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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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5-14 18:29:4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대체로 이 시리즈가 한 번 끝을 맺었던 2018.7 이후로 나온 앨범들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Boycold - Post Youth (2019.4.29)


 본인 이름으로 된 앨범은 두 개이나 드디어 첫 앨범을 발표한 비트메이커 Boycold입니다. 최근 LE 인터뷰에서 그는 한 번 한 건 또 하기가 싫다고 했는데, 그때문인지 앞서 나온 Sik-K의 "Boycold"와 Vinxen의 "Boycold 2"와 비교하여 또 다른 색깔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공개곡인 "YOUTH"하고도 또 다릅니다 (...). "Boycold" 때의 화려하고 풍성한 프로덕션에 비해선 다소 간결해졌으며, "Boycold 2"에 비교해선 속도감 있고 에너제틱해졌습니다. 특히 이번엔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기타가 메인 악기로 등장하여 멜로디를 담당하고 있어, 마치 밴드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는 장르적으로도 랩, 더 나아가 힙합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와의 접목을 꾀했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같은 사운드알못도 느낄 정도로 소리를 세심하게 매만진 덕에 마치 리얼 세션처럼 음악 속 요소들이 생동감 있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Groovy Room과 친분이 두텁고 서포트도 많이 해줬던 거 같지만 그들의 프로덕션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으며, 앞서 얘기한 특징 때문에 H1ghr Music의 Woogie에 더 가깝게 들리는군요. 음악 스타일이 매번 바뀌는 건 쉽사리 좋은 점이라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어쨌든 늘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 다음 작품도 충분히 기다려볼만한 것 같습니다.



(2) Legit Goons - Rockstar Games (2019.4.24)


 벌써 네 번째 컴필레이션이니, 명실상부 한국 힙합씬에서 가장 단합력 좋은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Legit Goons의 앨범입니다. Legit Goons의 대단한 점은 멤버들 하나하나가 대체할 수 없는 매력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컴필레이션에선 하나의 컨셉 하에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 개인적으로 이 맥락에서 제일 놀라운 멤버는, 개인 앨범에선 시인 같은 모습이다가 컴필에서 막 나가는 반항아로 변하는 재달인 거 같습니다.


 이번 앨범 또한 Legit Goons의 그런 강점을 증명하는 앨범입니다. 세부적으로, 이때까지 고수해오던 여유롭게 놀고 쉬는 분위기를 벗어나 "GTA"로 대표되는 '갱스터' 테마를 차용하였는데, 이때까지의 색깔을 생각하면 어색할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잘 풀어내는 건 그들의 재능 탓입니다. 신기하게도 트렌드와 무관한 올드 스쿨한 음악을 할 법한 그들의 음악은 (물론 이건 뱃사공의 이미지가 강하게 발휘된 탓;), 세세히 들여다보면 트렌드를 적극 차용하면서 그걸 그들만의 색으로 다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에 뒤쳐지지도 않고 휩쓸리지도 않는 아주 좋은 모범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또한 네 멤버의 목소리가 각자 가진 그루브와, 벌스와 훅에 항상 뚜렷이 자리한 인상적인 포인트들이 감상을 더욱 재미있게 만듭니다. 한 가지 더, 비교적 다양한 프로듀서진이 있었던 지난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은 iDeal이 총괄 프로듀싱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다수의 곡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테마에 맞춰 심심하지 않게 잘 앨범 전개를 끌어간 거 같습니다.


 굳이 나빴던 점이라기보다 약간 갸우뚱하게 만든 건 그 '새로운 시도'들 중 가장 멀리 갔다고 할 수 있는 "Love & Drug"와 "Yamakasi"가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는 거였는데, 거의 EDM에 가까운 두 트랙이 앨범에 허리에 위치해있고 또 그 전후로 전개되는 분위기는 비슷하다보니 의도가 살짝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또 마지막 "Credit Roll"은 앨범 중 가장 차분하여 되려 튀는 트랙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것은 재밌고 의도가 아예 미지인 것까진 아니지만 여튼 마지막에 갑자기 급강하하는 텐션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것은 예전 컴필들에 비해 비교적 적은 트랙 수가 한몫했을 것입니다. 이런 흐름의 롤러코스터는 약간 뱃사공의 지난 앨범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네요. 어쩌면 이도 그들만의 방법론일지 모르겠군요. 뭐 제 나쁜 성격 탓에 이런 트집을 잡아보지만, 여튼 Legit Goons라는 그룹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컴필레이션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더욱 흥하길.



(3) Coa White - III ice pelican III (2019.4.24)


 그동안 개인 프로젝트로는 보컬로이드를 위한 음악 (...)만 만들던 Coa White가 직접 랩을 했다고 해서 조금 화제가 되었던 앨범입니다. 총 러닝 타임 11분 정도의 작은 규모의 트랩 스타일의 앨범입니다. 비트는 요란한 시도 없이 미니멀한 스타일의 조용하고 몽환적인 비트로만 이루어져있고, 그 위 Coa White의 랩도 로우톤의 목소리와 전달력은 버리고 전형적인 플로우를 타는 멈블 트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믹싱도 이런 느낌을 살리고자 한듯 먹먹하고 가라앉아있는데다, 가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기 쉽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작 의도 자체도 소소했을 가능성이 많은 터, 앨범을 놓고 거창하게 얘기를 하기보단, Coa White 본인과 팬들에게 재밌는 이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저 같은 붐뱁충이 발견 못한 매력을 다른 분들은 발견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요.



(4) Vinxen - Manta Bipolar Part 1 (2019.4.27)


 "Manta Bipolar Part 1"은 Vinxen의 새 믹스테입으로, (길이 자체도 그리 짧지 않은) 곡들이 무려 17곡이 채워져있는, 요즘에는 보기 힘든 볼륨을 자랑하는 앨범입니다. 믹스테입인만큼 전체적으로 전작 "Boycold 2"보다, 아니 그 직전 믹스테입 "병풍"보다도 사운드 퀄리티가 다소 거칠게 느껴집니다. "Intro"에서 Vinxen은 "울 병재 하고픈 거 다 하래서 진짜 다 할라고"라는 가사를 뱉는데, 이를 반영하는 듯 전반부와 중반부에는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Os Noma가 프로듀싱한 두 트랙은 매우 강렬한 트랩 스타일의 곡으로 거의 유일하게 그의 랩 스킬적인 면을 볼 수 있는 편이며,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보이는 (팬들의 주장에 따르면) '귀여운 병재의 모습'들이 때론 팝적인, 때론 어쿠스틱한 (Vinxen은 "기타맨"이란 얼터 이고를 만들어 기타 작곡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죠. 이번 앨범에 실렸는지는 몰라도...) 인스트루멘털 위에 펼쳐집니다 - 뭐니뭐니해도 레드벨벳의 "Bad Boy"를 이용한 곡인 "Bad Girl"과, '내가 한국 래퍼 중에 제일 잘하는게 있는게 그건 소고기 무국이야'라는 "Body Guard" 가사는 이 부분을 제일 잘 대표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집에 가고싶어"를 기점으로 본격 우울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무드가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Vinxen은 커리어 내내 우울감을 메인 테마로 해왔지만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진합니다. 특히 "우울함의 손을 잡고서" 즈음부터 거듭 등장하는 자살 생각에 대한 언급은 이 앨범에 대한 호불호를 나눌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 부분부터 한없이 가라앉고 침잠하는 비트의 분위기와, 위에서 언급했던 거친 사운드 퀄리티도 한몫합니다. 전반과 이어지지만 또 대비되는 이 분위기는 "Bipolar"라는 앨범 제목에 잘 어울리고, 어떻게 보면 Vinxen을 규정하는, Vinxen만이 할 수 있는 모습이긴 하겠습니다. 그러나, Vinxen이 우울한 캐릭터다 라는 걸 알고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전 디스코그래피에 비해서 훨씬 감정에 집중한 듯한 이 앨범은 반대로 음악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줄어든 듯합니다. 사실 본인의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창작에 굳이 대단한 랩 스킬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리스너로썬 특히 이 정도로 큰 앨범을 다 들으면서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기 쉬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울감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굳이 이걸 음악적으로만 따지고 싶진 않군요. 어차피 본인이 목표한 바도 그런 건 아니었을거라고 추측이 됩니다. 그래도, 앨범 소식을 알리면서 part 2에 대해서도 곧 나올 것이란 얘기, 그리고 "Intro"에서 Prod. by Vinxen에 대한 예고를 남긴 바 있는데, 이것이 음악적인 욕심을 반증하는 거라면 부디 재미도 있는 결과물이 들려왔으면 좋겠네요.


PS 저번 앨범에도 "가오리"라는 트랙이 있더니 이번 앨범 제목과 자켓도 가오리군요. 심연을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이 Vinxen의 무드랑 어울리긴 하는군요.



(5) 오르내림 - Cyber Lover (2019.5.4)


 "전체이용가" 이후로 나오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인 "Cyber Lover"는 오르내림에겐 일종의 전환의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등의 이미지가 뒤따랐던, 그리고 그런 컨셉을 실제로 밀고 있는 그가 그만의 방식으로 좀 더 성숙한 주제를 다룬 것입니다.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사랑 노래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드물었던 바, 본격적으로 사랑과 갈등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오르내림으로썬 하나의 시도이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게 어울립니다. 그의 독특한 오토튠 싱잉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히 잘 어울려서, 마치 '오르내림식 슬로우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하지만 한발쩍 떨어져서 보면, 이건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차분한 편'에 속할 뿐 틀을 깨는 시도까진 아닙니다. 이건 나쁜 점이라 볼 순 없습니다 - 과도한 실험 끝에 본인의 색깔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소탐대실일 테니까요. 결국 이 앨범에 대한 호감은 그의 이전 앨범에 호감과 비슷하게 따라갈 공산이 크네요. 그렇다 해도, 기존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도는 인정해주는 게 맞겠죠.



(6) Verbal Jint - 이것은 음악인가 업무보고서인가 (2019.5.3)


 참 재밌는 앨범입니다. 월별로 정리된 곡 제목부터 업무 보고란 이름답게 철저히 일상적인 소재를 늘어놓는 것에 집중하는 가사까지, 이 앨범은 그 의도가 명확하고, 그래서 장단점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앨범입니다. 1에서 3월까지는 같은 MR에 플로우도 거의 변하지 않고 내용만 다르게 풀어놓고 있다보니, 아무리 Verbal Jint의 랩이 좋다해도 똑같은 곡을 연이어 세 번 듣는듯한 (그것도 음악적 변화 없이 정말 담백하게 업무 보고만 늘어놓는 곡을) 경험을 환영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Verbal Jint도 이를 인식하였기에 4월과 5월에서 방향 전환을 한 것이겠죠. 하지만 비트가 바뀌고 어조를 약간 바꾸었대도, 1-3월의 단조로움을 어느 정도 깼기에 좋게 들릴 뿐, 객관적으로는 그저 벙개송 같은 느낌에 지나지 않습니다. 컨셉이 이렇다보니 엉뚱하게도 '6월까지 해서 '상반기 결산'으로 냈으면 되지 않나'하는 이상한 의문도 들기도 합니다 - 워낙 독특한 형식이다보니 공개 방식까지도 앨범의 퀄리티에 영향을 주는 셈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단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편하게 말하는 투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그의 플로우는 어느 때보다 물이 올라보입니다만, 그 이상의 뭔가가 없고 있을 수도 없는 한계가 아쉽습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드네요. 생각만큼 꿀잼인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부디 12월까지 잘 마쳐서 연말 결산을 보고 싶군요. Verbal Jint만이 가능한 '고급스런 장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7) D. Sanders - extended.stay (2019.5.1)


 TDE 소속이자 BANA 소속인 손대현 씨, 혹은 D. Sanders의 인스트루멘털 믹스테입입니다. 코멘트에는 2016년에 내려다가 그냥 이번에 내게 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 2016년이면 아마 BANA 들어오기 전 같군요. 준비된 노래들은 화려한 장치가 들어간 본격 감상용 인스트루멘털이라기보단, 랩을 얹어도 썩 어울릴 법한 비트들입니다. "김심야와 손대현"에서 봤던 것처럼 무겁고 진한 분위기에 느릿느릿한 템포로 진행되는 곡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엔 어쿠스틱한느낌의 인스도 있습니다 - 사실 미국 힙합과 한국 힙합을 듣다보면 설명할 수 없는 무드의 무게 차이가 있는데, 그래서 D. Sanders도 그 진함이 우러나나봅니다. 할 얘기가 많은 앨범은 아닌데 비트가 준수해서 나중에 누가 랩 얹어서 믹테로 나오지 않으려나 싶군요.

 


(8) Bigone - Peach Blossom (2019.5.5)


 냉정하게, Bigone은 잘 생겼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는 요소를 찾기 어려웠던 래퍼입니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썬 참으로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죠. 그런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번 EP는 이때까지 어중간한 위치에만 머물러있던 그의 강수입니다.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는 면이 그런데요, 헤비한 오토튠을 사용한 싱잉 랩과 진득한 분위기는 Bigone은 물론 그의 소속사 VMC에게도 꽤 새로운 면모입니다. 낯설긴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 그리 어색하진 않게 잘 녹아드는 모습입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쩌면 잘 생긴 외모가 한몫을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비이성적인(?) 근거로 인한 판단일지 몰라도, 앨범을 듣다보면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느릿한 템포로 진득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 트랙이 너무 비슷한 코드, 비슷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더불어 Bigone의 싱잉 랩은 음역대가 좁고 오토튠을 꽤나 과하게 쓰는 편으로, 매우 절제된 느낌이 듭니다. 반대로 비트는 매우 화려한 편입니다 -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의 주인공은 프로듀서 (그중에서도 Lnb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가 아닌가 할 정도로 비트가 화려하게 세공되어있습니다. 듣다보면, 이건 사실 Bigone을 객원 래퍼로 쓴 인스트루멘털 앨범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Bigone의 목소리가 전면으로 나오지 못하고 악기 중 일부로 사용되는 느낌입니다. 사실 곡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Bigone의 첫 앨범에서 보기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듯도 하네요. 어쨌든 옷은 과감하게 바꿔입었으니 그걸 어찌 소화해낼지 두고 보겠습니다.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 Bigone 뿐만 아니라 VMC의 과제일지도 모르겠군요.



(9) NiNi Blase - Prototype (2019.5.1)


 저에게는 큰 정보가 없던 여성 래퍼입니다 - 역시 이런 래퍼를 알려주신 highgel 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ㅎㅎ W4kins4d 크루 소속이면서 활동 자체가 많이 있진 않았던 모양이군요. "Prototype"은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1번 트랙에 'laptopboyboy' 시그니처 사운드가 들리는 순간 아 또 그런 류의 트랩인가 싶었는데, 곡 내내 유지하는 진중한 분위기가 맘에 들더군요. 굳이 자기 자랑을 요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메세지를 표출하는 모습은 한국 트랩 중에도 주류가 된 스타일과 차별화됩니다. 그녀의 무게 있는 보이스톤과 타이트한 플로우도 여기에 잘 어울립니다. 이 분위기는 3번 트랙에서부터 슬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시동을 겁니다 - 앨범 소개에서는 'vogue beat'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소개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Sex Drive"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걸진 모르겠지만, "Put My Name on It"도 voguing dance를 활용한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는 등 그 장르와 무관해보이진 않습니다) 마치 테크노 같은 분위기의 강렬하고 빠른 비트가 상당히 신선하고 인상적입니다 - 이주노의 "무제의 귀환"이 떠올랐다고 하면 좀 웃기려나요?ㅎㅎ Eco Yard가 프로듀싱해서 그런지 초창기 Swervy 느낌도 나는, 정신 없고 아찔한 분위기는 NiNi Blase의 아이덴티티로 보기에 충분할 정도로 유니크해보입니다. 


 다만 워낙 강렬한 비트라, 1, 2번 트랙과 달리 본인의 목소리가 전면에 잘 나서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이는 단순히 NiNi Blase의 목소리 발성이 약해서 그렇다고만 보긴 힘들고, 곡 전체의 무드에 맞춰 과하게 집어넣은 오토튠이나 비트의 느낌을 더 살린 믹싱 때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예민한 탓이겠지만 어색한 영어 발음도 원인으로 꼽고 싶네요 - 그런 저 역시도 이런 분위기에선 한글보단 영어 랩이 더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기에 '한글로 했으면 괜찮았을 거다!'란 말을 하긴 어렵군요. 흥미로운 아이템을 선점하긴 하였는데, 이를 좀 더 멋지게 다루려면 앞으로 전략을 잘 짜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10) SillyShu - 21st Century Boyz (2019.5.4)


 SillyShu는 Holmes Crew의 Silly Boot와 Shupie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입니다. 둘은 지난 Holmes Crew의 컴필레이션 "Holmes Delivery"에서도 앨범을 아우르는 분위기를 만드는 주역이었으며, 인지도가 생각처럼 따라오지 않았을지언정 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던 아티스트입니다 - 기분이 좋지 않은 불상사였지만, 싱글 "청하"로 인한 노이즈가 어쩌면 그들의 이름을 알리는데 꽤 공헌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Holmes Crew 컴필을 이끌어갔던 둘이었기에 이번 앨범은 그 컴필의 분위기를 계승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건 사실 좀 우려되는 부분이었는데, 역시 제 취향이 개입된 판단이나, 둘이 보여주는 말랑하고 팝스러운 음악은 듣기 편하면서도 인상에 남을만한 임팩트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21st Century Boyz"는 결론적으로, 적어도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게 Holmes Crew 컴필이 밋밋하게 느껴졌던 이유 중 하나는 곡을 진행하는 방법이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입니다 - 대표적인 예로 영어로 된 싱잉 랩이 후렴에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21st Century Boyz"는 곡마다 다양한 전개 방식을 보여주면서 트랙별 개성을 살리고 듣는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싱잉 랩에만 치중하지 않고 "Cake" "이중섭" 같은 랩 트랙도 있고, 무작정 부드러운 분위기만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Skylover"나 "피곤해" 같은 새로운 보컬 운용을 보여준 트랙들로 인해 노래를 듣는 재미도 이전보다 더 느껴집니다. 마지막 "What's on Your Mind" 같은 트랙은 일종의 실험성도 느껴집니다.


 이 모든 실험은 SillyShu 둘의 정체성을 크게 잃지 않는 선에서 진행됩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임팩트는 적을지 몰라도, 그전 결과물들보다 확실하게 듣는 재미를 제공해준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사실, 아직도 어색한 영어 문장과 발음은 불만이지만 (특히 "이중섭"에서 열심히 나레이션으로 이중섭을 설명하는 부분이...) 이정도는 크게 트집 잡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 부분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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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
2019-05-14 13:44:44

이 프로젝트도 이제 글 두 개 정도만 더 쓰면 일단 밀렸던 건 다 듣는 거 같습니다...

진행하면서 알게 되는 래퍼가 많아지니 밀리는 양과 속도가 이전에 두 배네요ㅋㅋ 

1
2019-05-14 14:36:35

인스타에서 본글만 거의 절반이네요ㅋㅋ 잘 읽고 있습니다ㅎㅎ

WR
1
2019-05-14 14:38:29

의미는 별로 없는데 9번 10번은 여기 먼저 올렸습니다. 한 세시간 쯤 먼저.. (응?)ㅋㅋ

밀렸던 거 다 듣고나선 이 시리즈는 인스타로만 할까봐요

WR
1
2019-05-14 15:59:09

아 제목 헷갈렸네요ㅋㅋㅜ
그러고보니 이정현스럽기도 하네요
언급된 음악들이 다들 공유하는 테크노스러운 코드가 있기도 하고

WR
2019-05-14 21:26:42

뜬금없는 얘기로 니니 블라세 인스타를 구경하다보니

Swervy가 '멋져 동생'이라고 리플을 단게 있네요.

꽤 어리군요

WR
2019-05-14 23:36:59

아 그럼 그냥 장난치고 있는 거였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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