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 뱃사공 "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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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03 20:15:14

 
 옛날에 한 사람이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아들 중 동생이 아버지에게 자기가 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 이야기하고 그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났습니다. 사실상 가족과의 의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던 동생은 머잖아 받은 재산을 다 써버리고 거지꼴이 되었습니다. 전재산을 다 날린 후의 힘든 생활을 참지 못한 그는 결국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의절하다시피한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인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다시 거두어달라 부탁했고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껴안으며 자식으로써 반가이 맞이해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동생을 위해 연회를 여는 것을 알게된 형은 의아한 생각을 품고 아버지께 동생의 괘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동생을 다시 환대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의 동생은 죽었다가 되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가 바라사이들에게 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아"의 모티프가 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뱃사공의 정규 2집 [탕아]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뱃사공의 여정을 알리는 1집 [출항사] 이후 3년이 지나 2집에서 [탕아]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곳곳에서 풍기는 빈티지한 내음, 그리고 가사에 비치는 뱃사공의 모양새가 처음 접하는 순간에는 비루해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멋져보이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나 역시 꽤 나쁘지만은 않은 인생을 사는 것 같고..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청춘의 팍팍한 삶이 멋으로 승화합니다. 뱃사공은 이러한 삶을 사는 자신을 [탕아]로 정의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타이틀을 꿰차고 있는 '탕아'라는 단어입니다. 사전상으로는 말 그대로 '방탕한 사람'이라는 의미지만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에 보이는 뱃사공의 모습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방탕하지 않은, 아니 방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곳곳에 비춰집니다. 모든 것이 물질적인 사정에 따르는 팍팍한 현실때문입니다. 뱃사공은 이 상황을 뒤집어 '하지만 너희는 내가 X나 멋있는 놈이라고 생각하게될거야!'라고 항변하는 듯한 장치를 곳곳에 뿌려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탕아'의 의미가 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두 번쨰 트랙 "탕아"는 해당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작품의 주연인 뱃사공에 대한 소개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낭만을 좇는 한량이 되려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며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탕아 제이통을 초빙해 이미지 구축을 더욱 확고히 합니다. 이후에 따라오는 키워드는 '낭만'입니다. 뱃사공이 보여주고자 한 멋의 궁극적인 지점은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무언가'입니다. 이건 당연히 돈이나 기타 물질적인 것들로는 대체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멋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이를 추구하는 삶 자체가 '낭만'이라는 단어로 환유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뱃사공이 앨범에서 보여주고자 한 탕아의 이미지는 '낭만을 좇는 한량'이라는 결과가 도출됩니다.

 그야말로 "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는 기타사운드를 위시한 밴드스타일 프로듀싱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첫 번째 트랙이면서 글의 후반부에 이야기해볼 "축하해"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프로덕션이 있었고, 같은 리짓군즈의 멤버인 아이딜과 어센틱, 더불어 김박첼라의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앨범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느슨하게 이완시킨 후 뱃사공의 목소리가 이를 다시금 하나의 색으로 조이는 작업을 거친 듯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뱃사공은 삶의 낭만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한량, 그의 단어로는 '탕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량이 추구하는 낭만이 과연 무엇이냐는 결론에 도달했을까요?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앨범 초반에는 화생방훈련에서 가오가 몸을 지배했던 최민수처럼 한없이 저돌적인 그였지만 앨범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내면 속에 묻어둔 서글픈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리짓군즈의 2집에도 수록되었던 "외롭지만 괜찮아"에서 욱여둔 외로운 감정들이 다시 흘러나오다 이윽고 최후반부 "진심"에서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고백하며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그가 추구하던 '탕아'의 모습은 환상이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게 끝일까요? 다시 첫 트랙으로 돌아갑시다. 아까 밴드사운드를 언급하며 이야기한 "축하해"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어제의 자신을 벗어나 새로 태어난 오늘의 내 생일을 축하하는 곡입니다.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좁은 방 한켠에 쌓여가는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다음날 새로운 자신을 맞이하며 낭만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납니다.

죽었다가 되살아났고, 잃었던 것을 되찾았습니다.
말 그대로 '돌아온 탕아' 아닌가요?

 뱃사공의 [탕아]는 빈티지한 사운드 속에 쫀득한 랩으로 작금의 세태 속에서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고충을 잘 녹여냈습니다. 나아가 크게 바라봤을 때는 앨범의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구조를 보여주며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애티튜드를 공고히 합니다. 굉장히 즐거운 작품입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투박한 멋을 퀄리티 있는 음악성으로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돌아온 탕아 뱃사공이 성공적인 출항을 마치고 마침내 그가 원하던 답에 안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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