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3

 
10
  903
2018-06-17 23:45:38

Simba Jawadi & Don Sign - Elijah's Demo

 요즘은 왠지 인스타가 더 유명해지는듯한 Simba Jawadi의 가장 최근 앨범 규모 작업물입니다. 프로듀서 Don Sign과의 콜라보 앨범으로, 전형적인 붐뱁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붐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게감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면에서 "Elijah's Demo"는 평균 합격점은 받을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취향도 취향이었겠지만 심하게 튀지 않는 둘의 랩과 비트가 안정적으로 들려서 좋네요. 'Slay Me' 정도가 조금 단조로왔던 느낌? 곡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기독교적인 색채가 상당합니다. CCM이었나 하고 다시 가사를 보면 힙합 얘기는 맞는데.... 하는 정도. 뭐 저는 무교지만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건 아니라서, 재밌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요즘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앨범은 묻히는 분위기여서 조용히 지나간 앨범인가... 싶습니다. Simba Jawadi의 음악이 크게 한 방 날리지 못하는 이유도 그러려나요 (문득 일전에 들었던 Dialogue & DJ Tiz 앨범이 생각나네요. 그것도 꽤 준수했지만...).


Vinicius - 사이

 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만난 또다른 즐거운 충격입니다. Vinicius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 Jazzy Ivy와의 콜라보에서 보았던 진한 재즈풍의 비트가 전부였는데, 이 앨범은 그보다 한 차원 발전한 그의 음악 세계를 보여줍니다. 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밀고 당기는 기술이 과히 장인에 가깝습니다. 특히 곡의 주요한 멜로디를 담당하는 기타 음이 너무나 매력적이네요. 가성을 위주로 하는 Vinicius의 보컬도 과하게 악기 소리를 덮지 않고, 또 하나의 악기로써만 자리하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오늘 너' 같은 트랙일 겁니다. 앨범의 구성이나 통일성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표현력이 딸려서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듣고 나니 Vinicius를 단순히 비트메이커로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Khundi Panda - 부산물

 쿤디 판다에 대한 얘기는 추후에 더 하게 될 거 같지만 여튼 이번에 새로 나온 믹스테입을 들어보았습니다. 저의 쿤디 판다에 대한 호감은 좀 애매해요. 독특한 주제 선정과 씨니컬한 가사는 우선 제게 취향 저격입니다. 저번 Viann과 낸 앨범이나 이번 앨범에서 비트 역시도 랩과 어울리는 것만 잘 선정해서 분위기 조성도 잘 하고... 분명 흠잡을 데 없어보이는데, 목소리가 늘 저에겐 문제입니다. 약간 힘을 주고 긁는 듯한 느낌의 쿤디 판다 목소리는 분명 독특하고 발성이 잘 잡힌 톤이지만, 저는 몇 트랙 내리 듣다보면 늘 피로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왜 톤에 변화를 주면서 랩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는지... 그게 늘 아쉬웠습니다. 그것만 빼고는 쿤디 판다는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든 좋은 래퍼입니다. "부산물"도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진 않습니다. 엄청 탄탄하고 잘 만든 앨범인건 알겠는데...ㅎ


Loxx Punkman - Outraged Flavor

 Loxx Punkman은 프리스타일 대회 SRS 우승자 또는 과거 Dickids 크루의 리더 등 주목 받을만한 커리어가 있지만 아직은 그리 조명 받지 못했던 래퍼입니다. Loxx Punkman의 문제는 목소리의 힘을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 그가 Jazzy Moon과 결성했던 프로젝트 팀 "Ashtag"의 앨범은 이 문제를 매우 대표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너무 목소리에 힘만 주다보니 리듬감은 경직되어 비트와 겉돌고 그루브가 부족해졌던 것입니다. 다만, 바로 그 직전 앨범이었던 믹스테입 "Mr. Punkman"의 경우는 비트 자체가 Loxx Punkman에게 잘 어울리는 게 더 많았던지 이런 문제가 덜 느껴졌습니다. "Outraged Flavor"는 "Mr. Punkman" 같은 어프로치를 택하진 않았지만 (비트는 오히려 좀 더 단조로운 쪽에 속합니다) 이번에는 Loxx Punkman 본인이 톤을 조절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한 것이 눈에 띄입니다. 이렇게 힘을 빼니 랩이 좀 더 부드러워져서 '무시로' 같은 그루브감 있는 트랙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담을 걷어내고 나면 Loxx Punkman의 목소리는 꽤 개성 있고, 가사는 매우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라 일부에겐 거부감을 일으킬만 하지만 이 역시 재밌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보입니다. 가장 먼저 사클에 공개되었던 곡 '그 나물에 그 밥'은 이런 느낌에 가장 상반되는 곡이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네요.

  

Crucial Star - Starry Night '17

 Crucial Star는 어떤 의미에서 장인의 레벨에 올랐습니다. 힙합을 달리 몰라도 (아니 사실 '몰라야'?) 즐길 수 있는 달달한 노래를 만드는 측면에서 말이죠. 연애에 관련한 편안한 주제 선정과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내용 전개, 딱 지루하지 않을만큼만 리드미컬한 플로우, 부담스럽지 않은 그의 톤과 멜로디라인 모두 다 그의 스킬에 뛰어난 도구가 됩니다. 이번 미니 앨범에서도 그의 스킬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데리러 갈게' 같은 곡을 굳이 분류하자면 '싱잉 랩'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Post Malone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그 싱잉 랩은 아니라는 점은 Crucial Star가 뭔가 다른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합니다. 뭐가 됐든, 이번을 계기로 Crucial Star를 힙합으로써 찾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힙합에 아직 걸친 발 하나를 빼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몸은 팝 쪽으로 많이 와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음악을 만들었단 의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힙합을 모르는 누군가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랩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Crucial Star를 추천할 의향은 충분히 있네요.


화나 - 청년, 진짜 이야기

 "청년, 진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OST라는 매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앨범처럼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전곡이 동일한 주제 의식 하에 만들어져있어서 적어도 통일성 하나는 제대로이지만, 일반 앨범처럼 분위기의 흐름 따라 곡이 배열되어있지 않고, 대부분의 곡들의 구성이 단편적으로 마치 미완성 곡을 듣는 느낌을 줍니다 (벌스의 갯수나 마디 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넘어'의 단순한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후렴이나, 불완전한 마디 구조로 끝나는 '사표'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악적으로 화려한 기교는 배제되었고 (라고 하기엔 '접근'의 Dirty Frame이 조금 걸리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담백합니다. 거의 모든 곡이 음악적으로 같은 기법을 적용하여 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함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나의 '고블린' 컨셉이 좋으면서도 때로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화나의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음반 같습니다. 그거랑 화나의 라임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추가 기회인 것 정도?


Tomsson - Pulp Fiction

 Tomsson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로, 이 앨범이 나올 당시만 해도 무소속이었으나 이후 "M.T.A.T."라는 크루의 멤버로써 활동하고 권디엘과 프로젝트 팀 "Narcos"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7년 나온 그의 정규 앨범 "Pulp Fiction"은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17곡 짜리 대형 앨범입니다. Tomsson의 얇으면서도 어딘가 거친 톤은 타이트한 랩에 최적으로, '작두'나 'The Triumph', 'Tomsson Rules' 등의 곡에서 그러한 장점이 100% 발휘됩니다. 실제로 그의 리듬감은 평균 이상으로 듣는 사람을 몰입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 자체가 너무 힘이 있다보니, 'Rum Vibe'나, 'Bite Twice'부터 시작되는 후반부의 감성적인 트랙에선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톤 조절 실패라고는 생각이 안 되고, 타고난 톤의 문제인 거 같기도 하고, 제 취향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앨범에 관해 한 가지 더 느꼈던 건, 구성이 좀 믹스테입스럽다 (특히 초반)는 점입니다. 1번 트랙 'My Ballad pt.2'는 앨범 중에서도 제일 감성적인 축에 속하며 4분 47초로 길이도 짧지 않은데, 독특하게도 이후로 10여 트랙 동안 타이트한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또, 'Night Movement'에서 'Backyard Freestyle'로 이어지는 초반 구간은 훅을 의도적으로 없앤, 랩에 포커스를 맞춘 트랙입니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믹스테입인데 정규 앨범으로 선회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입니다 (한가지 더 짚자면 중간에 등장하는, Deepflow의 동명의 트랙의 영향을 받았음이 너무나도 자명한 '작두'입니다). 이런 갸우뚱하게 만드는 요소를 고려할 때 조금 더 엑기스만 남기고 간결하게 앨범을 만들었다면 더욱 듣기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생깁니다만, 적어도 신곡이 나오면 관심을 다시 가질만한 매력 있는 래퍼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2018년 들어선 아직 뭐가 없네요.


Superbee x twlv - 벼락부자애들

 박재범과는 다른 느낌으로 허슬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Superbee의 신작입니다. 이번에는 twlv라는 뮤지션과 프로젝트 듀오를 결성하여 앨범을 냈군요. 홍보 자료를 보니 2주 후에 두 번째 EP가... 흠. 힙합엘이였는지 DC트라이브였는지, 아무튼 Superbee가 노래를 50곡 만들었다고 하니 '그런 분위기로 만들면 그렇게 많이 만들었다는게 안 믿기진 않는다'란 반응이었는데 저도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미국 메인스트림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는 그의 음악은 그의 가능한 스펙트럼과 별개로 주제나 스타일에 있어 비교적 천편일률적입니다. 다만 그의 랩 실력이 이 모든 것을 커버하고 있는 것이죠. "벼락부자애들"은 전작과 달리 오토튠 싱잉 랩을 주 무기로 채택하여 나온 앨범이지만 이 역시 바다 건너 트렌드를 표방하였을 뿐이겠죠. 다만 멜로디나 플로우에 있어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이끌어가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주제 역시 크게 보면 다 같은 머니 스웩의 일종이지만, 그 표현에 있어선, 어찌 보면 Superbee 전작보다도 더 위트가 느껴졌습니다. 취향 때문에 다가갈 수 없을 뿐 Superbee는 마치 미워할 수 없는 아티스트 같군요. 다만, twlv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Superbee와 그다지 차별화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사실 어느 벌스가 twlv였나... 대충 듣다가는 알지 못한 채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네요. 그나저나 2주 간격으로 이렇게 앨범을 몰아치는게 자신들의 허슬을 자랑하기엔 좋은데, 그 외 실제적으로 좋은 전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Superbee의 앨범 두 개를 얘기할 때 다시 얘기해볼게요.


Simon Dominic - Dark Room

 오랫동안 정그사, 일기석이었던 Simon Dominic의 컴백 앨범입니다. 요근래 가장 많은 충격을 안긴 앨범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가 Simon Dominic에게서 바라던 건 에픽하이의 '노땡큐'나 본인의 예전 싱글 '돈은 거짓말 안 해' 정도의 그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고 이 앨범은 지극히도 개인적인 앨범입니다. Simon Dominic하면 생각나던 타이트한 랩 플로우 대신, 그의 식대로 해석된 멈블랩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만한 스타일이 주를 이룹니다. 앨범의 여덟 곡 중 다섯 곡을 프로듀싱한 낯선 이름 Dihcro는 이 충격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확실히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기대하던 드럼 라인 빠방한 붐뱁 트랙이나, 감각적인 전자음의 화음이 난무하는 트렌디 팝 스타일 트랙도 없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조용한 드럼 위에 몽환적이고 미니멀한 멜로디가 다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두 트랙 '귀가본능'과 '얼라'가 우리의 이런 배신감을 좀 위로해주는 정상(?)적인 트랙인 듯합니다. 이러한 변신에 대해 당연하게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지만 저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입니다. 우선 그가 드러내고 있는 우울감은 각종 장치들로 인해 리스너에게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만큼 솜씨 있게 증폭되고 있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보여주는 플로우와 라임의 센스는 SImon Dominic의 이전 경력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입증한다고 생각합니다. 묘하게 요즘 트렌드인 스타일을 표방한 듯 보이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함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증거입니다. 물론 저 역시 충격을 받고, 어떤 면으론 그 충격을 실망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하는 한켠에서도 '앞으로도 이런 곡만 내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그래도 본인의 커리어에 이정표를 만들어놨으니, 조금 더 마음 가볍게 먹고 자주자주 신곡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
Comments
2018-06-17 23:50:54

ㅇㅎㄹ ㄱㅁㅎ

2018-07-04 01:10:08

ㅣㄹㅐㅏ ㅏㅇㅣㄴㅗ

WR
6
2018-06-17 23:51:43

드디어 밀렸던 앨범 감상을 다 끝마친 거 같습니다. 

애초에 이 시리즈는 최근 개인 시간이 많아진 걸 맞이하여 지난 1-2년간 바빠서 못 찾아듣던 앨범들을 진득하니 듣고 감상평이나 간단히 말해보자 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원래 간단하게 두 세줄만 적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 망할 놈의 성격이 저를 그렇게 두지 않았습니다..

리뷰라고 말하기엔 매우 민망한 수준인 건 아는데도 어느 순간 리뷰어가 된 척하려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뛰어난 리뷰들을 읽어보면서 '설마 내 글을 리뷰로 생각하진 않겠지'라고 마음을 다잡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애시당초 의도하였던 '짧은 감상평'과 '제대로 된 리뷰' 사이 어디엔가 있는 무엇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뭐가 됐든 저는 이 시리즈 하면서 정말 밀렸던 감상을 싹 다 했고 덕분에 그냥 지나갈 뻔했던 아티스트와 앨범을 많이 발견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PS 다음부터는 '안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가 이어집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고, 실제로 제가 앨범을 사놓고 마찬가지 이유로 제대로 못 들었던 앨범 (이 글 다 읽어보신 분들은 중요한 앨범이 꽤 빠져있는 걸 눈치채셨을 거에요. 저스디스 팔로알토나 QM이나...)을 주축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사이사이 나오는 신작들을 같이 감상하면서요.

PS2 미국 앨범도 엄청 많이 나왔던데 그건 제가 한국 힙합만큼 열정이 없어서 저만 듣고 즐기겠습니다 헿

PS3 다소 충격(?)적인 얘기지만 재키와이는 제가 정말 적응을 못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 안 들어갔어요. 

2018-06-18 15:40:40

이번에도 잘 읽구 갑니다... 젓팔이랑 큐엠 리뷰도 기대하고 있을게여 헿

2018-06-18 16:26:24

재키와이불감증을 저만 겪는게 아니였군요. 심지어 저는 처음 들었을 때는 일본의 전설의 래퍼인 MC노리야끼가 떠올랐습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