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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리뷰]
Pharrell Williams - In My Mind
프로듀서, 싱어, 랩퍼, 의류사업... 사실 한 사람이 하기에도 벅찬 일을 패럴 윌리엄스는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그리고 성공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음악계 트렌드의 “중심”인 패럴 윌리엄스의 솔로 앨범 발매 소식은 리스너들의 최대 관심사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N.E.R.D , Neptunes에서 보여준 좋은 성적표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작부터 굉장히 오만한 발언으로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느낄 수 있는 사운드의 혁신성 정도는 패럴 윌리엄스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느냐? 필자가 외국에서 봤던 패럴 윌리엄스 신보관련 리뷰에서 “기대한 만큼의 음반이었지만 혁신적이지 않았다.” 라는 평가를 봤기 때문이다. 그 리뷰를 쓴 필자가 어느 정도의 “혁신” 을 기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패럴의 음악에 굳이 더 혁신을 요구할 필요가 있을까? 추측컨대 그것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음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시간이 더 흘러 새롭게 리스너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음악이 나오겠지만, 현재 리스너들의 음악적 이해수준을 고려할 때 패럴 윌리엄스의 음악은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교감의 접점을 잘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지난 앨범과 비교해서 혁신적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각한 얘기는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앨범 이야기를 해보자. 전체적인 사운드는 기존 패럴이 속했던 팀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다만 N.E.R.D 에서의 Rock 적인 감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며, 좀 더 간단명료해졌고 바운스를 중시하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이것은 앨범 전체적으로 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바운스를 중시한 비트를 기본으로 삼아 각 트랙마다 속도의 완급 조절을 통해 수준 높은 짜임새를 보여준다.)
속도감 넘치는 드럼라인과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는 How does it feel? 을 시작으로 패럴 특유의 신스와 이팩트들을 맛보기에 적당한 Best Friend , 로맨틱한 사운드와 패럴, 스눕 독이 함께하는 That Girl 은 패럴 윌리엄스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8번 트랙 Angel 은 트렌디한 사운드와 매력 넘치는 보컬을 기대하는 리스너들에게는 그야말로 "This shit is killing me!" 좀 더 페이스를 올려 Young Girl 을 감상한 후 나오는 Really Like You 를 맞이하면 온 몸에 흐르는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기계 사운드지만 따뜻한 감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트랙이다.
이후 13번 트랙까지 거친 호흡을 다진 후 나오는 첫 싱글인 Number One 은 사운드와 곡구성의 창의력 자체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거기다 더해 재치 넘치는 가사와 보컬을 보여주는 패럴과 칸예 웨스트가 트랙을 완벽히 지배해 이 트랙은 우주를 지배할 준비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쉬운 점들은 있게 마련, 12번 트랙 Baby 는 산만한 곡 구성과 이상하리만치 어울리지 않는 패럴과 넬리의 궁합이 안타깝기까지 하며 11번 트랙 Stay With Me 는 곡에 기승전결이 없는 굉장히 어정쩡한 곡이다 게다가 사용된 사운드들도 너무 익숙한 터라 지루하기까지 하다. 15번 트랙, 즉 마지막 트랙인 Show You How to Hustle 은 오르간과 이국적인 타악기, 이펙트를 사용한 사운드는 썩 괜찮지만 전체적인 앨범 구성에서 어긋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장” 하다. 종합하자면, 문제시 했던 곡들도 모두 곡 구성상의 문제이지 곡 자체의 완성도는 별로 나무랄 데가 없다.
N.E.R.D, Neptunes 그리고 여러 뮤지션들의 작업물들에서 보여줬던 혁신성과 창의력을 적절한 점으로 끌어냈으며, 가장 중요한 “리스너들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를 제대로 보여준 패럴 윌리엄스의 솔로 앨범인 "In My Mind" 는 2006년 하반기를 가볍게 대표할 수 있는 앨범으로 손색이 없다. 팀에서 솔로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 ”공식적“인 움직임. 그 첫 움직임은 굉장히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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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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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리뷰]
Avantgarde Park - Brown Boat #1
이 앨범은 Instrumental 앨범이다. 물론, 국내에선 Instrumental 앨범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DJ Soulscape이나 곤충소년윤키등이 꾸준히 작업물을 내놓았었고, 2004년에는 GK Huni'G의 EP 앨범과 DJ Son의 'Abstruse Theory'가 발매가 되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The Quiett의 'Q Train'이 리스너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했던 인물들에 대해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트메이킹(Beat-Making)을 직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DJ가 되었든 Producer가 되었든지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비트를 직접 만들었다. 물론, 작업 과정 중에 샘플링(Sampling)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보조 역할을 하는 엑스트라였을 뿐 주인공은 아니었다.
(가끔 샘플링 사용에 대한 애매한 기준으로 표절 의혹이 생기거나 '창작이냐'와 '모방이냐'를 두고서 양측이 서로 설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도 샘플링이냐 아니냐에 대한 확실한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만큼은 그 엑스트라들이 바로 메인이자 주인공이다. 앨범 속에 있는 모든 사운드는 이미 존재하는 소스들이고, 아방가르드 박이라는 인물이 그 소스들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넣고 섞고를 반복해서 만들어 낸 사운드이다. 이른바 (재창조된) 새로운 소스의 맛을 만들어냈다.
(조금 과장일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앨범은 1996년에 턴테이블계를 발칵 뒤집어버렸던 DJ Shadow의 바로 그 문제작 'Endtroducing'과 아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과거 DJ들이 썼던 방식들과는 다르게 여러 음악 소스들을 사용하여 전혀 다른 느낌의, 스타일의 음악을 절묘하게 만들어냈던 DJ Shadow처럼 아방가드르 박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사운드를 창조해 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악적인 스타일에서 만큼은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DJ Shadow는 많은 이들이 알고있듯이 조금은 난해하고 모호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반면 아방가드르 박은 크게는 Blus, Jazz와 같이 부드럽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앨범 제목이나 자켓을 보고 느껴지는 것처럼 리스너들로 하여금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자극하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자칫하면 지루하게 들릴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앨범도 이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잠을 청할 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앨범은 이상하게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 한 채 조용히 사라져 간 앨범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방가르드 박이라는 인물이 가진 음악적 재능과 센스가 너무 아까웠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선 이런 방식 혹은 마인드로 만들어진 앨범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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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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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리뷰]
Mobb Deep - Blood Money
이른바 90년대 “골든 에이지” 의 힙합퍼들은 21세기 와선 매우 고달프다. 왜냐하면 워낙 특징이 강했던 당시 사운드의 깊은 향수를 잊지 못하는 리스너들 때문에, 조금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그 즉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려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맙 딥 같은 경우, Gangstarr 등과 같이 흔히 “힙합” 하면 떠올려지는 어둡고 로우하며 터프한 음악을 선보이는 대표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골수팬들은 유난히 고집스럽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이 맙 딥의 최근 앨범들은 융통성을 전혀 발휘하지 않는 “고집불통” 팬들로 인하여 타당치 않은 평가들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90년대 맙 딥의 음악에 감명을 받은 팬들은 당시의 사운드가 그립고, 또한 크게 실망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음악을 접하는건 그대들만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에 맙 딥을 처음 접하는 팬들에게는, 맙 딥의 요즘 앨범이 그들이 처음 접한 힙합 음반이 될 수 있고, 더 없는 클래식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추억이 음악을 평가하는 정당성 있는 잣대는 아니란 것이다.
2006년 발매된 Mobb Deep의 "Blood Money" 는, 앞서 말한 쓸데없는 고집불통을 버린다면 상당히 괜찮은 앨범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앨범에서 맙 딥은 예전 앨범에서 보여줬던 단순한 패턴의 그루브함을 중시한 사운드의 기본 노선은 유지한 채, G-UNIT의 조력을 받아 트렌디함을 적절히 가미하여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박력 있고 웅장한 사운드가 시종일관 전개되는 Put' em in their place (Produced by Ky Miller) , 어둡고 몽환적인 사운드의 올드스쿨 그루브가 돋보이는 Infamous (Produced by Alchemist) , 그리고 Lloyd Banks가 featuring 한 Stole something 같은 곡들은 과거의 사운드를 추억하는 맙 딥 팬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며, Pearly Gates 나 In love with the Moula , It's Alright 같은 곡들은 트렌디한 샘플링 기법으로 달콤한 사운드를 풀어냄으로서 헤비 리스너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구미를 충분히 당길만하다. Give it to me 나 Outta Control (Remix) 같은 곡들은 본 앨범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G-UNIT" 스럽기는 하지만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특별한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
Havoc은 물론이고 G-Unit과 더불어 Alchemist , Sha Money XL 그리고 Ky Miller 등의 든든한 조력자와 함께 내놓은 결과물인 "Blood Money". 전작인 Amerikaz Nightmare에서 보여줬던 악몽스러웠던 난잡함을 깨끗이 씻어버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앨범이다. 흔히 말하는 “클래식” 앨범의 특징인 명곡들은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앨범에서 우리는, G-Unit에서 새 둥지를 틀고 서서히 과도기적인 오류들에서 벗어나려는 Mobb Deep의 진일보한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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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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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남부영혼을 대표하는 Outk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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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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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
뉴욕의 전설적인 랩퍼로의 행보, JAY-Z
일찍부터 Jay-Z는 뉴욕의 전설적인 랩퍼가 되기 위해 자신만의 색깔과 수단을 동원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 하고 있었다. 단지 랩퍼 뿐만이 아닌 은퇴 후 음반레코드사의 경영자로서의 활동 역시 모두 역사를 만들어낸 성공들이며 한시대의 감탄속에 많은 함성들이 이를 증명 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Jay-Z는 힙합의 인생한방역전의 꿈을 잘 보여준 케이스로서 가난한 삶에서부터 영향력 있는 재력가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뒤에는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헌신정신이 있었다. 1996년, 브루클린 출신 랩퍼 Jay-Z가 발매한 데뷰 앨범 Reasonable Doubt이 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이어지는 끝없는 히트곡의 행진으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모든 대중매체에서 쉽게 접할수 있을정도로 유명해 졌음은 물론이고 곧 많은 팬들이 형성 되었다. 다른 라이벌들이 그의 챔피언 밸트를 탐낼 때 그는 두려움 없이 도전들을 받아 들였고 매번 그의 왕위를 증명했다. 잘알려진 케이스로는 jay-z vs nas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이렇게 저지 할수 없는 실력 때문에 제이지와 그의 측근들은 힙합문화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고 90년대 후반과 2000년도에 걸쳐 많은 유행들과 트랜드 등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들과만 작업을 했다. (Clark Kent, Dj Premier, Teddy Riley, Trackmasters, Erick Sermon, Timberland, Swizz Beatz, Neptunes, Kanye West, Just Blaze) 이와 마찬가지로 같이 참여한 랲퍼들 역시 당시 최고들이였다. 동부지역 래퍼들 그중 예로 들수 있는 the Notorious B.I.G 와 DMX 그리고 남부지역 최고의 랩퍼들 Ludacris와 Missy Elliot. 서부지역의 Snoop Dogg과 Too Short. 현재 그는 rap game에서 은퇴선언을 한 뒤 Def Jam 레코드사를 인수 한뒤 경영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브루클린의 Marcy Projects에서 태어난 Jay-Z는 십대가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의 영향을 받아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가장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그의 과거는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독립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Gloria Carter)의 취미였던 레코드판 수집은 Jay-Z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Streets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당시 미숙했던 실력으로 자신을 Jazzy라 불르며 rapper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곧 Jazzy란 이름을 짧게 Jay-z라 부르며 랩게임에 참여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의 가사에서 자주 살펴 볼수 있듯이 그는 street hustler 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hustler: 사기꾼, 도박사, 밀매인으로란 뜻이 있지만 기업이나 사업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뜻을 풀이 할수 있다.)
음악의 꿈을 위해 hustler로서도 활동하던 당시 그의 생활 패턴은 가사를 쓰고 또 자신의 가사를 분석하여 또 다른 결과물을 얻어 내는 여유 마저 사치스러울 정도로 무척이나 바빳다고 한다. 허나 이런 환경은 그에겐 남다른 능력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가사를 적는 것을 생략 하고 단지 생각만으로 rhyme을 구성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기억속에 완벽히 저장해 두는 천재적인 기술이라고 한다. 한동안 그는 Jaz-O, aka. Big Jaz와 활동하였다. Jaz-O는 당시 레이블 소속이었으나 많은 판매를 하지 못한 랩퍼 였다. 허나 Jay-z는 Jaz로부터 랩게임에 발을 들여 놓는 방법들과 게임안에서 필요한 수단들을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밖에 그는 지금은 잊혀진 그룹 중 하나인 Original Flavor와 함께 짧은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이후에 Jay-z는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소속사와 계약을 한 Jaz와는 달리 자신만의 레이블을 시작하기로 결정 했다. Damon Dash와 Kareem “Biggs” Burke이란 친구들과 함께 그는 Roc-a-Fella 레코드사를 설립하였다. 초기 당시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들의 자가용 트렁크에서 내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곧 Priority 레코드사와 유통목적으로 손을 잡음으로서 모든 준비는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첫 데뷰앨범 Reasonable Doubt. 일반적인 대중들의 앨범 평가와는 달리 이 앨범의 소문은 매니아층과 많은 힙합 리스너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힙합의 대가 DJ Premier 그리고 the Notorious B.I.G. 와의 작업 “Brooklyn’s Finest”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갱스터 모티프를 통해 많은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 잡았고 Jay-z표 사운드는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데뷰앨범 Reasonable Doubt의 수록곡 중 Foxy Brown이 참여한 골드싱글 “Ain’t No Nigga”외 “Can’t Knock the Hustle”, “Dead Presidents ll” 그리고 “Feeling it” 이란 트랙 모두 순위를 기록하였고 이 모든 것이 1997년 발매될 In My Lifetime, Vol. 1의 사전 경고였다고 볼 수 있다.
2집 In My Lifetime 앨범은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하면서 Resonable doubt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Puff Daddy 와 Tedy Riley 그리고 DJ Premier, Babyface와 Foxy Brown등 힙합 거물들의 참여. 이들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른, In My Lifetime 이란 앨범은 많은 리스너들로 하여금 좀 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는 갱스터랩에서 pop-rap으로 모티프를 전환 하며 기존의 팬들 이외 더 넓은 대중들을 사로 잡게 해주었다. “Sunshine”과 “The City is Mine”이란 두 싱글은 Pop-Rap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는 곡으로서 깔끔한 Hook과 접근하기 어려운 내관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었던 Reasonable Doubt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 곡 들이였다. 하지만 “Street Is Watching”과 “Rap Game/Crack Game”이란 곡들은 여전히 극적인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서 Pop-Rap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곡들 이였다. 싱글로선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는 앨범일수도 있으나 앨범 자체는 높은 평을 받고 있는 명반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In My Life Time 이 발매된 1년 후 1998년도에 발매된 Vol. 2: Hard Knock Life 앨범은 무려 5주 동안이나 빌보드 차트 1위의 자리를 차지 하며 Jay-Z의 실력과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 역시 모디프가 Gangster Rap보단 Pop-Rap으로서의 비중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Cash, Money, Hoes”란 트랙처럼 변함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Can I Get A…..” 나 “Hard Knock Life(Ghetto Anthem)같은 곡들은 독특하고 인상 깊은 멜로디와 사운드로 많은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In My Life Time이란 앨범에서 그랬듯이 Jay-z는 첫 앨범에서 보여줬던 자신만의 그 어떠한 개인적인 부분들과 자기 위주로 소재들을 풀어나가는 대신에 샘플들을 위주로 한 대중적인 사운드로 많은 리스너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 앨범에선 6개나 되는 싱글 들이 나왔고 위에서 소개된 3곡을 포함해서 “Jigga What?” “It’s Alright” 그리고 “Money Ain’t a Thang”이란 곡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일년후 Jay-Z는 Vol 3. : Life and Times of S. Carter란 앨범으로 돌아왔다. 이 앨범의 판매량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많은 싱글들을 만들어낸 앨범이다. 이 앨범에 그와 함께 참여한 아티스트들 역시 거물들이였다. 하지만 2000년도에 발매한 Dynasty Roc La Familia에선 스케일을 약간 줄인듯 했다. 이 앨범은 Roc-a-Fella 식구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이다. Beanie Sigel, Memphis Bleek 그리고 Amil. 그리고 Jay-Z는 이앨범을 통해 몇몇 새로운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했는데,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The Neptunes, Kanye West, and Just Blaze였다. The Neptunes가 프로듀스를 맡은 “I Just Wanna Love U (Give It to me)” 라는 곡은 상당히 놀라운 성공을 거둔 싱글이다.
Jay-Z의 다음 앨범 The Blueprint는 2001년 9월에 발매 되었고 이는 뉴욕의 랩씬에서 그의 자리를 굳히는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 이 바로전에 그는 Hot 97’s Summer Jam에서 (Hot 97s Summer Jam:뉴욕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주최하는 파티)“takeover”란 곡을 선보였다. 이 곡은 Mobb Deep의 Prodigy를 디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Jay-Z는 자신의 언어적 공격력을 과시하며 (verse의 한부분: you’s a ballerina/I seen ya” 너는 발레리나/ 나는 봤어) 라고 하며 과거 Prodigy가 댄스복을 입고 있는 대형 사진을 많은 관중들 앞에서 선보였다. The blueprint에 또다른 버전의 “takeover”란 곡이 수록 되었는데 이버젼에선 프로디지와 함께 나스 마저 디스를 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Nas는 “Ether”란 곡으로 대응 했고 이들의 디스는 당분간 계속 된다. “Ether”에 맞서 “Super Ugly”란 곡으로 1절에선 Nas를 디스 했고 이절에선 “Bad Intentions”이라 하며 Dr. Dre까지 디스 했다. 이런식으로 주고 받기를 반복하는 배틀은 이어졌고 이 영향으로 Jay-Z와 Nas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또 하나 빼놓을수 없는 이 앨범의 명곡 “Izzo (H.O.V.A)” 역시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후에도 Jay-Z의 큰 성공은 계속 되었다. The Roots와 작업한 Unplugged앨범 그리고 R.Kelly와 작업한 Best of Both Worlds.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녹음 작업을 하였고 일년정도 되는 기간동안 40개 가까이 되는 새로운 트랙을 생산 해냈다. 이중 25개의 트랙이 더블 앨범으로 제작된 The Blueprint2: The Gift & the Curse (2002)에 수록된었는데, 가격 문제는 둘재 치고 이 앨범은 기존에 발매 되었던 앨범들과는 확실히 달랐다고 할수 있다. 처음 CD엔 Jay-Z자신의 개인적이고, 고찰적인 부분에 중심을 두었지만 그 반대로 두번째 CD엔 용서 할수 없을 정도의 어지러운 짜임새에 더블 디스크에 화려한 쇼케이스는 장관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앨범은 많은 싱글들을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Bonnie & Clyde” 이란 트랙엔 자신의 애인인 Beyonce Knowles와 함께 했으며 Beyonce의 summer2003 classic “Crazy in Love”엔 Jay-z 가 참여 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디오 힛트 the Neptunes의 “Fronting”에도 역시 참여 했다.
그리고 그의 은퇴선언과 함께 발매한 the Black Album은 발매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일위자리를 탈환 하였다. “Dirt off Your Shoulder”와 “99 Problems” 이란 명곡들이 수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Fade to Black DVD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고별 투어를 Madison Square Garden에서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곧 R. Kelly와 함께 unfinished business를 발매하고 ll-fated arena 투어에 올랐지만 억만대의 소송에 휘말리고 만다.
하지만, Jay-Z는 Def Jam 레코드사의 경영자로서의 또다른 새로운 도전을 맞이 하고 있었다. 당시 Def Jam 레코드사는 과도기 시점을 해쳐 나갈수 있는 경영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Jay-Z는 이 새로운 도전을 챔피언과 같이 받아들였다. Jay-Z는 랩퍼들 중 가운데 몇 되지 않는 경영자로서의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다. 기존에 많은 랩퍼들이 자신들만의 레이블 소속사들을 설립하고 운영해 왔지만 Jay-Z가 달성한 것과 비교를 해보면 그 수준이 달랐다. 그리고 경영자로서의 그의 태도 또한 확실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결코 경영자로서의 업무등을 우습게 보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새로운 신인들을 발굴해 내었다. Young Jeezy, Teairra Mari, Rihanna ,Bobby Valentino, Memphis Bleek 그리고 Young Gunz 이중 몇을 제외한 나머지 신인들도 역시 좋은 반응들을 얻고 있고, 지난 6월 25일 그는 그의 데뷰 앨범이자 첫 앨범인 "Reasonable Doubt" 발매 1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끝없는 성공의 연속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끝없는 도전이야말로 오늘날 그가 성공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명성, 랩퍼로서의 성공, 프로듀서로서의 성공, 이제는 한 레코드사의 경영에다가 더욱더 중요한건 Beyonce까지 말이다. 비록 그는 은퇴선언을 하였지만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은 분명 미래에 우리를 또다시 놀래킬만한 일들을 이미 꾸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속에 Jay-z에 대한 글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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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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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Awards]
HiphopPlaya Awards 2005, 주요부문 수상자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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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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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Awards]
The Hiphop Playa Awards 2002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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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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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Label] BBE
Beat를 가지고 놀다.. BBE!!!
BBE?
BBE라는 약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마이너 레이블 Barely Breaking Even의 활동은 6년 전 런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Peter Adarkwah와 Ben Jolly가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Pete는 수년동안 친구들의 파티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었고, 졸업하자마자 클럽씬에 투신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음악 매니아이며 레코드 콜렉터였던 Pete는 디제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전에는 알지 못하던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Ben은 음향 기기 회사에서 PA 시스템을 공급하는 일을 하며 Ministry of Sound, The Lazerdrome, The Milk Bar 등 런던과 그 주변의 유명 클럽들과 거래하고 있었지만, 그는 새로운 방목지로 옮겨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오래된 브라질 토속 음악에서부터 70년대 훵크, 퓨전 재즈, 힙합과 소울, 그리고 개러지와 디스코,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어우르는 다양하고 절충적인 사운드에 공통 관심사가 있음을 발견한 그 둘은 다른 클럽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들을 위한 파티를 주최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첫 클럽 프로모션은 Shake It Loose라는 이름으로 차이나 타운의 어느 작은 클럽에서 행해졌다. 하지만 행사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른 프로모터가 Shake It Loose라는 이름이 먼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간판이 필요하게 된다. Ben과 Pete는 The Universal Robet Band의 곡 제목에서 따온 Barely Breaking Even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당시의 재정 상태를 말해주는 적절한 이름이었다. 이곳 저곳을 옮겨가며 BBE는 파티를 계속했고, 그들의 신선하고 독특한 스타일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어서 Ben과 Pete는 게스트 DJ로 여러 곳으로 초청되기에 이른다.
클럽 활동으로 바쁜 그들이었지만, Ben과 Pete는 고여있으면 썩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프로모션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 레이블을 설립하고 레코드 산업계로 뛰어든다. 1996년 말, BBE는 큰 주목을 끈 [Stop And Listen]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시리즈는 Masters At Work가 선곡한 앨범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Real Music For Real People이라는 모토에 어긋남 없이 DJ Spinna, Dimitri From Paris, Kenny Dope 등 다양한 장르의 유명 리믹서들이 작업한 훵크와 소울에서부터 라틴과 디스코, 하우스와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댄스 뮤직 믹스 앨범과 컴필레이션을 수십장 발매해 온 BBE는 2001년 말, 그들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이것이 바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의 힙합 팬들까지 흥분케 한 [Beat Generation] 시리즈이다. ATCQ와 Common, Slum Village의 작업을 통해 비트 메이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Jay Dee가 첫 주자를 맡은 이 시리즈는 뉴욕의 거장들인 Pete Rock, Marley Marl의 작품들과 Black Eyed Peas의 실세 Will.I.Am의 실험적인 사운드트랙 [Lost Change]까지 발매되며, 지난 해 가장 큰 찬사를 받은 기획물로 평가된다. 앞으로 출반 계획이 잡혀있는 아티스트들의 리스트에는 Jigmastas의 DJ Spinna, DJ Jazzy Jeff & Fresh Prince의 Jazzy Jeff, 원맨 프로젝트 Sylk 130을 통해 국내에서도 큰 반응을 얻었던 필라델피아의 거장 King Britt 등 이미 검증 받은 명인급의 프로듀서들과 최근 Okay Player의 디바 Jaguar Wright의 데뷔앨범과 K7의 유명한 Mix 시리즈 [DJ Kicks]를 통해 주가를 높이고 있는 Vikter Duplaix, Mos Def와 Black Star의 앨범들을 통해 이름을 알려온 88 Keys 같은 신진 세력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DJ Shadow나 Kenny Dope, Pete Rock 등 각 장르의 최고 실력자들이 Keb Darge와 함께 선곡에 참여하여 잊혀진 60-70년대 Rare Groove들을 발굴해내는 [Funk Spectrum] 시리즈와 Keb Darge의 개인 프로젝트로 역시 쉽게 구할 수 없는 옛 명곡들을 컴파일해 놓은 [Deep Funk] 시리즈는 [Beat Generation]과는 또 다른 지평을 연 기획물들이다. 이젠 LP로 밖에는 구할 수 없는 음원들을 CD로 복원해 놓은 이 두 컴필레이션 시리즈는 전문적으로 Digging을 하는 DJ들이나 LP로는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반 팬들 모두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그 동안 친밀하게 교류해온 DJ Spinna, Pete Rock, Jazzy Jeff, King Britt과 Vikter Duplaix 등에 블랙 뮤직의 진보 진영을 이끄는 Okay Player의 ?uestlove(The Roots)가 새로이 참여하는 “The Future"라는 거창한 이름의 BBE 파티가 3월 말 마이애미에서 개최될 예정이고, 발매 아티스트들 중 가장 미국 시장에서 영양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Jazzy Jeff의 솔로 앨범이 [Beat Generation] 시리즈의 하나로 5월 중 발매 스케줄이 잡혀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이런 계획들이 그루브한 음악이라면 피부색이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포용해 내는 진정한 댄스 뮤직 레이블 BBE의 앞길을 얼마나 터줄 지 흥미롭게 지켜보자.
Beat Generation
Jay Dee - Welcome 2 Detroit
작년에 발매된 스타 프로듀서 Jay Dee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은 ATCQ, Busta Rhymes, De La Soul, Common 등 그를 명인의 위치로 격상시켰던 걸작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만의 아이덴터티가 손상된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낯설고 거친 투박함은 다분히 의도적인 듯하다. 고향 Detroit 출신 랩퍼들의 피쳐링이나 Jay Dee 자신의 랩도 나쁘지 않으며, 프로토 타입의 전자음악으로부터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B.B.E(Big Booty Express)`나 EW&F의 곡을 재활용한 소품 `Brazilian Groove` 등 그다지 정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작품들도 다수 수록된 본작은 힙합만의 팬들보다는 좀 더 열린 귀를 가지신 분들에게 적합할 힙합 퓨전.
Pete Rock - PeteStrumentals
Jay Dee의 첫 솔로 앨범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문제작이 된 반면, 그의 명성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데뷔작 [Soul Survivor] 이후 꽤 오랜만에 발표된 본작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만장일치 대환영을 받은 화제작이다. 90년대 초반 C.L. Smooth와 활동하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작업해온 미공개 비트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Cake`과 `Nothin' Lesser` 두 곡엔 The UN이라는 걸출한 신인 랩퍼들이 참여하고 있다. (Jay Dee의 것을 듣고 자극을 받았다는 그는 초판 이후엔 수록곡을 바꾸어버린다. Freddie Foxxx가 참여한 `Mind Frame`과 Nature의 `To My Advantage` 그리고 옛 동료 C.L. Smooth와의 재결합작품 `Back On The Block`이 추가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What You Waiting For`가 빠진 건 정말 의외다.)
Will.I.Am - Lost Change
동명의 독립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공식 명함을 가지고 있는 [Lost Change]는 굉장히 절충적인 작품에는 틀림이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리뷰들만큼 평가절하 당해야 할 앨범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본가 Black Eyed Peas를 알고 즐겨온 사람들뿐 만 아니라, Shaft나 Mack 내지는 각종 스파이물의 사운드트랙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만 하다. 서부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자 Planet Asia가 참여한 오프닝 트랙 `Ev Rebahdee`과 이어지는 Terry Dexter의 ‘Lay Me Down' 등 피춰링 진의 지원사격을 받은 트랙들은 일단 귀를 붙들어 놓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리얼 연주가 곁들어진 스코어들(사운드트랙이므로 이렇게 부르자.)도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영화로도 리메이크된 모 TV 시리즈의 그 유명한 테마를 떠올릴 수도.
그 외..
DJ Spinna - Strange Games and Things
올 초, 그의 경력에서 가장 친-일렉트로닉한 작업으로 기록될 믹스 앨범 [Raiding the Crates]을 발표한 DJ Spinna는 Jigmastas나 [Heavy Beats Vol. 1]로 힙합 팬들에게 알려진 것 이상의 무언가를 지닌 인물이다. 60-70년대의 그루비한 록 넘버들로 채운 믹스 앨범 [Funk Rock]도 BBE의 편협하지 않은 식성이 드러난 근사한 작품이었다. 본작은 Marvin Gaye나 Minnie Riperton, Rick James, Bobby Womack 등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 아티스트들부터 CD로는 전혀 구할 수 없는 잊혀진 이들까지, 또 Jose Feliciano같은 의외의 인물도 등장하는 흥미만점의 훵크-소울 믹스 앨범이다. 굉장한 스크래칭이 돋보이지는 않지만, 환상의 선곡과 자연스러운 흐름은 동종의 여러 앨범들 가운데서 최고로 꼽을 만 하다. 한 장의 믹스 씨디와 두 장의 언믹스드 씨디가 멋진 디지팩에 담겨있는 패키지의 시리즈로 디스코의 Dimitri From Paris와 힙합의 Kenny Dope(Masters At Work)의 것들도 발매되었다.
Masters At Work - The Tenth Anniversary Collection
국내의 애시드 재즈 팬들에게는 수퍼 프로젝트 Nuyorican Soul로 더 잘 알려져 있는 Masters At Work은 Little Louie Vega와 Kenny "Dope" Gonzalez로 이루어진 리믹스 전문팀이다. 앨범 제목처럼 10년 이상 리믹싱을 통해서 플로어를 달궈온 화려한 전적들이 모두 담겨 있는 본작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다. 전반의 5년을 담은 Silver와 그 나머지가 담긴 Gold로 나누어진 두 개의 패키지에는 각각 CD로는 4장, LP로는 5장 분량의 방대한 작업들이 담겨져 있다. 일단 소개를 시작하면 어느 하나 빠뜨리지 말아야 서운해하지 않을 양질의 트랙 리스트들을 직접 확인해 보시길.
Pete Rock & Keb Darge - Funk Spectrum III
영국의 유명 디제이 Keb Darge가 Josh Davis(DJ Shadow), Kenny Dope(Masters At Work), Pete Rock과 파트너를 이루어 선곡한 컴필레이션 시리즈 [Funk Spectrum]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이전에 발매된 두 장은 절판되어버렸지만, 음질이나 내용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할 만한 세 번째 시리즈를 국내에서 구할 수 있게 된 건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희귀한 트랙들이 대다수를 이루지만, B.B. King이나 Grand Funk Railroad 같은 친숙하고도 의외인 형님들도 눈에 띈다. 믹스 앨범이었다면 더욱 흥미로웠겠지만, 이런 Rarities들을 온전히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될 것이다.
Keb Darge's Legendary Deep Funk Vol. 2
Keb Darge의 선곡 능력은 다른 스타 디제이들의 이름을 등에 업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Funk Spectrum] 시리즈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희귀한 음원들을 담고 있는 류들이 어느 정도의 과시욕을 담고 있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가는 바지만, 본작 만큼은 그런 의혹의 거두어도 좋다. 전반부에 위치한 Soul Jazz의 풍류도 정겹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Bad Medicine의 `Trespasser pt. 2`, The Rappers의 `Krunchberry Beast`, Joe Washington의 `Blueberry Hill` 3연타야말로 진정한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최근 유명 언더 힙합 레이블 Stone Throw에서도 [The Funky 16 Corners] 같은 Rarities 모음집이 나오는 등, 지난 세월 속에 잊혀졌던 훵크-소울과 Rare Groove들을 발굴하는 작업들이 한창이지만, Keb Darge가 이루어온 일련의 작업들만큼 믿음직한 것은 그다지 흔치 않다. 글 / mojoroy - 향뮤직 (http://www.hyang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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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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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Label] Seven Heads
True School HipHop - Seven Heads
1995년, 창립자인 Wes Jackson의 버지니아 대학교 캠퍼스내 아파트에서 시작된 Seven Heads는 힙합을 사랑하고 음악 사업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끼리 모여 졸업을 하기전에 "뭔가를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되었다. 당시 모였던 Wes Jackson, Gabriel Benn, Douglas Bass, Rahmon Branch, Michael Abbott, Chris Greene, Diallo Sessoms, 일곱명의 사람들은 머리 수를 세어 Seven Heads라는 이름으로 캠퍼스내에 오픈 마이크(open mic: 아마추어 랩퍼들이 프리스타일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를 설치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96년 겨울, Seven Heads 대망의 첫 음반이 발매된다. 현재는 Asheru와 함께 Unspoken Heard라는 팀으로 활동하고 있는 Blue Black의 솔로 앨범이었다. 당시 Seven Heads의 직원 7명은 모두 각자의 일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교사나 샐러리맨 등이었는데, Wes는 뉴욕의 인디 레이블 Max'n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직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음반의 발매 당시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이듬해 Wes는 직장을 그만두고 Jersey City에 Seven Heads 사무실을 개업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초기에는 인디 힙합 레이블에 초점을 맞춘 라디오 프로모션 회사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당시 Seven Heads의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레이블로는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져버린 Rawkus가 있다. 1997년말, Unspoken Heard의 첫 레코드 "Cosmology"가 발매되고 Seven Heads는 브룩클린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이들은 이 사무실을 "The Amistad"라 부르는데, 당시에는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5~6명이 쇼파와 바닥에 널부러져 있기 십상이었다고 한다.
1998년 여름, Seven Heads는 "Man Age Ment"라고 멋지게 띄어쓰는 7H Management를 개설하고 매니지먼트의 첫 아티스트로 J-Live를 맞이한다. 이후 Artifacts의 멤버로 널리 인정받았던 El Da Sensei와 Djinji Brown, 프로듀서 Usef Dinero 등이 추가되었다. 2000년 드디어 7명의 원년멤버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함으로써 완성된 공동체가 된 Seven Heads는 이후 J-Live의 [The Best Part]와 [All Of The Above], Unspoken Heard의 [Soon Come] 등의 클래식 앨범들을 발매하며 힙합씬의 큰 움직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Seven Heads의 7인은 "Do Things For The Kids"라는 재단을 설립하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장학재단도 설립하고 정치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Get Up Stand Up" 시리즈를 발매하는 등 지성파 힙합 모임으로서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 J-Live
훌륭한 MC의 자격 요건은 무엇일까? 가사? 박자감? 보컬 능력? 능숙함? 아니면 일반적으로 "스킬(skills)"이라 말하는 숙달된 라이밍을 포함한 능력? 당신이 생각하는 정답이 무엇이든, J-Live는 그의 데뷔 앨범 [The Best Part]에서 위의 모든 것들을 화려하게 펼쳐보이며 힙합 리스너들의 귀를 틔워 주었다. 그리고 이 안경 낀 할렘출신의 23세 MC는 이렇게 말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사람들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문제이다. 플래티넘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또는 라디오 방송을 많이 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훌륭한 MC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J-Live (a.k.a Jean-Jacques Cadet)는 95년 영문과 1학년에 재학중일 때부터 Source지의 Unsigned Hype 칼럼에 등장하며 훌륭한 MC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가 스스로 제작해 판매한 [Braggin' Writes]가 1만3천장이나 판매되는 성과를 보이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 큰 파장을 준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곧이어 [Can I Get It]이 두배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J-Live는 인디 레이블들의 표적이 된다. 레이블 교체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년이나 걸려서 첫 앨범 [The Best Part]가 발매된다. 앨범의 제목에 대해 J-Live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든 인생이든, 어떤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best part)'은 당신이 겪어야하는 모든 일을 감수하고 나서 얻어지는 '이해'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x같은 일들을 겪은 후에, 그 일을 다시 해야 한다면 나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 나는 여전히 여기 있고, 여전히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완성된 앨범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best part이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나레이션과 "훌륭한 MC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길거리 인터뷰 등이 곳곳에 삽입된 [The Best Part]앨범은 De La Soul이나 A Tribe Called Quest 등이 일구어 놓은 메시지 전달을 위해 창조적인 작품을 사용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True School Hiphop"을 완성해낸다.
"내가 제대로 해냈다면, 앨범이 진행됨에 따라, 끝에가서 당신은 훌륭한 MC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스타일은 새로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90년대 초반의 옛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당시에는 무엇이든 시도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시절말이다. 그것이 내가 'True School'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Old나 New로 구분지을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니까."
J-Live는 2002년 발표한 두번째 LP [All Of The Above]로 최고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고히 다졌다.
::: Asheru and Blue Black Of The Unspoken Heard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이라는 이 모순어법은 힙합과 대중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MC의 위치를 표현한다. 앞에 있는 것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이, Unspoken Heard는 힙합씬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총체적인 반영이다. Asheru(Gabriel Benn)와 Blue Black(Robert Jackson)은 자신들의 예술성으로 군중을 감동시키는데 주력한다. Seven Heads에서 발매한 첫 레코딩의 주인공이었던 Blue Black과 Asheru로 구성된 Unspoken Heard는 1996년부터 함께 활동하며 인생의 이중성과 흑인문화의 경험 등을 머리가 끄덕이고 엉덩이가 방방 뜨는 음악에 맞추어 전파해왔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인간학을 전공하던 Asheru와 사회학을 전공하던 Blue Black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보통의 MC들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 높은 내용과 개념을 꿰뚫는 이해력으로 멋진 라임들을 선보인다. 재즈 샘플링을 즐겨쓰던 이들은 데뷔 앨범 [Soon Come]에서 더욱 직관적인 스타일을 펼쳐 보이며 힙합팬들에게 충격적인 신선함을 제공했다. 이들의 랩을 듣는 것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두 명의 MC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의견을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과 같다.
Mos Def의 클래식 솔로 앨범 [Black On Both Sides]에서도 멋들어진 프로듀싱을 선보였던 Ge-Ology의 작품인 첫 싱글 "Elevator Music"은 기타와 드럼, 훵키와 라이브 스크래치가 어울어진 멋진 곡이다. 진정한 B-Boy는 단순히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는 브레이크 댄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힙합씬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는 "B-Boy", 신인 프로듀서 Usef Dinero의 비트와 함께 이 앨범 전체의 유쾌한 바이브를 집약해 놓은 듯한 "Truly Unique" 등의 곡들이 특히 귀에 박힌다. 다음과 같은 Asheru의 말에서 우리는 그들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8월, 나는 교사로 있던 고등학교를 떠나, 이 앨범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손을 뻗고 교육하는 또 다른 길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Project NOMMO라는 이름의 창작/예술 커리큘럼을 개발했고 워싱턴의 교육 시스템 전반을 통해 워크샵, 프로젝트, 시낭송 등을 주관했다. 독립적으로 일하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자신을 더욱 믿게 되었고, 미래에 커다란 결과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 El Da Sensei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이름일테지만, El Da Sensei는 1994년 "Wrong Side Of The Tracks"라는 곡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Artifacts의 한쪽 기둥이었다. "Wrong Side.."와 "Flexi Wit Da Tech", "C'mon Wit da Git Down" 등은 2Pac과 Notorious B.I.G.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갱스타 힙합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클래식 명곡들이다. Artifacts의 해체 이후, 솔로로 전향하였으나 앨범 발표가 계속 지연되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던 El Da Sensei는 2002년 후반기에 드디어 솔로 데뷔작 [Relax, Relate, Release]를 발매한다. J-Live, Asheru 등 Seven Heads 가족들과 Sadat X (Brand Nubian), Organized Konfusion (Pharoah Monch & Prince Po), Mike Zoot, FT 등 언더그라운드 힙합퍼들이 대거 참여한 이 앨범은 메이저 힙합 앨범들이 대거 발표되는 시점에서 작지만 밝은 빛을 발하는 숨은 진주와도 같다.
::: Djinji Brown
Afro, Dub, House, Drum n' Bass 등 다양한 비트의 조합으로 독자적인 힙합을 들려준 Djinji Brown의 정규 데뷔작! 아방가르드 색서포니스트 Marion Brown의 아들로, 그간 Pete Rock, Afu-Ra, Dliated Peole, Inspectah Deck, Slick Rick, Jungle Brothers 등의 앨범에 엔지니어로서 참여해온 베테랑으로 본작은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새로운 접목을 시도했으며, 특히 아버지의 영향인 듯,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재지한 샘플링과 고급스러운 라임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Richy Pitch
J-Live, Mr. Complex, El Da Sensei, Apani B, Asheru 등이 참여한 Richy Pitch의 데뷔 신작. 재킷 아트웤에서도 알수 있듯이, 여러 팝 고전들에서 추출해낸 샘플링을 맛깔스럽게 조합해낸 복고풍의 사운드로 모던함과 함께 편안함을 동시에 전하는 앨범. 무엇보다 7Heads 레이블의 대표 MC, 프로듀서들의 호화 피처링으로 대단히 다채로우면서 안정감 넘치는 사운드를 담고있으며, 특히 Apani B가 참여한 "Day To Day"와 J-Live가 참여한 "The Lyricist"으로 이어지는 순간에서는 대단히 밝고 유쾌한 비트와 라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MR. Complex
DJ Spinna, Shabaam Shadeeq, Apani B Fly와 함께한 힙합 프로젝트 Polyrhythm Addicts 의 일원이자, 최근 DJ Spinna의 최근 프로젝트 Jigmastas에의 참가로 국내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Mr. Complex의 화제의 솔로작! DJ Spinna에 비견되는 전통 힙합의 틀을 거부하는 초현실적인 비트메이킹의 향연이 펼쳐진다. 글 / 전형민 - 향뮤직 (http://www.hyang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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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18 조회:
1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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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Label]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지 Rawkus
RAWKUS: bring the ruckus with the raw cuts
http://www.rawkus.com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아니 이제는 언더라기엔 너무나도 유명해져 버려서 Interscope 등의 메이저 레이블과 동급으로 쳐줄 수도 있을 법한 Rawkus는 상업적 음악이 판을 치는 현 힙합계에서, 힙합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해주는 혁신적인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틔워주고 있다.
Puff Daddy가 차트의 정상을 구가할 때 Rawkus에서는 Company Flow의 아방가르드 힙합을 던져 주었으며, Eminem이 Slim Shady로 한창 날릴 때 Rawkus에서는 MCing의 향연을 펼치는 [Lyricist Lounge] 앨범, 그리고 Mos Def와 Talib Kweli의 프로젝트 Black Star의 셀프 타이틀 앨범 [Black Star]를 제시하여 상업적 비트와 팝송 같은 랩에 식상한 힙합 매니아들에게 들을만한 힙합은 아직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Black Star]가 클래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발매된 Mos Def의 [Black On Both Sides]은 힙합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고, 이듬해 발매된 Talib Kweli와 DJ Hi-Tek의 프로젝트 Reflection Eternal의 [Train Of Thoughts]는 그해 발매된 힙합 앨범중 단연 눈에 띄는 수작이었다. 그 와중에 발매되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기관총 같은 입놀림으로 듣는 이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했던 Pharoahe Monch 역시 매니아들의 우상으로 뛰어 올랐다. 2001년에도 Rawkus에서는 Hi-Tek의 솔로 앨범 [Hi-Teknology]와 비트메이커 집단 Da Beatminerz의 [Brace 4 Impak] 등을 발표하여 하이라이트를 받았다. Del La Soul, A Tribe Called Quest 등 Native Tongue 아티스트들 이후로 가장 의식있는 힙합을 들려주고 있는 Rawkus와 같은 집단이 있는 한, 힙합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다.
ARTISTS
Big L
동부 raw sound 힙합의 대표적 그룹 D.I.T.C.의 멤버이자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Big L. 그의 유작 [Big Picture]가 바로 Rawkus에서 발매되었다.
Company Flow
아방가르드 힙합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Funcrusher Plus]이후, 이들은 Rawkus를 떠나 스스로 Def Jux라는 레이블을 설립하여,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Cannibal OX의 성공적인 데뷔도 Company Flow의 프로듀서 El-P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아저씨들은 사실상 해체했다고 전해진다.
Da Beatminerz
Black Moon, Cocoa Brovaz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이름을 알린 비트메이커 집단 Da Beatminerz는 Iron Butterfly의 곡을 샘플링하는 등 Company Flow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방한” 비트를 만들어 낸다.
DJ Spinna
지금은 Beyond Real이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하고 Jigmastas라는 팀의 일원으로 활동중인 DJ Spinna 형님의 데뷔 앨범 [Heavy Beats, Vol. 1]이 Rawkus에서 발매되었다.
Hi-Tek
Mood라는 팀에서 활동하던 Hi-Tek은 Talib Kweli와 Reflection Eterna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몇 장의 싱글을 내고, Mos Def & Talib Kweli의 [Black Star]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Reflection Eternal의 [Train Of Thoughts]와 Hi-Tek 자신의 솔로 앨범 (물론 수많은 MC들이 도움을 준) [Hi-Teknology] 앨범을 통해 “금속성 재즈”의 독특한 비트 메이킹을 완성한다.
Kool G Rap
Busta Rhymes나 KRS-ONE에 버금가는 살벌한 목소리의 하드코어 랩퍼 Kool G Rap의 다음 앨범이 Rawkus에서 조만간 발매될 예정이다. 실력에 비해 인정을 못받아온 그는 “왠지 운이 안 따르는” 아티스트라고 생각되는데, 새로운 앨범으로 그의 캐리어에 전환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Mos Def
요즘에는 랩보다 노래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듯한 “멋쟁이 아저씨” Mos Def. 그의 이름은 “Most Definitely”의 약자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Black Star]에서 Talib Kweli와 함께 보조를 맞추던 랩핑이나 [Black On Both Sides]에서 Busta Rhymes와 주거니 받거니 하던 라임들도 멋졌지만, [Hi-Teknology]를 시작으로 최근 Charlie Hunter의 신작 [Songs From The Analog Playground]에서 들려준 “진짜” 재즈 보컬 역시 멋들어진, 그야말로 멋쟁이 아저씨다.
Pharoahe Monch
랩이라면 무조건 빠르게 말을 하는 것으로 “오인”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 양반의 랩은 정말 빠르다. 혀가 어찌나 빨리 돌아가는지... 첫 솔로 앨범 [Internal Affairs]에서의 랩핑도 인상적이지만, 우리에게는 [Lyricist Lounge Vol.2]에서 Mos Def, Nate Dogg과 함께 했던 곡 “Oh No”로 잘 알려졌다.
Talib Kweli
아라비아어 Talib(구도자라는 뜻)과 가나어 Kweli(진실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진실의 구도자”라는 의미인 Talib Kweli는 새천년 힙합계의 “검증된 기대주”이다. NYU에서 공부하고 Mos Def 등과 함께 이른바 intelligent lyricist로 꼽히는 그는 돈, 마약, 여자, 폭력 등에 대한 랩이 아직도 90% 이상을 차지하는 힙합계에서 정말로 들려주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MC이다. 최고의 wordsmith인 Rakim에 버금가는 라임과 플로우의 귀재 Q-Tip도 부럽지 않은 듣기 좋은 랩핑을 구사한다.
ALBUMS
Rawkus에서 지금까지 발매된 앨범들 중 국내에도 소개가 되어 국내 힙합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음반들을 정리해보았다. 특히 Rawkus에서 발매되는 컴필레이션 시리즈들 Lyricist Lounge, Soundbombing 등은 MCing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야 할 음반들이다.
Big L / Big Picture
Da Beatminerz / Brace 4 Impak
Hi-Tek / Hi-Teknology
Mos Def / Black On Both Sides
Mos Def & Talib Kweli (Black Star) / Mos Def & Talib Kweli Are Black Star
Talib Kweli & Hi-Tek (Reflection Eternal) / Train Of Thoughts
Various Artists / Lyricist Lounge Vol.1
Various Artists / Lyricist Lounge Vol.2
Various Artists / Soundbombing
Various Artists / Soundbombing Vol.2
Various Artists / Rawkus Hip Hop Classics Vol.1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찾아올 Rawkus의 앨범들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다시 한번 특집 기사를 올리기로 하고, Rawkus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 마치기로 한다.글 / 전형민 - 향뮤직(http://www.hyang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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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2 조회: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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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필름]
The Class of 2001 (HHI선정 2001년 클래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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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30 조회:
18,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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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필름]
[Label] Death Row Records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전설
지난 2001년 8월 초, Death Row의 최고 경영자인 Suge Knight가 약 5년여의 옥살이를 마치고서 출소함으로서 기존 서부 힙합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Death Row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금 고조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Suge는 이제 Death Row라는 레이블은 없을 것임을 밝힘으로서 Death Row는 90년대 초반부터 2001년까지 만을 포괄하는 역사 속의 레이블로 남게 되었다. 왜냐면 앞으로 그들의 아이템들은 Tha Row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발매될 것이기에...
설립과 찾아온 플래티넘 행진 (92~95년)
Death Row의 설립자인 Suge Knight은 네바다 대학 경영학과를 출신으로서 미식 축구 선수로서도 활약하였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프로팀의 입단이 좌절됨으로서 그는 새로운 일을 찾던 도중 우연히 80년대 후반 Bobby Brown의 경호원으로서의 일을 시작하면서 뮤직 비즈니스와 처음으로 관련을 맺게되었다. 그는 실제로 L.A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Bloods파로 불리우는 갱단의 일원이라는 설이 전해오기도 하는데, 아무튼 그의 친구였던 프로듀서의 돈을 대신 받아내기 위해서 백인 래퍼 Vanilla Ice를 협박하여 호텔 발코니에 매달았다는 이야기나, N.W.A의 일원이었던 Dr. Dre를 빼내어 자신의 사업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Ruthless 레코드의 설립자이자 Dre의 친구인 Eazy-E를 방문하여 협박했던 에피소드들은 Death Row의 악명과 더불어 초기 시절에 있어 알려지지 않은 비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는 1992년, Eazy-E와의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 Suge의 도움에 힘입어 - N.W.A를 탈퇴하고 Ruthless 레코드를 등져버린 Dr. Dre와 손을 잡고서 Death Row 레이블을 공동으로 설립, 그 대대적인 출범을 알린다. 사람을 처형하는 기구에서 따온 Death Row라는 이름을 그들의 레이블의 상호로 내걸고서, 그 첫번째 아이템으로서 10만 달러를 들여 Dr. Dre의 데뷔 앨범인 [The Chronic]을 제작하였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앨범을 유통해 줄 회사를 찾는 것. 그러나 Dr. Dre의 전과 경력과 Suge Knight의 공공연한 협박설 등이 레코드 유통사의 관계자들의 귀에 들어감에 따라 대부분 접근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결국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그들은 Interscope사와 유통 계약을 체결하고서 Dre의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일련의 카탈로그를 발매해 나간다.
경영학과 출신인 Suge의 치밀한 전략적 계산과 Dre의 멋진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던 Death Row의 초기 시절은 신흥 레이블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역시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공신은 Dr. Dre로서, 이후 Snoop Doggy Dogg, Dogg Pound을 의도적으로 대중들에게 노출시킴으로서 내어놓는 앨범들마다 연이어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서부 힙합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떠올랐다. 특히 Death Row 레이블 초창기의 아이템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필청 음반들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Dr. Dre [The Chronic] ★★★★★
N.W.A 시절부터 프로듀서로 활약해 왔던 Dr. Dre는 갱스터 랩이라고 불리우던 조류의 최첨단에 서 있던 인물로서, Suge Knight과의 조우를 이룬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을 통해서 G-funk라는 새로운 힙합의 흐름을 창조해 낸다. George Clinton과 그의 팀인 Parliament의 곡들에서 빌어온 여러 P-funk의 고전을 이용한 샘플들과 강조된 무거운 베이스라인, 나른한 리드 소리 등을 적절하게 배합한 사운드 위에 마리화나에 대한 애정을 담은 랩을 쏟아 냄으로서 기존의 힙합 음악과 차별화를 두었고, 이러한 G-funk는 향후 힙합씬을 지배하면서 신흥 레이블인 Death Row를 일약 명문의 위치로 격상시켰던 바 있다. 동시에 무명이었던 Snoop Doggy Dogg을 발굴하여, 본 앨범에 참여시킴으로서 이미 그가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 이전부터 그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물 흘러가는 듯한 독특한 플로우의 Snoop과 함께 주고받는 래핑이 진한 우정의 감동마저 느끼게 하는 "Nuthin' But A 'G' Thang"만으로도 이 앨범이 가지는 가치는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듯.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Snoop Doggy Dogg [Doggystyle] ★★★★☆
Dr. Dre의 데뷔 앨범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선보여지게 되었던 Snoop Doggy Dogg은 데뷔 이전부터 사람들의 첨예한 관심을 얻었는데 그는 본 앨범을 발매한 첫 주만에 80만장을 판매하여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고, 빌보드 차트에도 신인 뮤지션으로서는 데뷔와 동시에 1위를 차지한 첫 번째 아티스트의 영예를 누리며 그를 기다리는 팬들의 갈증이 얼마나 컸었던지를 증명해 주었던 바 있다. 신인의 앨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4백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Snoop Doggy Dogg는 95년도 그래미 어워드의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수퍼스타의 반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본작 역시 앨범 전체가 초특급 프로듀서 Dr. Dre에 의해서 프로듀싱되었으며, 그의 솔로작 [The Chronic]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G-funk적 작법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있는 가운데, Snoop 특유의 느슨한 래핑이 조화되면서 멋진 컴비 플레이를 구축하고 있다. 싱글 커트되었던 "What's My Name"과 "Gin & Juice" 등이 커다란 사랑을 받았으며, Daz, Kurupt, Nate Dogg, Warren G, D.O.C 등 당대의 랩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Various Artists [Above The Rim] ★★★★
2Pac이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던 영화 Above The Rim의 사운드 트랙으로서 힙합과 알앤비를 아우르고 있는 흑인 음악 모음집 형태의 음반이다. 2Pac의 Thug Life로서의 앨범에도 후에 수록되었던 바 있는 "Poor Out A Little Liqour"나, Dogg Pound의 앨범에도 약간 변형되어 수록된 "Big Pimpin'" 등의 트랙 등이 그나마 알려진 편이긴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트랙은 바로 Dre의 이복 동생인 Warren G가 Nate Dogg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며 감성을 자극하는 "Regulate"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Dr. Dre의 인맥들이 주축이 되어 제작된 본작은, 영화 음악 모음집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려 2백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기현상을 체험하였다. 한편 Warren G는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되었던 "Regulate"의 대 히트에 힘입어, 자신의 데뷔 앨범 [Regulate....G Funk Era]를 Def Jam을 통해 수월하게 발매하며 힙합 씬에의 성공적인 진입을 알렸다.
Various Artists [Murder Was The Case] ★★★☆
Snoop Doggy Dogg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던 곡인 "Murder Was The Case"라는 곡에서 힌트를 얻어 발매되었던 동명의 단편 영화의 사운드 트랙. 영화 자체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Death Row라는 상표를 달고 있었던 사운드 트랙만은 역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고공 히트 행진을 계속해 나갔던 바 있다. 기존 Dr. Dre에 치우쳐져 있었던 무게 중심은 이 앨범을 기점으로 하여 Dat Nigga Daz에게도 약간 비중을 두고 있는 듯 한데, Dogg Pound의 트랙들 외에도 Snoop이나 Nate Dogg 등의 곡에서도 Dat Nigga Daz의 깔끔한 프로듀싱을 들을 수 있고, 그 외에 DJ Quik이나 Supafly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듀서 진들도 지금까지의 패턴에 비해 다소 의외스럽기까지 하다.
전 N.W.A 출신 멤버들의 오랫만의 회합으로 시선을 모았던 Dr. Dre와 Ice Cube의 트랙 "Natural Born Killaz"가 히트를 선도해 나갔으며, 역시 G-funk에 기반하고 있는 서부 힙합의 사운드들이 담겨져 있는 음반이나, 뒤로 갈수록 참여진의 네임 밸류가 떨어져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들었던 이야기로는 영화와 앨범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DVD가 공개될 것이라고도 한다.
Dogg Pound [Tha Dogg Food] ★★★★
Dat Nigga Daz와 Kurupt의 2인조 프로젝트인 Dogg Pound는 Snoop에 이어 Death Row가 내어 놓은 야심찬 비밀병기였다. Suge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그들의 이름을 이리저리 카메오로 선보여 왔던 Dogg Pound는 그처럼 사람들에게 노출을 꾸준히 해왔던 덕택인지,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의 1위를 차지하는 또 하나의 신인팀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였던 바 있고, 이 앨범 역시 3백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앨범의 곡들은 DJ Pooh와 Kurupt이 참여한 몇 곡만 제외하면 모두 메인 멤버인 Daz에 의해서 프로듀싱되고 있는데, 본 앨범에서 들려주는 그의 감각 역시 상당히 뛰어나기에 Dr. Dre로 시작된 웨스트 코스트 수퍼 프로듀서의 계보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Mitch'ell의 피쳐링이 담긴 첫 싱글 커트 곡 "Let's Play House"를 비롯, "Dogg Pound Gangastaz", Nate Dogg이 피쳐링하고 있는 "I Don't Like To Dream About Gettin' Paid"등이 감동적이나, 뒤로 갈수록 조금 완성도가 쳐지는 감이 있다.
2Pac의 영입, Dr. Dre와의 결별 (96년)
약 2년여 동안, 발매한 다섯 장의 앨범 만으로도 거의 1천5백만장에 육박하는 앨범을 팔아치우며, 힙합 씬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다시피 한 Death Row 레이블은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레이블 내부적으로는 구타와 폭력이 난무하는 정비되지 않은 조직의 모습과, 거의 본업은 갱스터이고 부업으로 랩을 하는 듯한 레이블의 좋지 않은 이미지들로 인해, 많은 구설수와 소동을 일으키며 신문의 가쉽 란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Suge Knight은 당시 옥중에서 발매한 [Me Against The World]로 빌보드 차트의 정상을 차지한 2Pac을 주목하고서,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20억원에 달하는 140만 달러라는 거액의 보석금을 전격 대신 지불하며 그를 자신의 레이블로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론 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물론 2Pac도 엄청난 인물이기는 했으나, Death Row를 통해서 더욱 더 주목받는 수퍼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단지 3장의 앨범만을 발매하였고, 1, 2집은 사실 상업적으로도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던 뮤지션에 대해 천문학적인 거액의 보석금이 전격 지원되며, Death Row의 터전에 그를 영입하였다는 소식은 2Pac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성원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낳으며 이는 앨범에의 성공적인 판매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2Pac이 출소한 후, Dr. Dre는 딜레마에 빠졌다. 실제로 Death Row의 음악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혁혁한 공헌을 해왔던 그였지만, 사실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Suge Knight의 강압적인 스타일과 공정치 못했던 부의 분배에는 이미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2Pac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Death Row의 경영 방침에 대해서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는 96년 3월, 자신의 곡에 대한 판권과 마스터 테이프를 완전히 넘기고서 Aftermath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할 것을 결심하며 Death Row를 떠난다. 그러나 2Pac의 사망 이후 Death Row는 예전만한 영예를 누리지 못함으로서 Dr. Dre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이 얼마나 많은 부분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했던 바 있다.
2Pac [All Eyez On Me] ★★★★★
출소 후의 2Pac의 행보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기 때문인지, 앨범의 제목은 [All Eyez On Me]로 붙여졌다. 이러한 시선은 팬들을 의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아티스트들에게도 적용되었던 모양인지 Dr. Dre, Snoop Dogg, Dogg Pound, Nate Dogg 등, Death Row의 거의 모든 뮤지션들이 그의 앨범을 위해 기꺼이 참여하였고, 뿐만 아니라 Method Man, Redman을 위시한 수많은 힙합 아티스트, 심지어는 Roger Troutman, George Clinton과 같은 전설적인 인물들까지 대거 동원되었다.
레이블을 떠나기 직전의 Dre와 함께 한 "California Love"를 비롯,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이 활짝 그 꽃을 피웠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절정을 들려주고 있으며, 이 앨범으로 최정상에 올라섰던 무렵 2Pac은 총격으로 사망함으로서 힙합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아티스트로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Dogg Pound의 Daz가 많은 부분에서 참여하였고, Johnny "J"가 프로듀서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기도. 한편 Suge도 2Pac이 살해되던 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집행 유예기간 중에 소동을 피운 혐의로 9년형을 언도 받았다.
Makaveli [The 7 Day Theory] ★★★★
2Pac의 생전에 녹음되었다가, 그의 사후에 Makaveli라는 이름을 달고서 발매된 첫번째 유작 앨범. Death Row 레이블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으로 이야기되는 '2Pac이 살아있다'는 소문과 맞물리면서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4백만장 이상 판매되었다.
개인적으로는 "Hail Mary", "Toss It Up", "To Live & Die In L.A"로 이어지는 도입부의 3곡이 제법 인상적이지만, 사실 Dr. Dre가 레이블을 떠난 이후에 제작되었는지라 전작의 화려했던 프로듀서진에 비하면 조금 빈약한 감도 없지 않은 듯. 한편 Suge Knight 자신도 Dre와의 결별로 인해서 보다 비장한 각오를 다지게 되었는지, the new and "untouchable" death row records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루머에 의하면 [All Eyez On Me]의 발매 후 Death Row를 떠나려고 했던 2Pac을 Suge Knight이 사주하여 살해한 후 생전에 녹음하였던 약 150여곡의 판권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Snoop Doggy Dogg [Tha Doggfather] ★★★
93년, [Doggystyle]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랩 씬에 입성한 Snoop Doggy Dogg에게 있어서, 자신의 스승과도 같았던 존재인 Dr. Dre의 Death Row 탈퇴의 소식은 가장 큰 충격이었음에 틀림없었던 듯 싶다. 또한 이는 그의 두번째 앨범인 [Tha Doggfather]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지며 그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도 했는데, "Snoop's Upside Ya Head"가 그나마 히트하였고, 첫 데뷔 앨범에서의 성공 탓에 2백만장 이상 판매되기는 하였으나, 1집에 비해서 실망스럽다는 것이 팬들의 중론.
역시 G-funk 스타일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으나, Dre가 주도했던 프로듀싱과는 달리, 70년대의 올드 스쿨의 샘플을 그저 빌어와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론가들의 비우호적인 평가 속에 소포모어 징크스를 경험해야만 했다. 본작을 마지막으로 Death Row를 떠나 Master P가 운영하는 No Limit Records에서 앨범을 발매한 Snoop은, 연속되는 실패작으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던 중, 최근 Dr. Dre와 교류하면서 그나마 재기에 성공한 듯.
= to be continued...= 글 / LAZYBIRD@hitel.net - MP Zine (http://mphiph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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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30 조회:
1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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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킹필름]
The Source 지 평가, 마이크 5개 앨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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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30 조회:
1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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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G-F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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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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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Ur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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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1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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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New Jack S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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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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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cid Jazz vs Jazz Hiphop
// what's so diffrent about? //
Jazz Hiphop vs Acid Jazz
우리나라 사람들 좋아하듯이 '단칼'에 두개의 장르의 차이를 잘라본다고 하면 acid jazz 가 테크노 혹은 모던록 혹은 재즈 혹은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이라면(제가 임의로 나눠본 것입니다.), JazzHipHop은 그냥 HipHop일 따름입니다.
Acid Jazz는 사실 Jazz자체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힙합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음악을 하던 뮤지션들은 그냥 보통 rock 뮤지션이었거나 혹은 테크노 키보드 주자였거나 아니면 그냥 pop 음악 스타일의 프로듀셔들이 많았죠. 그러나 음악의 소스와 샘플등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재즈랄지 훵크, 소울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특유의 groove감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말로 설명하는것은 문제가 많고 흔히 접하기 쉬운 incognito등의 음악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쉽겠습니다만.) 흔히들 Digable planets같은 재즈 힙합 그룹들을 acid jazz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두개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에 반해 Jazz Hip Hop은 철저히 HipHop음악 테두리 안에서 출발한 음악입니다. 매우 자조적인 느낌을 주는 안정적이고 기교있는 톤에 재즈 연주의 샘플을 넣거나 연주를 삽입하는 형식이죠. 대개 40년대 후반서부터 60-70년대 재즈까지 다양한 샘플링이 사용되지만 특히 50-60년대의 hard bob이 이들 소스의 대표적인 원천입니다. 라이브 위주거나 혹은 밴드 위주의 그룹형태를 가지고 있는 acid jazz와는 달리 힙합그룹특유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이게 무슨소리냐 하시겠지만 가만히 보시면 혹은 그 음악들을 들어보시면 그 차이점을 나름대로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 참 us3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할까요? us3는 참 애매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뒤에 재즈프로듀서나 힙합프로듀서가 받치고 있으면서 라이브한 연주가 있고, 간판 랩퍼가 있는점을 볼때 형태적으로는 분명 jazzhiphop에 가깝다고 보겠으며 전형적인 acid jazz랑은 느낌이 다릅니다. 굳이 acid jazz라고 불러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의도'랄까. 혹은 재즈 레이블인 블루노트에서 출반이 되었다는 점땜에 여러 의견이 난무하는듯 합니다. 뭐 아니면 또 어떻겠습니까만. 제 나름대로 구분짓자면 블루노트식 재즈앤훵크리바이벌+힙합?
다음은 각 스타일의 대표적 뮤지션입니다.
(앨범이 몇장 없으니 왠만한건 다 추천앨범임)
Acid Jazz계열
Stereo MC's , United future organization
Incognito, Groove Collective, Jamiroquai 등
Jazz HipHop(혹은 JazzRap)계열
Digable Planets, guru, the roots,
a tribe called quest, gang starr 등 글 / 김영대(Nownuri ID: toojaz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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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1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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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Hard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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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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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Trip-Hop
현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각광받는 장르가 있다면 Techno를 위시한
Trip-Hop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나 Massive Attack, Potishead, Tricky
등의 삼총사로 구성된 브리스톨 사운드에 현혹되어 포로가 되어가는 국내
팬들도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마 이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한 번 집대성을 해보았다. 여러 번에 나누어서 올려야 할 분량이지만
필요한 사람들은 어짜피 읽으리라는 생각에 조금 길더라도 한꺼번에 올려본다.
덕분에 내 손가락은 톡톡히 고생은 했지만 역시 백수가 아니면 이 짓도
못할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펑크가 1970년대 대중음악의 기존
가치들을 모두 파괴한 가운데 영국의 음악 씬은 미국의 음악 씬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대중음악과 언더그라운드가 확연히 갈렸던
미국과는 달리 영국에서의 메인스트림과 인디, 팝과 록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더욱 어려워졌으며, 그 결과로 통상적으로 '장르'라고 부르던 것들
간에 새로운 교잡 및 변종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80년대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대중음악 조류들이 대부분영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흐름이 생겨나는
가운데 사조간의 '경계'란 것이 갈수록 희미해져가고 있으며, 또 그 유행의
생명력이 단축되어 가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영국의 대중음악
씬이 우리에게 새로이 제공한 조어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트립합(Triphop)'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음악일 것이다. 흔히 트립합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로 손꼽히는 트리키(Tricky)나 디제이 크러쉬(DJ Krush),
디제이 쉐도우(DJ Shadow) 등이 연말의 최우수 앨범 선정에서 평론가들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으며, 트립합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라도 최근에 나온
'트립합 컴필레이션'이라는 것들만 사 모아도 한쪽 벽이 가득 찰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트립합으로 분류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음악인들은 '트립합' 이라는 장르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
트립합'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상업적인 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의 트립합이라는 것은 실재하는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음악인가. 아니면 얄팍한 장삿속이 만들어낸또다른 신조어인가.
1.어원/기원
'트립합'이란 단어의 뜻을 굳이 생각해보자면, 이것은 '트립'이라는 단어와
'합'이라는 단어의 조합이다. '트립'은 본래 '여행'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음악계에서는 20세기 중반 일단의 진보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이래로 약물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체험을 하거나
감흥을 얻음으로써 작곡 혹은 연주를 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 '트립'이라는 단어는 그 이후로널리 퍼져서 특히 테크노/일렉트로닉
음악 계열의 아티스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영국을 중심으로
거대한 레이브(Rave) 씬이 형성된 이후로는 상당수의 DJ들이 엑스타시(MDMA)나
LSD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여 유사한 음악적 감흥을 얻게되었다. 이렇게 약물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전자음악들이 주는 느낌은 씬이 커지면서, 이에 따라
서서히 정형화되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느낌을 오늘날엔'
트리피(Trippy)하다'라고 한다(대개 트리피하다는 것은 몽환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트립합'의 경우에는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나
사이키델리아(Psy-chedelia)와 같이 약물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약물을 사용한 '트립'의 효과로 나타나는 테크노 음악과 유사한
느낌, 소위 '트리피(Trippy)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트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트립합'이라는 명칭을 거부하는 많은 이들은 이를 비꼬아
'트립-리스(trip-less)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합'이라는 것은
널리 쓰이고 있는 '힙-합(Hip-hop)'에서의 '합'과 마찬가지로 DJ에게 의존하는
비트 중심의 음악으로 이해하면 될것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트립합'이 '합'
이라는 것에 동의하는것 또한 아니다.사실 트립합과 유사한 음악을 부르는
명칭이 이전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90년대 초부터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류의 음악을 하나의 조류로 분류하던 평론가
들은 이러한 부류를 '앱스트랙트 힙-합(Abstract Hip-Hop)'또는
'앰비언트 힙-합(Ambient Hip-Hop)'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트립합이라는 말이 가장 처음 쓰인 것은 영국의
앰비언트/테크노/덥을 중심으로 다루는 진(Zine)인 믹스맥(MixMag)이라는
잡지에서이다. 믹스맥의 1994년 6월호에서 앤디 팸버튼(Andy Pember
ton)은 디제이 쉐도우, 더스트 브라더스(Dust Brothers), 그리고 일련의
Mo'W-ax 레이블의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힙-합의 한 변형을 설명하기 위하여
'트립합'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후 영국의 대중음악 잡지인
셀렉트(Select)지를 필두로, 다수의 평론가들 및 레이블들이 이러한 명칭을
자주 거론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트립합을
묘사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한 닥터 드레(Dr.Dre)" 혹은 "집(Jeep) 비트를
사용하는 Sven Vath"와 같은 표현을 썼는데, 이것은 트립합이 테크노
(특히 애시드 류의)와 힙-합의 만남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트립합은 힙-합 비트와 그루브를, 테크노/전자음악의 실험적인 측면과
결합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만약 트립합이란 것이 있다면) 트립 합의 근원은 그렇다면 어디인가.
트립합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빠르게는 디스코의
초기형 중 중요한 흐름으로 필라델피아 소울의 댄스 음악적인 변형인
1970년대 중반의 "필리(Philly)디스코", 심지어는 1971년 발표되었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There's Riot Goin' On」
이나「S-pace Cowboy」를 드는 수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평론가는 심지어
'64년 작품인 리틀 앤소니 앤 더 임페리얼즈(Little Anthony And The
Imperials)의「Out Of My Head」를 들기도 한다. 트립합 또한 그루브를 중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므로, 분위기가 비슷한 일부의 펑크(Funk) 및 댄서블한
소울 음악이 그 기원으로 언급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직접적인 기원은 브리티쉬 네오 소울(British Neo Soul) 및
애시드 재즈, 프리스타일(Freestyle) 랩, 덥(Dub)/앰비언트 덥 등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먼저 브리티쉬 네오 소울의 경우에는, 트립합의 일반적으로
몽환적이고 느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그루브라는 공통된 특징을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샘플러 중심의' 소울(혹은 레어 그루브적)이라는
점에서 이미 펑크/소울 음악과 테크노 음악의 결합 형태를 제공하고 있다. 즉
브리티쉬 네오 소울은 '트립합의 원시형태'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브리티쉬 네오 소울로 분류되고 있는 매시브어택과 같은 경우에는 동시에
트립합으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 계열에서는「Keep On
Movin'」등으로 80년대 말 및 90년대 초반 댄스 씬을 풍미했던 소울 투
소울(Soul Ⅱ Soul)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겠다.다음으로
애시드 재즈(이것도 과연 존재하는 장르인가에 관하여도 말이 매우 많기는
하다)의 경우에는, 트립합 아티스트 중에 애시드 재즈로 오늘날 분류되기도
하는 아티스트가 매우 많다는 점(애시드 재즈 모음집을 하나만 사도 이건
알 수 있을 것이다)을 제외하고는, 애시드 재즈로 분류되는 부류들 중
상당히 헤비-그루브의 성향을 띠는 일부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오늘날
트립합의 분위기와 매우 유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트립합의 발상지로 흔히 불려지는 Mo'Wax 레이블 자체가 본래는
'실험적인 애시드 재즈' 아티스트들의 집합지였다는 점에서도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겠다. 한편 드 라 소울(De La Soul), 정글 브라더스(Jungle
Brothers), 피엠 던(P.M. Dawn), 어레스티드 디벨럽먼트(Arrested Development)
등으로 대표되는 프리스타일 랩(아트 랩 혹은 컬리지 랩이라고 부르기도한다)
은 샘플링 및 작곡의 방식(보컬이 삽입되는 경우에는), 보컬의 삽입
등에서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스페이스(atmospheric) 뮤직의 성향이 일부
나타나는 네오-사이키델리아(Neo-psychedelia : 실험적인 테크노의
일군이다), 그 외 레게 및 덥, 앰비언트 덥도 부분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덥/앰비언트 덥의 경우에는 덥이 레게 리듬을 바
탕으로 하고, 트립합이 힙-합/집 비트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
여러가지 악기를 부분 부분마다 배합하는 방식이나 음악외적인 요소들의
샘플링을 끼워넣는 방식이 거의 유사하다. 특히 Mo'Wax 레이블의 아티스트들
중에는 덥과 트립합 성향 모두로 분류될 수 있을 만한 아티스트들이 많다.
2. 역사
오늘날 '트립합'이라고 부르는 부류의 음악은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하나는 영국남서부의 항구 도시인 브리스톨을 배경으로 성장한
"브리스톨 사운드"이고 다른 하나는 런던의 DJ 제임스 라벨(James Labelle)이
설립한 Mo'Wax 레이블을 통하여 생겨난 "Mo'Wax 사운드(흔히 Motown 사운
드에 견주어진다)"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양재 조류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
보겠다.
(1) 브리스톨 사운드
트립합의 발상지는 역시 널리 알려진 바 대로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이다.
그래서 흔히 트립합 대신에 '브리스톨 사운드'라는 말을 널리 사용한다.
브리스톨은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브리스톨 해협과 에이번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여 해외로부터의 문화가 유입되는 관문이 되어왔다.
특히 대영제국 시절 이래로 식민지로부터 유입되는 노예 혹은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덕분에 이 지역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에서는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 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도 제도의 이민 집단은,
브리스톨을 영국 내의레게/덥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트리키(Tricky)의 음악을 일컬어 '돌연변이 세대를 위한돌연변이 음악'이라고
하였듯이, 트립합은 본래 다양한 사조의 변형 내지는 접합물인데, 그러기 위해
서는 브리스톨과 같은 다문화적인 배경이 필수적이다. 또한 영국의 여타
대도시들과는 달리 이렇다 할댄스 클럽 씬이 발달하지 않고, 대신에 사운드
시스템(Sound System : 비영어권에서는 흔히 '디스코 모빌'이라고도 부르며
본래 레게/덥 음악을 주로 하는 여러명의 DJ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파티를 열거
나 음반을 제작하는 것을 일컬었던 말이다. 매시브 어택의 음반마다
붙어다니는 'Wild Bunch'라는 것도 이들이 속했던 사운드 시스템의 이름이다.
여기서 소속된 DJ들은 클럽 DJ들에 비해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다) 씬이
발달한 것 역시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트립합의 발생에 좋은 토양을 제공한
셈이다. 브리스톨에서 가장 처음으로 '트립합'이라고 불릴 만한 음반이
나온 것은 1991년으로, 매시브 어택이 발표한「Blue Lin-es」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1983년 경부터 브리스톨 사운드 시스템 씬에서같이 활약한 와일드 번치
(Wild Bunch)의 3-D, Daddy-G, 그리고 Mushro-om(본래 여기에 넬 후퍼 - Nell
e Hooper - 가 끼여 있었으나 1987년 소울 투 소울로 빠져나갔다)을 핵으로
1987년 결성된 매시브 어택은 영국적인 소울을 완전히 소화한 후, 당시에
유행하던 최첨단의 테크노 음악의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여 재구성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재즈 드러머 빌리 코햄(Billy Cobham)의 작업을 사용한「Safe From Harm」
등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이들이 이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특히 80년대 말에 정점을 이룬 레어
그루브(80년대 중반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조로 70년대를 전후한 소울,
펑크-Funk-, 재즈 음반을 샘플링하여 이를 전자 비트에 얹는 형태의 음악이다)
의 영향이 컸다.
이렇게 보면 매시브 어택은 80년대의 레어 그루브 문화와 90년대초의 사운드
시스템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던셈인데, 이 외에도 오늘날 어느 정도
'노래'의 형태를 띄고 있는 브리스톨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아티스트들,
예를 들면 포티쉐드(Potishead)와 같은 경우에는 레어 그루브의 영향을 상
당히 강하게 받았다.「Blue Line」는 평론가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도 성공하여
스핀(Spin),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연말 결산에서 당당히 우수한
앨범으로 뽑혔을 뿐만 아니라, NME에서는 본 앨범을 역대 가장 훌륭한 앨범
100선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매시즈 어택은 1992년에 미국의 이라
크 공격을 지지한다는 뉘앙스를 줄 것을 염려하여 그룹 이름을 매시브(Massive)로
바꾸고, 스튜디오에서의 작업보다는 클럽 씬에서의 활동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3년의 공백 기간 동안 브리스톨에서는 매시브 어택과 관련을 맺은
두 걸출한 아티스트가 출현하여 '브리스톨 사운드'의 명맥을 이어갔는데, 바
로 포티쉐드와 트리키가 그들이다.포티쉐드는 프로그래머인 제프 바로우
(Geoff Barrow)와 보컬/작사자인 베스 기븐스(Beth Gibbons)가 1991년
브리스톨의 한 클럽에서 만나 탄생한 그룹이다. 본래 바로우는 록 밴
드에서 드럼을 담당했는데, 이후 DJ로 변신하여 18세부터 코치 하우스
(Coach House) 스튜디오에서 테입 조작자로 일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운 좋게도 매시브 어택의 멤버들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
과 교류하면서 나름의 음악관이 형성되었다. 이후 그는 디페쉬 모드
(Depeche Mode),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 등의 리믹스 작업,
칼린 앤더슨(Carleen Anderson)의 앨범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중, 기븐스를 만나 밴드를 조직하고,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낸 브리스톨 해협의 소항구 도시인 포티쉐드를 밴드명으로
하여 작품 구상을 시작하였다. 이들의 데뷔 앨범「Dummy」에서 이질적인
재료들을 사용하여, 우울한 느낌의 펑크(Funk) 앨범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 앨범과 함께 발표된 단편영화「To Kill a Dead Man」
, 그리고 앨범 발매일에 파랗게 색칠한 마네킹을영국 곳곳에 세워놓는
등의 해프닝으로 이들의 지명도는 더욱 높아졌다.「Dummy」역시 평론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 1995년에는 영국의 Mercury시상식에서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진출에도
나름대로 성공하였다.
그런데 바로우가 코치 하우스에서 일할 무렵, 그가 작업을 도와주었던 인물
중에는 훗날 트리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질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우는 자선 앨범인「The Hard Sell」에 수록된 트리키의〈Nothing's Clear〉
라는 곡을 프로듀서 해 주었다). 트리키(본명 Adrian Thawes)는 1968년
브리스톨에서 뮬라토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적부터 지역 갱단에 몸담았으며, 각종 범죄로 자주 감옥을 드나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18세때 당시 브리스톨 사운드 시스템 씬의 주요 인물이었던 마일즈
존슨(Miles Johnson)을 만나 음악계와 접촉을 시작한 이후로는 음악 활
동에 주력하였는데, 트리키 키드(Tricky Kid)라는 애칭을 사용하며,
특히 와일드 번치에 속했던 뮤지션들과 매우 활발히 교류하였다.트리키는
이후 매시브 어택이 결성되자. 이들의 앨범「Blue Lines」의제작을 도우며
세 개의 트랙을 제작하고 보컬을 맡는 등 '제 4의 멤버'로 활약하였다.하지만
그는 매시브 어택의 정규 멤버도 아니었고, 이들의 음악 진로에 대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1993년경, 매시브 어택과의 교류 당시부터 쓰던 애칭 트리키키드에서
'키드'를 떼 버리고 '트리키'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개시 하였는데,
문제의〈Aftermath〉를 필두로, 〈Ponderosa〉를 연달아 히트시켰으며
포티쉐드나 매스브 어택이 다루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룬 데뷔 앨범
Maxinquaye」를 1995년에 발매하였다. 트리키가 데뷔작에서 선보인 음
악의 일부분은 분명히 매스브 어택과 같이 레어 그루브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지만, 다른 넘버들은 매우 다양한 장르와의 교잡을 보여주었다.
영화 "Blade Runner" 의 스코어나 스매슁 펌킨스(Smashing Pumpkins) 곡의
샘플링을 사용한 점이나, 샘플링된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곡퀯lack Steel In The Hours of Chaos〉의
리메이크에서 트리키는 포티쉐드나 매시브 어택이 넘지않았던 '선'을 과감히
넘었다. 트리키의 데뷔작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인정을 받아, 연말
에 스핀과 롤링 스톤 지의 앨범 순위에서 2위와 3위에 각각 올랐으며,
영국의 멜로디 메이커와 MNE에서는 당당히그 해 최고의 앨범으로 꼽혔다.
잡종 중의 잡종, 트리키의 출현으로 '트립합'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졌지만, '브리스톨 사운드'를 둘러싼 화제는 식을 줄을 몰랐다.
특히 '브리스톨 사운드의 본가'임을 자처하면서, 스스로를 '최초의 브리스톨
트립합 전문 레이블로 칭한 덥/레게/힙합 레이블 컵 오브 티'(Cup of Tea)가
브리스톨의 신인들을 소개하기 시작한 1994년 말 이후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거세게 대중음악계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브리스톨을 새로운 조류의
근원지로 만들었던 매시브 어택도 '94년 말에 3년간의공백기를 깨고 제 2집
「Protection」을 발표한다.
(2) 모웩스(Mo'Wax) 레이블
한편 이와는 전혀 별도로, 유사한 음악적 움직임이 런던에서 시작되었다(사실
브리스톨 사운드와 모웩스 사운드는 모두 '트립합'으로 불리지만, 놀랍게도
브리스톨출신으로 모웩스에 소속된 아티스트로는 페더레이션(Federation)이
유일할 정도로 양대 흐름 간의 교류가 없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애시드
하우스 씬에 매스컴 및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웨어하우스(Warehouse)/
레어 그루브 씬과 재즈 댄스씬, 그리고 덥/레게 씬은 그 세력이 미약하여
더 이상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힘들어졌다. 많은 경우에 '애시드 하우스'를
제외한 다른 언더 그라운드 댄스 음악 씬은 한정된 수의 레이블 및 클럽을
통해 공존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한 지붕 밑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상호
교잡이 생기면서 초기에는 구분 가능하던 각 장르들의 경계면이 희미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브랜 뉴 헤비스(The Brand New Heavies)나 영디사이플즈
(The Young Disciples) 등 소위 애시드 재즈의 범위에 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탄생하여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두었다.스트레이트 노
체이서(Straight No Chaser)같은 잡지 - Mo'Wax 레이블의 설립자인 라벨 또한
17세부터 이 잡지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 들은 이러한 살사, 재즈, 펑크(Funk),
힙합, 레게, 아프리카 토속음악 등의 상호 교잡(a.k.a. 애시드 재즈)을 다루었으며,
"Outernationalism"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
의 장르로 규정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했다. '하우스'가 아닌
댄스 음악들은 모조리 이 부류에 던져 넣어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불어닥친 정글의 열풍과 D*Note, 질스 피터슨(Gilles Peterson :
Acid Jazz, Talk-ing Loud Records 레이블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닌자 튠
(Ninja Tune) 레이블등의 출현을 계기로 다시금 그러한 부류 내부에서의
상호교잡과 재조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나이트맥어즈 온 웩스(Nightmares On Wax)의 경우에는 브리스톨 이외의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트립합의 다양한 요소를 보여준 선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1991년 이들이 발표한「A Word of Science」는 오늘날까지도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Blue Lines」와 견주어지곤 한다. 1992년 19세의
나이로 모웩스를 설립한 DJ 제임스 라벨(James "the hollygoof" Labelle)
또한 그러한 정글의 실험적인 성격(당시에는 매우 실험적인 음악이었다)의
영향을 받아, 보다 실험적인 애시드 재즈, 테크노, 덥 그리고 힙합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였다. 본래 라벨은 비트 중심의 힙합, 테크노
와 재즈의 결합에 주로 관심을 가진 DJ였는데 그가 설립한 레이블에서 나온
음악들은 테크노, 레어 그루브, 애시드 재즈 그 어느 통상적인 부류에 해당될
수 있었다. 특히 라벨의 나이가 시사하듯, 그는 본격적으로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이후로 음악에 입문하였기 때문에, 기존레이블의
운영자들이 가진 장르상의 편견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늘날 모웩스가
힙합과 테크노를 가장 훌륭하게 결합시킨 레이블로 평가받는것은 이처럼 라벨이
속했던 세대가 음악에 대하여 가졌던 관점 덕택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재즈나
힙합, 레게, 혹은 테크노와같이 장르를 확연히 구분짓는 데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잡종이면 잡종일수록' 좋아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 지에서 라벨이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고했던 글들에도 잘 나
타나있다.
라벨의 레이블은 아티카 블루스(Attica Blues), 안드레아 파커(Andrea Parker),
U.N.K.L.E., 팜 스킨 프로덕션즈(Palm Skin Productions) 등의 영국 아티스트들
뿐 만아니라 해외의 유망한 아티스트들을 섭외하는 데에도 성공하여, 일본의 DJ
크러쉬(DJ Krush), DJ 다케무라(DJ Takemura), 토시 앤 쿠도(Tosh & Kudo),
미국의 디제이 쉐도우(DJ Shadow)와 머니 마크(Money 'Mark' : 바로 비스티
보이즈의 '제4의 멤버'), 대프트 펑크(Daft Punk), 라 펑크 몹(La Funk Mob :
그 유명한 프랑스 래퍼 MC Solaars의프로듀서이다), RPM(프랑스),
9Lazy9(이탈리아), Rob D.(Clubbed to Death의 실세이다 : 호주) 등 실로
범세계적인 진용을 구축하게 되었다. 라벨은 자신의 레이블에 속한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두는 전형적인 예이다. 또한 그는 형식적인
절차를 싫어하기로도 유명하다. 모웩스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메이저 배급사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고 있었던 것도 모두 라벨의 배려에 의해서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트리키나 포티쉐드 같은 거물과의 계약에 실패한 이후 부득이하
게 A&M과 계약을 맺고 말았다). 라벨은 최근 인터뷰에서 "앨범이 않팔리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사실 자체에 만족한다."는 자신의
레이블 경영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1992년 처음으로 모웩스 레이블의 이름으로 나온 음반은 리퍼커션즈(Reperc
ussions)의〈Promise〉라는싱글이었다. 물론 이 싱글이 곧바로 레이블의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지만 모웩스가 사람들의 입에오느내리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모웩스가 가장 처음으로 대중 음악계에 주목
을 받게 된 것은 1992년 레이블의 '간판스타'인 디제이 쉐도우(& The Groove
Robbers)가〈In Flux〉라는 12분짜리 대곡을 발표하면서였다.〈In Flux〉는
계속적으로 변박되는 힙합 비트에 각종 샘플링을 혼합시킨 연주곡으로,
당시로는 획기적인 '힙합'으로 인정받았다. 라벨이 레이블을 설립하는
과정에서가장 먼저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 중 하나이기도 한 디제이
쉐도우(DJ Shadow)는, 본래 미국 캘리포니아주 Sacramento 근교 출신으로,
어느날 라디오에서 그랜드 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의〈TheMessage〉
를 들은 이후로는 힙합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87년 정작 힙합 DJ가 된 이후로는
힙합이란 것 자체가 가진 여러가지 '불문율'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힙합의 소위 '고전파(Old school)'가 지녔던 실험성과 진보성은 없어진
대신에, 모두들 '팔리는 힙합' 레코드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있다고 지적하고,
그 일례로 가사와 비트가 천편일률적임을 들고 있다.
지난 해 말에 약관 23세의 나이로 데뷔 앨범인「Endtroducing …」을
발표하여 비평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디제이 쉐도우는, 공언했던대로
여러 가지 실험들을 감행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모웩스의 간판스타는
디제이 쉐도우와〈Duality〉라는 트랙에서 실력을 겨룬 도쿄 출신의 디제이
크러쉬이다. 트리키가 브리스톨 지역의 갱단에 몸담았듯이, 디제이 크러쉬
또한 본래 야쿠자(일본판 마피아라 할 수 있는 폭력조직)에 몸담았는데,
이후 미국의 대중음악에 귀화되어 80년대 초반 턴테이블을 잡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은 어두운 편이다). 디제이 쉐도우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의 음악 또한 철저히 DJ 중심으로 보컬의 역할은 극히
미미할 따름이다. 이미 미국에서도「Krush」('94),의 음반을 발매한 디제이
크러쉬는 기존의 힙합이 철저히 래핑에 가려 음악적인 면이 경시되었던 것과
는 달리, 음악 자체에 치중하며 특히 그의 곡들은 보컬 없이도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영상을 제시할 수있는 힘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1992년 설립 이후, 모웩스 레이블에서 지금까지 나온 음반은 대략
70장 정도 (싱글포함)인데, 아직까지는 디제이 쉐도우와 디제이 크러쉬
정도만이 '성공'을 거둔 편이다. 하지만 최근 모웩스 사운드라는 것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많은 아티스트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티카 블루스는 지난해 피닉스 페스티
벌에 초대된 바 있고, 비스티 보이스와의 인연(?) 덕택에 유명해진 키보디스트
머니 마크(본명 : MarkNishita) 또한 지난 해 말에 앨범「Mark's Keyboard
Repair」를 발매하여 서서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도 토시 앤 쿠도, 맷 듀카스(Mat Ducasse)와 함께 스카이랩(Skylab)
을 구성하여 모웩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위 비(Howie B)는 (말많은)
U2의 새 앨범「Pop」의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3.특징
일반적으로 장르라고 부르려면 장으 내부의 아티스트들 간의 특징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트립합'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부 평론가들이 브리스톨 출신의 아티스트들과 모웩스아티스트들을
하나의 장르로 묶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이미 그들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
리가 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있다. 이들의 음악의 분위기에 대해서 우선
살펴보자. 가지고 있는 어떤 앨범이라도 좋으니 소위 '트립합' 앨범을
두 장 꺼내서 들어보라. 비슷한 느낌이 오는가.사실 한 두 번 들어서는
포티쉐드와 트리키, 그리고 모웩스의「Headz」컴필레이션에 들어있는
아티스트들의 음악 간의 어떠한 공통점도 딱 집어서 말하기 힘들다.
먼저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려면 이들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비트를
들어봐야 한다.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나, 대개 헐렁하고 느린 힙합(집)
비트의 변형이다. 쉽게 말하면 트립합이란 변형된 힙합 비트에
테크노/덥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얹은 것이다.
우리가 얼핏 듣기에는 비트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보컬이나
각종의 음향효과, 그리고 멜로디 같은 것들이 우선적으로 귀에 들어오기 때문에
평론가들이'트립합'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아티스트들 간에 어떠한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트립합이란 극단적으로 말해서 애시드 재즈 및
힙합과 덥, 그리고 테크노/앰비언트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류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전형적'인 트립합 사운드는 어떤 '분위기'를
연출해낸다는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앰비언트/덥의 영향이다). 대개 그러한
느낌은 명칭이 시사하듯 '몽환적(trippy)'이다.결국 트립합이란 '몽환(또는
실험)적인 분위기의 힙합' 정도라고 정의하면 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구체적인
설명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전형적인' 트립합의 요소들을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변형된 힙합 비트 (대개 느리면서도 끊기지 않음)
② 엄청나게 퍼지는 저음의 베이스
③ 레어 그루브적인 과거 펑크(Funk)/소울 음악, 여타 음악 샘플링의 덥적인 사용
④ 음악 외적 요소들의 첨가(영화대사나 생활의 소음들)
⑤ 너무 부각되지 않는 보컬이나 읊조리는 듯한 래핑
⑥ (가사가 있는 경우에는) 사회 관계, 인간 관계가 주는 좌절과 관련된 가사
하지만 이것이 전부 모웩스 쪽의 뮤지션들이나 브리스톨 뮤지션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보여진다. 특히 모웩스는 전형적인 '연주곡'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레어 그루브나 정통적인 소울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지 않고
보다 실험적인 면을 가지는 반면에, 브리스톨의 아티스트들은 훨씬 소울의
흐름에 가깝다. 예를 들어 베스 기븐스(Beth Gibbons : Potishead)나 모치바
(Morcheeba)같은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다. 브리스톨 아티스트들의 곡들은
통상적인 '팝송'에 가까운 형태가 많은 셈이다. 이들을 하나의 분류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음악 외의 측면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브리스톨
사운드나 모웩스 사운드는 모두 DJ와 프로듀서의 역할 증가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샘플러의 비약적인 발달은 단지 보컬을 돋보이기 위한
위치에 머무르던 DJ에게 다시금 음악적인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어주었다. 보컬이 없이도 트립합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음악적 메시지를
'분위기'를 통해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샘플러와 샘플링 기술의
발달은 DJ로 하여금 샘플러를 '기타'와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샘플러의 발달은 동시에 밴드 인원의 최소화를
의미한다. 모웩스 레이블에서는 '밴드'라고 부를만한 아티스트를 찾기가
힘들다. 브리스톨에서도 보컬이 밴드 내에 존재하는 것은 포티쉐드 뿐이다.
이것은 더 이상 악기를 다룰 인원이 밴드 내에 다수 공존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립합'의 움직임은 '정글'의 그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정글이
본질적으로 클럽 및 춤을추기 위한 것이라면, 트립합은 소란스러운 다운타운
보다는 교외의 침실에서 헤드폰을 듣고 즐기기에 알맞은 음악이다.
트립합은 춤이나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감상을 위하여
만들어진 음악인 것이다.
4. 결론 - 상업적 음모?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트립합'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이상에서는 '트립합'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설명을 했다. 하지만 정작 '트립합'을 한다고 알려진 아티스트들에게
'단신 트립합 아티스트냐'고 물으면 아마도 100% 이것을 부정할 것이다
. (이것은 과거 애시드 재즈 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Alternative
Press와의 인터뷰에서 디제이 크러쉬는 "나는 단지 힙합을 할 뿐인데 왜
사람들은 나를 어떤 다른 것으로 분류하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
."고 말한 바 있다. 또 포티쉐드의 베스 기븐스는 영국의 유력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들은 우리들의 음악이 트리키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나는
도무지 공통점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트립합'이라는 말이 음반업계의
상술로 비난받은 것은 지난 해에 그를 실버피쉬(Silverfish)의 멤버
루비(본명 : Leslie Rankine)가 솔로 앨범인「Salt Peter」를 발매하여
상당한 주목을 끄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물론 루비도 자신이 트립합으로
분류되는 사실에 격분하였다).〈Paraffin〉과〈Tiny Meat〉이 각각
유럽과 미국에서 히트한 가운데, 트립합이라는 조어에 거부감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을 예로 들며서 '업계의 상술'을 들먹거렸다.
당시까시 트립합으로 분류되던 아티스트들의 음악과 비교할 때 그다지 주의깊게
듣지 않아도 상당히 다른 면이 발견되는 앨범이었다(그래서 일부 업자들은
궁여지책으로 이 앨범이 '인더스트리얼+트립합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트립합을 둘러싼 논쟁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이지만 아직까지
도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무엇보다도
아티스트 자신들이 거부하고 있다).이렇게 트립합을 둘러싸고 말이 많은
것은 무엇보다도 트립합이라는 것의 기원이 너무나도 다양하고,또한 한 두
가지 장르의 접합으로 일어난 흐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심지어는 트립합의
시조로 너바나의〈Something In The Way〉를 드는 사람도 있다). 대개 어떤
흐름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아티스트간의 공통점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그 기원도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트립합의 경우에는 다소 작위적으로 급조된 장르라는 느낌이 강한것도
사실이다.
본인 또한 여기서 트립합이란 것이 존재하느냐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을
유보하겠다.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들에게 붙이는 꼬리표(tag)가 아니고,
음악 그 자체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글 / 하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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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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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RAP에 대한 생각 (글 : 가리온 Meta)
[1]. 먼저 들어가기전에
작년 언젠가 클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었다. 아마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랩을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서 방법을 가르쳐 달랜다. 무작정 랩을 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데, 난감했었다.
솔직히 본인도 그런 방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클럽에서 랩을 하는 사람이나 혼자서 해본 사람들은 잘 알리라. `랩을 배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물론 그 친구에게 당시 어찌어찌 하면 도움이 되리라
하는 몇 가지를 얘기해 주었었다. 물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들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간절히 얘기를 해 달라기에 생각나는 데로 얘기를 해주었는데,
이번 글에서 그 내용들을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여전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2]. 나의 자세는!
우선 랩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자세부터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슨 자세냐? 자신이 랩을 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뭐, 시작부터
왜 이렇게 거창하냐? 라고 반문할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좋아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난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랩을 한다는 태도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주절주절 랩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랩이란 것은 자신의 얘기와 생각을 들려주는 것인데, `난 아무 생각없이 주절거려'
라는 모습이라면 얼마나 멍청해 보이겠는가? MC는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철학가의 자세를 가진다고 본다. 단순히 지껄이는 것이
랩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3]. 자신의 톤을 믿어라!
본인도 그랬고 처음 랩을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왔던 공통 현상(?)
중에 하나는 바로 좋아하는 MC의 랩 톤이나 스타일을 따라하려는 것이다. 투팍이나
우탱클랜의 메써드맨과 같이 매력적인 톤을 따라하고픈 욕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계속 랩을 하다보면 자신의 가장 자연스러운 톤으로
튜닝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톤을 믿어야 한다. 어찌보면 사람들에게 웅변을
하듯 자신있게 얘기를 하는 것이 랩인데, 가장 힘있는 톤은 바로 자신의 원래 목소리인
것이다. 억지로 남의 톤을 따라서 랩을 한다면 숨겨진 자신의 멋진 톤을 잃어버릴
것이다. 랩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움에서 배어져 나오는 것이다.
[4]. 자신의 이야기 가사
최근 통신상에서도 몇몇 오버그라운드 가수들의 래핑에 대한 비평의 글들이
올라오는데, 그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데 그것을 가사로 썼다'는 것에
대한 비난의 글을 보고 내심 참 고무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MC가 쓰는 가사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영향받은 직, 간접의 경험과 자기 철학을
피력하는 것이다. 가사는 바로 자신을 낱낱히 그려내는 것이다.
그만큼 가사를 쓰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가사를 쓸 때,
라임과 플로우를 같이 고려해야되기 때문에 단순히 작문하듯 쓴다면, 자신의 처음
의도와는 많이 차이가 나는 결과물을 보게된다. 가사를 잘 쓰려면 결국 자주 쓰고,
자주 읽어보아야 한다. 어떤 소설가가 말했듯이 `다독, 다색, 다작' 에는 이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많이 읽고(경험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이 왕도라 여겨진다.
가사도 쓰다보면 자신의 스타일이 나오는데, 그런 레벨에 다다르면 훨씬 유려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5]. 자신의 호흡과 막힘없는 대사(FLOW)
100 미터 달리기를 막 끝낸 선수에게 말을 걸면 바로 대답을 듣기가 무지 힘들다.
거친 호흡이 여기 저기 끼어 들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좀 억지로 비유한 것이긴 하지만, 랩을 할 때도 자연스러운 호흡이 받침이 되어야
단어를 정확히 발음해 낼 수 있다. 문장의 어디에서 어떻게 호흡을 끊어주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여기서 어떻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랩을 하다보면 자연스러운 자신의 호흡 패턴을 은연중에 알
수 있게된다. 그것이 확실해지면 자신의 플로우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호흡이 자유로워지면 랩의 드라마틱한 전개는 더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서,
강약의 조절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랩의 바운스(bounce)감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펑키한 랩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6]. 라임과 메세지
래핑을 라이밍(Rhyming)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만큼 라임의 중요성은 큰데, 한글로 랩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라이밍인 것 같다. 영어와는 달리 여러 면에서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라임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두운, 각운의 매치뿐만 아니라 문단의 전체적인 뉘앙스라든가, 문장의 운율적
진행 방식까지도 모두 라이밍의 범주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한글 라이밍의
가능성은 크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흑인 슬랭 하나지만 한국에는
다양한 사투리들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본인의 고향은 대구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가사를 쓴 적이 있는데 상당한 라이밍의 자유도가 느껴졌다.
전라도나 강원도 지역 사투리를 이용한 라이밍을 구사한다면 그것도 상당히 들을만한
수준이라 여겨진다. 물론 표준말이 아니기에 메시지 전달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의 사투리와 표준어를 섞어 사용한다면 한글 랩의 다양성은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7] 끝내면서
지금껏 본인이 생각하는 랩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시작을 함과 동시에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하나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공식에 자신을 넣지 말기
바란다. 틀에 자신을 끼워 넣는다면 자신의 본 모습은 사라진다. 자연스러움을 가장
기본으로 하여 편안하고 즐겁게 랩을 해보라. 그런 다음은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따라가면 된다. 다만 한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랩을 하는 자신의 태도이다.
난 그냥 `좋아서 한다'는 것, 말은 된다. 하지만 난 `진정한 MC'가 되고 싶다거나,
랩을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면 자세를 잡아라. 세상에 널린 수많은 짝퉁들 속에서
진정한 마이크를 잡고 싶다면.글 / 가리온 M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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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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