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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2007년 최초의 내한! 'Sound Providers' | 그들만의 Originality
01년 'Soon Come' 의 This is Me 부터 시작된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냥 섣부르게 This is Me 라고 해봤다. 아닌 분들(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에겐 작은 이해를 구한다. - 'Sound Providers'에 대한 힙합 리스너 들의 관심은 불과 4장, 8개 밖에 안되는 Single 을 Big Issue 로 부상하게 만들었고, 04년 그들의 Debut 작'An Evening with The Sound Providers' 은 이름만큼이나 성실한 음악성을 보여주는 주체들의 새로운 둥지로 여겨지는 ABB(Always Bigger And Better) 에서 공개되었다. 미친 듯한(괜한 말이 아니라 진짜 미친) 정규작 발매에 대한 아우성이 결국 이루어진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들에게 열광하는 걸까? Jazz Hip-Hop 이라서?! 아니다. 잠깐 여기서 옆으로 세보자. 도대체가 Jazz Hip-Hop 은 무엇인가?! 솔직한 이야기로 이 표현은 창작주체와는 아무 상관없는 용어선택이라 생각한다. 'Jazz Sample 를 이용한 고급스러운 Urban 한 분위기의 창출' 이런 표현은 그들에 대해서나, 앞으로의 힙합 리스닝에 있어서 단 한개의 도움도 안되는 '잣대 들이대기' 밖에는 안된다. Turntablism 을 기초로한 Sampling이란 것은 이미 오랜 전부터 통용되어 왔던 방법이고, 사용된 Source 는 Jazz 및 Soul/Funk 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살아 숨쉬며 날뛰는 Drum과 이와 어우러지며 전개되는 Bass 의 넘실거림 위로 Piano, Guitar, Vibraphone 등의 매끄러운 터치와 라인의 흐름이 담긴 덩어리를 가늠 못할 경지와 센스로 배열해내고, 이 위로 Hip-Hop 의 대한 애정과 자신들의 음악함에 대하여 썰을 풀어낸 이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용어만으론 힙합은 태생부터 'Jazz 의 한 분파', ‘Cross Over’식의 개념으로만 설명될 Sound 적인 분류 밖에는 안 되는 막연하기 그지없는 단어 조합인데...이게 말이 되나? 소스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하여 Hip-Hop 이 가지는 그 고유한 감상의 모습을 재현해낸 점은 모두 무시되는 이런 용어의 사용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물론, 이들과 'Jazz Hip-Hop'이란 단어는 상당히 친밀하고 다정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못 할 소리도 아닌 듯 하고..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수식하지 못하는 단어,(더 나아가선 힙합 장르 내에서의 분류도 옳게 못할, 힙합이란 음악을 이해하고 경험함에 있어 도움이 하나도 안 될 단어.) 하나를 모두들 입 모아 울부짖는 건 그만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동일한 개념으로 이전의 이루어진 흔적과 성과들은 어느 기점 하나 잡고 Old School 이라 치부해버리고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Jazz Hip-Hop의 거장'이란 명제만을 씌워서 찬사를 보내기엔 억지스럽지 않냐는 이야기다. 다시 돌아와서... 그럼 그들의 대한 이 열광적인 찬사와 기대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이만큼의 이슈가 된 이유는 그들의 경험에 따른 표현이 'Sound Providers' 만의 Originality 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것이 적지 않은 매력과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럼 3장의 앨범을 통하여 증명된 그 Originality 란 무엇일까? An Evening With The Sound Providers. 2003년 그들의 정식 Debut 작의 발매계획이 알려지고, 한달에 한번이나 올라올까 말까 한 소식 글을 확인하려 즐겨찾기에 그들의 홈페이지, ABB 레이블 및 외국 힙합 관련 사이트를 등록하고 쉼없이 들락날락 했었다. 결국, 2004년 2월에 숙원의 Debut 작은 공개되었다. 위대한 Horn 주자이자 Composer, Band Leader 로서 존경 받는 Eric Dolphy 의 'Out to Lunch'를 떠올리게 하는 Cover Art Work 과 Slim 한 Digi-Pak 의 CD 한장. 그들이 호스트를 맡은 공연을 보며 저녁식사 혹은 차나 술한잔 기울여도 될법한 그 특별한 밤. 일곱 개의 머리 중 한명인 Asheru, Musician 들에게 Request 되던 Maspyke 의 축 Tableek , 그들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화자 되는 Procussions, 같은 레이블 소속으로 역시 성실한 음악을 선보였던 Little Brother 등등 한날 마주하기 힘든 뮤지션들의 인상적인 참여와 자신들의 Beat 철학을 수놓은 작품은, 04년을 빛낸 앨범들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고, 소규모 레이블에서 발매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꽤 대단한 판매 성과를 올렸다. 발매 이전 8개의 싱글 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그 감상들. 온갖 질감으로 리듬과 공간을 아우러 내는 Drum 의 미학은 여전하였고, 그 위로 은은히 깔리는 Sample 요소들의 배열, 이것의 따뜻한 흐름은 ‘Sound Providers' 만의 ’맛‘ 이란 게 어떤 것인지 잘 요리 되어 담겨 있었다. Looking Backwards 2001-1998. 이듬해인 05년 일본의 급부상하고 있는 레이블인 Jazzy Sport에서 그들의 04년 이전의 모든 음악활동을 정리한 ‘Looking Backwards 2001-1998’ 가 뒤늦게(?) 발매됐다. 그들에 대한 열광의 근본적인 이유가 됐던 8개의 Single Track 과 Unreleased / Promotional Track 으로 구성된 앨범은 그 발매만으로도 적잖이 화자 되었고, 06년 결국 미국발매와 맞추어 국내 라이센스가 되기도 했다. (거의 기적이라 해도 될 일.) 초창기부터 뚜렷하게 갖추어 왔던 그들의 일관성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 충분하였고, 또한 Debut 앨범 발매 이후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과 의견을 제시하던 이들에게 ‘여전히 미소 지을 수 있는 Sound Providers' 임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Surreal & The Sound Providers - True Indeed. Profile 의 탈퇴 이후 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04년 An Evening With The Sound Providers 발매 이후 이루어졌던 인터뷰 에서도 그들의 ‘파트너 찾기’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은 04년 말, MC The Blest 와의 Collaboration 의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어느 까닭에선지 그 조인트는 단 한번으로 끝이 났고 - 끝이 아닐수도 있다. - , ‘Looking Backwards 2001-1998’ 가 발매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차기 MC가 누구일지?‘에 대한 기대감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시간은 흘러 06년 MC Surreal 과의 작업물 Just Getting Started / Truth Be Told 싱글이 공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True Indeed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Surreal 은 True Indeed 이전에 DJ Balance 와의 합작물을 일본 내에서만 공개하기도 했다.) Jason Skillz 와 Soulo 못지 않은 음악지식과 경험을 가(졌다 가사에서 사려되는.)진 Surreal 의 혀는 Sound Providers 가 주조해 제공해낸 그 독특한 공간 위에서 썩 괜찮은 결합점을 13트랙에 걸쳐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공개된 싱글에서 맛보았던 여전한 완성도 역시 기복 없이 다듬어져 확장되어 있었고, Sound Providers 가 만들어낸 흔적들 중에 무척 희소성(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조금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있게 느껴지는 True Indeed 같은 트랙은 여전히 그들에게 제압당하는 자신을 확인하기에 모자름 없는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3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Originality 는 과연 무엇일까? 몇가지로 정의해보자면, 1. 개념 있고 질감 좋은 Drum. 2. 역시 개념 있고 센스있는 Sample 의 미니멀한 운용. 3. Mixing을 통한 그들 특유의 무드와 공간감. Sound Providers 의 사운드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만만히 여길 수 없는 경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악을 그들은 하고 있다. 그들이 곡에서 사용한 String, Rhodes, Piano, Vibraphone 등의 요소들은 단순히 Melody Line 차용에 국한되어 억지로 잘려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한 각자의 역할과 무게를 지니고 선명하게 귀에 들려오고 있으며, Drum 은 적절한 질감과 톤으로 진행되며 곡의 다른 요소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 낸다. 즉 확실히 이들은 활용한 모든 요소를 통하여 곡을 만들어 낼 줄 안다. ‘Approach' 로서 요소들을 취하고 활용할 줄 알고, 이것이 어떻게 어울려 곡으로서 멋지게 울려 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들의 확고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소리들은 Mixing을 통하여 한층 더 다듬어지고 창작 주체의 의지를 반영하여 일관된 Sound와 무드를 갖추어 내고 있다. 확실히 범람하는 Diggin'(솔직한 이야기로 Searchin') - Cuttin' 의 공허하고 빈약한 프로덕션이 아닌, Mechanism 에 끼워 맞추기가 아니라, Diggin' - Listen - Thinking - Creation의 성과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Sound를 그들은 만들어 낼 줄 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이런 그들의 역량이 어느 한계점에 이르렀단 생각 역시 안겨준다. 앞서 True Indeed 란 트랙에 대해 ‘희소성’이란 개념을 들이댔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들의 Source Choice 와 그 운영이란 것이 3장의 앨범을 통해 너무 특정 소리들로 선호되는 부분이 있고, 그러다 보니 괜찮은 감상을 안겨줌에도 너무 ‘일반적’인 것으로 들려오고 있단 것이다. 쉽게 말해, 이들은 그 수많은 음악들을 듣고 Source를 Choice 함에 있어서, Piano - Guitar - Vibraphone 이 3 악기의 그것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곡의 우수한 구성과 밸런스 역시 이런 치중된 Source Choice 에 따라 어느 정도 ‘감’이라기 보단 ‘공식’으로 여기게도 되고, 어떤 흔적들은 다른 곡에 의해 감상이란 것이 대체되기도 한다. Trumphet 과 Vibraphone 의 어프로치가 기가 막히게 울려 퍼지는 True Indeed 역시 무척 놀랍고, 반갑고, 매력적으로 들려오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04년작에 수록된 Asheru Featuring 의 For Old Time's Sake 에서의 Flute + Vibra 이것과 구조적으로 상당히 비슷하게 들려온다. (일부러 생각되기 보단, “어 이거 좋다. 근데 이거....” 이런식의 생각흐름이 자연스레 든다.) 물론 Hip-Hop Elements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각자의 선호하는 악기와 연주가 그들의 음악에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근데 왜 Horn 연주의 쓰임이 왜 이렇게 적은걸까?), 이들이 자신들의 그룹명에 걸 맞는 음악성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선 그들이 가지는 사운드 철학의 가능성과 시도란 것이 특정 몇몇 요소들로 굳어져선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담아내고자 하는 Groove 와 Vibe 란 것이 이렇게 치중(됐다 여겨지는)된 몇 가지 요소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테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가지는 방식의 가능성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는 스스로들 잘 알 것이니 말이다. 그 가능성의 흔적 역시 그들의 앨범에 담겨있고.. 어찌됐건, 이 혼란스러운 만족감과 아쉬움의 생각은 잠시 미뤄두려 한다. 관심에서 시작된 생각의 줄기와 파편들을 다 불러 모아 정리하기엔 이미 너무 장황해 진 것 같고, 무엇보다, 꽤 오랜 시간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변화의 흐름이 민감한 힙합 씬 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유지해 온 이 듀오와 동료(Surreal)의 실제 모습을 2월 2일 볼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분명히 그들이 들려주는 Groove 의 홍수에 몸을 맡긴 체 고 열광하고 환호할 것이고, 그 감동의 여파는 꽤 오랜 시간 어쩌면 눈을 감는 날까지 되 내이게 되는 것 일 테니 말이다. 이제 모두 Sound Providers 의 음악을 다시금 들어보며 그 기념비적인 순간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그럼 모두 An Evening With SP부터 시작!
  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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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The World's Most Dangerous Group, N.W.A
NWA (Niggers With Attitude)야 말로 힙합 역사상 잘 알려진 전설적인 Rap 그룹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고 거침 없는 갱스터 랩 그룹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부터 진정한 Gangster Rap의 창시자인 이들의 당시 활동 모습들을 살짝 살펴 보면서 이들이 오늘날 힙합에 끼친 영향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80 년도 후반에 들어서면서, Public Enemy는 하드코어 랩 역시 지성적이면서 혁명적이고도 사회적인 부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 그룹으로서 하드코어의 랩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 그룹이었다. 그 반면에 NWA는 폭력과 범죄의 쾌락 그리고 굵은 대마초 한 개피와 거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Public Enemy의 음속적인 돌파를 보란 듯이 무시 하고 있었다. 활동 초기 이들의 가차 없는 공격은 심각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들의 핵심을 찌르는 사회적 비판은 FBI의 경고를 받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었다. 과거 마약 거래를 하던 Eazy-E (본명 B. Eric Wright)는 자신이 모은 적은 자본으로 Ruthless Record를 설립 하여 많은 랩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내면서 자신들의 랩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 했다. 하지만 당시 World Class Wreckin’ Cru의 멤버 였던 Dr. Dre 그리고 또다른 루키 Ice Cube (본명: B. O’Shea Jackson)이 Ruthless를 위해 곡을 생산하기 전까진 큰 빛을 보진 못했다. Eazy-E는 이 두 사람이 만든 boyz n the hood란 노래로 HBO와 계약을 하려 했으나 HBO 측에서 이를 거부하자 Eazy-E는 NWA란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약자의 의미는 Niggaz with Attitues 로서 성깔있는 흑인들? 정도로 뜻을 헤아려 볼수 있겠다. Dr. Dre 와 Ice Cube 그리고 Dre와 함께 World Class Wreckin’ Cru의 멤버 였던 Dj Yella (본명: B Antoine Carraby), Rapsur Record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Arabian prince 그리고 D.O.C로 구성 되어 있었다. 1989년 처음 발매 됬었던 그들의 첫 앨범 NWA and the Posse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에 Mc Ren이 합류 하면서 이들만의 갱스터 랩의 사운드는 더욱 발전하며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 1988년도 후반에 발매 됬었던 Straight Outta Compton 이라는 전설적인 앨범은 라디오나 그 어떤 대중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언더그라운드 hit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NWA는 심한 가사로 곧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주목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Fuck Tha Police”의 가사는 FBI가 Ruthless 와 Priority 레코드사에 경고문을 보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많은 그룹들에게서 생기는 흔한 멤버들간의 불화, N.W.A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금전적인 문제로 생긴 다툼 중 1989년 Ice Cube이 탈퇴를 선언 하자 N.W.A 측 기획사에선 Ice Cube 에게 그 어떤 보상이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자 Ice Cube은 1991년 Death Certificate이란 앨범을 발매 하였다. 이 앨범이 발매 될 즈음 이미 N.W.A 는 초기에 그들이 함께 했던 이유와 목적들은 찾아 볼수 없게 되었다. Ice Cube가 떠난 후 Eazy-E의 풍자적인 가사들과 Dr. Dre의 포착하기 어려우면서도 복잡하지만 귀를 사로 잡기엔 충분한 사운드의 생산은 흔들리던 N.W.A를 지배하고 있었다. 1991년 그들은 Efil4zggin 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그렇다 Niggaz 4 life를 거꾸로 스펠링 한 이 앨범은 펑키스러운 음악적 배경에 굉장히 난폭스러움과 동시에 여성들을 무시하는 가사들로 조화를 이룬 앨범 이였다. 이런 가사들은 당연한 듯이 많은 기자들과 여론 그리고 많은 단체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런 현상들 덕분에 이들의 명성은 더욱더 치솟는 듯 했다. 이렇게 그룹의 인기가 최고조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Dre는 그룹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92년 Dre는 Suge Knight과 Death Row 레코드사를 위해 떠나고 만다. 당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Suge Knight은 Dre가 NWA를 떠날수 있도록 매니져 Jerry Heller를 협박 했다고도 한다. Dre가 떠난 후 Dre와 Eazy의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솔로 앨범을 통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 했다. Mc Ren과 Yella 이들도 역시 솔로 앨범을 발매 했으나 관심 받지 못하고 Eazy-E는 1995년 AIDS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녹음 작업을 했다고 한다. Eazy가 죽기전 Dre와 Ice Cube이 Eazy의 병원을 찾아 왔고 그 모습을 본 많은 Fan들은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도 힙합은 Gangsta rap 으로 장식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유명세가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NWA의 비도덕 적이고, 쾌락주의 적인 메시지들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Public Enemy (상업적 인기)를 능가 했고 기존에 있던 힙합의 역사 그리고 모든 룰 (rule)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200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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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남부영혼을 대표하는 Outkast
근성 있는 남부영혼을 대표하는 Outkast. 자연스런 흐름의 랩과 적절하게 정리된 G 펑크의 소음을 생산해내는 A-타운 출신 크루로서 힙합에 있어선 절대 중요한 인물들이며 Dirty South의 발판을 마련해준 인물들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싶다. 90년도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Goodie Mob,과 Outkast는 반항심이나 적개심 등에 의지하기 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요소들과 멜로디, 좀 더 탄탄한 배열과 얽히고 설킨 복잡한 rhyme의 구성으로 남부지역 힙합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Outkast의 싱글 “Player’s Ball”이 1994년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면서 그들의 이어지는 상업적인 성공으로 그들은 매번 한층 향상된 사운드를 생산해 낼수 있었고 수많은 히트싱글들을 선보이며 오늘날의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Andre Benjamin (Dre)과 Antwan Patton (Big Boi) 이둘은 Outkast의 멤버 로서 Atlanta의 한 고등학교에 함께 다니며 수많은 배틀들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실력을 증명하며 명성을 키워 나갔다. Dre는 고등학교 10학년때 자퇴를 하였지만 Big Boi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 하였다. 이들은 2 Shades Deep 이란 그룹으로 활동하며 자신들의 꿈을 추구했다. 그들은 결국 L.A Reid와 Babyface로 잘 알려진 Kenneth Edmonds를 통해 Laface 레이블과 계약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곤 곧 이를 통해 ‘Player’s Ball’이란 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매 하였다 그리고 단숨에 차트 일위까지 치솟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주동안이나 이 싱글은 1위자리에 머물렀고 50만장을 기록해 골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싱글이 수록 되었던 앨범 "Southernplaylisticaldillacmuzik"은 순위 최고 3위까지 올랐다가 20위 안에 머무는 성적을 거두며 100만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달성하면 수여하는 프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1995년 Dre와 Big Boi는 Source 매거진에서 Best New Rap Group of the Year, 94년 최고의 신인 랩 그룹으로서 상을 받기도 했다. 1996년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그들은 ATLiens을 선보였다. 팝 그룹에서 12위 랩 그룹에서 1위를 기록한 골드 싱글 “Elevators (me&you)” 덕에 앨범은 단숨에 플래티넘을 기록할수 있었다. 성공적인 앨범이였지만 반면에 또 많은 악성루머를 만들어낸 앨범이기도 했다. 당시 이들이 시도 햇던 우주공상적인 주제들과 높은 의식으로 형성 되었던 컨텐츠들은 많은 리스너들로 하여금 이들이 미쳐가고 있다 혹은 마약을 너무 많이 했다 라는 소문들을 자아 내며 이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이에 맞서 Dre가 말하길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건 다 똑같지만 동시에 또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군가가 해주길 원하고 있고 그걸 해주기 위해서는 그런 비웃음 따위는 충분히 받아 낼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Source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Dre는 자신의 이름을 Andre3000으로 바꾸면서 Southern의 핵심인 Organized Noize와 Goodie Mob과 함께 Dungeon Family란 모임을 형성하게 된다. 1998년에 발매된 더블 플래티넘 앨범 “Aquemini”는 1집 때의 사운드와 2집 때의 시적인 구서으로 형성된 앨범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였다. 수록곡 “Rosa Parks”는 그래미 수상식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흑인인권운동으로 유명한 진짜 Rosa Parks, 그녀에게 법적으로 소송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계속해서 발매한 앨범은 명반중의 명반 “Stankonia”를 발매 하게 된다. (2000) B.O.B.와 Ms. Jackson을 선두로 내세워 흐름을 탄 이 앨범은 몇 달도 되지 않아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 하게 된다. 이 후로도 계속해서 이들의 전설은 멈출 줄을 모르고 이번에 발매된 이들의 앨범 “idlewild”에서는 Andre3000의 재즈나 블루스등의 복고적인 요소들과 반면에 Big Boi의 유연한 리듬과 거리의 지식이 담김 랩들로 구성 되어있다. 여전히 이들은 통일된 모습보다는 각자의 개성이 강한 스타일을 추구 하는데 이것이 바로 Outkast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많은 엠씨들이 골드 플래티넘을 위해 철저히 준비됀 시나리오에 의존할때 이들은 항상 좀더 새롭고 창의적인면을 보여준 엠씨들로서 1994년도서 부터 출시된 모든 앨범들은 항상 기존적인 음악에 있어서의 어떻한 벽? 이란것을 뛰어넘어 왔다. 재즈, 블루스, 솔, 락 그리고 good oldies 많은 장르들을 넘나드든 그들의 독특한 남부스타일은 나의 정신세계를 fucked up 시키기에 충분했다.
  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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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뉴욕의 전설적인 랩퍼로의 행보, JAY-Z
일찍부터 Jay-Z는 뉴욕의 전설적인 랩퍼가 되기 위해 자신만의 색깔과 수단을 동원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 하고 있었다. 단지 랩퍼 뿐만이 아닌 은퇴 후 음반레코드사의 경영자로서의 활동 역시 모두 역사를 만들어낸 성공들이며 한시대의 감탄속에 많은 함성들이 이를 증명 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Jay-Z는 힙합의 인생한방역전의 꿈을 잘 보여준 케이스로서 가난한 삶에서부터 영향력 있는 재력가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뒤에는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헌신정신이 있었다. 1996년, 브루클린 출신 랩퍼 Jay-Z가 발매한 데뷰 앨범 Reasonable Doubt이 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이어지는 끝없는 히트곡의 행진으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모든 대중매체에서 쉽게 접할수 있을정도로 유명해 졌음은 물론이고 곧 많은 팬들이 형성 되었다. 다른 라이벌들이 그의 챔피언 밸트를 탐낼 때 그는 두려움 없이 도전들을 받아 들였고 매번 그의 왕위를 증명했다. 잘알려진 케이스로는 jay-z vs nas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이렇게 저지 할수 없는 실력 때문에 제이지와 그의 측근들은 힙합문화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고 90년대 후반과 2000년도에 걸쳐 많은 유행들과 트랜드 등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들과만 작업을 했다. (Clark Kent, Dj Premier, Teddy Riley, Trackmasters, Erick Sermon, Timberland, Swizz Beatz, Neptunes, Kanye West, Just Blaze) 이와 마찬가지로 같이 참여한 랲퍼들 역시 당시 최고들이였다. 동부지역 래퍼들 그중 예로 들수 있는 the Notorious B.I.G 와 DMX 그리고 남부지역 최고의 랩퍼들 Ludacris와 Missy Elliot. 서부지역의 Snoop Dogg과 Too Short. 현재 그는 rap game에서 은퇴선언을 한 뒤 Def Jam 레코드사를 인수 한뒤 경영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브루클린의 Marcy Projects에서 태어난 Jay-Z는 십대가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의 영향을 받아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가장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그의 과거는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독립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Gloria Carter)의 취미였던 레코드판 수집은 Jay-Z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Streets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당시 미숙했던 실력으로 자신을 Jazzy라 불르며 rapper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곧 Jazzy란 이름을 짧게 Jay-z라 부르며 랩게임에 참여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의 가사에서 자주 살펴 볼수 있듯이 그는 street hustler 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hustler: 사기꾼, 도박사, 밀매인으로란 뜻이 있지만 기업이나 사업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뜻을 풀이 할수 있다.) 음악의 꿈을 위해 hustler로서도 활동하던 당시 그의 생활 패턴은 가사를 쓰고 또 자신의 가사를 분석하여 또 다른 결과물을 얻어 내는 여유 마저 사치스러울 정도로 무척이나 바빳다고 한다. 허나 이런 환경은 그에겐 남다른 능력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가사를 적는 것을 생략 하고 단지 생각만으로 rhyme을 구성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기억속에 완벽히 저장해 두는 천재적인 기술이라고 한다. 한동안 그는 Jaz-O, aka. Big Jaz와 활동하였다. Jaz-O는 당시 레이블 소속이었으나 많은 판매를 하지 못한 랩퍼 였다. 허나 Jay-z는 Jaz로부터 랩게임에 발을 들여 놓는 방법들과 게임안에서 필요한 수단들을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밖에 그는 지금은 잊혀진 그룹 중 하나인 Original Flavor와 함께 짧은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이후에 Jay-z는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소속사와 계약을 한 Jaz와는 달리 자신만의 레이블을 시작하기로 결정 했다. Damon Dash와 Kareem “Biggs” Burke이란 친구들과 함께 그는 Roc-a-Fella 레코드사를 설립하였다. 초기 당시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들의 자가용 트렁크에서 내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곧 Priority 레코드사와 유통목적으로 손을 잡음으로서 모든 준비는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첫 데뷰앨범 Reasonable Doubt. 일반적인 대중들의 앨범 평가와는 달리 이 앨범의 소문은 매니아층과 많은 힙합 리스너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힙합의 대가 DJ Premier 그리고 the Notorious B.I.G. 와의 작업 “Brooklyn’s Finest”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갱스터 모티프를 통해 많은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 잡았고 Jay-z표 사운드는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데뷰앨범 Reasonable Doubt의 수록곡 중 Foxy Brown이 참여한 골드싱글 “Ain’t No Nigga”외 “Can’t Knock the Hustle”, “Dead Presidents ll” 그리고 “Feeling it” 이란 트랙 모두 순위를 기록하였고 이 모든 것이 1997년 발매될 In My Lifetime, Vol. 1의 사전 경고였다고 볼 수 있다. 2집 In My Lifetime 앨범은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하면서 Resonable doubt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Puff Daddy 와 Tedy Riley 그리고 DJ Premier, Babyface와 Foxy Brown등 힙합 거물들의 참여. 이들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른, In My Lifetime 이란 앨범은 많은 리스너들로 하여금 좀 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는 갱스터랩에서 pop-rap으로 모티프를 전환 하며 기존의 팬들 이외 더 넓은 대중들을 사로 잡게 해주었다. “Sunshine”과 “The City is Mine”이란 두 싱글은 Pop-Rap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는 곡으로서 깔끔한 Hook과 접근하기 어려운 내관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었던 Reasonable Doubt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 곡 들이였다. 하지만 “Street Is Watching”과 “Rap Game/Crack Game”이란 곡들은 여전히 극적인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서 Pop-Rap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곡들 이였다. 싱글로선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는 앨범일수도 있으나 앨범 자체는 높은 평을 받고 있는 명반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In My Life Time 이 발매된 1년 후 1998년도에 발매된 Vol. 2: Hard Knock Life 앨범은 무려 5주 동안이나 빌보드 차트 1위의 자리를 차지 하며 Jay-Z의 실력과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 역시 모디프가 Gangster Rap보단 Pop-Rap으로서의 비중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Cash, Money, Hoes”란 트랙처럼 변함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Can I Get A…..” 나 “Hard Knock Life(Ghetto Anthem)같은 곡들은 독특하고 인상 깊은 멜로디와 사운드로 많은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In My Life Time이란 앨범에서 그랬듯이 Jay-z는 첫 앨범에서 보여줬던 자신만의 그 어떠한 개인적인 부분들과 자기 위주로 소재들을 풀어나가는 대신에 샘플들을 위주로 한 대중적인 사운드로 많은 리스너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 앨범에선 6개나 되는 싱글 들이 나왔고 위에서 소개된 3곡을 포함해서 “Jigga What?” “It’s Alright” 그리고 “Money Ain’t a Thang”이란 곡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일년후 Jay-Z는 Vol 3. : Life and Times of S. Carter란 앨범으로 돌아왔다. 이 앨범의 판매량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많은 싱글들을 만들어낸 앨범이다. 이 앨범에 그와 함께 참여한 아티스트들 역시 거물들이였다. 하지만 2000년도에 발매한 Dynasty Roc La Familia에선 스케일을 약간 줄인듯 했다. 이 앨범은 Roc-a-Fella 식구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다. Beanie Sigel, Memphis Bleek 그리고 Amil. 그리고 Jay-Z는 이앨범을 통해 몇몇 새로운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했는데,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The Neptunes, Kanye West, and Just Blaze였다. The Neptunes가 프로듀스를 맡은 “I Just Wanna Love U (Give It to me)” 라는 곡은 상당히 놀라운 성공을 거둔 싱글이다. Jay-Z의 다음 앨범 The Blueprint는 2001년 9월에 발매 되었고 이는 뉴욕의 랩씬에서 그의 자리를 굳히는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 이 바로전에 그는 Hot 97’s Summer Jam에서 (Hot 97s Summer Jam:뉴욕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주최하는 파티)“takeover”란 곡을 선보였다. 이 곡은 Mobb Deep의 Prodigy를 디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Jay-Z는 자신의 언어적 공격력을 과시하며 (verse의 한부분: you’s a ballerina/I seen ya” 너는 발레리나/ 나는 봤어) 라고 하며 과거 Prodigy가 댄스복을 입고 있는 대형 사진을 많은 관중들 앞에서 선보였다. The blueprint에 또다른 버전의 “takeover”란 곡이 수록 되었는데 이버젼에선 프로디지와 함께 나스 마저 디스를 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Nas는 “Ether”란 곡으로 대응 했고 이들의 디스는 당분간 계속 된다. “Ether”에 맞서 “Super Ugly”란 곡으로 1절에선 Nas를 디스 했고 이절에선 “Bad Intentions”이라 하며 Dr. Dre까지 디스 했다. 이런식으로 주고 받기를 반복하는 배틀은 이어졌고 이 영향으로 Jay-Z와 Nas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또 하나 빼놓을수 없는 이 앨범의 명곡 “Izzo (H.O.V.A)” 역시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후에도 Jay-Z의 큰 성공은 계속 되었다. The Roots와 작업한 Unplugged앨범 그리고 R.Kelly와 작업한 Best of Both Worlds.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녹음 작업을 하였고 일년정도 되는 기간동안 40개 가까이 되는 새로운 트랙을 생산 해냈다. 이중 25개의 트랙이 더블 앨범으로 제작된 The Blueprint2: The Gift & the Curse (2002)에 수록된었는데, 가격 문제는 둘재 치고 이 앨범은 기존에 발매 되었던 앨범들과는 확실히 달랐다고 할수 있다. 처음 CD엔 Jay-Z자신의 개인적이고, 고찰적인 부분에 중심을 두었지만 그 반대로 두번째 CD엔 용서 할수 없을 정도의 어지러운 짜임새에 더블 디스크에 화려한 쇼케이스는 장관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앨범은 많은 싱글들을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Bonnie & Clyde” 이란 트랙엔 자신의 애인인 Beyonce Knowles와 함께 했으며 Beyonce의 summer2003 classic “Crazy in Love”엔 Jay-z 가 참여 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디오 힛트 the Neptunes의 “Fronting”에도 역시 참여 했다. 그리고 그의 은퇴선언과 함께 발매한 the Black Album은 발매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일위자리를 탈환 하였다. “Dirt off Your Shoulder”와 “99 Problems” 이란 명곡들이 수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Fade to Black DVD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고별 투어를 Madison Square Garden에서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곧 R. Kelly와 함께 unfinished business를 발매하고 ll-fated arena 투어에 올랐지만 억만대의 소송에 휘말리고 만다. 하지만, Jay-Z는 Def Jam 레코드사의 경영자로서의 또다른 새로운 도전을 맞이 하고 있었다. 당시 Def Jam 레코드사는 과도기 시점을 해쳐 나갈수 있는 경영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Jay-Z는 이 새로운 도전을 챔피언과 같이 받아들였다. Jay-Z는 랩퍼들 중 가운데 몇 되지 않는 경영자로서의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다. 기존에 많은 랩퍼들이 자신들만의 레이블 소속사들을 설립하고 운영해 왔지만 Jay-Z가 달성한 것과 비교를 해보면 그 수준이 달랐다. 그리고 경영자로서의 그의 태도 또한 확실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결코 경영자로서의 업무등을 우습게 보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새로운 신인들을 발굴해 내었다. Young Jeezy, Teairra Mari, Rihanna ,Bobby Valentino, Memphis Bleek 그리고 Young Gunz 이중 몇을 제외한 나머지 신인들도 역시 좋은 반응들을 얻고 있고, 지난 6월 25일 그는 그의 데뷰 앨범이자 첫 앨범인 "Reasonable Doubt" 발매 1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끝없는 성공의 연속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끝없는 도전이야말로 오늘날 그가 성공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명성, 랩퍼로서의 성공, 프로듀서로서의 성공, 이제는 한 레코드사의 경영에다가 더욱더 중요한건 Beyonce까지 말이다. 비록 그는 은퇴선언을 하였지만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은 분명 미래에 우리를 또다시 놀래킬만한 일들을 이미 꾸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속에 Jay-z에 대한 글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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