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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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11:50:28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대체로 이 시리즈가 한 번 끝을 맺었던 2018.7 이후로 나온 앨범들

여기에다가 이전 시리즈 글에서 다뤘는데 다시 들으니 감상이 바뀐 앨범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만. 싱글까지 포함하자니 너무 많아서..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Nerdy Coke - 인터뷰 (2018.11.24)


 Nerdy Coke는 유오닐, 손시아로 이루어진 듀오입니다. Crimp 크루 소속이며, 2013년 "Nutaz"라는 이름으로 "스물넷"이란 14트랙짜리 EP를 발표한 바 있죠. 이 당시 둘은 Naino, Venimun이란 이름을 썼던 것 같습니다. "스물넷"의 맨마지막 트랙은 "인터뷰하러 가는 길"로, "인터뷰"는 그때의 후속 이야기를 그리는 앨범이라고 합니다 (이 얘기에 이렇게 많이 할애하는 이유는, Nerdy Coke 인터뷰에서 "인터뷰하러 가는 길"의 후속 이야기다 란 얘기를 듣고 그게 어느 앨범에 들어있나 찾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Nerdy Coke란 이름을 처음 내세운 앨범임에도 31트랙이란 규모와 은근 화려한 피쳐링진으로 주목을 끌었고, 옆동네 LE에서는 일부에선 올해의 앨범이란 극찬까지 받았던 앨범입니다.


 "인터뷰"란 앨범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스타일이 무척이나 다양하거든요. "날 좀 내비둬" "너의 패션은 핫해" "떨리는걸" 같은 트랙에서는 Geeks가 연상되지만, "미정" "몽상"에선 좀 실험적인 느낌도 듭니다. 그러다 후반으로 가서 "난 너가 헤어지길 바래 근데 그걸 티내면 안된다는걸 아네"를 기준으로는 기리보이 같은 느낌이 막 듭니다. "안듣던 발라드" "편지" 같은 트랙은 힙합의 틀 밖으로 나가 어쿠스틱 밴드 음악이라는 생각도 들죠.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스펙트럼이 큰 단점은 아닐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앨범의 몰입도를 깨는 느낌이었습니다. 뭐, 여러 영화나 만화 구연을 연상시키는 스피치 샘플링이라든지, 뮤지컬 음악을 연상시키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악기 구성 및 진행, 음성 변조 수준의 피치 조절과 과감한 불협화음의 사용 등 어느 정도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되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철컹철컹"에서 기획사에 들어갔다가 꿈이 좌절되고 "뭐 때문일까" "\"로 물질주의적인 세상 속에서 헤매다, "길몽"에서 "성공"으로 희망을 되찾는 구성은 재밌지만, 31트랙이라는 규모 동안 이걸 몰입도 있게 끌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중간에 사랑 얘기가 꽤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건 바이브가 차이나거니와 연이어 그런 트랙들이 배치되어있다보니 분위기가 튀다 못해 앨범 안의 앨범 같은 생각까지 듭니다. 뭐 찾아보면 몰입 잘 되었단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많은 트랙을 넣어야했던 이유가 전 쉽게 이해되진 않는군요. 

 

 더불어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랩 실력. 사실 Nerdy Coke의 앨범이 래퍼로써 뭔갈 증명하려는 앨범이 아닌 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피쳐링 있는 트랙들은 대개는 피쳐링진에게 트랙 전체를 내주었으며, 둘은 무리하지 않고 조곤조곤 트랙을 이끌어갈 뿐입니다. 허나 어쨌든 둘이 보컬의 주역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달리 감흥이 오지 않는 랩 퍼포먼스는 이런 큰 앨범에서 큰 마이너스가 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게 믹싱 탓인가 싶은데, 가상 악기 소리가 날것 그대로 실려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 스타일에 대한 설득력을 저해한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신인(?)으로써 꽤나 과감한 행보를 디딘 것은 응원할만하나 아직은 발전의 여지가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2) Planet Black - Driving Playlist vol.2 (2018.11.26)

    Planet Black - About a Girl (2012.11.13)


 현재 Illionaire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Planet Black은 작년부터 믹스테입을 하나씩 발표하면서 다시 랩을 하고 있습니다. Illionaire와 뭔가 콜라보가 있을 법도 하지만, 랩이나 비트는 물론, 믹싱/마스터링에서도 일체 도움을 받지 않고 Planet Black 본인과 Holmes Crew, 그중에서도 Shupie의 도움을 받아 앨범을 완성해가고 있죠. 3주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나온 두 앨범은 테마는 좀 다르지만 느낌은 꽤 비슷해서 묶어서 말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Soul Company 시절에는 다들 그랬듯 붐뱁을 했지만 이 두 앨범은 아주 전형적인 트랩 스타일을 띄고 있습니다. 사랑 노래라는 컨셉을 잡은 "About a Girl"은 트로피컬 사운드를 차용하여 통통 튀는 청량감(?) 정도는 있는데, "Driving Playlist"는 아주아주 트랩의 공식에 충실하여, 오토튠, 싱잉랩, 트리플렛 (셋잇단음표) 플로우, ayy/yaa 등의 추임새, 같은 가사 두 번 반복 등 우리가 익숙한 것들이 충실하게 지나갑니다. 굳이 외국 뮤지션까지 안 가더라도, 가끔은 Don Mills 느낌도 나고, 가끔은 Superbee & 창모 느낌도 나고, 가끔은 Coogie 느낌도 납니다. 뭐 Planet Black이 한창 활동했을 때도 랩으로 한 획을 그은 플레이어는 아니었던 것처럼, 이 앨범도 어떤 획을 그으려고 낸 건 아닙니다. 그런 의도는 "Driving Playlist"의 여러 곡에서 나오죠 - 차 몰면서 혼자 즐겁게 듣고 싶은 자기 음악을 만든 거라고. 워낙 전형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부하긴 하지만, 여튼 크게 흠잡을 데는 없습니다. 기본기는 있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과거와 아예 다른 스타일을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군요. Soul Company 올드팬이라 이름이 반가웠던 사람을 제외한다면, 트랩 앨범이 쏟아지는 요즘에 평범한 또 하나의 트랩 앨범으로 기억될 것 같아 아쉽지만 소정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생각합니다.



(3) MINO (송민호) - XX (2018.11.26)


 많은 사람들이 Ja Mezz의 연금술 피쳐링 파트를 기억하면서 랩으로 조지는 앨범을 기대했을 법합니다. 그러한 기대가 컸을수록 "XX"는 실망스러운 앨범이 될 공산이 큽니다. 이래저래 YG 소속 아이돌이란 이미지를 벗으려는 느낌은 많습니다. YG 음악의 진부함의 원인으로 종종 비난받는 Teddy의 개입을 배제했고, "소원이지" "위로 해줄래" 같은 거침 없는 섹드립도 그렇고, 피쳐링진에도 언제나의 YG 뮤지션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셀프 프로듀싱으로 많은 부분 참여하기도 하였죠. 이러한 의도였건 아니건, 앨범 시작은 힘을 빡주고 호기롭게 시작합니다. 온갖 신디사이저, 이펙트와 오토튠이 등장하고 펀치라인이 난무하며, 어떤 부분은 "연금술" 때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탄탄한 톤보다는 화려한 플로우와 멜로디에 의존하는 느낌이 강하며, 특히 훅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서 벌스는 죽고 후렴밖에 기억에 안 남습니다. 앨범은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하다 중반을 넘어가 "오로라" "어울려요"에서 전반부의 패기가 무색할 정도의 팝스러움에 빠지고 맙니다. 그 분위기는 마무리인 "알람"에서 다시 확인됩니다. 중간에, 왜 여기다 넣었는지 좀 궁금하지만, "암" "불구경" 두 트랙은 무난한 힙합 트랙으로 힙합 아티스트로써의 송민호의 위치를 가장 잘 대변하는 듯합니다. 제가 느낀 이 앨범은 그런 '무난한' 래퍼 송민호 위에 YG 특유의 화려한 장치로 덧칠하여 완성한 앨범이었습니다. 기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연금술"을 통해 기대한 모습하곤 많이 다르네요.



(4) Wet Boyz - 인의기훈 (2018.11.28)


 Haruhi와 HOMEBOY로 이루어진 듀오 Wet Boyz의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고등래퍼 시즌 1 때 최하민 무대에 HOMEBOY 등장한 걸 제외하면 둘을 접하는 첫 기회였습니다. 평범한 오토튠 싱잉랩 앨범이지만, 다른 앨범에서 보지 못하는 따스한 감성이 차별화되는 부분이군요. 읊조리는 톤과 자극적이지 않은 멜로디, 그리고 착한(?) 내용 덕분에 힙합보다는 옥상달빛 같은 인디밴드 앨범 듣는 느낌도 납니다. 2분 전후의 짧은 곡들이 많아서 앨범이 슥슥 금방 진행되버리는 가운데 분위기들이 다들 비슷하다보니까 몰입이 잘 안 되고 그냥 멍하니 듣게 되지만, 이건 제 취향과 더 관련 있는 부분인 거 같습니다. Rae Sremmurd하고 약간 비슷한 거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에서 찾기 힘든 스타일이라, 이런 것도 한국적 힙합의 한 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이해가 가는 음반인 건 맞네요.



(5) 한국사람 - 전설 (2018.10.11)

    한국사람 - 127 (2018.10.24)


 매우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LE에서 은근 매니아들이 많아갖고 찾아 들었는데, "전설"의 첫트랙 "내사랑내곁에"가 정말로 (저작권 클리어했을리가 없을) "내 사랑 내 곁에" 노래방 반주에 하는 랩일 줄이야. 이러한 충격은 뒤로 가면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2018 Creep"에 등장하는 Creep, "잃지마"에 등장하는 "아리랑", 심지어 마지막 "자살소년"까지,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이어집니다. 하이햇을 쪼개길래 트랩인가 싶더니 갑자기 술취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한국사람이라더니 영어로 가사를 다 채우고, 장르를 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뭔가 정상적(?)이고 타이트한 느낌이 제일 있는 "Ultra Kid"가 너무 튀어서 수록 의도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비트를 만든 최성이라는 사람이 한국사람 본인인 건가요? 그의 행위에 이렇게 잘 동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애초에 찾아보니 화제가 되는 이유는 코드,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되는대로 내뱉는 '실험성' 때문이군요. "전설"과 "127"의 기본 정신은 유사합니다. 다만 "전설"은 정말 되는대로 찍은 듯한 미디의 비트고 (알고보니 "엠창인생"이라는 믹스테입 수록곡과 사운드클라우드 공개곡들로 거의 이루어진 앨범이군요) "127"은 비트는 뭔가 모양새를 더 갖춘 반면 ("ㅠ" 같은 것도 어쨌든... 모양새 갖춘 비트이긴 합니...다...) 목소리로 피우는 난장이 더 크다는 정도? 분명, 저 옛날 유행했던 팥죽송이나 틱톡 라디오 광고음악마냥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독성이 분명 있습니다...만 저는 그냥 이 앨범을 듣지 않는 붐뱁충으로 남으려고 합니다...



(6) XXX - Language (2018.11.28)


 2018년 최고의 문제작(?)이었던 XXX의 "Language"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소스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려고 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정작 그 느낌은 "KYOMI"에 비해서도 훨씬 난해한 편입니다. "KYOMI"에서는 "Too High"나 "Dior Homme"의 중간 부분처럼 숨 돌릴 부분(?)이라도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소음과 같은 악기가 정신없이 난무하면서 강렬하게 곡을 이끌고 나갑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FRNK의 존재감입니다. 1MC 1PD의 구성을 갖춘 경우 종종 프로듀서보다 MC의 존재감만 남는 경우가 꽤 많은 반면, XXX의 경우 김심야의 목소리는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FRNK에게는 소스일 뿐입니다. 타이틀곡(이라고 표시되어있는 곡)이자 선공개곡이었던 "수작"은 이런 방향성을 제일 잘 대변합니다 - 김심야의 가사는 한 벌스 분량이고 이를 한 번 더 반복할 뿐인데, FRNK는 이를 과감하게 변조하고 생략하고 끊으면서 기막히게 벌스 간의 차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곡들이 뚜렷한 멜로디 없이 타악성만을 강조하여 쉽게 다가갈 수 없으면서도 뚜렷한 리듬감에 청자를 몰입시키는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구성에 벌스, 훅 등이 친절하게 구분되어있는 경우는 없으며, 대개는 한 번 이상의 템포 및 멜로디의 변주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듯 비슷한 곡들이 줄지어있기 때문에, "Language"를 듣다보면 하나의 커다란 곡이란 느낌도 듭니다 - 이런 시점에서 볼 때 "간주곡"이란 제목과 역할은 기발하기 짝이 없군요. 김심야는 그런 FRNK의 손놀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래퍼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분위기 비슷한 비트 위에서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내내 비슷한 얘기로 엄청난 씨니컬함과 염세주의를 보여주는 김심야의 가사를 듣노라면 평소보다 더 큰 피로가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의 컨셉은 "떼쓰기"란 걸 들은 적 있는데, 정말 지대로 떼쓰는 듯. 그래도 훌륭한 앨범입니다.



(7) Hunger Noma - Weird Tales (2018.11.29)


 Vitality의 마지막 후손(?) Hunger Noma의 첫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생각보다 겉으로 드러난 작업물은 없지만 세 장의 믹스테입과 EP, 싱글 등 꽤 허슬해왔던 그답게 20트랙이라는 한국에선 보기 힘든 트랙 수로 꽉꽉 채운 작업물입니다. 여러 모티브가 있긴 하지만, 특히 러브크래프트 신화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하여 (대표적으로, 앨범 제목 "Weird Tales"는 러브크래프트가 처음 소설을 기고하기 시작한 미국의 환상/공포 소설 잡지 제목입니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깔았으며, 그 위에 본인이 꿋꿋이 지켜온 색깔을 풀어놓습니다. 요즘 보기 드물 정도로 순수한 형태의 하드코어 힙합을 구사하는 그의 강렬한 톤과 비트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귀를 잡아끄는 건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Dr. Schnabel" "Under World" "The Mist" 같이 가상 ("The Mist"는 실제?)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진행하기도 하지만, "Hang Me"나 "Love Dream" 등 이야기가 아니라도 스토리텔링 능력은 빛을 발합니다.


 이렇듯 컨셉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앨범이나, 현재 트렌드와는 정반대 편에 배치되어있는 음악임은 부정할 수 없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정히 따져서 음악적인 재미는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타이트하게 플로우 구조를 짜는 덕에 비슷한 패턴의 랩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이 덜하긴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라임 배치와 앨범 대부분에서 비슷비슷한 톤, 2000년대 초반을 느끼게 하는 비트 등이 못내 가슴에 남습니다 (참고로, 다수의 곡에 참여한 Radix, Nuttkase나 Blastah Beatz는 외국 프로듀서로 하드코어 힙합 팬들에겐 꽤나 이름을 알린 굵직한 커리어의 비트메이커입니다 - 사실 실린 비트들은 그들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굳이 옛날 비트를 갖다쓴 건 아닐 거 같습니다만, 암튼 비트 초이스를 이렇게 간 건 Hunger Noma 본인이니까요. 처음에는 그 이름을 확인하고 어라 이 사람들도 요즘 타입 비트 파나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어떻게 콜라보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한데 헝거 노마는 인터뷰 같은게 없네요). 앨범 후반부, 차분한 톤에 감정이 진솔하게 담긴 "Hang Me"나 비트 스타일이 다른 "태초마을" "Love Dream" (참고로 두 곡 다, 동일한 버전은 아니지만 전에 공개된 적 있음) 같은 것들을 앨범에 좀 더 섞어서 유연함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 그것이 본인이 추구하는 하드코어함을 너무 훼손한다고 느꼈을까요? 하지만 익히 우리는 하드코어 힙합 안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아쉽군요.


(8) Illinit - Cosmos (2018.11.29)


 이번이 세 번째 정규인 Illinit의 그동안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매번 다른 색이었습니다. Sniper Sound에서 나온 "Triple I"는 하드코어한 색깔 속에 어쩔 수 없는 뽕삘이 묻어있었고, Factory Boi에서 나온 "Made in 98"은 그의 쫄깃쫄깃한 그루브감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도 과거 회상이란 테마 속에 편안함이 적절히 녹아있었죠. "Cosmos"의 첫인상은 매우 긴장되어있고 어둡습니다. 공황장애를 겪어 약물 치료를 했다는 부연 설명이 없어도 곡들엔 전체적으로 그의 투병 생활과 정신적인 어려움이 뚜렷하게 드러나있으며, 피쳐링 없이 완성했다는 점도 뭔가 온전히 Illinit이 느낀 고독과 고통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Justhis가 전곡 프로듀싱한 비트의 경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느낌의 멜로디 진행과 적어도 BPM 세 자리라고 생각되는 빠른 진행으로 더더욱 그 느낌을 강화시켜주고 있어 괜히 Justhis가 영혼의 단짝이라고 부르는게 아니구나 싶어집니다. 여기에 Illinit 특유의 인상적인 구절들 -  '그때 내가 한 생각은 사실 저기 저 사람이 숨져야지만이 내가 다시 숨을 쉴까 하는 거였어' '내가 호칭에 님짜를 붙일 때는 당신도 나한테 님짜를 붙일 때뿐' 등등 - 이 붙어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깊어집니다. 후반으로 갈 수록 점차 밝아지던 무드는 마지막, "Cosmos"에서 큰 해방을 맞이합니다. 앨범 구성에 고려하지 않는 보너스 트랙 "Chill Out"도 마치 영화 마지막 스탭롤이 올라가는 옆에 뜨는 작은 에필로그 영상 같은 훌륭한 역할을 합니다. 


 "Cosmos"는 매우 탄탄한 앨범입니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긴밀하게 연결된 분위기의 흐름과 탄탄한 구성에 첫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청자를 단숨에 몰입시키고 놔주지 않는 마력이 있습니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음악적인 단조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전 트랙이 거의 같은 템포인데다 Illinit이 거의 대부분을 읊조리는 톤으로 하기 때문에 앨범을 들으면서 뭔가 빵 터져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해소되지가 않습니다 - 예컨대, "Half-Duplex" 같은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워낙 앨범이 몰입도가 높다보니, 트랙 하나보다는 앨범 전체서 기승전결을 느끼게 되고 앨범 전곡이 모여 큰 폭발력을 가지게 되어서 크게 갈증을 느끼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뭐, 분명 가볍게 한 곡 듣고 싶을 때 꺼내듣기엔 너무 무거운 앨범이긴 합니다만, 저는 Illinit이 말했던 '나의 음악의 목표는 이런 앨범을 만드는 거였다'란 의견에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9) Swings - The Intr0 (2018.11.30)

    Swings - Upgrade 0 (2018.12.26)


 "The Intr0"에 대한 표현은 "튠윙튠"이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We Da Plug를 세운 후 그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생각되었던 이 변화는 꽤나 당황스러운 것이었습니다. Swings의 스타일은 자신감과 힘이 넘치고, 뚜렷한 철학이 있으며 듣는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재치가 매력이었는데, "The Intr0"에 수록된 네 곡은 마지막 트랙 "I Like That" 정도를 제외하면 꽤 감미로운 느낌으로 이런 매력들이 많이 무뎌진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 가사적으론 비슷할지는 모르는데 오토튠 싱잉랩이라는 게 딜리버리가 다소 깎이고 곡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보니 저는 노래들이 다 사랑 노래인 줄 안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The Intr0"에서의 변화는 "Upgrade 0"란 앨범을 훨씬 거부감 없이 듣게 해줬습니다. 우선 "Upgrade 0"은 첫 트랙 "Tumor"부터 강렬한 색을 떨쳐서 "The Intr0"와 차별화를 둡니다. 음악적으로 다른 스타일을 빌렸을 뿐, Swings의 이전 앨범에서 보였던 그의 매력이 고스란히 옮겨져있습니다. 또 비슷한 스타일로 배치하였던 "Intr0"와 대비적으로 "Upgrade 0"는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Tumor"에서는 부르짖기도 하고, "Self Talk"에서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부르기도 합니다. "Basic"은 낮은 음역대와 단조로운 멜로디라인인 반면 "Round & Round"는 가성 위주의 다이나믹한 멜로디라인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Thank You, World"는 팝스러운 반면 "Nanana"는 매우 힙합스럽습니다 (이 표현이 맞는 건진 모르겠는데 암튼 느낌은 아시리라 믿..). 이런 다양한 스타일은 앨범의 통일성을 다소 해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본인의 스펙트럼을 확인시켜주는 몫은 톡톡히 해내는 듯합니다. 참여한 피쳐링진들도 이 앨범에서 Swings가 보여주지 못하는 색깔을 잘 채워주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앨범을 총 프로듀싱한 sAewoo의 비트메이킹 실력을 빼놓을 수 없군요. 노창, 기리보이의 뒤를 이어 Swings가 둔 메인 프로듀서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어보입니다. 약간 앨범을 들으면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앨범 전반에는 꽤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 반면 후반에는 비슷한 스타일이 이어져서 (아이러니하게 "The Intr0"와 더 비슷한듯한) 약간 지루했고, 오토튠을 너무 먹여서 거부감이 이는 것. 아마 취향 때문이리라 봅니다. 이번 앨범도 그에겐 어느 정도 도전이었던 바, 이정도면 성공적인 도전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10) Jerry,K - OVRWRT [Re-리뷰] (2017.11.28)


 'Jerry,K 앨범을 감상하는데 첫번째 태도는 이전 Jerry,K와 다른 인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저번 글에서 얘기했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Jerry,K 앨범에 대한 저의 반감을 완벽히 설명하진 못합니다. 순수 청년 The Quiett이 머니스웩의 선두주자로 변하는 것은 시간이 좀 걸렸을지언정 잘 포용했을 뿐더러, 저의 반감은 꽤 오래전인 "우성인자 믹스테입" 때부터 조금씩 있었기에 그가 어떤 사상을 내세우건 저한테는 관계가 크지는 않아보였거든요. "현실, 적", "감정노동", "OVRWRT" 등 근래의 앨범들을 연이어 들어봤을 때, 확실히 "OVRWRT"는 스타일의 변화 이후 가장 거부감이 덜 드는 앨범은 맞는 거 같습니다.


 현재의 Jerry,K가 와닿지 않는 이유를 저는 스타일에서 찾았습니다 (뭐 사상 얘기는 말할 필요도 없으니 생략...). 본래 솔컴 시절의 Jerry,K는 아주 정통적인 붐뱁을 구사하여서, 인위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강한 발성과 정확한 박자, 크게 박는 라임 및 강렬한 메세지가 특징으로 꼽혔습니다. 근데 이후 스타일의 변화를 겪으면서 발성에 힘을 줄이고, 라임에 구애되지 않으며, 박자를 좀 더 자유로이 타고, 발음을 밀고 당긴다든지 여러 스킬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첫번째로 이러한 변화들이 트렌드에 맞춘 것으로 오리지널하지 못하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당초에 굳어진 이미지도 있었겠지만 Jerry,K에게 영 어색한 모습이었던 것이죠. 박자의 다양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다지 다채로움이나 그루브감이 느껴지지 않는 플로우는 훨씬 더 빨리 질리기 마련입니다. 오토튠이나, 단순하고 외우기 쉬운 훅 라인이나 (물론 "불안해"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발음을 질질 끄는 것 (이게 멈블을 뜻하는 건 아닌데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등의 스킬은 왜인지 모르게 아저씨가 청소년의 멋을 따라하려 애쓰는 모습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거기에 메세지에 대한 강박? 씬에 있어야할 캐릭터라는 생각은 들지만 왠지 모르게 강박적으로 그런 요소를 넣으려 애쓰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 "마왕" 때는 신선했던 면마저 시간이 지나니 다소 피곤해졌던 거 같습니다.


 "OVRWRT"가 거부감이 덜 느껴지게 된 이유는 뭐, 나름의 연륜이 작용한 게 제일 크겠죠. 세부적으로는, 늘 한 발은 트랩에 걸쳐놓고 한 발은 붐뱁에 걸쳐놓았던 괴리감 있는 스타일이 이번에 완전히 트랩으로 통일되면서 좀 더 설득력 있는 음악을 하게 되어서인 듯합니다. 더불어 톤이 좀 더 편해지고 플로우가 유연해진 느낌이 있죠. 무엇보다 이 앨범에는 사회적인 메세지를 완전히 덜어낸 점도 인상적입니다 - 모두가 우려하는 페미 메시지도 사실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오토튠은 어색하지만 그건 제 취향과 좀 더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더불어 트랩 비트의 상당수가 Jerry,K 프로듀싱이던데, 이게 꽤 나름 괜찮네요. 꽤 신선한 반전이었습니다. 아직 저와 Jerry,K 사이 좁혀지지 않는 감정의 폭이 2% 정도 있어서 한정반은 결국 구매를 안 했는데, 여튼 이정도로 계속 해주면 향후에도 음악을 더 들어보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최근 나온 싱글들은 기어이 "오토튠 싱잉랩"에까지 손을 대셨더군요... Jerry,K는 이렇게 한 걸음 다가온 저로부터 두 걸음 멀어졌다는 슬픈 결말입니다.

4
Comments
2019-02-11 13:40:06

 송민호 200% 공감하고 갑니다. 이거 팔고 싶어도 팔리지도 않고...ㅎㅎㅎ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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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1:14:54

크크 구매하셨군요
바비 비아이 도 프로젝트로 나온다던데 그때는 더욱 조심스럽게 고민을..ㅎㅎ

2019-02-11 23:39:14

 헝거노마 앨범 저도 잘들었습니다

전형적인 하드코어 앨범이고 곳곳에 인터루드 박고 중반넘어가도 하이피치 목소리 샘플이 안나오길래 에이..했는데 후반에 나오길래 역시..하면서 웃었습니다

이 씬에서 고집스럽게 옛날 스탈 고수하는 래퍼가 있다는게 늙은 리스너에겐 정말 기쁩니다

비니패즈가 한결같은 스탈로 밀고가는데 헝거노마도 10년후에도 같은 스탈로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WR
2019-02-12 11:15:22

오 비니패즈 오랜만에 생각 나네요 예전에 많이 들었는데ㅎㅎ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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