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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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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3 00:04:0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대체로 이 시리즈가 한 번 끝을 맺었던 2018.7 이후로 나온 앨범들

여기에다가 이전 시리즈 글에서 다뤘는데 다시 들으니 감상이 바뀐 앨범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만. 싱글까지 포함하자니 너무 많아서..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Ash Island - ASH (2019.3.22)


 고등래퍼 시즌 2에서 Clloud로 이름을 알렸던 Ash Island는 Ambition Muzik에 합류하기 직전, 이름 뿐만 아니라 스타일에 대수술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제대로 평가할만한 첫번째 결과물이 이번 EP "ASH"인데요, 결론적으론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나 합니다. 락의 감성을 섞은 싱잉 랩은 이미 Post Malone이 보여준 터라 새로운 것이 되지 못합니다 - 역으로 그래서 한국 뮤지션들이 일부러 시도를 잘 안 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ASH"의 포문을 여는 강렬한 사운드의 'Paranoid'는 이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Post Malone이 떠오르고 말지만, 여튼 한국에선 흔하게 보지 못 했던 스타일이며, 오토튠 싱잉 랩에 늘 따라붙던 트랩적인 테마가 아닌 자기 성찰, 우울, 정신적 고통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역으로 이것은 후렴에서 터져나오는 Ash Island의 보컬과 잘 맞물려 리스너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기 쉽게 만들어줍니다. 원래 그는 Clloud 때도 감각적으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다루는 데 재능을 보였는데, 그 재능을 형태를 달리 해 고스란히 선보이고 있군요. 개인적으로 초반부의 폭발력이 좋아 후반부로 가면서 차분하고 조용해지는 건 좀 아쉽지만, 앨범의 구성 면에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마무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운드를 가능케 한 이번 앨범의 총 프로듀서 TOIL의 몫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그의 나이를 생각할 때 이번 앨범의 완성도는 더욱 놀랍습니다. 이후 미처 수록하지 못한 트랙이라는 더블 싱글 "MORE ASH"도 발표되었는데, 본작에 들어가도 무리 없었을 것 같은데, 조금 색깔이 평이하다고 판단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만큼 "ASH" 수록곡들은 각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으며, Ash Island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한 작품들입니다.



(2) Coulslaw & 1060 - Young Things II (2019.3.20)


 Coulslaw와 1060은 Mighty Fine이란 크루의 멤버입니다 -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HIPHOPLE 스탭인 Shawna가 래퍼로써 속해있는 크루이기도 하죠. 이 크루는 아직 인지도가 있다고 말하긴 뭐하지만 이들은 꽤 많은 작업물을 남겨 크루의 이름으로 발표한 싱글이 9개이고, Coulslaw와 1060의 솔로 작업물도 꽤 많습니다. 이런 둘이 뭉쳐 만든 "Young Things II"는 마찬가지의 조합으로 2018년 6월에 냈던 "Young Things"의 후속작입니다. 둘의 음악 스타일은 이때까지 강한 음악이라기보단 솔직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음악을 하는데 좀 더 초점을 두었는데, 그것이 이번 앨범에서 좀 바뀌어서 트랩 feel이 강한 음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템포가 빠른 비트가 포진해있고, 주제도 자기 스웩이라든지 술 마시고 노는 얘기들이 등장하죠.


 여기서 둘의 단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두 래퍼의 랩은 깔끔하지만 너무나도 밋밋합니다.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둘이 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 되가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소리를 재밌게 운용하는 법을 너무 모릅니다. 힘을 주어야할 부분에 힘이 빠져있고, 고음과 저음을 내야할 부분에 평소와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비유하자면, 연기 없이 국어책을 읽듯 대사를 읽는 배우와 비슷하다 할 것입니다. 두 멤버의 과거 솔로 앨범과 "Young Things"의 경우 진솔한 얘기라는 테마가 이 단점과 나쁜 쪽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가히 얘기를 들려주기[만] 하는, 청각적 재미가 부족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의 트랩 분위기와 나름 타이트하게 짜려고 노력한 플로우, 그리고 비트에 묻히지 않도록 보컬 트랙을 겹친다든지 하는 사운드 작업이 그나마 밋밋함을 떨쳐주긴 합니다만 완전히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입니다. 도리어 둘의 목소리가 곡의 의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특히 빠르게 흘러가는 타이트한 플로우의 리듬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Hope"의 1060 벌스... 지금 이거 쓰면서 듣고 있어서 예로 들어봅니다).


 이번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전작들을 한꺼번에 들으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허슬하는 분들이 이렇게 정체된 모습을 보여줄 뿐이라니요. 혹시나 해서 들어본 1060의 가장 최근 싱글 "Just Wanna Die Today"도 톤이나 리듬 면에서 상황은 비슷합니다 (톤은 약간 나은 거 같은데 랩 리듬이 정말...). 본인들이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뭔가 껍질을 깨는 수준의 획기적인 발전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3) HAON - TRAVEL: NOAH (2018.9.5)


 뜬금없이 잊어먹고 있다 이제 들어보는 앨범... 고등래퍼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온의 첫 앨범입니다. 익히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대로 곡에 대해 성숙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동시에, 음악적으로 가볍고 댄서블한 리듬감을 유지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앨범 통째로 들어보기 전, 타이틀곡 "NOAH"만 들어봤을 때는 피쳐링진에 너무 기댄 것인지, 곡 내에서 비중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방금 말한 가벼운 리듬감을 이루는 요소인 그의 스피디한 플로우와 자유로운 발음, 그리고 분절적인 가사가 한몫할 것입니다 ("NOAH"가 다른 곡에 비해 피쳐링 파트의 비중이 크긴 하죠). 이러한 요소들은 앨범 트랙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어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번 앨범으로 곡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끌고 갈 수 있음은 증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WHATCHUWANT"를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은데, 하온의 랩이 다른 곡에 비해 좀 더 텐션이 올라있어 앞서 단점이라 느낀 부분을 보완하고 무게감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이 앨범은 이미 나온지 반년이 지났고, 최근 피쳐링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에서 하온의 랩이 늘었다는 반응을 많이 보는데 이 역시 무게감과 무관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두 번째 앨범이 나온다면 아마 이 앨범보다 훨씬 인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테죠.



(4) DJ Wegun - Band Wegun Effect (2018.9.20)


 뜬금없이 잊어먹고 있다 이제 들어보는 앨범 (2)... DJ Wegun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3rddan에서 턴테이블리스트로 활동한 것과 Superrappin' PJ에서의 올드 스쿨 뮤지션으로 활동한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앨범이 나온다면 펑키한 방향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선공개 싱글 "Venom"이 완전히 그런 예측과 부합하진 않아도 크게 생각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본 앨범은 랩보다는 노래의 비중이 더욱 크게 느껴지며, 펑키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무리가 있는 구성입니다. 마지막 "Sax Night"은 '그래도 나는 DJ가 맞다'라는 마지막 자존심인 거 같다면 너무 나갔으려나요. 비트와 퍼포머들의 기량은 나쁘지 않지만, 그런 기대치 때문인지 어쩐지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또 곡들의 분위기가 제각각이라서, DJ Wegun의 현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요. 특히 AOMG & H1ghr Music 같은 훌륭한 비트메이커가 포진해있는 사이에서 나온 앨범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안 좋은 선입견 때문일지 몰라도, "DJ"라는 글자가 꽤 어색하게 느껴지는 앨범이었네요.



(5) Avantgarde Park - Ya Mang (2019.3.20)


 지난 "Upaloopa vol.2"가 꽤 오랜만의 신작이었음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빨리 나온 새 앨범입니다. 이 말은 틀렸다고 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맞다고 볼 수도 있는데, 앨범 설명에 따르면 2017년 매달 Bandcamp를 통해 발표한 "Avant-tape" 중 정수를 추려 정리하여 낸 앨범이 이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 완전한 신작도 아니지만 또 전작이 그리 오랜만의 컴백도 아니었던 셈이군요. 어쨌든, 전작과 마찬가지로 앨범의 분위기는 매우 로우파이합니다. 앰비언트 노이즈를 활용한 단조롭고 어두침침한 분위기는 가히 이 앨범이 힙합보다는 명상 음악에 가깝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군데군데 여러 재밌는 실험적 요소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저 같은 범인은 어쨌든 쉽게 친해지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극도로 저음역대만 공략한 "Vans 9000"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중간에 나오는 "Ain't We Funky"란 곡은 자조적인 아이러니란 생각도 들었는데요, 우연인지 의도인지 이후 나오는 앨범의 마무리 트랙들은 그나마 펑키(?)한 색을 띄고 있긴 하지만, 특유의 로우파이함은 잃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운드알못보다는 좀 더 음악을 알고 인스트루멘털을 감상할 줄 아는 분들이 재밌게 느낄만한 앨범 같군요.



(6) lobonabeat! - Puffin Tape 2 (2019.3.25)


 Bill Stax가 밀어주는 트랩 래퍼 중 한 명인 lobonabeat!의 앨범입니다 (Cookiz의 LOBSTA였다는 걸 최근에 알았네요;). 지난 "Puffin' Tape"의 후속편인 오피셜 믹스테입이죠. 지난 "Puffin' Tape"을 안 들은 상태에서 들은 거라 객관적인 비교라든지 정확한 감상은 되지 않겠으나, 담백하고 간결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믹스테입인 것에 맞춰 짧은 곡들이 포진해있고 구성 자체도 단순해서 그렇지만, lobonabeat! 자체가 곡에서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랩을 하는 느낌입니다. 마리화나나 감방 같은 기믹이 있어 Uneducated Kid랑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론 거의 연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에 맞춰 전곡 프로듀싱을 한 Furyfromguxxi도 심플한 비트를 제공했습니다 - 자켓 커버에 그려진 쬐끄만 캐릭터가 상당히 어울리는군요. 다만 아직도 트랩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이런 앨범에서 무엇을 장점이고 단점으로 봐야할지는 좀 헷갈리네요.



(7) pH-1 - HALO (2019.3.28)


 쇼미더머니를 성황리에 치르고 정규 앨범으로 묵직하게 돌아온 pH-1입니다. 예상외로 직전에 발표된 싱글 'staying'은 선공개가 아니었고, 새로이 회사에 합류한 Mokyo와 함께 앨범을 통째로 만들어냈군요. 전체적으로 매우 수작인 거 같습니다. 소프트한 면에 집중했던 'The Island Kid'와 달리 'HALO'는 pH-1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선보입니다. "Like Me" "Dirty Nikes"처럼 팝적인 곡도 있지만, "Malibu" "Olaf"처럼 하드한 곡도 있죠. 왔다갔다 하는 분위기에도 통일성이 심하게 해쳐지지 않는 것은 pH-1의 톤과 플로우가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pH-1에게 기대했던 모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이 만족스럽더군요. 무엇보다 이 앨범을 120%로 장식해주는 것은 Mokyo의 프로덕션입니다. pH-1이 할 수 있는 스펙트럼 전체를 모두 커버하면서, 비트마다 알맞은 다채로운 악기 세션으로 꾸며놓았으며, 구성도 심심하지 않게 비울 곳은 비우고 채울 곳은 풍성하게 채워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돌릴 때는 Mokyo가 주인공이라고 느꼈을 정도니까요.


 "HALO"가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앨범을 너무 말랑하고 가요스럽다고 할 수 있으며, 군데군데 들어간 하드한 곡은 본래 내야하는 파워를 내지 못하는 구색 맞추기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건 앨범의 문제라기보단 pH-1의 스타일과 개인 취향이 들어맞는가의 문제로 생각됩니다 - 원체 pH-1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데가 있어서 그에게 하드코어한 붐뱁이나 트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런 캐릭터 안에서 낼 수 있는 최대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높은 영어의 비중도 누군가에겐 아쉬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플로우의 부드러운 맛을 더해줬다 생각해서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한 가지, 단점이랄 건 아니지만 생각보단 싱잉 랩의 비중이 적더군요. 쇼미더머니에서 싱잉 래퍼로 소개하길래 그걸로 밀고 나갈 줄 알았더니.



(8) Hash Swan - Peridot (2019.3.29)


 느낌 탓인지 몰라도 최근 Hash Swan의 활동은 비교적 잠잠했던 것 같습니다. 특유의 넘겨짚기로 생각해보자면 Hash Swan은 그동안 자기에게 좀 더 맞는 스타일을 찾는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의 특유의 얇은 목소리는 그를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무기인 동시에 곡으로 임팩트를 남기는데 있어선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Ambition Muzik이 가진 화려한 이미지는 맞지 않는 옷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번 "Alexandrite"에 관한 글에서도 결국 비슷한 얘기를 했었죠. 이번 미니 앨범 "Peridot"은 그가 최근 합류한 크루 Wayside Town에 자신을 맞춰봅니다. TOIL이 네 곡 중 세 곡을 참여했으며, 피쳐링진으로 Skinny Brown과 Leellamarz가 참여했죠. 전반부의 곡은 최근 ASH ISLAND 앨범에 피쳐링한 경험을 반영하는듯 약간 락적인 코드를 갖고 있는 트랙이군요 (하긴 그 피쳐링 파트들이 좋긴 했어요).


 의도적으로 약간 비어있게 악기를 배치한 비트들에서는 Hash Swan의 목소리가 나쁘지 않게 묻습니다. 후반부 두 트랙이나, Holmes Crew 컴필레이션 참여곡들이 그런 예입니다. 사실 전반부의 락 트랙에도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피쳐링으로 참여한 뮤지션의 파워가 너무 세다보니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입니다 - 특히 "Arrow"는 Skinny Brown의 곡이라고 하는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네요. 전작에 비해서 좀 더 랩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다듬어진 느낌이지만, "High Beam"에서의 속사포는 여전히 좀 박자가 흐트러지는 느낌이 납니다. 전체적으로, "Peridot"은 약간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고질적인 단점을 그대로 확인시켜주고 있어서 약간 갸우뚱하게 합니다. 이 문제가 Hash Swan에게만 있는 거라고 생각은 안 하고, 믹싱도 꽤 민감하게 타는 것 같습니다. 여튼, 이번 미니 앨범에서 확인된 가능성을 앞으로 사실로 정립시키는 것이 그가 할 일이겠죠.



(9) IndEgo Aid & Os Noma - 100°C (2019.1.11)

    IndEgo Aid & Joshua Shim - 달토끼 (2019.4.5)


 IndEgo Aid는 5101 크루 소속 래퍼로 아직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저런 특이 이력이 있는 래퍼입니다. Kebee가 열었던 ThatSIGNS 컴피티션의 탑 4를 기록했다든가, 랩배틀 컴피티션 Boxer에 참여했다든가, "100°C" 수록곡 "발열"이 메종 키츠네 플레이리스트에 올랐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죠. 이번에 들어본 두 앨범은 대략 3개월 간격을 두고 나온 그의 콜라보 프로젝트성 EP 두 개입니다.


 IndEgo Aid는 이전부터 '외계인' 컨셉을 차용했었습니다. 뮤직비디오에 외계인 가면을 쓰고 등장하기도 하고, 5101 크루의 싱글 "쿵"의 앨범 소개엔 대놓고 '파란색 피부를 한 외계인'으로 써놓기도 했습니다. 두 앨범에서도 등장하는 이 컨셉은 (기본적으로 '달'토끼잖아요) 그만큼 뻔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비트메이커 Os Noma와 함께 만든 "100°C"는 이런 전제 하에 힙합씬에서 느끼는 분노와 열등감을 개인적인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얇으면서도 거친 목소리와 씨니컬하고 분절된 가사들은 이런 감성을 잘 전달합니다. "발열"에서 분노를 발산 후 "나비"에서 반전을 맞이, 이후 내면을 향한 우울로 돌아서는 구성도 재밌습니다. Os Noma의 비트도 이런 구성에 부족함 없이 잘 어우러집니다 - '뻔하지 않음'이란 면에서도 말이죠. "달토끼"는 팀 프로젝트인만큼 개인의 서사가 줄었지만 얼추 그 느낌은 비슷합니다. 5101 크루의 다른 래퍼 Joshua Shim과 함께 한 이 앨범은, '뻔하지 않은 트랩 앨범' 정도로 소개되어있지만 실제 들어보면 트랩이라기보다는 앱스트랙트 힙합이라 불러야할 것 같습니다 (Grack Thany 크루가 많이 연상되더군요). 두 래퍼는 간극이 크지 않게 통일된 가사와 플로우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뭐 "나쁜 애" 정도는 트랩스럽긴 합니다만 내용적으로는 공식을 전혀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온전한 훅을 가진 노래가 "sippin 51" 한 곡 뿐입니다. 곡들은 전부 3분을 넘기지 않지만 짧다는 느낌은 별로 없고 꽉 차있게 들립니다.


 다만 마지막 남는 아쉬움은 랩에 있습니다. 특출난 스킬이나 라임을 자랑해야 하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거슬리지 않고, IndEgo Aid의 탄탄한 톤은 앨범 테마에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대부분 씬에 대한 분노, 허무감 등을 기반으로 한 주제에서 IndEgo Aid의 목소리는 너무 약하게 들립니다. 앨범을 들으면서 특유의 까칠한 느낌 때문에 Khundi Panda가 생각이 많이 났는데, Khundi Panda는 어차피 화를 참고 진지하게 뱉는 감성이라 터지는 곳이 적은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IndEgo Aid는 분명 감정의 폭발을 의도한 곳에서도 그 힘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달토끼"에서 '트랩'을 위시한 파워풀한 사운드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서포트해주긴 하나, 후반부에 가서 멈블에 가까울 정도로 힘이 빠지는 단계에선 다시 역부족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비트만 강해진 "터키 아이스크림 트럭"은 같은 문제를 보여줍니다). Joshua Shim의 랩은 IndEgo Aid에 비해 조금 평이한 편이지만 덕분에 약간 더 두께가 있는 편이라 그나마 나은지도 모르겠습니다 - 근데 아이러니하게, 개인적으로 들으면서 둘의 목소리를 구분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몇몇 곡은 솔로곡인 줄 알았던...


 이러나 저러나 두 앨범은, 정해진 테마에 따라 짜임새 있게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소개하긴 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는 더 지켜봐도 좋을 거 같네요. 참고로 최근 IndEgo Aid는 "ELP: 프롤로그"라는 더블 싱글을 발표했는데 이는 본인의 앨범 "ELP"의 선공개 개념입니다. 들어보면 이번엔 좀 부드럽고 대중적인 비트로군요. (몰아서 들어본) 이때까지 해온 음악이랑 색깔이 달라서 좀 낯선데, 어떻게 나올지 앨범이 나오고 확인해봐야겠군요.



(10) Beopard - 반석 (2019.3.28)


 Beopard는 Wavement Lab이란 크루 (또는 레이블...) 소속으로, 2017년 첫 싱글을 발표한 래퍼입니다. LE에 올린 홍보글 때문에 알게 되었고, Simba Zawadi 피쳐링 때문에 조금 더 관심이 가서 들어보게 되었네요. 그의 과거 곡들을 들어보면, 이번 앨범이 꽤 발전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가 부족했던 붐뱁 래퍼가 하는 제일 흔한 실수 중 하나는, 노래에서 본인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에 너무 몰두해버리는 것입니다. 그저 앞뒤 안 가리고 달리기만 하는듯한 플로우는 곡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기승전결 없이 그저 절정만 가득한 곡으로 만들어버려서 듣는 재미를 반감시키고 맙니다. 거기에 빠르게 랩할수록 드러나는 새는 발음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이러한 문제를 고스란히 갖고 있던 이전 곡들과 비교하여,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메세지의 차이였습니다. 자기 스웩에만 치중했던 이전 곡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의 비중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플로우도 여유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 재밌게도 선공개곡이랄 수 있는 "전갈"과 나머지 곡을 비교해보면 이런 문제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문제들은 정도가 작을 뿐 모두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수치심에 관하여"에서는 의도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발음을 흘리면서 지나가는 파트가 존재합니다. '삼촌'을 "쌈촌'이라든지, '이름'을 '일름'이라고 하는 것도 힘 조절이 안 되서 발생하는 실수입니다. 플로우의 단순함도 비슷합니다. 요컨대, 곡을 재밌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보입니다. 랩을 맺고 잇는 타이밍은 물론이고, 목소리의 운용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앨범 중 제일 좋았던 파트는 "고인 물"의 2절을 꼽을 수 있는데, 유일하게 목소리를 다르게 내면서 높낮이를 주어 포인트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쩌렁쩌렁한 발성은 그의 장점이지만, 앨범 내내 한 가지의 목소리로 일관하는 탓에 귀가 피곤해지는 느낌입니다. 말랑말랑한 노래여야했을 "박다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아보이네요.


 어쨌든 좋은 하드웨어를 갖춘 탓에 기다려볼만한 래퍼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사족으로, 그의 곡들은 전부 Bonzo라는 비트메이커와 함께 만들어졌고 이번 앨범도 전곡 Bonzo 프로듀싱인데요, 이번 앨범에서 발전상을 보여준 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석공업"에서의 과감한 시도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단순 루핑을 넘어 소리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분위기를 형성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꽤나 튈 것으로 예상되는 보너스 트랙 "박다배"마저도 앨범의 통일성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았던 것 같네요. Beopard도 Beopard지만 이분의 비트가 심히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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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19-04-23 00:35:09

현재 이론상(?) vol.37까지 하면 드디어 밀렸던 감상을 다 하는 걸로...

2019-04-25 20:35:42

댄스디님 인스타 아이디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와요 ㅠ

WR
2019-04-25 22:18:37

danceddotone이요~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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