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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고등학생 래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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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3:38:16

고등 래퍼 3의 첫 방송을 시청했다. 몇 가지 인상을 받았다. 1. 아이들이 랩을 잘한다. 2. 아이들이 걱정된다.

힙합, 특히 랩뮤직의 인기가 늘어가면서 래퍼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그 시대의 트렌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희망 직업에 아이돌,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리고 래퍼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많이 벌고 멋져 보여서.

고등학교 1학년 생들이 모인 세트에서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왜 교복 넥타이를 제대로 매고 있느냐? 그것은 힙합이 아니다. 옆에 있는 학생들은 발언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물론 약간의 장난이 섞여 있는 말이겠지만, 영 빈말은 아니다. 그들이 가진 '힙합'의 이미지는 종잡을 수 없다. 다만 큰 범주로 나눈다면, 1. 불량하고 2. 반항적이며 3. 멋지고 4. 부유하고 5. 향락적이다. 넥타이를 맨 학생은 힙합이 뭐냐고 반문했다. 랩 잘하면 힙합이라고 그들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들은 본인들도 잘 모르는 힙합을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인생을 건다.

출연진의 다수가 힙합, 구체적으로 랩에 인생을 걸었다. 학교 공부를 포기하고 랩 공부에 올인한다. 랩 연습하는 것이 인생에 진정으로 중요한 공부이므로, 현재 상황은 일종의 홈스쿨링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인생에 확신이 있고,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자퇴를 하든, 유학을 가든, 똥을 싸서 조각을 만들든 문제가 없다. 다행히 그들은 확신에 가득 차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신의 근거가 모호하다. 본인이 랩에 천부적 자질이 있다고 믿고, 성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과연

우리가 아는 돈 잘 버는 래퍼는 100명 남짓이다. 그중 90% 이상이 쇼미 더 머니에서 얼굴을 알린 래퍼다. 알렸다 해도 시즌이 지나, 소위 쇼미빨이 꺼지면 다시 수입이 줄어든다. 국내 랩 시장은 기이하다. 미디어를 통해 발표한 곡은 인기를 얻지만, 미디어 밖에서 발표한 곡은 나왔는지도 모르고 사라진다. 일부 쇼미 밖 코어 힙합 팬만이 소비한다. 쇼미 더 머니 시청자인 일반 대중을 제외한 코어 팬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쇼미 밖에서 곡을 차트에 진입 시키는 래퍼는 손에 꼽힌다. 즉, 쇼미 더 머니로 대변되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잃거나 더 이상 방영하지 않으면 대중적 사랑을 받기 어려워진다. 쇼미 성수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를 제공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 뒤의 현실을 보지 못한다.

수만의 래퍼 지망생, 혹은 한물 간 래퍼들 사이에서 성공하는 이는 1프로 전후다. 아니 성공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가자. 랩해서 벌어먹는 래퍼가 얼마 되지 않는다. 공연과 음원 저작권으로 랩 머니를 받는다. 공연에 불리는 래퍼는 쇼미 더 머니 최근화에 나와 활약한 친구, 쇼미빨 꺼지고 버티는 극소수다. 랩 머니의 쏠림 현상이다. 그 어떤 빈부격차보다 크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랩에 올인한 미래 랩 스타들의 청사진엔 두 번째 안이 없다.

팟캐스트 중 매콤라라는 힙합을 주제로 한 방송이 있다. 한때 잘 나갔던 래퍼들이나 잘 나간 적이 없는 래퍼들이 나와 이야기한다. 그들의 지금은 무척이나 초라하다. 40 전후의 나이에 고시원에 살지만 랩스타의 꿈을 놓지 못한다. 일반 가요 시장도 그렇지만 트렌드가 빨리 변한다. 발라드나 댄스곡은 트렌드가 변해도 수요가 있다. 혹은 트렌드에 맞는 곡을 불러 억지로 맞출 수 있다. 힙합은 다르다. 트렌드에서 벗어나면 퇴물이 된다. 트렌드가 비트뿐만 아니라 랩 스킬에 관련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다. 2000년대 활동 래퍼들은 키드밀리나 노엘 등의 래퍼가 하는 트랜디한 랩을 할 수가 없다. 입이 굳었고, 노력해서 비슷하게 따라 해도 애처로운 시선을 받는다. 결국 지금 잘 나가는 아주 소수의 래퍼도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추지 못하면 곧 퇴물이 된다. 퇴물이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폭력적이다. 나이 먹고 요즘 스타일을 따라 하지 않는 래퍼에게 부여되는 단어다. 자신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모든 래퍼는 퇴물이 된다. 퇴물로 가는 길은 급류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려 하지만, 신체적 버거움과 주위의 조롱에 금세 진이 빠진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옷을 어떻게 입든, 어떤 가사를 쓰든 그건 본인 마음이다. 요즘 것들은 쯧쯧쯧 하고 혀를 찰 생각도 없다. 다만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는 수많은 고등학생 래퍼들의 미래가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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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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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3:43:23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제가 학교 아이들한테
힙합을 많이 좋아하라고 추천은 하지만
래퍼를 생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건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실력과 열정과 상황이 삼박자를 아룬다면
서포트 하기도 합니다만...
암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19-02-23 13:56:36

근데 또? 이상한 사람들 보면 요즘 국힙찔들 너무 감성 밀고 나간다 감성팔이 한다 막상 집에서는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 먹고 왔으면서 라는데 또 막상 이렇게 말하는 애들한테 빈첸 오반 컨셉충이라고 비꼬면 뭐라하더라구요 ㅋㅋㅋ 막상 감성팔이로 밀고나가는 래퍼 그리 많지도않은데 말이죠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힙합가사에 인생힘들다고 얘기하면? 니네가 뭐가 힘들어 이런식으로 함부로 말하니까 더 곪아지는거같기도해요 ㅋㅋ


그리고 뭐만하면 국힙찔 국힙김치찔들 돈얘기하고 머니스웩만 부린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그런래퍼? 누구냐고 물어보면 말하는게 도끼 더콰 끝이더라구요 힙합 들어본적도 없는것들이 힙합을 욕하고 논한다니]

이런식으로 욕하는 사람들은 또 아이돌 팬이거나 그렇던데 자기들 더러운아이돌문화나 비판할것이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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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4:52:36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갑니다.
근래에 읽었던 글 중 제일 인상깊네요

2019-02-24 03:44:17

잘 읽었습니다
다 공감가지만 볼때마다 학생들 실력보고 깜짝 놀라네요..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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