차별화된 가사를 쓰겠다는 다짐이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론 가사보단 사운드에 훨씬 더 비중을 둔 앨범입니다. 여기서 전작과의 차이를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게 되는데, 훅의 비중을 일반적인 곡보다 많이 두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스의 길이가 그렇게 길지 않고, 가사가 상당히 단순화되어서 그런데요, 특히 단순화된 가사는 사실 뭘 말하려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압축적이고, 라임만 꼬박꼬박 박아가는 터라 억지 라임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비트는 그래도 랩의 파워를 더 잘 살리는 것으로 초이스가 된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전작에서 약간이나마 느꼈던 신선함이 잘 이어지지 않고 약간 죽은 느낌이라, 아쉬움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4
Comments
1
2019-08-05 08:05:27

비와이는 정말 역대급 걸작 하나 만들었다고 봅니다.

WR
1
2019-08-05 11:21:25

동의!

1
2019-08-05 11:10:54

최근 국힙 중에선 비와이 앨범이 제일 좋았네요 이방인은 어느 정도 예상한대로 나왔는데 무비스타는 길가다 예기치 않게 뒤통수 맞은 느낌임


WR
1
2019-08-05 11:21:49

맞아요 반전효과 때메 더욱 충격이 크네요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