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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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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0
2019-05-17 14:10:56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대체로 이 시리즈가 한 번 끝을 맺었던 2018.7 이후로 나온 앨범들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210 - 11010010 (2019.2.11)


 조금 늦게 찾아낸 앨범입니다. 영비의 크루 "Dickids"의 멤버로 유명하며, 그래서 영비와의 콜라보로 접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탄탄한 저음 톤의 랩이 인상적인 래퍼이며, Dickids 내에서 또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그러고보면 Dickids가 은근히 멤버들의 개성이 강한 편이군요.


 "11010010" (십진수로 변환해보면 '210'이 나옵니다)은 이모 힙합의 한 예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으면서 Tommy Strate의 "NEVERAGAIN"이 떠오르더군요). 시종일관 분위기는 쳐지고 우울하며, 210의 랩은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의 단단한 톤과 발성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입니다. 앨범의 구성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인스트루멘털 인터루드인 "Adult"를 기준으로, 전반은 그의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얘기하고 있고, 후반은 뭔가 그런 상처를 딛고 회복되어가는 듯한 이미지 (아마도 노래에 표현된 '너' 덕분에?)이지만, "Couch"의 아웃트로나, 마지막 트랙 제목이 "Fence"라는 점은 찜찜함을 남깁니다 (그런 "Fence"가 앨범 내에선 꽤 밝은(?) 스타일이란 건 재밌는 포인트 같습니다). 후반부로 옮겨오면서 적극적으로 멜로디컬한 싱잉 랩으로 바뀌는 것도 그런 의도가 반영되어 보입니다. '이모 힙합'이란 장르가 그렇듯, 앨범은 리스너가 210의 우울감을 공유하고 몰입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감정에 젖어든다면 앨범 감상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죠. 


 큰 단점은 찾아보기 어려운, 컨셉에 충실한 앨범입니다. 감정의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곡들의 길이가 2분 전후밖에 안 되지만 호흡이 길게 느껴집니다 - 오히려 너무 지루하지 않게 장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영어의 사용이 많은데, 제가 한영혼용을 무턱대고 싫어하는 쪽은 아니나 이 앨범에선 한글로 해도 충분히, 혹은 더욱 감정 전달이 잘 되었을 거 같다는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영어 라임이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던 건 인정). 더불어 특히 전반부에 영비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뭐, 이해는 가지만 개인적으론 약간 감상을 깨더군요. 어쩌면 그냥 역시 저의 취향 탓에 이런 트집을 잡고 앉아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앨범의 초점은 애초에 랩 스킬에 대해 평가하고 라임을 논하는 쪽이 아닙니다. 그저 감정 그 자체인 것이죠. 그런 면에서 210은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그림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서사의 전환점과 결말을 마련해주는 인스트루멘털도 그렇고, 한 명이 아닌데도 한 가지 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프로덕션도 큰 몫을 했던 거 같네요.



(2) 이도 더 나블라 - 중독 (2019.4.21)


 이도 더 나블라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운드클라우드 아티스트로, "중독"은 지난 그의 믹스테입 "ㅇㅗㅣㄱㅖㅅㅗㄴㅕㄴ"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되는 공식 믹스테입입니다. 전작은 일반적인 음악 형식이 아닌, 한국에서는 드물게만 시도되었던 포에트리 슬램 앨범이었습니다 - 이것만 봐도 이도 더 나블라가 평범한 아티스트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중독"은 슬램 앨범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나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앨범 안에서 우리가 아는 음악의 상식은 과감하게 해체됩니다. 벌스와 후렴이 존재하지도 않고, 16마디를 세지도 않으며, 반주는 전환을 넘어 아예 꺼졌다가 켜지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을 넘어선 부분까지 모두 주제를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4번 트랙 "Cannibal"의 경우, 곡만 들어선 뭔가 사랑 고백 같은 노래이나, 가사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전혀 다른, 인간을 음식 취급하는 ("따먹는다"라는 표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시가 적혀있습니다. 마지막 트랙인 "ㅇㅏ4"의 경우, die die die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곡의 아웃트로인데, 가사에는 중간중간 die die ddr die die라는 식으로 적혀있습니다. 곡으로 들어보면 die die die가 '딸딸딸...'로 들리기 시작하는 시점이 어디부턴가 있죠.


 내용적으로는 앨범 제목처럼 "중독"에 관한 얘기들이 담겨져있는데, 이를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색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찰과 분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인간은 과연 짐승과 그리 다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덫"에서의 반복적인 '침팬지'라는 단어, "21"에서 소재로 쓰인 웅녀 신화나 앨범 전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물에의 비유 ('손질된 고깃덩이' 'cat who is neutralized' '레밍' 등) 등이 이를 드러내고 있죠. 더욱 재밌게도, 트랙별로 다른 예술적 장치들이 자리하여 이 주제를 다른 각도와 색깔의 조명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어떤 트랙은 난해하지만, 어떤 트랙은 쉽습니다. 어떤 트랙은 파괴적이나, 어떤 트랙은 차분합니다. 곡들을 들으면서 다양한 그림이 걸린 갤러리가 연상되는 건 이 덕분입니다. 이런 주제 의식과 묘사 능력의 깊이는 저의 힙합 감상 경력에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수준입니다.


 저는 이도 더 나블라를 래퍼나 뮤지션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앨범이 음악의 틀로만 국한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의 탈을 쓴 현대 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시'라는 것도 너무 틀을 짓는 것일지 모르겠군요. 그야말로 현대 예술의 집합체입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이 목소리를 통한 감정 표현이 기대보다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데 (그래봐야 사실 이를 느낄만큼의 벌스가 온전히 살아있는 건 마지막 트랙 뿐입니다), 이런 지적조차 앨범을 너무 음악의 틀에 가두려는 시도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당연히, 이 앨범은 불친절하고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그러나 시도의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18살이라는 그의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포텐셜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부디 재능을 더욱 꽃피우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군요.



(3) A$hiroo - Born Broke Die Rich (2019.1.14)

    A$hiroo - Hood Baby (2019.5.4)


 원래는 "Hood Baby"만 스트리밍으로 있는 줄 알았는데 1월 EP가 있더군요. 재밌게도 두 앨범은 꽤 상반된 분위기입니다. 저 역시도 A$hiroo가 힙합플레이야 쇼에서 논란이 되었던 내용을 들었기에 대략 요란하고 화려한 트랩 류겠구나 싶었고, "Born Broke Die Rich"는 그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간단한 구성과 스웩 가득한 가사 등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전형적인 트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자주 듣던 싱잉 랩이 아닌 달리는 랩으로 승부 보는 부분이 많고 프로덕션도 가볍지 않은 분위기로 잘 짜여있어서 예상보단 타이트하게 들었습니다 - 특히 A$hiroo의 목소리가 그런 느낌을 전달하는데 최적화된 듯 합니다. 더불어 한 가지 분위기로만 가지 않고, 뒤로 가면서 좀 더 슬로우 템포의 곡들도 소화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흔적이 보입니다. 


 반면 "Hood Baby"는 chilling하는 분위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EP라고 되어있지만, "Real HoodBabies"와 그 리믹스를 제외한 두 곡은 길이가 짧고 들러리 같은 느낌이라 싱글의 느낌이 납니다. "Born Broke Die Rich" 때와는 다르게 싱잉 랩에 더 기대고 있는데, 적당한 오토튠과 멜로디 덕분에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두 앨범을 놓고 보면 두 가지 분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증명하는 모습이라 꽤 현명하다고 보입니다. 사족으로, 리믹스에 참여한 The Quiett과 Kid Milli는 랩도 그렇지만 비트 체인지까지 있어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가져가는 느낌인데, 이게 아티스트 본인에게 좋은 부분은 아닐텐데도 크게 거슬리진 않더군요. 어차피 앨범 전체적으로 A$hiroo가 보여준 게 있고 맘에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Hood Baby" 앨범 소개글에 "Born Broke Die Rich 2"를 예고하였으니 아마 다음 앨범은 다시 기존의 트랩 스타일일 거 같군요.



(4) Ash-B - Slaying Ash (2019.5.7)


 다수의 오디션 출연자가 그랬듯 Ash-B도 언프리티 랩스타가 끝난 후로는 영 기대를 미치지 못하는 모습만을 보여왔습니다. 최근까지 나왔던 세 장의 싱글은 온전히 가요 팬들만을 겨냥한 노래였으며, 그녀에겐 다소 맞지 않는 옷 같아보였습니다. 마지막 싱글 "UP" 이후로 5개월만에 발표된 이 믹스테입은 새로운 옷을 시도해보는 느낌입니다. 다름아닌 트랩이죠. 수록된 5곡은 2분 전후의 짧은, 미니멀한 비트를 가진 랩이며, Ash-B는 의도적으로 힘을 많이 빼고 발음을 흘리면서 전형적인 트랩 스타일의 랩을 선보입니다. 우선 그전 싱글들보다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 같지만, 앨범 자체가 귀를 잡아끌 정도의 매력이 있진 않습니다. 모든 요소가 하나같이 전형적이라, 큰 장점도 단점도 없이 듣는 내내 무표정으로 듣다보면 어느새 끝나있는 그런 형태인 거죠. 뭐, 잘 꾸미면 더 매력적인 음악이 될 거란 가능성 정도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Slaying Ash"는 Ash-B에겐 일종의 습작으로 남게 될 거라 예상이 되는군요.



(5) 김선재 - Poor Boy (2019.5.7)


 고등래퍼 1가 끝난 2017년 이후로 (종영 직후 웬 컴필레이션에 참여곡이 하나 있긴 했지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선재의 EP입니다. 방송 당시에도 깔끔한 플로우와 탄탄한 발성의 랩을 선보였던 그였기에, 아메바 컬처에서 제공하는 감각적인 프로듀싱과는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실 노래들은 Goldlink 이후로 우후죽순으로 생긴, Punchnello나 Penomeco 초기의 모습을 많이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독창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스타일이 어느 정도 플로우 실력이 갖춰져야 되는 거라 생각하기에, 이 자체로 김선재의 능력을 완전히 폄하하긴 뭐하군요. 오히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어린 래퍼에겐 적절한 출발 같습니다. 특히, 담백함으로 특화된 그의 플로우는 "Backpack"에 참여한 선배 래퍼들에 비해서도 밀리지 않게 해주는 듯합니다. 다만 앨범 후반 두 곡은 지나친 가요 코드로 그의 개성을 너무 묻어버리는게 아닌가 우려되네요. 소속사의 영향으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6) 탱 - 품바 (2019.4.26)


 아무런 정보 없이 LE에서의 추천글만으로 접하였고, 사실 접한 후에도 별다른 정보는 없는 '탱'이란 래퍼의 앨범입니다. 가사에 '레버리'라는 게 등장하는데 이게 무엇인지도 애매하군요. "품바"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탱의 앨범은 '촌스러움'을 메인 테마로 내세웁니다. 그의 랩은 붐뱁이란 장르 내에서도 트렌드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는 즉 랩 스킬에 치중하지 않고 메세지와 감정 전달에 치중하였으며, 목소리를 억지로 만들기보단 있는 그대로, 발성에 기대어 낸다는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크게 호불호 포인트로 작용할 이 부분을 지나서 보면, "품바"는 촌스럽되 마냥 투박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플로우는 의외로 정박에 얽매이지 않으며, 꽤 예상치 못한 리듬을 타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 - 가장 대표적인 트랙인 "신바람"의 경우는 실험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처절한 감정을 잘 담아내는 거친 목소리와 샤우팅, 그리고 개성적인 단어 선택과 스토리텔링 등도 탱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촌스러운' 랩에 어찌저찌 익숙해졌더라도, 이번엔 비트가 앨범에 마음을 다 주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이런 랩일수록 프로덕션이 존재하는 구멍을 잘 메꿔줘야 하나, 몇몇 트랙의 비트는 빈약하여 그의 랩과는 나쁜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어딘가 곡을 허전하게 만듭니다. 특히, "스킷둘"을 기점으로 앨범의 분위기는 돌연 밝은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여기에서 연출하는 '뽕끼'는 그가 내세운 촌스러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빈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치 노래방에서 음주가무를 하는 느낌만 전달됩니다 - 만약 실제로 이것을 의도하였다면, 앞서 나온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생각할 때 상당히 의아한 마무리입니다 (의외로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던데... 저는 영a). 이 앨범의 비트의 2/3는 'offblack'이란 프로듀서가 제공하였는데, 빈약하게 느껴지는 비트가 모두 그의 것이었기에 좀 안타깝습니다. 처음 보는 래퍼로 나름 인상적인 등장은 하였으니, 다음 작업물은 좀 더 그 촌스러운 멋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PS 피쳐링진에 Dragon AT가 오랜만에 등장하여 관심 요소라 할 수 있으나, 사실 제게 있어 제일 충격적인 건 붐뱁 비트에 랩을 하는 Futuristic Swaver였습니다.



(7) eggu - casual experience (2019.5.7)


 역시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던 비트메이커입니다. "casual experience"는 세 곡으로 이루어진 (인스까지 포함해서 6곡이긴 함) 작은 앨범으로, 래퍼 한 명씩을 초빙하여 곡을 꾸민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eggu의 비트는 재지한 느낌으로, 부드러운 느낌으로 매만져진 악기 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수놓아진 멜로디와 드럼 라인은 조금 난해하지만 제각기 인상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참여한 래퍼들도 평소 하던 것보다 날을 감추고 랩을 해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앨범은 카페에서 담백한 디저트를 한 접시 먹는 느낌입니다. eggu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순 없으나 요즘 들어 찾기 힘들어진 편안하고 재지한 바이브를 찾는 이들에겐 앞으로를 기대하게 되는 아티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8) 김효은 - Untitled (2019.5.8)


 저번 Skinny Brown과의 앨범이 갑작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변화는 일시적인 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Wayside Town에 합류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Untitled"는 그런 변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합니다. 재밌게도, 5트랙 중 홀수 트랙은 같은 레이블/크루의 ASH ISLAND를 연상시키는 이모 힙합, 짝수 트랙은 파워풀한 트랩 힙합으로 되어있어서, 앨범은 스타일 두 개를 오가면서 진행됩니다. 이때문에 "Untitled"는 '김효은이 요즘 이런 걸 하고 있다'라는 걸 소개하는 소품집 같은 느낌입니다. 그에게 고질적으로 따라다녔던 같은 표현과 플로우의 반복은 요즘 스타일의 변화와 맞물려 거의 벗어나고 있단 느낌입니다. 트랩 스타일에서의 가사는 사실 전형적인 틀을 못 벗어나는 듯하지만 ('내 가사는 한국에서 제일'이란 구절은 그래서 잘 와닿지는 않...), 이모 힙합의 경우 그의 커리어에서 시도한 것 자체가 신선하다보니 뻔함은 많이 안 느껴졌고요. 플로우적으로, "Money Rain"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목소리의 운용은 본래 받쳐주던 발성과 톤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며, 이는 홀수 트랙에서의 거칠고 처절한 느낌의 싱잉 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포텐을 이전에 비해 적극 활용해낸다는 느낌이군요. 하드코어 붐뱁에 더없이 어울린다는 평을 듣던 터라 이건 아이러니하지만, 정답은 의외의 장소에 있기도 한 법이니까요. 다만, 대개 새로운 스타일로 막 넘어온 래퍼들이 그렇듯, 아직 본인의 것이 뭔지 구체화된 모습은 아니라서 좀 더 지켜봐야할 필요성은 있겠습니다. 그 방향 자체는 크게 틀린 것 같진 않으니까요.



(9) Mazentaa & Oddeen - hommage (2019.5.8)


 조용하지만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Awkward Studio에서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등 온라인 플랫폼으로 발표한 EP입니다. 다른 멤버인 Easymind와 Dellan Afuz에 비해선 아직 활동이 적었기에, Awkward Studio의 활동을 주시하던 이들에겐 둘을 본격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앨범은 이때까지 Awkward Studio가 보여준 색깔을 이어갑니다. 랩과 비트는 조용하고, 가사는 씨니컬하고 염세적입니다. 아니 사실, Awkward Studio의 색깔을 '너무'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컴필레이션 때부터 다들 비슷비슷하다 느꼈던 것이, 이후 Dellan Afuz & Easymind EP, 그리고 이번에도 확인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앨범은 큰 단점 없이 무난합니다. 이때까지 그래왔으니까요. 앨범 총 프로듀싱을 맡은 Magentaa의 비트 역시, Dellan Afuz와 Easymind의 비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자세히 들으면 약간 더 이지 리스닝한 경향은 있지만 맥락 자체는 비슷합니다. 유일하게 피쳐링이 있는 트랙 "Dailymotion"의 경우도 자세히 듣지 않으면 Easymind가 어디 피쳐링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모두가 비슷합니다. 그저 비슷하단 비판만 저에게 받는 건 사실 Awkward Studio 앨범을 듣는게 이번이 네 번째나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뿐, 다른 순서로 나왔으면 다른 앨범이 이런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Mazentaa와 Oddeen의 잘못(?)은 아닐지 모릅니다. 오히려 크루 전체가 연구하고 나아가야할 시점입니다. 제 감상 리스트에 적힌 다음 앨범 중에는 에이뤠와 Dellan Afuz 앨범도 있는데, 요건 좀 다를지... 그때 가서 보도록 하죠.



(10) Mad Chicks - Mad Mode (2019.5.2)


 Mad Chicks는 오비와 마로라는 두 래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둘은 Omnipotent Records라는 소규모 레이블 소속이며, 마운틴 듀 협찬으로 열렸던 랩 컴피티션 "보통래퍼"에서 준우승 (오비는 시즌 1, 마로는 시즌 2 때)을 거둔 바 있습니다. 더불어 오비는 2015년부터 세 개의 정규를 비롯한 (1집이 4트랙 뿐이라는 건 일단 그렇다치고..)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한 바 있고, 마로도 검색해보면 "Narrative"라는 이름의 믹스테입이 하나 있네요 - 멜론에 검색해서 나오는 마로는 동명이인 같습니다. 여튼 이 팀도 쪽지를 통한 연락으로 앨범을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둘이 조폭(?)스러운 복장과 장신구를 걸치고 폼을 잡고 서있는 자켓을 보면 이 앨범의 컨셉은 얼추 그려집니다. 처음 가볍게 돌려보면 나름 정확한 박자와 탄탄한 발성, 그리고 (미국 트랩 뮤직을 많이 레퍼런스했지만 어쨌든) 괜찮은 힘을 가진 비트가 들리고, 앞서 그려졌던 컨셉은 반전을 위한 장치였나 싶으나, 좀 더 자세히 파고들어가보면 그 생각이 맞습니다. 동묘 시장에서 싼 옷을 사면서 스웩을 부리는 "구제시장"부터 소고기를 향한 노골적인 찬가를 부르는 "소고기"까지, 이들은 앨범 컨셉처럼 분위기를 잡은 채로 시종일관 재밌는 이야기꾼으로 남으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들으면서 한국 킬링 타임용 액션 영화들이 많이 생각 났습니다. 뜬금없는 삼천포 같지만, 저의 의견으로 대다수의 한국 액션 영화는 좀 진지해도 되는 상황에도 맥락 없는 개그를 던지며 웃긴 척을 하려는 적이 많았습니다.


 "Mad Mode"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적인 요소는 진중한 바이브인데, 던지는 얘기는 의도적으로 가볍게 만들어져있습니다. 이는 분명 '재치 있음' '유머러스함'으로 읽히고자 의도된 전략이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목표에 도달하기엔 센스가 부족합니다. 가사는 기발한 펀치라인 (그 언어유희 펀치라인 말고...)이 부재하고, 욕심을 내다보니 종종 주제에 충실하지 못하고 벗어납니다 (예를 들어 "유리멘탈". 마로의 가사도 그렇지만, 오비의 가사는 알바연대기이고 유리멘탈과 관련된 구절은 가사해석 보고 멘탈 깨졌단 얘기밖에 없습니다). 랩은 앞서 말했듯 기본을 갖추고 있으나 안정적인 테크만을 타면서 심심하고, 목소리를 다루는 방식이 제한적이니 코믹한 "소고기"와 사랑 노래인 "달달"의 톤이 똑같습니다. 앨범을 돌리면 돌릴 수록 남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어색한 웃음 뿐입니다.


 "Mad Mode" 뿐만 아니라도, 과거 오비가 발표한 "산군"의 뮤직비디오라든지, 이 앨범의 발표와 함께 Omnipotent 측에서 업로드한 인터뷰 같은 걸 참고할 때 이들은 끊임없이 별난 존재로 각인되길 바라는 듯합니다.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것이 제1의 과제인 씬에서 나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듣고 싶은 건 '별난 짓'이 아니라 '좋은 음악'인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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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1
2019-05-17 14:12:12

제 감상 리스트에 남은 앨범이 이제 7개밖에 없습니다

대충 vol.40에서 드디어 이번 시즌의 막을 내릴 수 있을듯

PS 7~10번 앨범은 인스타보다 빨리 업로드하였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냐면... 잘 모르겠습니다.

2019-05-17 15:12:30

리뷰 너무 잘봤습니다~ 시즌 마무리까지 화이팅입니다!

2019-05-17 16:32:01

벌써 마지막화;;

2019-05-17 17:08:41

210은 저랑 감상 비슷하신 듯. 영비 얘기 꼭 나오는 느낌

이도더나블라 들으러 갑니다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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