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보수동쿨러-Yeah, I don't want it(힙합이 아닌 앨범의 리뷰이기 때문에 여기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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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05:04:03
  앨범리뷰

 


최근 며칠 동안 나에겐,한 곡만 주구장창 들었을 만큼 빠져든 노래가 있다.

포크 음악계에서 가장 떠오르는 인물이자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포크 부분 상을 여러 번 수상한 김사월님이 최근 유튜브에 올린 커버곡인데,이 곡의 작법이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일상적인 언어로 쓰인 간결한 가사가 1절과 2절에 동일하게 반복되며 끝나는 곡.

초기 펑크 장르를 보는 듯 한 작법으로,내가 그간 들어온 한국 음악에서는 별로 만나보지 못 했던 작법이었다.

펑크 음악의 시작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 하였으나,음악을 하고싶어하던 이들로 인하여 연주하기 쉬운 몇 가지의 코드와 단순한 노랫말의 반복이 주가 되었던 음악이지 않았는가.

 

물론 이 곡의 연주가 단순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곡.

이 팀의 다른 음악들에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 커버곡의 원작자인 보수동 쿨러라는 밴드를 그렇게 접하게 되었고,비교적 최근에 나온 EP 앨범을 돌려보게 되었다.

 

첫 번째 트랙 You Were Here, But Disappeared은 앞서 내가 말한 특징이 그대로 녹아난 곡이다.

심지어 이 곡은 연주도 단순하다.

사용된 기타 코드도 몇 가지 안 되는 듯 하다.물론 후반부에 사운드가 변화하는 부분이 약간씩은 있고,기타 에드립 솔로도 삽입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 앨범 통틀어서 유일하게 가사가 영어로만 이루어진 트랙인데,가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리 어려운 영어도 아니었다.

이러한 특성이 더욱 펑크 음악을 생각나게 하였지만,이 밴드가 그것들에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주 무기로 삼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뒤에 이어지는 트랙들로 대신 말 하는 듯 했다.

 

두 번째 트랙 0308은 굉장히 실험적인 곡이다.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나레이션,정말로 간단해서 한 번 들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훅.

이것들이 이 곡의 전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그와는 안 어울리게 연주는 현란한 편이다.

이 밴드 스스로도 본인들의 장르를 규정 짓지 않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장르의 틀에 구애 받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을 해 나가겠노라는 포부가 담긴 곡이 아니었나 싶다.

 

세 번째 트랙 도어에서는 이러한 실험정신이 잘 녹아나 있다.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시적인 가사도 그렇지만,중간 중간의 사운드 변화를 통해서 마치 현재와 회상을 오가는 듯 했다.

‘문 앞에 서있는 건

너의 안녕

열어주길 바랐던’

이라는 부분 뒤에 사운드가 변화하고,

‘모래 같던 방

사막 같던 밤들도’

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열어주길 ‘바랐던’이라는 표현 만으로도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사운드 변화 뒤에 이어지는 모래 ‘같던’ 방이라는 표현이 화자가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음을 더욱 짐작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었다.

최근 들었던 곡 중에서 가장 섬세한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네 번째 트랙,다섯 째 트랙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곡이라고 봐야 될 것 같다.

네 번째 트랙은 목화 (Intro)라는 제목처럼 다음 트랙을 위한 인트로이고,허밍만으로 채워져 있다.

다섯 번째 트랙 목화는 사실 이전에 이미 싱글로 공개가 되었던 트랙이었다.

이 곡은 베이스 리프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며,그와 걸맞게 보컬의 멜로디라인도 낮은 음으로 짜여져 있다.

이 곡의 제목인 목화가 의미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라고 생각된다.

목화씨가 흩날리듯 자유롭게 날아가며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모습.

혹은 ‘옷을 입듯 날 바꿔왔었지’라는 가사 속 ‘옷’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트랙에서 화자는 문을 열어주길 바라며,무언가를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다섯 째 트랙에서의 화자는 ‘네 손 안에서 갇힌 밤이 계속돼.벗어나려 해’, ‘넌 내가 만들 수 있어’ 라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지금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함과 동시에,그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측컨데 네 번째,다섯 번째 트랙은 세 번째 트랙에 대한 회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던,변화시키고 싶어하던 화자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던 갈망이 담긴 것이 세 번째 트랙이 아니었을까?

 

여섯 번째 트랙 이 여름이 끝나고의 가사는 마치 이별을 통보하는 듯 했다.

‘사라질 것들에 필요한 것이 돼

너로 만든 내 세상이

날 버려내고 있네’

 

‘사라질 것들에 필요한 것이 돼

나로 만든 네 세상이

날 버려내고 있네’

라는 가사가 1절과 2절 후렴으로 나오는데,비슷한 듯 하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구절이다.

1절의 후반부는 타인에게 구속 받음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2절의 후렴은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지금의 나를 버려내고 있지만,그로 인하여 진정 나 자신은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앞선 트랙들에 이어진 스토리라인에 대한 확실한 끝맺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 앨범은 여섯 곡,특히나 그 중 한 곡은 다음 트랙을 위한 인트로였으니 실질적으로는 다섯 곡의 짧은 앨범이었다.

두 번째 트랙이 다소 뜬금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포부 즈음으로 본다면 제법 멋있는 트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뒤로 이어진 트랙들의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도 훌륭했기에,힙합 이외의 장르 앨범 중에서는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몰입하면서 들은 앨범이었다.

이러한 뮤지션을 접할 수 있게끔 커버 곡을 올려준 김사월님에게도 정말로 감사하고,이런 음악을 만들어낸 보수동쿨러라는 밴드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보수동은 실제로 부산에 있는 동네의 이름이고,이 밴드의 맴버들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실 그 동네와의 인연은 없고,비슷한 이름의 술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아직 서울권에서의 공연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다음에 공연을 하게 된다면 꼭 시간 맞춰서 찾아가보고 싶은 팀이다.

앨범은 5점 만점에 4.5.

  

 

  앨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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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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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2:22:22

요새 부산씬에서 좋은 밴드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보수동쿨러도 그렇고 세이수미도 그렇고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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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2:57:18

세이수미도 부산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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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3:16:03

플디에서 트신 곡이군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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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4:52:23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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